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썰전>은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상속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룬다. 최근 우리나라 조선업의 중심지인 울산, 거제 지역은 식당 등의 상점은 파리를 날리며, 거리엔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저 모든 것의 기준이 서울에 맞춰 있어서 그렇다 뿐이지. 이미 이 지역에서 시작된 불황은 '서민'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도산 위기에 놓인 조선업계 때문이다. <썰전>의 패널인 유시민 작가는 이런 조선업계의 암담한 현실을 '상속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이미 '땅콩 회항' 사건으로 전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조현아 부사장의 갑질은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로 마무리되었지만, 최근 조선업계의 '상속 자본주의'의 무능한 경영 방식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로 나라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시민 작가는 경영 1세대들이 정부의 비호를 받았더라도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었다면, 그 1세대의 부를 그 어떤 댓가도 없이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려받은 '상속' 후계자들이 조선업계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탄식한다. 




드라마, 상속 자본주의의 실상을 드러내다
이렇게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통해 규정된 '상속 자본주의', 그 위해한 실상을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 드라마, 그리고 미니 시리즈의 '갑질' 좀 하는 젊은 녀석들은 하나같이 '상속 자본주의'의 수혜주들이다. 금토 드라마 <기적>도 마찬가지다. 

박찬홍-김지우 작가 콤비가 그간 다루어 왔던 드라마들은 우리 현대사의 부조리에 천착해 왔다. 말하자면 드라마로 보는 한국의 현대사랄까. 2013년작 <상어>에서도, 그리고 그 이전의 <부활>, <마왕>까지, 복수 삼부작을 통해 일제 시대 친일파가, 6.25 전쟁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바꾸며 반공론자로, 그리고 전쟁 후 다시 얼굴을 바꿔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자본가로 변신하며 우리 현대사의 '권력'으로 자신을 유지해 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저 한 개인, 한 가족의 운명을 좌우했던 사건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의 상징인 그 누가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런 구성 방식은 <기억>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공'만을 쫓으며 살아왔던 변호사 이성민, 그에게 뜻밖에도 닥친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그가 자신 속에 숨겨두었던 아들 동우의 사고사를 불러왔고, 기억을 잃기 전에 진실을 찾으려는 그의 앞에 드러난 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복기해낸 '상속 자본주의'의 비열한 낯이다. 



이제 더는 드라마 속에서 '법'과 '자본'이 맞잡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클리셰가 된 시대, <기억> 속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도 마찬가지다. 한국 그룹은 자사의 사건들을 태선 로펌에 몰아주고, 태선 로펌은 재벌 3세 신영진(이기우 분)의 이혼 사건에서부터, 차원석의 의료 과실 등 온갖 뒤치닥거리를 해준다. 물론 15회에서 보여지듯이 이 둘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죽은 강기욱의 usb을 획득한 신영진과, 그에 맞서 신영진의 살인 사건을 들고 나온 이찬무(전노민 분)처럼 공생을 넘어, 서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악연이기도 하다. 

이제 15회를 맞이한 드라마는 공교롭게도 이 두 커넥션에 금이 가게 만드는 주역으로 각각의 3세들을 등장시킨다. 바로 박태석 변호사의 아들 동우를 죽게 만든 태선 로펌의 후계자 이승호(여회현 분)와 15년전 박태석이 포기한 살인 사건의 주범 신영진이다. 두 사건은 모두 각 그룹의 3세의 부도덕한 '처신'의 결과이다. 중학생에 불과한 이승호는 차를 몰다 어린 동우를 치었고, 당시 병원에 옮기면 살 수도 있을 동우를 놔둔 채 뺑소니를 쳤다. 그리고 아직 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별장으로 가는 길에 신영진은 슈퍼에 들러 야구 방망이로 할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법과 재벌, 그 추악한 상속 행위
하지만 이들의 이런 범죄 행위는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이라는 강력한 존재로 인해 덮여졌다. 태선 로펌의 하수인인 형사 등의 도움으로 동우의 사고사는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되었고, 박태석이 포기한 슈퍼 살해 사건은 엄한 인물을 15년 동안 감방에서 썩게 만들었다. 이찬무는 얄팍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태석을 스타웃했지만, 그 스스로 '자존심'을 버렸다고 표현하듯이,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신영진의 살해 사건은 당시 검사로 옷을 벗을 이찬무와, 한국 그룹의 뒷배를 봐준 이찬무의 모친 황태선으로 인해 왜곡되었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흘러 알츠하이머에 걸린 박태석이 진실을 밝히려고 하자, 황태선은 승호의 친구를 죽여 죄를 덮어 씌우려고 한다. 

작게는 신영진의 이혼 소송에서 부터, 차원석의 의료 과실, 그리고 이승호의 뺑소니 사건, 신영진의 살해 사건까지, 개인적 부도덕에서 부터 사회적 범죄에 이르기까지 범람하는 부도덕한 사건들, 그리고 그를 해결하는 방식들은,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 즉,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양대 권력이 생존해온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늘 공적인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왔던 이들은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는 협박, 상해는 물론, 억울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심지어 죽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았던 것을 <기억>은 고스란히 복기해 낸다.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관리'해온 결과, 한국 그룹의 재벌 3세 신영진은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어 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사이코패스가 되었고, 태선 로펌의 3세 이승호는 자신의 죄책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15년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승호의 죄책감도, 신영진의 짖누를 수 없는 '폭력' 성향도 이승호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듯,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대한민국 자본주의 권력의 현실이다. 



2005년 <부활>에서 무릉 건설 회장이었던 이정길이, <상어>에서 친일파에서부터 얼굴을 바꾸며 가야 호텔 창업 회장이 된 조상득으로, 그리고 이제 <기억>에서 한국 그룹의 신화식으로 등장하며, 서로 다른 드라마임에도 묘한 권력의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두 얼굴의 강인철도, 관대한 자선 사업가 조상득도, 그리고 이제 자식의 잘못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신화식도, 동인한 인물 이정길이 연기하는 다르지만 결국 동질의 인물들이다. 그런가하면, 이찬무의 뒤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인 지시를 저지르는 황태선에게 묘하게 조상득의 인자한 뒤에 숨겨진 비열한 살인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결국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텃밭에선 어쩔수 없이 악이 자라듯, 결국 <기억> 속 상속 자본주의는 자신이 뿌린 악의 씨앗을 감당하지 못해 궤멸해 간다. 시작부터 잘못된 권력의 처절한 결말이다. 그리고 이는 최근 트렌드라서가 아니라, 박찬홍-김지우 콤비가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부조리한 한국의 권력사다. 



by meditator 2016. 5. 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