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새삼스레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진부한 문제 제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들이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서바이벌' 무대에 오른다는 전제가 늘 가수의 의욕과 원곡의 가치 사이에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 가수들의 첫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래 기존의 곡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른 편곡 논란은 계속 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논란은 김범수의 '희나리'였을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로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던 김범수가 '님과 함께'의 화려한 무대로 1등을 거머쥔 뒤, 더 이상 <나는 가수다>를 통해 오를 곳이 없다고 판단했던 김범수는 방향을 틀어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적 편곡을 선보인다. 
가장 애절한 노래 중 하나였던 구창모의 '희나리'를 파격적인 전자 음향을 입힌 테크노 버전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희나리'의 김범수 무대는 우리나라에서 테크노 음악을 소개하는데 앞장 선 구준엽이 디제잉까지 하며 합류하여, 파격적인 정서의 극치에 도달했다. 

(사진; 데일리 중앙)

하지만 테크노 버전 '희나리'의 무대 뒤 과연 '희나리'라는 노래가 가진 이별의 정서가 그런 편곡에 어울렸는가를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물론 김범수 이전에, 이미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불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이소라는 빠른 댄스 곡이었음에도 가사가 오히려 애잔한 정서를 내보이고 있는 '넘버 원'의 정서를 살려낸 것인데 반해, 김범수는 '희나리'가 가진 정서는 뒤로 한 채 테크노라는 실험 정신만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편곡이라는 외줄 타기가 건너가야 할 양 극단의 강이다. 
때로는 너무 원곡과 똑같이 불러서 차별성이 없다는 모창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원고의 아우라를 해쳤다는 평가에 직면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러이러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희나리'의 논란에서처럼, 적어도 원곡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리듬은 보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편곡'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이제 <불후의 명곡>으로 돌아와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이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가수들이 '전설'이라 칭해지는 선배 가수를 바로 앞에 모셔놓고, 그의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광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늘 가수들이 말하듯, '누가 될 '수도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8월31일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러면서 또 동시에 그의 인기에 눌려 빛을 덜 발하지만, '싱어 송 라이터'의 효시가 더 그의 진면목인 전영록이 전설의 자리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마돈나'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디바'라는 말이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정도의 무대를 선보인 '바다'의 '불티'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바다가 화려한 무대의 '불티'를 통해 410점을 넘은 높은 점수를 얻고, 이어서 다시 여러 가수들이 도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요즘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 'exo'였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exo'가 가지고 나온 곡은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였다.
역시나 'exo'답게 칼군문에 맞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시청하던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원래 노래가 어떤거야?"
그도 그럴 것이, 'exo'버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그들의 노래, '늑대와 마녀'나, '으르렁'의 분위기와 더 흡사한 반면, 전영록의 원곡,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전영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들리기는, 그저 'exo' 앨범에 실린 어느 한 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른바 편곡의 정의에 맞춰 따지자면, 장단조의 바뀜 등,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수의 가수들이 김범수처럼, 탱고,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exo'처럼 이 정도로 원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사만이 남은 편곡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멋진 아이돌 그룹'exo'만의 분위기만이 있을 뿐이다. 

늘 전설들은, 후배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노래가, 저들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 재창조되는 것이 행복하다,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31일의 전영록도, 'exo'의 노래를 듣고 그랬을까?


by meditator 2013. 9. 1.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