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데올로기를 통제하는 도구, 재앙, 새로운 진리, 이 극과 극의 의미를 지닌 단어들은 '시험'을 칭하는 세계 각국의 수험생들의 표현이다. 그들이 맞닥뜨린 '시험'의 상황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의미로 시험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험생들은 이 중 어떤 의미로 '시험'을 생각할까? 그러는 당신에게 '시험'은 어떤 의미인가? 

팬데믹 상황에 빠진 코로나 임에도 '수능'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일정이 조금 늦춰질 뿐, 수능은 예정대로 12월 3일에 시행될 예정이다. 학교를 나간 날보다 나가지 않은 날이 더 많은 올해 고 3에게 수능은 어떤 의미일까? 제대로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여전히 수능은 그들이 '어른'의 세계로 건너가는 '관문'이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은 저마다 '통과 의례'로 시험을 친다. 그런데 각 나라의 배경과 상황에 맞춰 '시험'이 천차만별이다.

지난 2015년 ebs다큐 프라임을 통해 바영된 <시험> 5부작, 52회 백상 예술대상 tv작품상 교양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여전히 우리 사회 성공의 '관문'이 되고 있는 시험을 해부한다. 그 중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는 세계 각국의 시험을 통해 시험의 사회적 의미를 묻는다. 

 

 

시험은 권력이다
인도의 비하르 주, 이곳은 카스트 제도 중 가장 하층의 계급인 불가촉천민(손을 대는 것조차 오염된다 하여 붙여진 호칭)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3000여년간 유지되어 온 신분보다 '시험'이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천한 취급을 받고 기회가 거의 없는 불가촉천민들, 이들은 이제 시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기회'를 얻고자 한다. 실제 시험을 통해서라면 불가촉천민이라 해도 대학 총장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과외가 성행하고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도록 가르쳐주는 학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시험을 칠 실력도 학원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지난 2015년 수험생 600여 명이 쫓겨나고 학부모들이 체포된 사건에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다. 교실 창문에 기어올라가는 사람들, 이들은 수험생의 친지와 학부모들로 수험생에게 컨닝페이퍼를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자칫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컨닝페이퍼를 전달하기 위해 건물을 오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 60%가 이런 '불법'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자 관행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시험, 거기엔 신분 제도를 넘어서고야 말겠다는 극단의 '의지'가 있다. 

시험은 서열이다. 
중국에서는 매년 6월 1000만 명 이상이 응시하는 우리의 수능과 같은 국가적 인재 선발 시험인  '가오카오'가 시행된다. 

'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배경도 없고, 연줄도 없다. 하지만 머리가 있다. 돌격, 돌격'
'우산없는 토끼는 목숨을 걸고 뛰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문제를 풀 것이며 나는 할 수 있다.'

이 비장한 문구는 시험을 준비하는 교실 밖에 씌여진 낙서이다. 가오카오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지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지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절박한 표현이다. 

허난성의 관묘 고등학교, 매번 신양시에서 선두의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을 배출하는 이 학교는 논두렁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논두렁을 지나 학교에 이르는 거리에 학부모들은 집을 얻어 수험생인 학생들을 뒷바라지한다. 학생들은 유치원에서부터 12년동안 자신이 원하는 지위와 직업을 얻기 위해 가오카오를 준비한다. 등교한 이후에는 암기, 시험, 다시 암기를 반복하는 학습 과정, 같은 반 친구들은 경쟁자이다. 가오카오를 통해서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숨막히지만 믿을 건 자신 밖에 없다고 믿는다. 

가오카오가 시행되는 날 시험 시작 30분전부터 교통이 통제된다. 942만 명의 수험생이 저마다의 고사장으로 향한다. 듣기 평가 시간에는 차량 경적 소리 등이 금지되고, 드론을 띄워 학생들의 부정을 감시한다. 18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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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성장이다

'열정없이 살 수 있는가'
'인식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가'
'정치는 인간의 일인가'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 논술형 대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들이다. 6일간의 시험 과정, 총 684,734명이 저런 문제를 푼다. 교장 선생님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풍경, 시험에 늦더라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입실을 허락한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각 교실을 돌며 시험 문제를 개봉하고, 8시에서 12시까지 4시간 동안 주어진 3문제 중 한 문제를 선택하여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2015년 문과의 문제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게 도덕적 의무인가'와 '나는 내 과거로부터 만들어 지는가' 등이다.  '정치가 진실에 대한 요구를 회피하는가'가 이과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이다. 

그렇다면 채점은? 예, 아니오라고 답할 수 없는 문제, 답안의 적절성과 논리성이 채점의 기준이다. 철학 시험이지만 여타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 프랑스에서 철학은 현실과 관련이 있는 학문이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저런 문제를 푸는 학생들은 어떨까?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라 시험이라고 따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한다. 심지어 학기 중에 외국도 다녀오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과외 활동이 지속한다. 무의식적으로 믿고 말하고 생각하던 것, 즉 자신과 마주할 기회, 바칼로레아는 성장이다. 

시험은 이데올로기다
독일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논술과 구술로 이루어진 '아비투어'를 치뤄야 한다. 아비투어 당일 학생들은 문제를 먼저 받고 30분 정도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한 후 2명의 교사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정답? 없다. 자신의 생각, 근거를 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독일이 가진 치욕스런 역사적 경험이 전제한다. 나치 시대, 당시 시험은 나치의 프로파간다였다. 우생학의 논리에 따라 사회 복지는 생산성이 없는 것, 다른 곳에 쓸 돈을 왜 장애인에게 주는가라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시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주입시켰다. 그 결과 장애인들에 대한 말살작전을 펼쳐 살인 센터를 통해 '안락사'시켰다. 

장애인들을 말살시키는데 앞장서거나 조력했던 사람들은 '평범'했던 사람들이다. 규칙적인 삶을 살았고 정직했으며 순응적인 인간들이었다. 전후 그 시대의 '평범한 악'에 대해 반성한 사람들은 더 이상 시험이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재생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하고 의심하는 인간 양성을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라 여긴다. 

인도와 중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각국은 저마다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시험제도를 가진다. 불가촉천민에게 사회적 기회가 된 시험, 가진 것 없는 농촌 출신의 학생들의 등용문, 그리고 철학적 문제를 논하는 프랑스와 자신의 의견을 주체적으로 피력하는 게 관건인 독일, 우리의 시험은 이들 나라의 시험 중 어디쯤 있을까? 21세기에 대비한 창의적 인간상 구현을 목표로 하는 7차 교육 과정에 기반한 우리의 수능은 과연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는데 이바지하고 있는 것일까.

by meditator 2020. 11. 12.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