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10회 말 마지울의 엄마를 끌고 가 어설프게 갑동이처럼 살인을 저지르려던 박호석(정근 분)은 하무염(윤상현 분)에게 잡히고, 그가 진짜 갑동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가 진짜 갑동이가 아니었다는 사실보다도, 오히려 그가 과거 양철곤(성동일 분)의 표적 수사로 갑동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직장도 잃고, 자신의 신상이 드러남으로써 더 이상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피해자라는 사실이었다. 갑동이가 아니었지만, 갑동이라는 의심을 받음으로써 오히려 갑동이가 되어간 '갑동이 사건'의 또 다른 희생자였다. 
양철곤이 지켜보는 조사실 유리창을 깨며 절규하는 박호석에게 양철곤은 덤덤하게 '사과가 필요하면 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곤 덧붙인다. "근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네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11,12회, 아니 그 이전 10회, 11회를 통해 알려진 것은 갑동이 사건의 진척보다, 갑동이라는 사건을 통해 양철곤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 가버린 것인가이다. 멀쩡한 대기업 회사원이었던 박호석이 망상증으로 치료 감호소를 전전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갑동이 코스프레를 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갑동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양철곤 역시 자유롭게 사회 속에서 숨을 쉬고 사는 듯하지만, '갑동이'라는 그가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한채 십 여년을 보내고 있다. 
갑동이를 잡는 과정에서 하무염의 아버지를 보고 놀라서 낙상한 딸이 식물인간처럼 스물 다섯의 나이에 숨을 거두기까지 아버지로서 양철곤은 며칠을 딸과 함께 보내지도 못했다. 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과 원망이, 그로 하여금 오히려 딸을 지킬 수 없게 만들고 갑동이에게 헤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갑동이를 잡기 위해 정직 중에 홀로 기다리던 제방에서 그를 갑동이로 오해하고 달아나던 중년의 여인을 그 역시 갑동이로 오해하고 쫓다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죽인 여인에게 갑동이가 자신의 표식을 남김으로써 양철곤은 졸지에 일곱 번째의 갑동이가 되어 버렸다. 갑동기를 쫓다, 스스로 갑동이가 되어버렸으니, 더더욱 갑동이를 잡기 전에는 갑동이를 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사진; 뉴스엔)

그러기에 양철곤은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갑동이 잡는 일에서 놓여나라고 하무염에게 말한다. 하지만, 하무염 역시 그럴 수 없다. 아버지를 의심해서 유일한 아버지의 무죄 증거였떤 잠바를 태워버린 하무염은 아버지를 의심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듯이, 갑동이에게 놓여날 수 없다. 그런 하무염에게 동정을 하다, 이제 사랑을 하게 된 오마리아(김민정 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녀는 말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고. 양철곤이든, 하무염이든, 오마리아든 모두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혹은 극복하기 위해서 갑동이를 잡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갑동이는 달랐다. 다른 연쇄 살인범들이 결국 자신의 범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범죄를 거듭하다 잡히고 말았지만, <갑동이>에서 갑동이는 9차를 끝으로 자신의 범죄를 더 이상 번복하지 않는다. 갑동이의 카피 캣인 류태오는 자신 역시 자신의 범죄를 더 이상 번복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들지만, 결국 비행기에서 우발적 범행을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본능을 제어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자신의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카피 캣을 그려냄으로써, 갑동이가 '갑'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갑동이를 쫓는 사람들이 그를 쫓는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와 죄의식에 짖눌려 그를 잡기 위해 세월을 팔고 있는데도, 갑동이만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만이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롭게, 전혀 다른 얼굴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로 드라마는 그리고 있다. 

12회 마지막, 범죄 현장이었던 제방길에 수사반의 차도혁(정인기 분)이 얼굴을 드러낸다. '꼭꼭 숨어라'를 휘파람으로 불며. 그가 진짜 갑동이일지도 모른다는 12회의 엔딩에 시청자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양철곤을 비롯하여 극중 인물들이 갑동이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세월을 파먹는 동안, 오로지 갑동이만이 그 예전 양철곤이 7차의 범죄자가 되어가는 동안 몸을 숨기며 그를 지켜보았듯, 그들의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니 차도혁이 아닐 수도 있다. 오마리아에게 진범을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녀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자 안도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갑동이 일 것 같지만 언제나 뒤통수를 치는 드라마<갑동이>는 갑동이가 나올 때까지는 갑동이라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갑동이>는 또 다른 카드를 가지고 있다. 뜻밖에도 '소아성애자'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오마리아의 양아버지 프로파일러 한상훈(강남길 분)도, 가장 인자한 스님의 얼굴을 하지만, 언제나 사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진조(장광 분) 스님도 갑동이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하지만 그 누가 진짜 갑동이가 되었든 <갑동이>에서, 갑동이가 갑이다. 그만이 홀로 갑동이의 사건에서 쏙 빠져 나가 유유자적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 <갑동이>는 갑동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에서 갑동이 망상자가 되어 살인까지 저지르려던 박호석처럼, 갑동이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그리고 이제는 갑동이를 잡아야만 거기서 놓여날 수 있는 '미망' 속의 인물들을 그려내는데서 여전히 머물고 있다. 


by meditator 2014. 5. 25.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