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을 입은 누군가가 어떤 행성의 이곳 저곳을 살피며 다니며 '탐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탐험하는 행성의 모양새가 익숙하다. 여기저기 쌓인 부식된 쓰레기 더미, 흡사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쓰레기 적치장과도 같다. 그 쓰레기 적치장과도 같은 '행성'의 잔해에서 찾아낸 것은 '뼈', '닭뼈'이다. 우주복을 입은 그 누군가는 '미래'의 사람이다. 그가 과거의 잔해 더미에서 가장 많이 찾아낸 것은 '닭뼈'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거'의 지구를 어떻게 정의내릴까? 혹 우리가 백악기를 '공룡의 시대'라 명명하듯, 닭들의 행성이라 이름붙이지 않을까? 

2020년 방송대상을 수상한 ebs다큐프라임 <인류세> 1부 닭들의 행성은 이렇게 시작된다. 왜 닭들의 행성이 되었을까? 전세계 230억 마리, 인류 한 사람 당 3마리에 해당하는 개체수이다. 개체수로만 보면, 지구는 닭들의 행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가 닭들의 행성이 된 까닭은 '닭'의 적극적 생존 의지가 아니다. 

 

 

닭들의 행성, (feat 인간 )
갈루스 갈루스 도메티쿠스(Gallus gallus domesticus) , 들에서 살던 붉은 들닭은 5000년 전부터 인간의 가축이 된 이후 인류를 따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강한 다리, 넓은 가슴, 질량으로만 보면 전체 조류를 압도하게 된 닭, 미래의 후손들이 지구를 '탐험'하고 그 압도적인 개체수로 인해 '닭들의 행성'이라는 결론을 내릴 지도 모르는 닭의 번성을 '주도'한 건 '인간'이다.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진 닭은 1950년대에 비해 무려 5배나 빨리, 더 크게 성장한다.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5,6주 무렵 도사로딘다. 한 해 도살되는 개체수만 해도 650억 마리이다. 닭들의 행성이라 명명될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하지만, 그 '번성'은 닭의 '고난'이다. 심지어 2008년 한 해에만 천 만 마리가 도살되는 일이 벌어지듯, AI, 조류 독감은 인간과 함께 하여 겪게 된 '고난'의 또 다른 면이다. 그렇게 이르게 도살되어 사라진 청소년 닭들은 전세계 쓰레기 장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중이다. 

2018년 유엔 생명 다양성 회의에서 등장한 '핑크 프로젝트', 닭을 '핑크'색으로 상징시킨 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먼 훗날 우리 시대의 지질층이 '핑크'색이 될 거라 '예언'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250만 마리가 '소비'되는 닭, 인류 문명과 함께 번성하고, 번성한 만큼 사라져가고 있는 닭을 상징하는 핑크색 지질층의 시대, 다큐가 말하고 있는 '인류세'이다. 

지금까지 지구는 다섯 번의 '생물' 멸종을 겪었다. 빙하기로 인한 고생대의 멸종, 이은 데본기의 멸종, 가장 피해가 컸던 페룸기 대멸종, 파충류의 대부분이 멸종했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백악기의 공룡 멸종, 그리고 이제 6번 째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그 여섯 번 째 멸종은 인류의 번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와의 멸종과 달리, 한 종, 지구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강력한 종이 지구 환경 전체를 바꾸는 시대이다. 그래서 최근 1만여년전부터의 '홀로세'와 구분하여 '인류세'라 명명되어야 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멸종의 시대, 인류세 
'인류세'를 처음 '발의'한 사람은 폴 크리천이다. 대기학자였던 그는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구의 변화에 주목했다. 인간이 스스로 명명한 시대, '인류세, 인류세의 시작을 학자들은 1950년 원자 폭탄 폭발 이후부터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불과 70년,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번개가 치듯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인류는 그 이전의 지구 멸종기에 맞먹는 '멸종'의 시대를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이래 지구 생물 중 97%가 인간과 가축이 되었다. 야생의 생물들은 불과 3%에 불과하다. 자이언트 펜더, 침팬지, 아시아 코끼리, 기린, 얼룩말, 안테스 플라밍고, 펠리칸이 대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멀리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강치, 늑대, 표범, 크낙새 등이 이미 멸종했다. 학자들은 금세기 말에 지구에 있는 종의 반이 멸종될 거라 경고한다. 맘모스, 스테누루돈 ,디프로토돈, 일본 늑대 등 대형 척추 동물의 멸종이 인류세의 '시그널'이다. 

동물들은 어떤 식으로 사라져가는 걸까? 말레이시아 팜오일 농장, 25년 정도된 나무들을 자르고 새 묘목을 심는다.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기존의 숲이 사라진다. 그 숲의 자리에 팜유 농장이 들어선다. 그 과정에서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는다. 인간과 생존권을 놓고 갈등하는 악어라고 해서 '멸종'의 파고를 피할 길이 없다. 한약재로 인기가 높은 비단뱀이라고 다를까. 제 아무리 멸종 위기 동물들의 유전자를 '보관'하여 보존하려 해도,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번성을 위한 자연 파괴는 멈춰지지 않는다. 

 

 

인도 델리, 빛의 축제 디왈리 디왈리가 한창이다. 어둠을 밝히며 인류가 시작되었음을 '자축'하기 위해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500만 kg의 불꽃들을 쏘아댄다. 그 다음날, 대기 오염은 AQI(Air Quality Index ) 2000을 넘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폭죽을 쓰지못하게 하지만 이 디왈리 축제 기간 동안 경기가 활발해지고, 매출이 올라가자 멈출 수 없었다. 

다큐는 이 멈출 수 없는, 아니 멈추려 하지 않는 인도 디왈리 축제가 여섯 번째 멸종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세의 인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례라 한다. 자책하지만, 멈출 수 없는 강력하고도 큰 영향력을 가진 인류, 그들에 의해 다가올 멸종의 시대, '인류세'는 그저 인류가 번성하고 압도적인 '시대'가 아니다. 다큐는 '인류세'를 통해 '인류'가 자행하는 '멸종'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6번 째 멸종의 시대,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0. 10. 17. 02:3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마치 사랑학 교과서와도 같다. 매회 전개되는 상황은 '음악'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단계'를 밟아 풀어내고 있다. 혹자는 그래서 14회에 이르도록 도돌이표같은 지지부진한 전래라 답답해 하지만, 세상에 던져진 자신과 자신의 사랑을 겪어본 이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리얼'하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빠져들어간다. 

'사랑'은 두 사람의 '관계'다. 그게 남녀가 되었든, 남남이 되었든, 여여가 되었든. 그런데 사랑을 하는 주체인 두 사람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존재인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은 언제나 '주변'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사람들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온전히 두 사람에게 '사랑'만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별 선언 
결국 송아(박은빈 분)는 준영(김민재 분)을 찾아가 이별을 알린다. '그만 만나요. 사랑을 생각하느라 내 마음에 상처를 너무 많이 냈어요' 라고. 좋아해서 만났고, 사랑해서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했던 마음들이 자꾸만 상처가 됐다. '행복한 쪽으로 결정하면 돼'라고 위로를 건네는 언니의 말을 들은 송아가 내린 결정은 '상처'가 되는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사랑하는 송아와 준영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로만 보면 매번 송아를 만나면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는 준영이 있다. 송아는 조금 더 '준영'과 함께 하고 싶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준영은 매번 송아를 밀어내는 것같다. 송아를 좌절시키는 '미안하다', 그 '사과'의 단어 안에 숨겨진 뜻은 네가 원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서, 그런 상황에 놓여서, 다시 한번 너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 해서 미안하다이다. 준영은 왜 자꾸 원치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까? 

안식년을 가지고 모처럼 고국에 돌아온 준영, 하지만 그 일년의 안식년이 말 그대로 휴식같은 사랑 '송아'를 만나게 만들었지만, 송아를 제외한 모든 것이 준영을 쉴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준영을 ATM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모님이다. '차라리 외국에서 계속 연주나 하며 돈이나 보낼 것을'이라고 절규하게 만들도록 끊임없이 사업을 빙자하여 '돈사고'를 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상황에 무력한 어머니가 준영이 짊어진 짐이다. 

드라마를 본 누군가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고나서 남은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하는데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처럼 가진 것없이 '피아노 잘 치는' 재능만으로 오늘의 지위에 이르른 준영은 그래서 이제 자신의 '피아노 치는 재능'을 더 이상 '하늘이 내려준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이 이들을 사랑만 할 수 없게 만드는가 
그런데 '피아노를 잘 치는 능력'만으로도 음악을 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이라는 '짐'을 떠안은 준영, 결국 그는 오랫동안 '경후'재단의 도움을 받아왔을 수 밖에 없었다.  나문숙 이사장(예수정 분)은 준영이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를 잘 치게 해주고 싶다는 도움은 이제와 준영에게 마음이 접지 못하는 이사장의 손녀 정경(박지형 분)에게 준영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무기'가 된다. 도움을 요청한 준영의 아버지에게 돈을 건네고, 경후의 도움을 받았던 시간의 빛에서 자유롭지 못한 준영에게 자신의 피아노 반주를 요청하는 식이다. 준영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다던 나문숙 이사장조차 정경이 준영을 원하자 준영에게 정경의 배필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준영이 매번 이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점점 '집착'이 되어가는 정경의 사랑은 매번 준영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 유투브까지 올려진 '트로이메라이' 처럼. 

그 시작은 차이콥스키 콩쿨에 나가는 준영을 다시 '사사'하기 시작한 유태진 교수(주석태 분)의 욕심이다. 자신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그 반응이 신통치 않다 못해 혹평 투성이이자, 자신의 연구실에 새로 들여온 연주를 기억하는 피아노에 '녹음'되었던 준영의 '트로이메라이'를 자신의 연주인 양 보낸다. '살리에르'처럼 준영에 대한 애증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그가 결국 저질러버린 '범죄'적 행동, 하지만 준영은 가급적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송아', 트로이메라이가 지난 15년 동안 자신이 정격에게 들려주었던 음악임을 아는 송아에게 그걸 다시 쳤다는 사실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에서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더 이상 '미안한 일'을 만들고싶지 않다는 '사랑'에 빠진 준영의 마음, 하지만 그 준영의 진심을 세상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자신의 '피아노' 한 대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연습을 해야 하는 가난한 음악가, 그런 음악가의 상황을 이용하는 재단과 교수라는 '기득권'. 정경의 마음은 그 자체로는 '사랑'이지만, 정경이 '자신이 가진 부'를 사랑에 이용하는 순간, 그 역시 또 다른 '기득권'일 뿐이다. 

'기득권의 횡포'로 치자면 송아가 당하고 있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송아가 힘든 건 준영과의 관계에서 준영의 석연치않은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 역시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인생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준영의 새 매니저 박과장이 얄밉게 정의내렸던 '너무 늦은 출발', 4년을 재수를 해서야 들어간 음대에서 송아는 4학년을 마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세상의 인정에 목마르다. 그런 송아에게 냉큼 이수경 교수(백지원 분)가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알아봐주었다는 기쁨도 잠시, 이수경 교수가 송아에게 대학원을 권한 이유가 송아가 대학원을 갈 만해서가 아니라, 경영학과를 다녔던 그녀의 똑뿌러지는 일처리가 자신에게, 자신이 이제 막 만든 오케스트라에 '실무'로서 필요해서였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교수라는 직위로 '송아'의 재능을 볼모로 삼아, 송아를 이용하는 이교수로 인해 송아는 잠시 유보되었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의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다시 꺼내들게 된다. 

드라마는 두 젊은이 준영과 송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든 '화두', 그를 둘러싼 '세상'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두 사람은 사랑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꿈을 고민하지만, 결국 그 '사랑'도, 꿈마저도 '세상', 특히 '기득권'처럼 틀이 짜여진 세상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드라마는 '음악'을 매개로 풀어내고 있다. 풀어내는 이야기를 러브스토리이지만 웬만한 청춘 리얼리티못지 않다. 

이제 송아는 그런 자신에게 자꾸만 '상처'를 주는 세상을, 준영과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놓겠다 선언했다. 그런데 '상처'를 주는 건 사랑일까? 자신의 재능조차 ATM이 되는 세상에서 늘 주춤거리던 준영이, 그 준영이 유일하게 욕심냈던  '사랑', 과연 '세상'에 상처를 받는 '사랑'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by meditator 2020. 10. 14. 05:55

2020년 방송 통신위원회는 올해의 방송 대상으로 ebs다큐 프라임 <인류세> 3부작을 선정했다. 260편이 넘는 응모작 중  '인류세라는 재난적 상황에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인간 역시 멸종을 피할 수 없다 사회적 메시지'가 대상 선정의 이유로 꼽았다.

<인류세 > 3부작은 이미 앞서 프랑스 스크리닝 마켓에서 20,000 개 이상 스크리닝 작품 중 가장 많이 본 9번 째 작품으로 뽑혔고, 바르셀로나 플래닛 영화제 사르라다파밀리아 상, 한국 기독 언론 대상 생명사랑 부문 최우수상, 미국 임팩트 다큐 어워즈 장편 다큐멘터리 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ebs는 수상 기념으로 10월 5일부터 3부작을 다시 방영했다. 

그렇다면 용어조차 생소한 '인류세'란 무엇일까? 지구가 형성된 이후 현재까지의 단계인 '지질시대' 중 약 1만년 전 부터 현재까지를 '홀로세'로 구분한다. 2001년 화학자 파울 크루첸은 '인류가 화석 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면서 그로 인해 배출된 온실 가스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가 시작되었음에 주목하여 '인류세'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즉, 공식적인 지질 시대명은 아니지만 너무도 강력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된 생물종, 인류가 지배하는 시대라는 개념이다.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인류세>는 '닭뼈', '플라스틱', '과잉 인구'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을 풀어내고자 한다. 

 

   

 

인구 폭발, 붕인섬 
꾸르니 아완 안드레, 물고기 잡는 걸 좋아하는 14살 소년이다. 아직은 길어야 2분 정도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작살질을 하는 소년은 한번 물에 들어가면 4~5분 숨을 참을 수 있는 어부인 아버지처럼 물고기를 잘 잡는 게 희망이다. 

안드레는 바자우 족이다. 1만 7천 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 인도네시아, 그곳에 사는 바자우 족은 원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바다의 집시들이다. 그런데, 2002년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이며 세상에 알려진 붕인 섬, 이곳 바자우 족들은 독특하게도 200여 명의 섬 주민에 정착 생활을 하고 있다. 다큐는 정작 생활을 하는 붕인 섬의 바자우족들을 통해 '인구 과밀'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리를 통해 세상과 이어진 붕인 섬, 그 다리를 통해 세상의 문물 역시 붕인 섬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붕인 섬에는 쓰레기 통이 없다. 지금까지는 쓰레기가 생기면 키우는 염소들이 다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쓰레기라 봐야 대부분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였으니 가능했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서 비닐과 플라스틱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쓰레기통이 없는 붕인 섬에서 쓰고 버린 비닐과 쓰레기들이 점점 섬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섬 주변을 채우고도 남은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염소는 비닐을 먹고 병이 들기 시작했고, 바다에 둥둥 떠다디는 쓰레기로 인해 물고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산 폭발로 이곳에 모여든 바자우 족은 이곳 붕인섬에서 살아가는 것을 자신들 삶의 숙명이라 여긴다. 그런데 처음 100 여 명에서 시작된 바자우 족은 해마다 늘어나 이제 4000 여 명에 이른다. 

왜 이렇게 인구가 늘어나고 있을까? 조절은 안되고 있는 것일까? 1년에 100 여 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 반면에 죽는 사람들은 34명 정도이다. 당연히 인구는 급격하게 늘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2명을 낳으라하지만, 그 정부의 정책이 사람들에게 '수용'되지 않는다. 여전히 많이 낳는 것이 바자우 족의 '관습'이다. 4명, 5명, 6명, 7명까지도 낳는다. 붕인 섬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습을 고집하는 한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늘어나는 인구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매년 서른 쌍 정도가 결혼하는 바자우 족, 새로 결혼하는 부부에게는 '새 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한 바자우 족은 바다에서 죽은 산호를 캐내 집을 지을 '땅'을 넓힌다. 그리고 넓힌 산호 땅에는 육지에서 들여온 자재로 집을 짓는다. 해마다 새로 필요한 산호 땅을 위해 바다에서 산호를 캐내는 마지노이는 점점 더 깊은 바다로 향한다. 그의 보트 수 백대를 채워야 집 한 채가 만들어지는 붕인 섬의 집들, 바다가 섬을 감당해야 하는 '짐'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어디 집을 짓는 산호 뿐인가. 육지의 사람들이 차를 가지듯 붕인 섬의 사람들은 차처럼 배를 가진다. 한 대는 기본, 재력에 따라 두 대, 세 대를 가지기도 한다. 늘어나는 배와 함께 어획량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물고기 개체 수는 그대로이다. 늘어나는 배만큼 경쟁도 심해지고, 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위협당할 수 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은 생선은 매일 즐기지만 육지나 도회지의 사람들처럼 인스턴트나 육류를 즐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친환경적일까? 붕인 섬에서는 채소가 나지 않는다. 키울 땅이 없다. 채소 뿐인가. 전기, 수도, 플라스틱 등의 공산품, 식료품 등 생활의 대부분을 섬 외부로 부터 조달한다. 재생 에너지? 붕인 섬 사람들은 재생 에너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이용하지 않지만 붕인 섬 사람들처럼 살려면 2.7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불과한 붕인 섬, 하지만 붕인 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곧 지구의 축약본이다. 지구를 1억 분의 1로 줄이면 붕인 섬이다. 아버지처럼 어부가 되고 싶은 안드레, 하지만 청년 정치가 티손 사하부딘은 붕인 섬의 어부는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위해 지난 10년간 노력했다. 그 결과 절반 가까이 훼손되었던 산호에 새 살이 돋는 중이다. 하지만 안드레가 느끼게 될 바다는 그 이전 세대가 느끼게 될 바다와는 다를 것이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에너지 사용과 기온 상승 오존 파괴 등 지구 시스템의 가파른 상승세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가속은 지구 시스템의 변화 비율을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밀어붙였고, ㄱ결국 지구 시스템은 홀로세의 안정적인 상태를 벗어났다. 그 결과 호주 들불과 같은 기후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우리는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다. '(책 <인류세>  중)

인류세, 인류가 소행성 충돌, 지각판 충돌처럼 지구의 지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붕인섬은 바로 인류세의 현장이다. 




by meditator 2020. 10. 10. 22:33

2020년 7월 10일부터 wave 오리지널을 통해 선공개되고 매주 금요일 mbc를 통해 방영되었던 시네마틱 드라마 SF8이 10월 9일 <인간 증명>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민규동 감독을 비롯하여 노덕, 이윤정, 한가람, 안국진, 오기환, 장철수, 김의석 감독까지 한국 영화 감독 조합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 웨이브의 조합으로 주목받았던 이 시리즈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항마로서 야심찬 출발을 선언했지만, 첫 방송 <간호중>의 1.6%가 자체 최고 시청률로 1%도 못미치는 안타까운 성과를 보이며 조용히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란 모토 아래, 좀비에 이은 SF 장르에 대한 선도적 '도전'을 선언했던 SF8, 그러나 40분이란 짧은 시간에 펼쳐낸 영화 감독들의 포부는 '실험', 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선보인 김의석 감독의  <인간 증명>은 SF8이 시도한 실험 정신과 한계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들을 죽인 아들 
<인간 증명>은 <곡성>의 연출부를 거쳐, <죄많은 소녀>로 백상 예술대상,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휩쓴 김의석 감독의 작품으로 죽은 아들의 뇌와 결합된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고발한 엄마(문소리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들(장유상 분), 엄마는 차마 그 아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과학의 도움을 얻어 아들을 회생시킨다. 아들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기쁨도 잠시, 어느날인가 부터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했던 안드로이드의 '눈이 비어있음'을 느낀다. 분명 모습은 자신의 아들인데 거기서 아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법정에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세운다. 

엄마의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이라 주장하던 안드로이드는 결국 변호사의 집요한 설득에 자신이 영인을 죽였음을 고백한다. 정확하게는 영인과의 뇌회로를 단절시켰다고.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안드로이드는 영인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귀에 자신을 죽여달라 하던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하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그렇게 살 의지가 없었던 영인과 달리 자신을 살고싶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다. 

여기서 문제는 과거로 회귀한다. 이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이제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교통 사고의 원인을. 엄마는 차량 문제로 인한 사고라고 하지만, 그 표정이 석연치 않다. 안드로이드는 영인을 대신해 말한다. 삶에 대한 오랜 고통과 고뇌를 거쳐 겨우 공포와도 같은 죽음의 터널을 지났는가 싶었는데, 한숨 자고 깨어난 듯 다시 삶에 던져진 고통에 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를 엄마가 과학 기술의 도움을 얻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선(善)'인가? 그게 아니면 엄마의 '과욕'인가? 그렇다면 세상에 머물고 싶지 않은 영인의 뇌와의 접속을 끊어, 다시 한번 영인에게 '자살 아닌 자살'을 방조한 안드로이드에게는 '살인'의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인가? 여전히 영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삶의 의지를 주장하는 안드로이드의 권리는? 

그렇게 <인간 증명>은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서 인간에게 닥친 삶과 죽음의 딜레마를 '철학적' 화두로 묻는다. 

결국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학의 도움을 얻었지만 다시 한번 아들을 잃게된 엄마는 뒤늦게 오열한다. 아들을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바람에,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추모'할 시간조차 놓쳤음을. 

그런데 여전히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는 남아있다. 결국 안드로이드를 법정에 세웠던 엄마는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안드로이드는 묻는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엄마를 대했으면 좋겠냐고. 영인의 모습으로?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영인과 같은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견딜 수 없는 엄마는 안드로이드에게 기억 삭제와 '성형'을 권한다. 하지만 기억마저 자신의 정체성이라 주장하고. 아들은 갔지만 아들의 기억과 남겨진 모습 사이에 안드로이드와 엄마는 고뇌한다.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들과 연결된 뇌의 접속 장치를 차단하여 아들을 죽인 안드로이드, 이야기의 얼개는 신선하다. 엄마인 문소리와 아들 장유상의 연기도 절절하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금요일 밤 10시 공중파의 시청자들을 흡인하기에는 '난해'하다. 풀어가는 과정 역시 '죽음'과 '삶'에 대한 담론적 대사로 이어진다. 공중파 드라마가 가지는 '사건'보다는 두 모자 사이에서 이어진 '존재론적' 질문들이 채운 행간이 넓다. 의미는 있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대부분의 SF8 작품들이 가진 한계다.  이렇게 '매니악'한 접근이라면 SF 장르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것조차 무리가 아닐까.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담론적' 주제를 가졌음에도 재미와 대중성을 담보한 작품들에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실험적 양식'과 '난해한 주제 의식'만을 앞세운 이들 작품들이 호평을 떠난 관심을 받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20. 10. 10. 01:44

2017년 스스로 몸을 던진 이창준(유제명 분)의 죽음과 함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대에 대한 묵직한 문제 제기를 했던 <비밀의 숲 시즌1>,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2020년 시즌2가 찾아왔다. 

브로커 박무성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던 <비밀의 숲 시즌1>은 원심력있게 뻗어나가며  영은수(신혜선 분)를 희생양으로 삼고, 결국 이창준 - 윤세원(이규형 분), 두 사람에 의한 경찰, 검찰과 재벌, 그 구조적인 커넥션에 대한 폭로와 징벌이었음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보통 사람은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된 후 사회 해체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이 붕괴의 구멍이 내 앞에서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이렇게 시작된 이창준의 유서, '적당히 오염됐다면 외면'했을 거라던 그는 '자신의 몸에서 내는 삐걱 소리를 견딜 수 없어서,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을 수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제물로 삼았다. 

이창준의 그늘에서 시작된 시즌2
이창준의 죽음으로 부터 달라진 것이 있을까? 시즌 2의 시작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시즌 2에서 거목과도 같았던 이창준의 바톤을 이어받을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당연히 새로 등장한 우태하(최무성 분)와 최빛(전해진 분)에게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시즌 2의 시작 역시 '죽음'이었다. 그런데 시즌 1이 정치 브로커 박무성의 죽음이라는 '음모'의 가능성이 다분히 보이는 죽음이었다면, 시즌 2는 뜬금없게도 통영 바닷가에 놀러온 청년들의 '사고'였다. 그렇다면 저 '사고'도 시즌 1처럼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 될까?

결국 그랬다. 16회, 한조의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연재(윤세아 분) 회장이 던진 이성재의 비리 파일을 오주선을 통해 건네받은 강원철(박성근 분)은 남양주 별장 사건 수사에서 '한조'에 대한 묵인을 강요받으며 옷을 벗었다. 전관 예우의 시간을 견디며 홀로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는 그를 찾아온 황시목(조승우 분)에게 강원철은 통영 바닷가 사건을 '고해'한다.

그때 자신이 그 사건을 빨리 종결시켰다고, 그때 자신이 제대로 사건을 살폈다면, 그랬다면 서동재가 뒤늦게 그 사건을 의심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납치를 당하지도, 그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용하기 위해 우태하가 범죄자를 이용해 협박 편지를 보낼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참회한다. 그리고 그 참회는 바로 시즌 1에 이어 시즌2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제'이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우태하와 최빛, 그들은 이창준이 아니었다. 
통영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어 검경 수사권 조정위원회라는 현 시국에서도 예민한 사안을 들고 나왔던 <비밀의 숲 시즌2>는 결국 수사권 조정 위원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우태하 형사법제단 부장 검사와 최빛 경찰청 정보부장 및 수사구조 혁신단 단장이 박광수 변호사의 시체 유기의 공모자로 밝혀지며 좌초되고 만다.

시즌 2에서 황시목, 한여진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주목받았던 두 사람, 우태하와 최빛, 시청자들은 그들 중 누가 시즌 1에서 이창준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인가 주목했지만, 16회차 내내 그들은 늘 검찰의 편에서, 그리고 경찰의 편에서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만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 고군분투의 끝에 두 사람은 침몰하고 만다. 한조의 '지령'을 받은 박광수 변호사의 주최로 별장에 모인 경찰과 검찰의 주요 인물들, 그곳에 정치적 야심을 가진 우태하와 구속된 전 경찰청 정보과장이 있었다. 하지만 재벌 그룹과의 '야합'을 꿈꾸던 그들의 야망은 박광수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일장춘몽'이 되었다. 박광수의 사체를 놓고 고심하던 우태하와 내뺀 정보과장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에 온 최빛은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박광수를 운전 중 사망한 것으로 '조작'했고, 의정부 경찰 서장이었던 최빛은 이 사건의 수사를 종결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제 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의 대표로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편에서 가장 유리한 '이권'을 쟁취하고 고수하는 '쇼'를 벌이기만 하면 될 것같은 상황, 뜻밖에도 어떻게든 우태하의 눈에 들어보고자 했던 서동재로 인해 수면 아래 잠겼던 박광수의 죽음이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사라진 서동재, 수면 위로 올라온 박광수의 죽음을 두고 전전긍긍하던 두 사람은 검경이라는 '적'에서 시체 유기 사건의 동지가 되어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우태하는 사라진 서동재를 검찰 측에 유리한 조건으로 써먹기 위해 목격자와 협박 편지를 조작한다. 

황시목은 말한다. 우태하가 검찰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운운하며 정당화하는 협박 편지와, 그가 최빛과 벌인 박광수의 시체 유기는 다르지 않다고. 정보 과장의 부름을 받고 박광수의 사체를 유기한 대가로 경찰청  구조 혁신단장으로의 승진이라는 꽃길을 선택한 최빛처럼 그들은 늘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안위와 성공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칼을 뺏어야 한다. 처음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조차 칼을 빼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며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던 이창준과 달리, 그의 죽음 이후 여전히 경찰도, 검찰도 서로 자신들이 수사권을 가져가야겠다고, 자신들이 그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했지만, 정작 그 대표인 당사자들은 가장 그 자격을 가지지 못했음을 드러내고야 만다. 

 

   

 

여전히 황시목과 한여진이 그곳에 있다.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우고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이창준일까, 혹은 이창준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두 사람이 결국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오염원이었음이 드러난 시즌 2, 그렇다면 시즌 2의 이창준은 없는 것일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이창준은 없었지만, 대신 시즌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우직하게 수행해 낸 황시목과 한여진이 여전히 버티며 우리에게 16부작 완주의 보람을 안긴다. 

그저 '사고'로 지나쳐갈 뻔한 통영 사건, 그곳을 지나치던 황시목과 집에서 우연히 인스타를 통해 그 현장에 있었던 연인들을 본 한여진은 '의아심'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느꼈던 의아심을 '수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통영 사건에서부터 보인 여전한 황시목과 한여진의 고지식할 정도로 진실을 향한 성실함. 이는 서동재 납치 사건 과정을 이용하거나, 박광수 사체 유기를 하며 늘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한 우태하의 맞은 편에 그들을 자리하도록 만든다. 어떤 이해 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법적인 사실을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황시목의 '결함'이 곧 그의 특징이자, '선의' 나아가 '정의'가 되어 시즌 2를 이끈다. 한여진이라고 다를까. 나를 밟고 가라는 최빛의 농담같은 한 마디를 한여진은 눈물을 머금고 해내고야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은 통영 사건으로 부터 시작하여, 경찰의 입장에서 뇌관이 될 수도 있는 의정부 경찰서 내 왕따로 인한 자살 사건, 그리고 서동재 납치 사건을 경유하여, 우태하, 최빛의 박광수 시체 유기 사건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진실'만을 추적한다. 그들이 경찰이건, 검찰이건, 그 과정에서 자신의 편인 경찰의 목을 조르게 되건, 검찰 선배를 구속하게 되건, 그래서 '내부 고발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어도, 심지어 한여진을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우태하의 협박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들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건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시즌 1에서  이창준이 하고자 했던 바다. 

좌초된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를 두고 드라마는 지나가듯 말한다. 황시목과 한여진처럼만 하면 '조정'을 하고 말 것도 없다고. 뒤늦은 강원철의 참회 역시 마찬가지다. 우태하도, 최빛도, 그리고 검찰도, 경찰도, 자주 '우리가 남이가'를 운운한다. 그리고 니가 내 입장이라면이라며 사람 사는 일의 불가피함을 넘겨집는다. 하지만, 결국 에돌아 시즌 2가 말하는 건, 시즌 1에 이어 여전히 '독야청청'할 수 밖에 없어도 침묵하지 말고, 그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서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라는 것이다. 매우 정치적일 듯했던 시즌2의 전개와 달리, 여전히 내 밥그릇 챙기기 바쁜 세상에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부정부패에 대한 '인간적 자세'로 귀결된다. 그리고 묻는다. 과연 당신은 침묵하는 자인가, 입을 벌려 말하는 자인가 라고. 

시즌 1에 비해 느린 전개, 흡인력 떨어지는 흐름, 거기에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16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원주로 내려간 황시목과 새로이 발령을 받은 한여진이 새로운 사건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다기게 되는 드라마, <비밀의 숲>,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또 이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드라마가 드물다 싶다. 

by meditator 2020. 10. 5. 02:31

로봇과 인간의 절묘한 콜라보 아이언맨, 과거로 부터 온 절대 강자 캡틴 아메리카, 신화 속에서 길어온 토르, 신비의 섬에서 날아온 원더 우먼, 먼 우주로 부터 던져진 슈퍼맨에 돌연변이 박쥐에 고양이 등등 마블과 DC 히어로들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과연 여기에 또 새로운 캐릭터의 히어로들이 더해질 수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히어로들의 등장은 '우후죽순'이다. 침팬지의 유전자를 이식해 헐크처럼 큰 덩치로 괴력을 행사하는 커진 히어로는 어떨까? 망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영매나 시간을 오가는 능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2019년 2월에 새로운 히어로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공개 이후 전미 넷플릭스에서 오랜 시간 동안 1위 자리를 유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미국의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제라드 웨이의 그래픽 노블 데뷔작이다. 그 중 1부 종말의 조곡과 2부 댈러스가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되었다. 

지구 종말 앞에 던져진 히어로들 
시리즈의 시작은 러시아의 한 수영장이다. 한참 수영 연습 중인 여성들, 그런데 그 중 한 여성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임신을 한 적이 없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만삭이 되어 결국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이상 사례'가 전 세계에서 벌어져 43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이변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7명이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컬럼 피오레 분)에게 입양된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며 아이들을 입양한 목적을 밝힌 '하그리브스' 경은 그 목적에 맞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조직하고 아이들에게 히어로가 될 강훈련을 시킨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후, 하그리브스 경이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뿔뿔이 흩어졌던 이제는 5명만 남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명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에서 4년을 보낸 맏이 루서(톰 호퍼 분)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진위를 밝히려 하지만, 둘째 디에고(데이비드 카스타네다 분)는 죽음의 의혹 따위 아버지에 대한 애증에 전전긍긍한다. 그런가 하면 셋째 앨리슨(에리 레이버 림프먼 분)은 이혼 위기의 사생활에서, 네째 클라우스(로버트 시한 분)은 약물과 알콜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형제들과 달리 히어로 훈련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막내 바냐(엘렌 페이지 분)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조차 마음을 모을 수 없는 형제들 앞에 15살 때 시간속으로 사라진 넘버 5(에이단 갤러거 분)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 

15살이라는 '외모'와 달리 시간 여행을 하며 58살의 나이가 됐던 넘버 5는 17년 만에 겨우 집에 돌아온 형제들에게 '지구 종말'이 이제 겨우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통보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히어로 물의 전형적인 서사에 따르며 좀 갈등이 있더라도 '히어로'의 사명감으로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쓰련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속 히어로들은 좀 사정이 다르다. 말이 '입양'이었지, '얼마주면 되겠니?'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사온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아버지'이지, 자신을 '경'이라 부르라며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사랑'이라고는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어머니라지만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이보그 어머니가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없어 숫자고 불리던 아이들(그래서 이름이 지어지기 시간 여행을 떠난 다섯째가 넘버 5 이다)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육친의 애정에서 소외되어 상처받은 '아이' 그대로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들 히어로들은 자신의 '히어로'적인 정체성에서조차 여전히 혼돈 속에 빠져있다. 그저 많이 자란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형제들이 다 떠나버려 홀로 적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빠졌던 맏이 루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주입했던 집사 침팬지 포고의 DNA로 인해 '동물적인 육체'를 지니게 되었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도 가족 중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마저도 알고보니 홀로 고독과 싸우며 견뎠던 달에서의 4년이 '방치'였음을 알게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지만, 그 만큼 '히어로'에 대한 '사명감'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인 둘째는 자신의 사명감에 따라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수단과 방법을 그라지 않는 그의 방식은 결국 그를 경찰 교신망을 도청하는  '불법' '히어로의 신세로 '전락'시킨다.

'소문으로 들었는데'라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앨리스는 그 능력으로 스타가 되고, 가정도 얻었지만, 결국 그 능력으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되어 '자중지난'이다. 네째, 클라우스는 거의 '폐인'이다.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의 능력 덕분에 일곱 히어로 중 한 명인 죽은 벤과 항상 함께 하듯이, 때로는 처참하게 죽은 자들이 '소환'되는 그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과 알콜에 쩔어산다. 

 

   

 

지구 종말이라는 사명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팀'으로서의 결집은 '언감생심'인 시즌 1, 결국 그 '지구 종말'조차도 알고보니 이들 히어로 중 한 명인 '바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작할 때는 B급 정서에 기반한 오합지졸 히어로들의 시트콤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던 시리즈는 중반을 넘어서며 각 히어로들의 정체성과 성장통을 거치며 소위 그간 히어로물이 그려왔던 '당위적 사명'을 가진 '남다른 존재' 히어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존재란 이유로, 혹은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간적인 행복조차 '방기'되거나', 억압돠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히어로'라는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면, 오늘날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 제기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작품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당대적 정서에 대한 '공감'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 '거창한 지구 종말'이라는 문제 조차도 결국은 한 가정에서의 학대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결국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이들이 '지구 종말'을 막아낼 수 없다는  '화두'는 철학적이기 까지 하며, 그래서 기발하고 신선하며, 늘 대의와 사명, 담론에 치우쳐 왔던 이전 히어로물에 허를 찌른다. 

결국 히어로지만, 그들이 남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이기에 '지구 종말'을 초래하게 된 '엄브렐러 아카데미'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 문제에 허우적거리다 지구 종말을 막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끝일까? 여기에 '시간 여행'이라는 기막힌 '치트키'가 등장한다. 치트키 '시간 여행'을 통해 케네디 암살 시점인 1963년 댈러스로 떨어진 이들은 여전한 자신들의 숙명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시대적 감성에 기대어 마주하며 업그레이드된 서사가 이어진다. 

by meditator 2020. 10. 3. 15:23

지난 2018년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 <나는 살인자다>는 사형을 선고받은 1급 살인범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다. '살인'에 대한 기록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살인'을 저질렀던 당사자가 직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토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사자가 말하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나는 살인자다>의 시도는 획기적이며, 도발적이다.

  

미국은 지난 1976년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하였다. 그 이래로 8천 명 이상이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다큐는 이렇게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살인범들이 자신이 살아온 이력과 범죄를 저질렀던 그 날을 말한다. 그 날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미래는 달라졌을까? 그 날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살인'으로 이끌었는가? 다큐를 보는 내내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무엇이 살인은 만드는가? - 학대의 기억 
8천 명의 살인 선고를 받은 사람들 중 여성은 10% 미만이다. 1편 <목숨을 쥐다> 에 출연한  3018877 번 린지 호건은 그 중 한 명이다. 25살, 앞날이 창창하던 나이에 '그 사람'을 죽였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린지는 15살에 가출을 했다. 반항적이었고 마리화나를 시작으로 메스 암페타민, 헤로인에 중독된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7살에 자신이 임신 3개월이라는 걸 알게 된 린지는 '엄마가 되고 싶어' 2003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들을 외할머니에게 맡긴 린지는 주방위군이 되었다. 남자들보다 푸쉬업을 잘하는 자부심을 가진 군인이었다. 그러다 2013년말 한 남자를 만났다. 다정했던 처음과 달리 남자는 변해갔다. 종종 이성을 잃은 남자는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를 구타했다. 주방위군으로 남자들과 어우릴 수 밖에 없는 그녀를 의심하며 바람을 피웠다고 말하라 강요했다. 씹던 음식을 뱉고, 강간했으며, 더럽다고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한번은 욕실에 그녀를 가두고 손을 으스러뜨리며 팔로 목을 졸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며 죽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2015년에야 남자는 구금되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한 린지는 결국 주방위군을 그만두고 술에 빠져 지냈다. 

2편 <광분>에 출연한 데이비드 역시 '학대'를 당했다. 990135번 데이비드 바넷, 그는 현재 포토시 교정 센터에 1급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지만 엄마는 그를 원치 않았고 알콜릭인 엄마의 친구 로버트에게 맡겨진 그의 어린 시절은 처참했다. 두들겨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대소변이 묻은 옷을 입고다녀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자판기에 음식을 훔치기도 했다. 

4~5세가 될 즈음 그를 찾아온 아동 복지국 직원이 '널 여기서 빼내 줄거야'라며 해주었던 포옹이 처음으로 느꼈던 따뜻한 기억이었다. 6살 때 평범한 가족에게 위탁되었던 것도 잠시, 외국에 나가야 하는 가족이 그를 다시 보호 시설로 돌려보냈다. 

8살 때 그를 데리고 온 존 바넷은 그에게 '내 아들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된 그 날의 기억이 악몽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살며 아버지인 존은 본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존은 그를 때렸다. 찢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시절,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친 그를 아버지인 존은 위로해 준답시고 안고 키스를 했다. 한 술 더 떠서 그를 무릎에 앉히고 안아달라 했다. 성기를 만지는 등 부적절한 스킨쉽을 했다. 당시에 대해 ' 존재하고 싶지 않았고 죽고 싶었다'고 데이비드는 괴롭게 말한다. 


10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에 출연한 상당수의 '살인범'들은 린지나 데이비드와 같은 '학대'의 기억을 가진다. 그 '학대'의 기억은 그들의 삶을 잠식했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이 없었다. 그 '학대'가 그들을 '범죄'로 이끌었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존이 음모가 없는 사춘기 이전의 소년의 음경을 팔로 받치고 있는 사진을 찾은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이것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 생각하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경찰은 사진을 그냥 주더니 외려 나가라 했다. '경찰은 아무 것도 안할 거야'라며 뛰쳐나간 데이비드, 학교도, 아동 복지국도, 경찰도 데이비드가 당한 일에 눈을 감았다. 

존은 학교 전산 담당 교사이자, 올해의 스쿨버스 운전사로 뽑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으로 살다 제 명을 다했다. 그의 집과 불과 두 집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의 집이 있었고  그의 부모 클리퍼드와 리오나는 존이 입양한 아이들의 자상한 조부모였지만, 아들이 저지른 범죄적 행동에는 무지했다. 그와 49년지기라는 친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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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살인은 변호될 수 있을까? 
술에 절어 살던 린지는 한 파티에서 로비를 만났다. 그가 재활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와 함께 정처없이 떠났다. 

자신을 막대하지 않아서 고마웠던 로비는 함께 여행길에 오르자 그녀에게 다른 걸 요구했다고 한다. '너랑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린지의 소망과 달리, 로비는 지쳤고,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을 죽여달라며 린지에게 애원했다. 결국 월마트 주차장에서 린지는 로비의 목을 졸라 죽인다.

살인을 저지른 것도 잠시, 당황한 그녀는 로비에게 일어나라 애원을 하며 CPR을 하던 중 경찰에게 발각된다. 내가 죽였다며 살려달라던 그녀, 린지는 자신의 전 애인이 자신에게 가했던 학대의 '트라우마'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했다며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심문받던 영상을 보던 형사는 그녀의 그런 고백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심문 도중 '맨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 아마도 전 약혼자가 자신에게 한 것을 로비에게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 추측한다. 거기에 더해 불과 사귄 지 한 달 밖에 안된 상황에 로비를 위한 순애보적인 살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전 애인을 만나러 가고자 하는 로비의 속셈을 알게된 린지의 질투심이 저지른 '고의적 살인'을 결과했을 것이라며 그녀의 '고백'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의 경우는 그가 범죄를 저지른 대상과 상황이 심각하다. 존에게 학대당하던 그는 한때 존의 집에 머물던 세실과 아이를 낳으며 잘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세실과 헤어진 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1996년 2월 존의 부모, 즉 자신의 양부모인 클리퍼드와 리오나의 집을 찾았다. 죽이러 간 게 아니라 이제 이 문제를 끝내고 싶어서 간 것이라는 데이비드는 양부모에게 존이 한 짓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위로의 포옹은 없었다. 양부모들은 그의 말을 듣고 불쾌해하며 화를 냈다. 그런 양부모들의 태도가 그에게 쌓인 분노의 스위치를 켰다. 

양 부모들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턱뼈가 틀어진 상태에서 5개의 칼로 20군데 이상 잔인하게 찔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칼이 깊게 박혀 손잡이가 부러져 있었다. 느리고 고통스럽게 잔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방과 후에 찾아가면 쿠키를 주던 할머니, 존의 학대로 부터 유일하게 가정적인 따스함을 주던 그 분들을 죽인 데이비드에게 배심원 12명은 '이 남자는 살아선 안된다'며 살인을 선고했다.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는 있을까? 
하지만 린지와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로비를 목으로 조르고 싶다던 증언을 다시 본 린지는 당황해하며 끔찍해 한다. 사람을 죽였기에 더는 평범할 수 없다고 말하는 린지, 자신의 손을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뉘우치고 있다고 말하는 린지, 달라진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뉘우치는 린지를 로비의 부모가 품었다.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그녀가 정말 죄송해요라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보고 용서하기로 했다는 로비의 엄마와 양부, 하지만 로비의 친아버지는 다큐의 출연을 거부한다. 형기의 25%를 복역하면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지는 법, 린지에게는 2030년 자격이 생긴다. 과연 린지는 가석방이 될 만한가?

데이비드에게는 불공평했던 법이 기회를 주었다. 그의 재판 과정에서 그가 세우고 싶었던 증인은 많았지만 국선 변호인은 그가 원하던 증인을 단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칼라일 팀 변호사가 경찰서에서 데이비드가 아버지 존의 성적 학대를 증언하려 했던 기록이 수면위로 올라오며 그가 수감된 지 22년이 지난 2019년 법원은 그의 죄를 '살인죄' 대신 가석방없는 종신형으로 감했다. 

젊은 나이 수감 생활을 한 데이비드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존을 증오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그저 괴물을 품고 있었을 뿐,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신 역시 실수를 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꺽지 않는다. 가석방을 위해 항고하겠다는 데이비드,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에게 기회는 주어져야 할까? 

다큐에 등장한 살인범들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의 사연은 저마다 곡진하지만, 과연 그 사연의 진위 여부 역시 때로는 다른 이견이 제시되고,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겨진다. 과연 그들에게 세상 밖으로의 삶을 살 기회가 주어져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오랫동안 그들이 보낸 '참회'의 시간 사이에서 정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런 '모호한 인간과 법' 사이의 경계가 '리얼'로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일 것이다. 

 

#넷플릭스 #나는 살인범이다 

by meditator 2020. 10. 3. 12:10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대기 형 장난감 칼이 들어있다' 

이렇게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9번 째 책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시작된다. '보건교사'라는 정상적인 직업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키치적' 소품인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장난감 칼은 바로 <해리 포터>에서 판크라스 역 9와 3/4 승강장을 통해 호그와트 행 기차를 타고 '마법'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듯 '죽은 영혼'들이 만연한 세계로의 '입장권' 같은 것이다. 평범한 소년 해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떠나 호그와트의 마법사들이 빗자루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세계를 '수용'해야 <해리 포터> 속 세계관에 심취할 수 있듯  <보건교사 안은영>은 보건교사인 안은영(정유미 분)이 죽은 자들이 남긴 욕망의 찌꺼기를 향해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이 엉뚱한 상상력의 세계를 '인정'해야만 키치 감성 충만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이 극대화시킨 소설의 상상력 
독특한 상상력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9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6편의 시즌으로 돌아왔다. 이 시즌의 감독은 이경미 감독, <미쓰 홍당무(20008)>라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켰던 감독답게 <보건교사 안은영>이 가지고 있는 키치적 환타지의 세계를 목련 고등학교라는 고등학생들, 그 중에서도 비주류적 삶에 보다 방점을 찍으며 B급 감성이 넘치는 영상으로 극대화시킨다. 

그러기에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면 과연 정세랑 작가의 세계를 이경미 감독만큼 재치있게 구축해 낼 수 있는 감독이 또 누가 있을까라는 싶지만, 동시에 이는 홍조 띤 얼굴로 삽질을 하던 <미쓰 홍당무>와 신들린 듯 방언에 가까운 몸부림을 보여주던 <비밀은 없다>의 연홍의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듯 이경미 감독이 '에스컬레이션'시킨 원작 속 세계관에 대한 시청자의 기호 역시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안은영, 죽음에 맞서다 
드라마는 안은영의 어린 시절을 통해 '젤리'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인도한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어린 시절의 은영은 그런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인해 '심리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런 그녀의 옆에 엄마가 앉아있다. 당연한 듯 했던 모녀 관계, 하지만 다음 장면 은영의 눈 앞에서 녹아내리는 엄마를 통해 은영이 보는 '죽음'의 세계가 열린다. 

드라마로 와서 '문어 젤리', 옴벌레 젤리, 대왕 두꺼비 젤리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퇴치 대상'은 바로 죽은 자들이 남긴 안은영의 눈에만 보이는 '욕망'의 기운이다. 목련 고등학교 지하실 흔적만 남긴 연못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몸을 던진 슬픈 연인들의 '마음'들이 짖눌러져 있다. 은영이 학교 창립자의 아들 홍인표(남주혁 분)와 함께 그곳을 누른 '압지석'을 열자, 그 이루지 못한 사랑의 '원혼'들은 거대한 대왕 두꺼비 젤리가 되어 튀어오르고 그 '기운'에 '전염'된 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옥상난간 철망에 미친듯 매달린다는 식이다. 

물론 은영이 처음부터 '젤리'를 상대로 칼을 휘둘렀던 건 아니다. 지금의 은영은 극중 죽은 자의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온 어릴 적 친구 강선의 설정이다. '귀신'을 본다는 사실이 알려져 반 친구들에게 기피대상이었던 은영은 역시나 조폭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된 강선과 짝을 하게 된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한껏 위축된 은영에게 강선은 '그림'을 통해 은영의 캐릭터를 구축해 준다.  그리고 그건 바로 귀신을 본다는 남들과 다른 모습을 약점이 아닌 기꺼이 그걸 수용하여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든 '퇴마 히어로'로써의 거듭남이었다. 

은영은 그런 강선의 독려에 힘입어 남들을 돕고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소명'은 받아들였지만 '*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듯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삶이 고달프고 버겁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멘토'가 되어준 건 침술원 원장 화수(문소리 분)요, 그녀에게 에너지를 통해 힘을 준건 같은 학교 한문 선생인 홍인표(남주혁 분)이다. 젤리들과 싸우다 '방전'하면 남산에 올라가 연인들의 기를 받고, 절은 전전하던 은영은 인표를 둘러싼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의 손을 잡는 것을 통해 기를 충전한다. 

이경미 감독이 B급 감성의 향연처럼 펼쳐놓은 목련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은영과 젤리와의 대결을 풀어가던 <보건교사 안은영>은 매켄지, 어릴 적 친구 김강선, 그리고 옴잡이 혜민을 등장시키며 그저 이 드라마가 해괴한 명랑 판타지만이 아님을 말하기 시작한다. 

 

 

여린 존재들의 아름다운 싸움 
은영과 같은 능력을 가진 매켄지는 자신을 둘러싼 에너지를 가진 인표에게 접근하고 그런 그의 '음모'를 알아챈 은영은 매켄지와 '대립'한다. 여기서 매켄지는 은영에게 일말의 경제적 이득도 없이 '사명감'만으로  '죽은 자들의 욕망'과 맞서는 은영에 대해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결국 드라마는 매켄지 나아가  '숨구멍을 다스려 대운을 바꾸겠다'는 욕망으로 학교를 지을 자리가 아닌 곳에 목련 고등학교를 지은 인표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이해 관계'를 관철하려는 안전한 행복(HSP)이라는 일군의 무리들, 결국 은영의 멘토인 줄 알았지만 은영을 이용했던 화소와 같은 자들의 '욕망'이 목련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을 자초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욕망의 맞은 편에 은영, 혜민과 같은 '여린 자'들의 싸움이 있다.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던 은영이나,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를 저는 인표는 세상에 주목받지 못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명감'에 자신을 맡긴다. 

이러한 여린 존재의 당위적 사명감은 특히 옴잡이 혜민의 에피소드를 통해 절정은 이룬다. 백제 시대부터 목련 고등학교 근처 5.38KM 반경 내에서 '재수 옴붙게' 만드는 옴 젤리들을 잡아먹어왔던 옴잡이 혜민은 몇 수십 차례 인생을 거듭 살고 있다. 빈 속에 옴을 먹으면 속이 쓰려 연신 음식을 쑤셔넣다시피하고 은영에게 와서 제산제를 통째로 받아가는 혜민, 그런 혜민이 친구들을 사귀며 스무 살 넘게 살고싶다는 '소망'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혜민은 그를 돕겠다는 은영 앞에서 주저한다.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따라 사는 것이 곧 친구들에게 '재수를 옴붙게'만드는 결과를 초래할까봐, 이를 원작자 정혜랑은 '여린 존재들의 아름다운 싸움'이라 정의한다.

아름답다고 했지만 싸움은 처절하다. 제 아무리 인표가 손을 잡아줘도 버거운 싸움에서 은영조차 도망치고 싶다. 오랫동안 옴잡이로 살아온 혜민에게 이제 자신의 생을 찾아주듯 은영 역시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히어로물의 정석처럼 결국  은영은 목련고등학교로 돌아온다. 여전히 '*팔'을 외치지만 이제 은영은 불안하면 화수에게 달려가던 그때의 은영이 아니다. 기괴한 명랑 판타지의 끝에 만난건 결국 '아름다운 인간'의 진정성이다. 

by meditator 2020. 9. 27. 21:14

'평등' 사회라고 하지만 그 단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급'들이 서로 나뉘어져 있다. 학교를 평준화시켜놨더니 학교 내에서 우열반이 생기고, 이제 그 '우'반들이 일반 학교를 벗어나 외고니 과학고니 자사고니 자가발전 하는 걸 보면 '급'을 따지며 무리를 나누는 건  인간 사회의 본원적 속성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예욀까? 일찌기 고전 <춘향전>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랑'은 그 인간 사회의 '급'으로 부터 비극을 잉태한다. 양반집 자제 이몽룡과 기새의 딸 춘향 사이에 던져진, 어떻게 너네가 사랑을 할 수 있어? 라고 하는 고전적 질문이 늘 '러브 스토리'의 주된 갈등이었다. 세월이 바뀌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금으로 인해 아프다.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준영과 송아는 다르다? 
'좋아요, 좋아해요'
송아(박은빈 분)는 자신을 뒤따라 온 준영(김민재 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침마다 '트로이메라이'를 치며 정경(박지현 분)을 향하던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던 준영은 이제 더는 '트로이메라이'를 치지 않지만 여전히 정경의 모친으로 부터 시작된 경후 재단과, 그 손녀 정경, 그리고 정경의 연인 현호(김성철 분)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그의 주변 관계들이 준영으로 하여금 늘 자신을 뒷전에 두게 만들었고 그렇게 살아왔던 그의 '습관'과도 같은 태도가 송아의 담백한 고백 앞에서 주춤거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준영은 송아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싶었다. 송아와 함께 밥을 먹고, 처음으로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안식년'답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준영과 송아의 행보는 좁디 좁은 음대 안의 '스캔들'이 되었다. 

경영학과를 나온 송아를 조교로 써먹고 싶은 교수의 속셈이야 어떻든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이라는 가능성이 열린 송아는 기쁘다. 졸업 연주회도, 대학원 입시도 잘 해보고 싶은 송아, 그런 송아에게 친구 민성은 준영에게 반주를 부탁해 보라고 한다. 사랑하는 여친이니 작은 별을 연주한다고 해도 해주지 않겠냐며. 

하지만 그 시각 어려운 경제적 처지를 돌파하고자 다시 시작한 콩쿨 레슨에서 유태진 교수는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치 않는다. 쇼팽 콩쿨에서 1등없는 2등으로 한동안 피아노 연주계를 휩쓸었던 준영이지만 얼마전 다른 연주자가 1등을 하며 연주회조차도 만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처지, 어머니 수술비 2000 만원조차 마련하지 못한 자괴감을 떨치고 시작한 레슨에서 유태진 교수는 콩쿨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모든 심사위원에게서 고르게 우수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며 준영의 연주법을 에돌아 '비난'한다. 

다시 시작한 콩쿨 레슨의 딜레마와 더불어 유태진 교수는 송아와의 관계를 들먹이며 행여 송아의 반주를 맡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며 일침을 박는다. 그게 어떠냐는 준영의 힐난섞인 눈빛에 유태진 교수는 네가 반주를 하면 제 아무리 송아가 잘 해도 준영 덕이라는 이름표를 뗄 수 없을 것이라며 준영과 송아의 처지를 가른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경후를 통해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준영에게 해외 매니지먼트 대리인으로 찾아온 박과장은 그가 오랫동안 해왔던 정경과 현호와의 트리오를 들먹이며 다시 한번 준영의 '급'을 운운한다. 경후의 그런 '급'에 안맞는 매니지먼트가 이제 연주회조차 여의치않은 준영의 내리막길을 조장했다며 준영의 현실 인식을 다그친다. 

결국 준영은 송아의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송아의 반주에 대해 외면한다. 그리고 송아와 사귀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송아가 자신 앞에서 가리던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도처럼,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송아가 상처를 받게될까하는 준영의 '너무도 깊은 배려'였지만 결국 준영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가 나누어 놓은 '급'다른 처지를 인정한 셈이 된 것이다. 

 

 

사랑에도 급이 있나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네 남녀의 사랑이라는 멜로적 테마를 씨줄로 하여, 거기에 서령대 음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 나라 음악계의 풍조를 날줄로 '갈등'을 더한다. 좁디 좁은 음악계 서로의 출신과 인맥에 따라 나뉘고 갈라지는 이합집산의 무리들, 그들은 서로 더 좋은 인맥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자신의 인맥을 기르고 가르고, 그 무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거기에 주인공 네 사람은 저 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 리그에 던져진다.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준영이야 그 '리그'의 vip인 셈이다. 경후 그룹의 외동딸이자, 경후 재단의 손녀인 정경 역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그에 반해 실기 1등에 외국 유학 경력을 가졌지만 평범한 부모님의 편의점 일을 도우며 레슨을 전전하는 현호의 처지는 그간 늘 애인 정경에 걸맞지 않는 파트너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게 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다 뒤늦게 음대에 진학하여 잘 나가는 동기들 사이에서 실기 꼴찌의 성적을 받아든 송아의 처지는 준영과 사귄다는 사실만으로 스캔들이 되듯 '언감생심'의 처지이다. 

하지만, 세상이 나눈 급과 달리 정작 당사자들의 처지는 저마다의 짊어진 무게가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박준영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환호'를 받는 처지이지만 경후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처지가 늘 준영의 어깨를 짖누른다. 경제적 배경은 든든하지만 서령대 교수 자리에 연연해야 하는 정경 역시 마음이 조급하다. 

세상의 잣대와 저 마다의 딜레마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청춘들은 고뇌하고 그 고뇌는 음악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그것과 일치하기에 드라마는 공감을 낳는다. 

조금씩 다가오겠다는 준영,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에도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로 인해 준영과 송아의 데이트는 무겁다. 사랑은 나누고 싶지만, 함께 나눌 수 없는 각자의 고민이 함께 하는 시간에도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없도록 만든다.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사랑을 소통할 그 무엇이 있을까? 

결국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설 사랑에의 용기가 아닐까. '과연 내가 준영을? '하던 복잡했던 자신의 마음을 담백하게 좋아요 라고 전했던 송아처럼, 그리고 그런 송아에게 송아와 자신의 사이에 수많은 금을 그어대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뛰쳐나와 송아에게 '좋아요'라고 다가선 준영의 화답처럼 말이다. '상처받고 또 상처받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말이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수많은 '러브 스토리'는 그들을 가른 수많은 역경을 '사랑'의 힘으로 넘어선 커플들의 아름다운 그리고 용기있는 도전의 역사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준영과 송아란 캐릭터가 울림을 주는 건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온전히 스스로 감싸안으며 거기에 더해 자신에게 온 사랑에 뒤걸음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좋아요'가 더욱 감동을 더한다. 과연 이 '용기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선택을 해갈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by meditator 2020. 9. 23. 15:46

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한 '살아있는 시체' 좀비는 이제 우리 문화 콘텐츠에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래로 서구 공포 영화에서 활약하던 좀비는 연상호 감독의 <부상행>을 계기로 우리 영화에서도 더는 좀비가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최근 개봉한 <# 살아있다> 역시 좀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는 그저 '좀비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래서 어느 영화에 등장하던지 좀비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살아있는 인간을 탐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2013년 개봉한 <웜 바디스>의 경우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좀비가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심장이 다시 뛰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좀비를 변화시킨 것이다. 9월 21일 kbs2 tv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좀비 탐정> 역시 기존의 떼로 몰려다니던 좀비가 아닌 역설적이게도 '주체적'인 좀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인간 세상에 던져진 좀비
쓰레기 더미에서 눈을 뜬 좀비(최진혁 분), 물론 그도 처음엔 자신이 좀비인 줄 몰랐다. 하지만 혈액없는 피부에, 퀭한 두 눈, 으~ 하는 신음 소리 말고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  도무지 속력을 낼줄 모르는 발걸음, 그리고 배가 고파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그의 곁에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는 동물들을 보며 자신이 좀비가 된 줄 비로소 실감한다. 

'도대체 왜 내가 좀비가 된 것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인간 세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 처음 공선지(박주현 분)를 만났을 때야 선지의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 받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상태로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좀비로 몰려 다시 한번 죽음을 맞기 십상인 처지, '좀비'인 자신의 모습을 '세탁'하기 위해 강훈에 돌입한다. 

젓가락을 물고 발음을 연습하고, 폐허가 된 마을 회관에서 런닝 머신을 하고, 젓가락질 연습을 하며 말초 근육을 키우던 좀비는 우연히 산 속에서 죽음을 당한 탐정 김무영의 옷을 입고 마을에 나타난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간 드라마에서 인간을 괴롭히던 '객체'였던 좀비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좀비의 관점에서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보여주며, 그간 '괴물'이었던 좀비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역시 얼마나 '울타리 밖의 존재'로서 고통을 당했을 것인가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저 주체와 객체의 입장을 바꾸었을 뿐인데 드라마는 그 자체로 '서사'를 이루고 '웃음'을 자아낸다. 

여전히 좀비의 본능에 따라 '인간'만 보면 그 '향긋한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고 입을 아~ 벌리고 마는 좀비, 하지만 인간으로 거듭난 의지의 좀비답게 참을 수 없는 식욕을 삼키며 혈색없는 톤업시키는 비비 크림을 바르고 인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아이의 코 묻은 돈이라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가 된다. 심지어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돈을 벌게 된 계기가 음식점 오픈 이벤트에서 '좀비' 춤을 선보이는 상황은 '좀비' 문화 와 좀비란 실체의 간극을 대비시키며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그 존재 자체로 '공포'인 좀비가 자신의 본 모습을 '세탁'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고군분투, 하지만 코 묻은 돈 500원조차 제대로 벌지 못해 공선지에게 헬맷을 맞고 길바닥에 길게 뻗은 처지에 이르면 '생활형' 좀비의 고군분투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좀비 탐정>의 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건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 수업>을 통해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박주현이 분한 공선지이다. <추적 70분>의 작가로 '산타 유괴 사건'에 대한 깊은 자괴감을 가지고 있던 공선지는 이와 관련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안그래도 불의만 보면 참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은 매번 그녀를 경찰서 피의자 석에 앉히고, 직장은 다니지만 돈은 벌지 못해 언니에게 매를 벌고있는 처지, 거기에 이제 2편에서 그가 진심을 다해 어렵게 섭외한 목격자마저 괴한에게 피습을 당한다. 이 공선지가 앞으로 좀비 탐정 김무영의 파트너가 되어 풀어가는 사건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이미 wave를 통해 선공개된 1,2 회를 통해 <좀비 탐정>은 김무영으로 돌아온 좀비의 시끌벅적 인간 세상 입문기를 코믹하게 펼쳐낸다. 그런 그가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지나치게 안가리는 공선지(박주현 분)와 만나 본의 아니게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죽은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 신선한 캐릭터 좀비로 인해 풀어지는 이야기는 코믹을 넘어 흥미진진한 스릴러로서의 볼 거리로서도 기대를 자아낸다. 

by meditator 2020. 9. 22.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