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메르스에 걸렸던 마지막 환자가 사망하자 언론은 앞다투어 '메르스 종식'을 보도했다. 후에 메르스 유족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마치 온 사회가 남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그로부터 5년, 이제 우리 사회는 다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그 전쟁 과정에서 '전사'한 사망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처음 <2020 tvn shift- 1화 코로나 재난의 불평등> 예고편을 방영하던 11월 17일에 NO.는 480이었다. 그리고 불과 반 달도 되지 않아 그 숫자가 510으로 늘어났다. 우리가 줄어드는 숫자에 안도하고, 늘어나는 숫자에 불안에 떠는 이 순간, 그 숫자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혹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숫자'가 지닌 사회적, 계급적 불평등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코로나'라는 이유만으로 한때는 우리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던 이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닌가?  배우 안내상과 연세대 상담코칭학 권수영 교수가 추모의 길에 함께 한다. 

 

 

코로나 유족, 죽음 뒤의 이야기
그는 NO. 89 사망자이다. 500여 명에 이르는 코로나 사망자, 그 중 193명이 대구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 중 한 명이다. 65세, 기저 질환이 있었지만 망자가 되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열이 나 병원에 가려 했지만 그 마저도 환자가 많아 여의치 않아 집에서 보낸 이틀, 몇 번의 검사후 실려갔다. 

61세의 아내, 남편은 미안하다, 버텨달라며 우는 아내와 아들에게 울지말라 당부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전염병 환자의 경우 평범한 장례조차도 치루지 못한 채 24시간 내 화장하는 '처리' 대상이었다. 2개의 유리창 너머로 겨우 마주한 남편의 시신, 감염 우려로 남편의 유품이었던 휴대폰과 지갑은 태워졌다. 그 후로 7개월 '저 집 신랑이 코로나로 죽었다'는 수근거림이 들리는 것 같아 밖에도 나갈 수 없었단다. 누구를 원망하겠나, 원망한들 무엇하겠냐던 아내는 언네 끝나나만 관심있는 세상이 야속하다.

슬픔을 나누는 고별의 의식같은 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관조차 못만지게 하는 상황, 염은 커녕 평상복 그대로, 시신 팩에 넣어져 관에 넣어졌다. 위로는 커녕 아버지가, 어머니가 코로나로 돌아가셨다고 드러내어 말할 수 조차 없는 세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이러스'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더 살고 싶었던 평범한 삶은 그저 빨리 치워버려 할 '대상'이 되었다. 

 

 

감염은 공평하지만 결과는 공평치 않다. 
코로나 팬데믹, 노년층의 사망율이 전체 사망자의 94%에 이른다. 노년층 자체가 호흡기 감염병 자체에 취약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면역에 주된 역할을 하는  T- 세포 자체가 수도 줄고, 기능도 떨어져 감염에 무방비해진다. 특히 남자 노인들이 더 많은 이유는 남성 호르몬이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이 저하되기에 노령층 남성 사망자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사망자들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죽음에 이른다. 폐로 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공격이 주요 장기에 이르러서이다. 신장과 심장이 나쁘면 바로 다발성 장기 부전에 이른다. 노화와 함께 떨어진 기능은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노년을 괴롭히는 건 그저 '바이러스' 만이 아니다. 추석 당일 서울의 한 무료 노인 급식소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지난 2월부터 급식대신 주먹밥을 나눠주는 형편이지만 한 끼의 호구지책에 '거리두기'가 무색하다. 코로나보다 우선인 건 허기진 배, 의지할 곳,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은 그래서 더욱 '취약층'이 된다. 

청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상대적으로 당당하다. 그들의 신체적 상황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30대의 과반수 이상이 코로나는 '운명이다'라는 운명론적 믿음을 보이고 있다. 즉 노력을 해도 걸릴 사람은 걸린다는 이런 생각은 '각자도생'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사회에 대한 '믿음', 즉 '신뢰 자본'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러한 사회적 신뢰 자본의 붕괴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장기적 동력 상실의 원인이 된다. 누군가의 일탈, 누군가의 거짓말이 코로나를 다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전염 과정은 청년층으로 부터 고령층으로 흐름을 가진다. 운명론에 휩싸인 젊은이들의 행태가 노년층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취약 계층이 된 노인층, 방역의 한 축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배려는 없다. 

대부분의 노년층이 한국 전쟁 세대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어렵게 성장한 그들은 청년기에 군사 독재를 겪었다. 그리고 장년기에 IMF를 맞이했다. 그리고 숱한 파고를 넘었던 이들은 이제 요양병원 등에서 코로나의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되었다. 

 

 

방역 수칙을 지킬 수 없는 계급
취약한 건 노인만이 아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를 네 계급으로 나눴다. 전문 관리와 기술 인력으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노동자가 코로나 시대 제 1계급이 되었다. 그 아래, 창고, 운수 노동자와 보건 인력들이 있다. 일자리는 있지만 감염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군가의 직장은 더 위험한 곳이 되었다. 지난 5월 물류 업체였던 직장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가 된 전모씨가 '확진 판정 통보'를 받은 후 제일 처음 한 말은 '제가요? 그럴 리가'였다. 마스크도 쓰고, 장갑도 꼈지만 '직장'을 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160여일, 자신때문에 코로나에 걸렸던 남편은 호흡부전으로 인한 심정지로 인해 뇌손상을 입고 지금까지 의식 불명 상태이다. 코로나는 한 가정을 순식간에 풍비박산내 버렸다. 

그래도 쉴 수 없어도 직장을 다니면 그나마 나은 것일까? 제조업, 서비스업 계통의 노동자들은 코로나로 인한 장기 불황에 원치 않는 무급 휴가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은 아프면 무조건 쉬라고 한다. 타인과 거리를 두라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통계 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아파도 쉴 수 없다고 답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날 수록,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업무량은 늘어나고, 노동 조건은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4번 째 계급, 노숙자, 이민자 등이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 아라곤에 과일을 수확하러 온 이민자들, 작은 기숙사에 집단으로 생활하는 이들은 마스크를 살 경제적 여력조차 없다. 그래서 코로나에 신체적으로 우위라는 2,30대 들조차 사망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전세계 그 어디를 막론하고 가장 아프고 소외된 곳에 코로나는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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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엑스레이, 코로나 
서울 시내에 노숙자가 갈 수 있던 공공병원이 6군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중 5개가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전환되고 이제 서울 중구 동부병원만이 노숙자들을 받는다. 동부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방역의 나비효과'를 말한다. 외려 노숙자들은 그들을 받아주는 의료시설의 부재로 원래 가지고 있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사망자의 46%는 시설 병원내 감염이었다. 그 중에서 37%가 정신질환자였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곳도 대남병원, 그후 100 여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폐쇄병동 환자들, 하지만 도시락 업체도, 청소 업체도 그들이 받은 '항의 전화'를 핑계로 '협조할 수 없다'고 했다. 대형 병원 음압 병실조차 공평하지 않았다.
사회가 버리고, 가족이 버린 사람들을 국가마저 버렸다.

코로나에 걸려 이송되던 2번째 환자가 '바깥 공기를 쐬니 기분이 좋다'고 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20년 입원, 42KG이던 첫 번 째 환자는 세상 밖으로 나와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장기 입원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어땠을까. 확진자 발생에 대한 기사가 수 천 건 쏟아지는 동안 단 169건의 기사, 그 마저도 사람들의 반응은 본질과 상관없는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키워드'에 집중되었다. 

코로나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그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편견에 휩싸인 채 철처지 소외된 채 사라지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오늘 몇 명이야 숫자 세기에 바쁘다. 세상은 기억하지 않는다. 사망자는 번호로만 불려진다. 첫 확진자 후 300여 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숫자가 아닌 우리 곁에 살았던, 그리고 이제는 비워진 자리가 된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도를 가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호소한다. 그건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숫자가 아닌 존재에의 확인, 그건 바로 살아갈 우리를 위한 사회적 '기억'이다. 








by meditator 2020. 11. 25.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