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4월 '하나의 사물(it)을 오브제로 정하여 세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잇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매주 목요일 밤 <다큐 잇it>이 문을 열었다. '반지하'로 부터 시작된 오브제는 마스크, 청약통장, 주식, 캠핑 고양이, 치킨, 배달까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를 종횡무진 섭렵하며 달려왔다.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서로 다른 세대를 잇고 그를 통해 사회적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자 했던 다큐의 새로운 모색, 하지만 오브제의 고갈인 건지, 아니면 낮은 시청률의 한계였던 건지, 결국 지금 여기 우리 시대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고자 했던 시도는 3월 25일 1년간의 여정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 발을 굳건하게 딛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제작진의 노고와 열정에 감사를 드리며, 또 다른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3월 25일 다큐 잇it의 대문을 닫은 작품은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가족' 제도의 문제를 짚은 <우리는 가족입니다>이다. 

민법 779조는 '가족'을 정의한다.
1.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 혈족 및 형제, 자매
 2) 직계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 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 자매
1. 제 1항 제 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자에 한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입양에 의해 이루어진 관계이다. 2021년, 과연 현행 이러한 가족법은 '현실'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 

 

 

남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아내 
김남숙 씨는 '아내'다. 하지만 '법'은 김남숙 씨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는다. 20년을 살다 헤어져 10년간 소식이 두절됐던 남편은 남숙 씨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 이불 10장을 뒤집어 쓴 노숙자로 나타났다.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다'고 했지만 행려병자로 돌아온 남편이 반가웠다. '똥을 싸도 남편이 있어야 나는 행복인 거야'라고 했지만 그 행복은 길지 않았다. 

지난 2월 남편이 죽었다. 임종까지 지켰지만 장례를 치룰 수 없었다. 남숙 씨가 법적인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남편, '법'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가족을 찾았다. 그렇게 안치실에서 20여 일이 지나서야 남숙 씨는 남편의 '장례주관자'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오랜 시간 '가족'이었던 사람, 하지만 현행 가족법은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이 있음에도, 혹은 '가족'처럼 지내는 지인이 있음에도 무연고 사망자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2020년 지침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법'과 충돌되는 점들이 많다.

74세의 김복남 씨와 84세의 권정수 씨는 복지관의 잉꼬 커플이다. 두 사람 다 배우자와 사별을 하고 시름에 겨워하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그로부터 14년을 함께 했다. 자식들이 양해를 했지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적' 관계는 배제한 체 지난 시절을 함께 했다. 

둘이 함께 하는 생활 자체가 '장수'의 비결이라는 권정수 씨,  이제는 공주님이 됐다는 복남 씨, 하지만 아내 복남씨보다 나이가 많은 정수 씨는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갈 일이 걱정이다. 

 

 

변화하는 가족 
1인 가구 중 노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젊은 세대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2015년 23.5%에서 2019년 24.9%로 그 비율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외롭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1인 가구의 '고독한 삶'에 '법'은 배려가 없다. 

노인 가구만이 아니다. 19세에서 39세가지 1083명 중 70.8%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동거'에 대해 찬성한다.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2020년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생계나 주거를 공유하거나 (69.7%), 정서적 친밀성을 유지하면(39.9%) '가족'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고 있다. 

장신재 씨의 경우, 4~5년간 자취 생활을 전전하다 보니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졌다. 그러면 결혼? 아니 그녀가 선택한 건 결혼이 아니라, '셰어 하우스'였다.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방 3개의 큰 집을 얻고 함께 사는 '동반자'들을 구했다. 

 

 

서로 하는 일도, 사는 취향도 다른 다섯 명의 여성들이 한 집에 모여살기로 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니 반겨준다. 연락이 안된다며 걱정해 준다.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의논한다. 어느덧 함께 사는 이들이 아침에 내는 소음들이 잠결에 정겨워질 정도로 서로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혈연'의 끈끈함 대신, 같은 가치관에 기반한 소속감으로 함께 한다. '가족'이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변화하는 시대, 달라져가고 있는 삶의 형태에 맞춰 법도 개정되어야 한다. 몇 십년을 얼굴도 안보고 산 피붙이들이 '가족'이라며 생애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대신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가족'의 권리를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체조차 모호한 '정상 가족'의 낡은 관념을 덜어내고 법 밖의 가족들을 위한 '생활 동반자법'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by meditator 2021. 4. 10. 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