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가 돌아왔다. 하지만, 대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중의 관심이 저조하다. 첫 회 4.0%(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시작해서, 4회를 마친 현재 6.5%에 불과하다. 주말 드라마라 하면 20%를 오르내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공중파에선 무참한 성적표라 할 수있다. 




하지만, 꼭 그럴 것도 아니다. 용감하게 시작했지만 대가에게도 잔인한 편성시간대였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 최강자인 <부탁해요 엄마>가 무려 38%를 넘나들고, 노년의 로맨스로 화제몰이를 한 mbc의 <엄마>도 20%를 넘기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토요일까지 방영하는 tvn의 <시그널>조차도 <그래 그런거야>의 불안한 위치를 위협한다. 그러나 진검승부는 어쩌면 이제 부터일지도 모른다. <부탁해요 엄마>의 후속작 <아이가 다섯>이 호평을 받지만,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 해프닝에서, 큰아들 결혼까지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관심을 끈다. mbc의 <가화만사성>이 새로 시작하니, 이젠 <그래 그런거야>가 선점한 태세다. 조만간 <시그널>도 끝이 난다. 이러다, <그래 그런거야>가 장렬히 전사했던 sbs주말 드라마를 수렁에서 끌어올릴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노병은 죽지 않듯, 매회 터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지뢰는 만만치 않다. 

여전히 익숙한 자기 변주
막상 <그래 그런거야>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익숙하다. 일찌기 <사랑이 뭐길래(1991)>에서 부터 시작된 대가족 소동극이 변주된 노래마냥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용탕집 남자들(1995)>이래 자수성가한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딸들이라는 구도는 이제 외울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끼인 세대로 살아온 아들 세대의 회의와, 성공한 자식 농사이지만 아롱이 다롱이로 속을 썩이고 결국은 가족이란 속에 풀어지는 자식 세대의 구성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냉혈한 의사 자식에 그에 목매는 부잣집 여자에 이르면 슬그머니 신물이 올라온다. 

그 지겨운 자기 복제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또 늘 새롭다. 노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족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인생은 아름다워, 2010), 미혼모 를 당당한 주체로 내세웠다(무자식 상팔자, 2012). 그런 김수현 작가이기 때문에 대가족이란 뻔한 울타리 속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도발적인 가족 문제를 들고 나올지 지레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여타 막장 드라마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타 가족 문제를 말 그대로 '문제'로 소비하는 반면, 김수현 작가는, 작가의 장담답게, '막장스럽지 않게' 진지하게 우리의 문제로 고민하고 화해해 가는 화두로 삼기 때문이다. 

매번 가족극을 쓰며 김수현 작가의 화두가 도발적임에도, 결국은 여전한 것은, 그 모든 말썽들(?)이 가족이란 제도 안에서 융해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남자가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은 혜량이 넓은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수용되고, 원조를 받게 된다.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던 처연한 태섭(송창의 분)과 경수(이상우 분)의 사랑도 가족의 이름을 얻게 된다.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소영(엄지원 분)의 아이도 결국은 가족 모두가 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를 지각있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할아버지도, 지겹도록 말이 많은 둘째 아들도, 술만 취하면 침을 뱉어대는 큰 아들도, 그리고 매사에 허허거리며 다 좋다는 식인 막내 아들도,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도, 자기 자식을 삶의 제일 목표로 살아온 평범한 어른들이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해온 그래서 노년의 삶이 허무해지는 인생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자식에 '갑질'을 하지는 않는다. 간섭하고 노심초사하지만, 결국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 그들을 품어주는 것이 바로 김수현 가족극의 본질이다. 

죽음보다 허무한 어른들의 지혜로움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른다운 어른. <그래 그런거야>에서 어른들은 종종 무언가를 읽는다. 시간이 남은 할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고, 그 신문을 다시 아들이 읽는다. 그런데 그 신문이, 이른바 조선, 동아가 아니라, 경향 신문이란 점은 소품 하나에도 철저한 김수현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홀로된 큰 아들은 자신의 깊은 시름을 달래기 위해 시를 읽는다. 그리고 대가족에 시달린 며느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녀는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다. 말 끝마다 아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둘째 아들 부부는 영화를 보러 간다. 비록 가서 잠들지언정. 비록 여자만 보면 얼굴이 풀어지는 할아버지이지만, 결정적일 때 할아버지의 지혜는 대범하다. 세상사를 달관한 노년의 해탈이 보인다. 

김수현 작가가 생각하는 어른들의 힘은,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섬세하게 그리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채곡하게 쌓여진 내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막돼먹지 않은, 지각있음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래서, 2016년의 <그래 그런거야>가 더 허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수현 드라마 속 어른들은 <사랑이 뭐길래>에서 <목용탕집 남자들>을 거쳐, <무자식 상팔자>에서 <그래 그런거야>로 오는 동안, 마치 철이 들어가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지각있어 졌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어닥쳐 오는 문제들은 점점 더 난감해지지만, 그런 문제에 대비하기라도 하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생각들은 깊어지면, 더 인생에 대해 회의하며 반성한다. 마치 어른들이 점점 더 어른답지 않은 세상에 대한 반작용이기라도 하듯. 

김수현 작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집필을 시작하며, '막장'을 쓸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드라마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는 어른들의 존재론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어른들답지 않아지는 세상에서, 그 어른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세상의 논리로 젊은이의 세상마저 재단하지 못해, 작품 속 어른들이 보지않는 종편 언론을 통해 어른들이 살아왔던 세상의 논리를 소리 높여 외치고, 그 어른들의 대표가 정치를 주무르는 세상에, 김수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각있는 어른들은 환타지를 넘어, 허무함을 준다. 

<그래 그런거야>가 허무한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노년의 부박한 삶때문이 아니다. 젊은이의 문제 조차도 어른들의 품 안에서 용해시킬 수 있는 그 넉넉함이 사라진 세상때문이다. 대학 병원 교수까지 하던 집안에서 아들을 결혼시키며 집을 마련조차 해주지 못하는 검소함은 재산 비리로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 인사 청문회의 세상에서 웃프다. 돈 앞에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초연함을 자랑하는 가족들의 당당함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마다 집칸이나 가지고, 가게라도 번듯하게 하며 사는 중산층이상의 삶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먼저 눈치챈다. 어른들의 세대가 벌이는 갑질이 폭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래 그런거야> 속 지혜로운 어른들은 무상하다. 
by meditator 2016. 2. 22. 17:04

사전에서 골목의 뜻을 찾아보았다. 

골목; 큰 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있는 좁은 길
이 '골목'은 요즘 획일적으로 도시화된 도시 문화 속에서 고유의 색깔을 지닌 '골목 문화'로 각광받는다. 그래서 '무슨무슨 골목'하며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진 골목이 등장했고, 거기에 '골목길 상권이 나타났고, 결국엔 그 개성있는 이름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시대 '유적'의 다른 이름으로 우리 시대에 출현하고, 사라져가는 골목은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시대의 역사로 돌아온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과 <시그널>의 골목길이다. 

응팔과 시그널의 같고도 다른 골목길
<응팔>과 <시그널>에는 동일한 서울 변두리 지역의 골목길이 등장한다. <응팔>에 등장한 쌍문동이 아직도 유효한 서울 지역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따온 반면, 포탈 사이트에 그 지명을 검색하면 경상북도의 어느 곳이 뜨는 <시그널>의 홍원동은 1994년 서울 변두리 가상의 지역이다. <응팔>이 구체적 지명을 등장시킨데 비해, <시그널>이 가상의 지명을 쓴 것은 바로 드라마 속에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즉 드라마 속에서는 홍원동이라고 지칭되지만 그 사건에서 시청자들이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을 떠올리는 사건의 비극성이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여전히 미해결로 남은 사건의 결과가 <시그널> 속 지명을 가상화한다. 



두 드라마 속 골목은 각각 1988년과 1997년 거의 10년의 간극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통해 지켜보게 된 두 서울의 변두리 골목길이 주는 정서는 전혀 다르다. 쌍문동의 골목길이, 골목길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칭될 정도로 도시화된 서울에서 잔존한, 사람 냄새 그윽한 인간적 유대의 장소라면, <시그널>의 골목은 연쇄 살인을 무려 10년간 움켜쥔 불온한 공간이다. 1988년에는 공동체적 문화가 살아있던 골목길이 불과 10년이 흘러, 인간성 상실의 증거인 연쇄 살인을 품은 공간으로 전화된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골목길을 바라보는 두 드라마의 상이한 시각, 그리고 골목길을 배경으로 풀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심한 빈부 격차의 역사가 이런 현격한 결과를 낳게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 

동일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지만 막상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골목길은 그 넓이에서 부터 다르다. <응팔>의 골목길이 심지어 자가용은 물론, 트럭 한 대가 들어서고도 공간이 한참 남는 널찍한 공간인 반면, <시그널> 속 사건이 벌어지는 골목은, 그 자체가 폐소 공포증을 느끼게 할 만큼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로 막혀있다.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은, 그 어느 후미진 곳에서 '납치'가 벌어질만큼 외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르다. <응팔>의 골목은 그 자체로 사람이다. 피 한 방울도 섞지 않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람들이 한 골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피붙이처럼 엉켜 살아간다.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대로 틈만나면 뭉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이들은 친구가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아이를 같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백'을 포기할 만큼 형제애를 나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뒷담화'대신 진심으로 이웃의 안녕을 걱정할 뿐만 아니라, 거리로 나앉게 된 선우네를 경제적으로 돕는 굵직한 부조에서부터, 용돈, 식사, 심지어 쓰러진 택이 아빠의 간호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기 힘든 일까지 너끈히 해내는 곳이다.

반면에 <시그널>에 등장한 골목은 같은 서울이되 서울이 아니다. 홍원동 골목길을 홀로 가던 여성들은 그곳에 움크리고 있던 연쇄 살인마에게 납치된다. 그저 다리 다친 불쌍한 강아지가 애닮아 발을 멈췄던 여성들은 연쇄 살인마(이상엽 분)의 어미가 강아지에게 했듯 검정 비닐 봉지가 머리에 씌워진 채 세상과 이별한다. 하지만 십 여년에 걸쳐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 역시나 사람들이 사는 그 골목엔 목격자가 없다. 어디 목격자만 없나? 그녀들의 실종조차도 백골 사체가 발견된 이후에야 드러날 만큼, '의문의 실종'이 가능한 곳이다. 심지어 '납치'되었던 점오 여경 차수현(김혜수 분)이 검정 비닐 봉지를 쓰고 거리로 나뒹굴고, 거기를 질주할 때, 그리고 연쇄 살인마가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를 때 골목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뿐이 아니다. 어미를 잃고 아비를 따라 쌍문동 골목길로 온 불쌍한 소년 택이는 비록 불면증 약을 한 움큼 씩 먹으며 성장했지만, 봉황당이라는 금은방을 하는 아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어린 시절 부터 바둑이라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함께 자란 골목길 아이들 덕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설움도 잊은 채 우정을 쌓았고, 심지어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여자 아이와 결혼까지 한 성공의 삶을 산다.

하지만 <시그널> 속 골목길에서 자란 소년은 다르다. 엄마와 둘만 남겨진 소년, 하지만 봉황당을 하는 택이 아버지와 달리, 가난한 소년의 어미는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을 소년과의 동반 자살로, 그리고 소년에 대한 학대로 푼다. 바둑 기사로 어엿하게 자기 앞가림을 하는 택이를 아빠가 아프다고 여자 친구가 중국까지 따라가서 보호를 해주고, 그 여자 친구의 부모는 어린 딸을 남자 친구를 따라 중국까지 보내주는 결정조차 흔쾌히 하는 쌍문동 골목 공동체와 달리, 수시로 어미에게 목이 졸리고, 독을 탄 음식을 먹고 변기에 토해내야 하는 소년에게 손길을 내미는 이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소년이 데리고 온 강아지도차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약을 먹으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견녀내기 위해 여자들을 죽이며 살아간다. 



골목의 풍경은 다르지 않다. 쌍문동 골목길에도 야한 섹규얼리티를 강조한 영화의 포스터가 흩날리고, 홍원동 역시 삭막한 골목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색채는 그 포스터의 짙은 색감이다. 그러나 똑같은 삭막한 콘크리트 담벼락과 거기에 붙은 조잡한 포스터이지만, 쌍문동의 그것들이 그저 시대를 나타내는 데코레이션에 불과한 반면, 홍원동의 그것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했던 20세기 정신 문화의 세계를 대변한다. 쌍문동의 소년들은 그저 의례로 소비했던 그것들이 홍원동 소년에게로 가면 트라우마의 실현으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용이한 문화적 기반이 된다. 

골목, 경제적 빈부 격차가 낳은 다른 풍경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응답하라 1988>이 우스꽝스럽게 조명했던 야한 포스터가 나붙고 상영되던 그 시대는, 이른바 3s 문화 정책이 구체화되던 시대다. 군부가 민간 정부로 자기 변신에 성공하고, 경제적 호황이 그 성공을 뒷받침할 때, '독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것은 바로 sex, screen, sports의 3s이다. 

그에 따라 19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 축구, 86년 아시안 게임, 그리고 88년 올림픽으로 sports 정책은 정점을 이루었다. 또한 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거리는 불야성의 환락의 도시로 번쩍이기 시작한다. 또한 80년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되었고, 영화는 그런 컬러 tv에 대응하는 자구책인 양 tv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성인용 19금 영화들을 양산해 낸다. 그리고 그렇게 3s의 우민화(愚民化)정책이 벌어지는 동안, 사회적 비판 의식이 무뎌지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삶에 매몰되고, 그 과정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일한 서울의 골목이지만, 그 골목길에서 배태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응팔>을 매개로 등장한 이야기는 철저한 서울 중산층의 자기 성장 스토리이다. 단칸방에서 끼니를 굶었던 정팔이네의 복권 당첨. 덕선이네 보증이라는 극적인 스토리까지 끼얹었지만, 결국은 전자대리점, 은행원, 금은방을 하는 당시 좀 살만했던 중산층의 약간은 굴곡있는 부의 에스컬레이션, 그리고 그런 안정된 기반 위에서 탄생한 아이들의 성공을 그려낸다. 골목길에서 위협이래봐야 바바리맨같은 위협적이지 않은 변태일 뿐이다. 심지어 그 마저도 미래의 남편감이 구해준다. 안온한 중산층다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그런 중산층의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응팔>을 보며 향수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골목길의 그 누군가가 안정된 경제적 기반과 그에 따른 성공적인 자식 농사를 지었던 반면, <시그널>의 연쇄 살인마처럼 그런 경제적 기반을 누리지 못한 그 누군가에게 골목은, 상실과 범죄의 태반이 된다. 이미 사전에 제작된 <시그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지력이라도 가진 듯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아동 학대와 범죄를 다룬 데서 보여지듯, 2016년에 드러나고 만 아동 학대의 시초는 이미 저 1997년, 아니 <응팔>이 다루고 있지 않은 1980년대의 그 어느 골목길에서 비롯된다. 아니, 만약에 정환이네가 복권을 맞지 않아다면이라는 단 하나의 물음표만으로도 가능하다. 과연 그래도 여전히 쌍문동 골목길의 그들은 형님, 아우하면서 즐겁게 지냈을까? 거리로 나앉게 될 선우네를 택이 아빠가 돕지 않았다면 선우는 무사히 서울대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가족도 없이 홀로 공장을 다니다 수은 중독이 된 여공과 다른 삶을 살수 있었을까?

by meditator 2016. 2. 21. 18:02

어린이 노래 자랑의 전통은 깊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인 1954년 라디오 방송국인 서울 방송국(HLKA)에서 <누가누라 잘하나>가 시작되었다. 1962년까지 300회를 넘은 이 프로그램은 이후 TV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TV로 자리를 옮겨 1982년 200회를 넘기며 방영되었다. 이후 <모이자 노래하자> . <열려라 동요 세상> 등의 이름으로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던 이 프로그램은 2005년 원래의 경연 방식을 되찾고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4시반 KBS2 TV 통해 방영된다. 


KBS에 <누가누가 잘하나>가 있었다면, MBC에는 <창작 동요제>가 있다. '노을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압은 가을 들판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이 시적인 가사를 탄생시킨, '노을' 뿐만 아니라, '새싹들이다', '아빠 힘내세요' 등 제목만 들어도 노래가 떠올리는 아름다운 동요를 탄생시킨 프로그램이다. MBC 창작동요제를 통해 1회부터 28회까지 본선에 진출한 곡은 총 402곡이고, 이중 20여곡이 초, 중등 교과서에 실릴 만큼 <MBC창작 동요제>의 성과는 혁혁하다. 



어린이 노래 자랑과 창작 동요제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위키드 
그러나 아쉽게도 한 프로그램의 대상곡이던 '노을'이 전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MBC 창작 동요제>는 '아이돌'로 대변되는 화려한 음악 산업의 현실에서 더는 버텨내지 못한 채 2010년 결국 종영되고 말았다. 아니 <누가누가 잘하나>는 역사와 전통을 지켜내며 여전히 방영되지만 이 프로그램이 '생존'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란한 춤사위와 화려한 비트의 아이돌 음악을 소비한다. 그런 가운데,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내공을 쌓은 M.NET과 TVN이 2016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2월 18일 첫 선을 보였다. 바로 '아이들에겐 최고의 동요를, 어른들에겐 추억과 순수함을 선사하겠다는 꿈의 동요 공장' <위키드>가 바로 그것이다. 

첫 선을 보인 <위키드>는 성공적이었다. 에니메이션 <포카혼타스>OST '바람의 빛깔'을 부른 제주 소년 오연준의 청아한 목소리는 회자가 되었고, '리틀 효녀' 최명빈은 수식어답게 관객과 심사위원단은 물론 시청자의 눈물을 흘러내기게 만들고야 만 사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첫 회의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신개념 창작동요 대전 <위키드>는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방영 시간이다. 어린이와 어른들을 모두 타깃으로 삼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은 밤 목요일 밤 9시 40분이다. 이제는 밤 9시가 되면 TV에서 어린이 여러분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라는 유치한 언급을 하는 시대가 지났다지만, 대부분 밤 10시 이후의 프로그램들이 초등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전제로 하여, 15세 이상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들인 걸 전제로 했을 때, 밤 9시 40분에 방영되는 <위키드>가 과연 어린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띠는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즉 내세운 것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지만, 정작 아이들을 소비하는 어른들의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그런 의심은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게 아이들의 프로그램일까? 아이들을 소비하는 프로그램일까?
창작 동요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라는데, 프로그램 어디에도 '창작 동요'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은 없다. 심사위원단에서 노래를 잘 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중 음악의 대표 주자 윤일상에, 힙합의 대부 타이거JK, 거기에 최근 예능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는 유재환에, 유연석, 박보영, 이광수, 바로 등의 연예인들이다. 

제작진은 윤일상 작곡가의 입을 빌려 최근 어린이들이 동요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가사와 멜로디'가 만들어 지지 않았다고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대중 음악 작곡가라고 생각했는지, 프로그램 그 어느 곳에서도 '동요'를 전문으로 하는 분야의 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위키드>가 생각하는 바 2016년판 '마법의 성'은 노래를 잘 하는 아이들과, 성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뭉쳐 최신의 트렌드를 방영하는 음악이라는 것인지. 



출연자의 문제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다. 청아한 목소리로 화제가 된 첫 출연자 오연준,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에도 불구하고 오연준 어린이는 불안해 보였다. 과도한 연습으로 인해 '성대 결절'이 온 것이다. 그의 노래는 회자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겨우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가 성대 결절이 올 정도로 노래 연습을 해야 한다는 '혹사'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저 <슈스케>의 그때처럼 노래 잘하는 연준이가 <위키드>의 일정을 소화해 낼 지가 걱정될 뿐이다. 

최명빈 어린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함께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사는 큰딸 명빈이, 여덟살이 불과한 나이에 명빈이는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홈쇼핑 모델에 나선다. 명빈이의 소원은 얼른 돈을 벌어 엄마와 넓은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명빈이의 소원은 모든 이를 울렸다. 하지만 이게 한번 울어주고 말 일인가?

만약에 명빈이와 엄마가 우리 나라가 아니라, 영국 쯤 된다면, 명빈이 엄마는 명빈이와 동생들을 위해 나라에서 제공되는 육아 보조금으로 너끈히 생활을 꾸릴 수 있다. 어린 명빈이가 가정 생계를 돕기 위해 홈쇼핑 모델을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명빈이의 사연을 보고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보장되지 않는 홑부모 가정의 생계에 대한 시스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 나오지 않고 방치된 아이들만큼 홑부모와 함께 힘겨운 생존의 고통을 견뎌내는 동심에 대해 함께 반성하고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키드>는, 그리고 그것을 그저 감명깊은 음악 방송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그런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이 대신, 그저 노래 잘 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콘텐츠로 어린 아이들을 소비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그걸 잔뜩 조장하여, 아이의 노래를 들려주기 전에, 한껏 감정을 부추길, 아이의 사연을 들려주고, 그 사연에 걸맞는 노래를 선정하여, 시청자와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그리고 시청자와 관객은 언뜻보면 아이의 사연에 감동을 받고 슬퍼하는 것 같지만, <슈스케>의 사연많은 시청자를 소비하듯, 그렇게 눈물어린 눈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아이의 사연과 그 아이의 노래를 점수 매길 뿐이다. 

by meditator 2016. 2. 19. 16:44

2월, 꽃샘 추위가 시작되는 달이다. 새싹이 피어오르는 봄을 시샘하듯, 청춘들의 새로운 도약에 발을 걸어 넘어 뜨리는 계절이다. 매해 2월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뎌야 하는 젊은이들이지만 불황 사회 속 그들을 맞이하는 건 새 직장 대신, '백수'라는 처연한 이름표이기가 십상이니, 청춘의 꽃샘추위는 스쳐지나가지않고 오래도록 그들을 괴롭힌다.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잔혹하다. 




전국 대학 중 연극 영화과는 65곳 정도, 해 마다 여기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2400명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연기'를 전공한 이들은 그 이후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2014 예체능 출신 대학생들의 취업률은 41.4%로 계열 별 최하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전공 관련 취업률이 겨우 5.1%에 불과하다는 참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언제인가 부터 사시, 행시, 언론 고시와 함께 '연예 고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2월 14일 <다큐 3일>은 바로 그 '연예 고시'의 한 현장을 72시간 목도한다. 

잔혹 동화 취업 오디션
서울 예대는 N포 세대 꿈을 찾는 청춘들이라는 부제를 단 '앞으로 페스티벌'을 열었다. 형식은 '축제'이지만, 사실 그 내용은 졸업을 앞둔, 하지만 아직 그 어느 곳에서도 '캐스팅'의 기회를 얻지 못한 '백수' 예비생인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오디션'이다. 연예 관계자 100 명을 초대하여 졸업생, 그리고 졸업을 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 재수생들들의 끼와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학교 측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 '취업'을 위한 무대에 17몀의 학생들이 지난 3년간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취업'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도우미를 자청한 선배들도, 그리고 이 무대를 총괄하는 교수도, 허투루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을 쏙 빼놓는,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뒤집어 엎을 만큼 찬 서리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질타에 주저앉을 수 없다. 그러기엔 그들이 맞이할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기회를 그나마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난 3년 자신이 선택했던 '꿈'의 시간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카메라가 지켜보는 학생들의 72시간은 절박하다. 그들의 초초함은 깊지만 꿈으로 달려온 3년, 혹은 졸업을 하고도 무기력하게 보냈던, 또는 먹고 살기에 쫓겨 연습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이 그들을 이해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된서리를 맞고 애써 준비했던 무대가 없어지거나,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시 새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벼랑 위에 선 절박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범대를 다니다, 연기과를 다니는 동생의 삶이 부러워 선생의 길을 마다한 채 늦깍이로 합류한 나이든 졸업 예비생은 비록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한 줄 알지만, 지난 3년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달리보고, 다시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가 미워 자책하고, 좌절한 학생들도, 결국 무대에 선 그 시간 속에서, 결국 자신이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 벼랑 위에 서보니 지금 이 기회가 아니더라도, 이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이 굳건해 지기도 한다. 



그렇게 꿈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페스티벌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졸업생, 졸업 예비생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기회는 그들의 열정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날 공연을 펼친 학생들 가운데,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단 10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캐스팅도 아니고, 그저 연예 기획사 2차 오디션을 볼 기회.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 꿈을 위해 달려온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잔혹 동화'다. 그리고 이는, 서울 예대만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모든 대학생들에게 돌아갈 동일한 '답안지'이라는 데서 더 잔인한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6. 2. 15. 15:37
청춘에게 꿈이란 단어가 점점 사치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나이든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란 단어를 듣고 혀를 차지만, 그네들에겐 어쩌면 그저 그들의 현실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단어일 뿐일 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쉬이 그들의 빠른 현실 침잠과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저항의 포기, 혹은 저항의 무력화에 대해 아쉬워하지만, 머리에 피가 마르기도 전에, '경쟁'과 '생존'을 학습한 세대에게 어른들의 '집단적 저항정신' 운운은 낯선 이국의 문물처럼 다가올지도 모르는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의 tv는 어떤가, 여전히 젊음을 칭송하고, 그들의 젊음의 열정과 꿈을 부추긴다. tv 속 청춘은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한다. 하지만, 그 꿈과 열정을 제 아무리 포장한다 한들, 현실은 쉬이 가려지지 않는다. 


2015년 10월 24일 장장 5개월의 여정을 달려온 청춘 fc의 마지막 경기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축구를 포기했던 청춘들의 좌절된 열정을 다시 한번 불사르려했던 청춘 fc 프로그램도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은 포기했던 그들의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켰고, 포기했던 그라운드에 그들을 되돌아오게 되었지만 마지막 회를 앞둔 프로그램에서 그 이상 그들에게 기약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 중 그 누구에게도 구체적 기회는 불투명했고, 회자되었던 프로팀도 유야무야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흘러, 2016년 설 연휴가 있던 주 금요일, 2월 12일 밤 10시 50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던 그 청춘의 열기에 대한 후일담을,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연장전>이 전한다. 


'일장춘몽'이었을까, 청춘 fc의 5개월
연장전으로 돌아온 프로그램은 지난 5개월간 청춘 fc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선수들의 동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저마다의 현실에 부딪혀 '축구'라는 꿈을 포기했던 청춘들, 그들은 어렵사리 다시 용기를 내어 청춘 fc라는 계기를 통해 접었던 꿈을 끄집어 내었고,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지만 다시 꺼내든 그들의 열정은 쉬이 가라앉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방송 출연'이라는 깜짝성 이벤트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나름 이십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밀어부쳐왔던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축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청춘들이 현실에 부딛쳐 그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걸터앉으려고 하는 순간, 다시 '꿈'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웠던 <청춘 fc 헝그리일레븐>, 종영 후 3개월이 지난 그들의 모습은 처음 '청춘 fc'를 만들겠다며 그들을 찾아가던 그때와 그리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 fc를 통해 다시 한번 '꿈'에 부풀었지만, 그들의 꿈을 맞이해줄 현실은 여전히 냉랭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청춘 fc 중 기대를 안았던 누군가는 전지 훈련 중 부상으로, 또 누군가는 부상이 없어도 현실 프로 구단의 벽은 높았다. 겨우 구해서 간 외국 아마추어 팀조차도 여의치 않다. 심지어 서류 심사조차 넘기 힘들다. 한 시간 남짓 각각의 동정을 따라간프로그램은, 안타깝게도 그 누구의 흔쾌한 성공담도 전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청춘 fc의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발길을 돌려 빨리 다른 길을 찾은 팀원들이 현명해 보일만큼. 

감독 안정환은, 프로팀을 운운하며 청춘 fc의 목표를 물어본 제작진에게 애초에 '팀'을 꾸리는 것 자체가 무리였었던 수준이었음을, 그만큼 한 것도 '기적'이라며, 어쩌면 애초에 청춘 fc라며 이들에게 부추긴 '꿈'자체가 무모했을 수도 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 어깨를 옹송그린 채 다시 모여든 팀원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청춘 fc 5개월의 꿈에서 얼른 깨어나기를 부탁하며, 지난 시간의 경험이라면,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해도 잘 할 수 있을것이라 지극히 원론적인 덕담을 전한다,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은 2015년판 다규 외인구단이었다. 현실에서 외면받은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정규 리그의 바깥에서 방송의 힘을 빌어 다시 한번 꿈을 키웠던 시간, 하지만 만화로, 혹은 영화로 1980년대의 극적인 성공 신화를 썼던 <공포의 외인구단>과 달리, 2016년 현실에서 외인구단으로 현실에 비집고 들어가려 했던 청춘 fc가 맞이한 현실은 냉랭하다. 시즌2를 묻는 제작진의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린 안정환처럼, 청춘들의 꿈을 현실로 이어가고자 프로 구단 전용을 타진했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고, 뿔뿔이 흩어진 채 ''꿈'에 도전한 선수들은 실력과 인맥과 경험이라는 현실의 벽에 주저앉고 만다.  


97분의 11, 무모한 도전 프로듀스101
그렇게 연장전을 통해 결국은 '꿈'을 이루기 보다, 다시 한번 좌절을 겪는 청춘들을 다룬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연장전>이 방영되는 그 시간 또 다른 청춘들의 도전이 한참이다. 바로 m.net이 새해 야심차게 선보인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듀스 101>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방송은 101명의 소녀들로 시작된 m.net의 걸그룹 선발 프로젝트이다. 방송 전, 혹은 방송 초기 101명 중 단 11명만을 선출하는 가혹한 방식, 그리고 101명의 개별 경쟁을 통해 a에서부터 f까지 차등을 나누는 혹독한 구별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이미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선출된 ak48등이 회자되며 콘텐츠의 독창성이 문제시 되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프로듀스 101>은 비판이 무색하게, m.net제작진이 원하던 바대로 열렬한 팬심을 구축해 간다. 1위에서 부터 꼴찌가지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온라인 투표제는 이미 등급을 나누던 그 시기부터 시작해, 매회 노이즈 마케팅을 톡톡히 벌이고 있는 중이다.  대중들의 외면 속에 조촐히 사라지게 생긴 <슈퍼스타 K>대신하여 m.net의 뉴트렌드로 자리잡을 기세다. 이미 출연한 그 누군가의 이름은 익숙하게 회자되기 시작했고, 또 누군가는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이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열렬한 호응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사람들은 안다. 카메라가 주로 정해진 몇 명, 혹은 몇 십명의 범위만을 왔다갔다 하고, 심지어 한 회에 한번도 얼굴이 비치지 않은 멤버조차 있다는 것을. 또한 대부분 인기를 끄는 멤버들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거대 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들이라는 것을. 심지어, 실력파 걸그룹을 뽑는다 하지만, 대중들의 선호도가 얼굴과 몸매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결국 대다수가 떨어지고 11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열 한 명 조차 <슈퍼스타 k>의 전철을 보건대 한 두 명도 기억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쩌면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연장전>과 <프로듀스 101>이 보여주는 가혹한 현실의 단면은 오늘날 가혹한 꿈의 댓가를 치루는 청춘 현실의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꿈꾸는 자가 감수해야 할 현실적 댓가말이다. 청춘 fc의 청춘들은 어쩌면 애초에 꿈꿀 자격조차 미흡한 함량 미달의 청춘들이었을 지도 모르고, 아이돌의 범람 세계에서 한번이라도 카메라 앞에 노출될 기회를 가지는 자체가 감지덕지 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문송합니다'의 세상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보다는 '계약직', '기간제', 혹은 '알바'가 익숙한 현실 청춘의 또 다른 만화경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안정환 감독의 충고처럼, 카메라가 꺼지면 빨리 그 tv 속 현실에게 깨어나서, 냉정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처세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전하는 그 누구 한 사람도 이렇다할 자랑거리가 없는, 심지어 서류 심사에서조차 미끄러지고 마는 청춘 fc연장전의 멤버들이 그냥 설 연휴 끄트머리의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접어지지 않듯, <프로듀스 101>에서 냉혹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그리고 가혹한 시청자 투표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또 다른 청춘들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보아 넘기는 게 쉽지 않다. tv는 청춘들의 도전과 꿈을 말하지만, 보여지는 건 그들의 좌절과 낭패, 그리고 안간힘이다. 그들의 젊음을, 꿈을 볼모로 삼아 잠시나마 시청자의 눈과 귀를 빼앗는 프로그램이, <동물의 세계> 속 약육강식의 현장보다 잔인하다. 




by meditator 2016. 2. 14. 18:00

이제 8회를 맞이한 mbc의 수목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은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아시아 국가 중 1위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현실은 이혼율이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 남녀들을 배경으로 드라마는 '한번 더 해피엔딩'을 꿈꾸고자 한다. 


그러니 당연히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각자 한번씩 이별의 아픔을 가진 남녀들이다. 여주인공 한미모(장나라 분)도, 그녀와 엮이게 되는 송수혁(정경호 분)도, 구해준(권율 분)도 다 한번씩 다녀온 '돌싱'들이다. 유수한 아침 드라마들이 이혼한 그녀들에게 멋진 총각을 배필로 선물한 것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인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8회에서 보여지듯이 한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전부인과 이제 새로이 만난 연인과의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혹은 아들 때문에 지레 여자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하는 홀애비 송수혁의 사정을 등장시켜, '재혼' 과정에서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 '한번 더 해피엔딩'의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렇게 매회 등장하는 해프닝과 사건들, 그리고 그를 보충 설명이라도 하듯 한미모의 재혼 컨설팅업체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이 엇물리며 '재혼' 과정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지수를 높이려 하지만 <한번 더 해피엔딩>의 시청률은 좀처럼  6%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재혼'을 둘러싼 상황 설정은 그럴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로맨틱물들이 지겹도록 반복한 여주인공과 그녀와 엮이게 되는 남자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울궈먹듯이 되풀이 한 점이 크지 않을까 싶다.



<섹스 앤더 시티>의 2016년판?
그러나 '사랑'이야기의 진부함만이 아니라, 어쩌면 <한번 더 해피엔딩>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드라마가 동지애적 연대로 등장시키는 한때 최고의 걸그룹이었던 '엔젤스', 그녀들에 대한 공감 부재가 크다는 것이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은 재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한미모이지만, 극중 스토리는 그녀의 재혼 해프닝을 중심으로, 한때 그녀와 걸그룹을 이뤘던 고동미(유인나 분), 백다정(유다인 분), 홍애란(서인영 분)의 이야기로 채워져 간다. 

틈만 나면 브런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고동미의 집에 모여 술잔을 나누는 그녀들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2004년까지 무려 여섯 시즌에 걸쳐 제작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가 그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여성들의 솔직한 '성' 담론을 펼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와 <한번 더 해피엔딩>의 구도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늘 해프닝을 만들던 캐리 역의 사라 제시카 파커는 역시나 첫 회부터 술로 인해 송수혁과 결혼 해프닝을 벌인 한미모와 흡사하고, 자유분방한 사만다(킴 캐트럴 분)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결혼을 미룬 홍애란이 겹쳐진다. 사회적으로는 능력있지만 여성적 매력이 부족한 미란다(신시아 닉슨 분)는 당연히 고동미가 연상되고, 소극적 여성성이 강조되었던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은 어쩐지 백다정같다. <섹스엔더 시티>의 그녀들처럼 <한번 더 해피엔딩>의 네 여성들은 모여앉아 허심탄회하게 '섹스'마저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심지어 역할은 사만다와 백다정으로 달라지지만 '유방암'에 걸려 여성성의 상실을 고민하는 에피소드처럼 비슷한 상황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왜 2000년대 뉴욕을 사는 네 명의 젊은 여성들의 성과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와 달리, <한번 더 해피엔딩>은 이혼율 2위의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하려 애쓰는 데도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쉬이 얻지 못할까. 물론 <섹스 엔더 시티>를 방영할 당시 트렌디한 패션 리더의 대명사가 되었던 캐리처럼, 한미모 역의 장나라의 여전한 미모와 아름다운 옷차림새가 화제가 되기는 한다. 마찬가지로 권율이 잘 생기고, 정경호는 역시나 귀엽지만 그 또한 그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드라마는 그럴 듯하게 서른이 훌쩍 넘은 여성들의 삶을 드라마로 재현한다고 했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며 그녀들의 현실적 삶에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역시나 같은 방송사의 <그녀는 예뻤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한 것은, 한때는 이뻤을 지는 몰라도 이제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모도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하고, 심지어 매번 입사 시험에 미끄러지는 '루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외모도, 스펙도, 가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열정적인 김혜진(황정음 분)이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치즈 인더 트랩>의 홍설(김고은 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통해 연기력 논란이 되었던 김고은이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현실 대학 교정 어디선가 마주칠 거 같은 고군분투하는 대학생 홍설의 모습이 김고은을 통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랑만 하는 그녀들의 부실한 삶의 이야기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의 한미모는 정말 이름답게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동료 백다정과 함께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로 오랫동안 일해오며 실제 드라마 속에서도 숱한 고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사리 '일하는 여성'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늘 고객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오버랩시키는 그녀, 하는 일이라곤 직원이 가져다 주는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지시를 내리는 것이 다인 그녀에게서 그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결혼 컨설팅 업체의 ceo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극중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공주처럼 이쁜 옷을 입고 찾아오는 고객들과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사랑을 헤아려 보거나, 자신과 엮인 두 남자와의 밥 먹고 술 마시는 등 사랑 만들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애초에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임에도 자신의 사랑에는 여전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비현실적 설정답게, 한때 걸그룹이었다가 겨우 서른 중반 나이에 잘 나가는 재혼 컨설팅 업체대표가 되기 까지의 내공이, 드라마 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한미모만이 아니라, 동업자 백다정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녀들이 하는 일은 한미모가 '재혼'을 하기 위해서 '재혼 컨설팅 업체'가 필요할 뿐, 꽃집을 하거나, 까페를 해도 별무 상관일 상황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그녀들의 동지 고동미와 홍애란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생님인 고동미와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도 일하지 않는다. 한때 걸그룹이었던 그녀가 비키니 차림으로 '호객'을 해 인기를 끌었다는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이 드라마 상에서 유일하게 업무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인기가 떨어진 자신의 홈쇼핑 제품을 들고 방송국에 가다가 후배를 만나 면박을 받고 방문 배달을 하다 팬을 만나기 위한 설정때뿐이다. 역시나 한때 걸그룹이었던 전력이 무색하게 양배추 인형같은 차림새로 바람둥이에게 당하고야 마는 고동미는, 흡사 <b사감과 러브레터>의 사감처럼, 여성성이 상실된 전문직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연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들은 한가롭게 브런치 까페에 앉아 자신에게 찾아올 진실한 사랑을 부르짖지만, 결코 현실에서 자신들을 괴롭힐 잘 안되는 사업 고민이나, 혼자 사는 삶의 경제적 고달픔 따위는 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이혼 현실에서 실제 가장 문제가 되는 이혼 후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에게는 논외의 이야기이듯, 자신에게 다가올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들에게 현실은 그저 장식이다. 당연히 그들과 엮이는 남자들도 고동미처럼 재수없게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전처가 있더라도 의사이거나, 아들이 딸렸어도 기자라는, 심지어 아내의 투병을 알고 눈물 흘리는 자산가이다. 그저 하릴없이 나이 먹어가며 방치되는 자신의 성적 홀몬이 문제일 뿐, 홀로 사는 삶에 닥칠 경제적 위기나 어려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클리셰를 덮을 '공감'지수조차 부족하니, 한미모의 미모만으로는 시청자의 관심 얻기는 역부족이다. 

by meditator 2016. 2. 12. 16:13

2015년부터 명절 특집 예능은 그저 단발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다음 시즌 예능을 선점하고자 하는 각 방송사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래서 각 방송사들은 기존의 뻔하디 뻔했던 예능 대신,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아 '고정'이 될 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의 '파일럿'들을 즐비하게 선보인다. 그리고 2016년 설에도 변함없이, 그 결과에 따라 방송사 별로 희비가 엇갈린다.


2015년을 강타한 예능의 트렌드가 '먹방'이었고, 해가 바뀌어도 '<나는 가수다>에서 <복면 가왕> 식으로 컨셉만 바뀌어 가며 스테디 셀러가 된 '음악 서바이벌 예능'이듯이, 설 연휴에도 변함없이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이 콘텐츠를 답습했다. mbc는 <이경규의 요리 원정대>로 쉐프의 열풍을 이어가고자 했고, 그에 대해 sbs는 <먹스타 총출동>을 통해 '먹방'의 끝장판을 제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시선을 끈 것은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kbs2의 <전국 아이돌 사돈의 팔촌 노래자랑>이 조용히 지나간데 비해, sbs의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와 mbc의 <듀엣 가요제>의 출연 인물들은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다. 물론 먹고, 노래하는 프로그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설날 씨름대회처럼 찾아오는 mbc의 <아이돌 육상 씨름 풋살 양궁 대회>가 올해도 변함없이 등장했고, 이에 대적하기 위해 sbs가 선보인 새로운 콘텐츠는 <머슬퀸 프로젝트>였다.



'나'를 돌아보는 새로운 트렌드의 예능
이렇게 떠들썩한 명절 잔치 분위기 속에서 신선한,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예능 몇 편이 선보였다. 바로 mbc의 <미래 일기>, sbs의 <나를 찾아줘>, 그리고 kbs2의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이 그것이다. 

mbc의 <미래 일기>에는 '시간 여행자'가 된 연예인이 등장한다. 미래의 어느 날 하루를 정하여 살아보는 예능판 '타임 워프'를 내세운다. 그런데 드라마 등에서는 '환타지'의 실현이 되었던 '타임 워프'가 '예능'이 되자 전혀 다른 질감을 드러낸다. 여든이 된 안정환, 결혼 사십주년이 된 강성연, 김가온, 엄마의 나이가 된 제시와 그 세월만큼 나이를 먹은 제시의 엄마는, 잠시지만, '나이듬'의 소회를 때론 웃프게,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반추의 시간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이 되었을 경우, 이번 파일럿 프로그램과 같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지를 모르겠지만, 7.8%(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에서 보여지듯 설날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 그 '의미'에서도 남다른 평가를 얻은 건 사실이다. 



그에 반해, sbs가 2부작으로 선보인 <나를 찾아줘>의 첫 술은 배가 부르기는 커녕, 먹던 밥숟가락도 뺏길 기세다. 부부,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을 내세운 이 프로그램을 그를 위해 가상의 상대방을 내세워, 진짜 자신의 지인을 찾도록 하는 '게임쇼'의 성격을 띠었다. 1회, 정인 조정치 부부, 2회 홍석천 부자를 출연시킨 <나를 찾아줘>가 각각 2.5%, 4.3%(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에서 보여지듯, 프로그램의 만듬새에 따라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첫 회 정인 조정치 부부를 내세웠지만, 부부의 스킨쉽으로 '똥침' 등의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는 방식 등은 이 프로그램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반면, 2회 나이든 아들은 몰랐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실감나는 대역 연기자를 통해 구현해내는 방식은 이 프로그램이 포기되기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가 정규 편성이 되기 위해서는 출연자의 섭외에서 부터, 패널의 선택, 그리고 대역 출연자의 적절한 선택까지 좀 더 가다듬을 여지를 많이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쇼의 성격을 띠면서도, 이를 통해 친하지만, 사실을 몰랐던 지인의 이면을 알아가는 '소통'을 내세운 기획 의도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2월 10일 밤 11시 10분에 1회를 선보인 2부작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앞의 두 드라마와 달리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하지만, 캐스터의 김성주, 해설에 정성호, 거기에 저승사자를 대신한 죽음의 심판진 네 명이 등장하는데서 보여지듯, 그 예전 <테마 게임>과 같은 드라마타이즈 예능이다. 
극중 주인공은 어느날 뜻하지 않게 죽음의 선고를 받고, 축구 경기의 '로스타임'처럼 마지막 추가 시간을 얻는다. 첫 회 주인공으로 등장한 달수(봉태규 분)는 떡을 먹다 죽게 되지만, 그에게 주어진 로스타임 12년으로 히키코모리에서 보람된 삶을 산 물리 치료사로 거듭나게 된다. 드라마는 이렇게 죽음 앞에서 삶의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을 중계와 심판진이라는 조미료를 끼얹어 흥미를 배가시키고, 12분, 12시간, 12개월, 12시간이라는 늘어나는 로스타임의 점층법을 통해, 마치 게임을 보듯 드라마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실제 내용은 <드라마 스페셜>의 한 꼭지같은 것이지만, 그 진행이 달라짐으로써 시청자를 흡인시킨다. 



'타임워프', 게임쇼, 드라마타이즈 예능처럼 서로의 형식은 다르지만, <미래일기>, <나를 찾아줘>,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공교롭게도 시끌벅적한 명절 예능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기회를 갖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하루 아침에 몇 십년을 건너뛴 자신과 지인의 모습에서, 그리고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아내와,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 주어진 뜻밖의 시간 속에서, 출연자들의 당혹스러움, 슬픔, 반성, 감동의 과정 속에서, 시청자들도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이 정규가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이들 프로그램들이 먹고 노래하고 떠들썩한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번쩍이는 불야성의 거리만이 고달픈 하루 일과를 달래주지 않듯, 먹고 떠드는 것만으로 여전히 허한 시청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예능이 등장하기를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6. 2. 11. 14:32
설 연휴, 각 방송사들은 저마다 상반기 예능전쟁에서 선점하기 위해 고심의 흔적을 쌓은 예능 파일럿을 선보였다. 하지만, 2월 9일 하루동안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안정환이라는 한 사람이었다. 2월 8일 8시 30분 mbc에서 파일럿으로 선보인 <미래 일기>를 통해 여든 살의 노인으로 '미래 여행'을 다녀온 안정환은 그 프로그램이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리를 비운 정형돈을 대신한 예능 '노망주'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하루에 두 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요한 비중으로 자리를 한다는 건, 이건 웬만한 예능인이 아니고서는 주어지지 않는 역할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리가 전문 예능인도 아닌, 안정환에게 주어졌다. 그런가 하면,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 한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하고 앉아 김구라의 다그침에 '예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만 서장훈의 '포스트 김구라'식의 은근한 행보도 만만치 않다. 

기사 관련 사진



안정환, 그 인간적 매력으로 대세가 되다. 
2월 8일 첫 선을 보인 <미래 일기>는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연예인들이 몇 십년 후의 미래로 여행을 떠난다는 프로그램의 사전 설명은 막연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런 <미래 일기>보다는 요즘 대세의 아이돌 하니나 트와이스의 유정연, 그리고 이미 <안녕하세요> 등에서 화제가 되었던 유민상 등이 출연한다는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뚜겅을 연 두 프로그램, 제 아무리 대세 걸그룹이 민낯을 보여주는 등 털털한 모습으로 어필해도, 여든 삶의 분장을 한 소회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안정환의 매력엔 역부족이었다. 

제 아무리 대세 걸그룹이 와도, 사연많은 개그맨이라도 그저 분장만으로 모녀와 부부의 상봉을 눈물 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시간'의 절묘함을 잡아 챈 <미래 일기>의 기획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눈물로 흐드러져 버릴 프로그램에서 여든의 독거 노인으로 돌아온 안정환은 나이듬의 쓸쓸한 소회와 고독을 충분히 피력하면서도, 결코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넉넉한 인간적 매력으로, <미래 일기>라는 프로그램의 예능적 성격을 한껏 살려냈다. 홀로 지하철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한 축구장에서도 안정환은 때론 그 자리에 없는 박지성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그 누구를 붙여놔도 여유롭게 상황을 만들어 가는 여유로운 리액션으로 그 어떤 예능인보다도 충분한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그가, <미래 일기>가 끝나기 기도 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의 mc로 등장한다. 낯부끄러운 망토를 뒤집어 쓰고 '예능 노망주'라는 수식어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오래 호흡을 맞춰왔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팀웍 안에 자리 포지션을 꿰어차버린다. 이전 객원 mc들이 김성주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유려한 진행을 해내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반면, 안정환은 시간에 쫓기는 홍석천을 놀림으로써 오히려 그에게 예능적 여유를 부여하고, 김성주의 부탁성 멘트 조차 피곤해 하며 제칠 정도로, 자신만의 분위기로 판을 장악함으로써, 정형돈이 했던 바 독자적인 흐름을 안정환식으로 재해석하여 고정의 자리를 꿰어차버렸다. 

예능인으로서 안정환의 매력은, 예능이라는 방점을 띄어낼 때 오히려 빛을 낸다. 그에 앞서 예능 유망주로 선을 보였던 송종국이 방송이라는 프레임에 자신을 맞추고자 애쓴 반면, 축구 해설에서 보여준 그의 '막말'해설에서 부터 드러난, 솔직하면서도 여유로운 인간적 매력이 예능인 안정환을 규정한다. 그래서 예능에서 첫 선을 보인 <정글의 법칙>에서 아직 몸이 덜 풀린 그가 그저 거친 가부장적 남자로서의 모습만 보였다면, 몇 번의 예능을 경험하면서 그 거친 모습 속에 숨겨진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는 여유를 지니게 된 것이다. <가이드>를 통해 아줌마들 군단을 어르고 달래며 네덜란드 여행도 거뜬히 해내고, 버려진 축구 유망주를 길어 올려 다시금 꿈을 꾸게 만들었던 <청춘 fc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인으로서의 안정환보다는, 인간 안정환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의 인간적 매력은 한국 축구 경기 홍보를 목적으로 했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대중적 확인을 얻고, 설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세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기사 관련 사진



서장훈, 분석적인 좌뇌로 예능에 한 자리를 차지하다. 
이렇게 안정환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내세워 예능 유망주로 거듭나고 있는 반면, 그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선수 출신인 서장훈의 행보는 안정환과 극에 서있다. '국보 센터'였던 그는 예능에서 전혀 몸을 쓰지 않는다. 그가 예능에서 자신의 주무기로 등장한 것은 오로지 그의 세치 혀, 그중에서도 '좌뇌'의 지령을 받은 이성적인 입놀림이다. 김구라의 지인으로 적극적 추천을 받아 예능에 등장한 그는 '김구라'를 벤치 마킹이라도 한 듯, 그의 방식을 이어받는다. 

<힐링 캠프>는 이경규를 대신해 독한 멘트를 담당하는가 하면, <썰전>2부에서는 김구라와 설왕설래를 벌이며, 시사 경제 분석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예능 포지션에 바탕이 되는 것은 일찌기 농구 선수 시절부터 독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지식이적 풍모이다. 2월 7일 <아는 형님> 상식 퀴즈에서 연승행진에서 보듯, 그의 언급들은 그저 웃기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경험, 혹은 그가 지녀온 지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예능에서는 드문 캐릭터이다. 아마도 언젠가 김구라를 대신해 <썰전>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서장훈이라면 가능할 정도로. 
 
처음 김구라와 함께 <사남일녀>를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하는가 싶더니, <썰전>에서 시사경제 분석자로 한 자리를 꿰어차고, 리얼버라이어티 <아는 형님>에서도 웬만하면 몸을 쓰는 대신, 한 마디의 촌절살인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려 애쓴다. 덕분에, 그의 때로는 독한 멘트로 인해 예능에서의 호불호가 갈리고, 그 지분이 쉽게 늘어가지는 않지만, 김구라 이후에 쉽게 드러나지 않은 김구라의 대체재로서 그의 영역은 분명해 지고 있다. 

by meditator 2016. 2. 9. 18:17

1월 9일 방영되었던 <무한 도전> 예능 총회, 새해를 맞이하여 이른바 예능계의 대부 이경규에서 부터, 막내 김구라의 아들 mc그리까지, 예능계의 인물들이 나름 총망라된, 말 그대로의 총회였다. 그 자리에는 2015년 mbc 연예 대상에 빛나는 김구라에서 부터, 2015년 예능계에 첫 발을 디딘 서장훈까지, 신구 예능인이 함께 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2015년에도 여전하 대세, 혹은 대세의 가능성을 가진 예능인들이 모인 자리에 여성은 jtbc <님과 함께>를 통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김숙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홍일점이 무색하게, 이날 김숙의 활약은, 그녀와 함께 예능적 화제가 된 윤정수와 커플로써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님과 함께>의 가모장 김숙이 여전히 예능적으로 감이 둔한 윤정수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 그녀가 한 대부분의 일이었다. 이경규가 예능의 대부로 여전한 예능감을 뽐내고, 김구라라 노회하게 예능계를 점칠 때, 김숙은 여전히 쇼윈도우 커플의 아내로써 그 역할을 부여받았다. 




송구영신, 여성 개그맨에게 2016년 새로운 기회가 
이날 <무한 도전>에서 김숙은 2015년이 여성 예능인으로서 힘든 한 해였음을 토로했다. 오죽하면 유재석과 동년배인 송은이가 나이 마흔 셋에 '적성 검사'를 할 정도로. 우스개 소리였지만, 적성 검사에서 사무직이 나온 송은이는 뒤늦게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한 해 동안 많은 개그맨들이 방송이라는 수면 위로 뜨고 지지만, 최근 몇 년간 여성 개그 우먼들에게는 유독 가혹한 시절이었다. 방송가의 대부분 뜨는 예능 프로그램은 남성 집단 체제로 전환되어져 가면서, 여성들의 입지가 적어져 갔고, 심지어 그나마 남은 자리도 개그우먼이 아닌, <런닝맨>의 송지효처럼 비 개그 우먼인 여성이 차지하기가 십상이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었던<해피 투게더>의 신봉선, 박미선도 결국 개편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여성 개그우먼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2013년 특별편에서 호응을 얻고 2014년에 정규로 편성된 <인간의 조건-여성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그우먼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미션의 제한이 가진 한계를 넘지 못하고, 이런 프로그램 특유의 호흡을 결국 개그 우먼에게 맡기지 못한 채, 비 개그우먼 여성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출연자의 호흡도 스스로 무너뜨리고, 미션도 뻔해지는 그저 그런 프로그램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이전에도 시즌 3까지 이어진 <무한 도전>의 여성판 <무한 걸스>도 있었다. 이렇게 여성판으로 이어진 <인간의 조건>, <무한 걸스>는 하지만 언제나 소재 고갈과 캐릭터의 소진으로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했다. 

<웃찾사>나, <개그 콘서트>, 혹은 <코미디 빅리그>에서 이국주, 홍윤화, 장도연, 박나래등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개그 프로그램 이외에서 그녀들의 활약은 그다지 용이하지 못했다. <라디오 스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장도연이 그 기세로 <썰전>2부에 참여했지만, 시사 경제를 다룬 이 프로그램은 아직도 그녀에겐 역부족인 듯 보이듯, 그녀들의 활약은 단발성을 넘기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2015년 10월 김숙이 윤정수와 함께 <님과 함께>에 첫 선을 보였다. 김숙과 윤정수는 여태까지 이런 가상 부부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예인들이 뻔히 사전에 각본에 의해 정해졌음에도 마치 진짜 부부인 듯 행세하는 것과 달리, '쇼윈도우 부부'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가상 부부 리얼리티에 새로운 질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제는 뻔해져 가는 가상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또 다른 생기를 부여하면서,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김숙과 윤정수는,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 제도가 우월한 우리 사회에서, '가모장'이라는 새로운 부부의 형태를 제시하며 또 다른 예능의 영역을 개척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예능적 입지를 만들어 갔다. 이제는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그들의 진짜 결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스스로 기회를 꿰어 찬 그녀들
물론 김숙의 이런 기회가 그냥 돌아온 것은 아니다. 우스개로 송은이가 적성 검사를 하고,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지만, 중년의 개그우먼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방송의 기회를 이들은 2015년 4월 '팟 캐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통해 개척해 나갔다.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빠진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모토로 시작한 이 방송은 팟 캐스트 인기 순위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호응을 얻었고, 방송이 외면한 그들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런 입담은 잊혀져 가는 두 개그우먼의 능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님과 함께>의 출연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돌아온 김숙은 달랐다. <인간의 조건>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그저 맏언니로써, 동생을 챙기고, 마흔 줄의 싱글로써 건강을 챙기는 별다른 특징없는 캐릭터 대신, 여전히 빚에 시달리는 윤정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수틀리면 언제라도 나가라 할 수 있는 당당한 가모장이란 캐릭터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색다른 캐릭터는 그녀와 송은이가 단발이지만, <해피 투게더> 걸크러쉬 특집에서 시청률을 올리는 견인차로 매력을 뽐내게했고, 이어서 모바일 예능이지만, 다섯 명의 개그우먼들이 평소에 이상형이었던 남성 게스트를 초대해 팬심 사심을 뽐내는 <마녀를 부탁해>로 이어졌다. 안영미, 이국주, 박나래가 그들이 출연하는 개그 프로그램과 단발로 출연했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캐릭터를 연장한 것이지만, <님과 함께>의 김숙의 활약이 컸던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그간 방송가의 '남성 중심주의 '덕에 입지가 좁아지고, 사라져 갔던 개그우먼들은 이렇게 자력갱생하여 자신들만이 가능한 캐릭터를 통해 방송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부디 이런 그녀들의 '귀환'이 <인간의 조건-여성판>의 트라우마를 벗어나, 여성 개그우먼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김숙의 가모장 캐릭터는 그리고, 박나래, 이국주가 보여주는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그녀들의 캐릭터는 '가부장제 세상'의 안티 히어로같은 캐릭터이다. 그녀들의 새로운 캐릭터가, 그저 뻔해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잠시 잠깐 '바람'처럼 소모되지 않고, '가부장제 사회'의 틈이 될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들의 '가모장'에 또 다른 변주가 필요할 것이다. 

2월 7일 방영된 <문제적 남자> 설날+발렌타인=설렌타인 특집은 개그우먼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이날 특집에서 가모장 김숙은 그 누구보다 비상한 두뇌 플레이를 보였고, 김민경은 우람한 덩치로 먹는 것 이상의, 섬세한 언어적 감각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김영희는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그녀만의 감성을 선보였다. 단발의 특집이지만, <문제적 남자>의 그녀들은 예의 웃음기 외에도 또 다른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문제적 남자>는 개그우먼들을 또 다른 효용으로 활용함으로써 프로그램 자체의 영역 확산은 물론, 개그우먼들의 가능성조차도 타진했다. 부디 <문제적 남자> 셀렌타인과 같은 기회가 그녀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2016년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6. 2. 8. 03:24

<집밥 백선생>을 통해 백선생 표 요리 붐을 일으켰던 백승룡 피디가 들고 나온 것은 '연기'였다.요리야 이미 '쿡방', 혹은 '먹방'이라는 트렌드화된 요리붐을 배경으로 마리텔을 통해 예능감을 인정받은 '백종원'이라는 요식업계 대표 주자를 얹어 화제성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연기라니? 날마다 지상파와 케이블에 범람하는 것이 연기라지만, 막상 그걸 가르치는 학교라니, 생경하기 이를데 없는 장르였다. 


그런데 이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박신양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부터 사태는 달라졌다. 2011년 sbs 드라마 <싸인>이후 그토록 그의 연기를 보고싶어 했지만, 오래도록 소식을 주지 않았던 독보적인 연기력의 배우 박신양이, 드라마도 아닌 예능에서 연기를 가르친다니, 그야말로,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못지 않은 파괴력을 지닌 캐스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이른바 '발연기'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장수원, 남태현이 합류한다니, '금상첨화', 그렇게 <배우 학교>는 이미 캐스팅만으로 잔뜩 대중의 관심을 불러모은 채 첫 선을 보였다. 



박신양과 학생들의 불협화음으로 시작된 배우 학교 
2월 4일 첫 선을 보인 <배우 학교>는 마치 박신양과 발연기의 대표주자들을 끌어모은 그 화제성에 주눅이라도 든 양,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신양이라는 카리스마있는 배우가 외딴 학교의 선생님으로 등장한 순간, 낯선 교실에서 머뭇거리던 학생들은 그의 존재감만으로 기가 억눌린 느낌을 십분 전달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과 조금이라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드라마 속 그의 캐릭터처럼 언성을 높이며 '나가!'라고 외칠 것만 같은 선생 박신양이, 아직 교실조차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당혹스런 질문은 던진다. 자신은 누구이며, 왜 연기를 배우려고 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란 무엇인지?라는 본질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당혹스런 질문에 막내 남태현부터 앞으로 나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 순간부터, tvn의 새 예능< 배우 학교>는 비로소 시작된다. 

이미 <배우 학교>의 백승룡 피디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예능으로 시작되었지만, 촬영을 하다보니, 드라마인지, 다큐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소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분명 <배우 학교>의 시작은 예능이었다. 진지한 박신양의 질문에 이전에 출연했던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처럼, 깐죽거리며 질문의 초점을 흐리고자 했던 유병재의 답은, 그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뿐만 아니라, 발연기를 했던 연기자들조차 연기를 가르쳐주지만, 그럼에두 불구하고 예능일 것이라는 '편안한' 기대감을 근저에 깔고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상대적으로 안일했던 학생들의 자세가, 대뜸 존재론적 질문으로 기선을 제압한 박신양의 선공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리얼 예능 <배우 학교>의 참 맛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어쩌면 예능처럼 시작했던 연기 강습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예능판에서조차, 자신의 진정성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박신양의 진지함으로 인해, 어쩌면 오글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상황이 리얼 예능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선 것이다. 



진정성', 리얼 예능의 본질이 되다. 
그리고 이런 아이러니한 예능의 맛은 바로 tvn이 독보적으로 가꾸어온 리얼 예능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즉, 물설고 낯설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전라남도 만재도에서 배우들이 밥만 해먹는 민낯의 리얼함, 그리고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노년의 배우들이 힘들게 배낭 여행을 하며 보여주는 여행의 민낯이 주는 진솔함, 바로 그 예능이지만, '진짜'인 상황이 주는 감동을 <배우 학교>는 재연한다. 

그래서, 박신양이 연기를 배우고자 온 학생들의 평범한, 혹은 틀에 박힌 대답에.그 '허위'에 정곡을 찌르는 질무을 던지고, 거기에 진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보이고, 심지어는 가슴이 옥죄어 오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비로소 <배우 학교>는 리얼 예능으로서의 진정성을 탑재해 간다. 

또한 발연기로 호되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연기자들, 혹은 또 하나의 예능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합승했던 유병재, 이원종 등이, 박신양의 비수와 같은 질문을 통해, 이제는 꽤난 질려버린 스테레오 타입화 된 그의 거죽을 벗고, 속살을 슬며시 드러낼 때, <삼시세끼> 혹은 <꽃보다 청춘>에서 보여졌던 민낯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시청자의 호응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한 혹은 낯선 학생들이 <배우 학교> 신입생으로서 포지션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견인차가 된 것은 역시 박신양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3분의 시간을 줄테니, 힘들 수 있으니 지레 기권하라니 선전포고를 했던 박신양, 그리고 그런 선전포고가 엄포가 아니었던듯, 어설픈 자기 포장 따위나, 예능적 멘트 따위는 단번에 헐벗겨 버리는 질문으로 예능이지만,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는 박신양의 '존재'가 바로 <집밥 백선생>의 백선생 못지 않은 존재감으로 새 예능의 성공을 점치게 한다. 



이런 박신양의 진솔한 모습은 그저 연기가 아닌, '참 스승' 혹은, 마음을 울리는 '멘토'에 갈급하는 시청자들을 이미 첫 회만에 감동시키고도 남는다. 무수한 '멘토'들의 지침서가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차지하는 세상에서, 연기를 매개로 등장한 매우 매력적인 '멘토'인 것이다. 날카롭고, 원칙적이지만, 그렇다고 냉정하지 않은, 가슴이 옥죄일 정도로 학생을 꿰뚫어 보지만, 아픈 학생에게는 한없이 따스하게 다가가는 선생의 모습으로 연출된 모습은, 방향을 잃고 상처받은 영혼들의 시대에, 드라마 속 박신양이란 캐릭터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오히려 종종 그를 드라마 속 캐릭터로 환원하는 듯한 오글거리는 자막과 <파리의 연인>의 ost의 범람이 걸치적거릴 정도로. 

tv가 대신 요리를 해주고, 대신 자연으로 돌아가 쉬게 만들고, 여행도 다녀주는 세상에, 이제 tv가 대신 진심어린 '선생'마저 해주는, '예능'의 시대, 그 첫 포문을 tvn의 <배우 학교>가 성공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by meditator 2016. 2. 5. 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