sbs와 mbc의 10시 주말 드라마가 동시에 출격했다.

sbs는 이전 <출생의 비밀>이 한참 인기를 끌던 <백년의 유산>으로 반등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 하기라도 한듯, <출생의 비밀>의 예정되어 있던 회차를 줄여가며, mbc<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동시에 시작하는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의욕을 뒷받침하듯, 남상미와 이상우의 적나라한 러브씬에 이은 베드씬에, 홍혜정(이태란 분), 송지선(조민수 분), 권은희(장영남 분)의 결혼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함으로써, '그 어떤 취향을 가진 고객도 다 만족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멘트와도 같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늘 주말 시청률 1위 자리를 선점하던 kbs2의 8시 주말 드라마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던 <백년의 유산>의 후광을 업은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도 만만치 않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형사 하은중(갬재원 분)이 권총 사격 연습 중 오열하며 총기를 들고 폭주하며 도착한 곳은 바로 자신의 집이다. 거기서 그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 하명근(조재현 분)에게 총구를 겨눈다. 자신을 납치한 유괴범이라며. 그리고 드라마는 1988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태하 그룹 회장 장태하와 하명근의 악연이 시작된다.

 

(스캔들의 장태하 회장 역의 박상민- 사진; 마이데일리)

 

<스캔들>은 초반 몇 분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결혼의 여신>은 2013년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에서 '트러블 메이커'는 재벌이다.

 

<스캔들>의 재벌 장태하는 88년 대한민국을 휩쓴 건설 강국의 주인공으로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설계 도면을 마구 뜯어 고치고, 그 결과 건물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88 올림픽이라는 것을 기회로 삼아 '테러'의 음모로 넘겨 버림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덮으려 하고, 아마도 거기에 하명근의 아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다. 드라마는 하명근의 비극을 그려내기 이전에, 88올림픽을 앞두고 불도저를 들이밀고, 철거 깡패가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철거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태하 건설의 '원시적 축적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드라마 첫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외적으로 드러난 아동 납치범은 하명근이지만, 그 이면의 납치 사건을 조장한 본원적인 범죄자는 장태하라는 재벌이라는데 이 드라마의 촛점이 잡혀져있다.

 

<결혼의 여신>은 그저 서로 다른 네 명의 여인들의 결혼과 결혼을 앞둔 고민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중 두 명의 여인, 홍혜정과 송지혜(남상미 분)가 재벌집과 연관되어 있고, 나머지 여인들은 이 두 사람과 인척 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리고 홍혜정과 송지혜의 삶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강태욱(김지훈 분)과 강태진(김정태 분)의 재벌가이다. 그리고 이 재벌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강태진이나, 오히려 이혼을 한 며느리가 재벌가에 남아있는 홍혜정을 불쌍히 여기듯이, 안하무인에 이기적 전횡이 몸에 밴 집안이다.

 

(결혼의 여신 중 홍혜정- 사진; 마이 데일리)

 

<스캔들>이 재벌의 개인적 부도덕은 물론, 사회적 부도덕성에 집중하는 반면, <결혼의 여신>은 개인간의 관계에서 오는 부도덕성은 물론, 뿌리깊은 '갑질'의 주범으로 재벌을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우스개 소리로 대하민국 드라마에서 재벌이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새로 시작한 두 주말 드라마에서 재벌은 문제를 일으키고 확산 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라고 시청률은 말해주고 있다. 지금 막 시작한 드라마 뿐이 아니다. <백년의 유산>도 그랬고, <출생의 비밀>도 그랬고, 스토리와 구성만 달라질 뿐, 언제나 문제의 시작은 그들이었다.

 

10시대 주말 드라마는 8시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전연령층,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타겟이다. 그런데 그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의 악의 축이 재벌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살면서 드라마속에서처럼 재벌과 엮이게 되는 일은 일생 가야 한번 있을까 말까 한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정반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들과 엮이고, 그들로 인해 주인공들은 고통을 받는다.

예전 신데렐라 스토리가 한참일 때라면, 재벌과 엮인 그 이야기들이, 보통 사람들의 신분 상승의 환타지를 상징한다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 속 재벌들은 다르다. 그 누구보다도 부도덕하며, 온갖 사회적 비리의 주범이며, 극한의 찌질한 '갑질'을 일삼는다. 마치, 실생활에서 인간 관계로 엮이지 않아도, 우리 삶의 피폐함의 원인이 누구때문이라는 걸 '이심전심'으로 제작진과 시청자가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결국은 보통의 주인공이 승리를 얻는다. 하지만, 그 승리의 과정은 언제나 지고지난하다. 궁극의 승리를 위해서, 시청자들은 마지막회까지 되풀이되는 재벌가의 전횡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얻어질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승리를 드라마는 지루한 인내 끝에 선사한다. 덤으로, 인간답지 않은 재벌들을 마음껏 욕하며 얻는 카타르시스도

by meditator 2013. 6. 30.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