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세대 대결이니, 어른 세대가 대동단결해 젊은 세대를 물리쳤느니 하는 분석이 나오는 시대다. 더 이상 쪽수로 어른들이 밀리지 않는 세대, 평균 수명 80세를 넘는 시대다.

**알과 같은 비슷비슷한 종편의 프로그램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중장년층이요,젊은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중장년층 덕분에, 영화과 뮤지컬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진작부터 텔레비젼 시청률의 관건은 바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장년층의 위치가 확고해져 갈 수록, 젊은이들은 그들이 즐기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진다.

<뮤직 뱅크>와 <쇼 음악중심>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가는 것을 걱정하지만, 일찌기 중장년층만의 리그였던 <가요무대>는 굳건한 고정 시청률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절대 젊은이들이 이 프로를 보지 않는다. 이른바 대놓고 '막장'의 코드를 내세운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집에 일찍 와서 그걸 보는 엄마랑 이야기하느라 앉아있다 함께 실소를 지을지언정, 그걸 찾아보게 되지는 않는다. 지난 선거 때 종편의 정치 프로그램에 심취한 아버지 곁에 앉았다가 심하게 싸워 본 경험, 그게 아니라도 뉴스를 보다 입바른 소리 몇 마디로 부모 자식이 얼굴을 붉힌 기억, 혹은 꿀떠 말을 삼켜버린 기억이 젊은 세대에겐 누구나 한번쯤 있지 않을까. 심지어, 젊은이들과 어른들은 리모컨을 누르는 순서조차 다르다. 심심풀이로 한바탕 리모컨 순회를 할 때도, 젊은이들이 절대 누르지 않는 번호가 있는 것처럼, 어른들이 절대 접근하지 않는 번호 역시 또 있다. 대화가 단절되지 않는 게 이상하고, 공감대의 소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젊은 사람들이 <꽃보다 할배>를 기대한다. '닥본사'를 하고, 심지어 어떤 할배가 괜찮더라며 열광하기 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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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이낸셜 뉴스)

 

 

<꽃보다 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장년층 연기자 네 분이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 이르는 배낭 여행 과정을 담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을 이끌었던 나영석 피디의 케이블 첫 작품으로, 마치 <1박2일>의 장년판이요, 해와판 버전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텔레비젼에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프로그램이 젊은 층에게까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어르신들이 텔레비젼에 나와 하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그저 앉아서 그분들이 살아오신 경험을 '설파'하시는 포맷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에 대해서, 부부 관계에 대해서, 고부 관계에 대해서, 자녀 양육에 대해서. 내 부모 이야기도 듣지 않는 젊은 세대가 남의 부모가 나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걸 즐겨 듣겠는가. 당연히 어르신들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르신들이 '그래그래' 하면서 들어주는 순환적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43살의 젊은이(?) 이서진이 '배낭 여행은 2,30대나 가는 거지'라고 푸념을 하듯이 tvn의 <꽃보다 할배>는 네 분의 할배에게 젊은이들의 로망인 배낭 여행을 시킨다. 자기도 가고 싶은 배낭 여행을 할아버지 네 분이 간다니!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할배들 대단하다. 첫 회 이서진은 쩔쩔맨다. 물론 걸그룹과의 여행이라며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합류했던 여행에서 네 분의 어르신들을 만나니, 당연히 '멘붕'이요, 더구나 여행 경비를 비롯해, 모든 일정을 관리해야 하니, 더더욱 멘붕일 수 밖에 없겠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한때 다 잘 나가시던 분들이라 자존심이 대단하셔서, 쉽게 도와드릴 수' 조차 없어 더 이서진은 쩔쩔 매게 될 수 밖에 없다. 다리가 아픈 백일섭조차, 가방 속에 든 장조림을 지하철에 던져 버리고 발로 찰 지언정, 끝없이 이어진 지하철 경우지의 계단을 가방을 들고 오르는 것을 거부치 않는다. 네 할배들은 여행의 처음부터,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의 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스스로 걸어간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던 이순재의 출사표처럼, 어르신들은 스스로 뭔가를 보여줄 자세가 되어있다. 물론 어르신들이 등장해 전국의 맛집이나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찾아다니는 프로그램들은 꽤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 할배들의 모습은 유유자적한 여행기와는 또 다른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뉴스 24)

 

 

거기에 어르신들의 여행에서 오는 페이소스도 만만치 않다. 첫 날 저녁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념하며 나누는 축배를 들며, 네 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첫 예능, 함께 하는 첫 여행, 그리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여행이라고. 남의 나라로 가는 여정에서 좌충우돌이던 할배들을 보고 깔깔대다 마지막에 던져진 그 삶의 현실에 울컥해지는 건, 굳이 나이를 따질 필요가 없겠다.

 

 

이제는 그 자신이 스타가 된 나영석 피디와, 이우정 작가가 왜 대단한 가를 보여주듯이, <꽃보다 할배>는 단 첫 회만에, 할배 네 분의 캐릭터와, 그들의 '집사'격인 이서진의 매력을 흠씬 보여주었다. 한 시간여, 방영시간 동안, 특별한 거 없이, 여행 가방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힘들게 머물 곳을 찾아가는 그 여정만으로도, 이 네 분의 할배와 한 사람의 집사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집사 이서진은 불쌍해서 또 보고 싶고, 직진 순재는 80이 넘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생기'에 감탄하게 만들고, 로맨티스트 박근형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구야형의 따스함은 더 무얼 바라겠는가. 그리고 막무가내 백일섭의 캐릭터는 화룡점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관건은 재미만이 아니다. 출연자들과 정이 들어 그들이 무엇을 해도 그들과 함께 할 마음의 자리를 시청자들에게 허락받는 것이 바로 관건이다. 그리고 나영석 피디의 <꽃보다 할배> 팀은, 명확하게 그걸 짚어내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7. 6.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