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고현정이 합류했지만, 온전히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드라마,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히 시청률 지상주의 '공중파'에서는 그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대신 '시청률'과 무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tvn이 '어르신'들의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가 할배만큼,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듯, <디어 마이 프렌즈>도 '어르신'들보다, 오히려 '어르신'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젊은, 혹은 어른신이 될 세대에게 공감을 얻었다. 4%~8%를 오르내리는 tvn 드라마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는 설명할 길 없는, 어설픈 '로맨스 그레이'가 아닌 '어르신들'의 진솔한 속내만으로 이어간 16부의 이야기는 '꼰대'로 시작하여,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어르신들의 적나라한 사연으로 시작하여, 
노희경의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는 가장 적나라한 '어르신'들의 현실적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골 마을 동창인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법한 그분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바람을 핀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창에게 푸는 딸에 집착하는 열혈 가장인 엄마(장난희-고두심분), 시골마을 동창으로 만나 70평생 부부로 살았지만, 시부모로 부터 남편까지 이어지는 '구박'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이골이 난 엄마(문정아-나문희 분), 그리고 남편마저 떠난 빈 집에서 자식들 부담주지 않으려 고독과 싸우는 엄마(조희자-김혜자 분), 이혼한 자식이 남겨놓은 그리고 엄마도 되지 못한 채 한평생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하다 처녀로 늙은 여전한 미스(오충남-윤여정 분). 화려한 배우이지만 그 뒤편에 남겨진 것은 고독과 병과의 싸움인 이혼녀(이영원-박원숙 분), 그리고 그들의 딸이라 칭해지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 못간 늙다리 노처녀(박완-고현정 분). 그들은 노희경 드라마답게 만나자마자 왁자하게 으르렁거리고 시끌벅적하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길위에서 죽자고 다짐했던 오랜 우정, 정아와 희자가 길을 떠나며 그저 여느 우리네 어르신들의 시끌벅적한 사연은 각도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거치적거릴 것이 없다며 기꺼이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가려했던 고운 우정은, 치매로 이어지며 밤마다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만 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희자 이모의 다하지 못한 애닮은 모정의 사연으로 구비구비 전개된다. 그저 늘 말많은 가부장 남편의 그늘에서, 요구많은 딸들의 하루에서 방패막이 처럼 살며, tv를 보며 미련하게 언젠가 훗날 세계 일주를 꿈꾸기만 하던 정아 이모의 일상은 평생 고생만 하다 결국 하루의 여행조차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정 엄마의 죽음으로 자유를 향한 무한한 일탈로 귀결된다. 극성스러웠던 난희 엄마의 열혈 모성은, 암이라는 브레이크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제 딸을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남긴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충남의 무한 예술 사랑은 그녀가 그토록 멀어지려 했던 늙은 벗에대한 돌아봄으로 귀결되고. 

때로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손바닥을 마주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환타지인듯한 늙은 그녀들의 행보는, 그저 완이만 만나면 1.4 후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한'을 풀어놓지 못해 입에 모타를 다는 기자(남능미 분) 이모의 한풀이가 아니다. 치매가 걸린 희자 이모가 회귀하듯 죽은 아이로 여겨지는 베개를 등에 업고 한없이 젊은 시절의 그 길을 찾아 가듯, 그래서 뒤늦게 그 자리를 헐레벌떡 찾아간 친구 정아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그 시절 못다했던 설움을 폭발하듯, 그저 이제는 '어르신'이던 그들도, 지나온 인생 구비구비에서,  지금을 사는 젊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똑같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부등켜 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 '사람'.



늙은 사람일 뿐, 친구가 된 어르신들
그러기에, 그들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거침없이 딸 완이 엄마 난희에게 '우리 이제 친구하자'라고 말할 수 있듯이, 그리고 엄마의 늙다리 친구들을, 기꺼이 '나의 늙은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어르신'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친구'로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그들에게 '친구'의 이해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친구'가 되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나이든'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16회,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난희는 그토록 집착했던 딸을 놓아준다.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때문에 장애인은 안된다고 했던 '고집'에서 벗어나 딸 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희자 이모도 마찬가지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을 자식 대신 기꺼이 요양원을 택한다. 자신의 평생을 '희생'이라 정의내린 완에게 완강하게 저항했던 희자 이모였지만, 끝까지 엄마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15회까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줄곧 우리가 외면했던 늙은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하려 애썼다. 15회, 암에 걸린 엄마 앞에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 스스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완의 모습은, 곧 늙은 사람들, 어르신의 삶에 냉정했던 우리들에 대한 단죄였다. 그렇게 15회까지 '이해'를 위해 달려왔던 드라마는, 16회, 이제 이해를 받은 '어른들'에 대한 당부로 끝을 낸다. 젊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삶을 이해받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이라 집착하지 말고, 기대려 해서는 안된다고. 품위있는 난희와 희자 이모의 선택은 그래서 사실은 단호한 작가의 어른들에 대한 당부의 말씀이 된다. 물론 그 '슬픈' 당부에 '에필로그'도 있다. 이제, 당신들이 살아온 평생의 그 '짐'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살라고,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추신. 그래서, 늙고 병들어 함께 살 수 조차 없는 늙은 벗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비록 정아 이모가 원하던 세계 일주는 아니지만, 기꺼이 그들이 힘닿는 그곳으로. 



늙음에 대한 이해와 당부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디어 마이 프렌즈>가 가능했던 것은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전제가 되지만, 그것의 완결 조건은 결국 '프렌즈'를 설득했던 어르신 배우들이었다. 진짜 희자인지, 정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희자와 정아와, 난희와 충남, 영원, 그리고 석균과 성재, 오쌍분 여사로 열연했던 어르신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늙은 꼰대들을 '친구'로 다가오게 만들어 주신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여전한 열정의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by meditator 2016. 7. 3. 16:18

28일 밤 당신은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셨습니까? 아, 인기리에 방송 중인 월화 드라마 <닥터스>가 있으니 그걸 보셨겠군요,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또 오해영>도 있으니 이걸 보셨나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볼까요? 혹시나 이들 프로그램이 아닌 동시간대 다른 프로그램을 보신 분이라면 어떤 걸 보셨나요? <시사 기획 창>을 보셨나요? 아니면 <피디 수첩>? 또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29일 당신이 클릭할 기사는 어떤 것일까요? <피디 수첩>에서 방영한 박유천씨 관련 기사일까요? 아니면 <시사 기획 창>에서 방영한 대우 해양 조선 구조 조정과 관련된 기사일까요? 


하루 하루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당신이지만, 그래도 '고소녀 인터뷰'라고 잔뜩 홍보를 했던  박유천 씨 관련 기사는 놓칠 수 없었다구요? 아닙니다. 이 또한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28일 방영된 <피디 수첩>은 방영 전부터 이날 프로그램과 관련된 홍보 기사를 다수 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방송 시간을 전후로 해서, 이날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내용은 캡춰 본과 함께 '무수한' 기사로 재양산됩니다. 물론 당신은 흥미로웠다고 했지만, 이 '흥미'는 다분히 '조장'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 도시와, 그 도시에 살던 수만의 사람들, 그리고 그 일가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 그리하여, 차후 한국 경제의 진앙지가 될 대우 해양 조선을 다룬 <시사 기획 창>에 대한 후발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난다 하더라도 '박유천'씨의 기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일 겁니다. 이 상황이야 말로 <곡성>의 '무엇이 중하냐고? 무엇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딱입니다. 



길을 잃은 조선업, 그리고 갈 곳을 잃은 사람들
6월 28일 <시사 기획 창>은 '긴급 르뽀, 구조 조정 현장에서 길을 묻다'를 방영했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긴급'이란 수식어가 들어갔듯이 최근 한국 사회 전체를 위기롤 몰아넣을 진원지가 될 조선업의 구조 조정 위기를 다룬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1972년 조선소도 지어지지 않은 울산 백사장에서 현대 조선 기공식으로 첫 삽을 떴던 우리나라의 조선업, 1989년  대우 조선 직장 폐쇄라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2000년 세계 1위의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던 한국의 대표적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 

카메라가 처음 향한 곳은 거제의 인력소개소이다. 새벽 인력 시장, 거기서 만난 것은 'dsme'라는 대우 해양 조선 이니셜이 새겨진 작업복을 아직도 입고 있는 한때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이 새벽 인력 시장을 찾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60%에 해당하던 이들은 대부분 '물량팀'이라는 이름으로 대우 조선 인력의 7~89%를 채웠던  협력업체 직원들이거나, 재하청 계약직들이다. '구조조정'의 파고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들이닥쳐 이제 이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던 그 복장으로 새벽 인력 시장을 찾는다. 거리로 내몰린 것은 하청업체 직원들만이 아니다.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피해를 감당했던 하청업체들도 휘청거리거나 연쇄 도산 중이다. 그들이 머물던 주거지와 상가 거리는 이제 네온 사인 불빛만 적막하게 빛난다. 정규직이라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솔선수범'을 외쳐보지만, 하반기부터 들이닥칠 구조조정으로 위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조선업계의 불황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시사 기획 창>의 진단은 다르다. 이미 <썰전>을 통해 '해먹어도 너무 해먹었다'는 주인없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은 총체적 부실은 물론, 근본적으로 '해양 플랜트'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술력 부족'등으로 빚어진 경영 전략의 부재 혹은 판단 미스는 '분식 회계'를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불황'을 핑계 대기엔 너무나 치명적이란 분석이다. 그리고 그런 말 그대로 '부실' 경영은 고스란히 '경영 손실'로 이어지고 이제 '구조 조정'이란 이름 하에 조선업계 노동자들과 그 일가족, 그리고 한국 경제의 몫으로 귀착된다고 다큐는 밝힌다. 

심각한 것은 이런 대우 해양 조선의 침체가 그저 한 도시 '거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큐는 거제를 떠나 전남 광양으로 카메라를 돌려, 조선업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하지만 역시나 낙하산 경영진의 무책임한 경영이 문제가 되었던 전남 광양의 포스코로 전해진 여파를 전한다. IMF 시절에도 불황을 몰랐던 포스코, 하지만 779만톤의 생산 능력을 가진 포스코는 작년 자체 생산량을 577만톤으로 줄여 생산하며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체감 온도는 그 지역의 경기로 곧장 전해진다. 하지만 그런 포스코와 달리, 선제적인 구조 조정을 한 '동국제강'은 조선업계의 불황에도 4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불황의 늪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결국 세계적 불황이 조선업계 구조 조정의 '면피'가 될수 없음을 다큐는 밝힌다. 나아가 현재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감당하기 힘든 '해양 플랜트 사업'에 대한 향후 전략과 경영 방식이 현 조선업계의 불황 해소의 관건이 될 것임을 다큐는 밝힌다. 덧붙여, 현재 정부가 '능사'로 삼고 있는 '인력 감축' 등의 구조 조정 방식이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법보다 앞선 가십 
이렇게 거제 현장에서 새벽 인력 시장으로 내몰린 대우 해양 조선 노동자의 모습을 담으며 거제, 그리고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조선업계 구조 조정을 생생하게, 하지만 차분한 분석과 대안까지 마련하려 애썼던 <시사 기획 창>과 달리, 28일 방영된 <피디 수첩>은 그야말로 '가십'의 결정판이다. 

그간 <피디 수첩>은 연예인과 관련된 사건은 다루지 않았지만 박유천씨 사건은 워낙 중한 사건이라 다루었다 라고 스스로 밝혔지만, 아직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이 사건이 왜 '시급한'지 이날의 피디 수첩은 설득하지 못했다. 박유천씨와 그의 소속사가 법률적 판단 이전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또 한 명의 피해자를 앞세워 박유천이란 연예인의 '관뚜껑'을 덮기에 급급했던 이날의 방송이 과연 필요했는지 여러모로 의문스럽다. 

이미 '민언련'을 통해 박유천씨의 고소 사건이 드러난 후 종편 방송 분량의 70%가 여기에 할애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피디 수첩>이 철저하게 한쪽의 입장에 의거하여, 자신들이 밝히듯이 '한류 스타'라는 연예인을 파렴치범으로 단죄하는 방송을 했는지 의문스럽다. 

최근 박유천씨의 국내외 팬클럽 등이 밝힌 성명서에 따르면, 아직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보도로 박유천씨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28일의 <피디 수첩>은 종편의 방식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마치 법률적으로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가십'성 폭로로 연예인 박유천의 '생명'을 끊어놓아야 겠다고 작심이라도 한듯이. 해외의 한류 팬들조차 불공정한 한국의 언론을 개탄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디 수첩>은 같은 양상을 반복한다. 이미 박유천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일말의 범죄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될 경우 '은퇴'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며, 그게 아니라도 범죄가 성사될 경우 '처벌'을 받게 될 것인데 방송들은 서로 앞다투어 '여론의 뭇매질'을 선동하기에 급급한다. 




문제는 <시사 기획 창>에서 다룬 정말 우리가 심각하게 지켜보아야 할 대우 해양 조선 등 조선업계의 구조 조정이 이런 일련의 '가십'성 기사로 인해 묻히거나, 아예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희한한 일은 한국 사회의 '위기'라 할만한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는 가운데, 마치 작정이라도 한듯이 연일 '연예인'들의 '가십'성 기사가 함께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유천씨의 고서 사건 이래, 종편의 방송분 70%가 그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물론, 수천 건의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양산된다. 마치 사람들이 시들해져서 관심이 딴데로 돌려질까봐, 종편에 이어, 이젠 공중파까지 '가십' 보도에 가세한다. 어디 그뿐인가? 박유천에 이어, 이미 법적으로 의미가 없는 홍상수-김민희의 불륜이 가세한다. 대중들이 신선해 하지 않자, 홍상수 감독 부인과 김민희 어머니의 카톡 내용까지 만천하에 공개된다. 이미 '김현중과 그의 약혼녀 사이, 그리고 이병헌과 그의 고소녀들 사이의 '카톡' 내용에 이어 같은 방식이다. '정보 공개법'이나 '사생활 침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도 시들하자, 이젠 주식 투자와 관련된 아이돌 경제사범까지. 

인류는 진화론적으로 '풍문'에 약하다고 한다. 일찌기 '언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신석기 시절' 생존을 위해 '소문'에 귀기울였던 유전자 정보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여전히 그 신석기적 유전자로 살아가고 있다지만, 우리에겐 언론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대중의 언론은 '정론' 대신, '가십'으로 연명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 대신, '유병언'과 관련된 '가십'으로 대중을 인도했다. 그 결과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 당시 세월호에 실려있던 것이 제주 해군 기지로 가는 철근 400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조차도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채 여전히 세월호 가족들은 청와대로 시위를 하다 잡혀가는 신세가 될 뿐이다. '박유천으로 인해 덮인 7가지 사건'이라고 하자, 누군가는 박유천이 아니라도 다 볼 건 찾아본다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수천 건의 박유천 가십을 뚫고, 세월호 400톤 선적을 찾아볼 눈밝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애쓰던 잠수사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다. 한 건도 제대로 기사화되지 않는 대우 해양 조선 구조 조정에 대한 르뽀를 역시나 쏟아져 나오는 박유천 기사를 뚫고 찾아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다시 정치의 세월이 돌아와 그 구조 조정조차 '정치'의 흥정거리로 뒷방에서 거래가 된다 한들, 사람들은 또 누군가의 '가십'에 정신팔려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처럼. '가십'에 길들여 지는 사회, 그것이 바로 '박유천'과 관련된 기사를 클릭하는 우리의 현주소다. 
by meditator 2016. 6. 29. 06:32

공교롭게도 두 편의 의학드라마가 동시에 시청자를 찾았다. 그것도 같은 월,화 드라마로, 그리고 둘 다 '의사'라기엔 '부적절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sbs의 <닥터스>와 kbs2의 <뷰티플 마인드>, 하지만 같은 의학 드라마인 두 드라마의 결과는 희비가 엇갈렸다. 아니 '희비가 엇갈렸다'란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14.2%(닐슨 코리아 기준) <닥터스>에 비해 <뷰티플 마인드> 4.3%(닐슨 코리아 기준)는 처참하다. 




희비가 엇갈린 두 편의 의학 드라마 
같은 의학드라마이고, 비슷한 캐릭터의 주인공이라지만, 두 드라마의 진행은 전혀 달랐다. 요즘 인기를 끄는 '걸크러쉬'한 여의사 유혜정(박신혜 분)가 응급실에 들이닥친 깡패 일당을 물리치는 화끈한 소동극으로 부터 시작된 <닥터스>는 어찌보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위한 뻔한 에피소드이지만, 그런 익숙한 해프닝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불량 소녀의 방황과 성장이라는 서사 또한 흥미롭다. 

그에 반해, <뷰티플 마인드>의 시작은 비행기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의학 드라마가 그렇듯 감자기 응급 환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 도와줄만한 승객을 찾던 승무원은 vip 석에 앉아있는 이영오(장혁 분)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예상되었던 바의 스토리, 하지만 여느 의학드라마같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자에게 달려갔을 의사 이영오는 반문한다. 내가 왜 그 환자를 돌보아야 하지요? 라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읽던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다. 바로 이 지점, 여기서 <뷰티플 마인드>라는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생기는 동시에, 의학 드라마로서 이질감, 거부감의 발생지가 된다. 

의학 드라마로서 <닥터스>가 아직은 의사가 아닌 불량 소녀의 '성장담'과 '개과천선'에 방점을 둔 서사라면, <뷰티플 마인드>는 일반적으로 의사가 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역설적 의문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편한 유입이 쉽지 않은 드라마다. 서번트 증후군의 자폐 의사였던 <굿닥터>가 떠올려지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던 순수 청년 박시온(주원 분)과 달리 냉정한 눈빛의 이영오는 어쩐지 쉽게 동화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대중적으로 호응이 좋은 '의학 드라마'이지만 쉬이 호감을 느끼기 힘든 주인공 안티 소셜 디스오더(반 사회적 인격 장애 분)이영오를 당차게 대중적 접근성이 좋은 걸크러쉬 유혜정의 상대로 편성한 건 시청률만 놓고 보면, 무모하다. 하지만, 그런 시청률의 성과를 차치하고 보면, 그래서 <뷰티플 마인드>의 가치가 있다. 



안티 소셜 디스오더, 마음이 없는 의사 
첫 회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를 보고도 냉담하게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던 이영오에 대한 의문은 1,2화의 에피소드를 통해 혹시 이 사람이 '테이블 데스(수술 도중 환자 사망)'의 주범이라는 의문으로 부풀려 졌고, 그런 의혹은 결국 2회 말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을 통해 그의 아들 이영오가 '텅빈 마음'을 가진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 social disorder)라는 것이 판명났다. 애초에 '마음'이 없기에 환자에 어떤 감정 이입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가장 유능해진 의사, 마치 환자에 대한 의술을 '게임'처럼 접근할 수 있는 냉철함을 무기로 할 수 있는 의사 이영오에 대한 설명을 뒤늦게야 설명해 낸다. 

그렇게 장황하게 에돌아 주인공 이영오에 대한 설명을 한 이유는 당연히 쉽사리 호감을 얻지 못할 주인공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대신, <뷰티플 마인드>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주인공 대신, 그리고 '도덕성'이 부재한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해, '대비' 효과로 다른 등장 인물을 설명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람이 1화에 다짜고짜 병원으로 들이닥친 순경 계진성이다. 

1회 말 이영오가 다짜고짜 그녀를 향해 메스를 들이대듯 그녀의 심장은 정상이 아니다, 애초에 수술 조차 무리였던 그녀를 그녀의 '선생님'인 현석주(윤현민 분)의 용기로 살려냈다. 그런 그녀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연애도 못한 채' 7년을 보내며 이제 겨우 '순경'이 되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자신이 목격한 교통 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에 맹목적으로 뛰어든다. '마음'이 없는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 '아픈' 심장을 가진, '마음'이 뜨거운 여주인공의 등장, 하지만, 그 '마음'이 뜨거운 그녀의 행보는 '그 뜨거움만큼, 드라마의 톤에서도 튄다. 



<뷰티플 마인드>의 현석주와 계진성의 '바른 행보'와 그 '바른 행보'를 위해 절차를 무시한 해프닝들은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없는 이영오의 행보보다 쉬이 고개가 끄덕여 지지 않는다. 정황상 의심은 받을 수 있는 모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이영오를 살인범 취급하며, 회의장까지 난입하는 '순경'의 수사 방식과 같은 형태로, 계속 <뷰티플 마인드>의 이영오를 설명해 내는 식이라면, 이영오가 아니라, 계진성이 <뷰티플 마인드>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의심은 가지만, 그렇다고 계진성에게 범인 취급 받을 해프닝은 무리수다. 

그렇게 계진성이란 순경의 어설픈 수사로 이영오 캐릭터를 설명해 내는 어설픈 '선악 대비'로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는 그래서 불안하다. <닥터스>가 불량 소녀 유혜정(박신혜 분)을 키다리 아저씨 같은 홍지홍(김래원 분)을 통해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로 편하게 드라마에 흡인시킨다면, 안타깝게도 이영오에 대한 흥미를 계진성의 어설픈 정의로움이 반감시킨다. 뿐만 아니라 병원 외부인인 계진성이 자꾸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병원 내부의 갈등만으로 흥미로운 서사가 흐트러진다. 이미 아버지와 이영오, 이영오와 현석주, 그리고 병원 내부의 쟁쟁한 인물들만으로 충분한 서사에 계진성은 옥상옥같은 존재다.

'마음'이 없으며,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 부터 '인간'에 대한 훈련을 받은, 그래서 유능해진 의사, 이영오에 대한 집요한 천착, 그 자체만으로도 <뷰티플 마인드>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부디, 이 '괴물'같은 주인공의 매력을 잘 살려내길. 

by meditator 2016. 6. 22. 15:54

택시를 탔다. 운전하시는 분이 틀어놓은 방송에서 최근 청년들의 동향에 대한 리포터가 나온다. 말인즉, 직장에 들어간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현실이 녹록하지 않지, 라고 생각을 잇는데, 웬걸, 리포터의 해석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리포터의 해석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때려치는 게 너도 나도 창업을 하려는 트렌드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러 창업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배려로(?) 직장 생활에 안주하는 대신, 젊음을 무기로 '도전'하려는 의지가, 바로 젊은이들의 잦은 퇴직 이유라는 이 얼토당토않은 분노까지 느껴졌다. 왜 분노하냐고? 6월 19일, <sbs스페셜-2016 사장님의 눈물>에 그 답이 있다. 




6월 19일 <sbs스페셜>의 소 제목이 2016 사장님의 눈물인 이유는 이미 2012년 동일한 제목의 다큐가 방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1일 방영된 298회 <sbs스페셜>은 <사장님의 눈물>의 부제는 '벼랑 끝에서 나를 찾다'였다. 2012년 당시 한 해 폐업자 수 85만 명 한때는 사장님이었다가, 대기업의 횡포로, 지인의 배신으로, 금융 위기로, 이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자신의 핸드폰조차 가질 수 없고,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가족들에게 조차 외면당한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경남 통영의 죽도라는 외로운 섬 '재기 중소 기업인 수련원'에 모여 한 달간 합숙을 하며, 세상 밖으로 다시 한번 나아갈 '의지'를 다졌다. '눈물'로 삶의 의지를 되찾은 사장님들, 그들이 나아간 세상은 달라졌을까? 

2016, 더 열악해진 사장님들의 현실
2016년 다시 돌아온 <사장님의 눈물>이 다루고 있는 것은 '자영업자' 사장님들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 556만 명, 경제활동 인구 2695만명 중 실업자를 제외하면, 4~5명 중 한 명이 '자영업자'라는 것이요, 이들의 부양인구까지 따지면 우리나라 인구 중 2천만 명 가까이가 자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렇게 인구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 하지만 그들의 속사정은 열악하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imf 때보다 현재가 더 어렵다는 토로가 나온다고 한다. 그 'imf'보다 더 어렵다는 자영업자들, 그들의 현실을 '요식업계의 자업업자'들의 실상을 통해 알아본다. 

'더럽고 치사한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그런 꿈을 꾸어본다. 차라리 이럴 노력으로 나가서 내 장사를 하는가 낫지 않을까?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직장에 내 인생을 바치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내 사업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요식업 종사자들은 말한다. 남보기엔 접근성이 쉬워보이는 요식업,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면 '헬'이라고.



그 '헬'의요식업계를 증명하기 위해 sbs스페셜이 시선을 돌린 곳은 주방 철거업체, 시쳇말로 요즘 가장 잘 되는 곳이 '철거업체'라더니, 그 말이 빈 말이 아니듯, 주방 철거업체 사장님은 서울로, 지방으로 하루에 서너 곳, '이 사업을 시작한 뒤'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사업이 잘 될 수록, 사장님은 '착잡하다'. 그 사업의 호황 뒤에는 자신과 같은 '사장님'들의 좌절과 절망이 있기 때문이다. 

2016 대한민국에서 요식업이 망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우선 무엇보다 장사가 안된다. 556만의 자영업자의 상당 수가 종사하는 요식업의 범람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주머니를 열어 줄 대한민국 사람들의 지갑이 얇아졌다. 직장 생활을 하다 정년 퇴직한 아버지와 갓 태어날 아이를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을 연 사장님, 대출까지 받아 무리해서 개업한 가게를 지키기 위해 '이석증'이 생겨가면서도 단 한 순간도 '불성실'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그의 가게는 600만원을 들인 후드 설비가 단 몇 백만 원으로 퉁쳐지는 폐업 상가일 뿐이다. 대신 하루 종일 주차장을 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지옥같은 기다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손님을 기다리는게 어디 그의 일일뿐일까? 장사를 한 지 22년, 한때는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무공해 대통밥집으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던 '착한 식당'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출근할 때마다 사장님이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직원을 내보내며 허리띠를 졸라보아도 하루 채 두 테이블도 채워지지 않는 손님을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다. 

이 사례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그저 '장사가 안되는' 것이 몇몇 특수한 식당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분석한다. imf 때보다도 더 살기 어려워진 대한민국, 그래서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현실의 존재가 불안한 2,30대는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4~50대의 그나마 경제적 여력을 가진 계층조차 앞날의 불투명함으로 지갑을 닫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바로 '외식비', 곧 요식업계라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되도 망하고, 안되도 망하고 
경기 탓만도 아니다. 이미 여러 다큐를 통해 빈번하게 '고발'되었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 및 주거지역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래의 거주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게 된다.)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자영업자의 늪이다. 가로수길에서 인기있는 곱창집 사장님은 같은 건물에서 두번 째로 쫓겨날 위기에 놓여있다. 가게가 위치한 골목에서 제일 장사가 잘되는 집으로 소문난 가게, 바뀐 건물주는 자신이 장사를 하겠다면 곱창집을 내쫓으려 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지하로 가게를 옮겼지만, 3년만에 건물주는 계속 장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 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니,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오히려 '사장님'에게는 독이다. 홍대 앞 젠트리피켘이션으로 인해 활성화가 된 상수동 골목, 여기도 이젠 골목의 활성화가 가게 사장님들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상수동 활성화의 기폭제가 된 '양고기 집', 양고기집 팬 후드 전깃줄까지 자르며 압박하는 건물주의 압박에 사장님은 불가항력이다. 

장사가 안되면 안되서 내몰리고, 잘되면 잘되서 내몰리는 2016 대한민국의 요식업 사장님들, 하지만, 그들의 '죽겠는' 속사정과 달리, 밖에서 보는 그럴 듯한 '요식업' 자영업에는 여전히 또 다른 '사장님 후보자'들이 몰린다. 서울시의 경우 개업을 한 식당의 10곳 중 6곳이 일년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빛을 내서라도 장사를 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은 많고. 그런 사람들에게 요식업 사장님들의 유일한 충고, '장사를 하지 마세요'다.  

sbs스페셜은 2012년에 이어, 2016년 사장님의 눈물을 통해 우리 사회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분석한다. 그래도 2012년에는 '재활'의 가능성이 열렸던 사장님들은 이제, 그의 부양가족과 함께,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할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 바로 2016의 결론이다. 중소기업도 안되고, 자영업도 안되고,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가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by meditator 2016. 6. 20. 12:11

제 아무리 '마요미' 마동석'이라지만, 그 덩치하나로 여러 사람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던 <나쁜 녀석들>의 박웅철이었던 그가 어깨를 한껏 접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공무원이 되어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은 그래도 어쩐지 어색했다. 반전의 매력이라지만, 소심하다 결국 참지못하고 세금을 포탈한 악덕 고액 체납자 마진석(오대환 분)을 한 대 치고는 그 뒷수습에 쩔쩔매는 그가 답답하기 까지 했다. 1회는 이렇게 한껏 덩치가 곧 캐릭터였던 마동성이 변신한 소심한 세금징수 3과 백성일 과장의 애환을 그려내는데 치중했다. 마동석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세금 징수 공무원이지만, 결국은 돈있는 사람 앞에서는 물론 집안 식구들 앞에서조차 주눅들어 사는 백성일존재는, 제 아무리 어깨를 좁혀도 드러나고 마는 마동석의 덩치기에 더 옹색해 보였다. 




반전 매력을 가진 마동석의 백성일 세금 징수 3과 과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답답했던 백성일 과장의 캐릭터는 2회에 일관되었지만, 그 소심한 백성일 과장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나며 <38사기동대>의 가능성이 열렸다. 알고보니 욱하던 시절에 동네 일진이었던 그는, 단촐하게 형사인 친구 박덕배(오만석 분)와 함께 쳐들어간 대포업자 사무실(심지어 그 대포업자 우두머리가 신세계의 박성웅과 아저씨의 김성오다)의 이른바 '깍두기'들을 가볍게 제압해 낸다. 박성웅이 코피를 흘리며 백성일 옆에서 다소곳이 짜장면을 비비고, 김성오가 얌전하게 군만두를 입에 넣는 장면에서, 이미 공무원 백성일의 숨겨진 능력이 무시무시함은 충분히 제시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저 소심한 공무원의 애환으로 일관되던 드라마 <38사기동대>의 가능성이 열린다. 

<39사기동대>는 이미 예고를 통해 알려진대로 <나쁜 녀석들> 제작진의 작품이다. <뱀파이어 검사> 시즌1,2에 이어 <나쁜 녀석들>을 집필했던 한정훈 작가가 <나쁜 녀석들> 제작진과 다시 한번 합을 맞추었다. 하지만, <38사기동대>에서 <나쁜 녀석들>의 그 어둡고 음습한 기운을 찾기란 쉽지 않다. 1회에 욕을 하며 등장하던 나쁜 놈들보다 더 나쁜 형사 오구탁(김상중 분)도 없고, 그런 오구탁이라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같던 사이코패스 이정문(박해진 분)도, 살인 청부업자 정태수(조동혁 분)도 없다. 대신 하급 공무원이 된 마동석의 애환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작품 시작전 작가 한정훈의 인터뷰처럼 핏빛과 어두움으로 충만했던 19금 <나쁜 녀석들>의 암울한 기운을 한껏 빼어 버린 채 모두가 함께 공감할 드라마로 가겠다는 의지로 마누라의 한 마디에 바로 등돌려 누워버리는, 그러다 결국은 비상금 500만원으로 중고차를 사려다 사기를 당하고 마는 서민 백성일로 <38사기동대>는 시작된다. 

'사기꾼'이 전혀 이물감없는 서인국의 유연함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녀석들>의 한정훈 작가가 어디간 건 아니다. 마치 <나쁜 녀석들>의 착한 버전인듯, <38사기동대>는 '나쁜 녀석들'이 '더 나쁜 녀석들'을 징벌하는 그 주제 의식을 일관되게 이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제 의식의 중심에, 또 다른 주인공 양정도(서인국 분)가 있다. 교도소에서 출감하기 바쁘게 그를 위해 준비된 차에 몸을 싣고, 역시나 준비된 핸드폰으로 여유롭게 시청 세금 징수과 비리 공무원들을 단박에 '사기'쳐 버리는 양정도는, '사기꾼'이지만, 박덕배의 말처럼 '의적'처럼 등장한다. 단지 몇 마디 말로 거뜬히 '사기'를 치는 양정도의 그 프로젝트에, 동명이인 백성일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다. <응답하라> 출신 중 가장 순탄하게 그 '저주'를 피해간 배우인 서인국은, 이미 <고교 처세왕(2014)>, <너를 기억해(2015)>를 통해 다진 유연한 연기로 단박에 양정도를 표현해내며 이물감없이 '사기꾼'으로 드라마 속에 흘러든다. 

집요한 백성일의 추적 끝에 양정도는 교도소에서 출감한 지 며칠 만에 다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그런 양정도가 던진 악덕 체납자 마진석을 두고 던진 '딜'에 비도덕적 동료들로 인해 궁지에 몰린 백성일이 손을 잡는다. <나쁜 녀석들>이 다크한 분위기와 그보다 더 다크한 캐릭터의 진열로 대번에 드라마의 톤을 설득해 낸 반면, <38사기동대>는 말단 서민 과장 백성일의 애환과 반전, 그리고 궁지에 몰린 그를 통해, 공무원과 사기꾼이라는 기상천외한 조합의 설득력을 차곡차곡 설득해 낸다. 
by meditator 2016. 6. 19. 03:15

처음 함께 <썰전>을 시작했던 강용석 변호사가 일신 상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하차하게 되자, <썰전>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는 비록 아쉽지만, 그래도 신선한 젊은 피 젊은 보수 논객 이준석으로 수혈되었다. 하지만, 4.13 총선과 함께 찾아온 정치의 계절은 <썰전>에겐 혹한이 되었다. 두 패널 이철희 소장과 이준석씨가 모두 여야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비우게 된 것이다. 과연, 이철희를 대신할만한 분석적 패를 <썰전>은 마련할 수 있겠는가? 대중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3%이상의 꾸준한 시청률과 목요일 밤 종편 종합 1위, 예능 1위(닐슨 코리아 기준)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썰전>은 전화위복이란 이런 것이다를 스스로 증명해 냈다. 




유연한 진보와 과격한 보수의 신선한 콜라보 
6월 17일 비례 대표 국회의원의 존재 유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유시민 의원은 자신이 <썰전>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L'과 '리'가 출마하게 된데서 '땜빵용'이라며 애교스럽게 표현했다. 한때는 가장 까칠한 논객이었던 정치인 유시민은 이제 마치 '거울 앞에 선 국화'처럼 원숙하게, 그리고 쌀알을 주렁주렁 달고 고개를 숙인 벼처럼 포용력을 가진, 그래서 본인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대권을 희망하게 만드는 희망적인 분석가로 돌아왔다. 심지어 종종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 따위가 무색하게 전원책 변호사는 말끝마다 '단두대'를 들먹이며 6월 16일 방송에서 처럼 비례 대표 국회의원 무용론 등의 직설을 퍼붓는 반면, 유시민 의원은 오히려 융통성을 발휘하는 듯한 발언으로 '명분'까지 두둔하는 상반된 모양새를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쌈쟁이 진보와 현실 긍정의 보수란 프레임은 <썰전>을 통해 어긋나기가 일쑤이고, 바로 그 점에서 유시민, 전원책 두 새 패널의 <썰전>은 그 이전의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 충실했던 이철희, 강용석-이준석의 <썰전>과 차별화되고, 새로운 재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가장 날카로운 분석과 함께, '단두대'를 운운하며 개혁을 부르짖는 보수와, 그를 살살 말리며 현실 인정을 설득하면서도, 결코 원칙을 저버리는 않은 두 패널의 '만담'같은 정치 분석은 종편 예능 1위에 걸맞게, 웃기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그 어떤 예능보다 재밌으면서 유익하다. 

하지만, <썰전>은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된 두 패널의 '만평'에 머무르지 않았다. 외려 두 패널이 안정적으로 새로운 <썰전>을 정착시켜 나가자, 그 안정적 흐름 위에 '특집'처럼 정치 평론의 각을 벌여 나가기 시작한다. 

지난 5월 12일 4.13 총선이 마무리 된 후 166회 <썰전>은 1부 저술 활동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유시민 작가 대신 진중권 교수를 대타로 등장시킨다. 동네에서 개아빠와 고양이 아빠로 종종 마주친다는 두 사람은 이전의 유시민 의원과 다르게 '기승전 파이트'의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눙치고 얼르는 유시민 의원과 달리, 진중권 교수는 달변의 전원책 변호사에게 놀란 듯하면서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 이전의 유시민 패널과 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 



다양한 정치인들로 꾸며진 '특집'
하지만 정작 이날 <썰전>의 백미는 이후 2부로 이어진 <젊은 정치인 특집>이었다. 낙선한 <썰전>의 이전 패널이었던 이준석 노원병 새누리당 후보와, 선거 이전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더불어 민주당 김광진 현 의원이 함께 자리를 한 것이다. 비록 이준석 과거 진행자는 이미 <썰전> 패널을 역임했듯 젊은 정치인으로 일찌감치 방송에 등장했지만, 새로운 얼굴로 등장한 김광진 의원과 함께, 노회한 논객들에게선 맛볼 수 없는 '젊은 정치'의 세계를 선사했다. 이철희와 상대한 이준석은 그저 새누리당 입장을 대변했지만, 김광진 의원과 조우하니, 선배 정치인들과는 다른 야심을 가진 새로운 정치 세대의 대변자로 보였다. 새 얼굴 김광진 의원은 때론 그래도 국회의원을 역임한 경력과, 하지만 경선 패배와 함께 이준석과 함께 노회한 정치의 벽 앞에서 그래도 두드리기를 멈추지 않는 패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젊은 정치인 특집>을 선보였던 <썰전>은 그에 뒤이어 6월 9일에 이어 16일 2부로, <웰컴 특집>을 선보인다. <썰전>의 터줏대감으로 더불어 민주당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철희 소장과, <썰전>을 비롯하여 jtbc의 정치 관련 프로그램에 얼굴을 종종 보였던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기념으로 <썰전>에 등장한 것이다. 



9일 방송에서는 이철희 의원의 비례 대표 국회의원으로 들어간 이유과 고뇌에 대한 해명의 자리를 마련하는가 하면, 3선이 된 김성태 의원의 여유를 선보였고, 역시나 여야로서 뼈있는 덕담으로 화기애매한 자리를 선보였다. 이젠 국회의원이 된 두 사람, 그 중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의 핵심부에 자리한 두 사람은 이젠 안방 마님이 된 유시민, 전원책 패널과도 다르고, 햇병아리 젊은 정치인 두 사람과도 다른, 정치 현장의 소리를 전달한다. 

여유로운 진보 유시민과 과격한 보수 전원책과 더불어, 종종 특집을 통해, 젊은 층의 정치 외면 시대에 젊은 정치의 가능성을 열고, 정치 무능론의 시대에 정치에 대한 재미와 가능성을 열어가며 <썰전>은 프로그램의 지평은 넓혀감은 물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여간다. 
by meditator 2016. 6. 17. 05:36

3월 22일 종영된 <베이비 시터>에 이어, kbs2는 또 다시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를 편성했다. 김용수 감독의 예술적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았던 <베이비 시터>, 하지만 그 제 아무리 김용숙 감독의 독보적 예술은 주연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갉아먹었고, 거기에 4부작=땜빵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채 3%대 시청률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비 시터>에 이어 다시 한번,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에, 퐁당퐁당 편성된 <백희가 돌아왔다>는 실험작이었던 <베이비 시터>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작품성과 재미, 그리고 시청률까지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더불어, 4부작 드라마는 '땜빵 드라마'라는 오명을 벗고, 드라마 형식의 새 장을 안착시킨다. 


<베이비 시터>의 실험, <백희가 돌아왔다>로 안착하다. 
<베이비 시터>는 자체의 역량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좋지 못했다. 전작 <무림학교>가 웬만해서는 조기 종영 카드를 꺼내지 않는 kbs2에서 결국 20부작을 16부작으로 마무리하는 4~5%의 시청률로 고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간대 상대작들도 sbs의 <육룡이 나르샤>, mbc의 <화려한 유혹>으로 버거운 상대였다. 하지만 비록 낮은 시청률이었지만, '예술주의'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베이비 시터>는 장편 드라마에서는 욕심내기 힘든 시도를 감행했다. 

그에 반해, <백희가 돌아왔다>는 전작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동시간대 1위를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작들이 비록 1위라지만 내내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 밀리다가, <백희가 돌아왔다>에 겨우 0. 몇 프로 내의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몬스터>와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 조차 버거운 <대박>으로 도토리 키재기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희가 돌아왔다>의 성취는 그저 동시간대 경쟁작들의 미미한 성과로 퉁치기엔 작품의 깔끔한 만듬새가 돋보였다. 


드라마의 시작은 흡사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드레스 메이커>를 연상케 한다. 영화 <드레스 메이커> 속 케이트 윈슬렛은 25년전 억울한 사건의 범인으로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난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화려한 디자이너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마찬가지로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강예원 분) 역시 18년전 '빨간 양말'이라는 미성년자 추문 비디오로 인해 도망치다시피 고향을 떠났다가, '홈쇼핑 젓갈 완판 여왕이자 자연요리 연구가 양소희가 되어 고향 섬월도로 돌아온다. 

영화 <드레스 메이커>의 케이트 윈슬렛이 다시 돌아온 고향 마을에서 재봉틀 대신 총을 들고 '화려한 복수'를 시작하는 반면, 양소희, 아니 양백희는 조용히 살고 싶어하지만 하나뿐인 딸이자 트러블 메이커인 18살 옥희(진지희 분)로 인해 이야기는 <맘마미아> 식 아빠 찾기로 변화한다. 

좋은 배우들,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
여기서 등장한 세 아빠 후보, 우범용(김성오 분), 차종명(최대철 분), 홍두식(인교진 분)와 과거의 백희와, 현재 옥희를 둘러싼 해프닝들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맘마미아> 이상의 재미를 준다. 1,2회 돌아온 백희, 그리고 과거 천방고 백희파 창단주였던 전설적 인물 백희, 그리고 이제 핏줄이 땡긴 아버지들의 혈육 찾기를 둘러싼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달렸던 드라마는 3회, 백희와 범용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사연이 풀어져 가면서 감동적인 순애보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4편 전편에 걸쳐, 옥희의 아빠 찾기라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와, '백희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빨간 양말' 비디오에 얽힌 스릴러가 종합 선물세트처럼 빼곡하게 4편을 채운다. 

이렇게 잘 버무려진 연기와 스토리만이 <백희가 돌아왔다>의 다가 아니다. 18년전 일진이었던 백희, 홈쇼핑에 나와 젓갈을 팔지만 고등학교도 채 나오지 못해 '무식'이 들통난 백희지만, 알고보니 18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게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미혼모의 의연한 삶이 담겨있다. 거기에 호시탐탐 섬을 떠나 가수의 꿈을 키우려하는 백희를 꼭 빼닮아 천방고 18대 일진이 된 딸 옥희의 아빠 찾기와 숨겨진 엄마 사연을 안 이후의 반응은 18살 나이에 용감하게 딸을 키운 엄마 백희 만큼 당당하다. 미혼모였던 엄마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든 딸을 위해 도박꾼 남편이라도 붙들고 살려했던 엄마를 대번에 이해하는 당찬 품성을 지닌 것이다. 

흔히 숨겨진 출생의 비밀과 그 속에 숨겨진 한 여성의 비극사를 다룬 드라마들이 쉬이 '신파'로 경도되는데 반해, <백희가 돌아왔다>는 감동적인 순애보의 순간에도, 숨겨진 출생의 비밀의 순간에도, 감동의 온도를 '신파'로 휘젓지 않는다. 오히려 내내 도박으로 백희를 괴롭혀 왔던 남편이 18년전 백희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주범이라는 걸 안 이후, 진짜 '백희'가 돌아오며 유쾌, 상쾌, 통쾌한 응징으로 캐릭터의 일관성을 멋들어지게 승화시킨다. 4부의 못다이룬 백희와 범용의 순애보와 나머지 두 아빠의 후일담은 사족 그 이상의 훈훈함으로 드라마를 마무리한다. 그 과정에서 때론 아빠 후보로 갈등하며, 때론 첫사랑을 못잊은 순애보로 쩔쩔매다, 이제 돌아온 백희파로 한 몫을 하는 세 아빠 후보생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4부작 드라마로 스토리와 재미, 그리고 연기의 삼합을 잘 이루어 10%가 넘는 시청률적 성취를 도달함으로써 땜방 드라마 이상의 가능성을 확고히 했다. 무엇보다 잘 만들기만 한다면 4부작이라는 형식적 한계도, 스타급이 아닌 배우들이 주연을 하더라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는 점에서 그 성취는 놀랍다. 
by meditator 2016. 6. 15. 05:39

인기리에 방영되는 tvn의 월화 드라마 <또 오해영>, 주인공들은 '전쟁'같은 사랑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절실한 '사랑'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주인공 오해영(서현진 분)과 박도경(에릭 분)은 '이성적' 시각에서 따지고 보면 '미친 년, 놈'이 따로 없다. 자신의 결혼을 파탄냈는 그 놈을 못잊어 하는 오해영도 제 정신이 아니고, 그런 그녀를 연민으로 바라보다 이제 자신으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피해자 오해영 전 남친에게 다짜고짜 주먹다짐을 하고 마는 박도경도 만만치 않다. 굳이 다른 드라마에서 찾을 게 뭐 있겠는가.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이 장애인이라 자신이 없다며 외면했던 애인 연하를(조인성 분) 첫사랑과 키스를 해가며 잊으려 몸부림치다 결국 몇 년만에 18시간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 해후하고 마는 사랑은 또 어떻고. 


기꺼이 양보도 가능한 노년의 사랑
이렇게 '미침'을 거부하지 않는, 아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열정적인 '젊음'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알아왔던 동생이 좋아한다 하면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노년'의 사랑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성당에서 희자(김혜자 분)는 성재(주현 분)을 만난다. 아니 희자가 성당에 다니는 걸 알게 된 성재가 희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성재는 바로 희자의 첫사랑, 하지만 우연한 엇갈림이 두 사람 사이에 몇 십 년의 이별을 낳았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삶을 살아내고, 이제 정신이 까무룩하는 노년이 되어서야 해후를 하게 되었다. 

속되게 노년의 사랑을 인생의 마지막 행로에서 다시 오지 못할 사랑이기에,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이 한 분의 할아버지를 두고 머리 뜯고 싸울만큼 '열정'의 사랑으로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낭만적인 희자와 성재의 해후를 환타지같은 낭만을 뚫고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희자의 앞에 나타난 성재, 이 로맨틱한 설정에, 희자는 성재를 소닭보듯한다. 첫사랑의 그 시절, 그녀를 홀로 남겨두어, 사별한 남편과 인연을 만들 빌미를 주었던 성재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이제 72세의 치매끼와 싸워야 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성가신 배 나온 노인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 앞에 나타난 성재는 다시 만난 그녀를 보고 설레어 하지만, 희자는 오히려 정아와 벌인 교통사고 수습으로 인해 성재가 내뱉는 말들이 성가실 뿐이다. 

그러나 자꾸 그녀 앞에 나타나 보고싶다는 성재, 조금 솔깃해질까 싶은데, 오랜 벗이나 다름없는 동생 충남(윤여정 분)이 성재가 좋단다. 그러자 희자는 기꺼이 양보한다. 심지어, 성재와 함께 떠나겠다던 여행조차 대번에 포기하고 만다. 

불타오르지 않아도 사랑은 사랑 
머리뜯고 싸울 노인정 할머니들의 애정 삼각 전선이 등장하는가 싶었던 희자-충남-성재의 삼각 로맨스는 충남의 사랑 선언에 기꺼이 포기를 선택한 희자의 우정과, 희자의 외로움을 이해한 충남의 호쾌한 포기 선언으로 싱겁게 마무리된다. 희자는 오랜 시절 가족을 돌보느라 결혼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충남을 안쓰러워하고, 충남은 이제는 홀로 남아 시간과 싸우는 희자의 고독을 이해한다. 



결국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희자와 성재, 하지만 로맨스 그레인인 줄 알았더 이들의 여행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아침부터 꽃단장했던 성재의 의도와 달리, 달리는 차 속에서 흩날리는 건 봄바람이 아니라, 성재의 흑채 가루였고, 그 시절 흔연히 희자 정도는 엎어줄 수 있었던 기력은 차가 끊겨서가 아니라, 늙어서 더는 운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하룻밤이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가방을 가운데 두고 한 방에 누운 두 사람, 이 로맨틱한 정취 속에 토로되는 건, 곱게 늙은 노년의 얼굴 속에 숨어있는 이제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을 신산한 삶이다. 젊었다면 어찌 해볼 이 운명의 시간, 달콤한 사랑의 운명을 방해하는 건 노년의 다한 기력이 몰고오는 잠이다.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난 첫 사랑, 그들의 하룻밤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로맨스의 소재는 노희경 작가에 의해 가장 현실적인 노년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희자와 성재의 만남이 무위가 된 건 아니다. 이제와 다시 만나 어쩌겠냐고 외면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늙어서 치구가 되자고 한다. 그리고 친구처럼 요의를 참을 수 없는 희자를 위해 차를 세우고, 치매끼에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사온다. 그런 성재의 성의에 조금씩 긴장이 풀린 희자는 입가에 묻은 검댕이를 닦아주고. 함께 선 일출의 정상에서 '지금만으로도 좋다'며 그의 손을 잡아준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같은 낭만적인 로맨스대신, 70여년의 삶을 지고온 시간고 그 시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만남이 이어진다. 굳이 '전쟁'처럼 불타오르지 않더라도, 때론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해프닝과 잔잔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우정으로 인해 은은하게 온기를 느끼게 하는 사랑이다. 

by meditator 2016. 6. 12. 16:25

5월 31일 종영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간 이와 비슷하게 우리 사회 비리를 다룬 드라마들이 설정한 '악의 계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선보였다. 재계와 법조계, 그리고 검찰이라는 우리 사회 지배 계급의 삼각 카르텔의 부도덕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범죄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이전의 작품들이 '돈'을 가진 자 재벌을 정점으로 그의 '시녀'로서 검찰과 법무법인이라는 서열을, 권력을 전횡하는 검찰이 실질적 지배자로 등장한 것이다. 


즉 드라마 속 차기 검찰 총장을 노리는 신영일(김갑수 분) 서울 지검 검사장은 재벌의 검은 돈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런 재벌이나, 그의 오른 손인 법무법인조차도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처리'해 버리는 능력자로 등장한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그의 윗 서열 검찰총장이다. 뿐만 아니라 '비리'가 폭로된 마당에도 서울지검 검사들은 신영일의 수하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권'을 매개로 '형제애'적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마피아의 21세기적 현현, '관피아'다. 바로 이들,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지 않았지만, 그저 공부 잘하고 능력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관료'들이 어느 틈에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는 현실,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런 면에서 시의적이다. 그리고 바로 드라마가 구현혔던 '관피아'의 실제가 6월 9일 <썰전>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은 '관피아'
그 시작은 5월 16일 발생한 스크린 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어 사망한 김모 군의 사망 사고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이다. 안전수칙이 무시된 채 홀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죽음에 이른 이 사건을 통해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서울 메트로'의 관피아적 행태를 비판한다. 애초에 2인 1조의 수리가 불가능한 외주업체의 인력 부실, 그 이면에는 서울 메트로의 직원들을 낙하산으로 받아들인 김군이 소속된 외주업체 은성PSD의 실상에서부터, 사건 초반 김군 개인의 과실로 떠넘기려 했지만, 구조적 인력 부족을 뻔히 알고 있었던 서울 메트로 직원들에서부터, 면피용 사표에서 부터, 이미 이전부터 내놓았던 해결책을 되풀이하는 사후약방문식의 해결 방법까지, '관료주의'의 해악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구나 똑같은 지하철임에도 서울 메트로 쪽이 외주업체를 통해 관리하는 1~4호선과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5~8호선은 애초 설치된 스크린 도어 사양에서 부터, 사고율까지 천양지차의 결과를 낳는다. 이를 통해, 전원책 변호사가 이른바 '메피아'의 '이권 나눠먹기 식' 행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유시민 변호사는 더 나아가, imf 이후 우리 사회에서 우후죽순식으로 진행된 공기업 개혁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관료들의 안일주의이거나, 이권 나눠먹기식이든, 개혁의 명목 아래 진행된 자기 논에 물주기 식 외주 사업이든 결국 이 모든 '과'의 귀결은 '메피아'라 지칭되는 서울 메트로의 관료주의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안으로 등장한 미세먼지에서도 류는 다르지만, '관피아'의 악취는 진동한다. 엉뚱하게 고등어 판매량만 급감하게 만든 환경부의 미세먼지 대책, 결국 이런 웃지못할 분석은 원인 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공무원의 무능이 낳은 결과라는 것을 <썰전>은 밝힌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실제 그 누구라도 다 아는 중국발 엄청난 산업 미세 먼지의 상당한 지분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애써 눈감는 행태와, 최근 급증하고 있는 화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미세 먼지 급증에 대한 무지, 그리고 경차로 국한한 환경부의 자동차 업계와의 카르텔은 결국 일 하지 않는 혹은 자기 논에 물주기 식의 관료 행정의 백태를 보여준다. 

G20 대한민국의 현실
이후 이어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낯부끄러운 생리대 현실 역시 성남시가 5~6억원의 재정만으로도 성남시의 저소득 가정의 생리대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데서 보여지듯, 결국 적체된 보건복지 행정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6월 9일 <썰전>은 21세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그토록 자부한다는 g20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시적으로 전전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현실과 생리대가 없어 바깥에 나갈 수 조차 없는 저소득층의 비극이 무엇으로 부터 기인했는지도 드러낸다.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안일과 이권을 위해 젊은이들과 가난한 청소년들, 그리고 국민들의 건강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을 가감없이 폭로한다. 

ebs 다큐 프라임이 방영한 <민주주의>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주요 요인으로 관료주의가 등장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하지만 피라미드식 구조를 가진 계층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국민에 대해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우선하여, 국민을 바보같이 취급하고, 심지어 그저 자신들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의 지배 그룹이다. 바로 <썰전>을 통해 드러난 '메피아'니, '환피아'니 하는 관피아들이다. 시민들의 역할이 부재하고 제도적 장치가 무력한 국가에서 이들 '관피아'에 의해 '민주주의'는 잠식당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 변호사 조들호> 속 신영일 검사장의 아들이 또한 검사 신지욱(류수영 분)이듯, 그들은 그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카르텔을 계승한다. 바로 <썰전>을 통해 보여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6. 6. 10. 16:00

내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거리에서 외로 돌아들어가야 한다. 집앞에는 센서가 켜지지만 그 센서가 켜질 때까지 다만 몇 미터의 거리는 늘 어둡다.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그날따라 방심했던 나는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남자'도 나를 보고 놀란 듯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언제라도 다른 의미로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후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핸드폰의 손전등을 밝히고,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리는 앱을 준비하곤 한다. '성적 정체성'을 운운하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된 이즈음도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약자'의 본능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지난 세월동안 '여성'으로서 학습되어온 '본능적 두려움'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분출된 여성들의 분노, 그 이유는?
6월 7일 <pd 수첩>은 5월 19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수면 위로 올라온 '여성 혐오' 문제를 다룬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강남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조명한 다큐는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메운 포스트 잇에 드러난 '여성들의 공포'를 통해, 이 일련의 현상이 '여성 혐오'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반응을 보이는가의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즉, 강남역에서 죽어간 그 여성이 특별한 '그녀'가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 그 '모두'가 될 수 있다는데서 오는 '공포'와 '분노'라는 점에 촛점을 맞춘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 살해) 유형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다큐는 밝힌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예로 부산 도심에서 벌어진 묻지마 폭행을 전형적인 예로 제시한다. 조현병으로 인한 장애 3급의 남성 부산 도심에서 거리의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거리를 가는 노년의 여성과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실제 범죄자 분포수를 보면 정신 장애를 가진 범죄자는 2.6%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병으로 인해 자아가 취약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편견이나 관습에 취약, 쉽게 그런 인식들을 내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당연히 맞을 짓을 한거지', '자업자득'이라는 부산 도심 폭행범이나,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되었다'는 강남역 살인 사건 가해자의 의식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내재화한 전형적 예로, 이들의 망상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다고 밝힌다. 

우리 나라는 세계적으로 치안이 잘 구비되어 있는 국가에 속한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이 되면 그 양상은 달라진다.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95%이상이 남성인 반면, 피해자의 84.7%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여성이 얼마나 범죄에 취약한가를 드러낸다. 더구나 최근 해를 거듭할 수록 여성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늘어나, 2014년에 이르면 70%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일상적이다. 여성 폭력 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락산' 등산로에서 발생산 살인사건처럼 범죄가 발생되는 장소가 삶의 근거지나, 길거리, 그리고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등이어서 여성들의 공포는 커진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남성들이 공감할 수 없는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근원은 남성과 여성이 일대일로 맞섰을 때 여성이 느끼는 신체적 불리함에 근본적으로 기인한다고. 또한 성폭행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여성들을 수세적으로 만든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 불리함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수정 경기대 범죄 심리학과 교수)라는 문화라는 것을 다큐는 짚는다. 즉,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단편<체체파리의 비법 > 중)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표현처럼. 

거기엔 사회가 불안해지면 사회적 약자가 더 약자에게 불안을 투사하는 사회적 심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런 범죄로 야기된다고 덧붙인다. 즉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을 뿐 성별이 불평등하고, 인종차별적이며, 성소수자에게 '관용'이라고는 없는 '차별 사회'라는 것이다. 

여성 혐오 범죄? 사회적 가치를 도발한 테러로 간주해야 
이에 범죄학자는 여성을 대상으로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여성 혐오성' 범죄들을 그저 대상이 '여성'이라는 특수한 범죄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관을 가진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도발한 '테러'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력하게 일벌백계를 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회로 부터 완전격리를 시키는 등 범죄에 대한 경고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같은 성범죄에 대해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이는 그저 범죄의 처벌 방식이 아니라, 그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다큐는 짚는다. 뿐만 아니라, 훈방 등으로 풀려난 가벼운 경범죄자에 대한 사회 복귀, 융화 프로그램도 철저히 실행하여 재범을 방지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근 벌어진 신안군 성폭력 사건의 범인이 알고보니 대전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듯이, '사후 약방문'의 현 범죄 예방 프로그램의 허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수요자 중심의 치안 활동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망된다고 다큐는 나아간다. 2013년부터 실시된 여성 안심 귀가길 프로젝트는 실제 위기 대응에 있어 취약한 점을 밝히고, 그저 cctv 설치나, 남녀 화장실 분리 등 물리적 해결만으로 이런 구조적 성차별이 해결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다큐가 결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뿌리깊은 성차별을 해소할 '차별 금지법'이다. 이미 선진 각국에서 통과된 이 차별 금지법이 번번히 국회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대에 따라 2013년 또 다시 철회된 현실은 곧 우리 사회 차별적 문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폭력으로 죽어간 여성을 위해 이탈리아 사람들은 붉은 천 달기 운동을 벌였지만, 자신들이 느끼는 공포를 드러낸 대한민국의 강남역 추모 물결은 '여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괴리는 곧 한국 양성 평등의 위치를 드러낸다. 

그래서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 전반을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본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중인 이 법안의 통과는 우리 사회 양성 평등 문화의 제도적 안착을 위한 첫 삽이 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또한 계류 중인 스토킹 방지법 역시 서둘러 통과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숱한 미디어는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이 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고 그 맥락을 분석하고자 한다. 6월 7일 <pd수첩>이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일련의 흐름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그런 현상을 그저 '여혐이냐 아니냐'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에 잠재된 불평등 문화와 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차별 금지법'과 스토킹 방지법'이라는 충분히 제도적으로 불평등을 보완할 수 있는 법에 대한 제고를 결론으로 냈다는 점에서 백가쟁명식의 토론에서 한 발 나선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언제나 사건이 일어나면 가쉽성으로 사건을 부풀리는  '만취녀, 부킹녀' 등 언론들의 피해자 귀책 프레임에 대한 언론의 자기 반성도 놓치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6. 6. 8.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