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인생의 통과 의례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나라가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나오면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을 하면 그 다음엔? 사람들은 쉬이 '남의 집 자식'들의 일생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런 세상에 그저 자식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취직'을 하고 '월급'까지 타온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찾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그걸 위해서라면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쯤이야 무엇이 문제랴 싶다. 가지고 있던 '땅'도 기꺼이 '기부'할 수도 있다. 바로 여주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이 일군 '기적'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농장이다. 아침이 되면 농장의 하늘이 저절로 열린다. 하지만 스마트 농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동'은 아니다. 익은 방울 토마토도 따주어야 하고, 가지 치기도 해주어야 한다. 딴 버섯을 분류도 해주어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방울 토마토와 버섯 농사에서 '필수적'인 일을 38명의 발달장애 직원이 해내고 있다. 

 

 

'발달 장애'는 유전적인 원인, 후천적인 뇌 구조 손상, 각종 신체 질환,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장애를 말한다.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다음 백과) 적절한 '자극'을 통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인 상황 그러기에 푸르메 여주팜의 직원 모집에 전국의 발달 장애인들이 모였다. 

명함도 있다. '나도 직원'
매일 오전 8시 30분 직원들을 태운 차가 도착한다. 자동으로 천장이 열린 방울 토마토 온실, 29살 이수연 씨는 곁순을 자른다. 9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재활원에서만 생활하던 수연씨는 공장 직원 중 꽤 높은 수준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 별로 편차가 심한 발달장애인들, 그녀가 생활하는 재활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은 92명 중 20명 뿐이다. 

가공실에서 세척 중 결함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26살 임의혁 씨의 원래 집은 구미이다. 산업공단인 구미에도 제조업체는 많지만 소근육을 움직이기 힘든 의혁 씨가 일할만한 곳은 없었다. '내 아이가 일을 할수 있다는데',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사를 했다. 

버섯팀에서 일하는 36살의 김동휘 씨,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한다. '늘 재밌대요'라며 웃음을 띠는 어머니, 동휘씨가 일을 하는 건 그저 동휘 씨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저 늦된 아이인 줄 알았던 동휘 씨, 다 큰 동휘 씨가 갈 곳이 있다는 변화가, 가족들의 삶마저 달라지게 했다고 한다. 

'동생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쟤가 나중에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발달장애인들의 타인 의존도는 80%이다. 푸르메 여주팜에서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 표준 메뉴얼이 어렵다. 이런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32살 덕희 씨는 오후반 직원이다. 농장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이제는 홀로 출근한다. 월급날 집으로 돌아온 덕희  씨가 개선장군처럼 말한다. '돈 벌어왔어!' 그런 아들을 보는 장춘수 씨는 너무나 기쁘다. 치료하면 수술하면 낫는 줄 알고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해봤다는 춘수 씨,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단다. 10년을 이 농사 저 농사 지어봤지만, 이게 혼자 해서는 안되는 일이구나를 절감하게 된 춘수 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고민하던 푸르메 재단을 만났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우선으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가 찾은 답이 ‘스마트팜’이었어요.” -임지영/ 푸르메재단 경영지원 실장


기꺼이 땅을 기부한 춘수씨,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을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스마트팜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억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구처럼, 한 사람의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뜻을 지닌 재단과, 독지가, 그리고 재원을 감당해준 기업과 은행, 그 모든 것을 현실적 과정으로 풀어낼 지자체 등 많은 이들의 뜻이 기적처럼 모아져야 했다. 그 '기적'의 결과물이 국내 최초 민, 관, 공 컨소시엄형 장애인 사업장 푸르메 여주팜이다. 

 

 

직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5일 하루 4시간을 근무하고 최저임금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5만 여명, 그 중 23.3%만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이, 가정이나 시설의 돌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아요.” -김동휘
“전에는 우울했는데 여긴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수연


평소에는 거의 말수가 없다는 덕희 씨, 그런 덕희씨가 동료들을 만나며 인사도 하고 말수가 많아진다. 심지어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린다. '부끄럽게 왜그래~', 그 전에는 쓰지 않았던 감정 표현의 어휘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시간이다. 

매달 25일은 월급날이다. 월급 명세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월급날 의혁씨가 은행에 들른다. '아파트를 살려고', 주택 청약을 들기 위해서이다. 직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버섯을 잘 따는 거예요',
'엄마, 이제 내가 일을 할게요',
'아빠 차 바꿔줘야지'. 

by meditator 2022. 6. 20. 21:41

생물종의 '멸종'은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멸종이 '인위적'이라는데 있다. 매일 150종, 매년 55,000 종의 생물이 멸종 중이다. 정상보다 1000 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인간도 그 멸종의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게 사라질 겁니다!'
2020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 NASA 등의 과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종을 '상징'하는 붉은 물감을 뿌려대다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시사 직격>의 다큐 제작진이 NASA 소속의 기후학자 피터 칼 머스를 찾았다. 그는 초조하게 말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확실한 경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정상적인 속도보다 수백 배나 빠르다고. 이걸 회복하는데에는 수백반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여섯 번째 대멸종을 수백 배나 빠르게 만드는 건 두말 할 나위없이 '화석 연료'에 의존한 인간의 문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 사회의 결정은 느긋하다. 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197개국의 정상들이 모였다. 석탄화력 산업의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단계적 감축을 하겠다는 의견 조정만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렇게 급속도로 진행되는 '여섯 번째 멸종'의 시대, 그에 반해 여전히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각국의 이해 관계만을 앞세우고 있는 현실에 기후 위기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지난 5월 30일 영국의 리치몬드 역에는 6구의 시신들이 놓여졌다. 브라질에서 벌목꾼 총에 맞아 숨진 사람, 미국 산불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사람 등  '기후 위기'로 죽어간 사람들이다. 잠시 뒤에 하얀 천을 씌운 시신이 움직인다. 기후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이렇게 '시신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프랑스 브장송 거리의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이다. 기습적으로 등장한 이들이 상점의 불을 끈다. 전자 광고판을 뜯어 게재된 광고를 버리고 대신 온난화 지구를 상징하는 붉은 원의 포스터를 붙인다. 이들은 지난 2018년 결성된 '멸종 반란' 그룹이다. 소멸을 상징하는 모래 시계를 내건 이들은 더는 어설픈 방법으로는 빠른 멸종의 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며 요란하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겠다고 선언했다. 멸종 동물의 죽음을 상징하는 가짜 피를 뿌리거나, 의사당을 점거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 '멸종 반란', 남아공에서 부터 호주, 그리고 아시아 등 84개국 1200 개 지부가 결성되었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장례식 퍼포먼스가 거행되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자 민주당을 점거하여 경찰과 충돌했다. 위법 행위도 불사하겠다는 기후 활동가들. 자신들에게 '절차'를 밟으라지만, 그 '절차'를 밟을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다는 활동가들은 시끄럽게 해서라도, 위법 행위를 불사하더라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다. 

'이 시기를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벌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곤충이 사라진다면 과연 인간은 '생존'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기후 위기는 북극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폭염으로 초과 사망자가 8천 명에 이르렀는데, 이게 '인간 멸종'의 신호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 '멸종'은 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빨리 다가간다니. 

경남 통영 20여년 동안 어업에 종사한 어부의 통발이 비었다. '잡을 게 없어요.'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연안 양식장도 다르지 않다. 6월 말까지 수확하던 멍게 어장이 5월 말에 막을 내렸다. 2년 이상 키워야 하는 멍게 양식, 지난 여름 고온으로 수확량이 70%나 줄었다. 전세계의 해수면 온도가 0.52도 상승하는 동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는 1.35도 상승했다. 매우 빠른 속도다. 

그런가 하면 육지에서는 가뭄으로 21세기에 기우제를 지낼 정도다. 평년 절반에 못미치는 강수량, 강원도 고냉지 배추가 노랗게 타들어 간다. 건조한 기후는 '산불'을 초래한다. 3월 경남 밀양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건조주의보 상태에 강한 바람으로 축구장 1000 개 면적을 72시간 동안 태우고 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동해안에서도 10일 이상 산불이 이어져 1700여 억의 손해가 났다. 평생을 살아온 집들이 '소실'되었다. 6월초 이미 30도를 육박하는 기온, 그러면 건설 현장은 50도 가까이 올라간다. 지난 해 갑자기 올라간 더위로 건장했던 40대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5월에 발생한 사고였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문제는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3일 5살 이하 아기 40명을 포함한 62명의 어린이들이 헌법 소원을 냈다. 세계 최연소 당사자들이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이 앞으로 성장하고 살아나갈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청년들이 주축이 된 기후 행동 페스티벌에서는 '기후 정의'를 외친다. 앞선 세대들이 전기를 쓰고, 고기를 먹으며 탄소를 배출해서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뭄, 산불, 멸종 등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물려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정책에 정작 자신들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 중 64.5%가 현재의 기후 위기를 '나의 문제'라 인식하고 있다. 2020년 출생한 세대는 평생 30여 차례의 기후로 인한 위기를 겪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는 1960년 생보다 7배나 많은 예측 결과이다. 40세 이하의 세대는 전례없는 기후 위기로 인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것이다. 

내년에 꽃이 안피면 어떡하지? 
이런 현실에 깨었는 이들 중에는 '우울감'을 호소하기도다. 18세의 도영이는 기후 재난 뉴스 등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고 말한다. 막막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잠이 안오기도 한단다. 이렇게 도영이와 같은 증상이 바로 '기후 우울증'이다. 

2011년 토마스 J 도허티 교수가 처음으로 '기후 우울증'을 정의했다. 젊은이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느끼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기후 위기인 시대,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자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문명' 속에 사는 자신이 또한 기후 오염의 원인이며,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져서는 안된다고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18살의 도영이는 자신의 우울감을 또래 청년들과 함께 기후 행동에 참여하며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 석탄 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두산 중공업에서 시위를 벌인 기후 활동가들은 천 만원이 넘는 민사 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이지만 '늘 하던대로 하면 결코 바뀌지 않는다'며 더 과감한 행동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이것이 무기력과 허탈감을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고 말한다. 젊은 청년을 주축으로 한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직도 환경 에너지에 기반한 전기료 2배 인상에 주춤거리는 현실은 실천과 우선 순위의 간극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by meditator 2022. 6. 18. 02:15

공교롭게도 mbc와 sbs에서 새로 시작하는 금토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이 '동일'하다. '변호사'다. mbc의 <닥터 로이어>에서는 모처럼 돌아온 소지섭이 변호사 한이한이 되어 등장한다. 반면, sbs의 <왜 오수재인가>에서는 서현진이 제목의 그 '오수재 변호사'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변호사'인데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난감하다. 의사였으나 변호사가 된 한이한, 변호사였으나 이제 서중대 로스쿨 리갈 클리닉 장을 자임하고 나선 오수재, 그들은 저마다 신변상의 불이익을 겪으며 자신이 하던 '일터'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난 처지가 되었다. 

 

 

법정은 수술실과도 같다. 
소지섭이 분한 한이한은 그 하나도 어렵다는 일반 외과와 흉부외과 두 개의 전문의 자격증을 지닌 더블 보드(doubLe-board )였다. '괴물 칼잡이'라는 별명답게 반석 병원의 수술실에서 날렸다. 강행군의 수술 일정에서도 끄덕없이,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도 결단력있는 시술로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고스트 닥터'이기도 했다. 반석 병원 원장 대신, 그리고 그의 아들이 저질러놓은 상황을 수습하는 그림자였다. 빚을 갚겠다던 원장, 원장 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이한에게 흉부외과 과장 자리가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연인 금석영(임수향 분) 동생의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한밤중에 불려가 했던 의문의 수술 후 한이한은 모든 걸 잃었다. 그에게 '최고'라고 칭송하던 이들이 법정에서 무리한 수술을 한 협잡꾼으로 한이한을 몰았다. 

의사직을 잃고 그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한이한이 드라마의 첫 회, 변호사가 되어 등장한다. 더구나, 수술실에서 그의 퍼스트이자, 둘도 없는 친구라 여겼던 박기태의 법정에 나타난다. 선고를 받던 박기태가 쓰러지자 느닷없이 등장한 한이한이 가방을 열고 메스를 꺼내 응급집도를 하는가 싶더니,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의 변호사란다. 자신을 '배신'한 이를 변호하는 전직 의사, <닥터 로이어>는 자신이 한 수술이 올가미가 되어 모든 것을 잃은 전직 의사였던 변호사를 내세워 의료 사고 속 진실을 캐내고자 한다. 

제가 알아서 돌아갈게요
반면 오수재는 이미 TK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스타변호사이다. 말이 최태국(허준호 분)이 대표이지, TK로펌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오수재의 손을 통해 승소한다. 하지만 그녀가 고졸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 그런 가운데 그녀가 몰아부쳤던 피의자가 자살을 하고, 그걸 방조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오수재는 스스로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자원한다. '읍참마속',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통해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재고하고 TK로펌에 돌아가 그녀가 원하던 대표 자리와 700억이 걸린 한수 바이오 매각 총괄을 완수하겠노라고 장담한다. 

'독한 년, 재수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끄덕없는 오수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의 가장과도 같은 존재다.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입지전적인 인물로 능력있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닥터 로이어>의 한이한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 사고로 인해 가족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시신을 한이한이 거두었다. 그리고 '고스트 닥터'를 자임하며 그 자신의 능력으로 '흉부외과 과장'의 고지를 거머쥐려 했다. 

 

 
또 이경영? 
한이한과 오수재, 두 사람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한 계단씩 올라와 정상의 자리에 서려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술실의 괴물같은 한이한의 실력도, TK로펌의 대표 변호사 자리를 넘보는 오수재의 능력도 그들을 '수단'으로만 쓰려는 법, 의학계 카르텔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악의 축 조태섭이던 이경영은 드라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속작 <왜 오수재인가>에 한수 그룹 회장으로 등장한다. 그와 TK로펌의 최태국, 대선후보 이인수는 고향 선후배 사이로 만난 정,재계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경영의 '열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시간대 방영하는 <닥터 로이어>에서는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은 과거 반석재단의 병원장이자, 현재 복지부 장관 내정자이다. 

흔히 회자되는 말로, '또경영'이라는 말처럼 전작, 동시간대 방영작에서 이경영은 활보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경영'이 익히 분해오던 그 캐릭터로 '악'의 세력이 다 설명된다. 반석 재단 이사장의 딸과 결혼 후 흉부외과 과장 자리를 거쳐 오늘의 반석 재단을 만든 사람, 하지만 위기의 재단 상황에서 의문의 인물에게 이미 한이한이 수술했던 금이영 동생의 심장을 불법적으로 제공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왕국 반석재단을 지킨다. 또한 그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수술에 참여했던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왜 오수재인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경영이 분한 한수그룹의 한수 바이오를 매각하여 정치자금으로 쓸 거라는 '비밀'은 오수재에게 '뇌관'으로 작용한다. 그녀가 거머쥔 한수그룹의 비자금 문서가, 곧 더는 그녀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레드 카드'가 된 것이다. 

입지전적인 인물, 한이한과 오수재, 그들은 스스로 능력자이지만, 그들이 잡은 줄은 썩은 줄이다. 그 줄을 잡고 오르려다 나뒹군 두 사람, 그래서 한이한은 변호사가 되었고, 오수재는 로스쿨 리갈클리닉 장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먼치킨' 캐릭터이지만, 오수재 말대로 그들은 '바닥'에서부터 다시 자신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올라가야 할 곳이 어딜까? 한이한은 왜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변호'하려는 것일까? 오수재의 뜻대로 다시 TK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되는 것일까?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가 간 수술, 그 수술은 이미 이식된 심장을 꺼내 다른 이에게 이식하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한이한은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이제 그는 '메스' 대신 법정에 서서, 자신이 다하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 그런 그의 맞은 편에는 동생을 잃고 의료 사고를 일으키고도 말 한 마디로 빠져나가는 이들을 '징죄'하려는 검사 금옥영이 있다. 마치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난 '원수'가 된 두 사람, 이들 두 사람이 서로 맞은 편에 서서 도달하는 '법정의 진실'은 고스트 닥터로 살아온 한이한의 '참회'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수재의 '참회'는 사랑으로? 국선 변호인 시절 오수재가 믿어주었던 소년은 자라 이제 로스쿨 학생이 되었고, 능력있지만 '심장'을 잃은 오수재에게 자꾸 당신을 믿는다며 그녀의 '양심'을 찌른다. 성범죄의 피의자에게 '자신을 변호사로 쓰지 않았'기에 이길 수 없다고 냉소하던 그녀는 이제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 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편에 선다. 자신의 능력만을 믿던 그녀에게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나만 잘 나가'하던 이들, '나만 잘 되면 돼'하던 이들의 '능력자 버전 개과천선'을 다룰 드라마, 경쟁작을 넘어 두 드라마의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22. 6. 9. 16:29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철로 만든 길,  '철도'를 놓은 것이다. '근대' 문물의 빼어난 상징 철도, 하지만 그 '근대'의 길을 통해 '제국주의'는 달렸다. 조선을 관통한 철도는 '만철'(만주 철도)로 뻗어나가 대륙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실어날랐다. 

지난 5월 11부터 방영한 <5원소, 문명의 기원> 5부작은 물, 불, 흙, 철, 나무 다섯가지 물질을 통해 인류 문명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양과 서양, 오늘날과 과거를 종횡무진하며 물질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중 4부는 '철'의 역사이다. 다큐는 정의한다. 인류는 여전히 '철기시대'라고. 

 

 

정복과 투쟁의 도구, 철 
서기 43년 로마는 영국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350년간 영국을 점령하고 정복해 나갔던 로마, 하지만 로마의 정복에도 끝은 있었다. 우리가 미술 시간에 만난 그 '아그리파 장군'은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 스코틀랜드 하드리아누스 빙벽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20세기의 발굴단은 당시의 인치투털 요새 구덩이에서 수레와 함께 약 100만 개의 철못을 발굴했다. 무거워서 차마 가지고 후퇴할 수 없었던, 하지만 적에게 '철'을 넘길 수 없었던 로마군은 '철'을 숨겼다. 

벨기에 브뤼셀에 아토미움은 철의 분자구조를 1650억배로 확대시킨 건축물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의 분자구조를 알았다. 하지만 전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매우 민주적인 금속 '철광석'을 인류는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강인한 금속, 인류의 역사를 철을 활용하기 위한 실험와 도전의 역사였다. 또한 철을 차지하기 위해, 철을 가지고 싸웠던 역사이기도 했다. 

철을 향한 그 비밀의 문은 우주에서 비처럼 내렸다. 대기권을 뚫고 철, 니켈의 합금 '운철'이 쏟아져 내렸다. 지구 상의 철이 '산소'로 인해 산화된 철광석의 존재로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대기권을 뚫고 '환원' 과정을 거친 운철은 '철기 시대' 이전 양질의 철을 얻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철은 투탕카멘의 단검처럼 '신성한 존재'의 것이 되었다. 

기원전 12,3세기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은  철을 두드려 '강철'을 만들 줄 알게되었다. 철기를 녹일 줄 알게 된 인류는 무엇을 했을까? 이것으로 바퀴살을 만들고 전차를 만들었고,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 이 강력한 '철'에 근거해 탄생한 국가는 무려 500년 동안 전쟁과 무역을 통해 그 영향력을 뻗쳐 나갔다. 

 

 

하지만 '철'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산화', 부식되고 녹이 스는 것이다. 그 '단점'을 해결한 건 인도 문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의 제철 기술을 전수받은 인도였다. 철을 흙으로 만든 도가니에 녹여 두드려 만드는 당시로서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우츠 강철'이 만들어 졌고, 인도 최대의 수출품이 되어 7세기의 인도양을 지배했다. 우리가 아는 신밧드의 모험은 그 교역이 만들어 낸 문화적 상상력이다. 

수출된 인도의 강철은 무엇이 되었을까? 시리아로 넘어간 우츠 강철은 아름다운 물결 무늬를 띤 다마스커스 검이 되었다. 내려쳤을 때도 깨지지 않고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잘라낼 수 있는 예리한 검은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전승 무기가 되었다. 

철의 역사는 이처럼 전쟁의 역사이다. 더 강력한 철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는 단단한 무쇠인 생철과 쉽게 구부려지는 연철을 합친 앞선 기술의 칼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볏짚을 철 속에 섞어 접고 때리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본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이런 칼은 어떨까? 대만의 전통 칼 제작에서는  무연고 시신의 뼈를 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의 뼈에 있는 '인' 성분이 철의 강도는 높인다는 중국 전통의 제작 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런 갖가지 전통적 제작 방식은 모두 화학도, 현미경도 없던 시절 더 강한, 더 유연한 철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 그 결과물들이다. 

발견과 개척의 선봉, 철 
기원전 3000년 경 터키에서 시작된 제철 기술은 세계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중세의 갑옷과 전투씬은 철이 바꿔놓은 풍경이었다. 철은 무기만 되었을까?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하루와 또 다른 하루 사이 '불가지'의 세계 속에서 인류는 24시간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다. 또한 17세기 바다로 향한 선원들은 나침반 만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보다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1714년 영국 의회는 상금 2만 파운드를 내걸고 정확한 경도 측정 도구를 공모했다. 뉴턴조차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은 불가능하다'라고 장담하던 시대,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목수이자 시계공이었던 존 해리슨이 철제 스프링을 철판에 감은 시계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시계, 그 철판에 감은 그 철제 스프링이 없었다면 근대의 발견은 존재할 수 없었다. 

 

 

또한 산업 혁명의 견인차가 된 철로 만든 보일러는 어떤가? 철로 만들어진 선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는? '석탄'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꾼 1차 산업 혁명의 '견인차'는 '철'이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철로를 깔 수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혁신'이 될 수 없었다. 

인류의 발전은 '철'로 만든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철은 문명의 도구였고, 다른 이름으로 '전쟁의 도구'였다. ebs 다큐 프라임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성격을 규명한다. 특히, 4부 철은 인류 발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전세계 그 어느 곳에나 존재했던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되었다. 철로 인해 세계는 연결되고 문명은 뻗어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확장과 발전의 결과물은 평화롭지도 호혜적이지도 않았다.  '철'의 문명 위에 서있는 오늘, 과연 이제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나갈 것인가. 


by meditator 2022. 6. 7. 19:32

지난 5월 8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된 <뜻밖의 여정>은 2022년 아카데미상 시상자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 윤여정 배우의 '여정'을 담은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다. '미국 구경'인가 싶었는데 뜻밖의 여정에 당도하게 된다. 바로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시간'이다. 

 

 

여우조연상은 어떻게 왔는가 
2021년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의 수상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시 윤여정이다, 고진감래다, 혹은 참 운이 좋았다? <뜻밖의 여정>을 보면 윤여정 배우에게 <미나리>라는 영화가 온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윤여정에게 <미나리> 대본을 가져다 준 이는 '이인아씨'이다. 그녀는 20년 전 산드라 오가 유명세를 얻기 전 윤여정과 산드라 오가 동반 출연하는 작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진행되던 작품은 '무산'되었고 당시 윤여정 배우를 만나러 한국에 와있던 인아씨는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었다.

배우 자신도 작품이 엎어져 황망했을텐데, 외려 윤여정 배우는 낙담한 인아 씨에게 밥을 사주며 독려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인아씨는 '윤여정이란 배우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런 배우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더해져 시간이 흘러 <미나리>의 대본을 여정 배우에게 가져다주도록 했다. 

<미나리>를 번역한 홍장여울은 어떤가. 5회차 <뜻밖의 여정> 내내 홍장여울은 윤여정 배우가 머무는 집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번역가라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두 사람의 인연 역시 길다. 10여 년전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했던 윤여정은 연출부 막내로 동분서주하던 홍장여울을 눈여겨 보고 불러 밥을 사주었단다. 이런 식이다. 윤여정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만든 인연은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가 아낌없이 베푼 밥값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뜻밖의 여정>이 아니더라도 윤여정 배우의 넉넉한 인심은 오래전부터 회자됐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아낌없이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던 윤배우, 그 중 한 사람이던 이재용 감독과 함께 찍은 <죽여주는 여자>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판타지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나영석 피디는 말한다. '말 그대로 뜻밖의 여정'이라고. 윤여정 배우와 함께 한 아카데미 시상식 구경인 줄 알았던 프로그램이 오랜 지기 꽃분홍 여사에서 부터 동생 친구 정자씨, 밥 사주던 인아씨, 홍장여울 등 여정 쌤의 스태프, 그리고 아들 친구 에락남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는 프로그램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밥은 잘 사잖아', <미나리>라는 영화를 함께 한 이들, 그리고 미국까지 와서 의상을 조율해주는 의상 담당가 등 모두가 그녀의 밥 친구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에서 '밥을 잘 산다'는 윤여정 배우의 자화자찬이 새롭다. 내 주변에는 '또라이'밖에 없다는 윤여정 배우의 친지론, 그런데 그런 배우의 말을 홍장여울은 '또라이를 수집'하시는 거 같다고 번역한다.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대신, 기꺼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인맥'과 '의리'에 공들여 온 여정의 결과물이 '아카데미'인 것이다. 

마흔의 피디가 전하는 나이듦의 고민에 '내가 나이들어 봐서 아는데'라는 '라떼는 말이야' 대신, '나 역시도 나이듦은 처음이라'며 '정답은 없다'라는 낯선 삶의 행로, 그 동반자로서의 여정 배우의 진솔한, 그리고 겸허한 토로가 외려 나이를 막론하고 윤여정 배우와의 '교류'의 벽을 허문다. 그녀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LA의 윤'스 스테이, 어떻게 나이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이 보여진다. 

 

 

74세의 현역, 윤여정 
폐지 수집 생계 노동을 하는 노인들의 다큐를 보다 놀란 장면이 있다. 작년, 재작년 교통사고를 당했다던 80세의 할머니가 폐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막 뛰셨다. 폐지를 줍는 사회적 존재를 차치하고, 그 순간 그 분은 나이가 무색하게 '현역'이셨다. 외람되지만 <뜻밖의 여정> 5부작을 보며 그 80노인의 생생한 삶의 열정을 윤여정 배우를 통해 새삼 확인하였다. 

물론 윤여정 배우를 아끼는 한참 후배 홍장여울은 이제 그만 너무 애쓰지 마시고 건강을 챙기시라는 말끝을 눈물 때문에 마치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후배의 우려가 무색하게 윤여정 배우는 10시간에 가까운 아카데미 시상 여정의 강행군을 무리없이 소화한다. 그녀의 나이 74세이다. 우리 사회 74세의 노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라고 생각해 보면 그녀의 '현재'는 경이롭다. 

하지만 그 '경이'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건 LA까지 챙겨온 '아령' 등으로 시작하는 운동이다. '근육'은 나이가 없다더니 거의 뼈밖에 없는 듯한 체격임에도 카메라 셔터 앞에서 꼿꼿하게 당당한 에티듀드를 보여주는 그 '저력'의 시작이다. 

어디 체력만인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서사를 다룬 <파친코>와 관련된 인터뷰를 위해 이면지 몇 장에 빼곡하게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나이들어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캐서린 햅번의 자서전을 인용하여 배우라는 직업의 고달픔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일찌기 '꽃보다 누나'부터 간간히 엿보이던 '성실한 독서가' 배우의 면모가 드러났다. 웃자고 시작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치열했던 인물 상식 퀴즈에서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우수한 상식을 자랑하던 그 '내공'은 윤여정이란 배우의 현재가 그저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Too Often, as we get older, we stop having goals in our life. And Yuh-jung unnie shows us that we are never too old to accomplish big things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무언가를 이루기에 우리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뜻밖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건 74세의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앞날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역 배우 윤여정이다. '모범생'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 말처럼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터 화보 촬영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나이든 노인' 대신, 여전히 74세의 현역으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상 하나도 그저 트로피를 전해주는 게 아니라, 수화까지 준비해간 '계획성'은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여전히 '현역' 배우이기에 아칸소 구석에서 집단 합숙을 하다시피 한 <미나리>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 처음으로 용감하게 '박카스 아줌마'의 서사를 그린 <죽여주는 여자>의 시도는 또 어떤가. 그런 그녀를 에미상을 탄 에니메이션 디렉터 70세의 또 다른 현역 김정자 씨는 '노년'의 길잡이가 되어 준 선배로 존경을 표한다.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는 윤여정 배우, <뜻밖의 여정>은 나이든 배우의 후일담이 아니라, 여전히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의 한 사람을 만난다. 나이듦은 숫자가 아니라, 더는 노력하지 않을 때 오는 것이라는 걸 여정의 여정은 말한다. 

by meditator 2022. 6. 6. 16:53

이전 살던 동네는 빌라촌이라 '분리수거'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쓰레기 배출 봉투' 외에도 박스며, 병 등이 즐비했다. 그걸 노인분들이 줏어갔다. 배낭에, 그게 아니면 리어카에. 그저 한 두 분인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기력이 없어 늦게 돌아다니시는 분은 허탕치기가 십상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도시의 노인들이라니.  5월 31일 방영된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처음으로 노인들의 '폐지 노동'을 주목한다. 

 

 

돈이 되는 건 다 줍지 
지난 1월 대구 서문 시장 새벽 5시, 77세의 김은숙 노인이 인적없는 시장을 돈다. '생활비 주는 사람이 없잖아,' 2017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는 노인은 이 일로 에미, 에비없는 손자를 키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씩씩하다고 하지만, 혼자서는 많이 울지, 왜 우냐고, 생활 자체가 슬프잖아. 일은 황소같이 해도 먹을 걸 배불리 먹어봤나, 내 속은 다 썪는거지.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야.' 새벽에 나온 노인은 시장이 끝난 시간에도 여전히 시장 골목을 서성인다. '힘들지, 나오기 싫지. 먹고 살아야 하잖아,' 그러면서 노인은 버린 담요를 챙긴다. '이게 다 돈인데,'

우리나라에서 생계형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은 얼마나 될까? 정치 일선에 나섰던 김종인 대표는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의 국가, 우리나라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200만은 될거라고 했다. 반면, 2019년 한 지자체의 조사에 다르면 6만6천 명이라고도 한다. 200만과 6만의 현격한 격차, 그 간극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거리의 한 풍경이 된 듯한 폐지줍는 노인들, 하지만 '국가'는 한번도 그들을 주목한 적이 없다. 

<시사 기획 창>은 한 달동안 폐지줍는 노인들께 GPS를 부착하여 그 분들의 이동경로와 노동시간을 확인, 생계형 폐지 노동의 실태와 환경을 조사했다. 한 달 간의 조사를 통해 생계형 폐지노동의 몇 가지 특성이 드러났다. 

 

 

우선 노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평균 13km, 때로는 26km의 장거리를 이동한다. 축구장 4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또한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일한다. 평균 노동 시간이나, 평균 노임이 무색한 노년의 강고한 노동, 그건 돈때문이다. 

80세의 박복자 할머니는 가까운 고물상을 놔두고 빙 돌아 먼 곳의 고물상을 찾는다. 먼 곳이 50원씩 더 쳐주기 때문이다. 그 50원 더 주는 고물상에서 할머니가 받은 돈은 8000원 남짓이다. 쉬지않고 하루 종일 일한 값이다. 70살의 조규석 씨 역시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폐지를 줍는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도 힘들어.'

그래서 폐지줍는 노인들에게 '진통제'는 일상이다. '아플 때 제일 힘든건 폐지를 줍지 못하니 돈을 벌어서'라는 노인들은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으며 일을 한다. 2020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햇다는 74세의 김윤식 노인은 그래서 불과 2년 만에 55kg이던 몸무게가 44kg이 됐다. 

진통제로 버는 하루 9000원
일인당 평균 13kg의 폐지를 나르며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을 일해서 노인들이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평균 64만 2000원이다. 하루로 치면 9480원, 2022년 최저시급이 9160원이다.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노인들은 당연히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4시간째 쉬지 않고 일을 하던 75세의 문창기 노인은 오후 2시 넘어서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돼지 족발이 먹고싶다는 노인, 하지만 힘들게 번 돈, 막상 쓰려니 아깝다고 한다. 그나마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란다. 적게 주으면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그래도 버텨주면 다행이다. 82세의 정시화 노인은 대장암 수술을 해서 받은 음식들이 그림의 떡이다. 겨우 물말이 밥알을 삼키는 노인은 돼지뼈라도 고아서 먹었으면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가만 누워있으면 '이래 뭐하러 사나'하는 마음이 자꾸 드니 문 밖을 나선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들은 대로 이면의 작은 골목들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길은 좁고, 사람과 차량이 뒤섞여 다니는 곳이다. 이 골목을 폐지를 찾으러 수십번을 반복하여 오간다. 박복자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연이어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넘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은 언감생심, 며칠을 집에서 누워있던 할머니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길로 나섰다. 차량으로 등록된 리어카, 차량들 사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한 달여의 촬영기간, 결국 한 노인은 차를 피하다 골반이 으스러졌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 그분들의 노동은 그저 당신들의 생계일 뿐일까? 아파트촌이 아닌 곳은 대부분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나뒹구는 박스들, 공공의 수거가 지나간 자리, 그 부족한 부분을 노인들이 채운다. '모으면 자원, 버리면  쓰레기', 김은숙 노인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몰린 노동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어 하는 힘든 일일 뿐이다.

분리수거의 사각지대를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한 해 86만 7천 톤의 폐지들이 수거된다. 그 중 40만 8천톤이 재활용용으로 수거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전체 폐지의 60% 이상을 노인들이 수거한다. 폐지 노동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적인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보상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게 되지 않을까라는 일각의 우려, 하지만 노인들은 말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진통제 투혼으로 이어지는 나날, 대부분의 노인들이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길에 나선다. 전문연구 기관과 머신 러닝을 이용해 도출한 폐지 노동 노인 인구는 만 오천 명이었다. 과연, 겨우 만 오천 명뿐일까? 존재하지만 존중되지 않는 노인들의 생계형 노동, 그런 사회적 노동에 대한 사회의 외면이 우리 사회 노인들의 빈곤을 더욱 깊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6. 1. 15:42

언제나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묻어두었던  삶의 질문들이 툭툭 던져진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나와 얽힌 인연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인가 보다. 

이정은과 엄정화가 친구라니, 극중 정은희와 고미란 말이다. 그런데 극중 인물에 집중하기 전에,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대표적 엔터테이너로 당대를 풍미했던 엄정화란 존재와, 우리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까지 대학로 연출에서 부터 마트 직원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생 역정을 겪으며 뒤늦게 그 이름을 알린 이정은이란 배우가 '친구'로 등장하는 '조합'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정은 배우가 메인 주연을 하는 드라마에 엄정화란 배우가 친구로 잠시 들렀다 가는 시절이 오는 날도 있구나. 


 

얽힌 인연, 우정 
실존의 배우가 주는 감상과 함께, 극중 고미란과 정은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절, 정은희는 도시락도 못싸오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은희를 미란이는 자기 집 승용차를 타고 지나며 구출해 줬다. 게다가 매일 은희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 씩이나 싸왔다. 둘도 없는 친구라며 '의리'를 외치는 은희와 미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제주를 찾는 미란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미란과 은희를 '공주님'과 '무수리'라 농을 건넨다. 

보는 이들만이 아니다. 인연의 속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제주에 도착한 미란은 생업에 분주한 은희에게 '그깟 생선'이라며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음을 야속타한다. 그런데 그 말이 은희의 마음을 후벼판다. 아니, 그저 지금 미란이 던진 말 때문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켜켜히 쌓아왔던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들이 자꾸 은희의 마음 위로 솟구쳐오르기 때문이다. 

'친구'란 우리가 살면서 맺는 대표적인 '인연'의 형태이다. 가족이 가족이라서 들여다 보면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기가 십상이듯이, 친구 역시 친구이기에 서로에게 불평등한 관계의 상흔을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저마다 우정의 이름으로 관계맺은 존재들을 되돌이켜 보면 그 시간만큼 그 안에 부유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질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늘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쉬웠던 은희에게 미란 역시 그런 존재였다. 미란은 은희의 어려운 처지를 배려했지만 그 상처받기 쉬운 마음까지 배려해주진 못했다. 엔터테이너 엄정화처럼 어릴 적부터 이쁘고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던 미란은 도시락을 두 개 싸오듯 착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사를 걱정해 달려온 미란의 마음을 사람들과 내기 꺼리로 삼을 만큼 자기 중심적이기도 했다. 은희는 그런 미란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그런 미란이기에 늘 상처받았다. 내 맘같지 않은 '친구', 그 친구의 '다름'이 나에게 '내상'을 입힌다. 

거기에 우정의 길을 엇갈리게 하는 건 무엇보다 '존재의 양식'이 아닐까. 은희가 폐경에 이르도록 가족들 뒤치닥거리하느라 여전히 '미혼'인 것과 달리, 미란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 미란이 딸과의 졸업 여행을 뒷전으로 하고 제주에 왔다고 하자,  미란은 '자기 밖에 모르는 년'이라며 자기에게 했듯이 그렇게 딸에게도 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은희가 전하지 못한 맘을 대신한 일기장으로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만 두 사람, 미란이 떠나고 옥동이 말한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한 그 의지가지 없는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고. '세 번이나'인 처지의 속내를 은희 역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깟 생선'이라는 말도, 은희를 무시한 게 아니라 너무 일만하는 은희가 안타까워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은희가 먹던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던진 미란의 속내도 들어보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처'받기 바빴던 은희는 그런 사정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저 한 시절 함께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불교의 업과 인과응보에 기인하여 시기가 되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인연'의 때가 있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미란과 은희의 '시절인연'은 그렇다면 언제일까?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친구란 이름이었지만 그 속내는 빚갚음이라 여겨졌던 관계는 '우정'일까? 

친구들이 '무수리'라 할 때마다 '내 무슨 무수리냐'는 그런데 은희  자신이 미란과의 관계를 그렇게 '규정'하며 지내왔던 건 아닐까. 어린 시절 가난한 자신을 보아준 그 '고마움'에 미란을 친구란 이름의 빚쟁이로 여기며 지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달음에 달려간 은희를 '만만한 친구'라 할 때 그런 미란에게 따지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고 돌아선 은희의 마음이 정작 '친구'가 아니라, 채무자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역시 '우정'을 빌어 '채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미란과 은희의 이야기는 은희의 묵은 상처를 깨닫게 되는 미란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미란의 이야기를 통해 정작 작가가 하고자 하는 건 상처로 겹겹이자신을 감싼 은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이만큼이 되어도 여전히 은희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아리다. 극중 종종 은희는 미란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아이로 등장한다. 단지 '추억'일 뿐일까. 아니 어쩌면 '은희'도 그렇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상처받기쉬운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첫사랑 앞에서도 거침없던, 제주도 수산 시장을 휘젓던 은희가 정작 미란 앞에서는 자꾸 위축된다. 관계를 왜곡하는 건 '그 시절에 멈춘 나'다. 

일기장 사건으로 인해 미란과 은희는 비로소 가난한 어린 시절의 채무 관계를 청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채무' 관계 속에는 이제는 '별로가 된'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적 우월함도 숨겨져 있다. 변변찮고 자기 중심적이라며 낮잡아 보던 미란의 진심을 서늘하게 깨닫게 된 은희, 늘 한 수 접어주던 은희가 입술을 꾹 다물고 뒷걸음치는 대신 따지러 간다. 비로손 은희는 '무수리'의 마음에서 한 발 나와 미란의 친구가 된다. 무덤으로 들어갈 뻔한 인연을 '재생'시킨 것이다. 





by meditator 2022. 5. 28. 10:20

'최선이었을까?'
박지혜 선생님은 이렇게 되묻곤 한다. 2020년 봄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데 보름 가까이 한 학생이 출석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자 아버지는 '내가 우리 아이를 죽이면 되겠느냐'며 폭언을 뱉었다.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 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의 간절한 부탁, 아이는 분리조치됐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학대 아동'에 대한 '메뉴얼'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맨몸으로 나오다시피한 학생, 이후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한 지원금조차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없이는 받을 수 없었다. 아동 학대 신고 이후, '분리 조치' 외에 정작 학대 아동에 대한 사회적 조치는 전무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대를 피해 아이를 품어주어야 할 시설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아이, 그런데 가정은 이제 아이를 거부했다. 자신이 버려졌다고 좌절한 아이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학대'당하는 아이를 위해 사회가 해주어야 하는 건 안전한 곳에서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여의치않다. 6부작으로 방영된 다큐프라임 <어린 人권>의 5,6부는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아동 학대'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학대 아동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성희 검사는 말한다. 자신들의 판결로 세상의 박수를 받는 건 쉽다고, '엄벌에 처하겠습니다'라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안맞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의 '학대'가 없는 가정에서 아이가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 '학대'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이 되어야 한다고 안검사는 주장한다. 



 

'학대' 이후
그런 면에서 전안나 판사는 학대당하는 아이를 가정에서 '분리'하는 대신 가해자인 부모를 보호 시설에 위탁하는 '감호 위탁'판결을 내렸다. 잘못은 부모가 했는데 아이가 기존의 집, 기존의 학교로 부터 분리되는 현행의 제도,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보호자의 '보호'가 가능하다면 아이에게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해 부모의 감호 위탁은 '가정'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한 조치이다. 정상 가족, 혈연 가족 프레임이 강한 한국 사회,  '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기본 단위인 이상 가급적이면 그 '가정' 내에서 아동이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애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활용되는 제도가 '위탁부모 제도'이다. 배은희 씨는 2015년 3월 한 살도 채 되지 않는 은지의 위탁 부모가 되었다. 아기가 오면 놀아주겠다던 작은 아이가 엄마, 아빠가 아기만 신경쓴다며 보내면 안되겠냐고 하던 고비를 겪으며 이제 8년 차, 종종 자시늗ㄹ이 '위탁 부모'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고 한다. '시설'의 부작용이 대두되며 가급적 가정과 같은 조건에서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2003년부터 실시된 '가정 위탁'제도이다. 

'한정된 입양'이라고 말하는 은희씨, 돈은 얼마나 받는 거야라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보다 언젠가는 '자신의 삶보다 귀한 아이'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얼마를 받아야 할 수 있을까요?'라며 반문하는 은희 씨, 가정 환경조사, 부모 교육 등 엄격한 과정을 거치지만 정작 서류상 '동거인'인 아이의 법적인 보호자 역할은 '친부모' 몫이라 제도적 어려움을 겪곤 했다고 한다. 

사회가 '부모' 역할을 
그런데 그 '시설'조차 시한이 있다. 최근 24살까지 연장은 됐지만, 집, 직장 등 그 모든 것들을 홀로 해내야 하는 아이들, 그래서 그 '생소'한 사회적 경험 앞에 사기 사건을 당하거나, 범죄 사건에 휘말리기가 쉽다. 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오래 일하기가 쉽지 않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피해의식, 자격지심이 아이들 스스로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격리하도록 만들기 십상이다.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 중 50%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국가가 언제까지 책임져줘야 하나?' 이런 의문에 김성민 씨는 반문한다. '부모가 언제가지 필요하세요?' 김성민 씨는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되어 3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18살 때까지 머문 곳, 그러나 '가족, 안전, 행복', 그 어느 것도 보장해주지 않던 '시설'은 '집'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김성민 씨는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아이들 스스로 '식물'을 돌보며 일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이다. 

법저에서 호통치기로 유명한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 판사는 '가정 형태'의 '사법적 그룹홈' 시스템을 만들었다. '어떤 아이들이 재판까지 올까요?' 부모들이 있는 아이들, 부모들이 부모 역할을 하려고 하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재판에 오기 전에 '구제'가 된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재판까지 오는 아이들 중 70%가 결손가정, 저소득층 가정, 부모가 '보호'해줄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한 아이를 1년 동안 법정에서 7번이나 보기도 했다는데, '보호'받지 못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해 천판사는  '사법형 그룹홈'을 마련했다. 가정형태로 이루어지는 그룹홈, 아이들에게 '집'의 경험을 주고자 했다. 경남에서 시작되어 전국 13곳에서 100 명의 아이들이 '집같은 공간'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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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사후 조치보다, 예방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큐가 주목한 건 미 콜로라도 대학의 데이비드 올즈 교수가 시작한 가정방문 프로그램(Nurse-Family Partnership)이다. 

출산전부터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까지 미혼모나 취약 계층의 엄마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간호사가 방문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신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은 엄마는 물론,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된다. 가정 폭력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장기 추적 결과,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아이들은 보살핌을 잘 받았다는 만족감이 이해와 공감 능력을 높였고, 이는 학습 능력 향상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아동 학대와 방임이 48%나 감소했고, 범죄와의 연루도 줄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 단지 간호사가 방문하여 이야기만 나누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벽돌로 뒤통수를 내리친 엄마,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을 가진 하은 엄마 지영 씨는, 아이를 낳고서도 여전히 '학대'하는 부모로 인해 모든 걸 놓아 버리려 할 때 찾아온 간호사는 다독이며 보살펴 주었다. 엄마 노릇에 서툴거나 거부감을 가진 엄마들을 독려한다. '덕분에 살았다'고 말하는 지영 씨, 학대의 '사후약방문'이 아닌 안정된 가정과 좋은 부모를 향한 '예방책'으로의 첫 걸음이다. 

by meditator 2022. 5. 25. 21:03

'직장 생활을 오래 했더니.....'
선배는 답답한 듯이 말했다. 마치 메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춰 정해진 표현을 하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막막해하셨다. 소향기 팀장을 보니 그 선배가 떠올랐다. 

jtbc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 염미정의 해방클럽에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그간 염미정을 비롯하여 박상민 부장, 조태훈 과장 등 회사 내 조직에 적응을 못하는 것같은 이들 세 사람에게 꾸준히 회사 내 동아리 활동 참여를 독려하던 행복지원센터 소향기 팀장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이들 세 사람을 독려하던 그녀, 그랬던 그녀가 세 사람이 만든 '해방 클럽'을 한번 참관한 후 스스로 '해방 클럽'의 신입회원 신청을 하였다. 

드라마가 시작한 이래 행복지원센터 팀장으로 익숙한 소향기 씨의 표정, 그런데 그녀가 말한다. 이제 다른 표정을 지으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고. 행복지원 센터 팀장에 걸맞는 표정을 지어오던 그 표정이 이제는 상갓집에 가서 그녀를 곤란하게 할 만큼 '혼연일체'가 되었다. 

 

 

해방은 어떻게 오는가
이제는 <나의 해방일지>가 아니라, <나의 추앙일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등장 인물들의 '연애사'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극 초반 우중충하게 출퇴근만 한다며 돌려섰던 시청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스쳐지나가듯 등장한 소향기 팀장의 장면은 왜 이 드라마가 여전히 '추앙일지'를 넘어 '해방일지'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그리스 연극 속 '가면'을 뜻하는 이 말을 칼, 융은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며 거기에 걸맞는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으로 정의한다. 단적으로 '~답게'이다. 학생은 학생답게,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문제는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사회적으로 주어진 이 '역할'에 맞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괴리'를 느끼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건 '내 자신(self)'과 '페르소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말이다. 

조직 부적응자로 행복 지원센터를 들락날락했던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세 사람으로 말하자면 직장이 요구하는 '페르소나'에 떨그덕거리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남들 다하는 회사 내 동아리에 드는 것도 마다하고, 사람들이랑 편하게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던 세 사람, 떠나는 구씨가 염미정에게 이젠 '추앙', '해방', 이런 거 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미정은 그런 구씨를 붙잡는 대신, 서운하다는 말로 두 사람의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자신을 '평범'하다 하지만 '유모차를 끄는' 대신 아이를 업어 키우겠다는 미정,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구씨를 한 살 배기 아이처럼 업어주고 싶다는 미정은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와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 

어쩌면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이들 세 사람의 '해방 클럽'은 일찌기 세상이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기 버거웠던 세 사람의 '해방 선언'이었는지도. 그런데 그런 세 사람 앞에 '신인 회원'으로 등장한 소향기 씨는 그런 세 사람과 전혀 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사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에 너무 충실히 살다보니 그 페르소나가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 그래서 이제 그 '가면'을 벗으려 해도 벗겨지지 않는다는 사람, 남들의 '행복'을 열심히 지원하다보니, 정작 자신은 '미소 가면'이 달라붙어 버린 사람, 그 사람에게 '해방'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얼굴 근육을 가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그리고 소향기라는 양 극점의 그 어느 지점에서 서성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어설픈 페르소나를 원망하고, 또 때로는 어느덧 자신이 되어버린 '페르소나'로 인해  갑갑함을 느끼며 말이다. 드라마의 시작부터 주구장창 출연진들의 출퇴근 길 모습을 비추던 드라마, 그 '출퇴근'에 공들인 시간은 바로 이 드라마가 길바닥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최선을 다해 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몇 시간씩 출퇴근을 하며 주인공 염미정, 염기청, 염창희를 비롯하여, 그들의 아버지 염제호, 어머니 곽혜숙,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들 모두 참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젯상 앞에서 고된 노동으로 무너진 관절로 절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디 일만 하나, 역할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해방'은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다. 이미 당신들은 충분히 애쓰고 살아가고 있으니, 더는 자신을 다그치지 말라고. 위로하지도, 그렇다고 조언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주겠다는 '해방 클럽'의 강령은 바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의 '긍정'을 뜻하는 게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저 가끔 만나 식사가 한 끼 나누던 선배가 '존경'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던 건, 선배가 직장 생활로 인한 '페르소나'가 어느덧 자신이 되어버린 모습을 고민하던 그 즈음이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이라는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말이다.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의 시간이 그 선배를 연륜이 넘치는 인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저어'하던 소극적인 염미정은 구씨를 '추앙'하고, '추앙'당하며, 그리고 '해방 클럽'을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미정의 해방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그냥 그대로, 생긴대로 미정이 답게 사는 것을 당당하게 가슴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연 소향기 팀장의 '해방'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침 방송의 김창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나가듯 말한다. '가면' 몇 개 안쓰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요. 



by meditator 2022. 5. 21. 00:58

5월 16일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에서는 대한민국 아동 100년의 시간을 조망했다. 백원이던 과자가 천오백원이 되었다며 속상해하는 아이들, 이제 그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 대신, 유투브에서 초등학생들을 '잼민이'라며 비하한다며 불쾌해한다. '어린이'가 '잼민이'가 된 세상, 과연 방정환 선생님이 '나라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며 소중하게 여기라 했던 어린이는 '존중'받고 있을까? 

 

 

1923년 5월 1일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선언문'을 선포하셨다. 선언문에는  '재래의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인격적 대우를 허'하고 그들을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는 유상, 혹은 무상의 노동을 폐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윤리적, 경제적인 존중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3년에 태어난 아동문학가 신현득 선생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석유 대신 쓴다며 솔공이를 몇 관씩 따기 위한 '근로 봉사'가 일이었다. 50년대만 해도 동생을 업고 학교에 오는 누나들이 흔한 풍경이었다. 어린이의 노동을 폐하라던 방정환 선생의 말씀이 무색하게 우리의 '산업화'의 동력은 값싼 미성년자들의 노동력에 빚졌다. 6~70년대 여공 중 국민학교를 졸업한 비율은 불과 51%에 불과했다. 

1920년대에 18.5%이던 취학률은 1970년대에 비로소  90%에 도달, 의무교육의 본령을 완성했다. 7~80년대 어린이 공원, 어린이 세계 문학 등 어린이는 핵가족의 꽃이 되었지만, 그런 한 편에서 '혜영, 용철이 사건'처럼 국가가 돌보지 않는 '어린이'들의 인권과 복지는 그림자가 깊어져갔다. 또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 이래 우리 사회의 교육은 무한 경쟁의 그늘이 드리워져 갔다. 3인 가정이 점점 일반화되어 가는 오늘날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아이'에게 집중한다. 전략적으로 '육아'에 집중하는 엄마들, 아이들은 '관리'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아이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선포하던 그 시대와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해방'이 절실한 시대이다. 

 

 

우리 아이 잘 되라고 한 잔소린데
다른 의미에서의 '해방'이 필요한 이 시대의 아이들, 그 부모와 아이들의 '일그러진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 다큐 프라임은 '잔소리'를 주목했다. 다큐는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전국의 100명에게 '속마음'을 들었다. 5월 17일 방영된 <역발상 프로젝트 잔소리란 무엇인가>에서이다. 

'그렇게 공부할거면 학원은 왜 다니니?
'한심하다, 시간 약속도 제대로 안지키면 인생 망한다.'

부모들이 한 잔소리다. 이 '잔소리'에 아이들은? 한숨부터 쉰다, 지겹다, 아이들의 반응이다. 억양에서부터 다르다고 한다. 일방적이다. 때려박는 말투다. 내 인생을 포기당하는 것같은 잔소리에 어깨가 꺽인다. 잔소리를 퍼붓고 뒤돌아 설거지하는 엄마는 그 뒷모습에서조차 '거칠게' 감정을 쏟아낸다. 집 문 앞에 서면 긴장되고 떨린다고 한다.

물론 이런 아이들의 반응에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100%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연구는 다른 결과를 말한다. 잔소리를 듣는 청소년들의 뇌의 반응을 조사하니 부정적 영역이 높아지고, 이성적 판단이 떨어진다고. 정말 부모들은 사심없이 하는 '걱정'일까?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존중'받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들의 잔소리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의견에 부모들은 말한다.

'어디 따박따박 말대꾸야!'
'말대꾸 대회가 있다면 1등이겠다.'

부모의 잔소리와 아이의 말대꾸는 '창과 방패'와도 같다. 잔소리를 듣다 듣다 자신을 방어하려고 말했는데 말대꾸란다. 그런데 '말대꾸'는 양면적이다. 듣는 부모의 기분이 좋으면 '의견'이 된다. 하지만 듣는 부모의 기분이 나쁘면 '말대꾸'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들어야 잔소리를 끝낸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라, 핑계라 하고, 결국 원하는 건, '예, 알겠습니다'이다. 잔소리를 하며 화를 내는 엄마, 거기에 말대꾸를 한 아이, 엄마는 자신의 말을 끊었다고 화를 냈다. 집을 나가라 했다. '승복'해야 끝나는 권력 관계, 아이들은 점차 자신을 숨긴다. 

 

 

'말대꾸'는 어떤 대상에게 사용되는 용어인가? 다큐는 묻는다. '말대꾸'라는 용어 자체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핵가족이 되어도 어른과 아이가 되는 순간, 불평등한 상하, 수직 관계가 된다. 더구나 한국의 정서에서 '말대꾸'는 더욱 용인되기 어렵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듣기 보다, '금지'시킨다. 너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니, 아이는 듣고 시인하며 반성하면 끝이나는 '언어적 관습'이다. 그런 부모의 '잔소리'에는 여전히 아이를 어리고 미숙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있다. 미숙한 존재에 대한 부모의 잔소리는 그래서 때론 '잔소리'를 넘어 '말상처'가 된다. 아이 잘되라고 시작한 잔소리가, 아이가 스스로 잘할 자신마저 없어지도록 '상흔'이 되어 남는다. 

'반격'을 하던 아이는 끝나지 않는 부모의 '잔소리' 앞에 결국 입을 닫는다. 하지만 결코 그 '속내'가 부모의 '잔소리'를 승인해서가 아니다. 결국 거듭되는 잔소리, '말대꾸'를 용인하지 않는 수직적 관계 앞에 아이는 입을 닫고 관계는 더 멀어져만 간다. 

그런데 그 '너 잘되라고'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은 정말 아이들에 대해 잘 알까? '자녀 탐구 영역', 자녀들에 대한 문제를 푸는데 사소한 것에서조차 아이를 모른다.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이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있음이 시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아는 체'를 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의 '잔소리'가 설득력이 있을까? 

아이들이 보는 부모는 어떨까? '우리 엄마는 개'예요', 겉모습은 강아지처럼 귀엽지만, 화날 때는 사냥개같아서, '개'란다. 때로는 거침없어 달려가는 '말'같단다. 아이들인 보는 부모는 이중적이거나, 맹수같다. 부모들은 60 vs. 40이라며 자신을 변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90%가 잔소리다. 핵가족이 되고, 아이의 미래가 전적으로 부모의 '능력'에 달려있게 된 경쟁 사회에서 부모들의 '불안'이 잔소리로 표출된다. 또한 어린이날 100년이 되었어도, 방정환 선생님이 말씀하신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안되서이다. 존중받은 경험이 부재한 채 '잔소리'에 휩싸여 자라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는 말한다. 작다고 조금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by meditator 2022. 5.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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