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도 가고, 인어도 갔다. 휘몰아쳤던 '환타지' 로맨스의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그리고 그 바톤을 조선판 '개츠비'가 잇겠다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간대 경쟁작 김과장의 바튼 추격(김과장 12.8%, 사임당 13.0% 닐슨 코리아)에 고전하는 모양새다. 아직 본격적으로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젊은 시절 이야기였으니, 4회의 약진을 기대해 볼까?




환타지로서의 로맨스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극 내용이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신사임당의 '가상' 일기다. 남성중심 사회인 조선에서 여성임에도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예술가를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뿐이면 섭하다. 빠질 수 없는 사랑, 그를 위해 '이겸'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역적으로 몰려죽은 왕족의 손자이자, 훗날 도화서의 수장이 될 이겸은 어린 사임당과 '안견의 금강산도'를 매개로 인연을 맺고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운명으로 인해 '혼인'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평생 사임당 바라기로 살아가는 '조선판 개츠비'이다. 이렇게 <사임당>은 실존 인물 사임당의 주변에 지고지순한 순정남 이겸을 배치하여 '환타지'로서의 구성을 완성한다. 

이처럼 최근 '로맨스' 드라마에서 추세는 '환타지'이다. ost의 한 소절만으로도 대번에 연상되는 붐을 일으킨 tvn의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러했고, 최근 종영한 sbs의 <푸른 바다의 전설>이 그랬다. '미니 시리즈'에서 화제가 된 로맨스 드라마치고 '환타지'요소를 피해간 드라마가 없다. 혹자는 <태양의 후예>를 들지도 모른다. 

16회 시청률 38.8%의 2016년 최대의 히트작 <태양의 후예>는 전장터를 배경으로 파견 군인과 의료 봉사단 의사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을 다루었다. 하지만 극 초반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이국의 전장터에서 격투씬까지 벌이며 작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대한민국 군인이야말로 '솔직히' '전작권'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캐리터보다 '환타지'적이 아니었을까. <태양의 후예>는 헬기를 타고 신출귀몰은 물론, 총을 맞고 절명하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날 작전에서 펄펄 나는 유시진을 통해 이 인물이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히어로못지 않은 캐릭터임을 시인한다. 왜 굳이 대한민국을 놔두고 우르크라는 이방의 장소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심지어 극중 배경은 중앙 아시아의 난민이 발생하는 국가라고 설정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비경으로 소문난 그리스이듯이, 배경부터 시작하여 캐릭터의 활약상까지,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입은 로맨스라는 신 장르를 개척한 드라마라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김은숙 표 드라마 = 환타지 로맨스의 역사 
물론 일찌기 우리의 '로맨스'는 환타지였다. 가난한 여성과 사실은 평생 가야 그녀가 마주칠 일조차 희귀한 재벌가의 자제가 '사랑'을 나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꿈'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이 시대를 타고 '현실적'인 양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드라마의 개연성'이었다. 앞서 <태양의 후예>에 이어 <도깨비>로 '갓은숙'으로 칭송받기에 이른 김은숙 표 로맨스를 되돌아 보면 바로 '환타지'로서의 로맨스의 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57.6% 20회)을 기록한 여전한 김은숙 표 드라마의 아성 <파리의 연인>을 비롯하여, 2012년 <시크릿 가든>에서 2013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까지, 특히나 김은숙 드라마 중 신드롬 급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은 '재벌' 혹은 '재벌'가의 자제들이었다. 여전히 인기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속 주된 캐릳터들만 봐도, 재벌가는 여전한 '사랑'의 근거지가 된다. 

이렇게 로맨스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 되었던 '재벌', 그들의 빈번한 드라마 출정은 배금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백'도 잦으면 싫증이 나는 법,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까지 남자 주인공을 독점하는 '재벌'가 남자들에 대한 '진부함'이 쌓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자본의 독점과 과점이 전사회적으로 체제화 되어가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은 부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고착화된 계급사회화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그 경제적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반응 또한 도출한다. 

그래서 재벌은 여전히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사랑'이 주요한 배경이자, 주인공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장르물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서 '주된 악'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최근 시작한 <피고인>을 비롯하여 도덕적 의식이 부재한 사이코패스 악인은 대부분, 그 존재가 '재벌'인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부'의 쓰임새가 사이코패스적 체감을 가져올 만큼 부도덕하다는 광범위한 대중적 인식에 기인한다. 



로맨스물의 궤도 수정= 업그레이드 재벌
그러니 발빠른 트렌디 로맨스 물의 궤도가 수정될 밖에. 주말 드라마나 주부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를 썼던 박지은 작가는 영생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을 주인공을 등장시켜 2014년의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재벌'을 넘어선 존재로 외계인이 등장한 것이다. 도깨비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인간 세상에 산 도민준은 그의 외계적 능력을 이용하여 재벌못지 않은 부를 지녔으며, 위기의 천송이(전지현 분)를 구해낼 기상천외한 능력을 지닌다. 이제와 비교해 보면 도깨비 김(공유 분)와 외계인 도민준은 도깨비와 외계인이라는 이질적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신묘한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여 재벌에 버금가는 부와 재벌같은 인간 따위가 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서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능력에서 상당히 유사한 버전이다.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만약에 영생을 사는 외계인과 도깨비가 가난한 백수라던가, 취준생이었다 해도 지금과 같이 그들의 슬픈 운명으로 인한 여운에 시달렸을까?

재벌못지 않은 캐릭터가 또 있다. 역시나 김수현이 분한 <해를 품은 달>의 왕 이훤과 역시나 왕못지 않은 세자인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박보검 분)이다. 이들은 권문 세족의 핍박을 받는 불우한 왕족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불운을 넘어 사랑을 지켜 낼 '왕족'의 권위가 있다. 현대의 어느 재벌인 들 신분제 국가의 왕을 넘볼 수 있겠는가. 

2012년 <해를 품은 달>부터 2017년을 신드롬으로 연 <도깨비>까지 화제가 되었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 로맨스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재벌' 대신,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돈은 물론 권력을 가졌거나, 권력은 저리 가라할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신묘한 남자 주인공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현실의 신분 상승은 점점 암담해지고 신 신분제 사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빈익빈 부익부가 고착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재벌은 로망 대신 사이코패스적 부도덕의 상징이 되어가는 '암울한 현실'인식이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의 극강의 환타지는 위로하고 마취하며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는 지렛대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7. 2. 2.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