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기를 가졌던 드라마 스페셜이 다시 돌아왔다.
9월 14일 <그 여름의 끝>에 이어, 9월 21일 <세 여자 가출 소동>까지 두 편이 방영되었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 드라마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일까? 이제 막 첫 술을 뜬 두 편의 <드라마 스페셜>, 배부르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어쩐지 술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든다.
9월 14일에 방엳된 <그 여름의 끝>은 남편이 교통사고 이후 식물인간이 된 후, 주민등록 등본을 통해 알게 된 남편 진우(이광기 분)의 숨겨진 자식을 맞닦뜨린 주부 수경(조은숙 분)의 혼란을 다룬다. 알고보니, 남편의 사고는 업무차 출장이 아니라, 춘천에 사는 첫 사랑 연인과,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암으로 죽은 첫사랑 연인의 아들은, 혼란을 겪는 수경에게 떠맡겨진다. 그녀는 처음 자신에게 맡겨진 초록이(전진서 분)를 미워하지만, 엄마를 잃고 누군가에게 살갑게 정을 붙이려고 애쓰는 초록이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어서 9월 21일에 방영된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제목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대뜸 시끌벅적 세 여자 가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랫동안 식당일을 하며 모은 행상 트럭 살 돈을 들고 튄 주부 형자(박해미 분), 룸살롱에서 도망나온 여진(장희진 분), 회사일을 배우기 싫어 학교를 땡땡이 친 수지(서예지 분) 세 여자가 가출과 관련된 해프닝을 연속적으로 벌인다. 도망가다 지쳐 공원에 앉아있던 형자는 아버지의 비서와 실랑이를 벌이던 수지를, 원조 교제남과의 실랑이로 오해하고 개입하고, 그 옆에서 소주를 마시던 여진 역시 나서는 바람에, 형자와 수지는 도망갈 수 있게 된다.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던 형자와 수지 앞에 여진이 등장하고, 여진을 쫓던 나이트 클럽 직원들로 인해 세 사람은 함께 쫓긴다. 엄마의 생일을 맞은 수지를 위해 두 여자는 함께 수지 엄마를 모신 납골당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하루 동안, 엄마와, 언니의 가족 관계가 탄생된다. 하지만, 의사 가족 관계는 여진의 나이트 클럽 빚을 갚고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납치 사건으로 둔갑하고, 결국, 세 사람은 백화점 옥상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신세가 된다.
공교롭게도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스페셜의 두 편, <그 여름의 끝>과 <세 여자 가출 소동>은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그 여름의 끝>에서 숨겨진 남편의 소생이라 여겼던 초록이는, 친자 검사 결과 남편의 핏줄이 아닌게 밝혀진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들의 핏줄이라며 오매불망 안타까이 여기던 시어머니는 단번에 안면을 바꿔, 아들을 사고로 이끈 '재수없는 녀석'이라며 초록이를 내쫓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그간 초록이와 정이 든 수경은 고뇌한다. 그리고 과연 지금까지 그저 첫사랑에 대한 사랑으로만 느꼈던 남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아리기 시작한다. 결국, 초록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수경의 가족이 된다.
<세 여자 가출 소동> 역시 마찬가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명의 여자가, '가출'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하나가 된다. 죽은 엄마를 생일날 찾은 수지가 안타까워, 수지 엄마와 동갑인 형자는 그녀의 엄마를 자청하고, 샘이 난 여진은 그럼 자기는 언니가 되겠다 한다. 그렇게 마음 넉넉한 두 사람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듯, 수지는 엄마의 놀음 빚을 갚기 위해 룸살롱을 전전하는 여진의 빚 1억을 갚아준다. 가끔씩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혼돈스러워 하면서도, 세 사람은 그들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똘똘 뭉쳐 해결하며, 가족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대안 가족 이야기는 막상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싱겁다. 노희경의 드라마들처럼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서로가 머리쥐어 뜯으며 싸우다 공감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대안 가족이 아니라, 너무 쉽게 서로의 정에 기대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는 '온정주의'로 모든 사건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단막극이라는 한 시간의 시간 탓으로 돌리기에도, 수경이 초록이에게 허물어지는 것도, 형자가 쉽게,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 하는 것도, 드라마로서는 그렇게 하는게 틀리지 않지만, 어쩐지 쉽다. 2014년의 드라마인데, '응답하라' 때 드라마라 해도 이물감이 없다. 과연, 21세기의 세 여자가, 혹은 가족에 대해 천착한 현실이 담겨있지 않다.
또한 각각의 해프닝을 풀어가는 방식은 실험적인 단막극을 지향하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기엔 너무 전형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여름의 끝>에서 수경과 초록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의 끝에, 가족으로 보듬기까지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전형적이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이반까지.
<세 여자 가출소동>의 행로 역시 다르지 않다. 가출 해서 우연히 조우한 세 사람, 그 중 누군가를 쫓는 사람들로 인해, 함께 쫓기다, 차츰 정이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돈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또 다른 누군가가 사심없이 해결해 주고, 마지막에, 회개한 아버지의 사죄로 인한 해피엔딩까지.
초록이가 사실은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는 <그 여름의 끝>의 반전도, 함께 가출한 세 여자가가, 납치범으로 오인받는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전에 어디선가 본듯 익숙하다.
그러기에 <드라마 스페셜>의 장점은 무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을 방영하는 것 이외에.
아마도, 그것이, 사극, 스릴러, 코미디, 기존 드라마에서 감히 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해온 실험주의 정신도 있지만, 그에 덧붙여, 그것이 어떤 장르가 되었든,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가 고뇌하는 문제를 담은 '현재성'에 방점이 찍히기에 때로는 미흡한 완성도에도 빛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 드라마들이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각종 사회 문제들, 인간간의 문제들을, 마치 가장 날선 시선을 가진 단편 소설들처럼, <드라마 스페셜>의 단막극을 통해 발언해 온 것이,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살아온 내력이다. 아름다운 동화같은 드라마들도,되돌이켜 보면, 가장 현실적인 기반에 발을 담글 때, 소통되지 않았었나 싶다. 사극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성에서 길어내어진 역사적 해석이어야 의미를 얻었다.
그런 면에서, <그 여름의 끝>이나,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어쩐지 맹숭맹숭하다. 갈등은 첨예하고, 스토리는 완결적이지만, 그뿐이다. 새롭지도 않고, 실험적이지도 않고, 그저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이야기, 전개들이다. 그러니, 배우들의 연기도, 열연이긴 한데, 어딘가 한 구석이 비어있다. 이래서야, 월요일의 부담을 접어두고, 밤 열 두시 넘어 잠을 쫓으며 <드라마 스페셜>을 보아야 할 의미가 부여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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