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매일 밤, 아니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는 12시 20분에 지난 15년간 꾸준히 찾아온 '지식 보따리'가 있다. 바로 EBS의 지식 채널 E이다. 정보의 흡수가 보다 빨라지고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한 꼭지당 겨우 5~6분여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인문, 사회, 과학, 예술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진지하게 세상에 대한 해석을 해왔다. 코로나로 한 해를 보낼 즈음 <지식 채널 E>는 시민들과 콜라보로 '브이 로그' 11부작을 마련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온 시민들의 삶을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코로나의 일선에서
12월 30일 12시 20분, 아니 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0시 20분 11부의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는 올 한 해 잠시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 의료진들의 이야기 <#덕분에 #고맙습니다>로 마무리되었다.
선별 진료소의 하루는 레베 D 방호복 환복에서 부터 시작된다. 6월 외부의 온도는 23도 정도지만 환복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한증막 속에 있는 듯하다고 호소하는 의료진, 하지만 한증막같은 방호복이 그들의 '업무'를 막을 수는 없다.
감염의심자의 입장에서는 낯선 곳, 낯선 의료진에게 코와 입을 찔려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 그들을 의료진들은 많게는 하루 120명을 상대하며 지난 1년을 보내왔다. 일요일 35명의 방문자가 반가운 현실, 격리 병동이라고 다를까, 3명의 환자가 기쁜 소식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 병동이지만, 간호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을 감싼 방호복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들이 맞이했던 똑같은 환자들이다. 십년 동안 감호사 생활을 해왔던 심수진 간호사는 올 1월만 해도 이제 그만 이 일을 그만두려 했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심간호사가 번번히 맞이해야 하는 죽음들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번성하고, 심간호사는 심기일전 다시 그 현장에 파견을 나섰다. 방호복을 겹겹이 싸맨채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상대한 제 일선이지만 심간호사는 아직은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란 직업적 소명 의식을 다시 회복했노라 소회를 전한다.
그런 의료진들의 맞은 편에 코로나 확진자의 이야기 <15일, 아주 특별했던 시간>이 있다. 해외 출장 나흘 전 확진 판정을 받은 JOEY KIM님, 감염 경로도 모른채 입원을 했다.
빵과 우유로 한 첫 식사이후 홀로 이어간 식사 시간, 이후 정해진 시간 체온과 혈압, 산소 포화도를 스스로 재서 기록하는 일과, 미각과 후각이 사라지더니 가슴, 위의 통증과 두통, 마른 기침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일차가 지나가며 어제와 비슷한 창밖, 비슷한 메뉴의 음식들, 멈추어버린 듯한 시간들, 멈출 수 없는 업무, 하지만 그 비슷한 것들이 다시 시간을 지내며 달라진 하늘로 다가왔다. 15일차, 드디어 음식 냄새가 맡아지고, 열도 떨어졌다. 홀로 싸워냈던 시간 JOEY KIM님은 그 시간이 일에 치어 들여다 보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과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했던 이라고.
코로나가 멈추게 한 일상
코로나는 우리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의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사는 건 영화 같지 않아서>이다.
부모님이 20년째 해오던 국밥집을 의욕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영업을 해온지 5년 째 서용대 씨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오피스 상권에 휘몰아닥친 '재택 근무'는 수입을 50%나 급감시켰다. 폐업률이 66.8%인 시절에 매일 차악을 갱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용대 씨는 그래도 단골 손님들이 찾아주시던 부모님 시절의 국밥집으로 돌아갔다. 자영업을 하는 47.4%, 직장을 다니는 22.1%가 투잡을 해야 하는 시절, 그래도 가족이 있어 이 시절을 버틸 수 있다는 용대씨, 아내가 하는 작업의 조수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배달과 택배도 생각해 보려 한다.
투잡러를 넘어 쓰리잡러가 된 청년도 있다. <스리잡러 아시나요>의 진성 씨는 고2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댔다. 1주일에 한번 하는 분리수거물을 보니 엄청난 에너지 음료, 그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그는 2019년의 여름을 났다. 새벽부터 시작된 택배, 할부로 차를 사서 시작한 택배일은 4차 배송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다시 시작된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 짬짬이 패스트푸드 점 알바도 한다. 하지만 휴가도 없이 살던 그의 일상이 멈췄다. 택배와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가 접촉자가 많다는 우려만으로 택배 일을 짤렸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일상은 <마지막 비행>의 이수지 씨 역시 마찬가지다. 두바이에서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던 이수지 씨, 지난 9개월 간 4번 비행을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그녀에게 닥쳤다. 지난 6년 동안 빼곡하게 채워졌던 비행 수첩, 그리고 세계 각국의 동료들, 그들과 함께 이제는 꿈과 같이 여겨졌던 비행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 이수지 씨는 직원이 아닌 승객으로 마지막 비행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것들
<나는 이 시국에 고3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올 한 해 코로나로 인해 가장 마음을 졸였던 고3 '도나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루고 미루어 더는 미룰 수 없어 꽃피는 4월의 개학, 하지만 도나미는 학교를 가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입장에서 부터 선생님도 친구들도 '인증'부터 코메디가 되는 상황을 겪으며 그 힘들다는 고 3의 생활을 홀로 시작한다. 고 3이라는 시절 자체가 부담인데,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줌 수업을 했다, 학교를 나갔다 뒤죽박죽인 1년 여를 보내고, 그래도 사상 최초로 연기된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수능을 마치고 대학을 입학했다고 달랐을까? <당신이 보지 못했던>은 시각장애인으로 대학생 우령 씨의 이야기를 그린다. 개강 한달 전 일찌감치 기숙사에 온 우령씨, 하지만 코로나는 시각장애인 우령 씨의 일상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바이러스 방지 테이프가 손끝의 감각을 막아 기숙사 층을 찾아가는 것부터 혼란스럽다.
온라인으로 시작된 개강, 화면 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를 이용하는 우령 씨에게 온라인 강의실 입장부터가 '미션 임파서블', 결국 휴학을 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코로나는 그곳에도
코로나는 나라를 차별하지 않았다. 번잡하던 뉴욕 맨해튼도, 화려하던 파리도 멈춰서게 만들었다. <외국에서 부친 편지>는 뉴욕 생활 7년차 최이은 씨와 , 파리 생활 13년차 김지아 씨를 통해 그곳의 코로나 이야기를 전한다.
마트에 가려면 서류와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 파리, 입장 인원마저 제한이 된다. 그런가 하면 휴지도 1인당 한 개씩인 뉴욕의 마트에서는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내일 당장 먹을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빠지게 만든다. 확진자 동선을 알 수 없기에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 이 마트 저 마트를 전전했지만 원하던 먹거리를 얻을 수 없었던 이은 씨는 결국 눌러왔던 감정을 울컥하고 만다.
독일 여자 줄리아와 한국 남자 최영동은 이른바 '롱디 커플'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두 사람은 독일에서 함께 지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 지는 바람에 결국 영동 씨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애써 밝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마는 공항의 줄리아, 내가 더 사랑한다고 하지만, 8시간 시차 간극의 9개월 여를 보내고 나니 서로가 없는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11부작의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는 11개의 이야기만큼 우리 사회, 나아가 해외에 이르기까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달라진 삶을 골고루 조명한다. 폐업율, 실직율이라는 수치로만 접하던 것들이 사람들의 사연으로 엮어지니 5,6분 여의 짧은 시간임에도 코끝이 매워진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자신이 애써 가꿔온 삶들을 '상실'했던 시절이구나 싶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불편해졌다지만 바이러스를 위해 붙여놓은 방역 테이프가 시각 장애인이 집을 못찾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삶 속속들이 스며들어 지난 1년을 멈추게 했다. 그래도 그 멈춤 속에서도 학생은 공부를 했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보건교사 손은지, 체육교사 최지인>처럼 온라인 수업 등으로 고군분투한다.
그래도 브이로그의 시민들은 꿋꿋하다. 가족이 있기에, 그래도 찾아주는 단골 손님이 있기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한다. 홀로 버틴 15일의 입원 기간을 '감사'로 마친다. 미친 듯 한달 내내 일을 구해 애완견에게 다시 수박을 사줄 수 있어 스리잡러는 행복하다고 한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힘든 시기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한다. 아마도 올 한 해 우리 모두 그렇게 지내왔을 것이다. 이만하기가 어디냐고. 그래도 내게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저앉는 대신, 그래도 자신들이 아직 가진 것에 감사하며 이 한 해를 보낸다. 그래서 11부의 마지막 제목이 <#덕분에 #고맙습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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