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라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모 감독의 늦은 연애가 전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바로 그가 '아내가 있다'라는 이유다. 그런데 남편의 애인이 생겼다는 전언에 담담하게 '같이 살자'는 아내가 있다. 그러나 역시 '이성적 판단'은 무리였을까? 결국 아내는 이 '혼돈'의 공동체를 견뎌내지 못하고 직장도 잃고 집을 떠나야 할 처지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통속적 막장 스토리, 그런데 이 스토리가 사회민주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덴마크'에서라면? 지난 2일 개봉하여 근근히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랑의 시대>는 바로 1970년대 덴마크판 사랑과 전쟁을 다룬다. 






유산으로 남겨진 저택, 공동체가 되다
건축학과 교수 에릭(울리히 톰센 분)에게 대저택이 상속되었다. 아름다운 정경을 지닌 층층이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저택, 어릴 적 추억이 고이고이 간직된 곳이지만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에릭에겐 그저 어서 빨리 팔아버려야 할 부담일 뿐이다. 아내 안나(트리히 홀름 분)와 딸 프레야(마샤 소피 발스트룀 한센 분)과 함께 저택을 보러 간 날 팔 궁리를 하는 에릭에게 안나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여기서 '공동체'를 일구자고. 

안나의 변은 이렇다. 늘 에릭의 말만 듣고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이 권태롭다고, 이젠 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살고 싶다고. 그녀가 떠올린 첫 번 째 사람은 이들 부부의 젊은 시절 친구인 올레(라스 란데 분), 단촐하게 비닐 봉지 두 개를 들고 이들의 집을 찾아온 올레를 시작으로 다섯 남자와 다섯 여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집의 소유조차 야심차게 '공동'으로 등기하고자 하며 '공동체'를 이룬 이들은 식사는 물론, 여가까지 함께 즐기며 '공동'의 삶을 유쾌하게 꾸려간다. 

그러나 늘 '공동'의 삶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공동체 면접에서 부터 '집세'에 연연하던 에릭의 의도와 달리, 직장조차 알론까지 합류한 이들의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은 교수인 에릭과 유명 아나운서 안나이다. 외국인 알론을 못마땅해하며 그의 짐을 호시탐탐 태우는 올레처럼 함께 사는 삶의 불협화음은 늘 '토론'과 '거수'로 진행되는 공동체의 삶을 달군다. 

그래도 그럭저럭 서로 맞춰가며 사는 삶, 정작 위기는 그 공동체를 발의한 '에릭-안나 부부에게서 시작된다. 늘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안나, 그런 아내에게서 에릭은 소외감을 느끼고, 그런 그에게 학생인 엠마(헬렌 레인가드 뉴먼 분)이 다가온다. 엠마와의 밀회를 즐기던 에릭, 아내가 공동체 식구들과 놀러 간 날, 집으로 온 엠마를 딸 프레야에게 들키고 만다. 결국 아내에게 자신의 외도를 고백하고 집주인 에릭이 집을 나가게 되지만, 그도 잠시 거처가 마땅치않은 에릭과 엠마의 처지를 배려한 안나의 결정으로 '엠마'가 공동체 식구로 합류하기에 이른다. 



'이성'으론 감당할 수 없는 '사랑'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가족이란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로 해소하려 시도한 안나는 남편의 외도에 조차 이성적으로 대응한다. 남편의 외도를 '가정을 깨뜨리는 비도덕적 행위'로 지탄하는 대신, 순순히 감정의 진실을 직시하며 그의 다른 사랑을 수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살면 사랑하는 이의 외도도 저렇게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나? 라는 의아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의 진심을 순순히 받아들이려던 안나, 하지만 그가 부재한 결혼 생활은 조금씩 안나를 무너뜨려 간다. '대인배'적으로 엠마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정작 공동체 식구들이 그녀를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자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밤마다 들려오는 엠마와 남편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는 그녀를 불면의 밤으로 끌어들이고, 결국 거리에서 사인을 해줄 정도의 명성을 일궜던 그녀의 직업조차 무너뜨린다. 공동체의 식탁에서 술에 취해 어디서 넘어진 듯 흙을 묻힌 차림새로 엠마에게 남편을 다시 나누어 주기를 간청하는 듯한 꿈 이야기를 하는 안나는 이제 더 이상 '공동체'를 주도하던 당당한 그녀가 아니다. 심지어 에릭과 안나를 집에 거주하는 문제를 놓고 '니가 나가라'며 언성을 높이는 상태에 이른다. 

결국 이런 안나와 에릭의 집 쟁탈전을 둔 설전의 결론을 내린 것은 딸 프레야다. 딸은 엄마가 이 집에 머무는 것은 엄마를 망칠 뿐이라며 엄마가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결국 안나는 집을 떠난다. 아마 우리네 통속극이었다면 어떻게 딸이 그럴 수 있어?라는 공분을 일으킬 장면이지만, 프레야의 선택을 통해 감독은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결국 '건강한 개인'이라는 것을 짚는다. 



결국 안나는 실패한 것일까? 남편 한 사람을 두고 아내와 정인이 한 집에 머무는 양상을 보면, 예전 우리 조상들의 첩을 거드린 가족 형태가 떠올려진다. 그 시절 부처님도 돌아앉을 씨앗을 '인고하며' 대가족을 일구며 어머니들은 살아왔고, 그 '인고'의 세월을 '한'이라 지칭되며, 희생하는 어머니상, 가족의 대들보 어머니 상의 한 부분을 구성했다. 그런 면에서 안나는 '집'을 잃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며 '한'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탄생시킨 우리의 '어머니들'과 안나는 다르다. 

안나는 분명 그녀가 가진 것들 남편과 공동체와 직업, 그리고 집마저 잃었지만, 어쩐지 가방을 들고 나서는 그녀가 홀가분해 보인다. 그녀를 보내고, 그리고 마치 그녀를 따라나서듯 사랑하는 이를 따라나선 딸 프레야를 보내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 에릭이 집에 남아있지만 진짜 실패자처럼 보인다. '사랑'의 시대는 갔지만, 그렇다고 안나의 삶이 끝난 건 아니다. 안나는 얼마전 그녀를 '혼란'에 빠뜨렸던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진짜 자신을 찾아나설 용기를 낸 첫 걸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의 시대>가 주는 감동은 바로 그 단촐하게 떠나는 안나로부터 시작된다. 

공동체와 개인의 딜레마 
<사랑의 시대>는 7살부터 19세까지 공동체 생활을 했던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경험에 기초한다. 수상이 나서서 덴마크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며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명을 할 정도로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한 덴마크, 2차 대전이 종전 된 후 집권하여 1982년까지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아래 남녀간 성평등과 사회 경제적 복지 국가를 이루어 내던 그 시기의 정점에 있는 70년대의 덴마크 사회를 떼어놓고서는 이 영화를 말할 수 없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사회주의자, 직업이 없는 외국인,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까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공동체는 에릭-안나가 이룬 대저택의 공동체를 넘어 마치 70년대의 덴마크 사회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런 그들이 에릭과 안나의 경제적 기반 위에 공동으로 살아가며 때론 에릭이 '내집이야' 다 나가라는 위기를 견뎌내며 과정은 '자본주의' 체제 위에 선 사회민주적 실험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감독이 생각하는 위기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에릭과 안나의 갈등처럼,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론적 갈등이다. 무직이었던 외국인 알론이 식기세척기를 사들일 정도로 공동체의 틀은 견고해지지만 정작 위기는 그 공동체를 일구는 사람 개개인의 자존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권태로운 결혼 생활의 위기를 친구같은 이들과의 공동체로 해결하려 했던 안나가 정작 남편의 외도라는 문제에서 무너지듯, 그리고 자신의 집인데 공동체의 결정에 따라 자신이 쫓겨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에릭이 '다 나가라'며 목소리를 높이듯, 결국 파국은 '욕망'과 '자존'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하다. 

공동체 2부작이라 칭해지듯, <더 헌트(2012)>에 이어 공동체와 개인의 갈등을 다룬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더 헌트>에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로 부터 배제되는 주인공으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비감하여 인간의 편협한 도덕성을 회의하게 만들었던 <더 헌트>와 달리, <사랑의 시대>는 '그 또한 지나가리니'처럼 '시대'라는 연속성으로 인해 보다 여운을 남긴다. 딸이 자라는 걸 보고 싶었던 에릭은 결국 딸조차 나간 집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 9살을 넘기지 못한 꼬마의 장례식에서 함께 하듯이 그들이 일궜던 공동체는 여전하다. 아마도 언젠가 자신을 일으켜세운 안나가 또 다른 사랑하는 이와 다시 공동체의 면접을 볼 날이 올 지도 모를 희망까지 갖게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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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2.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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