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에릭 분)의 작업실, 햇빛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 서있는 여인, 그 장면을 그냥 넘기려는 동생 훈(허정민 분)을 도경이 저지한다. '소리'를 넣으라고. 도대체 햇빛 쏟아지는 소리도 있느냐고 반발하는 동생, 하지만 동생 훈은 여친 안나(허영지 분)가 환호하는 그 장면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햇빛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도 있음을.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 창문이 열리고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 아래서 즐거이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 활기차게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의 소리. 그저 빛 반사로 윤곽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한 장면이, '소리'가 더해짐으로써 살아움직이기 시작한다. '도경'이 더한 '소리'처럼 그런 게 아닐까, 사랑도. 사랑을 잃고도 밥은 잘 쳐먹는다며 구박받다 쫓겨난 오해영(서현진 분)에게 어거지가 아닌 새로운 삶의 '빛의 소리'가 등장한다. '도경'이다. 



죄책감으로 시작된 사랑 
tv가 그려내는 '사랑'은 가지가지이다. <태양의 후예>처럼 첫 눈에 내 사람이다 싶게 '반'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서로 싸가지다 싶었는데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결혼 계약> 같은 사랑도 있다. 어릴 적부터 오누이처럼 자랐는데 죽고 못사는 사랑이 된 <풍선껌>의 사랑도 흔히 등장한다. 그러면 이런 건 어떨까? 죄책감, 이런 것도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제목에서부터 <또 오해영>이듯이, 드라마는 동명이인 오해영에 얽힌 웃지못할 해프닝이 주요 모티브가 된다. 고등학교 시절 한 반에 두 명이었던 오해영, 그저 두 명의 동명이인이 있다는 사실쯤이야 흔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중 한 명은 자타가 인정하는 '이쁜 아이'(전혜빈 분)라는데 문제가 시작된다. 아니 정작 문제는 다른 또 한 명의 오해영(서현진 분)이 그저 평범한 아이라는 게 더 문제였을까? 이쁘지 않은 오해영이 굳이 이쁜 오해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지만 사사건건 비교가 되는 건 물론, 한 사람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순간, 또 다른 한 사람이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 무가 되는 얄팍한 인간사의 '인지상정'을 일찌기 경험한 또 한 명의 오해영은 다른 오해영이 어느 날 바람같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안심이 될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행운은 그리 쉽게 또 오해영(서현진 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오해영과 또 오해영의 이름과 관련된 오해는 또 오해영의 결혼까지 파탄내 버렸으니, 이 정도면 오해영의 동명이인은 '해프닝'이라기엔 그 심연이 너무 깊다. 그러나 아직 또 오해영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녀 앞에 나타나, 심지어 그녀와 뚫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된 도경은 그 모든 사실을 안다. 또 오해영은 술김에 그녀가 쏟아놓은 이야기 때문에 도경이 자신의 파혼 사실을 안다고 했지만, 사실은 도경인 바로 그녀를 파혼으로 몰아넣은 주범이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오해영때문에. 



그래서 도경은 또 오해영과 한 집에 살 수 없다 우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기기 시작한 두 사람의 해프닝이 여차저차해서 '그냥 살아요'가 되는 순간, 두 사람의 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도경은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은 또 오해영에 대한 죄책감이 연민으로 변해가고, 또 오해영 역시 자신의 비밀을 아는 도경에 대한 계면쩍음이,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라는 '연민'으로 변해가며, 두 사람은 다른 층위의 감정을 교환하기 시작한다. 


박해영이 그려내는 또 한 편의 공감
<결혼 계약>이 사실은 뻔하디 뻔한 재벌 집 자제와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미혼모의 이야기를 다른 질감으로 그려내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듯이, <또 오해영>의 스토리 역시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이다. 동명이인, 나보다 잘나고 이쁜 그 아이로 인한 자존감의 저하, 동거 해프닝, 심지어 초능력 등 버무려 놓았을 뿐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작가가 2005년 232부작으로 아쉬움을 남긴 채 종영한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작가 박해영이 되면 달라진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초반 최미자가 연상되는 또 오해영의 초반 슬픔을 주사와 각종 해프닝으로 이겨내는 과한 설정들은, 그 이후 풀어내는 내공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오해영으로 인해 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왔다던 그녀가 밉지 않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지점은 도경이 죄책감으로 그녀를 떨구려 애쓰다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지점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도경 역시 마찬가지다. 잘 생긴 에릭이라는 선입관을 제쳐두고, 도경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시점 역시, 또 오해영이 그를 눈에 담기 시작한 지점과 일치한다. 



또 오해영의 파혼을 둘러싼 번다하고도 소소한 해프닝들을 견뎌내고 오도카니 오해영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기 시작할 때,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도 두 주인공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극중, 남자 주인공 도경의 직업은 음향 감독이다. 눈이 밝은 시청자라면 털북숭이 마이크를 든 도경에게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 분)가 떠올려질 것이다. 상우가 그랬던 것처럼 도경도 하루 아침에 여자에게 차였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상우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망연자실한 것과 달리, 도경은 나름 '복수'를 한다. 비록 헛발질이었지만. 

그렇게 사랑의 헛발질을 한 도경이지만, 음향 감독으로서의 그는 햇빛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철저하다. <봄날은 간다>에서 소리를 모으는 상우를 따라,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았듯이, 역시나 <또 오해영>에서 시청자들은 소리를 모으는 도경을 따라,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때 들어오는 것은, 도경이 모으는 소리가 아니라, 두 주인공의 마음 속 소리이다. 섬세하게 마음의 결을 사람 냄새 풍기며 그려내는 <또 오해영>에서 이제 시청자들은, 평범치 않은 사연 이면에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한번쯤은 걸려 넘어졌을 법한 사연들의 속내를 듣게 된다. 
by meditator 2016. 5. 11. 15:00

그저 또 하나의 '알츠하이머'에 대한 이야긴줄 알았다.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망연자실한 주인공 박태석 변호사 이성민의 표정, 거기에 '사라질 수록 소중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란 대사가 더해지니, 잘 나가던 변호사가 '기억'을 잃는 불행에 빠지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생>, <골든 타임>을 통해 각인된 명배우 이성민이지만, 이미 그의 앞에 여전한 미소년 유승호가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이미 '알츠하이머'를 통해 숱한 시청자들을 울려 버렸다. 그래서 <기억>의 예고편 속의 이성민의 알츠하이머는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미 1회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박태석의 '알츠하이머'로 시작하는 <기억>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리멤버-아들의 전쟁>, 그리고 역시나 tvn의 배종옥이 동일한 질병인 알츠하이머를 연기한 <풍선껌>이 있었기에, <기억>은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안고 시작했다. 더구나, 극 초반 주인공이 대뜸 걸려버린 병은, '칙칙한 드라마'를 즐겨하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리모컨의 향방을 바꿀 빌미를 주었다. 더구나 전작 <시그널>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기에, <기억>에 대한 기대는 컸고, 그 기대에 비해 <기억>의 시작은 신선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알츠하이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시그널>이 2016년의 센세이셔널한 역작이라면, 그 후속작 <기억>은 '걸작'의 반열에 올려 놓아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었다. 다만, 그 진가를 풀어 헤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블럭으로 집짓기를 하면, 처음엔 그저 블럭의 조합이었던 것이, 어느 틈엔가 빈틈없는 구조물이 되어 등장하듯이, <기억>은 그 어느 구석에 비집고 들어갈 빈 틈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작품의 실체를 드러낸다. 마치 안개 속을 헤매다가 어느 틈엔가 우리 앞에 드러난 거대한 성채처럼. 

2014년 '세월호 사건' 이래 많은 드라마들이 이 사건을 복기해 왔다. 도대체 벌건 대낮에 숱한 생명들이 사람들이 손놓고 지켜보는 가운데 사라져 갔다는 사실이, 그리고 알고보니 그게 그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그간 대한민국이란 급행 열차가 가져온 필연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절감한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심지어 로코 속 군인의 입에서 조차, 국가의 의무를 훈계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영웅적 주인공들은 저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졌다. 그를 통해 드라마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정치와 법률, 그리고 자본의 커넥션에 대해 고발했다. 

하지만 저마다의 목소리는 높았고 문제 의식은 분명했지만, 그 해법은 오리무중이었다. 악이 전횡을 펼치는 '고구마'같은 전개를 반복하다, 어설프게 '사이다' 한 잔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용팔이>가, <리멤버-아들의 전쟁>이, 그리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그랬다. 하지만, 그 시원한 사이다의 뒷맛은 짧고, 뭔가 쳇바퀴를 도는 듯, 정의와 악에 대한 응징 자체가 클리셰가 되어 가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저 잘 나가던 변호사의 알츠하이머로 시작된 <기억>이 박태석 변호사의 아들 동우의 미제 사건을 풀어나가며 드러내 보였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 카르텔은 이미 앞선 드라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가족의 상처로 부터 시작된 박태석의 진실 찾기라는 구도도 아니었다. 법조계 3세의 교통 사고, 그리고 재벌 3세의 살인 사건까지 이어지는 부도덕한 자본의 민낯 역시 익숙했다. 

하지만 <기억>은 알츠하이머를 걸린 변호사 박태석을 통해, 이제 우리 드라마에서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 담론에 대해 한 발 더 나아간다. 상처를 입은 자가, 트라우마에 갇힌 자가, 그 상처를 극복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넘어,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가능성을 연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속물 변호사 박태석이라는 설정에서 비롯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한다
tv 방송에도 출연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는 태선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벌인 한국그룹의 뒷배를 봐주기에 여념이 없던 박태석, 비록 전처는 그를 사람 취급도 안하지만, '성공적'인 삶에 신바람이 나있던 그에게 '알츠하이머'는 청천벽력이다. 하지만, 엔딩에서도 말하듯이, 그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삶을 만난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그의 삶을 돌려놓는다. 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숨겨두었던, 비겁하게 도망갔더 기억들을 끌어올려, 비로소 그를 제대로 된 아버지로, 변호사로 만들어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서울 것없는 그의 싸움이, 오랫동안 그가 반목해 왔던 자신의 삶을 비로소 제대로 보고 받아들이게 한다. 

'결자해지(結子解之), 그저 네 자의 사자성어로 귀결될 수 있는 16부에 이르는 박태석의 싸움은 그저 아들의 죽음을 밝히는 묵은 해원을 풀어내거나, 복수를 했다거나, 부조리와 부도덕에 맞서 싸웠다는 말 그 이상, 그 자신이 자신의 병을 축복이라고 말하듯,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시간이었고, 이는 곧 박태석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도 '결자해지'의 반추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즉, 우리가 이 시대에 밝히고 싸워야 하는 이유가 타인이나, 다른 세력의 부조리와 부도덕 때문이라는 대상화를 넘어,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한 싸움과 반추, 그리고 바로잡음이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러기에, 아들을 죽인 범인 승호를 보내 줄 수 있는 박태석 변호사와, 그의 아내 나은선(박진희 분)의 혜량이 이해될 수 있었다. 범인으로 추정된 인물의 자살 앞에 분노하던 두 사람이 15년을 한 시도 잊을 수 없던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진 순간, 무엇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동우가, 누군가의 짐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밝혀줄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두 부부의 의지는, 아직도 진실을 향해 목놓아 소리치는 거리의 부모들의 진짜 마음을 대변하고, 승화시키기에 감동스럽다. 




박찬홍- 김지우, 그리고 이성민
악의 전횡과 사이다 같은 복수 한 방으로 마무리되던 대부분의 드라마들을 그렇게 <기억>은 넘어선다. 이런 <기억>이 반가운 것은 무엇보다, <부활>, <마왕>을 통해 복수극의 대명사로 불렸던 박찬홍-김지우 콤비가 <상어>의 부진을 딛고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작품의 문제 의식이 우리가 고통받는 시대에 맞춰 구체화되었고, 견고해졌다는 점이다. 감동적인 대본과, 그 대본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절묘하게 구현해내는 장면, 장면은 박찬홍-김지우 콤비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이런 박찬홍-김지우 콤비의 부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박태석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이다. <로봇 소리>에서 로봇을 상대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연기를 열연했던 이성민은 <기억>에서 다시 한번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되어 나타났지만, 로봇 '소리'의 동반자 그 아버지는 찾을 수 없이, '에브리데이 굿데이'를 잔망스럽게 외치는 속물 변호사에서 부터, 아버지의 손에 끌려 엘리베이터에 타는 어린 아들의 모습, 정말 그의 뇌가 터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진실에 다가가며 분노하는 모습에서 회환에 찬 모습까지,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비로소 인생의 진짜 행복을 찾은 엔딩까지, <기억> 속 구비구비의 감정을 설득해 낸다. 

by meditator 2016. 5. 8. 03:29

강준만 교수는 5월1일자 한겨레 신문 칼럼 <언론도 소통합시다>를 통해 관성에 젖은 언론 행태를 꼬집는다. 강교수는 '각자 당파성에 기인해 반대 정당이 압승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캠페인성 기사를 양산해 내거나, 각 정치 세력과 정치인들의 유불리나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일에만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자가 그런 기사를 좋아한다며 독자의 뒤에 숨지만, 결국 '싸움과 당파성을 파는 상인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 이유로 '당장 여기서'라는 목전의 사태에만 집중하느라 10대 재벌 사내 보유금 분석 같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소통'의 방식을 놓치고 있다고 통탄한다. 


그렇다면 강교수가 주장하는 바 '소통 불능'에 빠진 언론이 스스로를 '언로의 죽음'에서 구제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가능성을 5월 3일 방영된 <시사기획 창>이 보여준다. 



샅샅이 훑어 본 19대 정치 자금 보고서
외람되게도 2016년 정치 개혁을 내걸은 이 다큐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이제 새롭게 열릴 20대 국회가 아니라 조만간 폐업할 19대 국회이다. 

<시사 기획 창(이하 창)> 탐사팀은 지난 4년간 19대 국회의원들이 쓴 정치자금 1448억원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국회의원은 한 명당 1년에 1억 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엔 최대 3억원의 정치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지난 4년간 19대 국회의원 292명이 쓴 정치 자금 내역서인, '정치 자금 수입 지출 보고서'를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 지난 3개월에 걸쳐 5만 3천여 페이지, 52만 4천여건의 정치 자금 내역을 데이터화하고, 분석했다. 

도대체 이런 긴 시간을 들인 정치 자금 분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건 다큐의 내용을 통해 명확해 진다. 

정치 자금이란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을 대신하여 국회에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십시일반 모아진 돈이다. 물론, 정치 자금과 관련하여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있었지만, 기본 취지는 그렇다. 그러기에 정치 자금은 국민들의 의혹을 살 일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사적인 사용이나, 부당한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창>을 통해 살펴본 국회의원들의 정치 자금 사용 내역은 웃프다. 가깝게는 자신의 아들과 딸, 혹은 아내 등 가족들이 벌이는 사업을 돕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서 부터, 단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빵집에서 빵을 사고, 새로 산 와이셔츠, 넥타이 값에 동창회비까지 정치 자금으로 유용된다. 심지어 과속 벌칙금까지 이 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엄연히 정치자금 법을 통해 사용될 수 없다고 명시된 동창회비까지 버젓이 정치 자금으로 낸다. 이런 국회 의원들이 292명의 19대 국회의원 중 204명이나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부적절한 사용 내역에 대해 제작진이 문의를 하면, 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이다. 어떻게 다 하나같이 '몰랐다'거나, '실수'이거나, 해당 관계자가 업무에 미숙해서 라고 답을 하는지. 국회의원들만이 아니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크건, 작건 정치자금 유용의 문제를 감독해야 할 '선거 관리 위원회'는 탐사 보도 팀이 데이터화한 내용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아니 뒤늦게라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취해진다 해도 '경고' 등의 말뿐이다. 모두가 다 알듯이 이제 지는 해가 되는 얼마 남지 않은 회기에서, 이제야 밝혀지고 경고를 받는다 해도 유명무실하다. 



사후 약방문을 통해 20대 국회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다. 
그런데 왜 뒤늦게라도 19대 국회의원의 정치 자금을 들여다 보아야 했을까? 그건 바로, 사후 약방문인 19대 국회의원의 정치 자금 사용 내역을 통해, 20대 국회의원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고비용'의 정치 자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치 자금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과 일부 언론들은 현재의 정치 자금이 비효율적이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상적 제도로, 결국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만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그럴까? <시사 기획 창>이 살펴본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사람이 쓰는 비용은 한 달에 천 여만이 넘는 세비를 비록하여, 사무실, 보좌관, 심지어 집기 사용에 필요한 비용까지 모조리 국가가 지원해준다. 영국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사물실을 운영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형편이다. 

무엇보다 정치 선진국이라 하는 영국은 2009년 정치 자금과 관련된 스캔들 이후,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정치 자금을 감시할 수 있도록, 각 국회의원이 쓴 자금들이 상시적으로 공개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쓴 자금을 데이터화 하여, 국회내 윤리 위원회에 제출하고, 이 윤리 위원회는 이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여, 감시를 일상화한다. 

이런 영국과 같은 제도에서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처럼 주차하기 편하다 하여, 대부분의 만남을 호텔에서 뻔질나게 하는 '갑'의 행태를 보일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4년 동안 쓴 자금을 차기 국회의원 선거 관리에도 정신이 없는 선관위에 4년이 지난 후 보고하는 형식에서라면 현재와 같은 '눈가리고 아웅'의 형태는 얼마든지 방조될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지적한다. 

결국 19대 국회의원 정치 자금 보고서를 통해 <시사 기획 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20대 국회의원의 활동 방향이자, 고비용 정치 자금의 현재의 정치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갑질' 행태가 문제가 되자,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세비를 비롯한 항목을 30% 삭감하겠다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여타 정치적 사안이 등장하자, 세비 삭감은 어느새 없었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여론이 비난의 방향으로 가면 삭감하는 모양새만 취하다, 잠잠해지면, 자신들이 자신의 세비를 20%나 삭감하는 몰지각한 행태를 여야 막론하고 벌이는 현재의 국회의 관습, 국회법, 그리고 선관위법에서는, 정치 자금의 유용과 고비용의 정치 자금 관행은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정치 개혁의 시작은, 지금껏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눈가리기 식으로 넘어갔던 '정치 자금'에 대한 새로운 입법, 즉 '갑'이 아닌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국회의원에 대한 법적인 새로운 규정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3개월에 걸친 정차자금 보고서 분석은 밝힌다. 

by meditator 2016. 5. 4. 07:01

엄앵란과 신성일은 60년대의 대표적 청춘 스타이다. 60년대의 청춘의 상징이었던 두 사람은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에서처럼 사랑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복받는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 이후의 이야기는 결코, 우리가 흔히 보듯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을 맺지 못했다. '스타'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혹은 무색하게 전국민이 두 사람의 별거와 그에 이르기까지의 속내를 잘 알수 있도록 '가쉽'성 기사를 양산해 냈다. 




황혼 이혼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의 뒤늦은 해후 
'황혼 이혼'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 말의 범용화의 의미는, 더는 '백년해로'가 미덕이 되지 않는 세상을 되었다는 것이고, 결국 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 들어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노추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미덕이 아닌 것이 된 세상에, 2016 휴먼 다큐 사랑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40년을 별거한 엄앵란 신성일 부부의 '결합' 이야기이다. 도대체 40여년을 따로 살아왔던 이 부부가 이즈음에 굳이 함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아내 엄앵란의 건강 상의 위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건강 검진 프로그램에서 유방암 검사를 받은 엄앵란은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건강하게 가정을 지탱해 왔던 아내의 뜻하지 않은 암 통보는 바깥으로 돌았던 남편 신성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에 남편은 남은 여생 아내의 곁에서 아내를 돌보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하지만 방탕한 남편의 귀의라는 미담으로 단순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남편의 의지는 뜻밖에도 '이제와서 무슨!'이라는 아내의 주저함이라는 벽에 봉착해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미 서로 떨어져 산지 40여년 세월, 바람에, 정치에, 그리고 영화를 한답시고 투자에, 당대 최고의 여배우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신성일의 아내로 살아온 시간은 여배우 엄앵란에게는 남편이 감당하지 않는 가정을 '가장'으로 이끌어와야만 했던 고난의 시간이었다. 비록 아직도 두 딸과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와 호적상으로 갈라서지 않고, 여전히 시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있지만, 부부로서의 믿음을 잃어버린지 오래, 거기에 사는 스타일마저 다른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산 엄앵란은 남편의 제안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런 남편의 제안에 맞춰 두 사람의 결합을 유도하는 방송조차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고. 

하지만, 방송과 신성일은 꾸준히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한다. 별거 이후 네 번째인 신성일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하고, 며칠에 한번 아픈 아내를 위해 보양식을 싸들고 찾아오고,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위해 장모님을 모신 절에 동행한다. 

결국 이런 남편과 제작진의 지극한 성의에, 아내 엄앵란은 지난 시간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자신에게 여전히 '기둥'이었음을 받아들이고, 의지할 의향을 보이며 방송은 마무리된다. 



'사랑'을 빙자한 노년의 환타지는 아닐까?
이날 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호사다마했던 신성일의 일생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남편 대신 가장이 되어 한 가정을 이끌어 왔던 전통적인 어머니 엄앵란이다. 
엄앵란은 여든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몸신이다> 등의 방송 패널로 활동 중이다. 심지어 다큐에서 보여진 유방암 수술을 하고서도 아직 채 완쾌되지 않은 노구를 이끌고 방송 출연을 재개한다. 그 이유는, 그녀의 일생이 남편이 돌보지 않은, 그리고 이제 여전히 자식들에게 용돈은 커녕,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여전히 그녀가 유일한 이유로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다. 심지어 자신이 죽고 난 뒤 자식들과 남편이 거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60년대의 대표적 여배우라 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엄앵란은 방송 패널로 나온 후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덕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입을 통해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젊은 세대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다시피한 내용들이었다. 주로 종편의 이야기 쇼를 통해 활약하는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엄앵란의 이야기는 그녀가 여자임에도 여자의 편에 서기 보다는 가장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당연시 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그리고 다큐를 통해 보여진 엄앵란의 모습은 그녀가 방송을 통해 풀어냈던 이야기들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남편이 방기한 가정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책임지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다시 방송에 서야 하는 노년의 가장이었다. 여전히 그녀를 지배하는 것은 그녀가 지켜내야 하는 가정, 심지어 그녀가 죽고 재혼을 해야 할 지도 모를 남편이었다. 당대 숙명여대를 다니던 재원으로 대중들에게 인텔리로 사랑을 받던 여배우는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 세대의 여성일 뿐이었다. 

단지 그녀에게 자유가 있다면, 여전히 재정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지만, 남편과 함께 살지 않을 자유였다. 바람잘날 없는 남편과 별거 이후, 남편은 남자의 손이 없어 아프게 되었다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맞게 편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과연, 이제와,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결초보은의 자세로 마음을 바꾼 남편과 40여년만에 한 집에 살아야 할까? 다큐는 여전히 남편을 '기둥'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아내 엄앵란의 정서를 강조하며 이 부부의 결합을 '사랑'의 미담으로 구색을 맞추지만, 오히려 '황혼 이혼'이 이상하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40여년을 떨어져 산 낯선 이들의 어색한 동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부부의 가정사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는 개별성의 깊이가 있겠지만, 40여년 바람처럼 스치듯 살고, 자식과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의 곁을 지켜봐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둥'이 될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남편의 결초보은은 꼭 이미 이혼한 딸과 손주들과 또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아내의 집에 들어가 사는 방식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인지. 아픈 아내에게 결국 은수저를 찾게 만드는 그의 잔소리와 같은 남편의 고집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별거 이후에도 행복한 부부상을 연출했던 두 사람의 지난 날처럼, 이미 허상이 되어 가는 '가족'과 부부'의 환타지를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부는 한 집, 한 방, 그리고 한 침대를 나누어야 부부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가에서는 부부가 담을 나누어 서로 다른 공간에 살아야 했던 것이 법도였던 시대를 살았었다. 별거 40여년의 부부를 아내의 투병, 하지만 이제는 방송 출연조차 가능한 아내를 위해 굳이 한 집에 사는 것을 '사랑'의 미덕으로 그리고자 하는 다큐에, 2016년의 '사랑'이 무엇일까?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by meditator 2016. 5. 3. 06:00

노장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가 다시 손을 잡았다. 1999년 두 사람의 인생작 <허준>과 2001년 <상도> 이후 15년만이다. 4월 30일부터 시작된 mbc창사 55주년 50부작 특별 기획 드라마 <옥중화>는 첫회 17.3%에서 시작하여 단 2회만에 20.0%의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을 보이며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찬사를 불러왔다. 




구관이 명관, 이병훈과 최완규의 콜라보 
허준으로 평균 시청률 48.3%를 보이며 '국민 드라마'를 탄생시켰던 두 사람이지만, 하지만 다시 상봉하기 까지 최근 행보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최근 최완규 작가는 2014년 <트라이앵글> 촤고 시청률 10.5%의 미미한 성적은 물론, 작품성에 있어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지 받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의 히트작을 리메이크한 2013년작 <구암 허준>은 일일 드라마임에도 최고 시청률 11.8%의 저조한 성적은 물론 스스로가 성취한 허준의 명예조차도 얼룩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병훈 감독의 경우, 최완규 작가와 <허준> 이후, 김영현 작가와 <대장금>을 통해 한류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이후에도 <동이>, <마의> 등으로 20%를 오르내리는 꾸준한 성적을 보였지만, 그의 이전 드라마가 가진 화려한 조명을 더 이상 받을 수는 없었다. 허준이나, 장금이처럼 여전히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주역으로 삼았지만, 스토리의 허술함과 느슨함은 이병훈 감독의 연출력으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이제는 '지는 해'가 되어가던 두 사람이 모처럼 손을 잡았다. 역시나 이병훈 감독이 해왔던 바, 입지전적인 인물 중심의 퓨전 사극이다. <대장금>으로 의학과 먹거리의 역사를, 그리고 마의를 통해 조선시대 수의라는 새로운 영역을 사극에 도입했던 이병훈 감독이 이번엔 그 이름도 생소한 조선시대의 감옥 '전옥서'를 배경으로 장금이 못지 않은 천재 소녀 옥녀의 탄생을 알린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인물 유형을 다른 배경을 통해 변주해낸 또 한편의 이병훈 사극이 최완규와 만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 장면이 무리의 군사들로 부터 도망을 치는 배부른 옥녀의 어미로 부터 시작되었듯이, 그리고 그 도망자 어미의 출생 장소가 다름아닌 '이승의 지옥'이라 불리워지던 '조선시대 교도소'이듯이, 출생 과정부터 비극적인 운명이 겹쳐진 여주인공 옥녀의 탄생은 이젠 이병훈 사극의 클리셰라 할 정도로 장소와 스토리만 다를 뿐 그 운명적 곡예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걸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단 1회만에 비극적 출생을 마무리짓고, 2회부터 비록 아역이지만 전옥서 다모로 활약하는 천재 소녀 옥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 속도감에서 50부작의 사극이 무색하게 박진감넘친다. 

또한 남성적 필치에서 독보적이었던 최완규 작가의 특색은 이전 김이영 작가와 함께 아기자게 하게 풀어내던 이병훈 감독의 연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가끔은 15세라는 연령 제한이 무색할 정도로 적나라한 추격씬, 대치씬 등이 천재 소녀의 미담을 넘어 극에 강약을 분명하게 준다. 이전의 김영현 작가가, <육룡이 나르샤>에서 보여졌듯이 사변적인 사관을 구체적 사건을 통해 풀어내고, 김이영 작가가 등장인물의 에피소드에 집중한 반면, 최완규 작가는 <아이리스(2009)>, <빛과 그림자(2011)>에서 보여지듯이 권력과 인간 군상간의 역학 관계를 역동적으로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바, <옥중화>는 1,2화를 통해 윤원형과 그 일가를 중심으로 한 명종 시대의 권력 구도를 중심으로 극의 갈등 관계를 분명하게 하며 시청자들을 흡인시킨다. 


이병훈의 클리셰에 최완규의 박진감이 더해져 
또한 이병훈 감독이 풀어왔던 사극의 방식도 결코 덜해지지 않는다. 사극인지 현대극인지 구분이 힘든 윤원형의 정준호, 정난정의 박주미 등의 연기를 사극의 감초 정은표, 맹상훈. 이세창 등이 감싸 안으며, 정통 사극의 김미숙, 임정하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이희도 등이 더해져, 가벼움과 무거움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때론 코믹하게, 그러다 결정적 순간에 감동을 주고, 거기에 극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가는 이병훈 감독의 특기가, <트라이앵글> 이후 와신상담했던 최완규 작가를 만나 새롭게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이병훈 사극은 최근 지지부진했던 퓨전 사극의 노정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종영한 <육룡이 나르샤>는 비록 동시간대 1위를 수성했지만, '퓨전'이란 이름으로 작가의 입맛에 맞춰 지나치게 역사를 자의적으로 주무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시작한 sbs의 <대박> 역시, 역사와 거기에 새롭게 해석한 작가의 해석이 따로 놀며 퓨전을 무색하게 만들며 초반 흥미진진했던 열기를 식히고 있다. 그렇게, '퓨전'이란 이름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는 영역에서 의문점을 남겼던 사극들이, '퓨전'이라지만, 어렵지 않고, 퓨전이라지만 역사를 자의적으로 덧대지 않은 영역에서 재미를 주는 <옥중화>의 등장으로 새로운 기대감을 준다. 

by meditator 2016. 5. 2. 15:12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하는 오늘날 우리가 역사적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modern'의 진보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근대, 혹은 현대적 삶이 '인간적 삶'을 핍박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가장 대표적으로 든 것은 '시계'이다. 우리가 챨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통해 익숙해진 시계, 정확하게는 시간에 지배받는 인간의 삶이, 넉넉하게 목가적 삶을 누렸던 중세적 인간을 톱니바퀴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꿰어 맞추어지면서 '상실'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근대의 시간과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노동'을 통해 꾸려지는 '가족'과 그 가족이 깃들어 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의로 도시로 온 사람들은 매일매일 시간에 맞춰 노동을 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음 날의 노동, 그리고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주어진 가정으로 돌아가 다음 날의 노동을 기약하게 되었다고 비관적으로 정의내린다. 



그렇게 하위징하가 정의내린 '시간', '관계', 그리고 '공간'은 오늘날 현대인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다. 핵가족을 기본 단위로 한 자본주의적 삶은 그 '관계'를 근저로 하여, 가족이 깃들어 사는 공간을 배경으로, 시스템으로 조직된 시간 속에서 펼쳐진다. '물질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이란 막연한 희망이, 개개인의 전망을 독차지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좀 더 많은 물질적 부를 획득하게 위해 경주한다. 특히나 성장 담론을 통해 6.25이후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낸 개발자본주의의 성공 사례 대한민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2016년 이제 자본주의의 성장은 둔화되고, 전세계적 불황에 휩쓸려가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한 성장 담론에 치여 더 나은 삶을 경주하는 개인들의 삶은 부작용으로 그득하다. 각자가 짊어진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짐으로 짖눌려 있다. <ebs다큐프라임>은 4월 25일부터 27일 방영된 <나를 찾아라>를 통해 이렇게 현대 사회의 삶에 질식해가는 '개인'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관계, 공간, 그리고 시간 속에 질식해 가는 개인들
이미 sbs스페셜을 통해 조명한 바 있는 황혼 이혼이 <1부 관계와 상처>를 통해 등장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를 꺼려해 밥조차 따로 먹는 결혼 40년차의 70대 부부 한창희씨네이다. 또한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만 하면 막말을 마다하지 않은 결혼 2년차의 정원희씨네도 '관계'로부터 상처받기는 마찬가지다. 왕따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긴 하지연도 마찬가지다. 

2부는 나와 우리를 짖누르는 '공간'이 등장한다. 하루종일 쇼핑을 즐기지만 정작 물건이 오면 뜯어보지도 않은 채 쌓아두는 임지호씨, '거절'을 못해 쓸데없는 물건까지 받아다 잔뜩 쌓아놓은 박소연씨, 아이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장난감을 무한정으로 사들이는 전태임씨, 이들의 발 디딜 틈없는 공간이 사람을 압도하는 주인공이다. 

3부는 시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 남상현씨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다이어리가 보여주듯 쫓기듯 시간을 쪼개 살고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남상현씨와 같은 자동차 세일즈맨이지만 최근 슬럼프에 빠져있는 정태선씨도, 쇼호스트 일 틈틈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군분투하는 정스라씨도 '시간'에 지배당하기는 다르지 않다. 



sbs스페셜이 황혼 이혼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집중을 하는 반면 <나를 찾아라>는 그런 위기에 봉착한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다. 물론 그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진단은 전제되어 있다. 결혼 40여년이 되었지만 그저 남편은 바깥에 나가서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창희씨나, 애초에 결혼에서부터 속았다고 생각했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밥까지 굶으며 참아왔지만 이제 남편의 폭언으로 아들마저 세상과 담을 쌓게 되자 그간 쌓인 분노가 폭발한 한창희씨의 아내의 문제는 '황혼 이혼"에서 이미 본 바 있는 우리 사회 가부장제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흔적은 3부 시간에 쫓겨사는 남상현씨와 정태선씨에게서 여전히 그 잔재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변화하는 시대 속에 새롭게 요구되는 부부상의 엇갈림은 정원희 부부에게서 등장한다. 남창희씨나 정태선씨의 가정 속 모습도 이젠 한창희씨네처럼 인내로 해결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을 소홀히 하고 싶지않다는 정스라씨의 동동거림은 우리 사회 가족의 또 다른 모성주의의 현실이다. 

나를 돌아봐, 그리고 나를 찾아줘 
이렇게 현대 사회 속 개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총망라하며, 그것을 '관계', '공간', '시간'을 통해 풀어낸 <다큐 프라임>은 그 해법을 '개인'을 통해 해결해 가고자 한다. 

결혼 40년의 원망이 남편에게 퍼부어진 한창희씨의 아내, 하지만 다큐는 그런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신에게 돌아보는 것으로 돌려낸다. 남편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간 나의 삶에 어떤 부재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귀결되었는지 살펴보는 '심리'적 해결방식이다. 결국 타인과의 문제 해결의 원인이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공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쌓여진 물건들을 함께 정리하며, 그렇게 물건을 쌓아두게되기가지 개개인에게 발생한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고 치료하고자 한다. 시간에 쫓긴 개인들을 핸드폰을 수거하고 홀로 남겨진 방에 두어 그들의 우울감과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는 것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개인의 문제를 우선시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심리 실험과 부부 상담, 수면 치료 등 다양한 심리적 치유 방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심리적 실험과 치유의 귀결점은 개인을 둘러싼 여러 상황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 여정을 통해 자신과 자기 주변을 들여다보게 된 개인들은 자신에게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할 주체적 능력을 찾아간다. 한창희씨의 아내는 남편의 진심어린 사과 앞에 자신을 눙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고, 구제할 길 없는 쇼핑 중독은 쌓아놓은 물건과의 이별로 이어진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던 사람들은 진짜 자신이 놓쳐서는 안될 것들을 돌아다보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3부작 <나를 찾아라>에서 등장한 개개인 혹은 가족 간의 문제는 아마도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나 하나 이상씩은 공감할 문제들이다. 다큐는 이런 누구가 공감할 문제들을, 자아 상실이라는 원인에서 찾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찾아가는 심리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물론 그런 문제들이 기저에 깔고 있는 여러 사회 경제적 혹은 사회 변화적 요인들을 '심리' 제일주의로 귀결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문제의 해결 방식을 '자아'를 통해 시작하는 방식은 주목할 만 하다. '자아'라는 말조차 생소해지는 시절에는 더더욱. 
by meditator 2016. 4. 28. 17:48

세월호 이후 다수의 드라마들이 어긋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한다. 그 방향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람사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변형된 로맨틱 멜로<태양의 후예>마저도. 결국은 사랑꾼이었던 유시진의 입을 빌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무릇 국가라는 전체보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가 본래적 의도가 어떻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맘도 흔들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맘도 흔드는 사상적 정체성에 애매모호함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 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적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드라마들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진행시킨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 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를 달리해도 한결 같다. 1980년에서 90년대를 살아냈던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그리고 이제 한때 잘 나가던 검사였던 조들호(박신양 분)든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하지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은 화성 살인 사건, 홍제동 살인 사건 등에서 이제 거대 자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을 밟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에서 그저 하나의 사건이나 패배로 끝난 기록들을 복기하고 새로이 써간다.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비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제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싸움의 방식은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아직 결론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환타지이다. 뿐만 아니라 환타지라지만 현실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을 드라마를 통해 복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전복을 시도하고자 하는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의 방식에 고민한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처럼 작가는 작정하고 썼지만, 그 작정하고 쓴 대사들이 당국자들조차 감동시키는 광범위한 보편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고, <리멤버>처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에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형국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통쾌한 선을 선보자니 <동네 변호사 조들호>처럼 실소가 나오고 마는 어설픈 기승전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원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놓여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일신상의 입신양명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심지어 사전 제작이었음에도 아쉽게도 유시진의 멋짐에 편향되어 버렸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출세의 지름길인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주제는 아들의 전쟁이고, 유승호의 미모에 기댔지만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은 초반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 민 분)의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이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하여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통쾌한 반란으로 꾸려져 가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여긴 집요한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은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그리고 그 편에 기꺼이 함께 설 '사람들'이 필수다. 매 사건마다 '미담'이나 '감동 스토리'로 귀결되는 어설픈 법정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들호 앞에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서 그 해결의 키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 사람의 '변심'이 아니고서는 결국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고 드라마들을 입을 모은다. 




비행기 테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인간의 선의 
이런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이제 종영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비록 안타깝게도 최근 불거진 드라마 공모전과 관련된 '표절' 논란이 안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에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내세운 문제 제기와 의식은 가치가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도 최근의 여느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자각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k그룹의 기업 협상가로 잘 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는 경찰 무선을 따던 주성찬이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 드라마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협상'과 '대화'를 내걸었던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이었다. 그를 밝히기 위해 철거 현장의 총알받이로 차출된 전경 윤희상(유준상 분)이 도심 테러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15,6회 비행기 테러까지 자행한다. 



13년전 일어났던 철거 현장의 무모한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던 당사자들을 하나씩 밝혀가며, 그뒤에 k 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향한다. 마치 법정에서 소환되지 않는 증인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양은냄비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환타지 노선으로 급회항한다. 그토록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상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한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되었고,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길어진다는 것을,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6. 4. 27. 13:14

고담시를 지켜왔던 배트맨과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이 싸운다. 이른바 '정의'의 가치를 두고 싸우는 '저스티스 리그'란다. 그런데 두 영웅도 부족해서 떼거리로 편을 먹고 싸우겠단다. <캡틴 아메리카; 시비 워>가 그렇다. 지구를 지키던 영웅들이, 각자가 가진 트라우마와 가치관의 혼돈으로 오히려 지구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렇게 영웅도 고민하고 고뇌하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우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우리를 구하러 나타나는 수퍼맨은 영화에서 봤던 그들이 아니다. 사람인 소방관들이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이 사회는 그들에게 영화 속 영웅들보다도 더한 짐을 지운다. 차마 인간의 영역으론 감당하기 힘든. 


소방의 날은 11월 9일이다. 소방의 날도 아닌데 4월 24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슈퍼맨의 비애- 소방관의 sos>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의 사각지대로 보야야 할 열악한 소방관의 현실을 우리가 소방관을 부를 때 사용하는 119번 대신 119명의 소방관들의 속내를 통해 털어놓는다.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아이들과 함께 죽고 싶어요'

'희망 tv'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네이션에 참여했던 류수영이 눈물을 흘리는 소방관으로 분한 모습으로 시작된 다큐, 거기서 만난 소방관들은 사고가 일어나는 현장 그 어느 곳이나 나타난 현실의 슈퍼맨이 된 영웅들이 아니다. 이제는 영웅의 무게 대신에 자신이 겪었던 상처와 가치관으로 인해 고뇌하는 영화 속 영웅들처럼, 첫 출동 현장에서부터의 기억조차 켜켜이 자신 속에 쌓아둔 상흔이 깊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현실의 슈퍼맨, 소방관의 정신적 고통 
이미 우리는 각종 뉴스나 사건 등을 통해 지방직 공무원인 소방관이 자신의 안전 장비를 자신의 돈으로 사서 충당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에 대해 접한 바 있다. 그러나 다큐는 말한다.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은 사고 혹은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미흡한 안전장비뿐 아니라고. 매년 소방관의 날, 미국에선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방관들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대통령이 나와 한 해 동안 순직한 소방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된 소방관과 달리, 우리의 현실은 퍼레이드는 커녕 겨우 200여 명의 관계자가 모인 초라한 기념식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다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사고 현장에서 미흡한 장비, 열악한 사회적 처우, 그 모든 것들을 넘어, 현재 국민 안전처 조사 통계 상 최근 5년간 순직 27명, 그 배를 넘는 자살자 41명의 현실을 다룬다. 심지어 2015년에는 순직한 소방관의 수에 여섯 배에 달하는 소방관들이 자살을 했다. 그리고 드러난 통계 아래 100명 중에 한 명은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405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 최고 감정 노동자 소방관들이 있다. 

소방관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소방관 예비 후보생들 그들의 정신 건강을 조사해 보면 그들은 또래 젊은이들보다 그 누구보다 건강한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청년들이 소방관이 되어 맞닦뜨린 현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터뷰에 응한 119명의 소방관들, 그들 중 상당수가 첫 출동에서 마주친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구하지 못한 아이, 할머니, 그리고 신체가 훼손된 사상자들을 마음의 준비없이 마주친 소방관들은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사고 현장으로 출동을 거듭하며 마음의 상처를 키워간다.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그들의 직업이, 현장에서 누군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고통으로 고스란히 쌓여가며 자기 자신을 상처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고통은 자기 자식에 대한 학대나 자살 충동으로, 그리고 결국은 현장을 떠나거나 소방관이란 직업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늪으로 소방관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고통에 대해 사회의 반응은 냉정하다. 사람을 구하는 그들의 직업을 당연하게 여길 뿐아니라, 주취자의 폭력이나, 이유없는 감정적 반응, 심지어 출동 현장에서 불가피한 재산 손실까지 따져묻는 이기적 행태 등이, 사회의 슈퍼맨 소방관들의 자부심을 갈갈이 찢어버린다. 출동 현장에서 문을 파손하는 대신, 더 위험한 고공 줄타기를 감수하도록 하는 현실이 바로 소방관들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하늘나라에서는 소방관 하지 마. 우리 이제 소방관 하지 말자...” 



뿐만아니라 2001년 홍제동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여섯 명의 소방관들처럼, 현장에서 사고로 동료들을 잃는 경험도 소방관들에겐 치유되지 않는 상처다. 함께 생활했던 동료나 선배들을 사고로 잃는 고통도 무색하게,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처리해야 하는 마무리까지 하는 그 직업적 아이러니가 소방관들의 고통을 더 깊게 한다. 

감정 노동자로서의 소방관의 인권
이렇게 출동 현장에서 만난 예기치 못한 죽음, 그리고 동료를 잃은 충격 등은 치료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우울증을 넘어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안그래도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소방관들은 그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까지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다큐는 밝힌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해마다 늘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줄어든 소방 예산은 소방관들의 정신 건강을 돌볼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사 결과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인 소방관들의 70%가 치료를 거부한다고 한다. 즉 상당수의 소방관들이 소방관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신적 부담을 혼돈하거나, 자신들이 안고 가는 정신적 부담을 소방관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그로 인해 승진 등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소방관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국민 1300명의 현실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 

4월 24일 방영된 <슈퍼맨의 비애-소방관의 sos>는 인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소방관의 직업을 당연시 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 저 너머에 신음하고 있는 소방관의 인권을 끄집어 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사회적 복무가 그 일이 된 직업군을 '감정 노동자'로 규정하고, 직업적 자부심과 직업적 부담을 분리하여, 한 개인의 고통으로 치환된 소방관의 정신적 고통을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는 곧 사회, 혹은 집단이라는 전체가 우선이 되어왔던 우리 사회의 지난 시절의 사고 방식, 시스템을 반성하는 진지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영화 속 슈퍼맨에 열광하고, 그들의 고뇌에 공감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슈퍼맨들의 현실도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다큐는 간곡히 설득한다. 바로 이것이 현실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인권'이다. 







by meditator 2016. 4. 25. 14:46

4.13 총선이 치뤄졌던 그 주말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여 <세타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 문서>를 방영했다. 이 방송을 통하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가 국정원이 관리하던 배였으며, 사고가 일어 난 후 해경 및 청와대는 승객들의 구출보다는 vip에 대한 보고가 우선이었다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렸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건 2014년,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에야 방송을 통해 숨겨졌던 의혹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본 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며칠 전 치뤄진 총선에서 현재와 다른, 선거날 당일에도 빨간 색을 입고 투표장을 향하던 vip의 노골적인 마음에 드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과연 16일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방영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진실의 포기가 강요된 기자, 괴물이 되다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언론'에 투신한 젊은이가 세월의 때를 묻히며 '정권의 나팔수'나 '개'가 되어가는 건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라고 <피리부는 사나이>는 말한다. 일개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딜'을 통해 나이트 라인 앵커가 되는 것이 '출세'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를 마비시키는 테러범들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는 길고 긴 여정을 에돌아 14에 이르러 비로소 이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된 다음 날 이 충격적 보고에도 불구하고 포털엔 이 프로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리트윗이 안되거나, 검색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기사도 등장했고, 검색어 연관도 되었다지만, 여전히 다큐의 충격적 진실이 세상에 펼쳐지기엔 어쩐지 언론의 반향이 적극적이지 않다. 드라마의 '한류' 기사는 너도 나도 하루에 몇 수십 개씩 쏟아내는 거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적은 수이다. 

윤희상도 그랬다. 14회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듯이 그는 용산 참사가 연상되는 13년전 철거민 참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의 일원이었다. 이젯 갓 대학에 들어가 전경으로 차출된 그는 철거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곤봉을 두들겨야 했던 청년이었다. 철거민이 있는 곳에 올라가 피 흘리며 쓰러진 철거민들과 부모를 잃고 절규하는 어린 여명하(조윤희 분)를 보고 주저앉아버린 순수한 젊음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어린 명하에게 기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약속했던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배경으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앞세워 13년전 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도시 테러를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의 신념은 변함없지만, 그 신념의 실현이 여명하 말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서건일과 다르지 않은 배후 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거민들의 목숨을 삼켜버린 가해자가 된 청년, 그 청년은 그 '가해'의 트라우마를 '진실'을 알리는 것으로 갚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에서 헛발을 짚었듯이 피해자 가족도, 피해자도, 피해자의 연인도 아니었지만, 그저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젊은 청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을 '기자의 사명감'으로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언론'의 현장에서 맞닦뜨린 것은 '정권의 시녀'로서의 '막힌 언로'였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그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로 시대의 비극에서 비껴설 수 없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설정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나 순수했던 첫사랑을 간직했던 청년 영호(설경구 분)는 5.18 진압군으로 복무한 이후 윤희상과는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연인을 망가뜨려 버린 그는 결국 막다른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렇게 영호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갔던 것에 비해,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헌신한 윤희상은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방식, 하지만 수세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방식이다. 

13년이 지나, 여러 사람의 희생을 바치고서야 알려진 진실
'진실'을 알리겠다고 명하에게 약속을 했던 청년은 13년이 지난 후에야, 경찰들이 들이닥칠 스튜디오,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될 나이트 라인의 마지막 멘트에서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잡히기 직전이 아니라면, 그에게 방송국에서의 입지가 좀 더 남아있었더라면 그의 약속은 어쩌면 더 지연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비로소 발설한 13년의 진실을 위해, 그는 주성찬(신하균 분)의 애인과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 그리고 결국 자신의 수족이었던 정수경(이신성 분) 등의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런 도발이 없었다면, 과연 13년전의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났을까 란 질문이 돌아온다.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진 용산 참사를 비롯하여, 이제 세월호의 진실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신의 방송을 잃었던 여러 언론인들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미처 다하지 못한 임무를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말하고자 애쓴다. 19일 방영된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아동 학대 사건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선 조들호(박신양 분)는 다수의 침묵에 대해 소리높인다. 분명 유치원 비리 내부 고발자 보복 사건인 아동 학대 사건,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침묵'에 진실은 덮여진다고 말한다. 다수의 침묵이 바로 진실을 덮게 되는 것이라고 법정의 방청객,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한다. 

물론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는 슈퍼맨같은 조들호의 활약과, 그의 진심에 사람들은 쉬이 감복하고, 법정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 용이한 감동이, <피리부는 사나이>로 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한 청년의 진심이, 13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리고 여러 사람의 희생이 더해진 도심 테러 사건으로 변한다. 법정에서 조들호의 호소는 속시원했지만, 그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진실을 알리려는 움직임은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힘들 정도로 침울한 시대라고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by meditator 2016. 4. 20. 05:54

최근 전 사회적으로 '당'의 과도한 섭취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먹방의 범람에 이은, 쿡방 열풍이 사회 전반에 '먹거리'에 대한 '탐닉'을 무방비하게 만들고, 사회적 성취로 도달하지 못한 개별화된 사람들의 열망은 가장 용이한 '먹'는 열망으로 이어져 '탐식'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한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탐식'의 중심에 있는 과도한 '당'의 섭취에 대해 황교익 씨 등의 맛 칼럼니스트와, sbs 스페셜 들의 다큐 등이 중심이 되어 꾸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한동안 붐을 이루던 무방비한 '탐식'의 열풍은 이제 자기 점검에 단계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심지어 된장 찌개에 까지 설탕을 넣어 먹는 최근의 당의 과도한 섭취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었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먹던 설탕 등을 줄이면 우리의 당섭취는 줄어들게 될까? 




이에 4월 11일과 18일 2부작에 걸쳐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밥상, 상식을 뒤집다-탄수화물의 경고(이하 탄수화물의 경고)>는 그저 설탕을 줄이는 것만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당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탄수화물의 경고>란 제목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다큐는 우리가 섭취하는 탄수화물이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돤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탄수화물이야!
성인 기준 탄수화물의 최저 섭취량은 100~150g이상, 성인의 하루 권장량은 281.9g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남녀 1000명을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65% 이상이 과잉 섭취, 그중에서 9%는 중독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하루 권장량의 두 배 이상이 넘는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있는 밥, 국수, 빵등 대부분이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절대 필요한 영양소이다. 뇌를 비롯하여, 장기, 적혈구의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냥과 채집에만 의존하던 인류가 농사를 지으면서 문명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안정적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인류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 발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진 탄수화물이 하지만 현대에 와서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나 중독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다큐는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할 경우 성인병은 물론 암과 혈관 질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성인병의 원인을 과도한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에서 찾았는데, <탄수화물의 경고>는 그 상식을 뒤집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주장을 위해 탄수화물 중독에 가까운 네 명의 사례자를 등장시킨다. 하루 종일 빵등을 입에 달고사는 22세의 대학생, 야식을 참을 없는 국수예찬론자,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마지막은 밥 한 공기로 마무리지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주부, 하루 일과의 끝에는 맥주를 빼놓을 수 없는 외식을 주로 하는 직장인 등, 우리, 혹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현대인의 전형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건강 검진 결과 이들 4명 모두 당뇨는 물론, 콜레스테롤, 지방간, 중성 지방 등에서 위험한 수치가 드러났다. 이에 다큐는 4주라는 기한을 두고 이들에게 '탄수화물 줄이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처음 탄수화물 줄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 4명은 공통적으로 흰 밥 대신, 잡곡밥을 먹는 등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은 물론, 그 구성에서도 차별화를 가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다이어트란 생각에 대뜸 먹는 양을 줄이거나 대부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 이들은 고통을 받는다. 심지어 탄수화물 금단 증상으로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거나 우울해 한다. 

이에 제작진은 무작정 먹는 것을 줄이거나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공복감에 시달리는 네 명의 사례자에게 권장 식단을 제시한다. 제작진이 제시한 것은 그저 무작정 굶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제한하되, 그 부족분을 다른 영양소로 채우는 일본 에베 코지의 당질 제한 다이어트 식이었다. 즉, 탄수화물은 줄이되, 그 공복감을 각종 채소와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육류, 생선들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열 사람 중 여섯 사람이 당뇨로 고생하는 일본에서 10년전부터 꾸준히 주장되어 방식으로, <sbs스페셜-콜레스테롤을 허하라>를 통해 등장한 하버드의 채소 50%, 단백질 30%, 탄수화물 20%의 식단과 일맥상통한 방법이다. 

편중된 식습관을 개선하라 
물론 처음 먹는 잡곡밥 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작정 굶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 부족분을 포만감을 주는 다른 영양소로 채운 당질 제한 다이어트로 4명의 사례자들은 한결 순조롭게 4주간의 실험 기간을 마쳤다. 이후 실시된 건강 진단 결과, 놀랍게도 4명은 모두 한 달 전과 비교해 체중 감량은 물론 건강 상에 문제가 되었던 당뇨, 콜레스테롤, 중성 지방, 지방간 등에 있어 한결 나아진 상태를 보였다. 즉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건강 상의 적신호가 줄어든 것이다. 


사례자들의 결과는 탄수화물이 문제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우리 사회 상당수의 성인들의 건강상의 문제점은 그 무엇보다 우리 사회 편중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탄수화물의 과잉 섭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성인병 및 각종 현대 질병의 상식을 뒤짚는다. 또한 다큐는 이미 다각도로 실천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보여주며 개인의 결단을 넘어 사회적 실천 양식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매식 등의 생활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편의점에 진열된 저탄수화물 빵등이나, 가정으로 배달되는 저탄수화물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작진이 권장 식단을 제공해도 대부분 외식을 하는 직장인이 그 내용을 따라하기 힘든 우리 사회 현실과 대비된다. 

물론 탄수화물은 필수 영양소다. 필수인만큼 하루 20g 이하로 섭취했을 때 우리 몸의 균형이 깨지는 등 부작용도 드러난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국민이 두 배 이상의 탄수화물 섭취를 해서 각종 성인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탄수화물의 경고>는 <설탕 전쟁>만큼이나 시의적이다. 

by meditator 2016. 4. 19.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