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고 난 후 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인들이 많다. 누군가는 앞날의 사태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고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접게 되었다고도 했다. 냉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는 이도 있고, 서둘러 다시 신발끈을 묶는 이도 있다. 답답한 시절이라 느끼는 사람들,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이런 때 EBS 다큐 프라임은 4월 11일부터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 중 몇 편을 다시 방영하고 있다. 아마도 암담하다 느끼는 이들에게 '등불'을 켜주고픈 시도가 아닐까 싶다. 삶이 고단할 때 그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선인들로 부터 다시 찾아보자는 권유일 것이다.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 홍콩 중문대 류사오 간 교수, 펜실베이나 대 빅터 메이어 교수, 하와이 대 로저 에임스 교수 등 동양 고전의 대가들이 해석을 더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는데 무덤 앞에서 슬피우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을 다 잡아먹었다며 슬피우는 여성, 그러면 호랑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살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여성은 답한다. 가혹하고 악독한 정치가 없기에 이곳에 살았노라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잘들 기억하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공자와 맹자, '공감'의 정치 
BC 771년 주나라 요왕이 죽임을 당하며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약자의 삶이 짓밟히는 시대, 하지만 절망적이기에 절실하게 희망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공자', '장자' 등 동양 고전의 진수를 만든 '제자백가'들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인가요?' 공자는 군사를 키워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며, 신뢰를 얻는 것이라 답한다. 자공이 그 중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답한다. 군사를 포기하고, 그도 안되면 경제를 포기할 수도 있지만, 백성들의 신뢰는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너도 나도 군사력과 경제를 앞세우지만 정작 나라의 근간은 백성의 신뢰, 전문가는 이를 '소통'과 '공감'이라 해석한다. 

 

 

그렇다면 그 '소통'과 '공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한때는 공을 세우는 장군이었지만 모함을 당해 두 다리가 잘린 이,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 공자는 이런 '가족 관계' 속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타인에 대한 존중'의 출발선으로 본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하고 공을 세우기 위해 자식을 죽여 끓인 국을 들이킨 위의 장수 '악양'을 '지 지삭의 고기를 먹으면 누군들 못먹겠냐'며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사례로 든다. 하지만 '가족'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런 가족으로 부터 비롯된 도덕적 윤리를 이웃, 나아가 인간 전체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제자 자공이 또 묻는다. 평생동안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까?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 )라고 공자는 답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현대의 '공감 의식'이라 해석한다.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견주어 볼 수 있는 마음, 이기심을 넘어서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도덕전 존재로서의 '인간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자의 '도덕적 인간관'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 우리에게도 익숙한 맹자의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학자들은 이를 일종의 '사고 실험'이라 본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거나, 칭찬을 받으려는 것을 넘어선 직접적 감정으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공자의 서(恕; 용서할 서, 인자할 서, 동정할 서 )로 통한다. 즉 인류애이자, 연대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런 '측은지심'이 백성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되어 '어진 정치(仁政)'을 펼치는 것이 '정치'의 길이라 다큐는 새삼 확인한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공자와 맹자가 '정치'의 기본을 찾아갔다면, 장자에게서는 '난세'를 살아내는 지혜를 구한다.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럴 때 사람들은 무엇을 지킬까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버릴까'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장자는 말한다. 

중국 월나라의 계승자 수의 예를 든 장자, 그는 '왕의 자리'를 박차고 도망친다. 이미 선왕 3 명이 횡사를 당한 상황,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권력 대신, 살아남아 자유로워지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 것이다. 즉, '물질적 이득'에 '생명'이 앞선 것이다. 또한 이는 '정치 권력'에 '자유'가 우선한다는 의미도 된다고 학자들은 해석을 더한다. 

그래서일까? 초나라 유왕이 낚시질을 하는 장자를 찾아 재상으로 초빙을 했지만 '비단 옷을 입히고 좋은 대우를 받지만 결국 제물로 바쳐지는 소'의 예를 들어 거절한다. 제물로 바쳐질 때야 돼지가 되고 싶다 울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삶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장자는 세상을 '국가와 사회라는 촘촘한 그물'로 보고 그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즉 장자에게 있어 생명의 본질은 자유였다. 그런 그였기에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기 보다 생명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아내를 위해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 사람 살이가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사람 사는 세상에 어우러져 살면서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장자는 장자- 새 - 사마귀 - 매미로 이루어지는 '사슬'을 예로 든다. 날지 않는 새를 잡으려 다가선 장자,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새는 눈 앞의 사마귀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그 앞의 사마귀는 매미를 잡으려 하고 있었단다. 정작 그런 장자조차 새를 잡으려 남의 울 안에 들어갔으니(당랑박철 螳螂搏蟬). 이 처럼 자기 잇속만 차리다 보면 남이 자신을 노리는 지 조차 모르다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특정 방향만 따라 가는 것, 혹은 물질적 성공에 눈이 머는 거 모두가 자기 재주만 믿고 날뛰는 원숭이와 다르지 않다고 장자는 말한다. 쓸모없는 나무가 정작 재목이 되어 잘리는 운명을 피하듯 사회적 열망에서 '자유'로워져 지금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無用之大用 ) 장자는 자신의 발자국과 그림자가 싫어 도망을 치다 결국은 쓰러지고 마는 인간의 예를 더한다. 그저 지금 여기 나무 아래에 누워 쉬면 될 것이라며. 즉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함, 결국 장자의 도가 이르는 길이다. 

처음 무엇을 지킬까, 무엇을 버릴까에서 파도와 풍랑은 내가 어쩔 수 없듯이 난세의 흐름 역시 '나의 의지'를 넘어선 것이라 말한다. 그럴 때 그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 버릴 것은 버려 몸을 가벼이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자는 말한다. 또한 그런 '버림'에는 '고착화된 사고'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식을 죽여 바치는 시절, 춘추전국 시대 그 난세에 동양 사상의 두 본류인 '공감의 정치'와 '자유의 사상'이 탄생되었다. 과연 2022년 우리는 이 시절을 무엇에 기대어 건널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2. 4. 13.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