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12회 <호구의 사랑>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찌기 호구를 몰래 좋아해 왔던 도희(유이 분)는 하지만, 현실에서 성폭행으로 인해 미혼모가 된 처지에 '나는 도호구입니다'라며 눈물을 흘린다. 아예 이름부터 호구인 강호구의 실속없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호구의 사랑> 하지만 이제 후반을 향해 풀어지는 이야기 속에 호구를 둘러싼 남녀 등장인물들은 뜻밖에도 '호구'못지 않은 '호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법률법인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을 뒤집어 놓는 주인공은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아이 부모가 되어버린 그의 아들 인상(이준 분)과 서봄(고아성 분)의 '호구'같은 사랑이다. 



'호구'같은 하지만 그래서 용감한 엄마, 도희와 봄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호구의 사랑> 첫 회 등장한 이 장면의 주인공은 강호구(최우식 분)였다. 옛날 수동식 카메라의 셔터를 이리저리 누르다 그 프레임 안에 들어 온 첫사랑의 그녀 도도희를 발견하고, '호구'같이 굴던 강호구, 그 첫 장면은 <호구의 사랑>의 두 연인의 역학 관계를 내리 규정한다.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영을 잘 하는 건 물론, 얼굴마저 이뻐서 당대 스포츠 스타였던 도도희 앞에서 늘 고양이 앞에 쥐 같았던 호구, 그는 드라마가 12회에 도착하는 동안 그의 이름답게 각종 호구짓을 벌인다.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첫사랑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의 아이 사수작전에 동참하는가 싶더니, 이제 12회 '베이비 시터'로 취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2회 말미 늘 호구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결국 자기가 먼전 호구에게 입을 맞춰 버리고 마는 도도희의 무너진 모습 속에 드러난 그녀의 속마음을 보고있노라면 그녀의 말대로 진짜 호구는 도도희인 것 같다. 
성폭행으로 인해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를 책임지려는 어린 엄마, 강호구와, 이제 변강철에게 '민폐'이기만 하던 여주인공 도도희,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속내가 사실은 일찍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강호구를 좋아해서 지금도 그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 엄마이기 이전에 소녀로 새롭게 재인식하게 된다.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하지만 첫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감정의 혼돈을 느끼는 어린 엄마 도도희에게서 민폐녀 도도희는 없었다. 

그런데 도도희보다 더 어린 엄마가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속사정 역시 3월 17일 등장했다. 
<풍문으로 들었소> 이야기의 시작은 거대 법률법인 한송의 대표 한정호의 집안에 배가 잔뜩 부른 봄이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그 뜻하지 않은 해프닝은 내내 그 사건이 얼마나 한정호의 강고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인 척하는 위선의 성채를 뒤흔들어 놓는가에 중점을 둔 채 흘러 왔었다. 봄이와, 봄이 가족의 이야기는 늘 한정호네 사건의 리액션 정도의 양념처럼 등장했다. 

8회, 결혼 시절부터 시작된 묵은 회한으로 인한 정호-연희의 부부싸움의 불똥이 인상-봄이에게 튀었지만, 뜻밖에도 그 과정에서 봄이는 그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다는 평가로 인해 연희에게 호의를 얻는다. 거기에 뜻밖에도 과외 선생의 호의적 평가로 인해, 정호 부부의 봄이에 대한 전략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정호 부부의 자신에 대한 달라진 대우에 봄이는 비로소 이 집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그런 봄이의 눈물 뒤로 비로소 임신 사실을 안 봄이네 식구들의 반응이 등장한다. 임신 사실을 알고 당장 병원에 가자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초음파 사진을 내보이며 이제 팔, 다리가 생겨나는 이 생명을 어떻게 없앨 수가 있겠냐며 절규하는 봄이, 그런 봄이에게 분노하는 아빠. 그렇게 어렵사리 어린 엄마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생명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런 어린 엄마의 용기는 한정호 일가에게 '바퀴벌레'같은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내로라 하는 스포츠 스타로, 게다가 부모님도 안계신 홀홀단신으로 남자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래서 첫사랑조차 참아내야 하는 미혼모 도도희, 그리고 과외 한번 받지 않고서도 한정호 부부가 돈을 쳐들인 자기 아들보다 똑똑할까 잠을 못이루게 만드는 영재이면서도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정호네 집에 들어와 온갖 정신적 수모를 감내하며 아이를 지키는 봄이, 이 '호구'같은 두 엄마의 용기 덕분에 이쁜 두 새 생명이 세상으로 왔다. 



진짜 '호구'같은 잘난 그 녀석들
12회에 들어선 <호구의 사랑>, 드라마의 시작은 강호구의 호구짓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제 중반을 넘어선 이 드라마, 정작 진짜 호구는 딴 데 있다?
그 진짜 호구는 다름아닌 변강철(임승옹 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교 회장에, 전교 1등은 따논 당상이었던 그, 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다름아닌,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강호구와 함께 한 하루가 남긴 질긴 추억, 그로 인해 그는 늘 자신이 강호구를 사랑하는 게이가 아닌가 혼란을 느낀다. 
그런 변강철의 정체성 혼란은 드라마 속에서는 그의 호구짓으로 이어진다. 냉정하고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강호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는, 결국 그로 인해 도도희의 출산 해프닝에 엮이게 되고, 결국 도도희 모자를 자기 집에 들이는가 싶더니, 이제 그 집에서 강호구까지 베이비 시터로 고용하기에 이른다. 변호사이자, 멋진 아파트를 지닌 변강철의 호구짓 덕분에, 아이를 사수하려는 도도희와 강호구는 드디어 비로소 아이를 마음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호구같은 사랑>에 진짜 호구가 변강철이라면, <풍문으로 들었소>의 호구는 다름아닌 한인상이다. 봄이를 좋아하고, 그 결과물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상은 폭주한다. 아버지가 거대 법률 법인의 대표라는 것도, 자신이 지금 아직 미성년이라는 것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철옹성같은 대한민국 상위 1% 중의 1%를 유지하는 한씨 집안의 외아들임에도 기본적인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그는, '갑질'을 어떻게 할까에 골몰한 아버지 앞에 보잘 것없는 사돈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교묘하게 '갑질'을 하는 아버지에게 대놓고 대들어 아버지의 위선을 흔들어 깨우는 장본인도 다름아닌 아들인 인상이다. 게다가 속도 없다. 어머니는 혹여나 자기 자식인 그가 더 똑똑할까 노심초사하지만, 그는 그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봄이가 좋다.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며 우는 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호구의 사랑>의 변강철이나, <풍문으로 들었소>의 인상이는 시쳇말로 재수없는 아이들이다. 공부 잘 하고, 거기에 집안까지 잘 나서 부러울 것없는 대한민국의 상류층을 형성할 아이들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부러울 것 없는 아이들이, 사실은 정서적 결핍에,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호구'라고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은 '계층'을 넘어, '계급'으로 고착화되어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대한민국의 약한 고리로 등장한다. 이 약한 고리인 그들이, '사랑'을 통해 균열을 일으키면서 고착화된 사회 구조는 흔들거린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미혼모, 상위 1%이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도덕적 심성을 놓치지 않는 공부 벌레들, 따지고 보면 <호구의 사랑>이나,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리는 이 젊은이들은 상당히 '낭만적'이다. 어쩌면 어른들이 속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으면 하는 존재하지 않는 젊은이 상같기도 하다. 현실의 미혼모들은 지키기보다 포기하고, 잘난 젊은이들은 아비 세대보다 그 계급 의식에 더 철저한 '갑'으로 교육받으며 성장중일지도 모르니. 그래도 이렇게 때로는 비현실적인 중뿔난 호구들이, 박제화되어 가는 '갑을' 사회 속에서 그나마 드라마로 위안을 삼는 우리들에게 숨통을 트여준다. 

by meditator 2015. 3. 18.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