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일 방영되는 <경이로운 소문>은 ocn 장르물의 부진을 말끔히 씼어내며 7% 대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이 이 드라마를 늦은 시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닥본사'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이미 작품이 되기 전에 입소문이 자자했던 원작 웹툰 덕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소문이 조병규를 비롯하여 가모탁 유준상, 도하나 김세정, 추매옥 염혜란에서부터 심지어 악역 지청신 이홍내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찰떡같은 캐스팅에 원작을 잊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들이 인기의 견인차가 되었다.
'겨우 고삘이야?' 라는 가무탁의 탐탁치 않은 첫 마디와 함께 악귀를 잡는 카운터 신참으로 등장했던 소문이, 고등학생이었던 소문이의 '신참례'는 그가 다니던 학교의 왕따 사건으로 화끈하게 드라마의 초반을 이끌며 '카운터'들의 능력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소문이의 놀라운 능력으로 평정한 학교의 일진들, 그리고 그런 소문이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나타나 그의 재력으로 모두들 입다물게 만든 최장물(안석환 분)의 활약으로 학교에서의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카운터로서 활동을 이어가게 되며 그동안 베일에 가리워졌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과연 왜 이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카운터'가 되었을까? 그리고 왜 뇌사 상태도 아니었던 소문이는 '카운터'가 되었을까? '우연'이었던 네 카운터들의 관계는 회차를 거듭하며 '운명적 만남'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무탁과 소문, 그리고 도하나의 인연 우선 그 시작은 기억을 잃은 가모탁이다. 전직 형사였던 그는 기억을 잃었다. 온몸이 난자된 채 건물에서 떨어진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적'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그때 그의 앞에 소문이 나타났다. 처음 본 소문이가 어쩐지 낯이 익어 자신을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던 가무탁, 그런데 그가 뒤늦게 되찾은 핸드폰의 마지막 발신자가 바로 소문이의 아빠 소권이었다. 그리고 소문이의 아빠 역시 형사였다.
가무탁의 사라진 기억을 헤집어 가는 과정, 그리고 소문이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공통 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문은 자기 때문에 죽은 줄 알았던 부모님이 알고보니 '사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운해하는 것도 잠시 도하나의 도움으로 찾아든 기억에서 카운터들이 쫓는 3단계 악귀 지청신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사고 현장에서 죽은 소문이의 부모님은 악귀 지청신에게 '흡수'되었다. 악귀를 쫓는 카운터로서 사람 세상의 일을 간여해서는 안되는 '룰'로 고민한 것도 잠시 '지청신'의 등장은 카운터들로 하여금 보다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뿐만이 아니다. 가무탁과 소문이 부모님을 죽인 자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거악'의 사슬이 드러나며 거기서 도하나의 '해원'인 이른바 '삼촌'이 등장한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줄을 죈 다음 다시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하루라도 못갚으면 회사를 집어 삼키는 방식으로 도하나 아버지의 회사는 '삼촌'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삼촌'은 저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무탁과 소문, 그리고 도하나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중진시의 구조적인 '악'의 희생자들로 '카운터'가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죽어갔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그 중진시 '악'은 누구에게로 수렴될까? 시작은 가무탁과 소문이의 아버지 소권 형사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죽기 전까지 김영님이란 여성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예전의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김정영(최윤영 분)과 김영님의 집에 가서 다시 사건의 흔적을 찾던 가무탁은 그곳에서 김영님의 피와 ab형 남성의 혈흔을 발견한다.
그런데 김영님은 사라지기 전까지 중진시 시장이 된 신명휘(최광일 분)의 운동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김영님 사건을 수사하던 가무탁과 소문의 아버지 소권은 각각 신명휘의 심복인 태신 그룹의 노항규 동생인 노창규와 또 다른 심복이었던 배상필의 수하였던 지청신에 의해 '살해'되었다. 자신을,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뿌리를 캐낸 가무탁과 소문은 그 곳에서 중진시의 시장 신명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해꼬지하기 위해 찾아온 노창규를 통해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저수지'라는 것과, 그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있어 거침이 없는 것이 바로 그저 구청장이었던 신명휘가 승승장구 시장을 거쳐 '대권'까지 바라보는 '야망'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신명휘는 드라마 초반 소문과 소문의 친구들을 괴롭히던 신혁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융의 부름을 받아 '악귀'를 쫓는 카운터들의 '무용담'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이제 카운터들의 '사연'을 풀어내며 중진시라는 '구조적이고도 거침없는 욕망', 시장 신명휘와 그의 하수인들의 '복마전'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한 사람의 권력을 향한 욕망, 그리고 거리에 파리처럼 꾀어든 전직 조폭과 마약상, 그들은 그럴듯한 대중을 향한 사탕발림과 정책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그 뒤에서는 보다 높은 권력을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욕망을 향한 에스컬레이션에 소문의 아버지, 가무탁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권'마저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상황, 거기서 카운터로 돌아온 가무탁과 소문에 의해 그들이 꽁꽁 숨기려했던 '죄악'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거악' 신명휘와 그 하수인들, 그리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카운터'들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1년만에 다시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교수와 밀레니얼 셀럽 대표 조승연 씨가 만났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 해와 달리 두 사람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만난 것, 서로의 동정과 안부에서 '격리'의 소회가 빠지지 않는다. 11월 24일부터 시작된 tvn shift는 1부 재난의 불평등, 2부 2030 부의 미래에 이어 금요일로 시간대를 옮겨 2019년에 이어 트렌드 로드 2부작을 방영한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시대의 소비 트렌드조차 변화했는가가 촛점이다.
운동화도 투자가 된다. 2017년 20만원이던 운동화가 800만원이 됐다. 사서 신고 닳으면 버리던 소모품인 줄 알았던 운동화로 투자를 한다. 바로 오세건 씨다. 한정판 플랫폼을 운영중이다.
리셀, 정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희소성 있는 한정판 제품을 뜻하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운동화이다. 운동화가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생소하지만 소더비 경매에서 사인된 운동화가 5억에 팔리고, 오리지널 제품이 수 천만원에 거래가 되는 세상이다. 마치 주식을 사듯이 스니커즈 러셀은 금융 거래 플랫폼을 진화 중이다. 2025년 60억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된단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마이클 미첼은 현재 스니커즈 러셀 관련 채널을 운영 중이다. 대학 때 중고 운동화 거래를 시작으로 그 해에만 115,000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트래비스 스콧 등 랩퍼들과의 협업한 제품들은 10배나 가격이 상승했다. 그 중 인기있는 제품은 한 켤레에 5000 달러를 호가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사람들은 취미 생활로는 물론, 투자가 될만한 '꺼리'에 관심을 더 기울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스니커즈 러셀 시장에 투자가 거의 10배나 더 증가했다. 운동화에 관심없는 사람들조차 돈이 될까 싶어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n차 신상이 그 대상이다. 여러번 거래가 되더라도 신상과 같은 제품이 돈이 되자, 이제 '짝퉁' 대신 구하기 어려운 진품을 사는 '투자'에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운동화 뿐일까.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의 저자 윤보형 변호사는 예술품 투자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물론 처음부터 투자를 했던 건 아니다. 퇴근하고 조용히 자신의 머릿속을 '정화'시켜 주는 장소로 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그림에서 '자신'을 찾았다. 자신을 위로해주거나 대변해주는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녀는 그 그림을 적극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소장'했다. 그런데 그 '소장'이 돈이 되었다. 김난도 교수에 따르면 내가 소유하고 사용하는데 가격까지 오른다는 점에서 그림은 부동산과 같은 속성을 지닌 투자 상품이다.
'아트 테크'가 신조어로 등장했다. 취미도 되고, 돈도 되는 이색 재테크이다. 아트 컬렉팅의 분야는 광범위하다. 원화 그림만이 아니라 판화, 각종 아트 상품, 아트 토이 등이 그 대상이 된다. 소더비 경매에서 아트 담요도 대상이 되었다. 투자의 대상이 다양한 만큼 컬렉터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가치에 '민감'하다. 소비가 경제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일찌기 몸소 체험하며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는 소비하는 삶에 거부감이 없다. 희소성이 있거나 자산 가치가 있다 하면 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에 거침이 없다고 김난도 교수는 설명을 더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자본주의적 삶'은 파이어 운동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서 자본주의의 굴레로부터 빨리 벗어나겠다는 '파이어 운동'은 모순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젊은이들의 투자 심리와 맥을 같이 한다.
자본주의로 부터 '독립'하자 그래서 2019년 '파이어 운동'에 앞장섰던 잭 시티를 1년 만에 다시 찾는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30대가 되면 은퇴하겠다던 그의 목표는 이루어졌을까? 다시 만난 그는 코로나라는 변수로 인해 은퇴가 약간 미뤄져 30대 중반 이후에나 가능하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그를 위축시키지는 않았다. 외려 코로나 이후 휴대폰 앱을 통한 식료품 배달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려 지난 1년간 4억4천만원 가량을 벌었다고 한다. 25달러를 버는데 1시간 가량이 걸린다는 그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배달해 주는 일로 분주하다.
이렇게 잭과 같은 일을 알선해주는 플랫폼 노동이 미국에서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을 하든 돈을 벌면 되는 사람들이 이 플랫폼의 주된 '노동자'다.
이러한 '노동'의 형태는 21세기에 활성화되고 있는 '긱경제' 형태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인 '인스타카트'의 영향력이 48%에 달한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기회라는 측면도 있지만 '착취의 새 기술적 방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우리 사회 최근 등장하고 있는 인디펜던트 워커 역시 새로운 트렌드이다. n잡러, 프리랜서, 잦은 이직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풍경이다.
다양한 직업군의 인디펜던트 워커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선택이 바로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평생 직장을 여전히 소망하는 부모님들과 달리, 그들은 자라면서 IMF를 겪으며 부모님이 그 평생 직장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조직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젊은이들은 자신을 의탁하는 평생 직장 대신,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을 표현해내는 인디펜던트 워커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20008년 금융 위기가 프리랜서의 기점이 되었다. 기업이 망하고 거기서 풀려나온 인력들, 그리고 그 즈음에 활발하게 대두된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파트 타임 인력들이 프리랜서라는 직업군의 서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리랜서들의 증가는 코로나가 가속시켰다. 코로나 이후 41%나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김난도 교수는 우리 사회의 메가 트렌드의 변화를 직업군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라 짚는다. 지식과 사회 구조의 변화 과정에서 소속된 '직'이 의미를 상실하고 '업'이 중요시되는 세상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규직의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 실업의 징후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플랫폼 경제로의 변화 결국 '공정한 환경'이 관건이다.
직장이 없는 걸 직업이 없는 걸로 치부되는 게 아쉽다는 인디펜던트 워커들, 정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자신들을 바라봐주기를 소망한다.
코로나 이후의 트렌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는 '줌' 화상 회의를 일상화시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줌피로증이 대두되고 있다. 2차원의 규격화된 화면을 통해 상대의 '감정 단서'를 헤아려야 하는 피로감의 호소 사례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줌의 한계를 새로운 산업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바로 미국 뉴욕의 휴먼 터치 대표인 이진하 씨다. 스*이얼이라는 제품으로 알려진 그의 제품은 바로 증강 현실과 가상 현실을 결합한 것으로 원격으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화상 회의 서비스다. 즉 아바타로 서로가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촉감을 느끼며 악수도 하고, 입체적인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가 외려 '사람의 존재감'에 대한 절실함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 트렌디한 산업에 호응한 케이스다. 인간의 온기와 존재를 느끼게 하는 이 기술은 코로나 이후 10배나 매출이 증가하며 '온택트'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
이처럼 '온택트'한 산업만이 아니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을 낳았다. 무분별한 인간의 탐욕과 환경 파괴가 현재의 상황을 낳았다는 '반성'이 소비 트렌드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코로나 이후 건강과 동물윤리, 생태계 보호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비건이 독일을 중심으로 주류 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이른바 '비거노믹스'는 산업으로 경쟁력을 제고시켜 보다 더 대중적이고 값싼 제품으로 문턱을 낮추는 한편, 기후, 인구증가, 질병 등에 대한 대안으로 코로나 이후 주목받고 있다.
패션도 그러한 '비거노믹스'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는 중이다. 지미유, 예능에서 유재석이 입은 시그니처 셔츠는 가죽, 모피, 울 등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음은 물론,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재료를 쓰는 비건 패션의 선두주자 양윤아 씨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양윤아 씨의 작품은 연예인 등 셀럽을 중심으로 젊은 층에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입는지가 곧 나를 말해준다.'는 젊은 층의 소비 트렌드가 화답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 활동은 줄었지만, 코로나는 세상을 바쁘게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각자도생'의 삶이 대두되고 있는 한편, 코로나를 초래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모색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예전으로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발빠른 변화를 낳고 있는 중이다.
SBS스페셜은 지난 12월 2일 방영된 <나를 찾아줘>에서부터 이른바 MZ세대라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탐구 보고서'를 방영 중이다. 12웧 2일 방영분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MBTI 붐을 분석하였다. 이어진 12월 14일 방영된 <N잡시대 부캐로 돈 버실래요?>에서는 최근 유행어가 되고 있는 '부캐'로 이어지는 N잡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MZ세대,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와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X세대 처럼 2020년대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이 MZ 세대를 중심으로 '부캐(부캐릭터)'라는 단어가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N잡러라는 단어도 더는 생소하지 않다. 평생 직장의 시대를 살아오던 아버지 세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 그 이유는 뭘까 다큐가 찾아든다.
다큐를 이끄는 건 우리에게는 여전히 '플라이더스카이'의 멤버로 익숙한 브라이언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알려진 '가수' 외에 플로리스트와 크로스핏 코치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N잡러이다. 가수 활동을 하며 악플로 마음 고생을 하던 브라이언은 꽃을 만지며 '힐링'을 하게 되었고 그게 그의 또 다른 직업이 되었다.
이렇게 브라이언처럼 또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이 더는 생소하지 않다. 직장인 10명 중 3사람이 N잡러인 시대가 되었다. 그 중 20대가 25.7%, 30대가 34.6%로 주로 2,30대 직장인이 주를 이룬다.
MZ세대 부캐를 갖다 회계벌인에서 일하는 윤혜진 씨의 또 다른 이름은 혜강사이다. 프리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로 하루 종일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세로 일을 하던 그녀는 생활의 활력을 찾기 위해 2년전 프리 다이빙을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했던 일이지만 보다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향하고 싶은 그녀의 열망이 강사 자격증까지 이어졌다.
수입으로 따지면 본캐(본 캐릭터)의 1/5~1/20에 불과하지만 좋아해서 하던 일에 수입까지 생기니 액수로 따질 일이 아니라고 혜진씨는 말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 온갖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그동안 '부캐'없이 어찌 살았나 싶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MZ 세대에게 자기 성장은 더는 승진이 아니다. 대신 자아 성취를 위해 그들은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로 인한 재택 근무의 증가가 그런 그들의 선택을 도왔다.
회사원 이강원 씨의 '부캐'는 캐릭터 디자이너이다. 회사간 합병으로 인해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외국계 회사로 옮기게 된 그는 회사에 모든 걸 걸고 사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재택근무의 시간 그간의 '취미'를 '부캐'로 승화시켰다. 테니스를 좋아하던 그가 즐겨그리던 테니스 선수들을 옷에 도안으로 옮겨 이윤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던 그의 그림이 '부태'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재능 거래 플랫폼'의 도움이 필수였다. 올 한해 프리랜서 등록건수만 작년 대비 2배나 늘었다는 플랫폼에는 이미 25만개 서비스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가 직장을 다니며 '부캐'로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디자인, IT프로그래밍을 비롯하여 전자책까지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직업화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 전자책 분야는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 각종 전문적 영역을 중심으로 한 전자책이 2000 여권 등록되어 있다. 백화점 영업직으로 12년동안 근무했던 김용환 씨도 인턴 사원을 위한 메뉴얼을 만들다, 그 내용을 '직무 기술서'로 등록했다. 일반 출판과 달리 인세의 80%를 작가가 가지는 플랫폼의 구조 덕에 김용환씨의 부캐 수입은 쏠쏠하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 22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선호하는 부업의 종류는 이처럼 취미나 직무 관련 분야이다. 실제 추가 수입을 올리는 부캐의 분야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는 동영상 크리에이터나 SNS운영이 가장 많다. (44.5%) 그 뒤를 잇고 있는 건 헬스, 요가 등 운동 레슨 분야이다.(25.2%) 그 외에서도 소설 등의 창작과 요리 등도 있다.
군대와 대학 친구들로 이루어진 오진승(정신의학과), 이낙준(이비인후과), 우창윤(내과) 세 사람은 의학 분야의 동영상 크리에이터로 활약 중이다. 63.4 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이들 세 사람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의학계의 다양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팔로워의 수만큼 수익도 늘어났지만 다양한 기부 활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며 그저 이윤을 내는 부캐 이상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또한 이들 중 이낙준 씨의 경우 홀로 지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쓴 웹소설이 7편, 그 중 인기작인 <골든 아워>의 경우 다운로드 수만 1700만에 이르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본캐냐? 부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부분 '본캐'가 안정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새로이 선택하는 '부캐'의 경우 이윤만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도전'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5년차 N잡러인 주대성 씨의 경우 컴퓨터 관련 직종이 '본캐'였지만 컴퓨터 앞에만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음식 배달, 대리운전, 탁송, 크리에이터 등으로 변신했다. '부캐'가 본캐가 되어버린 경우, 안정적인 직장 대신 하루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고 있지만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 수입도 만만찮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부캐'를 가진 사람들은 '부캐'를 위해 '본캐'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다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을 걱정하며 '포기'를 '포기'하게 된다는데. 하지만 또 다른 '부캐'를 가진 사람들은 꼭 '부캐'가 '본캐'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가 아니라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본캐에 시너지 효과를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취미로 부터 시작되었든, 이윤을 위한 선택이었든 그 무엇이든 '부캐'는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일단 해보라고 한다. 유연해지고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부캐'는 필연적인 과정이라 전문가는 해석을 더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20대도, 30대도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N잡러의 대열에 속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아이들 논술을 가르치던 기자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끼며 오마이뉴스에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어언 10여 년, 코로나로 인해 정작 본캐였던 논술 수업이 멈추게 되었다. 모두가 홀로 버텨야 하는 시절, 그래도 글을 쓸 수 있어 침잠하는 나의 일상을 버티게 해주었다. 본캐와 부캐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본캐가 상실되는 상황에서 그림책 심리를 배우며 부캐였던 글쓰기에 새로운 '장르'를 더하게 되었다. 논술도, 글쓰기도, 그리고 그림책 심리 지도도, 말 그대로 N잡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프리랜서의 삶은 고달프지만 다큐에서 말하듯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내 삶에 고스란히 통한다.
메릴 스트립, 제임스 코든, 니콜 키드먼, 출연 배우들의 면면으로만 봐도 흥미로운 뮤지컬 영화 한 편이 상영관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더 프롬(The Prom)>이다 .
우리에게는 낯선 프롬(prom)은 미국 청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졸업 파티이다. 졸업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소녀, 아니 그 소녀로 인해 졸업 파티 자체가 무산되어버린 사건을 다룬 <더 프롬>은 이미 201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동명의 뮤지컬 넘버이다. 흥행은 미진했지만 토니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감독이자 뮤지컬 영화 <글리>의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선보인다.
학부모위원회가 졸업 파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오프닝, 그런데 이야기는 졸업 파티가 열리기도 했던 인디애나의 한 고등학교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장으로 옮겨진다.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이 끝나고 주연을 맡은 디디 앨런(메릴 스트립 분)과 배리 글릭먼(제임스 코든 분)은 공연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은 채 사람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신문에 올려진 디디와 배리가 맡았던 앨리노어 루스벨트와 루스벨트에 대한 혹평은 그들은 차가운 현실로 던진다.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이제 더 이상 '셀럽'이 아닌 디디와 루스벨트를 연기했지만 그 진지함이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배리,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저마다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앤지(니콜 키드만 분)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 분)는 자신들이 처한 '명망성'의 위기를 '사회적 이슈'를 통해 돌파하고자 한다. 바로 그때 그들의 눈에 띈 사건, 인디애나 고등학교의 프롬 좌초 사건이다.
한 소녀의 커밍 아웃으로 무산된 프롬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의 여진이 쉽게 진화되지 않는 미국의 사태는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이미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상식적 시선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국이라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상황이 <더 프롬>의 배경이 된다. 즉 동성애가 자유로운 나라라는 미국에 대한 선입관과 달리 보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미국 남부 인디애나주의 고등학교에서는 졸업 파티에 동성의 연인을 데려가겠다는 한 소녀의 선언이 졸업 파티 자체를 무산시키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브로드웨이의 아티스트들은 바로 그런 비상식적인 인디애나 주 고등학교의 '사건'을 자신들의 명망성을 활용해 이슈화시켜 돌파하고자 한다.
영화는 그렇게 두 가지의 갈래를 가지고 진행된다. 고등학생 에마(조 엘런 펠먼 분)의 커밍아웃 선언으로 인한 졸업 파티 무산 사건을 한 축으로 하면서, 거기에 개입한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해프닝을 얹는다.
애마의 졸업 파티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된 브로드웨이 스타들, 그들은 자신들이 인디애나 고등학교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명망성으로 인해 어려운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이슈화시켜 자신들의 위기도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기대로 화려한 퍼포먼스로 인디애나에 등장한 '뮤지컬 스타'들 무산될 뻔한 졸업 파티가 다시 '승인'되며 서광이 비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함정'일 뿐이었다. 여전히 애마는 학부모와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고,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명망성은 그들의 공연 무대가 몬스터 트럭 대회 막간 공연에서 보여지듯이 그들의 기대와 다르다.
여전히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디디가 호텔 프런트에 자신의 토니상 트로피를 올려 놓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장면 등에서 보여지듯 <더 프롬> 곳곳에서 보여지는 '셀프 디스'의 여유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디스가 무색하게 노익장의 메릴 스트립은 그녀가 등장했던 또 다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보다 훨씬 역동적인 뮤지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로맨스도 빼놓지 않고. 외려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건 <시카고>의 니콜 키드만을 기대했던 모습을 애마와의 단 한 씬으로 만족해야 했다는 점이다. 아쉬움을 차치하고 보면 <더 프롬>은 대번에 귀를 사로잡는 뮤지컬 넘버는 아쉽지만 대체적으로 흥겨운 뮤지컬 영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흥겨운 뮤지컬 영화에 얹힌 LGBQ 교과서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의 궤도를 따라간다. 명망성에 기대어 인디애나 고등학교로 납신 브로드웨이 스타들은 애마를 돕겠다는 허울좋은 해프닝을 통해 외려 각자가 가졌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좋은 어른으로 애마의 '동지'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애마는 어설픈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등장으로 고무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모색하여 해결한다. 영화 내내 고뇌하는 애마의 주옥같은 테마는 결국 여전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도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애마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기 않겠다고 용기를 낸다. 그리고 이전 헐리웃 성장 영화에서 '성장의 모티브'가 <더 프롬>에서는 '성적 정체성'으로 변주되어 한 소녀의 내적, 외적 갈등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헐리웃 뮤지컬 영화의 궤도를 따르지만 그 과정에서 <더 프롬>이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건 바로 '성적 다양성'에 대한 '계몽'이다. 줄리어드를 나왔다는 사실만 입에 달고 살던 트렌트(앤드류 라넬스 분)가 애마의 친구들을 상대로 보수적인 남부 사람들이 신앙처럼 믿고 있는 성경의 문구들이 얼마나 자의적인가, 결국 당신들이 신봉하는 성격이 말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내용의 뮤지컬 넘버는 그런 계몽주의적 <더 프롬>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어 보여준다.
왁자지껄했던 프롬의 소동은 결국 등장인물 각자가 가졌던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결된다. 여전히 '셀럽'이라는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디디 앨런은 그 '셀럽'의 허울좋은 명예와 재력을 내던지고 '사랑'을 얻는다. 16살 졸업파티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부모도, 고향도 버려야 했던 베리는 뒤늦은 '화해'를 한다. 그렇게 애마를 빌어 자신들의 명성을 되찾으려던 한물 간 셀럽들은 애마를 통해 저마다의 고민을 풀어낸다. 애마 역시 자신처럼 용기를 내지 않는 연인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하지는 거기에 주저안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결단을 통해 사랑도 얻고 자신감도 회복한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집단 군무의 휘날레를 통해 화해하고 행복해진다.
네임드한 배우들의 다수 출연만큼 가지가 많았던 <더 프롬>,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횡행하는 미국 사회에 대해 메릴 스트립 등의 배우가 기꺼이 출연하여 소리 높여 '성적인 자유'를 주창하는 작품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이 바로 이 작품의 의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세계적인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어수선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뮤지컬 넘버들은 여전히 보는 이의 흥을 돋는다. 학교 현장에서 이 <더 프롬>을 틀어준다면 어떨까? 구구절절 설득보다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에 용기를 낸 소녀 애마를 통해 LGBQ에 대한 인식의 담을 허무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면 오른쪽 눈의 경우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물체의 색이 바래서 보인다. 안보이는 것보다 세상의 빛깔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검사를 할 때마다 울적해 진다. 나이듦이란 세상에 태어나 누리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백내장 초기라지만 왼쪽 눈은 시력이 나와서 글을 쓰고 살만하니 다행이다 이러구 살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나이가 들고 병이 생겨 자신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을 더 이상 여의치 않아진다면 어떨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화가 앙리 마티스가 전해준다.
지난 10월 31일부터 마이 아트 뮤지엄에서 앙리 마티스의 탄생 150주년 특별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앙리 마티스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도 학창 시절 미술 시험을 보기 위해 야수파 앙리 마티스 하고 외웠던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야수'라는 정의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붉고 초록의 커튼이 드리워진 방을 그린 교과서 속 그림이 떠올려 질 것이다. 그게 아니라 조금 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신의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는 <춤>이나, 가위로 잘라낸 자유 분방한 푸른 여성의 나신들의 콜라주 작업인 <블루 누드> 연작 시리즈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붓대신 가위를 든 화가 본인 자신이 화가라 마티스의 블루 누드 연작에 대한 세간의 폄하에 대해 예술가로써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던 윤석화 도슨트의 열정적인 해설을 도움받아 접한 <앙리 마티스 150주년 특별 전시회>는 나이듦과 병이라는 걸림돌에 무너지지 않은 채 외려 그것들을 지렛대로 삼아 삶의 불꽃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가 앙리 마티스를 만날 수 있다.
1869년에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앙리 마티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법률가가 되었다. 하지만 맹장염으로 인해 무려 2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던 그는 '법'과는 정반대인 미술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렇게 앙리 마티스의 일생에서 '육체적 고통'은 그에게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전시회는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야수파 앙리 마티스를 지나 노년기의 마티스로 부터 시작된다. 고흐 등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신인상주의적 그림에서 부터 선과 색이 강렬하게 그러난 야수파로서 '화가'로 인정받았던 시절을 지난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사해 나갈 수 있었던 장년, 노년의 마티스이다.
여기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춤>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사물을 화가의 시선으로 '각색'한 그림들이 새로운 조류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구상'이 대세이던 시절, 마티스가 단순화된 형태와 명쾌한 색으로 구성된 작품 <춤>을 선보인다. 당연히 그의 첫 시도는 아직 평단과 화상,그리고 대중적 이해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화가로서 보다 안정적인 경지에 이르르며 그는 <춤>을 통해 표현해 내었던 작품 세계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전시회에서 가장 중심이 된 <블루 누드> 시리즈는 그러기에 그에게 찾아온 병마로 인해 병석에 누워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택한 불가피한 방식이라고만 보면 아쉽다. 도슨트의 강조처럼 누구라도 오려낼 수 있는 쉬운 작업이 아니라, 푸른 바탕의 종이를 대번에 잘라, 즉 이미 화가의 머릿 속에 작품이 구현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예술적 도전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랫동안 앙리 마티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피카소가 앙리 마티스가 병석에 누워서도 가위를 사용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해 시기를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말년에 '가위를 활용한 콜라쥬'를 통한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보다 자유로운 도전은 전시회의 제목 '재즈'와 통한다. 구상화된 소묘에서 오블리스크 연작 과정을 통해 보다 단순화되고 장식적인 화풍으로의 전환, 그리고 석판화집에서 보다 추상화되어 가는 대상들의 등장은 화집 표지 '이카루스'를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작품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가 그 어떤 구상화적 표현의 이카루스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모델들의 소묘로 시작된 전시회는 말년 'by 앙리 마티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로사리오 대성당으로 마무리된다. 이 전시회의 흐름은 우선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난 모델들의 데생이 로사리오 성당 벽면에 둥근 원으로 대체된 성모자상으로 이르게 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과정이다.
중단없는 도전 개인적으로 전시를 보고 의문을 느껴 도슨트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던 이 과정은 모델들의 가장 적절한 포즈가 나올 때까지 모델들을 집요하게 관찰했던 앙리 마티스가 인간을 표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목구비를 '상실' 시키는 작업에 이르는 '추상'의 탄생이다. 구체적인 표현 대신 보다 단순화되고 선명해진 선을 통해 외려 앙리 마티스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화가의 눈에 비친, 화가의 눈으로 본 대상을 '상실' 시켜 그림을 보는 이들의 주체성을 부여하는 '자유로움'을 향한 여정은 바로 미술사에서 추상의 탄생 과정에 다름 아니다. 로사리오 성당 벽면의 텅빈 얼굴을 통해 신자들을 저마다의 성스러움에 다가가기를 앙리 마티스는 유도했다. 성모자상의 얼굴을 과감하게 생략한 앙리 마티스도 마티스이지만 그런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프랑스 천주교의 예술적 유연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러기에 흑백의 단순한 벽에 비친 푸른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한 햇빛의 경이로운 조화라는 천재적인 예술 작업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년의 앙리 마티스는 젊어 캔버스를 통해 표현했던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확장해 간다. 석판화집을 비롯하여 스트라빈스키의 무용 작품<나이팅게일의 노래> 의 무대 의상, 스스로 선정한 시인들의 작품집에 삽화, 그리고 로사리오 성당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방위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 간다. 2차원적 평면에 강렬한 색으로 표현되었던 마티스의 세계는 시의 해석을 통한 세계의 확장을 시도했으며, 무대 위, 그리고 건물의 벽면을 통해 3차원적 영역으로 한계를 뛰어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작업은 그가 두 차례의 암 수술을 하며 붓조차 쥐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은 그렇게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접했던 모더니즘의 발전, 그리고 추상의 등장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그런 미술적 이해를 넘어 평생을 병마와 우울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세상에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으려 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쁨과 환희를 주는 작품을 그려내고자 하는 인간 마티스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려서 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 마티스를 주저앉혔던 병마, 그리고 그가 살아온 시간 동안 겪었던 두 차례의 전쟁, 그리고 개인사까지, 마티스의 그림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종교와 믿음이라 여겼던 예술을 향한 성실한 구도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더 생존했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마티스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트롯에 소크라테스라니, 가수 나훈아가 '테스 형'을 부를 때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열광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테스 형의 그 말 한 마디가 그토록 통쾌했던가.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는 건 테스 형만이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MBTI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의 무료 검사지에서 확인한 자신의 성향에서 부터 꽃, 별, 각종 매개를 활용한 '나' 알아가기 방식에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허문다. 2020년 왜 사람들은 새삼스레 나를 찾는 것일까?
16가지로 구분된 인간 유형 1) 나는 다른 사람과 자주 어울리는가? 아니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가? 2) 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가? 아니면 상상을 즐기는 창의적인 사람인가? 3) 논리적이고 분석적인가? 아니면 감정적이고 정서적인가? 4) 일을 함에 있어 계획적인가? 아니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을 잘 하는가?
외향적(E)인지, 내향적인지(I), 감각적인지(S), 직관적인지(N), 사고형인지(T) 아니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지(F), 판단형인지(J), 인식형(P),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8가지 서로 다른 지표를 조합하여 16가지 성격 유형이 드러난다.
이러한 MBTI의 시초는 칼 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칼 융은 사람은 저 마다 타고난 심리 유형이 있다고 있고, 이러한 칼 융의 사상을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가 16가지 인간 유형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30년전 김정택 신부가 도입했다.
자기 안의 어떤 특성이나 장점을 먼저 이해하고 수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검사도구라는 김신부의 취지, 그런데 히틀러와 간디가 같은 심리 유형이라는데 과연 맞을까?
다큐에 등장한 젊은 층들은 신기하다. 소름끼친다는 말로 MBTI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짚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요즘 시대의 명함'이라는 표현처럼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 남을 이해하는 유효한 도구가 된다고 장담한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만능'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렌즈가 다른 사람들 똑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 MBTI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유형을 알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즉 각자가 가진 렌즈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젊은 층이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는 MBTI에 대해 정작 이를 만든 이사벨 마이어스는 '장벽처럼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유려를 표명한다. 즉 나를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너무도 다른 유형들에게 대한 '편견'의 색안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MBTI가 사람을 알아가는 조금 쉬운 도구지만, 정작 MBTI를 알게 되고 나니 아무나 못만나겠다는 고백도 등장한다.
다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MBTI에 열광하는 현상을 세대론을 통해 분석한다. 이른바 MZ세대,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와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이 세대는 살아오며 성적과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익숙한 세대이다. 즉 끊임없이 '나'에 대한 자극과 질문을 받은 세대로 그만큼 자신을 납득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던 세대였다. 그래서 나를 찾는 MBTI'를 놀이 문화이자 트렌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소서'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했던 이 세대에게 MBTI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유효한 도구가 되었다.
왜 MBTI일까? 또한 올 한 해 코로나로 인해 취업의 어려움과 함께 '고립감'과 싸워야 하는 시절, 학교에 가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밥이라도 먹으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친,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MBTI는 자신을 확인해주는 거울이 된다.
물론 '나'를 확인해주는 도구가 MBTI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신뢰했던 사주, 그리고 동양 사상에서 유래된 '사상체질', 그리고 MBTI에 앞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은 '타로' 역시 다르지만 같은 류의 자신을 확인해 주는 매개체이다.
온라인 MBTI 무료 검사지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방식,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 검사 방식이 사실은 MBTI가 아니라면 어떨까? 다큐 제작팀이 문의해본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그 MBTI 검사는 MBTI를 만든 마이어스-브릭스 제단과는 상관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검사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인스타를 통해 MBTI의 효용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똑같은 사람이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등 결과의 유효성 자체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최스원 교수 역시 회의적이다. 몇 개의 질문에 본인이 답을 다는 방식 자체를 심리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유형별로 나누면 한 유형당 부산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들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재단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심리 전문가는 MBTI 검사는 결과보다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문적인 해석이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결과가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평가하고 재단하는 기준이 아니며, 그 유형 안에 나를 가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큐를 이끈 '쭈니 형', 박준형 씨는 MBTI를 비롯하여, 사주, 사상체질, 타로를 체험하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맞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말한다. 다큐 상에서 등장한 MBTI, 사주, 타로, 사상 체질은 박준형 씨에 대해 모두 다른 정의를 내린다. 그런데 본인은 맞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즉, 박준형이라는 한 사람이 가지는 다양한 면이다. 박준형이라는 사람은 MBTI로 보면 분위기를 잘 띄우는 사람이지만, 사주로 보면 또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사람이고, 타로로 보면 한번 하기로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게 서로 다른 걸까? 박준형이라는 사람이 가진 서로 다른 측면인 것이다. 그렇듯 MBTI는 우리가 가진 성격의 한 면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심리를 공부하며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해봤다. 올초에 한번 해봤고, 올 중반에 다시 한번 해봤다. 올 초에 내향이던 성격이 중반에 이르러서는 외향으로 나타났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성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상황이 변했던 것이다. 외향으로 결과가 나오던 시기 기자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맺던 시기였다. 당연히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 자신의 생각들도 변화를 겪게 되는 상황, 그런 변화를 MBTI가 반영한 것이다. 물론 똑같이 나온 부분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10여 년전 검사했던 것과는 나머지 부분도 달라졌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하지만 상황에 따라, 경험에 따라 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MBTI를 알고나면 편하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니 '결정'을 해야 되는 과정에서 한결 자신을 덜 혼돈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나'는 변한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나'가 변했을 수도. 내 스스로 나에 대해 답을 정하는 MBTI, 답에 대한 내 기준이 변하면 나도 변한다.
나이가 들어 제일 두려운 건 '치매'에 걸릴까 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노인들은 '자신'을 잃어가는 치매를 제일 걱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노인 한 사람의 치매로 온 가족이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이한 고통이기에 더욱 그에 대한 하중이 커진다. 바로 그 '치매'에 대한 화두를 12월 5일 방영한 드라마 스페셜 2020 <나들이>가 다루고 있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 소파에서 잠을 깬 영란 씨, 그녀의 눈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듯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집안의 모습과 벽에 걸린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영란 씨는 현실의 시간에 한 발 들어선다.
잘 손질된 화단에 장독대, 마당까지 너른 번듯한 이층집, 그 안을 채운 시간의 더깨가 앉은 가재도구들, 그곳에 영란 씨라는 이름를 가진 노인이 홀로 산다. 한때는 음식 장사로 성공을 거두어 입지전적 인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던 영란 씨지만 이제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조차 내려서는 것이 버거운 노년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 장독 두껑을 챙겨 덮으며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청천벽력같은 '치매'라는 판정이다. '내가 왜?'라며 벌컥 화를 내는 영란씨, 정신줄 놓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그녀에게 치매라는 판정은 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판정과 함께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없던 시절', 그녀의 어머니도 '치매'였다. 밥그릇을 빼앗는 그녀를 문밖까지 쫓아와 '왜 밥도 못먹게 하냐'며 빗자루로 모질게 패던 어머니, 내림이듯 그 어머니의 병이 이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벅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치매'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처럼 '치매'라는 판정에 영란 씨는 자신이 보았던 그 '못볼 꼴'을 이제 당신의 자식들에게 안겨야 한다는 게 서럽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된 '손숙' 배우가 자신을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뇌'하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제일 겁날까. 우선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병이 자기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안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앞설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게 되는 '인지상정', 드라마는 그 여전한 모성을 담는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중
영란 씨와 순천 씨의 나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영란 씨는 나들이를 떠난다. 그녀의 나들이를 동행한 건, 아니 그녀를 모시고 떠난 건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잘난 자식들이 아니다. 영란 씨에게 어수룩하게 포도 송이를 빼앗겼던 트럭 행상 방순철(정웅인 분)이다. 한때는 출판사도 했었다는 그는 과일전을 펴놓고도 아이들이 맛보기 과일을 퍼먹던 말던 그 옆에 앉아 시집을 펼쳐보는 장사에는 젬병인 장사꾼이다.
그런 그이기에 물건을 떼기 위해 가는 원주 행에 함께 하고 싶다는 영란 씨의 떼쓰는 듯한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함께 떠난 여행, 물건을 떼는 농원에서 장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란 씨 덕에 바가지는 쓰지 않았지만 거래처를 놓치게 된 순철 씨는 그저 씁쓸한 미소 한번으로 삼키고 영란 씨가 원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나들이는 원주로 고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순철 씨라고 사정이 없을까. 사람좋은 만큼 세상살이 자기 것을 야무지게 챙길 잇속이 없던 순철 씨는 가족마저 잃은 채 팔자에 없는 트럭 행상 중이다. 늦은 밤 과일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집 앞에 놔두고 떠나는 그에게 딸은 '돈'이 필요하다며 악다구니를 한다. 빚쟁이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기 위해 이혼 도장을 찍어주는 게 다였던 순철 씨에게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대학을 다니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아버지 노릇을 요구한다.
드라마는 나이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을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엮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은 여의치않다. 자식을 위해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손이 곱도록 장사를 했지만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영란 씨의 자식들은 '만족'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런 자식들에게 영란 씨는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순철 씨 역시 뭐든 다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자식들은 다르지 않다. 가진 걸 다 퍼준 영란 씨 자식들이나, 가진 게 없는 순철 씨 자식이나 여전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요구'할 뿐이다.
그 '요구'를 채워주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일까? 드라마는 가진 걸 다 퍼부어 줬는데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늙은 엄마 앞에서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영란 씨의 자식들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묻는다. '배금주의' 사회의 이치를 따라 살아온 영란 씨의 의지가지할 데 없는 처지를 통해 반문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쏟아부으려 한다. 그 마지막 선택이 영란 씨는 더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치매인 엄마를 '의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순철 씨는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영란 씨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두 사람의 선택은 원하던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대신 각자가 홀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 그간 두 사람의 나들이가 헛되지 않았던 탓이다. 치매에 걸린 노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 그게 답이 있을까. 그래도 드라마는 답을 구한다. 드라마의 엔딩, 여전히 두 사람은 다시 '나들이'를 떠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황지우의 시처럼, 그거면 되지 않을까. 너른 세상 잠시 잠깐이라도 서로가 '벗'이 되어 떠날 수 있는 시간, 그거라도 있다면 삶의 족쇄는 조금은 헐거워질 것이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옛 이야기 속 여우 누이는 '누이'로 둔갑한 여우가 가축들부터 시작하여, 부모님, 형제들까지 잡아먹어가며 한 집안을 '거덜'내어 버리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는 여름이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었지만 '서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는 사람의 간을 먹고 사람으로 되고자 한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된 여우를 의심한 남편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을 원망하며 사라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구미호 전설이 환타지 멜로 버전으로 오늘에 되살려졌다.
'전설' 속 이야기를 현대적 버전으로 되살리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드라큐라도, 늑대인간도 영화로 부터 시작하여 '미드' 속 주인공으로 맹활약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동훈 감독에 의해 일찌기 족자에 봉인되었던 전우치가 서울 시내를 활보한 적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영화<신과 함께>,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하여 다작 중이다. 그런 면에서 구미호의 현대적 버전 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2월 3일 종영한 <구미호뎐>은 구미호 전설과 함께 우리의 전설 속 다양한 콘텐츠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해석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전설 속 구미호들은 일관되게 '여자'였다. 여우라는 동물이 가지는 그간의 고정 관념에 힘입어 늘 이야기 속 여우들은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대변했다. 그런데 새롭게 찾아온 구미호는 그런 전설 속 고정 관념을 뒤집는다. 산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르시즘'에 빠질 만큼의 '미모'를 가진 남성이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여우는 서울 한 복판에 빨간 우산을 들고 활보하지만 한때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전설 속에서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빼내 온 것이 아니라 구미호를 중심으로 전설 속 세계관을 오늘에 되살려 냈다는 것이다.
오늘에 되살려 진 전설 속 세계관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 구미호가 주인공이지만, <구미호뎐>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삼도천이다. 즉 죽은 후 저승에 이르는 큰 강, 서양 신화의 아케론과 같은 영역에서 그곳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누이 탈의파가 이제는 '내세 출입국 관리소'가 되어 그곳을 관장하며 드라마 속 삶과 죽음의 운명을 총괄한다. 삶과 죽음의 운명을 가르는 현세와 내세관이 드라마의 세계관으로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준다.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지만 구미호 이연(이동욱 분)은 전설 속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채 '인간' 여성(조보아 분)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의 훼방꾼, 그리고 백두대간을 다스리는 산신의 자리를 욕심낸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여우는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 한다는 전설 속 '인연의 고리'가 아킬레스 건이 되어 사랑하는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과 여우 사이에 태어난 구미호의 의붓동생 이랑(김범 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무기의 측근과의 얽힌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은혜'라는 전통적 보은의 사고를 환타지 멜로 <구미호뎐>은 양날의 칼이 되는 극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구미호는 산신의 자리를 박차고 삼도천의 '무사'가 되어 600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사랑하는 이의 '환생'을 기다린다. 구미호가 '환생'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승을 향해 가던 여인에게 자신의 여우 구슬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우 구슬을 가진 이를 찾으며 이승을 어지르는 갖은 악귀를 '처단'하는 전사 구미호가 된 것이다.
전사가 된 구미호 곁에는 또한 전설 속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해 준 이연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우렁각시와 토종 여우, 그리고 애증의 이복동생 이랑과 그가 구해준 러시아 여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600년의 세월 동안 사랑으로 얽힌 환생한 인간 남지아와 그 맞은 편에 그만큼의 세월 동안 구미호의 자리를 넘본 이무기가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등장한다. 그외에 에피소드로 민속촌에서 사또 코스프레를 하는 또 다른 산신 반달곰, 여우고개의 지박령 외눈박이 장승에, 여우구슬을 탐내는 저승지왕까지 매회 신선한 전설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밀고 당긴다. 구미호를 중심으로 이 캐릭터들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미호뎐>은 흥미로웠다.
인연의 결자해지 건물주가 된 구미호 이연, 다큐 피디로 그의 앞에 나타난 환생한 연인 남지아, 방송사 사장으로 포진한 이무기의 측근, 그리고 인턴으로 등장한 이무기에 수의사 토종 여우 등등 각각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고 드라마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지만 결국 이들을 이끄는 것은 '인연'이자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사랑'이다.
매년 <전설의 고향>이 리바이벌 되고, 그 중에서도 구미호라는 캐릭터가 스터디 셀러가 되는 이유는 그 비극적 운명성에 있다. 인간의 간을 탐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고 싶은 아이러니한 운명은 고전 비극의 요소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구미호뎐> 역시 그러한 비극적 운명을 그대로 가져온다. 사랑하지만 600년 전 결국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인연을 저버리지 못한 채 구미호가 그녀의 환생을 기다린 이유는 바로 자신을 위해 죽어간 그녀에 대한 '보은'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전설이 가졌던 비극적 운명성은 살리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인연으로 얽힌다. 구미호와 600년의 연인 남지아가 그렇듯, 드라마 초반 '악역'으로 매번 구미호의 발목을 잡았던 이랑의 '원한'은 알고보니 600년 전 형에게 버림받았다는 '악연'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이다. 또 다른 악의 축 이무기의 사연도 알고보면 안타깝다. 흉측하게 태어난 몰골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틈에 버려진 아기가 이무기가 되어 용이 되어 승천하고 산신이 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원한'이 시공을 거슬러 오늘의 '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남지아에 이무기가 연연하는 건 그녀가 600년 전 그에게 제물로 받쳐진 여인이기 때문이다.
매번 우렁 각시의 식당에 와서 알짱거리던 탐사 보도 팀 팀장이 알고보니 이무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신랑이라던가, 공원에서 자꾸만 이랑의 뒤를 따라오던 아이가 알고보니 전생에 이랑이 아끼던 검둥개였다는 식으로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은 전생과 이생에 이어진 다하지 못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그 인연에 순응하는 대신 저마다 그 주어진 숙명을 뛰어넘고자 애쓴다. '환생'을 통해 다시 만났지만 사랑하는 이의 몸에 따라온 이무기로 인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는 '희생'은 숙명을 거스른 전설의 재해석이 된다. 600년 전과 달리 이연이 몸을 던져 남지아를 구하고 삼도천에 뛰어들었지만 그가 남긴 여우 구슬이 이연을 환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남의 목숨이었던 꽈리로 목숨을 연명하던 이랑이 형 이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함으로써 사랑받는 소년으로 '환생'한 것처럼 드라마는 인연의 재해석을 통해 '해피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설을 비껴간 듯한 재해석은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세계관에 따르기에 환타지 멜로는 '모던'했자만 전체적인 정서는 여전히 고전적 프레임을 유지한다.
앞서 <도깨비>에 이어 <구미호뎐>까지 고전적 인물의 현대적 버전으로 안성맞춤인 배우 이동욱의 적절한 캐스팅에, 중 2병같은 형님앓이를 하는 반항적인 이랑의 김범, 그리고 젊은이의 모습이지만 그 서늘함은 딱 600년을 거스른 이무기에 어울렸던 이태리에, 삼도천의 수장에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었던 김정난 등 적절한 캐릭터 캐스팅에 전설을 환타지적으로 잘 버무려 낸 극본, 그 극본을 공들여 환타지로 되살려 낸 강신효 연출까지 모처럼 깔끔한 환타지 멜로가 반가웠다.
아이러니하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은 그간 주식에 관심이 없었던 2030 세대로 하여금 주식 열풍에 빠지게 하였다. 2030세대 100 명 중 54%가 주식을 하고 있고, 그 중 90%가 올해 주식을 시작했다.
BTS 주식을 굿즈로 사는 세대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 풍경이 변화했다. 점심 시간이 시작하자 마자 제일 먼저 할 일은 식당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전 장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차 한 잔을 놓고 나누는 이야기가 대부분 주식 투자 관련이다. 대부분이 우리나라든 해외든 주식 투자를 하고 있기에 주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는 어색한 주제가 아니다.
대학생이라고 다를까. 수업 시간에 주식을 못팔아 '물렸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주식 관련 스터디 모임을 하고 몇 십만원에서 부터 연습삼아 주식을 시작하는 '주린이'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낯설지 않다. 이들에게 주식은 한강아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도록 '자수성가'의 꿈을 이뤄줄 이 시대의 동앗줄과도 같다.
6년전 대학을 중퇴한 후 단돈 200만원에서 1억 2천을 마련한 주식 투자 크리에이터 종현 씨, 종현 씨의 여자 친구는 한때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욜로 족이었지만 종현 씨를 만나 신용카드 끊기부터 시작하여 삶의 방식을 바꿨다. 데이트도 투자와 수익이 날 상가를 찾아보며 하는 이들 커플, 그런 덕분일까 그간 저축한 돈에 대출을 얹어 신혼집을 장만했다.
더는 부모님 세대처럼 주식으로 패가망신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세대. 그들에게 주식은 주도면밀한 생존 전략이다. 금융 투자 전문가 존리는 코로나와 함께 등장한 젊은 세대의 주식 투자 열풍에 대해 고통으로 인한 인식의 변화를 그 이유로 든다. 코로나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가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하고, 혹시나 인생에서 놓치는 것이 없는가라는 '성찰'이 주된 관심사 '돈'에 대한 열망으로 귀결되며 주식 투자 열풍을 낳았다는 것이다.
작년에서 올해에 걸쳐 20대의 일자리가 20만 개가 줄었다. 30대는 29만 개가 줄었다. 저성장 시대 삶이 불확실성이 증가했다. 평생 직장은 사라지게 되고 그에 따라 젊은 세대들은 실직 불안에 떤다. 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자산의 가격차는 커졌다. 선택의 차이가 너무도 다른 결과를 낳았다. 코로나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평가에 82%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세대. 근로 소득만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다고 88?%가 대답하는 세대. 젊은 세대는 혹시나 그들에게 닥칠 극단적 궁핍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절박하게 주식에 뛰어든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정보에 따른 해석 능력에 따라 부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젊은 세대로 하여금 일확천금의 꿈을 꾸도록 만든다.
래버지리라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 자칭 '오창의 존리'라는 김재용 씨는 퇴근하자 마자 주식 마감장을 확인한다. 이제 주식 투자 7개월 차, 2000 만원을 대출 받아 투자하여 4500만원을 만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매달 200만원 정도 씩을 투자하는 그는 매번 이익을 보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우상향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투자에 올인한다. 5000 만원이 모이면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가겠다는 그, 부족한 자금은 대출을 통해 충당하겠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임대를 한다면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낼 것이란다.
블루머니라는 주식 투자 블로그를 하는 30대, 3천~4천 정도 마이너스 통장을 활용하여 국내외 주식 투자 자금을 1억 5천 정도 되게 불렸다. 주식 투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그는 원래는 빚을 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초급락장에는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활용하여 '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금리 시대 빚을 이용해야 한다고조 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 주식 투자를 안하면 손해라는 것이다. 상승장과 하락장의 대세를 잘 알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한다.
주식 투자 15년 만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전인구 씨는 구독자 24만 주식 관련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오는 상담 메일 중 상당수가 돈을 잃었다는 내용, 그 중에서는 2~30대가 제일 많단다. 마이너스 통장은 물론, 카드론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주식에 '몰빵' 했다가 날렸는데 어떻게 하면 원금을 회복할 수 있냐는 내용들이다.
올 한 해 신용대출만 13.2조원,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30대가 가장 많았고, 20대도 많았다. 100 조에 이르는 주식 시장에 도는 자금 중 10~20%가 이른바 '빚투'이다. 대출은 너무 쉽다. 젊은이들은 비상금 대출을 받아 주식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 역시 회사에서 해주는 대출이 쉽다. 상승장에 이른바 빚을 내서 투자하는 '래버리지'라도 땡겨서 투자를 하려는 이들, 과연 빚투는 승산이 있을까?
주식만이 아니다. 이른바 '영끌'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빚을 내서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람들이 젊은 층의 61.5%에 이른다. 실제 주택 담보 대출의 44%가 2~30대이다. 과도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짊어진 빚의 무게를, 마이너스 통장을 대출받아 그걸로 주식 투자를 해서 메꿔보겠다는 세대. 아파트 값이 평균 10억 이상이 된 시대, 여전히 부동산은 손해보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저당잡힌 젊은 세대의 어깨가 무겁다.
젊은 세대들은 왜 그렇게 '돈'을 모으기에 자신을 던질까. 그들은 말한다. 돈때문에 선택이 바뀌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인색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돈은 불행을 막아준다고.
주식 환불해 주세요 하지만 36년 투자 경력의 이원기 씨의 주장은 다르다. 지금은 비교적 수익률을 올리기 쉬운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잉 자신감을 가질 우려가 크다고 경고한다.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지난 36년의 경험에 비춰 이른바 우량주라는 주식이 -30%, -50%, 심지어 -80%가 되버린 경우가 200개도 넘는 반면, 엄청난 수익을 낸 경우는 20개에 불과했다고 우려한다.
스마트한 소수가 이익을 보고 평범한 다수가 손해를 보는게 주식 투자의 구조라고 정의한 이원기 씨는 주식을 마치 전자 오락이나 모바일 게임처럼 희화화하는 경향이나, 동학 개미 따상 등의 감각적인 단어가 붐을 일으켜 사람들을 주식으로 끌어모으는 호객 행위와도 같다며 냉철하고 차가운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고 아쉬워한다.
존리 씨 역시 오른것만 보고 투자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을 안타까워 한다. 200만원을 투자하여 50만원을 벌면, 2억이면 5000 만원을 번다고 상상하게 되는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 박영미씨는 빅히트 주식이 떨어지자 환불 소동이 벌어지는 데서 보여지는 젊은 층의 주식 자체에 대한 짧은 지식을 우려한다.
가계 대출 사상 최대, 경제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피케티 지수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인 한국 경제, 젊은 층은 이런 시대를 돌파하게 위해 경제 전선에 자신을 던진다. 밀레니얼 세대는 마치 게임 인벤토리 리스트처럼 직장도, 수익도, 그리고 기초 자산도 필수라 여긴다.
하지만 이런 브레이크 없는 고속 열차같은 한국 경제 상황에 '버블'을 우려한다. 고대 강성진 교수는 재정 적자로 인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지출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코로나가 끝나고 재정이 줄어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빚내서 집을 산 사람이 파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영혼을 끌어모아' 투자를 하고 집을 사지만, 그런 방식이 외려 젊음의 시간을 담보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재밌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웹툰 <경이로운 소문>이 <써치>에 이어 ocn 토일 드라마로 시작되었다. <뱀파이어 검사 시즌 2의> 유선동 피디와 <결혼못하는 남자>의 여지나 작가가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를 잡는 생활밀착형 '카운터'들의 영웅적 활약상을 다룬다.
인기있는 웹툰의 드라마나 영화화는 통과 의례처럼 되고 있는 시절, 웹툰을 즐겨봤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우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웹툰 속 캐릭터가 얼마나 드라마 속 인물로 잘 구현되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29일에 이어, 30일 1,2회를 선보인 <경이로운 소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제작 발표회에서 유선동 피디의 말처럼 원작의 캐릭터와 '찰떡'인 배우들의 면면이다.
국숫집 하는 악귀 사냥꾼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국숫집, 점심 시간 단 3시간 동안만 하는 국숫집에 점심 시간이면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그런 손님들 사정은 아랑곳없이 서빙을 하던 하나(김세정 분)이 눈짓을 하자 주방에서 일하던 추매옥(염혜란 분)과 가무탁(유준상 분)이 하던 일을 내려놓은 채 나선다.
우선 시선을 끄는 건 앞서 소문(조병규 분)이 아버지의 선배 형사였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던, 하지만 이젠 '건달' 포스 만빵으로 주방에서 튕기듯 칼날을 부러뜨리는 괴력의 소유자가 된 무탁 역의 유준상이다. 건들거리는 몸짓, 눈알을 부라리지만 결코 악랄해 보이지 않는 묘한 선한 분위기, 그리고 소문이의 강펀치에 뒤돌아 쩔쩔 매다가도 의연한 척 파이팅을 해보이는 코믹한 고지식함을 유준상만큼 제대로 표현해낼 배우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때는 형사였다 카운터가 된 무탁 역은 그저 유준상의 등장만으로도 예측 가능해진다.
악랄했던 <도깨비>의 이모였다가, 돈밖에 모른다고 자식에게도 욕을 먹지만 알고보면 이를 악물고 약쟁이 자식을 감옥에 보내야만 했던 표리부동(?)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엄마인가 하면, <라이프>에서 척하면 척하던 전문적인 비서 등등 그간 염혜란 배우가 해온 역할로 보면 '전천후'라는 말이 딱이다.
그런 염혜란 배우가 이번에는 '히어로'가 되었다. 평상시에는 넉넉한 국숫집 주방장이었다가 어디선가 악귀가 나타났다는 소식만 들리면 빨간 츄리닝 모자 뒤집어 쓰고 '열나게' 달려 악귀와 육박전을 마다않는 전천후 히어로다. 거기다 '치유'의 능력까지 지녀 7년 동안 걷지 못했던 소문이의 다리까지 고쳐주고, 카운터가 될까말까하는 소문이를 구슬르는 역할까지다. 넉넉함과 푸근함, 그리고 단호함과 카리스마까지 하지만 염혜란 배우의 내공 앞에 그런 강온을 오가는 추매옥은 그저 또 다른 맞춤 옷일 뿐이다.
그렇게 염혜란 배우와 유준상 배우가 저마다의 장기를 가지고 추매옥과 가무탁으로 연기의 중심을 잡아준 가운데, 이제 다시 한번 배우로 출사표를 낸 김세정이 그간 트레이트 마크였던 애교어린 웃음기를 쫙 빼고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가진 도하나로 등장한다. 많은 대사는 없지만 그저 임무라기엔 어딘가 비밀스런, 그리고 사이코매트리 능력 때무일까 극도로 자기 보호적인 도하나로 거듭난 배우 김세정이 이물감없이 드라마에 어우러진다.
그리고 <스카이 캐슬>의 차기준은 기억에 남겠지만, 그 차기준이 <란제리 소녀 시대>의 그 어리숙한 오빠였다고 하면 새삼 다시 보게 되는 배우, 25살에 보조 출연부터 시작하여 작품 수만 70여 편이 되는 조병규 배우가 <경이로운 소문>의 소문이로 돌아왔다.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절고, 부모님이 그때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치매 걸린 할머니와 사는 아이, 그런 소문이가 단 2회 만에 자신의 몸에 들이닥친 융인 위겐(문숙 분)으로 인해 카운터로 거듭나게 되는 상황을 조병규 배우가 설득해 낸다.
이제 2화까지 방영된 <경이로운 소문> 하늘과 땅이 연결된 세계 융이란 곳이 등장한다. 그리고 , 그곳의 지시를 받아 죽음의 기로에서 카운터가 된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이 악귀가 씌인 사람들을 파쿠르르(야마카시)처럼 뛰고 나르고 벽을 타오르며 추격전을 벌이고, '액션'을 탑재 퇴마사의 역할을 하는 설정은 기상천외하지만 그만큼 '설득력'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융의 등장을 알리는 오로라 색 빛은 유치해 보일 수 있고, 가끔씩 스턴트 맨인 지 분간되는 액션 씬은 어설플 수도 있다. 결국 웹툰에서는 흥미롭지만 드라마라는 콘텐츠가 설득해 내기 난감한 설정을 <경이로운 소문>은 주요 캐릭터의 탄탄한 캐스팅으로 배팅한다. 덕분에 비록 원작의 캐릭터와 얼굴은 다르지만 원작 속 캐릭터의 면면을 잘 살린 연기들이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조차 기상천외한 악귀 카운터들의 활약상에 이물감없이 빠져들고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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