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나이 오십에 이르러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 오십대의 남자들은 하늘의 뜻을 알기는 커녕, 평생 그들이 믿고 살아왔던 뜻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바로 이제 '가정'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들 때문이다. 




'정말 이혼이란 건 생각도 안해 봤어요. 낼 모레면 60이고, 조금 있으면 7~80인데, 이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박승호(가명)

그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혼이 중년 남자들에게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 10명 중 아홉 명이 아내로 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전체 이혼 건수에서 중년의 이혼이 젊은 층의 이혼을 뛰어넘은 지도 오래, 1995년 8.2%에 불과했던 중년의 이혼이 2015년 29.9%로 늘었다. 그리고 그 대다수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라 한다. 

<sbs 스페셜>은 중년 이혼의 현실을 밝히기 위해 이혼 위기에 놓인, 혹은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한 남성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58세 배정효씨는 은퇴 후 전원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의 전원 주택에는 아내가 없다. 그는 어머니가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고 질색을 하던 주방에 들어가 홀로 끼니를 챙긴다. 그곳에 부재한 그의 아내는 일산에서 홀로 어린이집을 준비중이다. 아직 이혼을 하지 않은 주말 부부인 이들, 하지만 만나서 반가운 것도 잠시, 하루를 못넘기고 해묵은 감정을 들춰내며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 아내는 이혼을 들먹인다. 젊은 시절 동시 통역사로 일하던 강철규씨는 동시 통역 일을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하게 되면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 받았고, 그 결과 지금 산속 주차장의 작은 승합차에서 홀로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 역시나 중년의 이혼남 박승호씨(가명)는 매일 눈물의 일기를 쓰며 아내에게 빌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혼'이었다. 





자기가 잘못해서 전과가 있거나 이래서 당하는거야 어디다가 하소연도 못하지.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바라보는 시선은 적으로 바라보고 이러니까 정말 이거는 아니지 진짜 -배정효

이혼을 요구당하거나, 이혼을 당한(?)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저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지자 아내와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내와 이혼을 했을 뿐인데 공통적으로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들의 가족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혼을 당한 남성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이혼 이유를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 반면, 이혼을 요구한 아내들의 대답은 다르다. 대부분 우리나라 이혼 부부들의 원인이 '경제'보다, '성격 차이'이듯이 아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참을 수 없는 남편의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를 이혼의 제일 우선으로 든다.

이렇게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이혼을 했음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년 부부의 위기를 다큐는 붕괴하는 가부장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혼 상담사임에도 남과 여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남편의 자리란 곧 경제적 책임을 떠맡는 자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정을 내팽겨 둔 채 바깥 생활에 몰두했고, 가정에 돌아와  바깥에 나가 돈을 번 자신을 행세했다. 전통적인 아내들이 그렇게 바깥일을 하는 남편의 무관심과 폭압적인 태도, 언사를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인고'해 왔다면 2016년 대한민국의 아내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데 현재 위기의 시발점이 있다. 

그 예전 50이면 인생의 고개 2/3을 넘어선 노년기에 접어든 시기라면 100세 시대가 일컫는 현대의 50은 그 예전 40대처럼 아직도 한참을 더 살아내야 하는 말 그대로 '미들 에이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사사건건 아내를 무시하고 '노예'처럼 부렸던 남편을 참아왔던 아내는 이제 '자식'을 키우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시기도 지나고, 돈도 벌어오지 않는 남편을 참아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오지 않아 자신을 버렸다지만, 그저 '돈'에 의지해 가정 내에서 군주처럼 살아왔던 가부장적 남편들에겐 아내는 물론 다른 가족들까지의 외면이 필연적 결과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아내와 가족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동안 마치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처럼 변화된 세상에서 여전히 '가부장'이기를 원하는 남편들의 부적응이 엄청난 중년 이혼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다큐는 진단한다. 

나는 그동안 주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주로 토목에 도로도 만들고 교량도 만들고 뭐 이런 일을 주로 했어요. 그래서 힘들었으니까 집에 와서라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좀 대우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거야.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 그건 일도 아니더라고." -배정효 

남자 이혼상담사는 여성 상담사들에게 여자들과는 다른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의 부탁을 받은 여성들의 표정은 냉랭하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살아온 여성들은 그 남성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맞추려 애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노예'처럼 살았다 생각한 여성들은 그래서 이혼 앞에 두려울 것이 없다. 남편들은 이혼으로 전부를 잃지만, 오히려 여성들은 이혼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생각한다. 

그래서 다큐의 모색은 다시 한번 남성의 입장이 되보는 대신,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을 택한다. 전원 생활을 하며 홀로 끼니를 때우던 배정효씨는 몇 달생의 생활 후에야 비로소 지난 세월 아내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돈을 번다고 유세를 하며 바깥을 하는 동안, 아내는 매일 매일 쳇바퀴처럼 되풀이 되는 가사 노동에 시들어 왔었다는 것을. 막상 하루만 안해도 태가 나는 가사 노동을 해보고 토목 사업을 했던 배정효씨는 자신이 했던 바깥 일이 별게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아내가 하겠다는 어린이집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물론 여전히 그는 다음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자신과 같은 남편과 살아봐야 온전히 아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가부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그의 존재만으로도 아내는 그를 견대낼 여유가 생긴다. 

아내는 물론 가족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얼른 남편들이 '가부장'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을 다큐는 권한다. '돈'마저도 그의 편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by meditator 2016. 4. 18. 05:25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모두들 투표를 하느라 애쓰고, 투표를 해야 한다 독려하고, 투표율이 얼마인가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마도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당락에 따라, 어느 당과 어느 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십일의 투표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현실은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들의 출사표가 얼마나 담아냈는지 점검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저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 의원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살 길을 제대로 살펴줄 것인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일 SBS 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방영 그 자체가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다. 한마음당(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국회의원 납치 사건을 둘러싼 한바탕 해프닝으로 펼쳐진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그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 아니 청렴하지 않은 의원만 청렴하지 않는게 만천하에 드러나는 속시원한 소동극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국회의원을 납치하는 철거민들
극중 나청렴 의원이 납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는 건 그의 지역구 행복구 낙원동이다. 미당 건설이 이곳을 재개발하려고 하고 그런 재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며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장을 내놓으라 못내놓겠다 철거 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민들을 나청렴 의원을 찾아와 도와달라 요청하고 그런 주민들에게 자신이 건설사 사장을 만나보겠다며 의원은 주민들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그날밤 철거 '알바'들이 들이닥쳐 낙원동을 마구 때려부수고 그 과정에서 희경(전미선 분)의 아들이 철거 용역에게 상해를 입혀 감옥에 갇히고, 영란(김현숙 분)의 남편은 의식을 잃는다. 정작 영란의 남편에게 상해를 입힌 용역은 무죄로 풀려나고. 결국 희경과 영란은 철거는 둘째치고 아들의 합의금과 남편의 병원비가 발등에 불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막무가내 영란의 시누이 슬기(이수경 분)는 은행을 털거나 납치를 하자고 하지만 희경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말린다. 그러나 정작 다음 날 하루 벌이를 위해 골프장 잔디를 뽑으러 간 곳에서 사실 이 일련의 철거 과정이 모두 그 뒤의 실세 나청렴 의원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의원 납치를 모의한다. 

납치 과정에서 부터 나청렴 의원과 박사장의 알력으로 얻어걸린 세 사람의 '납치'는 '납치'를 하기에는 모질지 못하고 어리숙한 세 사람과 납치를 당해서도 '갑질'의 기력을 다하는 나청렴 의원, 그리고 그의 하수인 박사장과 김사장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다. 드라마는 이름부터 아이러니한 나청렴 의원을 통해 말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자금을 불리기 위해 철거마저 무자비하게 강행하는 국회의원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소동극답게 경찰서까지 잡혀갔던 희경과 슬기는 영란의 지혜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고, 오히려 나청렴 의원을 협박하여 그의 비자금으로 철거민들에게 나눠주고, 그의 비리는 밝힌 후 다시 돌아온 행복한 일상으로 마무리된다. 일장춘몽처럼. 물론 당신들이 제대로 뽑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거라는 암시는 명약관화하다. 

클리셰같은 조들호의 승리 
또 한 편의 철거민의 승리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도 이루어 졌다. 조들호(박신양 분) 변호사가 평소그 사장님을 어머니라 부르던 시장 순대굿집에 철거반원이 들이닥친다. 건물주인이 재개발을 빌미로 순댓국집을 철거하려 했던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건물주의 뒤에는 대화 그룹의 아들, 바로 조들호가 밝히고자 하는 3년전 뺑소니 사건의 범인 마이클 정이 있다. 그는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주들을 내쫓은 뒤 리모델링하여 집세를 올려받고자 현재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을 밝혀낸 조들호는 법정에서 그 사실을 밝히려 하지만 그의 편에서, 순댓국집 할머니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조들호의 진심, 그리고 몇 십년간 시장 상인들의 어머니처럼 인심을 쌓아왔던 순댓국집 주인의 마음이 시장 상인들을 움직여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이런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승리는 철거민의 클리셰처럼 익숙하다. 2014년 방영된 <빅맨>에서도 주인공 김지혁(강지환 분)은 조들호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 상인들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 심지어 극중 중심이 되는 곳도 조들호의 그곳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어머니처럼 여기는 분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10여년이 지나도 쉬이 나아지지 않는 철거의 상흔 
하지만 늘 철거민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은 드라마 속 그들처럼 기분 좋은 승리를 맛보거나,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고발하지 못한다.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철거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 등장한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갈등의 근원지는 바로 13년전 k그룹의 철거 현장이다. 이제는 카지노가 들어서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이곳이 13년전에는 여명하(조윤희 분), 정수경(정수경 분)이 그의 가족들과 경찰들과 대치하던 곳이요, 가족들을 잃은 곳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명하는 위기 협상팀이 되었고, 정수경은 정반대로 피리부는 사나이의 하수인이 되어 각종 사건의 배후로 암약한다. 13년이 흘러도 '철거'의 상흔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을 지배한다. 

12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트라우마 센터 사람들을 인질로 삼은 이철용 형사(이원종 분) 사건에서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유준상 분)과 하수인 정수경의 입장은 어긋난다. 이철용의 도발로 생방송 토론에 나온 양청장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윤희성은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생각했지만, 정수경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트라우마 센터에 독극물을 푼다. 공지만 팀장(유승목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기 협상이 주가 되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위기 협상팀 주성찬(신하균 분)의 활약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기에 드라마는 사건과 그 해결 과정에 집중하지만, 12회에 드러난 윤희성과 정수경의 대립은 주목할 만하다. 정수경을 찾아가 각목으로 피가 흐르도록 그를 팬 윤희성, 그는 말한다. 니가 이렇게 맞아도 니 생각이 변하지 않듯이, 사람들은 이철용의 인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양청장의 비리 대신, 피리남이 저지른 횽포한 사건에만 주목한다고. 윤희성은 일련의 테러를 통해 k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 언론 법이 함께한 카르텔을 폭로하고자 하는 반면, 정수경은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질주한다. 폭로를 위해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 윤의성도, 당한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정수경도 결국 13년전 k그룹 철거의 상흔이다. 비록 드라마는 철거의 희생자였던 두 사람을 이제 최종 보스와 그 희생자로 한정해 가지만, 가장 현실과 가까웁게 '철거'를 다룬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철거의 희생자들은 그렇게 상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국회의원 납치 소동극이 등장한 단막극도, 그리고 월화 드라마 1위에 빛나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그리고 신하균과 유준상이란 걸출한 배우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분위기,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부진한 <피리부는 사나이>도 모두 우리 시대의 '철거'를 다룬다. 물론 이제는 클리셰처럼 '소재주의'의 경계에서 간당간당해 보이기도 하고, 통쾌한 소동극이 되기도 하고, 주객체가 뒤바뀐 듯 고민이 깊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선거판에서 활개를 치는 발전과 개발의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철거를 동시대의 드라마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4. 13. 16:56

그 어느 때보다도 투표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진 선거를 앞두고 있다. 60대 이상이 선거인의 60%를 넘는 이번 선거는 어쩌면 이미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빤히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렇다. 선거를 해야 하지만 막상 '뽑을 놈'이 없다는게 대다수 투표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입장이다. 혹은 해봤자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한 표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은 어쩐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다못해 선거라도 해야 욕할 자격이 생기지 않겠냐고 우겨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낯부끄럽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떨까? 4월 9일과 10일 오후 4시 45분에 방영된 ebs특별 기회 <THE VOTE- 투표(이하 투표)>는 굳이 우리의 상황을 들이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2부작 다큐를 보고 나면, 비로소 우리가 선거를 해야 하는 의미를 제대로 배운 듯하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선거를 하고 싶기보다, 정치와 정치인이 싫어지게 만드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선거 기획이 없는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 그래서 EBS의 <투표>는 더욱 소중하다. 




1부 인간의 권리, 당신의 한표 
우리가 지난 학창 시절에 배운 선거는 그저 달달 외어야 하는 사회 과목 중 한 부분에 불과했다. 보통 선거 universal suffrage 재산, 신분, 성별, 교육 등의 제한을 두지 않고 일정한 연령에 달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거권의 의미는 그저 틀리면 안되는 시험 문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단어에 숨겨져 있는 핏빛의 역사를 다큐는 밝힌다. 

다큐는 1913년 영국 엣섭 더비 경마장에서 시작된다. 말들이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오래된 필름, 그곳에 한 여인이 질주하는 말들 사이로 뛰어든다. 당연히 여인은 말들에 짓밟혔고 그로 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스, 당시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은 물론 법적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였다. 여성들은 일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아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하녀였고, 결혼하면 재산조차 남편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이등 시민이었다. 당연히 교육의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여성들은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 투표권 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9차례나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던 에밀리 데이비스는 최후의 수단으로 왕가의 말들이 참가하는 경주에 자신을 던졌다. 그녀의 장례식엔 수만 명의 여성들이 동참했으며 그로부터 5년 뒤 영국 정부는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간 제약되었던 여성들의 권리는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한 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라는 걸 다큐는 보여준다. 그 당연한 보통 선거가 세계적으로 시행된 건 20세기 초중반, 에밀리 데이비스와 같은 여성들의 투쟁을 거쳐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투표가 여성에게도 열렸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법적으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여성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20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여성은 백인 여성에 국한된 것이다. 흑인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그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을 싸워야 했다. 1863년 노예 해방과 함께 투표권이 부여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흑인의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교묘하게 차별적으로 만들어진 문맹 시험 등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했다. 이는 곧 흑인들의 정치적 법적 권리의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50년부터 흑인들은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나갔다. 1965년 600여 명의 시민들로 부터 시작된 셀마 행진은 그 과정에서 무장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피로 얼룩졌다, 하지만 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마틴 루터 킹도 합류한 2차, 3차 행진을 통해 결국 흑인들은 투표권을 되찾았다. 그렇게 투표권을 얻은 이후 흑인들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흑인 정치인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차별에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수 있었다.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당신이 쉽게 포기하는 그 한 표을 위해 지난 역사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싸운 결과 '보통'의 당신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투표권은 곧 인간의 권리이며, 지난 인간의 역사가 마련해준 당신의 자리라는 것이다. 

2부 표의 주인, 누구를 위한 투표인가? 
1부가 당연한 권리 투표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었다면, 2부는 투표의 당위성에 대한 각론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다큐는 대통령 선거 중에 있는 미국 퀸시의 한 초등학교로 시선을 옮긴다. 불과 9살에 불과한 아이들, 그 아이들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선생님에게 듣고 문제를 푸는 대신 실제 대통령 선거 과정에 사용된 광고지를 보며 비방 광고를 가려내는 법을 배우거나, 후보자 공약을 분석한다. 그리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렇게 이 초등학교는 대선때마다 실제와 가장 근접한 선거 교육을 통해 투표가 국민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리임을 가르친다. 



호주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20달러 벌금을 무는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벌금이 아니더라도 호주 시민들은 투표를 당연한 의무와 권리로 여기며 투표를 안하는 사람을 어리석고 멍청하게 여기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자신들이 투표를 안하면 정치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며 지역 사회가 관심있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이런 호주인의 정서가 투표율 세계 1위 93.1%의 득표율을 만든다. 

아직도 전주민이 광장에 모여 손을 들어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곳이 남아있는 스위스, 하지만 이런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가 아니더라도 3개월에 한번씩 법안 통과 여부 등의 국민 투표를 실시하는 스위스에선 1년에 한 사람이 투표해야 할 일이 3~40여회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국민들은 번거로워하기는 커녕 정부를 압박하는 야당으로서의 국민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기꺼이 참여한다. 

그 다음은 스웨덴이다.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로, 평균 8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스웨덴의 투표는 미국과 마찬가지도 어릴 때부터 이루어진 교육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투표권이 희생과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걸 배우고, 자신의 지지 정당을 놓고 토론하며 정치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배양한다. 

투표율이 높은 호주, 스위스, 스웨덴 이들 나라의 또 다른 공통점은 높은 국민 소득과 높은 행복감이다. 우리에겐 그들의 높은 국민 소득이나 복지가 관심사지만, 다큐는 바로 그런 안정된 국민들의 생활과 행복 지수에는 바로 '정치의 힘은 모아진 투표의 힘'에 비례한다는 투표율의 결과물로서의 행복 국가를 증명해 낸다. 또한 이들 국가는 어릴 때부터 교육 과정에서 국민된 권리의 실천으로 선거와 투표를 배우고, 그런 과정 속에서 소속감을 성취하여 민주주의의 주인 의식과 행복감을 고양시킨다고 주장한다. 

다큐는 한번도 우리가 4월 13일 투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 그 보통의 선거권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린 역사를 나열한다.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의 투표 교육과 국민의 권리로서 투표를 당연히 여기는 시민 의식을 보여준다. 잘 사는 나라를 부러워하기 전에, 솔선수범하여 우리가 투표로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2부작의 다큐를 보고 나면 투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홈쇼핑 광고같은 연예인을 동원하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배기 선거학 개론이다. 
by meditator 2016. 4. 11. 05:57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갓경규'로 새로이 등극한 이경규의 행보가 거침없다. 지난 3월 19, 26일 방송에서 애견 뿌꾸의 갓 태어난 여섯마리 강아지를 분양하는 방송에서 1위를 쟁취했던 이경규는 4월 2일과 9일의 낚시 방송을 통해 다시 한번 1위에 등극, 그의 방 채팅창에서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 '갓경규'의 위엄을 확인했다. 


3월 19일 프렌치 불독 강아지 여섯 마리와 함께 개인 방송을 시작했을 때, 이경규가 방송을 한다 하여 그의 개인 방에 들어가 본 인터넷 유저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노안으로 채팅 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그의 말대로 그저 갓 태어나 발바닥이 분홍빛의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보는 것 외에 이렇다할 상황을 연출하지 못한 이경규의 방은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해 야심찬 준비를 하고 등장한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심심하기 이를데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저들은 명망에도 불구하고<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무기렸했던 박명수, 정준하의 예를 들며 이경규의 몰락을 예견했다. 



눕방에 이어 낚방까지 성공
하지만 이경규는 달랐다. 채팅장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번잡한 마이 리틀 텔레비젼 방송의 리듬을 거스르며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보는 것 그 자체가 '힐링'임을 강조하며 묘하게 채팅장 유저들을 설득해 갔다. 간간히 정 지루할 만하며 강제 모유 수유를 하던가 그도 안되면 억지 '투견'을 해보이며 채팅창의 지루함을 달랬다. 하지만 긴 촬영 시간 동안 자신이 지쳐 누워 버리는 사태까지 초래하며 일찌기 <무한도전>에서 예견했던 '눕방'까지 선보인 이경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전후반 모두 1위를 달성했다. 

그렇게 신개념 '눕방'이란 단어를 만들어 내며 1위가 된 이경규는 애견 분양에 이어 이번에는 '낚시'라는 또 한번의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이미 '낚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케이블 방송들이 있는 것처럼, 낚시는 매니아들을 확보한 취미 생활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부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편향된' 취미 생활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막상 '낚시'를 내세운 케이블 프로그램을 보면, 낚시가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라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정적인 분야라, 실제 케이블 방송도 낚시 그 자체보다 몸매가 늘씬한 여성들과 경치 좋은 곳에 놀러가 먹방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여사이기 때문이다. 즉, 낚시 tv인데 낚시가 없는 그 자체의 함정을 지닌 아이템인 것이다. 

그런데 강아지 분양에 이어 이경규는 다시 한번, 지극히 정적인 아이템을 들고 다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찾았다. 하지만 이경규의 낚방은 일반적인 케이블의 낚시 방송과는 달랐다. 낚시를 표현하는 말로 '세월을 낚는다'는 말이 있듯이 하루종일 기다려 몇 마리를 잡을까 말까한 기존의 낚시 방식 대신, 떡밥으로 붕어들을 모아 빈번하게 낚는 신기술로 스펙타클한 낚방을 선보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신개념의 낚방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추운 날씨, 밤에, 촬영을 위해 조명이 잔뜩 켜진 열악한 조건은 이경규가 내세운 20마리의 승률에 도달하기엔 무리한 목표였다. 결국 이경규는 18마리의 성적으로 한 밤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이날 이경규의 낚방은 결국 목표를 채우지 못한 '입수'로 화제가 되었지만, 이경규의 입수는 방송이 마무리된 이후의 벌칙이었다. 즉 생방송의 분량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입수'를 매개로 고군분투한 스펙타클한 낚시 전반이다. 방송 마지막 '이게 뭐라고 내가 나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는 채팅창의 말처럼, 과연 이경규가 자신이 내세운 20마리의 공약을 달성할까에 함께 노심초사한 그 과정 자체가 '이경규 낚방'의 매력인 것이다. 

'갓경규'의 내공, 유연함과 끊임없는 도전 
그간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는 먹방의 붐을 탄 백종원 등의 쉐프 그룹과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성 방송을 마련한 김구라를 제외하고는 연배가 있는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이렇다할 효과를 내지 못했었다. 나름 예능계에서 이름값을 한다는 박명수도, 정준하도, 연예인이 아니라도 나이가 제법 있었던 만화가 김충원도 무기력했다. 대부분 나이든 출연자들이 무기력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인터넷 채팅방'과 소통하며 방송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호흡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창의 내용과 자신이 준비했던 내용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관심도를 끌어 올려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대부분 융통성있게 대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경규 방송의 거듭된 승리의 가장 요인을 꼽을 수 있는 것은 절묘한 채팅창과의 호흡이다. 무언가 보여줄 것을 잔뜩 준비한 채 정해진 시간 안에 그걸 풀어놓기 위해 분주한 여타 출연자들과 달리, 이경규가 준비한 컨텐츠는 정적이다. 강아지 분양이라 하지만 그저 여섯 마리의 강아지를이 꼬물거리거나 엄마 젖을 먹는 외에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어 의도적으로 투견 상황까지 만들어야 한다던가, 기껏해야 낚시 찌가 흔들리거나 손바닥만하거나 피래미만한 붕어가 잡혀 들어오는, 애초에 이렇다할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없는 방송 내용으로 이경규는 방송을 시작한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경규는 채팅창의 요구에 적절하게 응답하고, 또한 채팅창의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방송을 흥미롭게 끌어간다. 심지어 채팅창에 올라온 딸 예림이의 동정까지도 여유롭게 받아치고, 승률이 좋은 낚씨에 잠수부 운운하는 채팅창의 멘트를 이어받아, 상황을 설정해 가는 유연성과 순발력은 유저들이 이경규에게 '갓경규'란 찬사를 그저 붙인 것이 아님을 증명해 낸다. 방송을 보면 이경규는 분명 여느 아저씨와 다를바가 없는 묘하게 그의 아저씨스러움에는 공감하며 거부감을 들지 않도록 만드는 유연함이 있다. 

또한 대부분 출연자들이 채팅창의 유저들을 '갑'으로 여겨 그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송 분위기를 흔들렸던 것과 달리, 이경규는 오히려 그들을 설득해 낸다. 방송 내용이 없다는 유저들의 불만에, 그저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보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며 반문하거나, 불평을 제기하는 유저에게 강아지 좋아하지 않으면 나가라고 대차게 대응하며 방송의 중심을 놓지 않는다. 낚방도 마찬가지다. 물고기가 잘 낚이면 낚이는 대로, 못낚이면 못낚는대로 이렇게 저렇게 잔소리를 해대는 유저들의 불만을 유연하게 받아쳐서 오히려 실제 물풀을 제거해 주는 잠수부가 있다던가, 나이든 사람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 생활이라며 낚시를 선전하며 특별한 취미 생활 애견과 낚시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설득해 낸다. 달콤한 디저트와 변신에 가까운 미용, 그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한 야구 시즌의 여러 정보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치고 그저 낚시를 던지고 붕어를 낚는 그 평이한 과정에 주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내공, 거기에 '갓경규'의 마력이 있다. 

<예림이네 만물 트럭>을 시작하며 개그맨 생활 내내 처음으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이경규, 하지만 일찌기 <몰래 카메라>, <양심 냉장고> 등 한국 예능사의 신기원을 이끌어 갔던 그 전설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치 않고 여전한 도전의 발길은 멈추지 않는 듯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후 잠시 주춤했던 이경규의 도전이 그가 해보지 않았던 리얼 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을 시작으로 당시 트렌드가 되었던 '힐링'과 토크쇼의 콜라보레이션 <힐링 캠프>로 이어지며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힐링'이 지겨워지듯, 이경규의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예능 트렌드와 함께 <힐링 캠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이경규의 예능은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올해 초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메인이 아니라면 객원으로라도 남은 불꽃을 태우겠다는 이경규는 그의 말처럼 이제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처럼 첨단의 예능 콘텐츠에서 '갓경규'로 등극하며 여전한 이경규 월드의 건재를 확인시켜 주는가 하면, <나를 돌아봐>나, 새로이 시작한 <능력자들>에서 처럼 박명수나 조영남의 매니저나, 김성주와 함께 하는 감초로서 그 자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 거기엔 <예림이네 만물 트럭>에서 이제 자신만으로 어려우면 딸과 함께 라도, 그게 부족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자신의 애견까지 동원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 의식과, 그를 뒷받침하는 열정이 있다. 

by meditator 2016. 4. 10. 14:20

결국 시즌3를 끝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만 <인간의 조건>의 후속으로 야심차게 등장한 건 '언니'들의 예능이다. 그 중에서도 그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걸 크러쉬'한 것으로 한 몫을 했던 그녀들을 몽땅 모아놨다. 김숙, 라미란, 제시, 홍진경에 신선한 얼굴 민효린, 티파니가 합류했다. 


여전한 남성 중심 예능계에 야심찬 도전을 
'남자 예능이 주를 이뤘던 방송계 판도를 뒤집을 센 언니들이 왔다'는 <언니들의 슬램 덩크> 야심만만한 포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예능계의 대세는 남성 예능이다. 심지어 그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한 자리가 주어졌던 여성 진행자들 조차 <해피 투게더>의 박미선, 김신영을 끝으로 자리를 감추었다. 이젠 더 이상 남성들이 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기껏해야 '인턴'이라며 여성 출연자들과 우스꽝스런 춤 대결을 벌이는 것이 최근까지 여성 연예인의 위상이었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와 <택시>를 진행하는 이영자가 독보적일 정도로. 

물론 여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시도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인간의 조건>도 여성 특집이 호평을 받자, 남성 팀과 병행하여 프로그램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소재 고갈로 좌초되었고, <진짜 사나이>도 네 차례의 여군 특집을 진행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화제성면에서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렇게 남성 중심의 예능계에 최근 파열음을 일으키며 몇몇 여성 연예인이 등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걸크러쉬'라는 말을 새삼 유행시킨 김숙이다. 윤정수와 함께 출연한 <님과 함께>에서 김숙은 '가모장'이라는 신선한 캐릭터로 올해 초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유일한 여성 예능인으로 초대받을 만큼 화제가 되었다. 그녀에 이어 또 다른 '걸크러쉬'의 주인공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거침없는 언변과 행동으로 화제가 되었던 제시이다. <진짜 사나이>에서 참 군인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멋진 엄마로 그 캐릭터를 승화시켰던 라미란 역시 이들에 못지 않은 '센 언니'이다. 숱한 남성들과 함께 <무한도전> 특집에 한 몫을 하는 홍진경 역시 걸출하다. 

이렇게 최근 예능을 통해 '센'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언니'들을 여성 예능의 포부를 밝힌 <언니들의 슬램 덩크>는 모아놓았다. 그런데, 언니들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왜 하필 슬램 덩크? 그 이유는 1박2일 멤버들과 함께 한 장황한 한 명, 한 명의 소개 이후 뒤늦게 밝혀졌다. 왜 우리가 함께 하게 되었을까?를 되짚어 본 멤버들, 따지고 보니, 그 자리에 함께 한 여섯 명의 멤버들은 모두 한결같이 십대나 이십대 초의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각각 십여 년에서 이십 여년이 넘는 연예계 생활동안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 오느라 개인적인 '꿈'은 일찌감치 접어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화 '슬램 덩크'의 소년들이 농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듯, <언니들의 슬램 덩크>를 통해 못다이루었던 혹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한 도전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꿈의 도전으로 김숙의 관광버스 기사 도전이 시작된다.

걸크러쉬했던 그녀들은 어디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센 언니'들의 매력을 기대하며 첫 회였지만, <언니들의 슬램 덩크> 속 언니들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매력이 넘치던 그 언니들이 아니었다. 김숙은 '가모장' 김숙과 <인간의 조건> 속 자상한 맏 언니 김숙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했다. 아직 리얼 예능이 낯선 라미란은 부끄럼이 많았고, <응답하라 1988>의 치타 여사처럼 당차보이진 않았다. 홍진경은 일관됐지만, 솔직히 그들의 그 캐릭터는 <무한도전>에 홍진경이 등장하면 멤버들이 고개를 돌리듯 보기도 전에 식상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제시는 매력적이지만 최근 그녀의 매력 역시 중첩되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티파니와 민효린은 신선하다지만 sm과 jyp라는 기획사의 배경을 빼고 아직 그녀들에게 시선이 가진 않는다. 



프로그램은 '꿈'을 논하지만, 정작 장황한 인터뷰에 주저앉아 버린 프로그램은 그녀들의 꿈을 향한 여정에 개연성을 놓친다. 왜 지금 그 시간에 그녀들이 꿈을 향해 경주해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대신 몇 마디의 말로 퉁쳐버린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아닐까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인 그녀들이 새삼 지난 혹은 앞으로의 꿈에 대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입봉 피디의 야심작이라는데, <남자의 자격>이나, <인간의 조건>을 보는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3개월기간의 빠듯한 돈이며, 멤버들이 예능국장까지 나서서 일을 꾸려가는 방식이 새롭다는데 새롭지가 않다. 

이미 '가모장'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김숙을 필두로 역시나 예능에서 화제가 되었던 여성 개그우먼을 중심으로 '센 언니'들의 프로그램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jtbc의 <마녀를 부탁해>처럼 '센언니'라는 캐릭터를 밀어붙여 남성 연예인과의 집단 토크쇼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프로그램에서 펄펄 날던 그 '센 언니'들의 화제성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걸크러쉬'의 캐릭터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어 만들어진 캐릭터들이라는 점이다. <님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의 '가모장'은 리얼 김숙이 아니라, <님과 함께> 속 윤정수의 파트너로서의 김숙이다. 마찬가지다. 라미란이 돋보였던 것은 <진짜 사나이> 속 상황극이나, <응답하라 1988>과 같은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인 것이다. <언 프리티 랩스타>의 제시 캐릭터 역시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 '리얼 버라이어티'라지만 그녀들이 화제가 되었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철저하게 '각본화된 상황'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들이 그 상황극을 벗어나 본연의 얼굴로 돌아온 <언니들의 슬램 덩크>는 그녀들 본연의 얼굴과, 대중들이 호감을 느낀 '센 언니' 캐릭터 속에서 아직 방황하는 듯 보인다. 아니 오히려 종종 등장하는 자막은 알고보니 '센 언니'가 아니라 '수줍은', '소녀 감성의,' 천상 여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과연 이 대중들이 소비하고픈 '센 언니'의 이면의 모습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것이 아마도 <언니들의 슬램 덩크>가 해나가야 할 숙제가 될 듯하다. 


by meditator 2016. 4. 9. 06:16

작년 11월 13일 <능력자들>의 첫 방송과 함께 메인 mc로 이 방송을 이끌었던 김구라가 이 프로그램이 목요일 밤으로 자리를 옮기며 떠났다. 동시간대 jtbc에서 방영하는 <썰전>과 출연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구라의 하차는 그저 방송시간대의 중복 뿐이었을까? 첫 방송 이래 20회까지 5~6%의 시청률을 오르내렸던 <능력자들>은 동시간대 tvn의 나영석 표 예능과 또 다른 금요일 밤의 강자 <정글의 법칙>과의 대결에서 보면 최악의 성적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지만, 20회의 회차에도 불구하고 '화제성' 등에서 그다지 긍정적이라 보기도 힘든 형편이다. 그렇게 애매한 <능력자들>이 금요일 밤을 음악 프로그램인 <듀엣 가요제>에 넘겨주고 목요일로 자리를 옮겼다. 




폐지 아니면 부활, 능력자들의 배수진 
목요일 밤 11시, 마지막 방송에서 김구라는 mbc 예능의 목요일 밤 11시를 '목요일의 저주'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 <별바라기>, <경찰청 사람들 2015>, <헬로 이방인> 등 다 나열하기도 무색하게 그간 mbc 예능의 목요일 밤 11시대는 처절한 패배의 현장이었다. <능력자들>이 이 자리로 옮겼다는 것은, 이 전쟁터에서 그간 사라져갔던 다른 프로그램들처럼 '전사'하거나, 저주를 푸는 모아니면 도의 선택, 아니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김구라의 후임으로 이경규가 선정되었다는 보도에 혹자는 섣부르게 이경규와 함께 침몰했던 <경찰청 2015>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최근 <마리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신기원의 눕방을 선보이며 '갓경규'로 등극한 이경규의 상승세가 다시 발목이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월 7일 그의 첫 방송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예능인의 생존감을 내세웠던 '갓경규'이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젼> 이전의 이경규의 실적(?)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우려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젼> 출사표에서 무모하더라도 도전을 내세웠던 이경규답게 다시 한번 '목요일의 저주'의 자리에 용감하게 찾아들었다. 

하지만 4월 7일 방송분을 본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새롭게 개편된 <능력자들>의 신의 한수는 이경규보다는 최근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김성주였다. 마지막 방송에서 '대결'이 강조되는 <능력자들>에서 축구 캐스터로 활약했던 김성주가 적절할 것이라 예측했던 김구라의 선견지명은 개편된 첫 회 빛을 발했다. 

갓경규, 위의 신의 한 수 김성주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자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 이른바 여러 분야의 덕후들을 찾아내, 그들의 덕후력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인 <능력자들>은 그 '덕후'의 신기함이란 면에선 신선하지만, 그들의 '덕후력'을 일반적인 시청자들과 공감하는 예능화하는 지점에선 보편성의 한계를 지녀왔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특수한 '덕후'와 그들의 '덕후력'을 '중계를 통해 보편적 공감으로 승화시키는데 축구 캐스터 출신의 김성주가 묘수였음은 한결 생기 넘치는 21회에서 증명된다.덕분에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열차' 능력자의 능력 검증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축구 게임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일찌기 <슈퍼스타K>에서 부터 최근 <냉장고를 부탁해>, <복면 가왕>을 통해 메인 mc로써의 능력이 일취월장해 가고 있는 김성주의 진면모가 <능력자들>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오죽하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이경규가 자신이 메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김성주가 메인이라고 하듯이 <능력자들>의 흐름은 김성주가 끌고가고 이경규가 양념을 치는 식이다. 일찌기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함께 '덕후'들을 탐험한 바 있던 두 사람이지만, 그 주도 양상이 변화되었다. 놀라운 것은 굳이 메인 mc로서의 지분을 고집하지 않는 채 여전한 '갓경규'의 원숙한 내공이다. 거기에 새로 합류한 덕후 맘으로서 데프콘의 조력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mbc 예능의 산 증인이었던 이경규와, 최근 진행의 물이 오른 김성주의 조화는 그간 우리와는 좀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그친 <능력자들>의 공감도를 높여준다. 초반 mc이전에 능력자로서의 김성주와 이경규의 검증은 그 자체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예능적 재미를 톡톡히 보여주었다. 특히 그 분야도 생소했던 '날씨' 능력자를 소개하기 위해 등장한 김동완 통보관과의 매끄러운 대화, 그리고 82살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손주뻘 능력자랑 대결을 하느라 고전하는 노 기상 통보관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가능성을 열었다. 

덕분에 이전에 능력자의 능력이나 호감도에 따라 오르내리던 프로그램의 재미는 일반인 예능의 한 분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남겨진다. 굳이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의문스러운 연예인들의 존재와, 굳이 리액션조차도 보이지 않는 종이 상자를 뒤집어 쓴 방청객의 무기력함이다. 차라리 그 어설픈 봉투를 제치고, 어색한 연예인들의 리액션대신 자연스러운 방청객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덕후 예능이 아닌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또 하나의 가능성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6. 4. 8. 06:03

언제인가부터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ppl을 논하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높아진 제작비와 군소 제작사, 그리고 열악한 제작 환경은 주어진 제작비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이른바 협찬이란 이름의 ppl(product placement)은 드라마 제작비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고, ppl을 적절히 쓰는 것이 작가의 능력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시청자들조차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홍삼 엑기스를 빨아대거나, 가방을 주렁주렁 매다는 게 다 ppl때문이라는 건 애교처럼 넘어가는 정도에 이르른 것이다. 




ppl 잘 쓰기로 정평이 난 김은숙 작가 
김은숙 작가는 ppl을 잘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언제나 쓰는 작품마다,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은 물론, 이른바 '대박' 작품을 늘 생산하고 있는 김 작가에게 자사 작품을 홍보하고 싶은 기업들이 줄을 잇는 것는 따논 당상이요, 스타 작가답게 김은숙 작가는 절묘하게 ppl을 드라마 안에 야무지게 버무려 넣는 것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은숙 작가의 ppl은 이런 식이다. <시그릿 가든>에서 김주원(현빈 분)은 하고많은 회사 중 모 백화점 사장이고, 김주원과 길라임(하지원 분)은 하고많은 장소 중에 제주도의 모 고급 펜션에서 영혼이 바뀐다. 심지어 보건복지부조차 금연 캠페인을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조연들을 통해 할 정도다.  <상속자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에스더 여사가 운영하는 회사가 원래 시놉과 다르게 의류 회사로 바뀌었고, 제국고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으로 저마다 당시 붐이 일기 시작한 '골프 웨어'를 빼어입고 골프를 친다.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 재회가 이루어지는 곳은 여주인공이 일하는 프랜차이즈 까페 등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입고, 먹고, 움직이는 동선의 배경 모두가 ppl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의 2016년 작 <태양의 후예>는 주인공이 군인이다. 심지어 군인인 남자 주인공 유시진(송중기 분)과 의사인 여자 주인공(강모연 분)이 사랑을 이뤄가는 곳은 지진과 분쟁의 중심인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이다. 하지만 분쟁지역이든, 작전 지역이든 ppl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역만리 서대영에게 온 소포에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하도 봐서 정이 들 정도인 홍삼이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역시나 준전시 상황의 제한 때문이었을까? 이전 김은숙 작가 드라마에 비해서는 <태양의 후예> ppl은 애교 수준이었다. 

13회 그동안 못다한 ppl 한풀이라도 하듯
하지만 그 애교는 우르크라는 지정학적 한계 때문이었다는 것을 두 주인공이 고국으로 돌아온 13회 드라마는 증명한다. 귀국 후 모처럼 편안하게 연인의 시간을 보내는 두 주인공, 하지만 드라마는 이게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ppl이 만연한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강모연, 서대영-윤명주 못지 않게 언제 이루어질까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송상현(이승준 분)-하자애(서정연 분) 커플, 이들의 옥상 데이트 아닌 데이트에서 실론에서 왔다는 차가 함께 한다. 어디 이들뿐인가, 13회의 장면, 장면 함께 하는 것들은 즐비하다. 휴가를 나갈 군인들은 피부를 관리해야 한다며 다같이 팩을 두르고, 모처럼 휴가 나온 유시진은 강모연을 만나러 가는 대신 소줏집을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류한 송상현은 좋은 안주 다 놔두고 아몬드를 먹는다. 술에 취한 강모연을 데리고 집으로 온 유시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강모연의 어머니와, 그녀가 앉아있는 식탁의 중탕기이다. 무박 삼일을 작정으로 술을 마신 유시진과 역시나 주사를 할 정도로 취했던 강모연이 다음 날 해장으로 먹은 것은 종종 드라마를 통해 등장하는 햄버거요, 유시진-강모연 커플이 서대영-윤명주 커플과 만나 서로 닭살돋는 애정을 과시하는 곳은 가게 상호가 유난히 도드라지는 커피숍이다. 



그나마 이젠 커피숍이나 햄버거집은 ppl의 여사가 되었다는 듯, 이어진 서대영-윤명주의 키스씬에서 ppl은 화룡점정을 찍는다. 최근 '자동 주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모 자동차를 타고 윤명주를 집으로 바래다 주는 서대영, 신중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격과 다르게, 윤명주에게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을 밝히기 위해 차를 자동 주행으로 모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그녀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동 주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씬의 신천지를 연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라면 길 한 가운데를 달리던 차가 급격하게 핸들을 꺽어 급정거를 하고 이어졌던 키스씬을, <태양의 후예> 속 신차는 자동 주행으로 놓은 채 행한다. 

당혹스럽다. 과연 이 장면을 신개념의 키스씬으로 봐야 하는 건지, 제ooo의 놀라운 성능으로 감탄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를 위한 자동 주행을 무개념으로 봐야 하는 건지, 다중을 상대로 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심지어 해외에서도 다시 한번 한류 붐을 이루었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사를 내는 이 드라마의 이 장면을 그저 ppl의 신세계로 넘겨야 하는건지. 공중도덕의 무개념으로 봐야 하는건지, 과연 조만간 길거리에서 <태양의 후예>의 이 장면을 뽄따서 자동 주행으로 놓고 키스를 하는 커플이 있다면 이들은 교통 법규 상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머리가 복잡해 지는 순간이다. 

그까이꺼 뭐 머리가 복잡할 게 뭐 있냐고, 그저 드라마로 보면 되는거라고? 허긴 조만간 주인공이 총을 맞고 쓰러지기 5분전, 국빈을 위한 경호에 나선 특전대 상사가 여친과 헤어졌다며 초코바 두 개를 연달아 먹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거리의 자동 주행쯤이야 뭐 그리 대수겠는가 싶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목우촌'의 깃발이 휘날리는 ppl 세상에서 안되는 게 뭐 있겠는가. 그런데 13회는 드라마를 본게 아니라 마치 영화 상영 전 주구장창 틀어주는 광고 방송을 본 기분이 드는 건 어째야 하나.  
by meditator 2016. 4. 7. 05:43

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개구리들을 넣어 놓은 뒤 불을 땐다. 개구리들은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 오를까? 답은 개구리들은,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의 열기에 뜨거운 줄로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이다. 

이 우화적 문구는 <피리부는 사나이>10회에서 등장했다. 극중 윤희성(유준상 분)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들을 죽이고야 말 끓는 가마솥, 드라마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 끓는 가마솥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이제 4회를 맞이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익숙한 사회적 현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갈등의 진원지는 k그룹의 철거 피해 현장이다.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현장에 경찰들이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길이 번져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k그룹의 신입 사원이었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강제 진압의 불가피함을 설파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강제 진압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진압 작전에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과 양청장(김종수 분)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명하(조윤희 분) 등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도,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로 수배를 받게 된 정수경(이신성 분)도 모두 그 강제 진압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극중 주요 인물들을 얽히고 설키게 만든 뉴타운 재개발 철거 현장은 시청자의 뇌리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를 남긴 용산 철거 현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인명 피해까지 생긴 용산 참사를 기본 얼개로 하여, 매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10회 오랫동안 별러왔던 용역 우두머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정수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은 그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끓는 가마솥에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돕자며 정수경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매개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곳으로 몸을 던지게 유도한다. 

9,10회에 등장한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인질 사건이다. 드러난 사건은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을 볼모로 삼은 공장 점거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는 수시로 때리고 모욕을 주는 인간 이하의 대우는 물론, 결국 임금까지 체불한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와 그 하수인들이 있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부터,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피리부는 사나이> 속 사건들은 이미 우리가 시사 다큐를 통해 익숙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현실이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인들의 몰락
자신이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대화 그룹 회장 아들이 벌인 사건인 줄 알면서도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덮었던 사건으로 인해 보육원 시절 동생처럼 강일구(최재환 분)가 죽고, 노숙자 변지식(김기천 분)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로 살아가던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제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그가 변호해야 하는 변기식 씨는 설렁탕 집을 내고 가족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장사가 잘 되자 집주인이 그들을 내모는 바람에 결국 가족과 헤어진 채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다. 그의 아들까지 증인으로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1심에서 실패하고, 조들호는 방향을 바꿔 목격자인 치매 할머니를 등장시켜 항소심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동내 변호사 조들호'란 간판까지 걸고 본격적인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동네 변호사가 된 그의 첫 사건은 모처럼 함께 회식을 하러간 감자탕집에서 시작된다. 

줄 서서 먹었다는 단골집이란 말이 무색하게 파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감자탕집, 그곳에서 조들호 일행이 식사를 하려하자 집주인이란 사람이 빈 소주 박스를 말로 차며 시끄럽게 등장한다. 침을 찍찍 뱉으며 식탁에 발을 올리는 등 불손한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이곳을 재개발하려 하니 얼른 집을 비우라고 독촉을 한다. 분개하는 감자탕집 아들에게 '임대자 보호법'까지 운운하며 법대로 하잔다. 이어 철거 용역까지 등장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들호는 설렁탕집에 이어, 감자탕집 주인을 위한 본격 동네 변호사가 된다. 

4회 조들호 일행에게 밀린 가게 주인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조들호가 해결하지 못한 뺑소니 사고의 범인 정회장의 아들이 있는 룸싸롱이었다. 그는 그 일대의 가게를 모조리 사들여 또 하나의 '뉴타운'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노숙자가 된 변씨도, 이제 조들호의 단골 감자탕집도, 그저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서 살려고 하는데, 좀 살만하게 놔두지를 않는 또 하나의 끓는 가마솥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경찰 위기 협상팀과 변호사라는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목이 졸려가는 서민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터전은 빼앗기고, 그래서 가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범죄자로 몰리거나,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대한민국 을들의 강팍한 현실을 드라마는 극의 주요한 갈등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한때 자신의 영달에 눈이 멀어, 애꿏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던 '앞잪이' 노릇을 하던 주인공들의 '개과천선'이 더해져 정의의 싹이 핀다. 끓는 가마솥의 불길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성과 위로를 주기 위해 드라마가 솔선수범한다. 

by meditator 2016. 4. 6. 05:32

3월 28일 첫 방영된 sbs의 월화 드라마 <대박>은 살아서는 안될 왕의 아들과 왕이 될 수 없는 왕의 아들, 두 남자의 운명적 삶을 '한 판 승부'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 낸 조선판 타짜이다. 하지만 아직 그 비극적 운명을 타고 난 두 왕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이 드라마를 이끄는 것은 숙종과 그에 대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인좌라는 사내의 역심이다. 이 두 사내의 연심과 역심은 투전을 비롯한 각종 노름의 세계 속에서 피고진다. 




조선조의 사극에서 숙종과 숙빈만큼 빈번하게 다루어진 인물들이 있을까? 잊을만 하면 한번씩 다시 만들어 지는 장희빈을 통해 늘 그녀를 사랑하고, 내치는 변심의 아이콘으로 숙종 역시 빈번하게 역사 속에서 불려 나왔다. 숙빈 최씨 역시 마찬가지다. 장희빈이란 비극의 조역으로,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인물로, 그리고 2010년 만들어진 <동이>에서는 천민 출신 무수리에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입지전적 인물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사극의 중심으로 한발씩 다가섰다. 그렇게 희대의 악녀, 혹은 운명적 삶을 살아낸 여성, 혹은 입지전적 인물로 장희빈과 숙빈 최씨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는 동안, 그 상대방으로 숙종은 사랑꾼이었다가, 당파와 궁중 어른들에 휘돌리는 우유부단한 지아비였다가, 지어미를 당파 싸움의 희생양으로 삼은 야비한 정치꾼이 되는 등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인물로 그려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은 사약으로 인생을 마무리지은 장희빈이나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 영조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숙종은 상대적으로 그 캐릭터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해석된 숙종과 최숙빈 
그런데 그렇게 늘 조선의 격동적 인물 장희빈과 최숙빈의 뒤켠에서 조역으로 자리 매김했던 숙종이란 인물이 드디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나타났다. 바로 최민수가 연기하는 <대박>의 숙종이다. 

극중 숙종은 그 시대를 다루었던 사극에서 처럼 무수리 출신 최 숙빈(윤진서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 임금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대박>이 이전 사극과 다른 것은 궁중 비사로 남겨진 최 숙빈의 기혼설을 스토리로 끌어들이고 남의 여자인 그녀를 취하기 위해 <대박>의 아이템인 '한 판 승부'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최 숙빈이 기혼녀였다는 것은 야사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백만금(이문식 분)과 도박판을 벌인다는 것은 제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상당히 무리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 설정을 설득해 낸 것은 뜻밖에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연기력을 돋보이게 만든 연출력이다. 



왕가의 피가 흐르지만 왕이 될 수 없었던 사내, 그래서 부조리한 세상을 뒤짚어 엎겠다는 역심을 가진 이인좌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최숙빈을 선택한다. 그는 그 어떤 권력도 가진 바 없지만, 대신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으로 왕가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좌우하며 자신의 실권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왕을 백만금과의 도박 판으로 끌어들인다. 역시나 조선판 타짜다운 이 설정을 설명해 내는 것은 뱀처럼 나긋나긋한 어조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오른팔이었던 김이수(송종호 분)를 거두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전광렬의 연기다. 

모든 판을 쥐고 흔드는 배후의 야심가, 하지만 그가 두려워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하였으니 그는 바로 숙종이다. 그리고 이인좌가 두렵다 할 만큼, <대박>이 그려낸 숙종은 지금까지 우리가 조선조 사극에서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의 군주이다. 

최숙빈에게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녀에게 지아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숙종은 백만금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물론 승부는 조작된 것이다. 조선판 타짜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왕이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남편과 승부를 벌인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왕은 굳이 그렇게 애써 도박판을 조작할 필요가 없는 절대 군주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도모해 여인을 빼앗는 대신, 백만금을 궁지로 몰고가 결국은 판돈을 아내를 걸게 만들어 최숙빈이 스스로 왕의 곁으로 오게 만드는 묘수를 쓰는 지혜(?)를 보인다. 

물론 최숙빈이 숙종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전반의 과정은 이른바 이인좌의 설계이다. 하지만, 그 이인좌의 손아귀에서 놀아남에도 불구하고 백만금과의 한판 승부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3회, 이인좌가 유일하게 두려운 존재가 숙종이라고 하는 그 장면 뒤로, 드라마는 설계자 이인좌의 판 위에서 기꺼이 놀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이인좌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두 알고 있었던 노회한 군주 숙종을 드러낸다. 



새로운 숙종에 혼을 불어넣은 최민수의 연기 
3회의 사건은 극적이다. 숙빈 최씨는 이인좌와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 백만금의 도움으로 아이도 되찾고 자신의 목숨도 보전한다. 하지만 생환의 기쁨도 잠시 대궐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중전 장씨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전의 도발, 결국 그 도발의 끝은 중전 장씨는 물론 그녀의 일가와 남인들이 처분되는 갑술환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중심에 최숙빈의 모든 허물을 덮고, 정실 아내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치는 군주 숙종이 있다. 

자칫 사랑에 빠져 몰지각해 보일 수도 있는 숙종의 캐릭터를 최민수란 배우의 무게감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뽑아낸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가 궁궐에서 밀려날까 배후의 이인좌를 묵인해주고, 심지어 그녀가 낳은 아이의 생존마저 인정해 주는 넉넉한 품을 가졌는가 싶은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여, 중신들의 거듭된 항소가 있었다 하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중전을 하루 아침에 내쳐 버리는 최민수의 숙종은, 보기에 따라 이중인격자이거나, 싸이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배우의 연기로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조선판 타짜를 내세운 퓨전 사극에서 이인좌는 매양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운운하지만, 그 실감은 깊지 않고, 정작 이야기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궁중 사극처럼 결국 숙빈 최씨를 둘러싼 음모와 갈등으로 진행된다. 장희빈은 하루 아침에 중전 자리에서 내쳐지지만 경술환국을 둘러싼 설득력은 부족하다. 극 속의 모든 갈등과 해소는 타짜답게 투전판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의 깊이있는 연기력과 그걸 중심에 둔 연출은 시청자들을 그 퓨전 사극의 맛에 끌어들인다. 
by meditator 2016. 4. 5. 15:11

얼마전 sbs스페셜에서는 '개저씨'를 다루더니, 이번에는 '꼰대'란다. ebs다큐 프라임은 지난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그리고 4월 3일에 <우리집 꼰대> 3부작을 방영했다. '꼰대'에 '개저씨'에, 이 시대 아저씨들의 수난시대다. 그런데, sbs스페셜이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념마저 상실한 아저씨 세대를 '개저씨'라 명명하며 '개만도 못한 어른이라 치욕을 안긴 반면, 제목부터 어딘가 정겨운 다큐 프라임의 <우리집 꼰대>는 소통하지 못한 꼰대 세대와 젊은 세대의 소통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 소통과 공감을 위해 다큐가 시도한 건, 웹툰과 다큐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웹툰과 다큐의 콜라보 <우리집 꼰대> 
<우리집 꼰대> 3부작의 주인공들은 웹툰 작가들이다. 1부는 웹툰 <세자전>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정이리이리(이정일)작가, 2부는 밀리언셀러 만화가 <힙합>의 김수용 작가, 그리고 3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일상을 웹툰으로 옮긴 버선버섯(정가연)작가이다. 다큐는 '꼰대'와 관련된 이들의 일상과, 그리고 '꼰대'를 주제로 이들이 그린 다큐를 번갈아 보여주며, 우리 시대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실제 이 다큐 속 웹툰은 3월 한 달 동안 코믹 스퀘어를 통해 연재되었다. 

그 첫 번째 <우리집 꼰대>는 이정일 작가의 아빠 탈출기이다. 어린 시절 책 여백에다 낙서를 했다고로 무려 297대을 회초리로 때렸던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정일 작가의 아버님은 전형적인 이 시대 꼰대시다. 웹툰 작가로 이젠 제법 이름을 날린 아들이 여전히 남자답지 못하게 방구석에서 만화나 끄적거리는 걸 못마땅하시는 아버님은 소를 키우시고, 아들 이정일 작가는 만화를 그리는 틈틈이 아버님을 돕는다. 하지만 말이 돕는거지, 매양 만화나 그리던 아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아버님의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러기에 결혼을 앞둔 이정일 작가의 소원은 얼른 빨리 아빠를 탈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 꼰대>라는 웹툰을 계기로 꼰대 가장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 이정일 작가, 그가 만난 것은 말썽꾸러기였던 소년이 세파에 시달리며 꼰대가 되어가는 전사에 대한 공감의 과정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결혼을 위해 오랫동안 꿈궈왔던 축협 조합장 선거마저 포기하는 아버지를 알게 되며 이정일 작가는 '꼰대' 이전의 가장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력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아들에 의한 아버지 꼰대 이해기가 되었던 1부와 달리, 2부는 자기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버린 김수용 작가의 '반성문'이 그 내용이다. 힙합을 좋아하며 취미가 디제잉인 신세대 아저씨 김수용 작가, 그런데 스스로 돌아보니 어느새 딸에게 치마가 짧다, 아들에게 머리가 그게 뭐니 하며 잔소리를 해대는 꼰대가 되어 있다. 이제는 알아주는 만화가가 되었지만, 한때 거리의 바닥을 휩쓸며 '머리 기르고, 염색하고, 춤추던'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리고 그와 함께 '힙합' 정신을 외치던 힙합 1세대들이 이제는 꼰대가 되어 헤드뱅잉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두터운 배가 드러나 버리는 민망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장이 되어 저마다 자기 식구들을 건사하느라 춤을, 힙합 정신을 잊고 산다. 아버지가 한때 춤으로 날렸다고 하면, 자식들이 코웃음치는 그런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반항의 아이콘조차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절감하며 작가는 그런 자신을 견뎌냈던 아버지와, 이제 꼰대가 된 자신을 견디는 아이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꼰대의 반성문에 이어 바톤을 받은 것은 아직은 미성년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아 신분을 보장받을 그 무엇도 없는 소녀 웹투니스트 정가연 작가와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서둘러 방문을 걸어 잠그는 정가연 작가, 작가네 집 식구들은 아버지만 등장하면 모두 '얼음'이 된다. 소통할 수 없는 아버지와 가족들, 아버지는 그런 가족들과 가까워지는 대신, 얼른 밥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옥상에 올라가 골프 연습을 하거나 홀로 tv를 본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꼰대였던 아버지, 하지만 학교를 나와 스스로 웹툰을 그리며 돈을 벌기 시작한 정가연 작가는 '세상'의 맛을 조금씩 알면서 자기 가족을 건사하는 가장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진다. 그래서 아버지 회사에 가서 인턴으로 일도 해보고,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한때 문학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전기 기사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아버지의 역사를 들으며, 자신과 다르지 않은, 어쩌면 자신이 가장 아버지를 닮았음을 깨달아 간다. 




웹툰을 통한 꼰대의 이해, 그리고 소통
3부작 다큐는 제목이 꼰대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지칭하는 고집불통 소통 제로의 꼰대 아저씨들에게서 시작된다. 자신들이 살아온 세상에서 자신들이 얻은 신념만을 고집하며, 그 자신이 믿는 방식만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꼰대들, 하지만 다큐는  그런 꼰대들을 그저 '개저씨'로 짖누르지 않는다. 대신, 우리집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그 이면의 전사를 들여다 본다. 한때는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춤쟁이, 교실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말썽꾸러기,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문학 소년,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역시 꼰대들에게도 젊은 그 시절이 있었음을 살핀다. 그리고 그들이 세월을 살아내며, 살아내기 위해,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가며 그 젊은 시절의 꿈들을 잃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과정은 이제는 꼰대라 불리는 그들을 이해하는 소통의 첫 걸음이 된다. 그리고, 또한 자신을 되돌아 본 꼰대들의 물러섬이기도 하다. 그저 버거운 세상을 살아남았으면 하는 소망이, 고집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왜곡된 믿음이, 어느새 무디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무뎌진 꼰대리즘의 자리에, 아버지의 역사를 이해한 자식들과의 소통의 싹이 튼다. 

사실 아버지가 살아온 과정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는 결국 이 한 줄로 마무리될 수 있는 3부작 <우리집 꼰대>는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꼰대라는 고집스럽고 막무가내의 캐릭터가 이정일, 김수용, 정가연 작가의 웹툰을 통해, 말랑말랑 유연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각형 얼굴형의 고집스런 이정일 작가의 아버지도, 김수용 작가을 꼭 빼어닮았지만 어딘가 통통 튈 듯한 아저씨도, 그리고 예민한 토끼로 표현된 정가연 작가의 아버지도 웹툰 속 인물이 되는 순간, 우선 '꼰대'의 거북함은 한 풀 꺽이며 이해의 폭이 넓혀진다. 또한 그저 세대 소통의 상투적 에피소드도, 각각의 삶 속에서 저마다의 캐릭터로 개성적으로 드러나며, 우리가 그 무시무시하게 밀쳐두는 꼰대라는 '어른'에 대해 조금은 다가서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6. 4. 4.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