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2월, 꽃샘 추위가 시작되는 달이다. 새싹이 피어오르는 봄을 시샘하듯, 청춘들의 새로운 도약에 발을 걸어 넘어 뜨리는 계절이다. 매해 2월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뎌야 하는 젊은이들이지만 불황 사회 속 그들을 맞이하는 건 새 직장 대신, '백수'라는 처연한 이름표이기가 십상이니, 청춘의 꽃샘추위는 스쳐지나가지않고 오래도록 그들을 괴롭힌다.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잔혹하다.
전국 대학 중 연극 영화과는 65곳 정도, 해 마다 여기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2400명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연기'를 전공한 이들은 그 이후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2014 예체능 출신 대학생들의 취업률은 41.4%로 계열 별 최하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전공 관련 취업률이 겨우 5.1%에 불과하다는 참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언제인가 부터 사시, 행시, 언론 고시와 함께 '연예 고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2월 14일 <다큐 3일>은 바로 그 '연예 고시'의 한 현장을 72시간 목도한다.
잔혹 동화 취업 오디션
서울 예대는 N포 세대 꿈을 찾는 청춘들이라는 부제를 단 '앞으로 페스티벌'을 열었다. 형식은 '축제'이지만, 사실 그 내용은 졸업을 앞둔, 하지만 아직 그 어느 곳에서도 '캐스팅'의 기회를 얻지 못한 '백수' 예비생인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오디션'이다. 연예 관계자 100 명을 초대하여 졸업생, 그리고 졸업을 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 재수생들들의 끼와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학교 측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 '취업'을 위한 무대에 17몀의 학생들이 지난 3년간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취업'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도우미를 자청한 선배들도, 그리고 이 무대를 총괄하는 교수도, 허투루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을 쏙 빼놓는,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뒤집어 엎을 만큼 찬 서리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질타에 주저앉을 수 없다. 그러기엔 그들이 맞이할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기회를 그나마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난 3년 자신이 선택했던 '꿈'의 시간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카메라가 지켜보는 학생들의 72시간은 절박하다. 그들의 초초함은 깊지만 꿈으로 달려온 3년, 혹은 졸업을 하고도 무기력하게 보냈던, 또는 먹고 살기에 쫓겨 연습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이 그들을 이해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된서리를 맞고 애써 준비했던 무대가 없어지거나,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시 새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벼랑 위에 선 절박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범대를 다니다, 연기과를 다니는 동생의 삶이 부러워 선생의 길을 마다한 채 늦깍이로 합류한 나이든 졸업 예비생은 비록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한 줄 알지만, 지난 3년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달리보고, 다시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가 미워 자책하고, 좌절한 학생들도, 결국 무대에 선 그 시간 속에서, 결국 자신이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 벼랑 위에 서보니 지금 이 기회가 아니더라도, 이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이 굳건해 지기도 한다.
그렇게 꿈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페스티벌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졸업생, 졸업 예비생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기회는 그들의 열정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날 공연을 펼친 학생들 가운데,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단 10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캐스팅도 아니고, 그저 연예 기획사 2차 오디션을 볼 기회.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 꿈을 위해 달려온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잔혹 동화'다. 그리고 이는, 서울 예대만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모든 대학생들에게 돌아갈 동일한 '답안지'이라는 데서 더 잔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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