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검사에 임용된 이차돈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그간 그를 후원해준 독지가가 그를 만나겠다고. 동료들의 축하도 뒤로 하고 부랴부랴 이차돈이 찾아간 그곳엔 이른바 진고개 신사, 복화술이 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차돈에게 복화술은 그간 그를 검사로 만들기 위해 들인 비용을 청구한다.

 

sbs 주말 드라마<돈의 화신>을 보는 시청자들은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씌여왔던 모든 설정들이 하나씩 깨져나가는 걸 보면서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나? 혼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젊은 검사시보 이차돈(강지환 분)에게 작은 도둑을 잡으려다가 큰 도둑을 놓치게 된다며 단호하게 살인범 이관수를 포기하라고 다그치는 '정의의 화신' 지세광(박상민 분)은 알고보면 이차돈, 아니 이강석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비자금을 만들고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대통령의 측근이자 전 시장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자 하는데 거칠 것이 없다. 그런데 또 한때는 살인자였어도 이제는 정의로운 검사로 살아가려나 했더니, 정해룡을 제거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정해룡이 실질적 대주주였던 신용금고를 인수하는 일이라니! 도무지 <돈의 화신> 속 인간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뻔하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에서)

 

큰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지세광 검사의 신념에 까마득한 후배 이차돈은 말한다. 자기는 신념 같은 거 없다고, 검사가 된 이유도 정의의 실현은 커녕 후원자가 되라고 해서 된 거라고.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이차돈은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넋을 놓고, 속내라고는 백지장으로 된 창문 들여다 보이듯이 얄팍하며 가볍기가 이를데 없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 자칭 천재라고 하지만 수가 뻔한 이차돈이라는 인물이 회를 거듭할 수록 자꾸 매력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세광의 신념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거 모른다고 할 때는, 마치 정의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자기 잇속을 채우던 세대에게, 솔직담백한 젊은 세대가 한 방 먹이는 거 같은 쾌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뻔한 젊은이인데, 이관수를 결국 감옥행으로 만들듯이, 그만의 정의 구현 방식이 궁금해 진다. 거창한 목적도 없지만 허위의식도 없는 새로운 인간형의 도래랄까?

 

<돈의 화신>의 사랑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복재인(황정음 분)과 이강석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인연이다. 그런데 그 인연이란게, <돈의 화신>에서는 역시나 한번 틀어준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느 드라마처럼 뽀얗게 등장하지만, 그 끝은, 이강석의 돼지 공주란 퉁명스런 반응과, 지금처럼 팔딱팔딱 뛰며 분노하는 복재인으로 현실감있게 마무리된다. 마치 언제나 '첫사랑은 아름다워'라는 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지만 그렇다고, 또 첫사랑의 추억이 윤색되지는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분노를 해도, 여전히 외톨이인 재인의 곁에는 이강석이, 이차돈이 있으니까. 그러기에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재인의 설레발 끝에 드러나는 설레임이 시청자조차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 <돈의 화신> 식의 사랑 방식이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 에서)

 

물론 이런 첫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세광과 은비령(오윤아 분)의 다시 만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의 빛깔이다. 이중만의 죽음의 공모자였던 두 사람이 지세광의 말대로 공모를 한 순간 사랑은 물 건너 가고 '이용' 만이 남게 되었지만, 정해룡의 제거를 위해서, 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두 사람은 다시 기꺼이 손을 잡는다. 지세광을 없애기 위해 칼을 갈았던 은비령은 그게 언제였냐는 듯 지세광에게 돌아가고, 다시는 안볼 것 같던 지세광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시 그녀를 찾는 식이다.

 

과연 돈 앞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역으로 돈 앞에선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돈의 화신> 식의 인간 관계 속에서 과연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일지? 돈 놓고 돈 먹기가 다인 더러운 세상일지?

by meditator 2013. 2. 25. 02:12

철원에서 낙산 해수욕장까지의 150km를 넘는 대장정의 6박7일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장미란에게는 11명의 오빠와 한 명의 흥수 삼촌과 여동생이 생겼고,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리던 인간 관계에 익숙해져 갔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들국화'란 모임을 만들어, 인간적인 '행진'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6일차의 마지막밤, <행진>을 함께 하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던 이선균은 토로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이것이 방송이라는 생각에, 이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다고, 하지만 어느샌가 함께 걸으며 방송을 한다는 생각도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웃으며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선균만이 아니었다. 한때는 연극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자주 보지 못했던 유해진과 친구들도 다리가 다쳐 뒤떨어진 길을 느긋하게 함께 걸으며 그 예전의 함께 했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노래도 부르고 결국은 눈시울을 적셨다.

 

 

단 2회의 프로그램이었지만, <행진>이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근한 감동을 남긴 것은, 처음도 끝도 함께 한다는 그 취지를 다같이 살리고자 애썼고 그것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친구였지만 세월이 흘러 서로가 다른 위치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된 친구들이, 혹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6박7일의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결국은 자연스레 어깨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절룩이는 옆 사람의 팔을 잡아주게 되었고, 헤어짐을 아쉬어 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도 했고, 경쟁도 있었다. 이어지는 터널을 도보로 걷기에는 너무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점심 지원을 내걸고 누가 먼저 히치하이킹을 해서 죽리 초등학교에 도달하는가를 편을 짜서 먼저 가기 내기를 했다. 물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혹시나 내가 꼴찌가 될까 안달을 하며 서로 먼저 도착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제작진이 시선은 재미를 위해서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셀프 카메라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까짓 점심 내가 하지 뭐 하며 눈길 위를 누워 보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랑 여유롭게 말도 건네는 유해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래 '까짓 점심'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행진> 사람들처럼 우리들은 살면서 어쩌면 점심 보다도 못한 일인데도 그저 남보다 뒤처질까 안달복달하며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까짓거' 하고 그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보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보이고, 맑은 눈밭이 들어오고, 노오란 견인차가 이쁘게 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한껏 여유를 부려도 토끼처럼 잽싸게 장미란팀이 맡아놓은 차까지 낚아채며 서두르던 이선균네 보다 먼저 도착하기까지 한 결과는 그저 지나치기엔 몹시도 보는 사람들의 되바라진 머리를 한 대 쿡 쥐어 박는 느낌이다.

행진을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애쓴 것은 이선균이지만, 사실 행진 내내 피로에 지치고, 그저 걷느라 땅바닥만 보고 가는 사람들을 다독인 건 유해진이었다. 엉뚱한 해석이지만, 왜 이 배우가 당대의 최고 여배우를 매료시켰는가를 한껏 보여준 시간이었달까?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고, 피로에 지쳐 경직된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로운 유머로 풀어 주었다. 좋은 건 좋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그것이 유해진의 입을 통해 나오면 괜히 '도'의 느낌조차 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여유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마치 화선지에 풀어진 먹처럼 잔잔하게 <행진>의 6박7일을 통해 전체로 번져 나갔다.

 

물론 6박7일의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다리엔 결국 기브스가 채워졌고, 누군가는 '정밀진단'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것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보내고 그저 함께 한 그 모습들만에 클로즈업을 맞춘 것은 어쩌면 상투적인 감동 만들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해진이 얻어 탄 견인차 운전수 아저씨의 말처럼 살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요즘 시대에, 이 정도 감동은 그닥 넘치는 것이 아닐 듯 싶다.

함께 하기 위해 한계령 꼭대기에서 뒤쳐진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마중나오는 모습, 힘들어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친구의 짐을 나누어 지는 모습, 만난지 며칠 되지 않은 장미란의 은퇴식을 위해 조마조마하며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모습, 또 장미란을 위해 노래 부르며 울어주는 모습,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함께 끝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함께 해서 좋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 살기 힘든 시대에 어딘가에 내 등을 두드려 줄 누군가가 있을 거 같은 위로를 준다. 단지 아쉽다면, 이 좋은 <행진>이 끝났다는 것, 그러지 말고 한 6박7일 만큼만이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싶다. 그게 아니면 계속 쭈~욱 하던가.

by meditator 2013. 2. 23. 02:05

요즘 시청률 중에는 실시간 시청률이란 게 있다.  말 그대로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방송 3사의 순간 시청률이 그래프로 표시가 되는 시청률표이다. 거기에 따르면 사람들은 리모컨을 한 프로그램에 고정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을 작동하는 마우스처럼 순간순간 작동을 시킨다. 즉, 보다가 조금이라도 재미없거나 지루하면 바로바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의 시청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렇담 3사 수목 드라마 전쟁의 와중에서 가장 불리한 것은 누구일까? 비록 초반전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그건 아마도 <아이리스2>의 몫이 될 것같다.

 

 

다른 두 수목 드라마와 다르게 일찍 시작하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던 <7급 공무원>은 주원, 최강희라는 상대적으로 약한 주연진에도 불구하고, '첩보 활동 중 연애하기'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드라마적 특성을 잘 살리며 순항하는 중이다.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정통 멜로를 표방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조인성, 송혜교라는 스타가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가운데, 촘촘한 인간의 심리를 다루지만, 느슨했던 스토리의 한계를 일본 원작을 빌려와, 멜로와 미스터리, 심지어 스릴러까지 복합적 장르물로 거듭나고 있는 노희경 작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단점을 연출로 승화시키는 <아이리스1>의 연출가 김규태까지, 삼위 일체의 화제작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는 있는 중이다.

 

반면, 이미 <아이리스1>을 통해 한껏 기대수준이 높아져 있는 <아이리스2>는 첫 방 이후 전작 보다 못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데다, 장난감 총 등의 구설수까지 발생하며 발목을 잡힌 형국이다. 하지만 드라마만 좋고 재미있다면야, 얼마든지 초반의 불운이야 딛고 일어설 수 있을 텐데, 4회까지의 아이리스는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 거 같긴 한데, 아직은 그 전조가 겨우 바람이 살랑거리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 매회, 각이 잡힌 격투신에, 심지어 여주인공들의 '헉' 소리가 나올 정도까지의 몸싸움에, 헝가리의 삭막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추격신에,  총격신 까지 많은 볼거리를 <아이리스2>는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폼나는 액션신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한 시간 내내 줄창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나머지는 그 액션신의 개연성을 채워나갈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아이리스2>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제목이 <아이리스> 이듯이 이 드라마는 남과 북의 정부를 상대로 한, 또 하나의 단체, '아이리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미 전작을 통해, '아이리스'란 단체의 비열함과 가혹함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전해졌지만, 정작 <아이리스2>에서 아이리스는 동굴 속 괴물처럼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이리스'로 추정되는 킬러들이 남과 북의 요인들을 암살하고 다니지만, 그것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을 유지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이미 전작을 통해, '아, 남과 북의 정부 외에, 또 다른 목적을 지니고 행동을 불사하는 단체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란 '놀라움'이 이미 경험되었기 때문에, <아이리스2>는 그 놀라움을 좀 더 다른 버전으로 확대해 가야 하지만, <아이리스2>는 아직 무언가를 보여주려고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힌트조차 주지 않은 채, 뻔한 요인 암살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니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다리자니 지루하고,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전작 <아이리스>에서 드라마의 인기를 끌고 간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이병헌, 김태희 라는 스타 배우와 그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이리스2>에는 그것이 없다. 장혁, 이다해란 배우는 이미 <추노> 등 2편의 드라마에서 파트너로 나와서 신선함이 없는데다가, <아이리스 2>의 정유건, 지수연으로써도 매력적인 러브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몹시 사랑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없는 사랑은 설레임과 기다림을 기약할 수 없다. 오히려, <아이리스>의 김소연처럼, <아이리스2>에서도 임수향과 이범수의 등장으로 인해 극의 진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메인 주인공들의 느슨한 스토리를 채워갈 정도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리스2>의 문제는, 아이리스는 물론, 남과 북 자체의 복잡한 내부 갈등에서도, 사랑 이야기에서도, 심지어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순간에서도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의 스토리는 스릴러도 있고, 러브스토리도 있고, 음모도 있지만, 그것이 화면에 옮겨지는 순간 주르륵 두서없이 그저 채워가는 듯한 느낌, 그것이 무엇보다 <아이리스2>의 다음을 기약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유이다. 아저씨의 죽음 이후, 자신의 죽은 아버지의 비밀과 조직의 비밀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정유건의 이야기는 분명, <아이리스2>가 그저 액션으로만 때우려는 허술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명주도 저잣거리 노점의 찌그러진 주전자로는 그 진가를 알리기 힘들듯, <아이리스2>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by meditator 2013. 2. 22. 01:58

최근 가장 인기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이라는 질문에 정답은 1박2일도, 런닝맨도, 정글의 법칙도 아니다. 서글프게도, 높은 출연료를 받은 전문 예능인들이 뛰고 달리고 고생하는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동심들의 마음이, 풋풋한 행동이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아빠, 어디가?>이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위해서는 눈물을 꾹 참으며 김치를 두 그릇이나 쓱싹 비우는 어린 남자 아이 윤후를 기다리느라 일주일이 길다고 말한다. 방학이 끝나면 어쩌냐고 지레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가장 직접적인 희생자는 바로 다름아닌 아저씨들의 예능 <남자의 자격>이다.

 

지난 회 <남자의 자격>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한 2013년판 흥부전을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지만, 어린 윤후에게 빠진 세간의 관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한 달이란 기간의 강행군을 하며 올린 <남자의 자격>판 흥부전에 가혹하게 상을 준다면 노력상 정도? 창극이란 기본적 패러다임을 무색하게, 주인공 놀부 역을 맡은 이경규는 대사를 외는데 급급하여 뒤의 국악 반주팀과 한번도 제대로 음이 맞은 적이 없었다. 흥보 역의 김준호도 엄밀하게 말하면 창극 수준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가애란 아나운서의 소리가 무척이나 빼어나게 보일 정도였으니.

애초에 창극을 한 달 정도의 연습을 통해 무대에 올리겠다는 시도가 무리였다고 본다. 거기에 주연을 맡은 이경규나, 김준호 모두 개인적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연예인들이기에 한 달이란 기간을 더더욱 무리였었다. 하지만 이경규가 야심차게 놀부 역에 도전하면서 합창을 하면서 둘러리를 서느라 고역이었다고 말했듯이, 그래도 사람들을 불러놓고, 국립극장 무대에 설 정도였다면, 살을 빼는 외면적 모습이나, 개그맨들이 그간 보여주던 연기력 이상의 '창극'이란 장르에 맞는 특성을 조금 더 살려주어야 하는 프로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 예능이기에, 조금은 늘어진 고무줄같은, 무엇을 해도, 악발이 같은 헝그리 정신을 좀 덜 보여도, 아저씨니까 하고 넘어가주는 그런 미묘한 느슨함이 자꾸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2월 18일자 '2013년 트렌드 미리 살기'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2013년에 걸맞는 트렌드를 맛보기 위해 제일 처음 <남자의 자격>이 찾은 곳은 spa패션 매장이었다. 싼 가격에 빠른 회전을 통해 트렌드를 앞서가는 패션 매장에서 20 만원 내에서 각자 자신에 맞는 의상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까페에서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라운징' 따라하기. 이를 위해 강남의 까페를 찾은 멤버들은 한 시간 동안 각자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시간을 보낸다.

그 다음엔, '프로슈머', 제품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제모제'를 가져다 놓고 멤버들의 제모 실험을 했다.

마지막으로, sns를 통해 각 멤버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깜짝 만남과 식사로 마무리 되었다.

 

요즘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는 조금은 더 깊게 들여다 보기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길을 걸어도, 여행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겉훑기 식이 아니라 조금 더 깊게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정이 들도록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놀러다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이 한 두 개도 아니고,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웬만한 이야기들을 다 나왔으니 새롭거나, 진정성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힘들다. 그러기에 오죽하면 아이들 노는 걸 다 들여다 보고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자격> 2013 트렌스 미리 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부한 미션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의 돈 한도 내에서 한 매장 안에서 옷을 고르는 것은 이미 케이블 패션 정보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반복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서도 옷을 고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패션 전문가가 평가를 하고 가혹한 평점이 매겨진다. 그저 돈 주고 옷 고르고, 나 어때? 그런 정도로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 멤버들의 새로운 패션에 와~하는 탄성을 지르진 않는다.

라운징은 한 술 더 떴다. 뜬금없이 한 시간 앉아있으라니! 그래도 그 한 시간에 각 멤버는 나름 각자의 소회를 말했지만, 그 정도를 하고 '라운징'을 체험했다고 하면 젊은이들이 웃는다. 즉석 만남 역시 주제를 가진 만남의 의미는 탈색된 채 그저 '만남'으로만 남았다.

 

이런 어설픈 체험하기에는 여전히 아저씨들이 이런 것도 하네! 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미 그 비슷한 아이템을 <남자의 자격>에서 여러 번 했었는데도, 여전히 해가 바뀌면 또 이런 것도 하네 이다. 그러기에는 <남자의 자격>의 역사가 너무 길다.

차라리 정말 트렌드를 체험해 보겠다면 한 시간안에 훑어 지나간 트렌드 하나하나를 장기 미션 사이에 하나씩 집어 넣어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 보는 게 어떨까? 실제 그런 트렌드를 즐기는 사람이 보기에 '썩소'가 나오는 겉훑기가 아니라.

특히나 이경규는 새로 들어온 멤버 김준호에게 '콩트'를 하지 말라고 번번히 타박을 하지만, '프로슈머'로서 제모제 체험을 하는 과정은 이경규 버전 만만한 윤형빈, 이윤석을 희생으로 한 콩트가 아닐지.

이경규 식의 익숙하다못해 피로감이 느껴지는 콩트에서 벗어나는 것, 아저씨니까 그러려니 혹은 아저씨니까 이런 것도 하네! 라는 감탄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이들에게 빼앗긴 시선을 <남자의 자격>이 되찾아 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3. 2. 18. 02:33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겨울)>는 노희경 작가들의 전작과 달리 원작이 있는 드라마이다. 그러기에 이른바 그 누구보다도 크리에이티브한 작품을 그려내 왔던 노희경 작가가 왜 굳이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각색해야 했는가란 질문에 우선적으로 대답을 해야만 하는 드라마이다.

 

 

우리 정서에 맞춘 <사랑따윈 필요없어>

<그 겨울>은 왜 굳이 일본판 원작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여자란 그저 돈을 버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시라토라 레이지(와타베 아츠로 분)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겜블러'라는 직업으로 변형시켰다. 또한 호스트라는 직업 때문에 여자를 대상화시켰던 남자의 캐릭터적 특성을 어릴 적 나무 밑에서 버려졌기에 여자를 믿지않고 깔아뭉개려고 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로 변형시켰다. 이런 변화 덕분에 호스트라는 직업으로 하루하루를 그저 때우듯 살아가던 인물의 허무함은 좀 옅어진 반면, 그의 트라우마가 엄마로 인한 것으로 바뀜으로써 인물이 가지는 슬픔의 깊이는 깊어졌다.

그리고 2회, 상실에 대한 상처를 가진 하지만 언제나 여자를 깔아뭉개는 겉모습으로 드러난 그의 깊은 외로움이, 오빠를 만났지만 그 오빠가 자신의 장애를 알아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서러움으로 오열하는 오영의 외로움으로 인해 흔들리는 순간, 왜 이것이 '노희경'의 드라마인가를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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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의 드라마의 시작은 언제나 '충돌이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언제나 시끌벅적하게 시작한다. 그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사는 이유>에서도 질펀한 서울 변두리 서민층의 삶의 왁자지껄한 비루한 삶서 시작이 되었었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가족간의 반목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사랑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든, <바보같은 사랑>이든 노희경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지닌 인물들로 조우, 아니 충돌하며 만남을 시작한다.

아마도 노희경 작품 주인공들 중 가장 <그 겨울>의 남자 주이공과 비슷한 사람을 고르라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사랑했을까>의 재호일 것이다. 재호도 그랬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부잣집 여자에게 접근을 했다. 단지 <그 겨울>의 오수는 절박하다. 100일 안에 마련해야 할 돈에 그의 목숨이 달려있다.

노희경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세속적인 척, 세파에 찌들어 양심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러기에,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물린 두 주인공들은 으르렁거리며 서로에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상처를 주려고 달려 들다,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고, 궁극에 가서는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영은 십 여년 만에 만났지만 자신에게 무관심한 오빠의 목적을 오해하고, 그런 그녀를 이용하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오수는 당연히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벌써 오수는 얼음 궁전 속에 볼모로 잡힌 듯한 오영의 삶에 냄새를 맡고 한 발 들여놓게 되고, 그리고 자신의 주제를 넘는 오수의 행동이 결국 오수의 사랑을 치명적으로 만들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노희경의 드라마에는 삶보다 사랑이 앞서기 시작했다.

치매가 걸린 엄마가 자기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며 절규하며 시청자들조차 가슴을 쥐어 뜯게 하던 노희경의 드라마 속 서민들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멋진 도회의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희경의 드라마가 시청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호흡했던 때는 시끌벅적 우리네 삶의 속사정을 꿰뚫어 간파했을 때였는데. 하지만 여전히 노희경의 드라마에서는 여느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정과 고뇌의 결을 따라가는 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여전히 멜로를 원하는 사람들은 노희경의 드라마를 선택한다.

<그 겨울>의 1,2회를 보다보면, 과연 이 드라마가 조인성의 멋들어진 모습과 송혜교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그림같은 영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PL그룹의 얽힌 후계 구도와 오수를 둘러싼 배신의 그림자조차도, 두 배우의 슬픈 연기를 위한 클리셰로 보일 만큼.

<그 겨울>이 두 배우의 아름다움을 넘어 두 배우의 좋은 연기와 슬픈 이야기로 기억될 만큼 사연있는 스토리가 될 지는 앞으로 작가 노희경의 몫이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진짜 가슴 시리게 대리 사랑을 하게 될 지,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2. 14. 01:58

<돈의 화신> 그 시작은 장중했다. 자수성가하여 부동산 재벌이 된 이중만, 그의 내연녀 은비령이 자신을 은인으로 여기는 지세광과 은밀한 관계임을 알고 자신의 생일날 이 두 사람을 제거하려 하지만 역으로, 두 사람과 결탁한 변호사로 인해, 이중만 자신은 목숨을 잃고 아내는 남편 살해 혐의로 감옥행에, 아들 이강석은 쫓기다 교통사고에, 재산마저 지세광 일당의 수중으로 고스란히 넘어가 버리는, 마치 자이언트의 황태섭 일가의 몰락 과정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주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열혈 검사로 변신한 지세광과 비리 검사 조상득의 대립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90년대판 새로운 자이언트의 서막이 열리는 듯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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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3회를 거치면서,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천재가 되어버린 이강석이 성인 이차돈으로 변신하면서, <돈의 화신>은 전혀 다른 색깔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상징적 장면은 욕실의 거울을 뚫어져라 마주보던 이강석이, 잠시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이차돈의 모습으로 바뀌는 장면에서 드러났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도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었던 어린 이강석은, 마치 그의 이름이 이강석에서 이차돈으로 바뀌는 순간, '뇌' 자체가 리세팅이라도 된듯, 입놀림이며 행동거지까지 대책없을 정도로 가볍기 그지 없는 이차돈으로 거듭났다.

 

극적 구성에 딜레마를 맞은 드라마가 가장 선택하기 쉬운 설정 중 하나가 바로 교통사고요, 그에 따른 휴유증인데, 흔히 다른 드라마에서 채택했던 기억 상실증의 흔하디 흔한 설정을 <돈의 화신>은 묘하게 비틀어 도입한다. 이강석은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백치'가 된 것이 아니라, '천재'가 되어버렸다는.

분명히 이 설정은 이중만 아들로 살았던 그 시절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저 남을 부리는 법만 배우면 된다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공부랑 담을 쌓았던 이강석을 지세광이 몸담고 있는 검찰로 집어넣기 위한 '우연적'이고 '무리수가 되는' 설정임에도, 졸지에 천재가 되어버린데다가, 어른이 되면서 캐릭터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이차돈의 종횡무진 '찌질한' 모습에 말도 안되는 전개를 넘게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전개를 캐릭터의 연기로 눌러 덮는 것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샐러리맨 초한지>의 전형적인 특성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브로커를 고용하는 해프닝 등을 벌이는 유방이 말도 안된다 하면서도, 역사 속의 유방만큼이나 기가 막힌 유방의 캐릭터에 수많은 우연들을 그저 덮어두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욕쟁이에 천방지축 재벌딸이라는 캐릭터가, 뚱녀 큰 손 딸로, 알고보니 능력은 있지만 결정적 단점 한 가지를 장착한 여주인공이라는 캐릭터 역시 <샐러리맨 초한지>의 그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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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화신>의 드라마적 성공은 결국, 자이언트같은 복수극 지세광의 스토리와 로맨틱 코미디같은 이차돈과 복재인의 스토리가 얼마 만큼 이물감없이 맞물려 전개가 되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4회를 마친 지금까지는, 아직은 흡족한 시청률은 아니지만, 지세광 주변이든, 복재인의 주변이든,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강지환은 물론, 이제는 장영철, 정경순 작가 군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등장 인물들의 맛깔나는 연기가 그 간극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인물들로 인해 다음 회가 기다려 지기까지 하게 만든다. 과연 '돈'의 신화를 또 한번 이룰지 기대해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3. 2. 11. 00:36

쓰레기가 없이 사는 1주일의 4일차, 그 과정을 박성호는 정의내린다. 처음에는 쓰레기 없이 어떻게 지내지?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시간이 흐를 수록, 쓰레기를 없애야 한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고.

그리고 여섯 명의 남자들은 '잔머리'에서 부터 '크리에이티브'까지 쓰레기를 줄이는 묘수에 노하우가 생겨간다. 덕분에, 첫날만 해도 무지막지했던 쓰레기가 하루, 하루 지나갈 수록 400g, 200G, 드디어 100g대에 이르러 간다. 역으로 무지막지해져만 가는 벌칙과 함께.

 

 

인간의 조건!

 

 

여섯 남자의 하루를 쫓아다니는 카메라와 함께 하다보면, 나온 음식은 먹어 없앤다 하지만, 생각 외로 많은 쓰레기를 낳는 것은, 그것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포장재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햄버거를 싸는 종이, 택배 상자, 일회용 도시락의 플라스틱 용기, 음료수 병들처럼. 그건 마치 하나만 잘못만나도 터져버리는 지뢰처럼, 그걸 만난 당사자에게 다음날의 벌칙을 예감케 한다.

그에 따라 여섯 남자들의 쓰레기를 피해가려는 자구책도 날이 지나갈 수록 고도화되어 간다. 햄버거 종이로 감싼 플라스틱 용기가 앙징맞은 화분이 되고, 무더기로 나오는 대본은 싸인지에서 부터 재활용 노트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변신을 해간다. 가장 허를 찌른 것은 그 누구도 벌칙을 피해갈 수 없으리라 믿었던 김준호의 자양강장제 병 재활용이다. 그 병들이 일정 과정을 거쳐, 시계도, 컵도, 접시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저 '잔머리'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재활용의 신세계였다.

하지만, 박성호가 '트라우마'라고 지칭하는 것이 공감되듯이, 여섯 남자의 일상을 통해 쏟아지는 쓰레기는 피하고, 재활용을 해도 속수무책이란 느낌이 든다. 철을 한 노트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이면 몇 권이나 쏟아져 나오는 대본을 어떻게 다 소화해 낼 것이며, 밥이면 반찬이며 국이며 제각각 담겨오는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이르면, 우리가 편리하게 생활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지구의 고통'에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다.

 

그래도 내복을 입고 명동 한복판에 나서서 헌 상자를 해체해서 만든 플래카드로 '지구가 아파요, 쓰레기를 줄입시다' 라고 외치듯이, 하는데 까지 쓰레기를 없애려고 버둥거리는 여섯 남자들의 진정성에서 그저 보는 오락 프로를 넘어, 재활용이라며 쉽게 무의식적으로 쓰고 버리는 쓰레기들에 대한 자각이 성큼 다가온다.

쓰레기를 없이 사는 생활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조건>이 그저 그것만이라면 토요일 밤의 채널을 그쪽으로 굳이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쓰레기라는 미션의 행간을 차곡 차곡 채워가는 여섯 남자의 '인간미'가 또 다른 <인간의 조건>을 완성하는 충분 조건이 된다.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방송국과 6.3 빌딩을 다녀보고는 부모님은 자식 농사 잘 지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부모님께 해드린 게 없어 자꾸 눈물이 나오는 양상국이나, 아픈 어머님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서는 우선 아버님을 위해 한 시간에 걸쳐 싸인을 해드리고, 바쁜 일정 때문에 겨우 30분밖에 여유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한 허경환의 무심한 듯 안타까운 마음은 연예인이라는 벽을 허물고 공감하게 한다.

또 개그 콘서트 맏형이지만 늘 토크 프로에만 나오면 그저 후배들에게 얹혀 가기만 하는 얄미운 형이라는 이미지로 아쉬웠던 박성호가, 정태호의 '형이 변한거 같아'라는 말처럼, 사람 바글거리는 명동 한복판에서 낯설어 할 후배를 위해 솔선수범 앞장서는 모습에서, 개그 콘서트 선후배라는 관계가 정말 '가족'처럼 거듭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예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대중에겐 그다지 연예인답지 않았던 여섯 남자가 자신의 속을 허물어 보여주고, 그 속에서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쩌면 쓰레기 보다 더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의 보다 결정적 매력일 수도 있겠다 싶다.

by meditator 2013. 2. 10. 01:34

'설날' 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지천으로 쌓여, 우리로 하여금 '포만감'과 '과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게 하는 설음식이다. 그런데 2013년 설을 맞이하여, 그 음식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깨어주고, 심지어 '힐링'까지 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 특집으로 찾아왔다.

바로 방랑식객 임지호의 <식사하셨어요?>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게, 일요일 밤 11시에 찾아드는 sbs스페셜을 통해 그간 꾸준히 식객 임지호씨의 전국 팔도 심지어 시베리아까지 방랑 여정이 전파를 탔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면 그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라도 그곳에서 지천으로 나는 것을 이용하여 감히 먹기에 아까운 아름다운 예술작품과도 같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는 사실 늦은 밤 몇몇에게만 알리기에는 아까운 그것이었다.

그러던 차, 설 특집으로, 물론 이번에도 늦은 시간이었지만, sbs스페셜이란 간판을 떼고, 단독으로 방랑식객 임지호의 식사하셨어요가 등장했다.

 

 

 

1회지만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김혜수와 임지호가 여의도 한복판에서 만난다. 거기서 임지호는 빌딩 숲 속에서 기특하게 스스로 자라난 민들레 등을 캐어내 한 상을 차린다. 비록 자생이지만 도시에서 자라난 풀들의 오염을 걱정하자, 임지호는 말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듯, 풀들도 그러하다고, 잘 씻어서 먹으면 된다고. 그 흐르듯 던진 말과 그의 투박한 손에 씻겨져 음식으로 탄생한 민들레 전병은, 그저 도시에서 생존한 음식이 아니라, 도시라는 탈생명적 공간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과의 공명을 낳는 감동 그 자체였다. 마치 민들레도 살아가듯이, 사람도 그렇게 도시 속에서 살아낼 수 있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듯이.

 

이런 식이다. 임지호의 방랑은, 인스턴트에 찌든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 낙엽을 맛보게 한다. 낙엽 과자라며. 정작 어른인 mc 이휘재는 산에서 나뒹구는 낙엽을 먹는 게 두려워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이 먹자고 하는데, 웬걸, 아이들이 먼저 덥석 베어문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미소를 짓는다.

sbs스페셜에서도 그랬다. 아토피가 극에 달한 아이들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이걸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하지만,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그때도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나갔었다. 그래서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자연에서 캐어내어, 그 성취함을 함께 음식으로 만들어 내고, 자연스레 거부감을 없애 갔었다.

임지호씨의 음식, 혹은 여정을 함께 하다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은, 단지 그가 만든 음식의 '자연주의'에만 있지 않다. '자연주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한번도 임지호씨는 안된다, 아니다 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맞벌이 주부의 '햄국'을 한 숟가락 담뿍 떠먹고는 얼굴에 웃음을 함빡 짓고 '맛있네'라며, '인스턴트에 사람들이 중독되는 이유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편하게 말한다. 그러고는 주부가 두려워해 마지 않는 나물 무치기가 인트턴스 음식만큼 만들기 쉽다는 걸 가르쳐 준다. '쉽지! 쉽지!'를 반복하며.

 

음식만이 아니다. 일찌기 어릴 적 어머님을 여의고 떠돌아 다니며 인간사 희노애락을 온 몸으로 겪어 낸 내공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임지호씨만의 인생관으로 버무려져 나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뒤늦게 깨닫고 슬퍼하는 하지만 선뜻 여전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아이들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하지 말라고, 항상 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라며, 자신도 살면서 늘 어머니가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말은 위로 이상의 인생에 대한 잠언이었다.

특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풍성한 내용을 담기 위해 세 꼭지의 인물에, mc 두 사람과 임지호씨와의 하룻밤까지, 약간은 그 '방랑'의 행로가 급하긴 했지만, 도심의 빌딩 숲에서 캐어낸 먹거리에서 시작하여, 겨울 바다와 숲을 거쳐, 힐링이 필요한 가족까지, 꽤 풍성한 설 이브의 시간이 되었다.

 

최근 주중 거의 모든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성 토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저조한 가운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바로 이런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 집에 모여 사는 개그맨들의 '힐링하며 1주일 보내기'가 인기를 끌고, kbs2의 '안녕하세요'가 일반인들을 게스트로 불러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화제를 끌고 있듯이, 일반인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임지호식 담론으로 달래주고, 거기에 자연주의 '힐링'까지 덧붙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진짜 '힐링 캠프'가 될 것이다.

 

한때 예능 프로그램의 여주인을 해보았기 때문에 특집 시간 내내 넉넉한 내공을 보여준 김혜수에, 그녀를 '누나'라 부르는 마흔 두 살이지만 아직은 가벼운 이휘재의 조합도 신선했다. 이 정도라면 정규 프로그램으로라도 어줍잖은 토크 프로그램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식사하셨어요?'의 입성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2. 9. 12:07

kbs2의 월화 드라마 <광고 천재 이태백>은 실존 인물 이제석을 모티브로 삼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제석이 누구인가? 지방대 출신에, 동네 간판 가게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유학, 그 이후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을 거듭하며, 획기적인 공익 광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로 그 화제의 인물아닌가. 그런 당대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는데........그런데 웬걸, 실제 드라마 <광고 천재 이태백>에서 만난 인물은 80년대 드라마에서 종종 조우하던 좌충우돌 열혈 청년, 그 사람이다.

 

 

 

얼마전 조용히 종영을 한 <드라마의 제왕>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연기에 있어 '본좌'라 칭해지던 김명민의 모처럼 드라마 복귀작으로 기대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의 제왕>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드라마'라는 건 보기엔 익숙해도, 그 뒷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지기에는 익숙치 않은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줄곧 '드라마'를 만드는 '자신'들의 고뇌와 고통을 논한 <드라마의 제왕>을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끝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 천재 이태백>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도 마찬가지이다. 제 아무리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눈만 뜨면 만나는 것이지만 '광고' 역시 '드라마' 만큼이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 있으니, 그 딜레마를 <광고 천재 이태백>의 제작진은 이른바,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공통적 고민에서 부터 풀어가고자 한다. 즉, 가진 것 없고, 지방대 출신의 낮은 스펙으로 면접도 보기 전에 떨어지지만 세상을 향한 패기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거칠 것 없고, 정의로움 또한 따를 자 없는 젊은이의 이야기로.

그런데 그러다 보니, 보편적 고민에서 출발하는 건 좋은데,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광고 천재'라는 측면에서는 역으로 영 부실한 내용을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 광고판을 세로로 붙이느냐, 가로로 붙이느냐, 혹은 아이들의 게임기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광고 컨셉을 만드느냐 라는 지엽적인 소재를 차치하고는, 이 드라마가 진짜 '광고'를 다루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심하게는 이 드라마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다가, 2012년에 '패션'을 다룬다 하여 화제를 끌었던 '패션왕'이나, 혹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1998년도의 <미스터 Q>에 가져다 놓는다 해도 크게 이물감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게다가 과거의 사랑했던 한 여인(고아리; 한채영 분)을 둘러싼 주인공(이태백; 진구 분)과 서브남9에디 강; 조현재 분)의 대립 구도에, 대기업 본부장인 서브남은 언제나 그렇듯 야심만만에, 이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질 여자(백지윤; 박하선 분), 그것도 전형적으로 회장님의 딸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려까지 하니, 이보다 더 전형적일 수 없는 인물 구도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할머니와 여동생을 거느린 가장에 마음은 따스하기가 이를데 없으며, 서브남은 직설적인데다가, 아버지와도 서먹서먹한 냉혈한에 가까운 인물이라니(물론 거기에 또 사연이 있겠지만), 1회부터 대놓고, 주인공은 좋은 편, 서브남측은 나쁜 편하고 편을 먹고 시작하는 이 방식은 전형적이어도 너무도 전형적이다. 이렇게 구도가 만들어져 버리면 결국 드라마를 끌고 가는 건, 또 역시나 주인공의 선한 의지와, 그 반대 측의 이기주의, 혹은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악행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동네 간판을 싹쓸이 하는 간판 가게 사장님이 알고보니, 한때 광고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광고쟁이라는 설정에 그를 찾아가 이태백이 무릎을 끓는 엔딩에서는, 전설의 타짜를 찾아가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하는 '타짜'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또 마침 그 장면에서 전설의 광고쟁이는 화투를 치며 말한다. 광고는 낙장 불입이라고 !)

 

정작 이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할, 왜 이태백은 광고를 하게 되었을까?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주인공과의 술자리 대화로 단번에 해결해 버린다. 그리고 그냥 처음부터 이태백은 '천재'다. 그가 책상에서 끄적거린 광고 아이디어는 광고 전문 기업 금산 에드 기획팀과 본부자의 머리를 단번에 뛰어넘을 정도로. 그리고 아마도 이 다듬어지지 않은 천재는 무림의 고수 마사장을 만나 '사사'하면서 더더욱 <타짜>의 '고니'같은 '천재'로 거듭나 안그래도 무능력해 보이는 금산 에드 광고팀들을 날려버릴 것이다.

 

과연 이런 천재 이태백을 보면서, 이 시대의 진짜 이태백들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사람은 잘 나고 봐야해, 이런 거?

21세기의 꽃인 광고, 그리고 21세기의 영웅 이제석이란 인물을 그저 뻔한 성공 스토리에 차용하기에 앞서, 이 시대에 광고가 무엇인지, 이제석이란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앞서야 하지 않을까? '타고난' 히어로가 아니라, 갈고 닦여 성장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시청률은 차치하고,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이라도 주지 않겠나.

by meditator 2013. 2. 6. 09:10

엉뚱하지만 종편 방송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자꾸 종편 쪽으로 리모컨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는 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는 공중파에서는 진부하다고 밀려난 컨셉, 스타일들이 종편에서는 늘 익숙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는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들 속에서 더 익숙해진 사고와 관념의 스타일 또한 여전하게 자리잡는다. 새롭게 맞출 필요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그런 생각들, 그걸 우리는 '보수적'인 것이라 통틀어 쉽게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굳이 보수적인 것들을 꼭 종편에서만 만날 필요는 없다. 젊은이들이, 조금씩 외면하기 시작하는 공중파의 시간대는 자꾸 중장년층들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맞추려고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2월 4일 힐링 캠프는 조금 용감했고, 모처럼 '힐링' 캠프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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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캠프> 홍석천 편이 방영되는 동안, 이경규는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은 홍석천을 게스트로 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말을 표명했다. 그 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보수적'인 시선들을 의식한 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의 여배우가 시상식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밝히는 이즈음에 홍석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라는 역설적 토닥임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경규가 던지는 질문들은 더욱 돌직구성이었을 수가 있고, 또 그래서 홍석천은 공중파를 통해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자리를 깔 수 있었다.

 

물론 홍석천은 바로 몇 주 전에 <라디오 스타>에도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표현처럼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라디오 스타>라는 웃자고 판을 벌이는 곳에서 홍석천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을 희화화 시키면서 조금은 편하게 사람들이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게 하는 그 정도 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힐링 캠프>는 그저 웃고 떠들며 홍석천을 편하게 보자는 방식을 버렸다. 대신 그 누구보다도 '보수적'이라며 편견어린 그리고 일상의 우리들도 사실은 궁금했던 질문들, 동성애는 정신병인가? 동성애자의 사랑은 어떤가?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이해하는가? 등을 마구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홍석천은 '성적 소수자'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삶에 대해 오히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적 '게이'인 홍석천의 입을 빌어 알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어느 나라는 동성 결혼이 허용되고, 동성애 부부의 입양이 허용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성적 취향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버려야 하고, 그들의 죽음조차도 '성적 비관'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덮어져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저 우리가 무심히, 혹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사회적 압사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것이 애초에 본원적으로 뇌의 형성 과저에서 부터 타고난 것이라던가, 혹은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감정에서 그런 것이거나, 구분조차 할 시간도 없이, 선이 그어지고, 가족과 친구와 사회 밖으로 밀쳐져 극단적 선택을 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어, 라고 편하게 생각한 뒤에 숨겨진 많은 사실들, 여전히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동성애자라면 쉽게 에이즈에 걸리겠지 라는 편견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홍석천이란 한 사람을 통해, 게이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열 배 이상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이 '성적 소수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굳어 있던 우리 뇌의 한 부분이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보수적'이라고 주장한 이경규도, 자신은 깨어있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보수적인 면이 많다는 김제동도, 그리고 그 '보수'에 한 표를 더한 한혜진까지도 홍석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고, 그것을 공중파를 통해 이해받을 수 있기까지,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by meditator 2013. 2. 5.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