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부가 '이혼'을 하는 경우, 가사 노동에 종사한 아내의 '역할'에 대해 당당하게 '법적'인 지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가사 노동'에 대해 과연 우리 사회는 진정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외람되게도 '독립 운동'의 그늘에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의 역할을 자처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론으로 이어진다.
광복절 77주년이다. 각 방송국마다 77주년을 기려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 가운데 kbs1을 통해 방영된 <광복절 특집 다큐 아내의 이름>이 눈에 띈다. 현재 '독립 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선열들은 2만 여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중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2%도 안되는 채 200여 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과는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활동'하기가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독립'에의 '의지'가 없었을까?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2만 여 명에 이르는 독립 운동 선열들이 활동하는 그 '그늘'에서 늘 '여성'들은 치열하게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회영, 신채호, 이상령은 알아도, 박자혜, 이은숙, 김우락이란 이름은 생소하다. 그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발굴해온 kbs가 광복절을 맞이하여 네 분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 그분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자 한다.
3.1운동에 앞장섰던 간호사, 신채호를 뒷바라지 1895년에 양주에서 태어난 박자혜 여사는 어린 나이에 '궁녀'가 되었다. 몇몇 궁녀들과 함께 의술을 배울 기회를 얻은 여사는 이례적으로 일본인이 대부분이던 조선총독부 의원의 간호사가 되었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인한 사상자를 목도한 박자혜 여사는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일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결심에 따라 간호사들의 조직 '간우회'를 결성하는데 앞장서고 유인물 배포하는 한편, 만세 행렬에 적극 참여한다. 결국 '과격하고 언변이 능하며 총독부 의원,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독립 만세를 고창한' 혐의로 체포되고 만다. 풀려난 박자혜 여사는 베이징으로 망명했고 이곳에서 한 독립운동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24세, 그녀의 남편은 39세의 신채호였다.
하지만, 생활고는 이 부부를 떼어놓는다. 둘째 아이를 가진 박자혜는 고국으로 돌아와 조산원을 열었지만 신채호의 아내라는 이유로 '냉방에서 주린 창자를 쥐고 두 아이가 울고 있'는 가난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열사의 길잡이 노릇을 기꺼이 해냈다. 또한 뤼순 감옥에서 갇히게 된 남편의 옥바라지를 8년 동안 감내했다. 하지만 결국 36년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시고 '모든 희망이 끊어졌다'고 애통해하던 박자혜 여사는 뒤를 이어 44년 가난과 독립운동으로 얻은 지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다. 1990년에서야 정부는 '건국훈장 유족장'을 그녀에게 '추서했다.
삯바느질로 모은 돈도 독립운동 자금으로 서울 명동의 금싸라기 땅은 원래 이회영 집안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회영 일가의 6형제는 '병합'이 되자 그해 12월 망명길에 오른다. 1908년 19살의 나이로 22살의 나이차가 나는 이회영 선생과 혼인을 한 이은숙 여사 역시 한겨울 압록강을 건너 40여일만에 중국 지린성 류허현에 이르렀다. 이회영 선생 등이 이곳에 한일 자치기구 '경학사'를 만들고, 무장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 무관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은숙 여사와 동료 여성들은 이들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말이 뒷바라지이지 당시 '독립 기지'의 가장 큰 고충은 '넉넉치 못한 재정'이었다. '죽울 쑤었을 대는 상을 가지고 나가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화끈히 달아올랐다'던 이은숙 여사는 서로 군정서 대원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고 먹였다. 하지만 청산리 전투 이후 베이징으로 옮긴 이은숙 여사네 집은 10 명에서 40여 명가지 독립 운동가들의 집결처가 되었다. 그들을 먹히고 입히느라 결국 어린 두 딸을 빈민 구제원에 맡겨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1925년 임신한 몸으로 홀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삯바느질로 모은 돈마저 '하늘같이 섬기던' 남편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부쳤다. 이은숙 여사가 당시의 삶을 회고한 <서간도 시종기>는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19명이 서훈을 받은 이회영 일가, 여사는 1979년 90세에 이르러서야 '독립운동가'로 '추서'되었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어요!' 이은숙 여사들처럼 드러난 '공적'인 독립운동의 이면에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여성들의 '물심양면' 뒷바라지 안살림이 있었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여성들은 누구였을까? 그 중에 장정화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189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장정화 여사는 대한제국 대신을 지낸 김가진의 아들 김의한과 불과 11살의 나이로 혼인을 한다. 그런데 1919년 갑자기 시아버지와 남편이 사라진다. 장정화 여사는 신문 기사를 보고서야 그분들이 '망명'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무 살으리 겁없던 장정화 여사는 남편을 찾아 베이징으로 향한다.
'이 길은 모진 풍파로부터 도피도 아니며, 안주도 아니다. 또 다른 비바람을, 이번에는 스스로 맞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 '
장정화 여사는 당시의 심정을 회고록 <장강일기>에서 소상히 밝힌다. 베이징으로 건너간 여사는 이동녕, 엄항섭 선생 등과 한 집에 살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당장 독립 운동가들의 '호구지책'이 심각해지가 여사는 프랑스 조례 밖을 나올 수 없는 남성 독립운동가들 대신 스스로 고국과 중국을 6차례에 걸쳐 오가며 독립자금 등을 조달했다. 임시정부와 함께 중국 내륙을 거쳐 충칭에 이르른 여사는 1040년 한국 여성동맹, 43년 대한 애국부인회 등을 재건했고 광복 이후 귀국했다. 남편 김의한이 6.25 때 납북당하고, 여사는 1982년에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0대 후반에도 거침없는 '독립'의 행보 임정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 역시 낙동강이 보이는 경북 안동의 유지였다. 99칸 대저택을 처분하여 '망명'한 선생, 19살에 혼인하여 어느덧 50대 후반에 이른 아내 김후락 여사도 함께였다. 여사는 1911년 베이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해도교가사>로 남겼고 이 역시 주요한 독립운동사료이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이 된 이상룡 선생, 김후락 여사는 안살림을 맡는 한편, 부인회를 조직 결의를 다지는 등 독립 운동의 내조에 힘썼다. 김후락 여사는 2019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또한 김여사의 며느리 이중숙 여사, 손주 며느리 허은 여사 3대 모두 독립 유공자가 된 '유공자 3대'의 집안이다.
빨라야 197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게 된 여성들, 그녀들이 없었다면 과연 그 혹독한 독립운동의 생활고를 버텨냈을까? 남자들이 '일경'의 감시로 옴짝달싹할 수 없을 때 기꺼이 압록강을 건너 고국의 독립자금을 나르던 여성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임시정부'가 가능했을까?
다큐는 이에 주목한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뒷바라지를 여전히 '평범한 여성'들의 일로 보는 시각이 이 분들의 독립 유공자 '추서'가 늦게 된 이유라고 짚는다. 또한 여전히 부족한 여성운동사에 대한 연구도 아쉬움을 더한다. 누구의 아내, 혹은 '안살림'을 맡은 '여성'이 아니라, 그분들의 '이름' 그대로 불리워질 때, 비로소 우리 독립운동사가 '온전한 역사'가 될 것이라고 다큐는 '방점'을 찍는다.
11부 마지막 장면, 우영우의 친엄마 태수미(진경 분)가 있는 태산을 찾아간 권민우(주종혁 분)는 말한다. '착한 척 위선이나 떠는 한바다, 그 밑에서 나약해 지고 싶지 않다'고, 여기 권민우 변호사의 말에는 두 가지 논리가 들어있다.
착한 건 위선, 그리고 착하게 살면 나약해 지는 것, '권모술수'라는 별명에서도 보여지듯이 거대 로펌 한바다의 1년 계약직인 권민우는 우영우에 대한 편견이 가장 없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우스개가 있다. 왜냐하면 권민우는 우영우의 자폐조차 권민우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만드는 '아이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였기에, 이제 태산을 찾아와 말한다. 자신이 아는 진실이 힘이고, 무기가 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로만 권모술수가 아니라, '본격' 권모술수의 길에 나선 것이다.
그런 권민우에게 태수미는 우영우(박은빈 분)가 한바다를 떠나도록 하라는 '딜'을 한다. 당장 12회에 그 일을 실행에 옮긴 권민우, 시청자들은 그의 '권모술수'로 인해 고통받을, 그래서 한바다에서 쫓겨날 지도 모를 우영우가 걱정된다. 여느 드라마들이라면 '빌런', 권민우가 드라마적 갈등 요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갈등에 대해 조금 다른 접근을 한다 바로 '양쯔강 돌고래'에 대한 질문이다.
변호사는 어떤 사람일까? 12회차에서는 미르 생명의 여직원 정리 해고 사건을 다룬다. 우영우는 해고된 여직원들이 아니라, 미르 생명의 입장에서 변호를 맡게 된다. 극중 보여지듯이 한 직장을 함께 다니는 부부 직원들 중 아내에게 회사는 부당하게 '정리 해고'를 종용한다. 21세기에 '시어머니', '눈치'니 , 남편의 앞길이니 하면서 말이다. 결국 100명이 넘는 여사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고, 이 과정에 승복하지 않은 2명의 여직원이 재판에 나선다.
재판 과정에서 우영우는 혼란을 느낀다. 글로만 드러난 '사실'과는 다르게 , 재판의 과정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겉으로는 남자 직원을 역차별한 것같지만, 사실은 여직원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말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정명석(강기영 분) 변호사를 찾는다.
그런데 정명석 변호사가 언성을 높인다. 화를 내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우영우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물었다.
정명석은 옳고 그름은 '판사'가 판단할 몫이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강력하게 충고한다. 정명석의 말에 따르면 '변호사'라는 직업적 성격상 '가치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우영우는 변호사법 1조 1항을 말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희망 퇴직 권고는 난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우영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한바다' 변호사로써, 강제 퇴직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며 자신들에게 수임을 맡긴 미르 생명의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재판은 결국 원고의 손을 들어준다. 인사부장의 다이어리 속 메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문화된 법 조항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이긴 한바다 변호사들과 미르 생명의 인사부장의 표정이 씁쓸하다. 심지어 인사부장은 다음은 자리 차례라며 착잡해 한다. 반면, '졌잘싸'라며 패소한 여직원들과 '시끄러운 여자' 류재숙 변호사는 얼싸안고 서로를 독려한다.
정명석과 류재숙, 당신은 누구입니까? 미르 생명에 대한 한바다의 법률 자문 사실을 알게 된 우영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뿌르르 정명석 변호사 방으로 달려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는 '어미 고래'와 같다. 우영우 김밥을 하며 영우를 키운 아버지가 집에 있지만, 사회에 나온 영우를 음으로 양으로 보살피는 건 정명석 변호사의 몫이다. 처음 영우에 대한 편견을 가졌지만, 가장 먼저 영우에게 정중히 사과한 이래, 정명석 변호사는 언제나 영우에게 기회를 줬다. 심지어 권민우가 '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어미 고래'같은 정명석이기에 그의 말대로 우영우는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런데 정명석과 우영우, 그들이 속한 대형로펌 '한바다'의 의뢰인은 '미르 생명' 같은 곳들이 많다. 수임료가 비싼 한바다와 같은 곳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온다.
12회 내내 정명석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는 재벌 2세였다. 감옥행이어야 할 그를 '구해주다시피'한 정명석과 또 다른 변호사, 그들은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장재진을 '변호'했다.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의 감형을 했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형량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변호사를 찔러 상해를 입힌다. 당연히 정명석 변호사는 자신도 '린치'를 당할까 두려움에 떤다.
해프닝처럼 등장한 이 사건은 대형 로펌 변호사의 '숙명'을 그린다. 의뢰인이 어떤 사람이어도 그의 '편'에 서야 하는. 반면, 변호사의 '사'자가 검사, 판사의 '事' 와는 다른' 士' 라며 변호사법 1조 1항을 우선하는 류재숙 변호사는 다른 길을 걷는다.
어미 고래같던 정명석 변호사는 난임 치료 사실을 법정에서 쓰지 않으면 안되냐는 우영우의 청을 묵살한다. 반면, 류재숙 변호사는 권민우가 우영우의 이름으로 보낸 한바다의 법률자문 의뢰서를 재판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문에 졌을 수도 있지만, 류재숙은 '졌잘싸'를 밝은 얼굴로 외친다. '패소 전문 변호사'란 류재숙 변호사, 그런 그녀를 우영우는 '멸종 위기'의 양쯔강 돌고래라 한다.
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업무에 쫓기고, 의뢰인이라는 무뢰한에게 쫓기고, 이제 피까지 토하고 마는 정명석, 그런 그와 대비되어 '채소를 덜 잘 가꾼다'는 초라한 사무실, 하지만 넉넉한 인심의 류재숙이 대비된다. 드라마에서는 양 극단의 인물을 ㅖ로 들었지만, 결국 정명석과 류재숙의 삶은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까? 우영우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고래의 삶을 선택할까? 극중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을 읊는 류재숙, 자신을 태워 사랑을 이룬 삶은 아름답지만 쉽지 않다. 유인식 피디의 전작 <낭만 닥터>가 떠오른다. 류재숙을 유심히 보는 우영우, 어쩌면 그녀에게 닥친 위기를 영우는 뜻밖의 선택으로 돌파하지 않을까? 제주 바다에 풀어놓은 수족관 돌고래처럼.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 한 장, 안도연
왕은 '북벌'을 계획했다. 백성들이 당한 수모를 좌시할 수 없다는 그의 결심을 중신들, 그 중에서도 좌상 조태학(유성주 분)이 막아선다. 그들의 전횡을 알기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왕은 출병을 서두르지만, 출병령을 가지고 가던 군사는 비명횡사했다. 수상한 꽃가루를 넣은 음식을 먹은 왕은 하룻밤 사이에 종창이 부풀어 올랐다. 극중 주인공 유세엽(김민재 분)이 종창을 치료하려했으나 오히려 피가 멈추지 않아 죽게 된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첫 회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북벌'을 계획하다 서른 아홉의 나이로 극중 내용처럼 종기 치료를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한 '효종'사의 역사적 사실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 형 소현세자와 함께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대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이덕일이 지은 <조선왕 독살 사건>은 효종의 죽음을 '독살'로 의심했고 드라마는 그런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뒤숭숭한 '호란' 이후의 조선 사회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마음의 병까지도 고치는 '심의' (心醫) 유세풍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아직 유세풍이기 이전에 유세엽인 주인공은 왕을 치료한 자신의 '조선판 메스'가 변색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왕을 죽였다는 사실에 자지러진다. 일찌기 문과 급제를 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 유후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과에 나서 장원을 따냈으며 친구였던 세자의 급체를 해결하여 왕으로부터 '신침'이라 칭송을 받았었다. 하지만 어의와 결탁한 조태학의 세력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들을 구하 왕의 독살을 밝히려 동분서주하던 아버지 유후명조차 피습당하고 만다. 다행히 친구였던 새 왕은 유세엽의 목숨만은 구해주었다. 하지만 '한양'에서 잘 나가던 내의원 수재는 이제 성문 밖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때를 기다리라 동가숙서가숙하던 유세엽과 그의 집안 머습 만복을 계수의원 계지한이 '빛'을 핑계로 잡아앉힌다. 하지만 계수의원에 있으면 뭘하나, 침만 쥐면 그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은 벌벌 떨리는 것을. 그런 그에게 '돈만 밝히는 스승인지, 빚쟁인지 헷갈리는' 계지한은 말한다. '때를 기다리라고.'
일찌기 간질병 궁녀의 치맛자락을 잘라 목숨을 구할 정도로 '의원'으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했던 유세엽이었다. 하지만 가문은 무너지고, 신침이라던 그가 침도 놓지 못하게 되자 세상을 버리려 했다. 목숨을 구하고 계지한이 빚을 핑계로 그를 다시 '의원'노릇을 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의지 상실'이었다. 그런데 벼랑 위의 그를 구하며 살아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를 구하라 했던 그녀 서은우(김향기 분),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의 그녀가 그의 앞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존재'가 되어 나타났다. 자꾸 죽으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픈 그의 '열망'이 '침'이 아니도 환자를 고치는 '심의' 탄생의 서막이 된다.
드라마는 망한 가문의 전직 내의원, 굴러들어온 계수의원 반푼이 유세엽이 '심의' 유세풍으로 거듭나기 위해 두 여인의 삶을 계기로 삶는다.
그 첫 번째 여인은 바로 벼랑 끝의 유세엽을 삶으로 인도한 서은우, 하지만 그녀는 결혼 당일 신랑의 죽음으로 시어머니로 부터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청상과부이다. 또 한 사람은 계수의원의 매병(치매) 할망이다.
유세엽은 서은우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 시어머니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열녀문을 하사받기 위해 그녀가 죽기를 원한다. 친정은 '출가외인'이라는 법도를 들어 그녀를 품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녀의 삶을 바라지 않는 세상에 자꾸만 죽으려는 서은우에게 임금을 죽이고, 아버지도 죽인 거나 다름없는 이제는 능력을 상실한 의원 유세엽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또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문과 급제를 했던 그가 의원으로 마음을 돌렸듯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품어주듯이 매병 할망은 그를 '풍이'라 부르며 보다듬는다. 비록 그런 그녀의 맹목적인 모성이 '매병'으로 인한 착각이요, 정작 풍이는 따로 있지만, 매병 할망을 통해 비로소 유세엽은 계수의원을 자신의 '안식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제 유세엽 대신 할망이 잃어버린 아들 '풍이'가 되어 유세풍이 된다.
침 대신 마음을 돌보다 드라마에서 유세엽이 유세풍이 되도록 매개가 된 두 여인은 '죽어야 하는 여인, 잊혀져야 하는 여인, 버림받은 여인들'이었다. 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성리학을 사회적 윤리관으로 수용한 조선, 중기 이후 '남존여비'의 체계가 확고히 되고, 그런 가운데 남편이 죽은 양반가의 여성에게는 이른바 간접적 '명예 살인'으로 '자결'이 강요되곤 했다. 그 '대가'로 수여되는 '열녀문'은 가문의 영광이자,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남은 자손들에게 '입신양명'의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의와 명분을 위해 여성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삼는 조선이 청에 침략을 당했다. 청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때 소현 세자, 봉림대군과 같은 왕족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계수의원의 할망이 바로 그 포로로 잡혀간 여성이었다. 고향이, 자식이 그리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할망, 하지만 고향 집의 아들은 그런 그녀를 외면했다. '어머니는 이리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온 포로 여성들, '환향녀', 하지만 그들은 돌아온 고향에서 버림받고, 몰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매병'을 앓는 할망을 유세엽이 아들과의 '해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시도 풀어놓지 않던, 아들을 위해 그녀가 시시때때로 챙겼던 물건들의 보따리를 아들 앞에 풀어놓음으로써 할망은 묵은 짐을 내려놓는다.
서은우와 할망, 이 두 여인을 돌보면서 유세엽은 침이 아니라도 의원으로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유세엽은 할망이 자신을 부르던 '풍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택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뿐입니다.
가문이 존재를 대신하는 조선 시대에 그는 이제 자신의 가문 대신 서은우와 할망같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자기 선언을 한 것이다. 심의로서 '유세풍'은 '입신양명'했던 '신침' 내의원 유세엽이란 존재를 버리고, 사회가 외면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가 택한 길은 결국 궁극에 가서 그를 제물로 삼고, 그의 아비를 죽음으로 내몬 선대 왕 독살 사건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벌의 뜻을 꿈꾼 왕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권문 세가, 그들과의 '심의' 유세풍의 대결은 어떻게 풀어질까? 퓨전 사극이라지만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포부가 결코 가볍지 않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가 풀리자 각종 업종들이 기지개를 켠다. 이제 다시 한번 코로나 이전의 활황을 누려볼까? 그런데 웬걸, 일할 사람이 없다. 일할 사람이 없어 기계를 놀리고, 영업 시간을 줄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도대체 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근 MZ 세대의 새로운 직업관과 구인난을 겪는 산업 현장의 현실에 대해 7월 25일 자 <시사 기획 창>이 분석한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커다란 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는 안락해 보이는 사무실, 그런데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다. 온라인 광고를 제작하는 디지털 마케팅 업체, 업무 시간에 음악을 들어도 좋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여전히 몇 십 명의 인원을 충원하기가 난망이다. 경기도 김포의 치과에서는 기숙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 한 건의 문의조차 없다. 시급 12만원을 주겠다는 햄버거 가게 역시 지원은 커녕 다니던 직원 절반이 그만둬 사장은 울상이다. 유흥의 메카 강남이라고 다르지 않다. 손님을 벨을 연신 누르지만 서빙할 직원이 없다. 사장은 한쪽에서 지난 번 그만 둔 직원의 동정을 묻고 있다.
답답한 조직보다 차라리 배달이 낫다 강남 유흥가에서 사장이 찾던 직원은 지금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플랫폼 사업'이 활성화되고, 그 중에서도 '배달 앱'등이 활성화되면서 다수의 MZ세대들이 이른바 '국민 부업' '배달업'에 뛰어들었다. 탄탄한 회사의 물류 담당 직원이었던 전성배 씨는 회사를 그만둔다 했을 때 주변에서 미쳤다며 말렸다. 잠시 '알바'삼아 하려고 했지만 업무 지시도 없는 훨씬 '심플'한 업무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이 일에 현재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MZ 세대, 1980년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15세에서 40세까지 1700만 명 정도로 국내 인구 분포 상 34% 정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퇴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을까? 회사로 보면 대리, 과장 급의 사람들인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실무 인력을 담당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 30~60%가 2년 미만의 퇴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직업적 변동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심각한 구인구직난으로 이어진다. MZ 세대에게 언제쯤 퇴사를 결심했냐고 물었다. 평균 10개울 즈음이라는 답이 나온다. 언제든 퇴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는 답이 49.5%로 과반에 달한다. 매우 그렇다도 22%에 달했다. MZ세대에게 퇴사는 '자유'이자, '해방'이요, '새로운 시작'이다. 불안이나 백수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3%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가치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대퇴사시대(the Great Regression) 라는 말이 유행한다. SNS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퇴사 영상'이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다.
달라진 세대, 뒤처진 조직과 사회 그런데 이런 젊은 세대들의 변화된 태도에 대해 사회적 인식은 엇갈린다. 회사 측 입장에서는 주 52시간 제도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평생 아파트조차 못사는 처지가 되었다고 제도적 한계를 지적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분석에 고개를 젓는다. 외려 쉬는 날에도 특근을 해야 하는 근무 환경에 화가 났다고 말한다. 회사는 자녀들 학자금에 장례부조를 자랑하지만, 결혼도 할까말까한 젊은 세대에서 미래 자녀의 학자금은 공염불처럼 들린다. 존중과 존대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존댓말로 자신의 휴대폰 액정 닦이를 사오라고 하는 식의 시스템에 젊은 세대는 반발한다.
19살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허태준 씨는 '퇴사'를 했다. 잔업을 하고 돌아오면 8시, 그저 씻고 자기만 하며 살아가는 일상이었다고 한다. 잔업이 없는 수요일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 자신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가던 즈음, 지하철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연이었다. 자신과 다르지 않는 일을 하던 젊은이들이라 여겨졌다. 허태준 씨의 생각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제조업은 오래 일하면 '몸이 상한다'고 하는 현실이다. 또한 달라졌다고 하지만 근무 조건이나 환경에서 인정이나, 보람, 성취를 MZ세대가 느끼기 힘든 게 현실이다.
MZ세대는 일자리 선택 기준에 있어 그 이전 세대와 달라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선택 기준에 소득 기준이 1위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비율도 달라진다. 그보다 개인의 발전 가능성이라던가, 업무량, 출퇴근 거리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고,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게 이제 MZ 세대 직업적 선택에는 중요한 화두다.
다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퇴사'를 한 젊은이들과 인터뷰를 한다. 타이어 회사에서 사보를 만들던 김유경 씨는 '시키는 거나 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은행을 다녔지만 군대보다 더 보수적인 분위기, 서로 뒷담화를 하는 조직 내 문화에 강이삭 씨 역시 사표를 내던졌다. 홍석남 씨의 경우 대기업에 다녔지만 여기에 계속 다니면 10년 , 20년 뒤 자기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천지은 씨의 경우 우스개로 '모든 걸 다해서' MD라는 직책을 맡았었다. 말 그대로 모든 제조 과정에 간여하지만, 정작 결정권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생을 덜해봐서 그래', 어른들은 말한다. 창업을 한 강이삭 씨는 인정한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루틴대로 살아가는 대신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삶, 자신이 이루어 갈 수 있는 그 '무한대'의 가능성에 자신을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달라진 사고 방식의 MZ 세대, 이들의 달라진 직업관의 결과가 바로 코로나 이후 '구인난'이라고 다큐는 분석한다. 2003년 '벼랑 끝에 선 청년들'이라는 다큐에서만 해도 젊은이들은 회사 고를 때가 아니라며 사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착하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었다. 격세지감, 이제 젊은이들은 '퇴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주저앉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안맞겠다 생각하면 한 달도 못참'는다는 세대, 이들을 우리 사회 제도 속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이 추구하는 사고 방식에 맞춰 조직과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다큐는 결론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거북이 걸음이다. 구직 급여는 자발적 퇴사나 한 달 15일만 일을 해도 제공되지 않는다. 고용자 입장에서는 채용지원금보다 고용유지를 위한 실질적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피력한다. 회사원에만 한정된 대출 제도처럼 달라진 세대에 뒤처진 사회 제도이다.
지난 2018년 서울에 경증치매인들이 함께 했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깜빡 깜빡'하는 경증 치매인들, 비록 주문을 종종 잊고, 자신이 지금 무얼 해야 하는 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려도 스텝과 식당에 온 손님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거뜬히 해냈다. '치매'가 사회적 사망 선고가 되는 세상, 그런 굳어진 세상의 인식에 프로그래은 윤활유 역할을 했다.
제주도의 주문을 잊은 식당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주문을 잊었던 음식점은 다시 한번 그 날개를 펼쳤다. 이번에는 바다 건너 제주로 갔다. 하루 3시간, 단 3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시 한번 치매인들과 정상인들의 '이인삼각' 경주가 시작되었다.
시즌 2를 맞이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게 된 경증 치매인들은 네 사람이다. 83세의 맏형 장한수 씨는 2015년에 치매 판정을 받은 치매 경력이 제일 오래된 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지만 불안하면 자꾸 아내와 딸을 찾는다. 늘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빼놓지 않는 최덕철 씨는 2020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매일 보는 홍석천 씨를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가이 포옹을 하는 그는 한때는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다.
매번 자신을 '백옥같이 곱다'는 의미에서 옥자라고 소개하는 백옥자 씨는 깜빡깜빡 멤버 중 유일한 홍일점이기도 하지만 '반가운 사람들만 있네'라며 언제나 웃는 낯을 놓치지 않는 멤버 중 가장 화사하고 따뜻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손님 한 명 기억하기 라는 미션을 손에 써왔어도 다음 날이면 그 조차도 잊어버리지만 계산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송은이도 버벅이는 손님들 밥값에는 '귀재'이다.
처음 멤버로 등장했을 때 다른 멤버들이 모두 '촬영하는 분'이야 하고 의아해 했던 김승만 씨는 이제 겨우 60의 '조발성 알츠하이머' 치매인이다. 예전에는 목회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1번 테이블 찾기가 제일 어려운 처지다. 그래도 백옥자 씨 못지 않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주변 인물들에게 '엄지 척'을 놓치지 않는 선량한 아저씨다.
날마다 새로운 일상 출근 첫 날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백옥자 씨가 '여기가 어디지?'하고 낯설어 한다. 그래도 주변 환경을 찬찬히 살피던 옥자 씨는 조금 뒤 '제주도'임을 알아챈다. 그래도 첫 날 두리번거리던 옥자 씨는 나은 편이었을까? 셋째날 함께 출근하던 깜빡깜빡 남자 3인방은 당당하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 옆의 까페로 들어선다. 들어선 다음에도 여기가 맞다는 세 사람, 과연 단 3일이라도 그들의 '서빙'이 순탄할까?
첫 날 화사한 분홍빛 앞치마를 장착한 네 사람, 옷 색깔에 대한 민망함도 저리 밀쳐두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앞서는 모습이다. 테이블 번호도 외우고, 해야 할 일도 숙지하고, 불안해서일까, 자꾸 아내와 딸을 찾던 한수 씨는 옆에서 옥자 씨가 괜찮다며 달래는 말에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개업한 식당, 다행히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렸다는 신혼 부부가 식당으로 입장한다.
경증이지만 치매인들을 주문서에 손님들이 체크만 하면 되는 시스템, 그런데 주문서가 때론 주방에 도착하지를 않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면 차례로 손님께 가져다 주는 과정, 식당 안팍으로 겨우 일곱 테이블인데도 한바퀴를 빙 돌거나, 식당 안의 1번을 놔두고 밖에 나가서 두리번 거리기가 십상이다. 3일째 되었어도 여전히 주문서를 가져다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 등장한 '동파육'을 비싸니 싼 거 먹으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손님 테이블에서 자신의 지나온 이력을 줄줄이 늘어놓기도 하는 등 '서빙'의 본분을 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하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4인방의 노력은 겨우 3일만에 능숙하게 자신의 동선을 자신에 맞게 '조직'해 낼 정도로 무람없이 자신들의 미션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런 해프닝에 대비해 작업 치료사를 비롯한 스텝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들이닥친 시간에 빚어지는 상황에 모두 대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주문을 잊은 식당이 가능했던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그러려니'하는 '배려' 덕분이었다. 수저를 안갖다줘도, '그림의 떡이네'하고 마주보고 웃는 부부처럼 손님들은 '깜빡 4인방'이 빚어내는 '실수 아닌 실수'들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런 '배려로 어우러진 장면이야말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통해 시청자들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였다는 외국인 아내는 백옥자 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라 한다. 어디 외국인뿐인가. 자신이 직접 만든 마카롱과 팔찌를 드리며 '응원'하는 모습들이 여전히 우리가 함께 어루러져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중 10%가 치매를 앓고 있다. 김승만 씨 처럼 조발성 알츠하이머까지 약 88만 명이 치매를 겪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가자 깜빡 4인방은 모두 내일도 출근하고 싶다고 한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경증 치매인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회적 인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시간은 의미가 깊다. 조금만 세상이 배려한다면 아직은 세상 속에 그들의 자리가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프로그램은 말한다.
특히 지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 출연했던 분의 등장은 감격스럽다. 시즌 1에 출연한 이래 뜨개질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으로 치매의 진전이 가속화되지 않은 모습은 뽀족한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 등불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김승만씨를 찾아온 아내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는 남편이 다른 사람같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던 덕철은 '내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라고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겨우 3일이었지만 늘 사회와 분리된 채 자신의 병마와 싸우던 이들에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다. 비록 그들이 이 시간조차 잊어버린다 할 지라도.
기차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인의 아들,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 가볼 정도라고 한다. 장래 희망은 기관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차라리 국토교통부에 들어가면 어떻겠니? 말인즉슨 '공무원'이 되라는 거다. 엄마는 사촌 형이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데 아직 자기 아들은 철이 없단다. 의대, 한의대를 목표인 세상, 초등학교 때부터 하다못해 공무원이라도 장래 희망을 삼아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지금 놀자'는 어린이 해방군이 '사상범'이 되는 시절이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이렇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날 선언'은 시작된다. '농사'가 사람들의 주된 '업'이던 시절, 몇을 낳고, 그 중 몇을 잃었고, 그래서 지금은 몇이 남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어른들은 이른바 아이들을 '케어'는 언감생심이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시절의 아이들은 한 반에 7,80 명 교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랐다. 하지만 이젠 지하철에 '임산부' 자리가 배려될 만큼 아이가 귀한 시절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도 낳을까 말까 한 아이가 귀한 시절에 자식은 그만큼 '투자 손실'을 피해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상정'하고 '조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맘'이 보편이 된 시대다.
서울대 나온 방구뽕은 왜 어린이 해방군이 되었나? 여기 잘 나가는 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한다. 그리고 학원에서 있는 동안에는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한다. 이 '강압적'인 학원이 엄마들한테는 인기가 좋다. 원장 선생님이 아들 셋을 다 서울대에 보냈기 때문이다. 극중 부풀려진 면은 있지만 서울대만 간다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만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는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서울대 간 막내 아들이 엄마의 학원 버스를 훔쳤다. 버스만이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을 '납치'했다. '방구뽕'이라고 이름조차 개명했다는 아들은 '어린이 해방군' 대장을 주장하며 재판에 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회의 사건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데는 자폐형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라는 인물을 박은빈 배우가 기가 막히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짓, 몸짓, 눈빛이 표현해 내는 우영우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은 스스륵 빠져든다. 그런 박은빈 배우의 캐릭터 우영우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9화에 등장했다. 방구 '뽕'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구교환 배우, 아마도 그가 아니었으면 '어린이 해방군'이라는 이 터무니없는 설정에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간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 그가 아이들과 한 일이라고는 술래잡기, 비석치기 등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에 나오는 그 별거 아닌 놀이들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 이 편의 제목 '피리부는 사나이'의 결말과 달리, 아이들의 가방을 혼자 짊어진 채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자신들을 찾으로 온 경찰들에게 제 발로 찾아내려온다.
하지만 이 잠시의 일탈에 부모들은 한결같이 들고 일어나 그를 법정에 세운다. 심지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며 탄원서에 사인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 잠깐의 일탈조차 세상의 속도에 뒤처질까 닥달하는 부모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아침에 눈뜨며 /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이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보물'이다. 놀기만 해도 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이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그 '보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아직도 그저 '방구'니 '똥'이니 그런 소리만 들어도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들, 그래서 방구뽕과 함께 '보물'같은 시간에 얻은 도토리 알을 소중한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방구뽕은 '보물'같은 '찰라'의 시간을 선사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그가 '납치범'이란다. 이 시대의 '만화경'이다.
어린이의 '인권'을 묻다 드라마는 학원 원장의 자부심인 서울대 나온 셋째 아들이 개명까지 하고 방구뽕이 되어 등장한 내막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로망인 '서울대'와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의 간극을 통해 그가 살아오며 무엇을 놓쳤는가그래서 뒤늦게라도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짚어보게 만든다.
어떻게든 감옥만은 안보내려는 어머니인 학원 원장과 한바다의 뜻과 달리,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은 구치소에서 '구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우영우 변호사는 방구뽕을 '사상범'으로 주장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은 최후 진술에서 말한다. '나중에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늦습니다.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니체는 말한다. 주사위 놀이, 그 단순한 놀이가 바로 '불투명한 미래 속에 던져진 불안한 삶'에 대한 '대비'라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놀이들이 '주사위 게임'과 같다. 그렇게 삶에 대한 'exercise'를 해보지 않은 채 부모가 마련해준 '학습'만을 하며 큰 아이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삶을 '재단'하려는 부모들, 그런 속에서 크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런 9화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10화의 지적 장애인의 서사와 연결된다. 지적 장애를 가져 1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신혜영(오혜수 분), 그녀와 사귀며 돈을 얻어 쓴 양정일(이원정 분)이 준강간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양정일은 신혜영의 말대로 '제비같은 새끼'이다. 하지만 그를 신혜영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같은' 신혜영의 보호자인 어머니는 그를 '준강간' 혐의로 법정에 세운다.
아이같은 수준의 지적 장애인, 과연 그녀는 '나쁜 사랑'도 할 수 없는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하겠다는 그녀의 엄마,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밤늦도록 학원에 보내는 이 시대 다른 부모들과 다른가? 드라마는 결론을 내렸지만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영우네 김밥 집에 나타난 엄마 태수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주었냐고. 1989년 채택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아동', 혹은 아동에 준하는 존재들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는가? 드라마는 묻는다.
거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앙'을 부르짖던 사람들, 그 추상의 대상이 '우영우'로 변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서울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그 어느 로펌에서도 오라하지 않았던 우영우 변호사, 그녀의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추앙'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7,8화 소덕동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소덕동을 왜 지켜야 하지? 소덕동은 작은 마을이다. 신도시를 위한 도로가 관통하게 될 처지에 놓인 노덕리, 이장을 중심으로 한 대책위원회는 '소덕동 도로구역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하기로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 사건은 이렇게 표현된다. 자로 잰듯 소덕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게다가 소덕동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아름드리 팽나무마저 뽑혀나가야 하는 '행정 편의적'인 결정이다. 심지어 그린벨트라 제대로 받기 힘들다던 보상금이 오를 지도 모른다는 태산의 '입김'에 소덕동 손흥민도, 소덕동 유진박도 등 소덕동 주민들을 콩가루처럼 뿔뿔이 흩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건이다.
그런데 돈 앞에 마을이 결딴나는 이 '도로'의 이름이 '행복로'인 건 아이러니하다. 신도시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소덕동 주민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팽나무는 '희생'되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상식'인 듯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인 결정'에 한바다의 호적수 '태산', 그리고 8회 말에 드러나듯 우여우의 엄마이자, 태산의 대표 변호사였던 태수미(진경 분)가 앞장선다.
물론 한바다도 이 소송을 수임하는 것조차 회의적이었다. 굳이 돈을 더 들여 행복로가 소덕동을 우회해야 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상황에, 소덕동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보여준다. 아직도 손흥민이니 장동건이니, 평범한 이들이 소덕동 안에서는 세상 의미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소덕동을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못됐지만 소덕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이다. 그런 소덕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이장님, 그런 소덕동에 한바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바위의 세상에서 계란의 선택? 소덕동을 관통하는 행복로 건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니 세상을 핑계댈 것 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묻는다.
소덕동 소송 사건이 펼쳐지는 가운데, 권민우는 우영우를 한바다 블라인드 게시판에 고발한다. 부정 취업이라는 것이다. 우영우의 아버지가 한바다 대표와 선후배 사이라는 걸 알게 된 권민우, 안그래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봐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매번 이의를 제기했던 그는 '낙하산'이라며 반발한다.
'부정취업'을 시인하는 우영우, 하지만 '봄날의 햇살'답게 최수연(하윤경 분) 블라인드 게시판을 보고 수근거리는 한바다 사람들 모두가 들리게 큰소리로 말한다. 그게 왜 부정취업이냐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나오고, 변호사 시험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낸 우영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이 애초에 '부정'한 거 아니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회는 이런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이란 화두로 대비시킨다.
'공정'이란 이름으로 한바다의 정당한 절차와, 그 허들을 아버지를 아는 대표의 도움으로 넘어온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그리고 소덕동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신도시 주민들의 편의와 경제적인 비용과 대비되는 소덕동이란 마을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와 정서, 그리고 오래된 팽나무 사이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말이다.
이런 건 어떨까? 7,8회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간 '짐작'했던 우영우의 친모가 드러난 것이다. 태산의 대표 태수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그녀는 정부 관계자와의 사전 검증에서 '혼외자식'이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넘긴다.
대학 시절 우영우 아버지 우광호와 사귀던 태수미는 막상 아이를 가지자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배경'이 된 태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그런 태수미에게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는 '아이'만이라도 낳아주고 가라고 눈물로 읍소한다.
아버지는 영우에게 '부정취업'의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며 자신이 보다 '정치적'으로 살아오지 못함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우영우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사법고시도 치르고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져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우영우에게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후회를 들으며 외려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한 한 청년 우광호 덕에 오늘의 우영우가 있음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며 태산의 대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을 뒤로 미룬 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를 키웠다. 자신의 어머니조차 돌봐주지 않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왕따 당하는 영우를 위해 동그라미네 동네까지 이사를 했다. 왕따의 경험으로 인해 영우가 유일하게 먹게 된 김밤을 말다 이젠 김밥집을 하고 있다.
모두가 조금 더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가 되려하는 세상에 영우의 아버지는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주는 부모가 없다면 세상에 그 기량을 펼칠 수 없다. 우리가 열광하는 우영우가 있기 위해서는 그 우영우를 깨질세라 보다듬은 아버지의 '계란'같은 선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 덕택에 우영우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승승장구'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선택은 돈 대신, 소덕동 사람들과 동산 위의 팽나무를 선택한 이장님을 비롯한 소덕동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돈, 편의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세상의 허들을 힘겹게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권민우처럼 나의 것을 '침범'하는 듯한 대상에 대해 예민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이 우영우를 '추앙'한다. 아버지의 후회처럼 좀 더 정치적으로 살고, 좀 더 편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계란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임'조차 마다하던 시니어 변호사가 소덕동 사람들을 보고, 소덕동 동산 위에 올라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사건을 기꺼이 맡은 것처럼,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영우를 길러낸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영우는 자신을 버린, 그리고 뒤늦게 자신을 스카웃하겠다는 엄마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한바다를 선택하겠다고. 한번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가장 통쾌한 계란의 복수'이다. 또한 소덕동 재판 역시 우영우 편 계란이 이겼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바위같은 세상을 살아내는 '계란'들의 이야기이다. 보다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며, 편의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는 곧이곧대로인 우영우의 신화같은 이야기에 감동한다.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계란'의 마음, 그 계란이 바위를 깨뜨리는 '순수의 신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당탕탕 vs. 권모술수?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와 권민우(주종혁 분)가 서로를 헐뜯으며 지칭한 말일까?
우영우는 최수연(하윤경 분)을 통해 전해들은 권민우의 별명 '권모술수'를 입에 올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ATM 기를 둘러싼 법정 싸움을 함께 맡게 된 권민우와 우영우, 그런데 1년짜리 계약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더 나은 실적을 쌓고 싶은 권민우는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우영우에게 전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긴 이화 ATM의 대표를 만나기 겨우 5분 전에야 자료를 전해주는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그의 연수원 시절 별명을 내뱉는다.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거뜬히 동료를 속이려는 권민우, '권모술수'라는 말이 딱이다.
권모술수 우영우? 하지만 5회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당탕탕 VS. 권모술수는 우영우와 권민우의 대립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우영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도 우영우는 아버지의 김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들어오며 다짜고짜 김밥이 비싸다고 난리다. 그러자 우영우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저런 손님을 두고 '진상'이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손님은 지금 나보고 그러는 거냐고 화를 벌컥내며 영우가 이 집 딸이냐고 묻는다. '손님, 다 드셨으면 그만 가세요,'라고 말하며 눈을 끔쩍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 한참을 눈을 껌뻑이던 영우는 나직하게 말한다. '네, 아저씨,'라고.
그런데, 이런 융통성이 다른 방향으로 발휘된다면? 안그래도 우영우의 '무단 결근'이 유야무야 넘아가는 상황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권민우였다. 더구나 1년짜리 계약직으로 무한 경쟁 궤도에 자신과 우영우가 놓여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영우를 배제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권민우의 방식에게 우영우가 경고하자, 권민우는 뭐하나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없다며 '우당탕탕'이라 맞불을 놓는다. 그 '우당탕탕'이 우영우의 '승부욕'을 불지폈다.
우영우가 맡은 사건은 ATM 기의 신기술을 둘러싼 업계 1,2위의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 사건이다. ATM 기의 직원 횡령을 막기 위한 카세트 인식 신기술, 과연 그것이 이화 ATM 기의 독자적인 개발인가를 둘러싼 공방이다. 이화 쪽은 자신들의 기술팀이 몇 년에 걸쳐 애를 써 만든 제품이라 하고, 그런 이화의 주장에 금강은 이미 미국에서 개발된 오픈소스의 기술이라 맞대응한다.
드라마는 두 업체 간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과정에 놓인 '변호사' 우영우의 진실 찾기로 이어진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는 우영우, 늘 '팩트'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극우뇌형 인간' 우영우 입장에서는 '거짓'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권모술수'가 난공불락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늘 우당탕탕 거리며 '진실'을 향해 '직진'하던 우영우가, 권민우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 '진실' 앞에서 '네, 아저씨'같은 모습을 보인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드러내는 '바디 랭귀지'를 고스란히 보이는 이화ATM 개발진의 모습을 본 우영우는, 그에게 '진실'을 다그치는 대신, 진실을 피해가는 '팁'을 전수해준다. 덕분에 '연극 배우'처럼 변신한 개발팀을 증언대에 세운 우영우는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룬다.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도산' 위기까지 처한 상대 기업 대표가 우영우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는 그녀가 두 눈 질끈 감은 현실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다. 연극배우처럼 천연덕스럽게 거짓 증언을 한 이화의 개발팀, 결국 우영우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뻔히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리고 편지를 본 권민우는 묻는다. 정말 몰랐냐고. 외려 니가 '권모술수'인 건 아니냐고. 아버지의 김밥집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했던 '예, 아저씨'처럼, 재판만을 이기기 위해 우영우가 눈감은 '진실'이 한 사업체의 '목숨값'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우영우의 고개가 떨구어진다.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 우당탕탕 우영우,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자신도 별명을 가지고 싶다던 최수연, 늘 성공과 배려 사이에서 늘 머뭇거리는 수연에게 우영우는 '봄날의 햇살'이라고 말한다. 손에 힘이 부족해서 병을 따지 못하는 영우 대신 병을 따주고, 학교 다닐 때부터 동료들이 영우를 따돌리지 못하게 애쓰고, 영우가 미처 못챙긴 정보들을 알려주었던 수연, 하지만 그래서 늘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밀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수연에게 영우는 말한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고 따듯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상대방의 눈빛을 보지 못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다던 우영우, 하지만 우영우는 '팩트'를 근거로 하여 그 누구보다 인간이 가진 진정성의 빛깔을 잘 파악한다. 그런데 그런 우영우조차도 '현실의 허들' 앞에서 '권모술수' 우영우가 되고 만다.
앞서 1회에서부터 4회에 이르기까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완수해내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녀의 별명, '우당탕탕' 우영우처럼 그 과정은 시끌벅적했고, 때로는 사표를 내던질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지난한 도정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우영우는 이제 또 다른 '미션'을 받는다. 그건, 그녀의 방에 이화의 대표가 걸어준 해바라기 그림처럼 세상의 햇살을 얻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기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또 다른 '허들'이다. 그 직업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영우가 겪고 있는 성장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만이 아니라, 우영우나, 권민우, 그리고 최수연 모두, 즉 이제 막 '세상'이라는 관문에 첫 발을 내딛은 청년들에게 던져진 공통 과제이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함께 수임한 동료에게 필요한 정보조차 나누어 주지 않거나 왜곡하며 '승부'를 거머쥐려는 권민우, 자신의 선함과 경쟁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최수연, 그리고 고지식한 우당탕탕 우영우조차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그런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미션은 생존과 경쟁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요즘 젊은이들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존재 대신 자신의 장애를 먼저 인지하는 세상 앞에 우영우는 사표를 던진 바 있다. 이제 스스로 '권모술수'가 되었던 우영우는 다시 도망치는 대신, 해바라기 그림을 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편지'를 그 자리에 건다. 과연 우영우의 다짐처럼 그녀는 세상을 따스하게 밝히는 봄날의 햇살같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또 다른 '우당탕탕'를 기대해 본다.
여전히 환타지 드라마 장르에서 홍미란, 홍정은 작가의 영역은 발군이다. 앞서 '호텔 델루나'라는 '연옥'과 같은 공간을 매개로 생과 사를 오가는 '인연'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홍작가들은 이번에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일찌기 <쾌걸 춘향> 이래로, <쾌도 홍길동>,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화유기> 등 잘 알려진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켜왔던 두 작가들은 이제 스스로 '고전'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른 듯하다. 작가들이 만들어 낸 '대호국'은 그래서 그 무엇이라도 가능한 공간이다. 이 곳에 왕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와 별개로 '송림'이라는 무협 집단을 설정하고 무공을 넘어선 환타지적 능력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서사를 진행시킨다. 여기에 '몸과 혼을 바꿀 수 있다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환술'을 통해 드라마적 갈등 요소를 극대화한다.
두 명의 홍작가들이 걸출한 건 매번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만들어 내는 데만 있지 않다. 그들은 2004년부터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시간동안 여전히 '청춘'의 서사를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다. 배우의 이름보다 '나상실'이라는 캐릭터 명으로 더 친숙해진 한예슬, 드라마의 제목이 곧 주인공 이름이었던 '미남이'의 박신혜, 1300살도 넘은 장만월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아이유 등, 당대 청춘 스타들은 모두 '통과 의례'처럼 홍작가들의 드라마를 거쳤다.
이번에도 아이돌 출신의 황민현과 아린의 출연이 화제가 된 드라마, 제작 초반 주연 배우 캐스팅의 잡음을 불식하고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건 안정적 연기력이 뒷받침된 이재욱과 정소민이다.
이재욱이 분한 장욱과 정소민이 분한 무덕이, 두 주인공은 대호국 명문가 장씨 집안의 아들과 그의 시종이라는 신분 상의 차이를 지녔지만, 그런 드러난 '상태'와 달리, 두 사람 모두 '갇힌 자'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갇힌 청춘 장욱과 무덕이 청춘(靑春), 푸를 청에 봄 춘, 이 한자음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춘'은 봄날의 푸른 싹처럼 거침없이 분출되는 젊음의 기운이다. 그런데 그 '분출'되어야 하는 기세가 갇혀있다면? 역사 이래 수많은 청춘들의 '불행'은 자신들의 뜻대로 그 청춘의 기세를 발산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처지에서 어찌해볼 수 없어 고통받는 청춘의 서사, 이보다 더 청춘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까?
<환혼>의 장욱과 무덕이 역시 그들이 가진 청춘의 기세를 제 맘대로 펼쳐낼 수 없는 처지라는 지점에서 '연'이 닿는다. 장씨 집안의 아들, 하지만 정작 집을 떠난 장욱의 아버지 장강은 장욱이 가진 '기문'을 막아버렸다. 당대 최고의 고수 장강이 막은 아들의 기문, 당연히 그 누구도 감히 장욱이 술법을 익힐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도울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어느날 저질 체력의 하인으로 장강 앞에 나타난 무덕이는 이 드라마의 주된 갈등 요소인 '환혼인'이다. 이름마저 '낙수', 그녀가 지난 자리에 사람들의 목이 떨어진다는 무림의 고수 낙수는 하지만 송림에 쫓겨 죽을 위기에서 눈먼 소녀 무덕이의 몸을 빈다.
무덕이의 육체에 갇힌 낙수, 아버지가 막아 놓은 기문으로 자신의 육체에 갇힌 장욱, 두 사람은 도련님과 시종으로 만났지만 14번의 파문을 거듭하며 무림의 세계를 익힌 장욱은 무덕이 안의 낙수를 알아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를 거두지 않은 송림의 사람들 대신 '낙수', 아니 낙수의 환혼인 무덕이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다.
남장 여자, 귀신을 무서워하는 호텔 지배인, 기억을 잃은 재벌 등 늘 '아이러니한 처지'의 주인공을 캐릭터화 시키는데 능숙한 두 홍 작가들은 이번에도 육체 안에 갇혀진 두 남녀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특히 여주인공의 색다른 캐릭터에 독보적인 작가들 답게, 시종이자, 스승인 무덕이라는 신선한 여성 캐릭터를 풀어나간다.
장씨 집안의 아들이라 송림의 내노라하는 스승들을 다 '섭렵'했지만 그들 모두 정작 장욱의 '기문'을 열어주려 엄두도 내지 않는 상황, 하지만 무덕이는 달랐다. 물론 무덕이의 다름은 그저 도련님 장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고수의 경지에 이르면 그의 '기력'으로 저질 체력의 육체 속에 갇힌 낙수 자신이 가진 본래의 '무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욱의 스승이 된 무덕이는 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허세'라며 주저앉히는 다른 송림의 스승들과 달리, 그의 '기세'를 인정하고 복돋아 준다. 심지어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아이만 카우는 '스파르타식'으로 독약을 먹여 송림에서 기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장욱을 사지로 몰아넣어 외려 그걸 통해 장욱의 '살길'을 도모하는 '극한의 교육'을 행한다. 그건 늘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왔던 '낙수'이기에 가능한 교육이다.
죽음의 위기를 통해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기문을 열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무덕이 안의 낙수, 그렇게 남들은 '허세'라던 자신의 열망을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장욱은 '무덕이'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나간다. 그저 장씨 집안의 아들로 허세나 부리며 살아가라는 장욱을 무술에 대한 열망을 지닌 한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해준 사람이 무덕이가 처음인 것이다.
또한 무덕이 역시 오랜 시간 홀로 수련해 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만을 상대하던 고독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왔는데, 위기의 상황에서 기꺼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장욱에게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일찌기 가족들을 잃고 복수를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그녀를 '보호'해주려고 한 사람은 장욱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정하고 허용하지 않는 세상 속에 서로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신뢰', 그리고 차츰, 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애정'의 걸음을 옮긴다.
물론 드라마는 장욱과 그의 스승을 자처한 무덕이, 그 안의 낙수라는 두 주인공의 인연을 중심으로 풀어가지만, 거기에 서로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낙수와 서율(황민현 분), 무덕이를 '똥무더기'라 부르지만 어느덧 그녀를 신경쓰고 있는 세자 등, 무더기를 중심으로 한 남성 캐릭터들이 포진한 '역할렘물'의 요소도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이다.
물론 거창한 무림의 세계, 그리고 환술이라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표방했지만 정작 드라마는 중국 무협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낯이 익다. 또한 환술 역시 새로운데 어딘가 본 듯한 술법이다. 또한 송림을 배경으로 한 무술의 쟁투를 그리지만 스토리의 진행은 홍 작가들 특유의 치기어린 대사 들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이제 기문이 뚫려 매회 무공이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장욱과 그런 장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승 무덕이의 환타스틱한 러브 스토리는 본격적인 괘도에 들어선다.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는 감정을 잃은 검사, 그렇다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이다. 뇌수술로 인해 감정에 취약해진 그는, 외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삶의 무기로 삼았다. '감정에 구애없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그의 '수사' 덕분에 '숲'과 같았던 거대한 비리의 장막이 걷혀졌다. <비밀의 숲> 시즌 내내 시청자들은 로봇같던 황시목에 열광했다.
그러다면 이런 인물은 어떨까? 아버지가 첫 출근 날 입으라고 옷을 마련해 주었다. 그 옷을 사준 아버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 '기쁨'에 해당하는 표정을 찾는다. 6월 29일 넷플릭스와 ENA를 통해 공개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이다.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
첫 변론, 자기 이름이 호명되는데도 대답을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하던 우영우가 변론에 앞서 자기 소개처럼 한 말이다. 드라마는 우영우의 나레이션으로 아버지의 잊을 수 없는 어느 날로 시작한다.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이 늦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아버지는 '자폐'일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 한없이 시름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 그런데 주인집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다. '의처증'이 심한 할아버지의 오해였다.
자폐스펙트럼의 천재 변호사 그런데 두 사람이 큰 소리를 치며 멱살잡이를 하는 걸 충격을 받은 영우의 입에서 '상해죄는' 하며 형법 조항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오해를 사 억울해하던 것 따위, 아버지는 말문이 터진 딸이 기쁘기만 하다. 게다가 알고보니 딸은 법대를 다녔던 아버지가 쌓아둔 법전을 다 외웠다. 이렇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주인공 우영우를 소개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답게 그녀는 로스쿨 내내 1등,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하지만 법전의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이랑, 드라마 속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의 말처럼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변론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또 다른 영역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러나 천재적 능력을 지닌 우영우라는 인물이 과연 그런 '변호사'라는 '대인적 커리어'를 해낼 수 있을까? 이건 어찌보면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황시목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미션'이기도 하다.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과 영화<증인>의 문지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제작진의 말처럼 '박은빈'이 아니고서는 우영우가 불가능했다는 말처럼 배우의 몰입된 캐릭터화를 통해 우영우라는 인물을 설득한다.
'자폐'라는 '장애'라는 한계라기 보다는, 우영우와 늘 함께 유영하는 듯한 '고래'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인식과 세계를 가진 인물로 그려낸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그녀지만 '현실'의 세계에 어우러지기 위해 그녀는 주변인들의 '팁'에 의거하여 나름의 현실 적응 '루틴을 만들어 간다. 그녀가 앞뒤가 똑같은 자기 이름처럼 늘 외우듯한 '별똥별', '인도인' 금지 조항이라던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반향어' 금지, 그리고 '고래' 이야기 금지 처럼 말이다. 이런 우영우의 모습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서 외려 유품정리사로서의 직업을 성실하게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었던 주인공 한그루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준비된 루틴은 '회전문'처럼 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전문보다 우영우에게 더 '난관'은 제 아무리 로스쿨 일등이래도 '자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는 '감정'이 없어서, 외려 이것저것 눈치보거나 따지지 않고 비리에 '돌진'할 수 있었던 황시목처럼, '사건' 그 자체의 '진실'에 다가가는 우영우만의 '탁월함'을 내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영우가 자폐이면서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던 할아버지는 결국 참지 못한 할머니의 다리미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할머니는 '살인죄'로 기소된다. 법원은 할머니의 처지를 살펴 불구속 기소했고, 우영우 소속 법무법인 한바다는 공익재판으로 '집행유예'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영우를 시험해 보는 차원에서 맡긴다.
하지만 우영우는 사람들이 쉽게 보고 넘겼던 사건에서 다른 걸 찾아낸다. '형법'이 아니라, '민법' 사건이라고 우영우는 주장한다. 그저 '집행유예'면 된다는 법인의 판단이, 평생 주부로만 살아오던 할머니의 경제력을 상실케 할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살해 혐의는 있지만 정상참작을 한 집행유예가 아니라, 애초에 죄가 없다는 '무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이런 우영우의 '혜안'에 비로소 '편견'을 가지고 우영우를 바라봤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이 사과한다. 물론 그 순간, 우영우는 '속마음 얘기하기 금지'을 잠시 잊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라며 응수한다.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실례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사과를 했음에도 시니어 변호사는 바로 병원으로 피해자를 보러 가야 하는 우영우에게 '편견'의 발언을 하고 만다. 다시 사과하고 마는데, 그런 그에게 우영우는 말한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서 보통이 아닌, 그래서 늘 '편견'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하지만 또 한 편에서 어릴 적부터 본 책을 모두 기억한다는 천재적인 특별함, 이 상반된 '보통이 아닌' 우영우를 드라마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법정에 선 우영우를 본 아버지의 눈빛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 아버지처럼 우영우가 하나씩 그녀의 미션을 수행하는 지점에서 보는 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집행유예'라는 결과가 아니라 홀로 사실 할머니의 처지가 먼저 보이고, '너죽고 나죽자'는 할머니의 말보다 할아버지에게 볕이 들까 배려하고 잠이 깰까 조심하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 눈밝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때'가 묻지 않은 우영우의 편견없는 직시와 판단이 도달하게 되는 '휴머니즘'이 주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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