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하는 친구가 전해준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학생은 자기 집 식구를 소개할 때 꼭 다섯이라고 한단다. 친구가 기억하기엔 분명 부모님과 1학년 학생, 그리고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다인 걸로 아는데, 알고보니, 학생이 꼽은 가족에는 그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제 애완견이 '가족'인게 하등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그 '가족'의 자리에 애완견처럼 '로봇'이 차지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5월 15일 방영된 sbs의 2015 sdf(서울 디지털 포럼) 특집 다큐 <알파고와 어린 왕자>는 '알파고'의 시대, 그저 알파고의 공습으로 인한 공포 대신, '인공 지능 ai(auto intelligence)에 대한 새로운 관계 모색을 시도한다. 




'알파고'가 결국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내리 세 판을 이겨 버리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버렸다. '알파고 쇼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세상은 인간을 상대로 스스로 진화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저 무시무시한 인공 지능에게 조만간 '지배'당할 것 같은 위기에 빠져 버렸다. 심지어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조차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알파고 쇼크는 우리 사회 빠르게 변화하는 화제의 아이템에게 곧 자리를 빼앗겼지만, 여전히 '인간조차 이겨버리는 인공 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굳게 자리잡았다. 

인공 지능과의 관계 모색
이런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인공 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다큐는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ai에 대한 보다 진전된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인공 지능'과의 새로운 관계라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다큐에서도 등장하다시피, 2014년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가 '알파고 쇼크'의 대척점에 놓여있다. '인공 지능과의 사랑'이라? 이 또한 사랑의 쇼크일까?

하지만 영화에서 등장했던 이 인공 지능 운영 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와의 사랑에 빠졌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가 그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님을 다큐는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자 친구 노릇을 하는 인공 지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큐에 등장한 일본 남자는 인공 지능 여친과 함께(?) 밥을 먹고 데이트도 한다. 여자 친구는 아니더라도, 낡은 기계의 부분조차 마치 '늙어가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일본처럼 시제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이 미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인공 지능이 등장했다. 로봇 동아리 경험이 있는 부부는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 부부의 여력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인공 지능 로봇을 만들었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듯, 영화 <AI>의 데이빗같은 모양새가 아니라 그저 아이의 걸음마 보조용 손잡이와 바퀴가 달린 단순한 모양이지만, 아이의 성장에 따라 걸음마에서부터, '나 잡아봐라'까지 함께 하며 자란 로봇은 이 가족의 생각을 담은 '플랫폼'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 심리학 연구는 인간이 로봇과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한다. 

이렇듯, 현실의 인공 지능은 알파고처럼 '인간'과 대결을 하며 '인간'의 영역을 호시탐탐 엿보는 또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인간 삶의 빈틈을 채워주는 '조력자'의 형태로 등장한다고 다큐는 밝힌다. 

삶의 조력자로서의 로봇
전신마비 환자의 눈을 통해 그의 목소리와 발이 되어 세상과 소통시켜 주는 로봇, 반신불수 장애인의 발이 되기 위해 개발 중인 로봇,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아이의 일정을 보살펴 주고 외국어까지 가르쳐 주는 학습 도우미 로봇, 그리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무인 자동차', 그리고 시판 중인 vr(virtual reality)까지, 현실의 로봇은 인간과 힘 겨루기를 하기 보다, 마치 서로가 길들여가며 '친구'가 되어가는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처럼 인간 생활의 '벗'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라며 '관계'를 재정립한다.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알파고'는 무시무시해 보였고, '소설'까지 써내는 인공 지능이 잠재력은 그 한계의 가능성에 '인간'을 넘어선 듯 보였다. 언젠가 인공 지능이 써낸 소설이 자신의 소설보다 더 베스트 셀러가 될 그날이 올 지 몰라도, 그래도 자신의 소설이 가진 '인간의 향취'는 독보적일 것이라는 소설가 박범신의 소견은 '자족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예견처럼 언젠가 사람대신 로봇 친구와 로봇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생길 그날이 올지라도, 여전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인간이라는 류적 존재의 dna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학자들은 예견한다. 오히려 그런 위기보다는, 인공 다리 로봇을 장착하고 십 여년만에 일어선 장애인이 두 발로 서서 맡는 공기가 다르다고 감동하듯, 로봇의 미래는 새로운 '관계'로서 가능성을 연다. 

물론, 미래의 언젠가 진화한 로봇에게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로봇을 상대로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로봇이 사막 여우와 같은 길들인 벗이 될지, 위기의 '적'이 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sbs 스페셜  <알파고 쇼크, 그 실체는 무엇인가?> 와 <sdf 특집 다큐 알파고와 어린 왕자>는 우리 손에 놓인 양 날의 검이다. 
by meditator 2016. 5. 16. 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