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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 17, 18일 밤 9시 50분, 이어 일요일 밤 8시 15분부터 연달아 ebs 다큐 프라임 3부작 <공부의 배신>이 방영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대입, 그리고 대학생, 취준생까지 우리 사회 공부하는 청춘의 적나라한 현실을 그린 이 다큐는 <결국 꿈 포기한 나, 꿈을 꾸는데 자격이 필요한가?>, <ebs <공부의 배신>의 배신>처럼 다양한 당사자들의 반응처럼 시의적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입시 현실을 겪은 당사자들은 어쩌면 다 알고 이미 경험하고, 경험했던 현실이지만, 막상 이를 3부작으로 모아놓으니, 그 적나라함에 등골이 오싹해 질 정도다. 우리가 결국 이런 사회에서 공부를 한다고 발버둥치고, 내 자식을 그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가 싶은 마음에. 한 마디로 학교 선생님들이나 입시의 당사자들은 <ebs<공부의 배신>의 배신>처럼 아이러니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지만, 과연 3부작 전체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개천의 용은 개뿔!이다.
3부작으로 완결된 <공부의 배신>은 중고등학교에서 부터 시작하여 취준생까지 '공부'로 승부수를 띠우고 있는 우리 사회 경쟁의 현실을 까발린다.
명문대를 가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정해진다
1부 <명문대는 누가 가는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지방 소도시 익산의 전교 1등 중학생 예원이는 그다지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자사고를 가기 위해 불철주야 공부중이다. 하루 두 시간을 자면서 손이 부르트도록 공부를 해 학교에서 전교 1등은 따놓은 당상이지만 예원이는 늘 초조하다. 자사고 입시야 어떻게든 통과한다지만 과연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원이의 불안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죽도록 공부해서 자사고에 입학한 예원이가 받아든 성적표는 전교 300등 밖이다. 이른바 자사고의 바닥을 깔아주는 성적이다. 이미 초등학교 이전부터 온갖 사교육을 선점한 아이들에게 예원이가 당해낼 바가 없다.
그런 예원이의 처지를 잘 아는 건 특목고에서 바닥을 깔아주는 민기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했던 민기, 하지만 과학고에서 민기의 공부는 도통 힘을 쓰지 못한다. 사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민기는 제 아무리 수학 등에 시간을 투자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그에게 공부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경사진 계단'이다.
그래도 민기나 예원이나 죽어라하고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고등학교 별 입시 결과 때문이다. 일반고를 다니는 정민이는 집에 와서도 긴장이 풀릴까 교복을 벗지 않고 공부하지만 내신 한 등급 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건 공부만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수상 실적이나 비교과 성적이 미흡한 정민이는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일반 학생일 뿐이다.
특목고와 자사고와 일반고 사이에는 수학, 영어 평균 40점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바로 학부모의 소득 차이이다. 특목고 학부모와 기초수급 대상자 가계 소득은 월 500만원 차이가 나고, 실제 대학생들의 수능 성적은 소득에 따라 43점 이상 차이가 났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 수록 명문대 진학율이 높은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경쟁과 계급을 내재화시키는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로 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2부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가 들려준다. 이미 고등학교에서부터 서열이 정해진 아이들의 현실은 대학에 와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수시 전형 200여 개의 대학 입시, 그 다양한 전형의 통과는 곧 정보력이고, 정보력은 부모의 소득과 맞물려 얻어진다. 같은 대학을 다니지만, 학생들은 서로의 입시 성적에 따라 벌레 충자를 붙이며 서로의 서열을 매긴다. 특목고, 자사고 출신들은 자신들의 출신을 학교 점퍼에 새기며 떵떵거리는 반면, 기회균등 입학생은 곱지않은 시선 속에 수그러든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른 시스템 속에서 많은 것들을 선행 학습한 동기들에게 일반고 출신들은 주눅들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그저 공부만 해서 대학에 온 학생들은 자신들은 듣도보도 못한 갖가지 특혜를로 손쉽게 입학한 동기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박탈감은 시작일 뿐이다. 출신고별, 그리고 취직이 잘 되는 과별, 심지어 강의로 인해 끊임없이 재단되는 차별들이 입시 전쟁을 치루고 한숨 놓을 사이도 없이 학생들을 휘몰아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 잘 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을 좋은 환경과 갖가지 특혜로 나누던 그 차별의 관습은 대학 사회에서 보다 확대 재생산될 뿐이다.
꿈조차 버거운 대한민국
집값이 차이가 나는 서울의 두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장래의 꿈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결과, 강남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의사, 검사 등 전문직종을 대답한 반면, 그 보다 소득이 낮은 지역 학생들은 요리사, 미용사 등 기술직을 선호했다. 뿐만 아니라 강남의 초등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향한 행로에 대한 구체적 시뮬레이션조차 제시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꿈조차 달라지는 대한민국.
그나마 꿈이라도 꾸면 다행일까? 10대들은 이미 안다. 배신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공부'나 '노력'이 성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재력', 부모님빨'이 미래의 성공, 혹은 꿈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라 답한다. 그리고 3부작의 다큐는 입시생들로부터 대학생 취준생들까지 학생들의 대답이 빈말이 아님을 낱낱이 그려낸다.
대학, 그것도 스카이나 그에 버금가는 대학에 갔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다니는 선혜, 하지만 지금은 휴학생이다. 그나마 고등학교까지는 잠이라도 줄여 입시관문을 통과했지만, 대학에 와서는 그런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대학원에 가서 사회학자가 되고싶지만, 당장 학비 마련도 못해 휴학을 거듭하는 현실에서 그런 미래는 요원할 뿐만 아니라 불투명하다. 서강대 졸업생 만길이의 현실도 퍽퍽하긴 마찬가지다. 피디가 되고 싶지만 하루 서너 시간 자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생활을 견딘 만길에게 기업들이 요구하는 스펙은 무리이다. 하루 30만원이라도 있으면 취업 준비에 매진할테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
3부작 <공부의 배신>이 증명한 것은 '미움을 넘어 '증오'를 배태하는 경쟁 사회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그 경쟁 사회의 현실이 처연한 것은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경사진 계단'이라 칭해지고, '포기'를 부르는 고착화된 계급 자본주의 사회이다. '금수저'라는 말이 일상화된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내가 경주한 노력이, 누군가의 가진 것으로 인해 쉽게 버림받아지는 상처의 경험이 일반화된 사회, 애초에 경주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사회에서, 공부는 어느 학교 선생님 표현처럼 그럼에도 유일하게 배팅할 수 있는 칩이지만, 점점 더 그 배팅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거나 희박한 승률을 보여주는 무모한 도전이 되는 사회를 다큐는 증명한다.
역사를 배우며, 고려 시대 귀족 사회의 자제로 아버지의 벼슬에 따라 자연스레 관직에 나가는 '음서' 제도를 배우며 쯧쯧거렸다. 그러나, <공부의 배신>이 증명해 낸 것은, '경쟁'과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된 또 다른 계급 사회 대한민국이다. 결국 말로는 '노력'이라하고, '경쟁'이라 하지만 애초에 서로의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한 레이스에서 수많은 학생들은 자신을 '노력'으로 가학하다 배신당하고 증오에 치떨게 만들고 낙오자로 스스로를 낙인찍도록 만드는 귀족 사회 고려보다도 더한 서열 사회의 민낯이다. 결국 고려는 그 불공정한 '음서'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 내지 못한 채 무너져 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공부의 배신>을 보고, 그러니 너희들은 낙오되지 않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과 우리 공부 열심히 하자는 학생들이 있는 한 아직 이 견고한 계급 사회는 쩡쩡하게 버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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