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학생 책임지라'. 1960년 4월 25일 마산 강남극장 앞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소복처럼 흰 옷을 입고, 호미와 방망이를 들고 모여든 할머니들은 3천 명에 이르렀다. 시위 도중 사망을 당하고 부상을 당한 학생들을 목격한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 할머니들의 시위는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4.19 혁명이 62년이 지났는데도. 4.19 혁명이 발발한 지 62년이 지났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4.19 이래도 수많은 피를 흘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4.19는 지난 세대의 '역사'처럼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있다면?, kbs1은 특집 다큐로 1960년 그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우리나라의 1960년대가 여성들에게는 어떤 시대였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문맹률이 28.8%였는데 그중 72.2%가 여성이었다. 딸은 초등학교도 안보내던 시대였다. 농업 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발돋음하려던 이 시대 상당수의 저연령층 미혼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력이 되었다. 1963년 15세 이상 여성 인구 중 경제 활동 참여 인구가 37%나 되었다. 여전히 '가부장제'의 완고한 틀이 지배하는 사회, 하지만 여성들은 그저 시대의 변혁 앞에 그저 뒤에 머물지 않았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들 
4.19의 도화선은 마산에서 지펴졌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던 마산 시민들, 시위 후 집에 돌아오지 않던 김주열 군이 얼굴에 최류탄이 박힌 채 떠오르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나',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 시민들 사이에 당시 마산성지여고생이었던 이영자 학생도 있었다. 

당시 학도호국단 대대장이었던 이영자 씨는 마산 시대 학도 호국단 회의에 참석한다. '시신을 봤는데도 가만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공감대 하에 대대적인 시위 참여 독려가 이루어 졌다. 학생들이 앞장 선 시위, 그중 25%가 여학생이었다. 여성이 초등학교 문턱조차 여전히 밟기 어려웠던 시절에 여학생의 참여는 대단한 것이다. 여학생들 만이 아니었다. 중년 여성들이 나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 당시 미 국무부 보고서는 '중년 여성의 비중과 참여도가 놀랍다'고 명시할 정도였다. 

마산으로 부터 시작된 부정선거 항의 시위는 점차 서울로 퍼져나갔다. 당시 고려대 법학과 1학년이던 오경자 씨, 역시나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 출신이던 오경자 경무대를 다녀온 것을 자랑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타도'에 있어 갈등은 없었다.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들어간 대학, 하지마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고 김주열 군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광장에 모여든 학생들 무리에 당연히 합류했다. '민주 역적 몰아내자.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가자 국회의사당'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4.18 고려대학교 데모의 행렬 안에 오경자 씨가 있었다. 

'하천에 물이 흐르듯 사람들이 광화문을 향해 갔다'고 당시 여고 2학년이던 이재영 씨는 회고한다. 날마다 신문을 읽으며 사회 현실에 눈을 떴다던 재영 씨는 '엄마, 저 데모하려구요. 죽어도 어쩔 수 없다'며 시위대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경무대로 향하던 사람들은 삼엄한 경비와 최류탄 공세에 막히고 만다. 전차를 밀고, 수도관을 굴려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하자 경찰은 총을 든다. 경무대 앞에서만 21명이 죽고, 172 명이 부상을 당한 아비규환의 상황, 5개 도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부산 혜화여고를 다니던 김남영 씨는 전봇대 뒤에 서있다 총을 맞았다고 한다. 발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는 당시의 소회, 복숭아 뼈가 깨지고 평범한 여고생은 평생 장애를 지니고 살게 되었다. 

피를 흘리며 사람들이 실려가고, 친구가 죽어가자 외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을지로 등 서울 한복판에서만 100 여 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중에는 중2 여학생도 있었다. 진영숙 씨, 시간이 없어 어머니를 보지 못한 채 시위에 합류했던 앳된 여학생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영숙 씨가 남긴 편지는 당시 시위에 합류한 학생들의 심정을 그대로 담았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와 싸우겠습니다. 
제가 철이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저의 목숨을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정부 수립과 함께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원조물자에 의존한 경제는 미국의 무상원조 중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와중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더구나 두 차례나 무리한 개헌을 감행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공권력과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상상을 초월하느 부정 선거를 감행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부터 3인조, 5인조로 조를 짜서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하는 부정 투표 행위 등에 투표율 97% 이승만 100%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당시 투표 참관인이던 오무선 씨의 남편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며 투표장을 뛰쳐나왔고 마산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 구속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20년전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 오무선  씨는 당시 시위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학생들의 추모제를 20여 년 째 손수 만든 음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앞장서 '부정 선거'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시위는 4월 25일 교수 시국단 회의를 기점으로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모한다. 4.19 세대만 해도 3.1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날의 '만세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 그리고 8.15 해방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한번 거기로 나선 것이다. 

'광목 자투리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광화문을 향했다. 모여든 시민들은 자석에 쇳가루에 붙듯이 탱크에 올랐다. 천지개벽하는 듯한 시민들의 함성 소리, 품었던 태극기를 꺼내들었다.' 


이재영 씨가 남긴 기록이다.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며 기록으로 남기자며 써내려간 일기이다. '우리 형님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 수송초등학교 어린이들도 합류했다. 이재영 씨는 그런 초등학생들을 앞에서 인도했다. 초등학생들, 그리고 군인들까지 합류한 시위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 하야를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바깥 일은 남자들의 일이란 의식이 우선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4.19는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 앞에 남녀가 없었고, 어른 아이가 없었던 시민 혁명이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은 '시민 의식' 앞에 남녀가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여학생들이, 중년의 여성들이, 그리고 할머니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4.19 혁명의 주역들이다. 어느덧 80줄의 할머니가 된 그녀들, 손녀에게도 조차도 할머니의 역사는 새삼스럽다. 

by meditator 2022. 4. 18. 18:30

옵니버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우리들의 블루스>, 3회로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이정은 분)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한수는 어떻게든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그런 줄로 모르고 은희는 몇 십 년만에 한수와 둘이 온 목포 여행에 설레기만 한다. 

아내와 별거를 한다며 은희에게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한수, 함께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은희의 입가에 묻은 과자를 떼어주고, 그 시절의 솜사탕을 함께 먹고, 없어진 자리에 생긴 호텔에 함께 머문다. 은희의 마음은 드라마 속 OST로 등장하는 Quando, Quando, Quando, 언제 내 사람이 될 지 말해 주세요. 제발 말해주세요, 언제일지, 언제일지, 언제일지."라는 듯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그 시간 미국을 떠난다는 아내와 딸에게, 특히 골프가 더는 재미없다는 데도 골프가 없이 니가 어떻게 사냐며 절규하듯 전화를 끊은 한수는 거울을 보며 연습한다. '은희야, 나 2억만 빌려줄래?'

 

 

은희, 첫사랑을 잃다
하지만 은희의 설레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명보를 만나 한수의 처지를 알게 된 인권과 호식이 은희에게 그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희는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별거'도 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의 증거 사진 앞에 황망하다. 안그래도 소개를 받으려 해도 다들 자기 돈만 본다며 한수에게 토로했던 은희, 오랜만에 찾아온 첫사랑 한수마저 그러니 마음이 찢어진다. 


오늘 나랑 놀고, 이제 같이 잘 거냐고 . 아님 돈을 빌려주냐고 직진하는 은희, 그런 은희 앞에 한수는 무너진다. 한수를 쿠션으로 마구 치며 은희는 울부짖는다.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중략) 이런 데 끌고 오지 말고, 잘 사는 마누라랑 별거네 이혼이네 말하는 순간 너는 나를 친구가 아닌 너한테 껄덕대는 푼수로 안거지'. 그렇게 은희는 친구도 잃고, 첫사랑도 잃었다. 

여기까지가 <우리들의 블루스>의 예상 가능한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역시 노희경 드라마인 이유는 여기부터이다. 한수와 함께 호텔에 와서 호텔 방에 누워 본 은희는 울컥한다. 몇 개의 가게와 엄청난 현금 동원력을 가진 '부자'가 될 때까지, 그동안 돈 버느라 이런 좋은 데 한번 와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나오는 거다. 그런데 이 무슨 호사인가, 몇 십년만에 돌아온 첫사랑과 함께 이 좋은 곳에. 하지만 환타지는 금세 끝났다. 

과연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아마도 대부분 그 호텔 방에서 은희처럼 한 것처럼 한바탕 퍼붓고 '똥 밟았다'하면서 두번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조식을 먹고 가겠다고 말했듯이 다음날 아침 홀로 앉아 조식을 끄적이는 은희, 생전 처음으로 온 호텔에 눈물짓던 때가 언젠가 싶게 처량맞다. 그때 호식에게 온 전화, 은희는 친구들에게 퍼붓는다. 니들이 친구냐고. 집도 절도 없다는 한수, 그런 한수에게 돈이 여유가 있으면서도 꿔주지 않은 형식이, 빌려주고 이자놀이하듯 하는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신나서 뒷담화하는 너희들', 이라며 은희는 말한다. '돈많은 나를 챙기듯, 돈없는 한수도 챙겼어야지.' 

'역지사지', 그 하룻밤 사이에 은희는 많은 생각을 한 것이다.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말하던 한수, 자신의 꿈이 가수라던 은희에게 농구가 꿈이라던 한수, 아이는 자신처럼 돈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랬다던 한수, 그리고 평생 돈을 벌어 남 좋은 일만 하던 은희에게 차마 그 소중한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말못했다던 한수의 마지막 말, 그리고 친구들이 전한 한수의 처지, 그 모든 것을 은희는 짚어본 것이다. 

제주로 돌아와 희망퇴직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떠나던 한수에게 온 문자, 은희는 한수에게 2억을 보냈다. 그 돈은 돈이 있어서 보낸 돈이 아니다. 그래도 한수를 이해하려고 애쓴 은희는 지난한 노력의 결과이다. 한수와 함께 바닷가에 간 은희는 한수에게 말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이제 은희는 잘 자라주지 못한, 자신의 꿈조차 이루지 못해, 그 꿈을 자식을 통해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바둥대는 한수를 그래도 '친구'로 접어준 것이다. 호식 등의 친구들에게 은희는 말했다. 니들은 어려울 때 나한테 돈을 잘도 꾸면서, 왜 한수는 나한테 돈 빌리면 안되냐고. 

사람의 참모습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드러나게 된다.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동창회의 주역이 된 은희, 그리고 은희 주변의 사람들, 그건 그저 은희가 돈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꼬셔 돈이라도 빌려보려던 첫사랑, 어른들 말대로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은희는 돈을 빌려준다. 첫사랑은 잃어도 친구는 잃고 싶지 않은 은희의 '휴머니즘'이다. 

 

 

그렇게 노희경 작가는 은희를 통해 사람살이를 이야기한다. 이십년도 더된 첫사랑, 그 첫사랑도 '집도 절도 없는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가장으로 바둥거리는 한수의 고단함을 은희는 헤아려준다. 그리고 힘들 때는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손을 벌리는 친구들의 자리에 앉혀준다. 그저 '밑진 장사'한 셈치고. 돈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않겠다는 은희는 큰 그림이다. 우리는 어떨까? 과연 그럼에도 '사람'을 잃지 않으려 했을까? 나의 설움, 나의 아쉬움, 그리고 나의 손해에 주판알을 튕기느라 연연하다 사람도 놓치지 않았던가. 

참 멋진 여자다. <우리들의 블루스> 3회를 본 소감이다. 그 멋진 여자를 이정은 배우만큼 멋지게 표현할 배우가 있을까. 참 멋진 여자 은희 씨는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첫 사랑을 보내고, 노래를 부른다. 멋지게 나이드는 거 쉽지 않다. 딱 그녀의 노래다. 

그날은 생일이었어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 더 어려워
(중략)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중략)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
 



by meditator 2022. 4. 17. 19:03

학교와 락음악이라 하면 이제는 고전이 된 <스쿨 오브 락>이 떠오른다. 우연히 음악 교사가 된 로커 듀이 핀(잭 블랙 분), 자신이 혹한 그룹에서 쫓겨나 학교 대리 교사인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지만, 고답적인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들과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함께 성장하는 영화이다. 학교로 간 락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신선했던 영화, 이제 또 한 편의 락 영화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락을 하는 선생님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락을 선택한 아이들 케빈과 헌터, 그리고 에밀리의 이야기다. 

왕따,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 학생의 선택 
헌터(에드리언 그린스미스 분)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매냥 헌터가 비아냥대듯이 여성들의 가슴에 '식염수 주머니'를 넣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어릴 적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 후  떠나고 그 엄마 얼굴이 가족 사진에서 잘려 나간 이후 늘 일과 연애로 바쁜 아버지, 헌터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구원을 '락'에서 찾았다. 지하의 그의 방 곳곳을 메운 메탈리카 등 메탈 락 밴드의 사진들(실제 메탈리카 멤버들이 결정적인 장면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긴 머리, 가죽바지, 그에게 메탈은 '구원'이자, 삶의 열쇠이다. 하지만 그 거친 복장에도 불구하고, 학교 주먹 좀 쓰는 애들한테 맥없이 나자빠지고 마는 헌터의 모습처럼 그 '구원의 열쇠'는 어쩐지 '찌질'한 헌터의 어색한 포장지같다. 

또 한 명 <그것>의 제이든 마텔이 분한 케빈은 헌터의 유일한 친구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계기가 헌터처럼 케빈이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걸 헌터가 구해줘서이다. 체육 수업을 받는 대신에 고적대를 택했듯이 케빈은 학교 생활의 주변을 조용히 맴돈다. 그런데 고적대 작은 북이나 겨우 치는 케빈에게 락에 심취한 헌터가 드러머의 길을 종용한다. 헌터가 만든 '고문 기계'라는 곡, 하지만 그걸 치기 위한 장비도, 능력도 케빈에게는 없다. 

그런 케빈의 눈에 들어온 한 소녀가 있다. 같은 고적대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에밀리(아이시스 헤이스워스 분)다. 감정 조절 장애가 있는 에밀리는 약을 끊는 바람에 혼자 다른 음악을 하듯 부는 클라리넷을 지적하는 선생님께 욕을 하며 대들고 만다. 근데 그런 에밀리가 어쩐지 케빈은 맘에 든다. 더구나 에밀리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을 본 케빈은 그녀가 헌터와 함께 하는 메탈 밴드의 '베이스' 파트를 맡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청소년 영화'라고 해도 '청소년 관람 불가'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메탈 로드>도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막상 영화는 '순한 맛'이다. 상대 밴드의 드러머의 상습 약물 복용, 폭력, 베드씬 등 적나라한 내용들이 들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머리를 밀고 검고 하얀 색으로 칠을 해도 무시무시하게 '메탈릭'해 보이기 보다 어쩐지 애잔하고 심지어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그런 장치들이 세 주인공들의 우정과 애정의 삼각 관계 속에서 적당하게 양념처럼 뿌려진다. 

아마도 <메탈 로드>의 가장 큰 미덕은 왕따이거나,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를 겪는 청소년들이 '메탈'이란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애쓰는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카드는 허용해도, 아들을 위해 시간과 맘을 허락해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카드로 '메탈' 장비를 사서 학교의 '배틀 오브 밴드'에 출전하고자 한다. 사실 '메탈 밴드'를 표방하지만 헌터의 겉멋과 어설픈 케빈의 연주가 버무려진 상황이었을 뿐인데, 그래도 두 사람은 열심히 준비해 간다. 무엇보다 겨우 작은 북 리듬 정도를 연주하던 케빈이 헌터가 준 음악을 들으며 메탈릭한 연주자로 거듭나는 부분이 흥미롭다.

청소년 영화답게 이들의 밴드 출전은 험란하다. 물론 그 험란함은 충분히 해피엔딩을 예상할 정도의 험란함이다. 둘도 없는 친구 헌터와 케빈은 케빈의 여자 친구가 된 에밀리와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늘 카드만 쥐어줄 뿐 무관심했던 아빠는 헌터의 폭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처방을 내린다. 물론 '영어'의 몸이 된 헌터를 케빈이 구하며 두 사람은 결국 애초에 목적한 대로 '베틀 오브 밴드' 경연에 나서게 된다. 


 

어설프기만 했던 두 찌질한 소년이 '메탈' 정신을 표방하며 좌충우돌한 끝에 선 경연장, 거기에 에밀리가 합류한다. 예의 '메탈' 정신을 늘 운운하던 헌터의 연주와, 앳된 미소년에서 제법 거친 드러머가 된 케빈의 성장도 볼만 하지만, 소심과 폭주를 오가며 자신없어 하던 에밀리가 케빈의 응원에 힘입어 약대신, 메탈릭한 첼로 연주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은 통쾌하다. 청소년의 불안정한 감정을 그저 '약'으로만 다스리려는 오늘날의 세상에 한 방을 먹이는 듯한 설정은 주목할 만한 장면으로 남는다. 

'순한 맛'이라고 했던 것처럼 <메탈 로드>는 예측 가능한 설정과 스토리의 영화이다. 마치 예전에 주말마다 하던 디즈니랜드 아동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이유는 그저 잡풀처럼 밟힐 것 같은 아이들이 그 누구의 도움없이 밟혀도 다시 일어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우정과 사랑을 일궈가며 영화의 제목처럼 자기 삶의 'Lords'가 되어가는 과정은 '순한 맛'이지만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든다. 게다가 <스쿨 오브 락>의 한 주인공이 음악이었던 것처럼 클래식에서 부터 메탈에 이르기까지 음악들은 빠질 수 없는 듣고 볼 거리이다. 


by meditator 2022. 4. 17. 13:12

2014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염전 노예 사건', 그 후로 8년이 지났다. <시사 직격> 다큐 제작진이 당시 '염전 노예' 당사자였던 57살의 백성종 씨를 만났다. 그런데 백씨는 태연하게 당시 소금을 날랐던 일을 재연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드러난 건 백씨 자신이 당시 자신이 당한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국민 분노할 정도의 일을 당한 당사자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바로 백성종 씨가 '경계성 지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4월 15일 방영된 kbs1 <시사 직격>은 우리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성 지능인들에 대해 다룬다. 

 

 

피해자임을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아이 
2년 전 갓 중학교에 입학한 우희(가명)가 세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우희가 자신이 당한 상황에 대한 진술이 정확치 않고 피해자답지 않다며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을까? 

사건 속 CCTV에서 우희는 가해자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고도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만난다. 그렇다면 정말 우희는 '자발적'이었을까? 그런데 재수사 과정에서 심리 검사를 하게 되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우희는 이른바 IQ 70~85 사이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였다. 언어 이해와 작업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처리 속도가 평균 이하라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 대처 능력이 떨어지니 당연히 자신이 당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니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도 웃는다던가, 먼저 연락한다던다 하는 등 일반적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교육 과정에서 '지능 검사'를 더 이상 진행하기 않기에 우희의 아버지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경계선 지능'은 1995년에서야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개념이다. 그런데 전체 인구 중 약 14%나 차치한다고 한다. 7명 중 한 명인 셈이다. 즉 한 교실에 적어도 3명의 아이들이 이런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이다. 

방과후 지역 아동 센터에 다니는 재훈이, 4학년인데도 리본을 묶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오른쪽과 왼쪽의 방향 감각도 헷갈린다. 웩스터 아동용 지능 검사 기준에 따르면 학습 부진을 겪는 '보더 라인'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집에 온 재훈이는 여동생의 기저귀를 척척 갈아주는 등  맞벌이 부모님을 도와주는 든든한 아들이 된다. 그러기에 아빠는 자신의 아들이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일상의 반복되는 일은 해낼 수 있지만, 공교육의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는 없는, 말 그대로 '경계'에 서있는 아이들. 아직 우리 교육 과정과 복지 정책 그 어느 곳에서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그래서 더 위태롭다고 다큐는 말한다. 

 

 

초등 4학년, 2학년 두 남매가 모두 경계선 지능을 가진 엄마 연수씨의 일상은 아이들의 학원으로 가득차 있다. 한 달 교육비만 200만원이 넘는다. 숫자 개념만 익히는데 3년이 걸렸다. 연수 씨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학습 부진은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고,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등 사회성 저하를 뒤따르게 하니 할 수 있는 한 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아이들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려 애쓸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역부족인 한계가 있다. ;'느린 학습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이재경 박사는 말한다. 일반적인 아이들이 1+1을 가르쳐 주면 '맥락적' 파악을 통해 2+2를 아는 것과 달리,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그걸 다 따로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교육 과정에서 이런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결국 엄마들이 나섰다. 오산의 '느린 학습자'를 둔 엄마들의 모임, '동치미'는 학부모들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 중심에 11살 영호의 엄마 민정숙 씨가 있다. 7살에 '경계성 지능' 진단을 받은 영호는 어린이 집만 20곳에서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아이를 태우고 언어치료를 받고 가던 중 이대로 바다로 직진하면 모든 게 끝날 텐데 하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두 남매의 엄마 연수씨 역시 빛이 없는 터널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하지만 정숙 씨 부부는 포기하는 대신 적절한 자극을 꾸준히 주면 인지 기능에 느리지만 유의미한 성취를 보이는 '느린 학습자'인 아이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하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느린 학습자'인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케어'는 오롯이 부모들의 몫이다. 하지만 한 달에 100 만원이 넘는 비용은 쉽지 않다. 실제 자신의 아이가 경계성 지능을 가졌다는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알아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일반 아이들의 10배나 되는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 하지만 장애 판단이 내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교육 방법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지지만 부모가 발버둥치는 것에 비해 성취는 느리고, 사회의 도움도 없으니 사회 부적응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복지시설에 머무는 26살의 이은호(가명) 씨는 25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어떤 도움도 요청할 줄을 몰랐다.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친구는 이은호 씨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현재 은호시가 짊어진 빚만 4천 만원이다. 아직도 친구 핸드폰 요금을 대신 내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폭력에 시달린 은호 씨, 그런 은호 씨에게 친구들은 3만원을 빌리고, 젤리 한 통으로 때우는 식으로 이용을 했다. 그런 은호 씨인데도 '군대'를 다녀왔을 정도로 사회는 자비가 없다. 

은호 씨는 검사 결과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렇듯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제대로 인지적 훈련을 받지 않거나, 가정에서 방임, 학대 당하거나 학폭을 당하며 점점 그 '인지적 기능'이 떨어져 간다. 또한 지역내 골칫덩어리였다가 결국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김태준(가명 분) 씨처럼 사회적 부적응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정신병인가' 했다는 태준 씨의 아버지 이해하기 어려운 아들을 늘 '그것도 못하냐'며 때렸다고 한다. 모두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태준 씨는 그 '방어기제'를 분노로 표출했다. 실제 오랫동안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인해 고심해 왔던 일본의 학자들은 상당수의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이나 '은둔형 외톨이'들의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실제 소년원생의 34%가, 그리고 보호 소년의 37%가 경계성 지능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경계성 지능 장애'의 경우 말 그대로 '경계'의 존재이기에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후 대안 학교에서 배움을 마친 최원재씨는 2014년 장애 인권 대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는 등 자립에 성공한 케이스다. 무엇보다 가족의 지지가 전폭적이었다. 원재 씨는 말한다. 조금 다른 사람들일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100의 속도로 갈 때 40~50의 속도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지능의 경계가 삶의 경계가 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by meditator 2022. 4. 16. 12:38

나이들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이 말에 대해 '과학 기술'이 답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보톡스'를 맞고, '지방'을 주입하는 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다양한 '시술'로 젊어보일 수는 있지만, 아니 극강의 시술이 아니고서는 '나이'도 사실 어디 안간다. 무엇보다 살아온 시간은 그대로 내 얼굴의 인상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들의 블루스> 한수(차승원 분)과 은희(이정은 분)의 이야기이다. 

한수와 은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 시절 한수는 드라마 속 장면처럼 순정만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그랬다. 훤칠한 키에 공부도 잘하고, 그런 한수에 비해, 은희는 한수에게 '키스'를 해도 그냥 귀여운 그런 존재감의 아이였다. 

'가끔 가난이 싫어서 울컥하긴 했어도 그때 난 니들하고 놀 때는 웃기도 했어. 지금처럼 퍽퍽한 모습은 아니었어.'


은희와 함께 바다로 간 한수가 혼잣말하듯 한 이야기다. 훤칠한 미소년이던 한수는 공부도 잘해 서울대학교에 갔다. 술주정뱅이인 아버지가 어려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농사를 지어 가족을 건사하던 집안, 개천의 용이 된 그를 위해 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밥벌이 전선에 나섰다. 개천의 용이 되어 '승천'한 줄 알았는데 '퍽퍽한 삶'이라니. 

 

 

다시 만난 한수와 은희 
그런 그가 사십 대 후반이 되어 고향 제주의 은행 지점장이 되어 돌아왔다. 친구들에게는 '한수가 동창회에 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할 정도로 자기들이랑은 '급이 다른', 금의환양'한 존재이지만, 사실 그는 때려치고픈 자존심을 삼키며 돌아온 것이다.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대학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 그 딸이 골프 선수가 되었고,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골프 신동'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릴 줄 알았는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도무지 성적은 올라갈 기미를 안보이고, 그 뒷바라지에 월급쟁이인 한수의 등골이 휜다. 이제 제주까지 내려온 한수, 아내와 딸은 돈이 없어 더는 골프를 못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한수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아빠가 어떻게든 돈을 구해보겠다고. 하지만 퇴직금까지 이미 빼서 쓰고, 살던 집까지 판 한수에게 돈 나올 구멍이 없다. 말이 은행 지점장이지, 여기저기 빚이 연걸리듯 한 그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반면,  은희는 동창회를 주름잡지만, 사실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목포로 간 수학 여행, 그 여행으로 은희의 학창 시절이 끝났다. 밭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엄마 대신, 사남 일녀의 장녀인 은희는 '가장'이 되었다. 

결혼을 앞둔 동생이 40평대 아파트 사진을 보내자,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이 날이 되도록 생선 비늘 긁고, 생선 대가리 치면서 모은 그 돈이 니 돈같냐고 퍼붓는다. 졸지에 가장이 되어 고등학교  '생선' 장수를 한 아가씨 은희는 말 그대로 '자수성가'를 했다. 한수가 은행지점장으로 왔다고 하자 실적을 올리라 9000 만원을 대번에 옮겨줄 만큼의 VIP가 되었다. 생선 가게도 세 군데나 되고, 건물도 올렸다. 새벽 경매 시장에서 7000만원 어치를 산 게 많이 산 게 아니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가 되었다. 

 

 

나이듦의 얼굴 
한수는 그런 은희가 새삼 달리 보인다. 그저 은희가 돈이 많아서 였을까? 드라마 속 한수와 은희는 그간 주연만 맡아온 차승원과 그런 주연의 곁에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맡아온 이정은의 존재감처럼 묘한 앙상블을 빚는다. 그런데 여전히 훤칠한 한수지만 어쩐지 그의 어깨는 자꾸만 수그러든다. 그 시절에도 한수 어깨도 닿지 않던 조그마한 은희는 여전히 한수 어깨도 안차지만 어쩐지 그 품이 제주 바다를 품어낼 듯하다. 

은희는 그 시절 첫사랑이던 한수가, 이제 은행 지점장이 되어 돌아온 모습에 말한다. '잘 나이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첫사랑의 '환타지'를 품고 사는 자신의 추억을 깨뜨리지 않은 채 여전히 잘 살아 주어서 고맙다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한수의 표정은 세상 처량맞다. 그렇기도 한 게 '가장'이라는 무게에 휘청거리느라 이제 은희에게 본심인지, '사기'인지 모를 접근을 하고 있는 처지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우리들의 블루스>로 돌아온 노희경 작가는 '옵니버스식'의 드라마 속 한 축인 한수와 은희 커플을 그렇게 등장시킨다. 누구도 가난했던 그 시절을 지내며 서로가 살아온 궤적이 달리한 두 사람을 사십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다시 마주서게 만든다. 

드라마는 두 사람의 가난해도 꽃같은 청춘 시절과 현재을 오가며, 중년 두 사람을 비춘다. '잘 나이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한 건 은희이지만, 그 말을 들은 한수가 더욱 처량맞아 보이듯, 시청자들 눈에는 외려 그 말을 한 은희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저 나이들면 '돈'이 '장땡'이라고, 은희가 벌어들인 돈과, 그녀의 건물 때문일까? 무엇이 두 사람의 삶을 달리 만들었을까? 

그리 가능성있어 보이지 않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수, 포기하겠다는 딸에게 여전히 '아빠'만 믿으라는 말을 연발하는 한수를 보며 그의 지나온 삶은 어디에 '자신을 매어두고 살았는가'를 헤아려 보게 된다. 그를 짖누르는 '가장'의 무게는 정말 아내와 딸이 짊어지게 만든 것일까? 한수에게 체념하듯 말하지만 이번 생은 그저 생선 대가지 자르고 비늘 긁으며 타인을 위해 '보시'해야 하는 삶인가 보다는 은희의 말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를 견딘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그리고 그 이전부터도 오래도록 우리의 '쉼터'였던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돌아온 노희경 작가가 흔한 주말 드라마의 중년 커플처럼 한수와 은희를 내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책임질 나이란 말은 자신의 삶이 그대로 자신이 되어가는 나이란 말이 아닐까. 자신의 삶이 자신으로 드러나는 중년의 두 사람을 통해 내 얼굴에 드러난 나의 삶을 돌아보라는 질문이 아닐지.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울릴지 <우리들의 블루스>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22. 4. 14. 21:45

선거가 끝나고 난 후 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인들이 많다. 누군가는 앞날의 사태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고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접게 되었다고도 했다. 냉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는 이도 있고, 서둘러 다시 신발끈을 묶는 이도 있다. 답답한 시절이라 느끼는 사람들,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이런 때 EBS 다큐 프라임은 4월 11일부터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 중 몇 편을 다시 방영하고 있다. 아마도 암담하다 느끼는 이들에게 '등불'을 켜주고픈 시도가 아닐까 싶다. 삶이 고단할 때 그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선인들로 부터 다시 찾아보자는 권유일 것이다.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 홍콩 중문대 류사오 간 교수, 펜실베이나 대 빅터 메이어 교수, 하와이 대 로저 에임스 교수 등 동양 고전의 대가들이 해석을 더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는데 무덤 앞에서 슬피우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을 다 잡아먹었다며 슬피우는 여성, 그러면 호랑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살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여성은 답한다. 가혹하고 악독한 정치가 없기에 이곳에 살았노라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잘들 기억하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공자와 맹자, '공감'의 정치 
BC 771년 주나라 요왕이 죽임을 당하며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약자의 삶이 짓밟히는 시대, 하지만 절망적이기에 절실하게 희망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공자', '장자' 등 동양 고전의 진수를 만든 '제자백가'들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인가요?' 공자는 군사를 키워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며, 신뢰를 얻는 것이라 답한다. 자공이 그 중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답한다. 군사를 포기하고, 그도 안되면 경제를 포기할 수도 있지만, 백성들의 신뢰는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너도 나도 군사력과 경제를 앞세우지만 정작 나라의 근간은 백성의 신뢰, 전문가는 이를 '소통'과 '공감'이라 해석한다. 

 

 

그렇다면 그 '소통'과 '공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한때는 공을 세우는 장군이었지만 모함을 당해 두 다리가 잘린 이,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 공자는 이런 '가족 관계' 속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타인에 대한 존중'의 출발선으로 본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하고 공을 세우기 위해 자식을 죽여 끓인 국을 들이킨 위의 장수 '악양'을 '지 지삭의 고기를 먹으면 누군들 못먹겠냐'며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사례로 든다. 하지만 '가족'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런 가족으로 부터 비롯된 도덕적 윤리를 이웃, 나아가 인간 전체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제자 자공이 또 묻는다. 평생동안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까?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 )라고 공자는 답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현대의 '공감 의식'이라 해석한다.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견주어 볼 수 있는 마음, 이기심을 넘어서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도덕전 존재로서의 '인간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자의 '도덕적 인간관'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 우리에게도 익숙한 맹자의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학자들은 이를 일종의 '사고 실험'이라 본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거나, 칭찬을 받으려는 것을 넘어선 직접적 감정으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공자의 서(恕; 용서할 서, 인자할 서, 동정할 서 )로 통한다. 즉 인류애이자, 연대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런 '측은지심'이 백성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되어 '어진 정치(仁政)'을 펼치는 것이 '정치'의 길이라 다큐는 새삼 확인한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공자와 맹자가 '정치'의 기본을 찾아갔다면, 장자에게서는 '난세'를 살아내는 지혜를 구한다.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럴 때 사람들은 무엇을 지킬까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버릴까'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장자는 말한다. 

중국 월나라의 계승자 수의 예를 든 장자, 그는 '왕의 자리'를 박차고 도망친다. 이미 선왕 3 명이 횡사를 당한 상황,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권력 대신, 살아남아 자유로워지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 것이다. 즉, '물질적 이득'에 '생명'이 앞선 것이다. 또한 이는 '정치 권력'에 '자유'가 우선한다는 의미도 된다고 학자들은 해석을 더한다. 

그래서일까? 초나라 유왕이 낚시질을 하는 장자를 찾아 재상으로 초빙을 했지만 '비단 옷을 입히고 좋은 대우를 받지만 결국 제물로 바쳐지는 소'의 예를 들어 거절한다. 제물로 바쳐질 때야 돼지가 되고 싶다 울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삶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장자는 세상을 '국가와 사회라는 촘촘한 그물'로 보고 그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즉 장자에게 있어 생명의 본질은 자유였다. 그런 그였기에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기 보다 생명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아내를 위해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 사람 살이가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사람 사는 세상에 어우러져 살면서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장자는 장자- 새 - 사마귀 - 매미로 이루어지는 '사슬'을 예로 든다. 날지 않는 새를 잡으려 다가선 장자,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새는 눈 앞의 사마귀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그 앞의 사마귀는 매미를 잡으려 하고 있었단다. 정작 그런 장자조차 새를 잡으려 남의 울 안에 들어갔으니(당랑박철 螳螂搏蟬). 이 처럼 자기 잇속만 차리다 보면 남이 자신을 노리는 지 조차 모르다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특정 방향만 따라 가는 것, 혹은 물질적 성공에 눈이 머는 거 모두가 자기 재주만 믿고 날뛰는 원숭이와 다르지 않다고 장자는 말한다. 쓸모없는 나무가 정작 재목이 되어 잘리는 운명을 피하듯 사회적 열망에서 '자유'로워져 지금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無用之大用 ) 장자는 자신의 발자국과 그림자가 싫어 도망을 치다 결국은 쓰러지고 마는 인간의 예를 더한다. 그저 지금 여기 나무 아래에 누워 쉬면 될 것이라며. 즉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함, 결국 장자의 도가 이르는 길이다. 

처음 무엇을 지킬까, 무엇을 버릴까에서 파도와 풍랑은 내가 어쩔 수 없듯이 난세의 흐름 역시 '나의 의지'를 넘어선 것이라 말한다. 그럴 때 그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 버릴 것은 버려 몸을 가벼이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자는 말한다. 또한 그런 '버림'에는 '고착화된 사고'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식을 죽여 바치는 시절, 춘추전국 시대 그 난세에 동양 사상의 두 본류인 '공감의 정치'와 '자유의 사상'이 탄생되었다. 과연 2022년 우리는 이 시절을 무엇에 기대어 건널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2. 4. 13. 20:28

삼포도 아니고 '산포'다. 노른자 위 서울을 둘러싼 흰자 같은 경기도, 그 중에서도 전철을 타고, 다시 또 마을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는 곳에 사는 삼남매가 있다. 염제호 씨댁 기정(이엘 분), 창희(이민기 분), 미정(김지원 분)이다. 

경기도에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 역시 경기도민으로 서울 웬만한 곳에서 약속을 잡으면 넉넉하게 2시간을 잡고 움직인다.  한 시간 정도면 괜찮은 거리다. 이런 이야기를 서울 시민인 친구들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30분이 넘으면 멀다고 생각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내게도 마을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삼남매가 애잔하다. 웬만하면 '독립'한다고 할 만도 하건만 꿋꿋이 셋은 택시를 타고서라도 집으로 간다. 

집에 갈 택시 잡을 궁리를 하다 여자 친구에게 '촌스럽다'는 타박을 당하고 헤어지게 된 창희는 어렵사리 아버지 앞에서 자동차를 사겠다는 말을 꺼낸다. 몇 년 전에도 차를 사서 그 할부를 못갚는 바람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처지, 전기차라서 비용이 거의 안든다느니, 집에 오는 택시비가 더 든다느니, 이리저리 구색을 맞춰보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아버지의 손 앞에 불가항력이다. 

 

 

흰자위같은 동네
4년 만에 돌아온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에서는 서울 변두리 동네를 배경으로 삼형제의 이야기를 풀어내더니, 이제는 그 보다 조금 더 떨어진 경기도 한 동네로 시선을 옮긴다. 우러러 볼 만한 경력도, 부러워 할 만한 능력도 없이 그저 순리대로 살던 아저씨들은 이제 2030 세대의 '갑남을녀'들이 '프레임'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저씨들이든 2030세대이든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기정, 창희, 미정 역시 부대끼는 지하철에서 만나는 평범할 대로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모처럼 찾아온 동네 친구에게 창희는 말한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으면 너랑 친구 안했을 거라고. 그 말인즉, 서울에서 살았으면 친구는 '선택'의 대상이 되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친구'는 가족처럼 날 때부터 그냥 주어지는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런 면에서 동네 운동장에서 술을 먹는 건지, 축구를 하는 건지 모르겠던 <나의 아저씨>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사람 냄새나는 곳, 하지만 그래서 '촌스러운' 곳, 그곳이 이들의 '터전'이자, '아킬레스 건'이다. 그렇게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에 이어 또 다시 '장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사연에 앞서 그들이 처한 공간의 정서 속에 물씬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계란 흰자같은 경기도민의 한계에 대해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는 창의 곁에서 미정이 반문한다. 서울에서 살았으면 달랐을까? 그럼, 서울에서 살면 달랐지라고 강하게 답하는 창희에게 미정은 말을 잇지 않는다. 그리고 혼잣말을 더한다. 서울에서 살아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사는 것도 흰자위
노는 날에도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가 머리를 볶고 들어와 맘에 안든다고 감았다, 그걸 다시 드라이로 풀어내느라 난리를 치는 큰 딸, 그 딸을 보고 엄마는 속터져하며 말한다. 지랄도 팔자라고. 지 성질머리가 지 팔자를 들볶는다고. 하지만 새벽부터 해질 녁까지 싸구려 싱크대에 밭일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 염씨 앞에 오며 가며 시간을 다 보내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창희의 말처럼 지랄 맞아 보이지만 술 마시다가도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는 삼남매의 고분고분한 일상은 머리라도 볶아야 숨통이 트일 것처럼 보인다.

미정이 생각은 안하냐는 엄마의 지청구 앞에 기정은 미정이는 젊잖아?란다. 젊다고 다를까? 카드 회사 계약직 직원인 미정은 어디서나 그림자같다. 오빠가 전기차를 사겠다고 아버지 앞에 야심차게 들이대다 맞을 뻔하는 해프닝을 벌이는 옆에서도 미정이는 꾸역꾸역 밥을 입에 넣는다.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 역시도 출퇴근 시간에 쫓겨 그 흔한 회식 한번 못하고, 그 덕일까 '이쁘지만 매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간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미정과 같은 이들을 회사의 '행복 지원센터'가 부른다. 볼링 동호회라도 들라는데, 함께 불려간 박상님 부장은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냥 이런 사람들도 있는 건데 그냥 이렇게 살게 놔두면 안되는 거냐고. 하지만 그냥 그런 걸까? 

팀장에게 넘긴 보고서가 빨간펜 선생님이 매긴 답안지처럼 빨간 줄이 정신없이 그어진 날, 그런 자신을 두고 팀원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회식 자리로 떠나가는 것을 보며 미정은 답답한 마음에 '가상의 당신'을 찾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선뜻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힘든 미정만의 '해방'이다. 가상의 그가 과연 미정을 해방으로 인도할까?

그런데 염씨네 삼남매만 답답한 게 아니다. 전기차라도 사겠다고 그래야 뽀뽀라도 하지 않겠냐고 궁여지책으로 말을 건네보는 창희의 처지도 이해가 되지만 그런 창희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려는 아버지 염제호의 삶도 녹녹치 않아 보인다. 흰자위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흰자위같은 삶은 세대 불문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공감은 멀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사는 게 참 답답해 보이는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옴짝달싹하기 힘들게 옭죄어 오는 삶, 일도, 연애도, 아니 사는 것이 통털어 무엇 하나 그리 뽀족하게 '씨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는 기정, 창희, 미정 삼남매를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말한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로 젊은 세대에서부터 중년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위로와 힐링을 주었던 박해영 작가, 과연 이 답답한 삼남매의 '해방 일지'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비빌 언덕이 되어줄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2. 4. 10. 17:33

우리 '액션' 영화의 오래된 갈증이 무엇이었을까? 나현 감독의 <야차>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4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이 영화는 사천왕을 모시는 8명의 신 중 하나인 '야차'를 제목으로 내세운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지만 '부처님을 수호'하게 되는 야차가 가지는 양면성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강인(설경구 분)와 '블랙팀'을 통해 한껏 구현해 낸다.

4년 전 홍콩의 뒷골목, 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지프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그 차를 들이받는다. 한바퀴를 돌아 나뒹구는 차, 보통 액션 장면에서의 호흡보다 한 번 더 나아가며 이 영화의 정체성을 각인한다. 그리고 들이받는 지프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지강인, 거래를 하려했던 인물은 동료들을 배신한 지강인과 한 팀이었던 인물이다. 그에게 총을 들이댄 지강인은 배후를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잠시 뒤 하늘을 울리는 총소리, 배신자에게는 '자비'없는 처단만이! 이렇게 '야차같은' 장르의 이름표를 내보이며 영화는 시작된다. 

 

 

선양을 배경으로 한 무한액션 
'한국' 사회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물론 그럼에도 요즘 장르물을 중심으로 '총기'의 등장이 빈번해지고는 있다. 하지만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액션 장르에서 황야의 결투처럼 총기를 들고 끝장을 보는 서사에 대한 갈증, 그 갈증을 풀어내기 위해 <야차>는  '선양'이라는 지역적 장치를 선택했다. 

선양, 한때 만주족의 수도였던 도시,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가장 큰 공업 도시가 된 이곳을 영화는 동북아 각 나라 스파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로 설정한다.  번성한 도시답게 밤에 더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하지만 조금만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잘해줄게'를 연발하며 데려가 신장, 간, 쓸개 등을 해체해 버리는 '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이다. 또한 마약 등의 사건에 현장범은 그곳에서 '사살'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대낮에 북한로동당에서 외화벌이를 총괄하던 문병욱이란 인물을 두고 북한 스파이들과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에 지강인을 팀장으로 한 국정원도 연루되어 있다. 애초에 블랙 팀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문병욱, 하지만 그 사건으로 문병욱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강인은 그를 되찾기 위해 D7라 불리는 일본인 스파이 오자와(이케우치 히로유키 분)의 아지트를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문병욱이라는 인물 찾기라는 사건을 씨줄로 선양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살벌한 쟁투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걸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를 묻다 
정의에 대한 질문, 그 시작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강직한 검사 한동훈이 등장한다.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공정은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한동훈 검사는 재벌 총수를 구속시키려 하지만 절차 상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 물러선다. 수사관들이 무단으로 총수의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된 밥에 스스로 코를 빠뜨리는 고지식함, 이렇게 영화는 한동훈이 내세운 원칙적인 정의의 한계를 먼저 내보인다. 

한동훈은 좌천되고 다시 돌아가 수사를 마무리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스스로 선양이라는 도시로를 택하게 만든다. 그저 선양 국정원 팀의 불투명한 보고를 감찰하면 된다는 명목이었는데 도착한 그를 맞이한 건 블랙 팀의 총격전이다. 

영화는 날 것의 액션씬에 더해, 지강인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의와 한동훈의 원칙적 정의를 대비시키며 서사적 흥미를 자아낸다.  적에 대해 가차없는 작전, 거기에 더해 배신자에 대해서도 추호의 용서도 없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문의 여성에게 고문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이 사사건건 한동훈으로 하여금 반발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첫 장면, 지강인이 같은 팀원이었던 인물을 '처단'하게 만들었던 '두더지'라는 암약하는 이중 스파이의 존재가 그 갈등의 고뇌를 깊게 만든다.

물과 불처럼 결코 섞일 수 없을 것같은 지강인과 한동훈, 그리고 블랙팀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한동훈에 대해 반발하는 블랙팀원들과의 신념과 인간적인 갈등을 영화는 주된 관전 포인트로 삼는다. <오징어 게임>에서 멀쩡한 대기업 직원에서 결국 자신의 승리를 위해 '협잡꾼'이 되어버린 상우였던 박해수가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고지식하고 원칙적이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지식해서 종종 웃픈 상황을 자아내는, 하지만 그래서 지강인이란 인물과 '버디(BUDDY)'가 되어가는 캐릭터를 맡아 극중 주된 재미를 이끌어 낸다.

 

 

<야차>는 어떤 면에서는 '정의를 이루어 내는 모든 방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며 절차적 정의에 천착했던 , 순수했던 인물 한동훈이 '선양'이라는 공간에서 '정의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는 블랙팀의 작전을 통해 스스로 '정의'에 대해 물으며 변화해 가는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 성장의 결과물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통쾌하게 선사된다. 

물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동훈의 맞은 편에 배신을 하는 이는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 밑바당에 팀원들이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의리'를 장착한 지강인이란 중심이 우뚝 서있어야 한다. 설경구란 배우가 오래도록 우리 영화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기점으로 다른 질감과 색채를 가진 배우로 새롭게 다가왔다. <야차>에서 설경구는 <불한당>이래 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질감의 연기, 그 연장선상에서 '니 껍데기를 벗겨줄게'란 대사에 전혀 이물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야차'같은 캐릭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낸다. 

제작진이 해보고 싶었다는 총성이 마구 울리며, 거침없이 상대방의 머리를 겨누는 선양이라는 스파이들이 번성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한 액션, 거기에 '정의'의 방식을 둘러싼 주연들의 갈등과 화해라는 서사적 재미를 통해 <야차>는 흥미로운 장르물이 된다. 물론, 눈밝은 관객이라면 예측 가능한 악역들, 굳이 <야차>만이 아니라 액션 장르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보여주기 식 선악의 대결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도시에서 한동훈을 소환하는 지강인의 호출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4. 9. 14:10

거울이 깨지고, 건물이 우그러진다. 세상의 위 아래가 바뀐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같다. 그런데 노은비라는 인물의 기억 속이다. 주마등 위기 관리팀의 주련(김희선 분)과 최준웅(로운 분)이 뛰어든 곳이다. 주마등 위기 관리팀은 왜 노은비의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바로 그녀의 우울지수가 극에 달해 '자살' 위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과연 위기 관리팀은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mbc의 금토 드라마 <내일>은 흥미로운 설정의 드라마이다. 때로는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때로는 기세 등등한 여왕의 모습으로 시시때때로 그 모습이 바뀌는 옥황(김혜숙 분)은 저승 독점 기업 주마등의 회장이다. 그녀가 이끄는 '주마등'은 '저승사자' 들이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곳이다.

자살자를 구하는 저승사자들
그런데 옥황이 이번에 새로운 부서를 하나 만들었다. 이른바 '위기 관리팀', 그런데 이 위기 관리팀에 대한 기존 저승 사자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오면 될 것을 굳이 스스로 죽으려는 자들을 '저승사자'들이 나서서 구해주기 때문이다. 옥황이 '위기 관리팀'을 만든 취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이 너무 많아 '지옥'이 붐비고,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그뿐일까? 

자살자의 죽음을 막지 못해 위기에 봉착한 '위기 관리팀', 주마등의 앱에 붉은 색 경고음이 울린다.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은 방송 작가로 일하는 노은비, 그녀에게로  팀장 구련과 '코마' 상태로 반인반혼의 존재 최준웅이 달려간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우울이 극에 달한 노은비, 위기 관리팀은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인셉션>처럼 그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위기 관리팀이 찾아간 그녀의 기억 속, 그곳엔 학폭 피해자 노은비가 있었다. 

노은비는 앞 자리 친구와 함께 재미난 일을 이야기 하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김혜원과 그 친구들은 노은비를 학교 건물 뒤로 불러내 마구 때린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부터 김혜원이 볼펜을 똑딱거릴 때마다 웃으라고. 김혜원 무리에게 마구 맞고 발로 채인 노은비에게 김혜원이 볼펜을 똑딱이고, 노은비는 결국 억지로 일그러진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들, 특히 김혜원은 볼펜을 똑딱여 노은비를 반 아이들 앞에서 이상한 아이를 만들고, 수시로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우유를 붓고, 사물함에 오물을 채우고, 반 아이들에게서 왕따를 만들었으며 가장 친한 친구마저 그녀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그 고통스러운 시절을 노은비는 견뎠다. 그래서 이제 어엿한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만드는 방송에 김혜원이 게스트로 등장한 것이다. 학폭 피해에 대한 웹툰을 그린 작가로, 노은비는 그런 김혜원을 인터뷰해서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노은비에게 피디는 겨우 예전 일로 그러냐고 '프로 정신'을 운운했고, 다시 나타난 김혜원은 다시 볼펜을 똑딱이며 노은비를 몰아부친다. 

또 다시 나락으로 빠져든 노은비, 학창 시절처럼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주지 않는 현실에 결국 건물 옥상 난간에 올라선다.  '과거'가 아니라 무한루프처럼 되돌아 온 '학폭'의 트라우마, 위기 관리팀은 그런 노은비를 어떻게 죽음에서 구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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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해답이라면, 죽어!
그런데 난간에 기대선 노은비에게 구련은 외려 뛰어내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죽는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며. 노은비는 죽으면 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 않겠냐고 울며 답하고. 구련은 말한다. 죽으면 자신의 죽음을 마음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짊어진 채 끝없는 후회의 길을 걸어야 하는 '지옥'이 기다릴 뿐이라고. 

'견뎌야 해', '이겨내야 해', 구련이 던진 말들, 그런데 그건 노은비가 바로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울며 했던 말들이다. 자신이 견뎌왔던 시간을 되돌이킨 노은비,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게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발을 헛디뎌 건물에서 떨어져 버리고 마는데, 그런 노은비를 '저승사자' 구련이 가뿐히 안아 구한다. 

그런데 아직도 '위기 관리팀' 속 노은비의 붉은 신호음은 꺼지지 않는다. 그때 특별출연 정준하와 나타난 최준웅, 노은비가 힘들때마다 꺼내본 <무한도전>의 정과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정준하는 예의 정과장이 되어 노은비를 웃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노은비를 최준웅은 안고 위로한다. 괜찮다고. 

구련이 노은비로 하여금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면, 최준웅은 상처입은 노은비를 품어 주었다. 드라마는 죽음의 위기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케 만드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의 늪에서 한 걸음  빠져나온 노은비가 세상에서 만난 뉴스, 그건 여전히 그녀 앞에서 가해자였던 김혜원의 가증스런 가면이 벗겨지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노은비는 용기를 낸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언할 수 있다고. 아마도 그 빌딩 옥상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면 노은비는 그런 뉴스도 볼 수 없었고, 스스로 피해자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구련의 말처럼 지옥의 길고 긴 후회의 길을 걷고 또 걷기만 했을 것이다. 

자살자 구원의 환타지로써 <내일>은 끝까지 그 몫을 다한다. 김혜원 앞에 나타난 구련은 김혜원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보낸다. 이젠 김혜원이 그 시절 김혜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이다. 배를 차이고, 우유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김혜원, 구련은 말한다. 겨우 한번을 당하고. 살려달라 하냐고. 너는 기억못한다는데 노은비는 내내 고통받으며 살아왔다고. 그리고 들려오는 김혜원의 실체에 대한 뉴스, 허물어지는 김혜원에게 죽지 말라고, 지금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구련은 자리를 뜬다. 

이처럼 <내일>은 자살 위기에 몰린 학폭 피해자를 죽음에서 구하는 에피소드로 '주마등 위기 관리팀'의 활약을 연다. 1, 2회 걸쳐 주마등처럼 스쳐간 노은비의 기억,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왜 노은비를 자살로 부터 구해내야 하는지 공감한다.

<인셉션> 식의 과거 탐험을 혼란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옥황상제를 필두로 주마등 주식회사라는 신선한 컨셉으로 등장한 저승사자의 자살자 구출 프로젝트는 신선하다. 구련이라는 사연깊은 캐릭터의 단호한 조처, 그리고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우선 자신을 던져 피해자를 구하고 보려는 최준웅의 따뜻한 인도주의가 맞물리며 '위기 관리팀'의 매력이 더해진다. 거기에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환타지로서의 통쾌함을 더한다. 

by meditator 2022. 4. 7. 23:11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이 작품을 운운하면 어쩔 수 없이 연식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1973년 만들어 졌다. 후에 <소머즈>로 우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린지 와그너'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영화보다는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무려 58부작으로 만들어졌던 tv 시리즈로서의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이 인기를 끌었다. 

2021년에 1970년대에 만들어진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소환하는 이유는 <로스쿨>의 수업이 이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트군, 1936년 "하트군, 1936년 피터 와그너 법을 제정하여 노동3권을 인정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한 노동법 제정의 의미를 설명해보게"

드라마 속 킹스필드 교수(존 하우스만 분)는 수업에 가까스로 들어간 주인공에게 대뜸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른바 '소크라틱 메소드'이다. 이런 대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고, 대답이 시원치 않은면 다시 논박을 받고, 이런 식의 문답법식 수업에 대처하기 위해 학생들은 밤을 세워 스터디를 하고 법학서를 줄줄 욀 정도로 공부를 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로스쿨 제도, 그 제도가 2009년 도입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이 방영되던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사법고시'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로스쿨 제도가 만들어 진 이후 <로스쿨>에서 처럼 전직 의사도, 사회 복지학과 출신도, 의상학과 출신도 법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높은 등록금으로 '가진 자'들의 '사다리'가 되지 않도록 차상위 계층 특별 전형도 마련됐다. 

 

 
양크라테스의 소크라틱 메소드 수업으로 문을 연 <로스쿨>
4월 14일 jtbc를 통해 방영된 <로스쿨>은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본 사람이라면 추억을 소환할 수 있도록 예의 소크라틱 메소드를 통해 드라마를 연다. 중후하면서도 엄격했던 킹스필드 교수님 대신, 한때 '강마에'로 카리스마를 날렸던 김명민 배우가 패셔너블하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양크라테스'로 돌아왔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법학 대학원의 밤을 불태웠던 주인공은 그 시절처럼 첫 수업에서 양크라테스의 숨쉴틈 없는 질문에 결국 구역질을 해대며 강의실을 뛰쳐나가는 차상위특별 전형 출신의 강솔A가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코리아 버전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인가 했던 드라마는 겸임 교수였던 서병주(안내상 분)의 죽음 이후 국면을 달리한다.

전직 검사장 출신, 로스쿨에 자신이 불명예스럽게 검사장을 물러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땅값 56억원을 기부하며 '속죄'하듯 교수가 되었던 서병주였다. 그가 자신의 대기실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서병주는 누가 죽였을까? 
그런데 서병주와의 악연으로 법복을 벗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 바로 <로스쿨>의 킹스필드 교수, 양크라테스 양종훈이다. 서병주가 '법'을 이용하여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자, 검사복을 벗어던진다. 제 아무리 '법'이 정의로워도 '법조인'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결국 서병주와 같은 이들이 판치게 될 것이라는 그의 깨달음이 양종훈을 한국대 로스쿨 기피 1호 '양크라테스'로 만들었다. 

그렇게 양종훈의 법복을 벗도록 만들었던 서병주였기에 당연히 서병주 죽음이 자살이 아니면 가장 유력한 '살해 용의자'가 된다. 그리고 그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1회 엔딩, 형사들은 양종훈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하지만 사건은 그리 간단치 않다. 드라마는 서병주가 머물렀던 방에 등장한 여러 사람들의 족적을 보여준다. 알고보니 서병주의 조카인 한준휘(김범 분) 에서부터 부원장 강주만(오만석 분), 서지호 (이다윗 분) 등, 그리고 서병주를 발견한 전예슬(고윤정 분)까지, 많은 사람들이 서병주의 방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의문스런' 눈빛을 드러낸다. 잡힌 건 양종훈이지만 그들 모두가 의심스럽다. 

이렇게 드라마는 <하버들 대학의 공부벌레들>인 듯하다 서병주의 죽음을 둘러싼 '스릴러'의 장르로 넘어간다. 출소 후 판사 출신 민법 교수 김은숙(이정은 분)의 강의에 들이닥쳐 협박을 하던 파렴치한 성폭행범 이만호(조재룡 분)는 뺑소니 사건으로 양종훈과 얽혀있다. 과연 뺑소니범은 누구일까? 게다가 서병주에게 땅을 준 죽마고우' 고형수(정원종 분)는 차기 대권 주자이다. 범죄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정치'적 배경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로스쿨>은 여전히 '명불허전' 김명민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앞장세우며, 동시에 긴장감넘치는 살인 사건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의 관계를 통해 기대감을 키운다. 그래서일까. 전작 <시지프스; the myth>를 넘어 5.113%로 순조롭게 출발하는 중이다. 

by meditator 2021. 4. 15.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