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를 들어 두 명의 여배우가 tv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바로 <치즈 인더 트랩>의 김고은과 <육룡이 나르샤>의 한예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계에서 '유망주'였던 이들 두 배우는 이제 그 활동 영역을 스크린을 넘어 tv로 확장했고, 그 반응은 호의적이다.



김고은의 재도약

2015년 한 해 김고은에게는 잔인한 한 해였다. 2012년 <은교>를 통해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스크린 데뷔식을 치룬 후, 스크린의 유망주로 2014년, 2015년 <차이나 타운>, <몬스터>,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까지 질주를 하였지만, 그녀가 받아든 성적표는 '재수강'에 가까운 처참한 성적이었다. 은교에서 70대 노인에게 미혹된(?) 10대의 도발적이면서도 순수한 소녀로 뚜렷한 각인을 남긴 그녀였지만, 그 이후의 작품에선 기억에 얹히는 캐릭터 대신, 연기력 부족, 발성 미흡'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차이나 타운>에서는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져 야생의 들개처럼 자라났지만, 사랑에 흔들리다 결국 자신을 거둬준 엄마와 같은 걷게 되는 여보스 역할이 위태위태하면서도 김고은 특유의 날 것의 이미지로 버텨냈지만, 이후의 <협녀, 칼의 기억>과 <성난 변호사>로 작품을 거듭하면서, 그간 그녀에게 부여된 '유망주'의 칭호가 '거품'이라는 곤란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그런 김고은이 웹툰계의 기대작 <치즈 인더 트랩>의 여주인공 홍설에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이 작품을 아끼는 팬들은 찬성보다는 반대의 우려를 앞세웠다. 하지만 이제 3회에 들어선 김고은은 <커피 프린스>를 통해 선머슴같은 매력의 순수한 여성으로 윤은혜를 스타덤에 올렸던 이윤정 감독의 도움으로, 원작보다 더 홍설같은 홍설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치즈 인더 트랩>에서 보여진 홍설로써의 김고은의 매력은 정형화되지 않은 정말 대학에 가면 만날 것 같은 여대생과 같은, 날 것같은 연기이다. 그리하여,<치즈 인더 트랩>을 통해 다시금 맺히기 시작한 그녀의 매력으로 보건대, 그녀가 <은교>이후 선택한 작품들이, 20대 초반이었던 그녀에겐 '유망주'란 이름으로 얹혔던 버거운 과속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치즈 인더 트랩>처럼 자기 또래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충분히 그 누구보다 생기있는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배우에게, '유망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과중한 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홍설로써 자신이 가진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김고은의 재발견이 반갑다.


한예리의 야심찬 도전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된 1월 11일, 그리고 하루가 지난 12일까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다. 바로 '척사광', 척준경의 후손으로 무당파의 장삼봉의 제자조차 그 앞에서 무릎을 끓게 만들었던 숨겨진 무림의 고수가 다름아닌 여성, 그것도 바로 왕으로 옹립될 후에 공양왕이 될 왕요의 여인인 윤랑(한예리)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저 그동안 그토록 정체가 궁금했던 척사광이 여자였으며, 그것도 윤랑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한예리는 뒤늦게 <육룡이 나르샤>에 합류했지만, 한예종 무용과 출신의 능력을 맘껏 살린 춤사위와, 그보다 더 설득력있는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약간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빚어내는 그녀의 대사는 안정적이며 매력적이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 속 한예리의 '씬스틸러'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다수의 독립 영화 출연을 통해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라는 칭송을 얻을 정도였던 한예리는, 국내에서는 소수의 개봉관, 뜻하지 않은 해프닝과 더불어 비극적인 결말로 인해 다수 관객과 만나지 못했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은 <해무>에서도 홍일점 연변 처녀 역할을 거뜬히 해냈으며, 최근 개봉한 <극적인 하룻밤>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어냈던 진짜 '영화계의 숨은 고수'였던 것이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 그녀가 출연했던 단막극 < 연우의 여름>도 단막극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렇게 무모한 작품 선택으로 고전하던 김고은의 재도전이나, 이미 좋은 연기로 인정받던 한예리의 tv 진출은 반가운 일이다. 비록 <치즈 인더 트랩>에서도 대놓고 김고은의 쌍꺼풀없는 가는 눈을 희화화시키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인조인간'이 판치는 tv 화면에서 '말 그대로 자연미인'이 가지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자연 미인'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그녀들의 연기는, 신선한 활력소로 드라마계에 작용할 듯하다.

by meditator 2016. 1. 12. 16:16

1월 10일 방영된 <다큐3일>에서는 신선한 기획이 시도되었다. 세계를 주무르는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 지지않은 해와, 떠오르는 해와 같은 두 나라의 각각 한 장소를 배경으로 72시간의 다큐 3일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 기획이 특별한 점은, 미국은 일본의 제작진이, 그리고 중국은 한국의 제작진이 참여함으로써, 두 나라를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의 관점의 묘한 이질감이, 똑같은 72시간이지만 전혀 다른 질감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꿈이 빚어지는 곳 창사의 중식당과 뉴욕의 24시간 빨래방

우선 먼저 방영된 것은 한국의 <다큐 3일> 제작진이 마련한 중국 창사에 자리잡은 중국 최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을 배경으로 한 72시간의 기록이다. 그간 우리나라 예능을 통해 종종 얼굴을 비춘 이 후난성 창사시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은 자금성을 본딴 엄청난 규모로, 연간 80여만 명의 손님이 찾아드는 성황리에 영업을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비싼 가격으로 일부 부유층만을 상대로 하는 식당처럼 인식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인식이 경제 호황과 더불어 생활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인기'를 얻어, 이제는 결혼힉을 비롯한 창사시 중국인들의 행사 전담 식당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결혼식 이벤트가 주말마다 ㅂ러어지며 해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식당엔 요리, 서빙에서부터 설겆이까지 450여명의 직원들이 곳곳에서 쉴사이없이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제작진들이 중국의 가장 큰 식당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일본 NHK 제작진은 미국 뉴욕의 빨래방에 시선을 맞춘다. 뉴욕 퀸스 지역의 24시간 빨래방, 일찌기 신대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던 유럽인들의 열망은 이제 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로 확산되어 여전히 뉴욕을 '꿈'의 도시로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빨랫감을 가지고 모여드는 다양한 국정의 사람들은 그 여전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현주소이다.

 

똑같이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임에도 중국과 뉴욕이 전하는 정서는 다르다. 말이 '차이나'라는 한 나라지, 중국사는 중국이란 대륙의 구심점과, 그 구심점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영역, 혹은 새로운 구심점을 생성하려는 무수한 민족의 쟁투이다. 중국의 역사 이래 가장 오랜 '한족'의 통치를 성공했다는 현 '차이나'에도 불구하고, 변방에서는 '한족'의 전횡에 맞서 자국의 독립을 고소원하는 티벳을 비롯한 다수의 소수민족들이 존립한다. 그런 현대사의 구심점으로 이제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세계 경제의 구심점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그 차이나머니의 가장 큰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창사시의 중식당에는, 차이나드림을 가지고 모여든 450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72시간 지켜보는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의 제작진들이 있다.

 

제작진에 눈에 비친 경제 호황 속의 중국, 그리고 그 증거인 창사시의 중식당은 몇 천 명의 손님들을 끌어모아, 위안화를 뿌리며 거나하게 벌어지는 결혼식으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그런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450명의 직원들은 마치 우리나라 경제 발전기 고향을 떠나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 일찌기 일터로 떠난 6,70년대의 젊은이들을 보는 시점과도 같다. 한편에서 휘황한 이벤트와, 그 이벤트의 한 편에서 십대의 어린 나이에도 공부를 접고 가족을 떠나 한 푼이라도 벌며 자신의 꿈을 기원하는 직원, 그리고 아이들은 물론, 부부마저 떨어져 살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당차게 견뎌내는 또 다른 직원들을 통해, 경제 부흥과, 그 경제 부흥기의 물결을 타고 저마다 자신의 분홍빛 미래를 꿈꾸는 중국인들의 허니문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신흥 강대국 중국과 지지않는 태양 미국,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그렇게 중국 창사의 대식당이 분명치는 않지만 그래도 '분홍빛 장미빛 미래'의 꿈을 향한 72시간이었다면, 일터가 아닌, 빨래방이라는 정처없는 공간에 카메라의 촛점을 맞춘 뉴욕의 NHK제작진이 보여준 '아메리칸 드림'은 어쩐지 삶의 '비상구'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다친 엄마를 대신하여 폭력이 난무하는 자신들의 할렘가 주거 지역을 피해 그래도 안전한 빨래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 빨래를 하는 동안 마음껏 놀게 해주는 흑인 할머니,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를 피해 미국으로 돈을 벌러온 그리스인, 위험을 무릎쓰고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인,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릎쓴 이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되도록 여전히 미국 시민이 되지 못한 남미의 청년, 20여년 뉴욕에 살면서 퀸즈 지역의 변화를 몸으로 겪어낸 백인 원주민, 미국의 경제 위기 때 노숙자의 위기를 거쳐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가장, 불과 72시간이지만,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좁게는 뉴욕 퀸즈 타운, 그리고 그곳을 통해 보여지는 현재의 미국, 나아가 세계의 현실이 빨래를 하러 들르는 정처없는 이 공간을 통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이 사전에 상의 하에 장소를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각자 방송국의 결정이었는지, 절묘하게도 중국의 대식당은 이제 막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신흥 부국 중국의 흥분과 흥청거림, 설레임이 담겨있다면, 2001년 쌍둥이 빌딩 폭파 테러와, 2008년의 경제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유'와 '부'에 대한 열망을 가질 수 있는 꺼지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정처없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꿈을 찾아 날아드는 세계 각국의 이미자들의 집합소 미국을 '빨래방'이라는 '부유(浮流)한 공간을 통해 절묘하게 그려낸다. 중국이란 부의 구심력이던지, 저마다 다른 인종의 원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열정은, 거대한 중식당과 삭막한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절묘하게 묘사된다.

 

또한 어린 나이에 꿈을 찾아 식당의 궂은 일을 마다치 않는 직원이나, 생이별을 마다하지 않는 부부의 애틋한 사연에 촛점을 맞춘 한국의 72시간이 한국식의 '정(情)과 '신파'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까칠한 미국 중년의 질문마저 가감없이 담아낸 NHK의 관찰자적인 시선은, 결코 녹록치 않을 아메리카 드림의 현주소인 양 '거리감을 쉬이 접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이 바라보는 신흥 강대국 중국과, 일본이 바라보는 그럼에도 지지않는 태양 미국에 대한 은밀한 속내가 은연 중에 드러난 것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6. 1. 11. 15:46

17회 <응답하라 1988> 자체 최고 시청률 (15.472% 닐슨 코리아)을 찍으며 쌍문동 골목길의 아이들은 저마다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80년대가 저물었다. 7수를 하며 사랑하는 여자 애를 위해 학 400마리를 접던 정봉이 마저 성균관대 법대에 들어서며 화려한 90년대를 시작한 '쌍문동 서민'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접어든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문득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그래서 도대체 19080년대, 그 중에서도 1988년은 어떤 시대였던건가요? 라고.

 

 


핏줄과 우정만 남은 시대?

기꺼워하지 않는 동생을 데려다, 국방색 담요까지 씌운 의자에 앉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자는 정봉, 그리고 그런 형의 해프닝에 언제나 그랬듯이 군말없이 따라주는 동생 정환. 그리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정봉이 빌던 소원, '정환이 너는 (심장 수술을 한 자기처럼 못하는 거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정봉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정환은 영화 <탑건>을 보며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형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공사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정환의 마음을 눈치채고, 형을 위한 것이 아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정봉의 말에, 정환은 형의 시선을 피하며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이 장면이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애초에 정환은 '형'의 소원을 알았어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형은 흔쾌히 그런 동생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아마도 두 형제의 엔딩은 각자 자신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응답하라 1988>의 선택은 기승전 '가족'이다. 그들은 '가족'으로 '금의환양'한다.

 

어디 정환뿐인가? 17회에 마무리는 부모들이었다. 도란도란 모여앉은 아빠들, 엄마들은 각자 자신들의 꿈을 떠올리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가족'과 '가정'으로 회귀되었음을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그들의 수다는 그들이 한때 '가수'를 꿈꿨던, '화가'를 꿈꿨던, 심지어 '한 춤'을 했건 기승전 '가족 걱정'으로 귀결된다. 덕선과 보라의 엄마는 보내지도 않은 딸내미들의 결혼 생각에 눈물짓고, '개딸'이라며 버럭거리는 '동일' 아빠는 '꿈'이 없다는 딸을 다독이며, '아버지'로만 살아온 삶에 자부심을 내보인다.

 

부모들만이 아니다.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최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부모의 재혼 덕분에 하루 아침에 호형호제하게 될 선우와 택이가 서로 이물감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을 나눌 수 있듯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가까웠던 쌍문동 골목길 아이들은 그 '핏줄보다 진한 우정'때문에 덕선에 대한 사랑조차도 내보일 수 없었다. 자신보다 친구를 더 생각하는 '우정'의 시대다.

 

 


 


대한 뉘우스같은, 트루먼 쇼같은

이런 <응답하라>의 화법은 죽은 동료의 시신을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나는 산악대의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우정과 다르지 않고, 역사의 격동기에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국제 시장>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니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족'의 눈물어린 후원 뒤에 '성공'을 일군 우리 앞선 세대들의 영광을 찬란하게 '홍보'했던 ,대한 뉘우스>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응답하라>에 없는 것이 있다. 거기에 공중파 시청률 고공 행진을 벌이는 드라마들에 필수 요소인 질투와 질시, 그리고 협잡이 없다. 쌍문동 골목길 아줌마들은 그 아줌마들의 전매 특허라는 뒷담화가 없고, 한결같이 '이웃집을 질투하는 대신' '내집처럼 이웃집을 걱정한다', '부러워는 할 지언정,' 사촌이 땅을 사도 배아프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그래서, 눈물과 감동이 넘쳐나느 대신, 회를 거듭할 수록, 그 눈물과, 가족애와 우정이 공허해진다.

 

마치 가상의 80년대 같다. 드라마 속 80년대에는 80년대의 광주 사태 이후, 깊어질 대로 깊어진 지역 간의 골은 드러나지 않은 채,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격의없는 이웃으로만 등장한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사회적 빈부격차는 서울 변두리 쌍문동 골목길은 피해간다. 저마다 아파트니, 땅을 향해 달리던 부를 향한 열망도 그저 tv 배경 화명일 뿐이다. 그저 경제 융성기의 세례를 받고, 재수를 거쳐 다들 무난하게 저마다 화려한 스펙을 얻는다. 공무원 시험 10년이라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꿈도 꾸기 힘들.

 

허긴 화려한 꽃구경같은 <응답하라> 속 진실은 있다. 광주 사태가 나건, 지역 감정의 골이 깊어지건, 사회적 빈부 격차가 심해지건, 그저 붙잡고 매달리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족'밖에는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대사라는 '빈곤함'이다. 아버지 세대건, 어머니 세대건, 그저 그 시대를 이야기할 때, 6.25세대건, 4.19세대건, 70년대 세대건, 이구동성으로 자식을 위한 희생외에는 말할 것이 없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증명이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건 내 새끼, 내 식구 먹고사니즘이 최대 과제였던 '가족주의'라는 구심점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 현대사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국회 청문회 자리에 앉은 높은 분들이 내 가정의 보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그라지 않는 것이 범사가 되어버린 세대인 것이다. 그리고 한때는 의식이 있건 어떻건 결국은 개인의 '입신양명'으로 귀결되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보라처럼 의식있는 아이들도 결국은 '사법시험'을 통해 금의환양의 길을 택하고, 홀어머니 밑의 선우는 의대 전액 장학금이라는 화려한 성공으로 보상해야 하는, 하다못해 공부 못하는 보라도 비행승무원으로 제 앞가림 정도는 번듯하게 했다 해야 사람대접을 받는 시대인 것이다. 그게 평범한 서민의 삶이라고 <응답하라>는 은연중에 강요한다.

 

by meditator 2016. 1. 9. 15:52

고증으로부터 매우 심하게 자유로운 '퓨전 사극'이 대부분인 세상에 kbs1의 대하 사극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제 아무리 <육룡이 나르샤>의 김명민이 피를 토하듯 소리를 높여도, 2014년 50부작으로 방영된 본격 정치 사극 <정도전> 속 정도전를 따를 수는 없다. 비록 그 후속작인 <징비록>이 '임진왜란'이라는 이제는 역사극에서 진부한 소재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 '역사'를 징계하는 입장에서, 선조를, 그리조 당시의 지배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점에선 <징비록>의 의의 또한 어설픈 퓨전 사극의 주제 의식을 뛰어넘는다. 그런 kbs1의 사극이 2016년을 맞이하여 들고 나온 것은 분야도 생소한 '과학' 사극, 우리 역사에서, 특히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빛나는 과학 문화 유산을 남긴 주인공 장영실과 장영실이 살았던 시대를 '과학'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과학'사극,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손에 손 잡고 극장으로 향해 <인터스텔라> 등의 우주 과학 영화가 한국에만 오면 흥행을 기록한다지만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수포(수학 포기)', '과포(과학 포기)'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현재의 현실에서 단발성의 영화가 아닌 긴 흐름의 '과학'의 콜라보레이션 대하 사극은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첫 회를 방영한 <장영실>은 정통 사극으로써의 클리셰를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거기에 낯선 '과학'이란 장르를 태종의 구식례를 통해 섦명해 냄으로써 명쾌하게 엮어간다.

 

 


 

출생의 비극, 그 평이한 사극의 클리셰

첫 장면 늙고 노쇄한 몸을 이끌고 벌판을 헤매는 노년의 장영실, 하늘을 보며 쓰러져간 그의 손에는 그의 말대로 그가 이루려 했던 '세상의 법칙' 혹은 '이치'를 밝혀내고자 애썼던 흔적이 들려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과학'에의 열정을 거스를 수 없었던 노학자의 집요한 열정에 대한 '물음표'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 노인의 어린 시절, '은복'이었던 시절의 장영실로 돌아간다.

 

그리고 뛰어노는 말을 섬세하게 조각하는 어린 은복이 등장하고, 그런 천진한 은복을 끌고, 그가 장씨 가문의 핏줄이라며 부득불 우기며 장씨 집안 제사에 들이닥치는 그의 어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은 사극에서 그래왔듯이, 기녀의 몸에서 난 이제 관노가 될, 환대받지 못한 장씨 집안 핏줄 은복의 수난사라는 사극의 클리셰가 전개된다. 사촌인 장영제가 만든 해시계에 뱀 조형물로 절기의 변화까지 더하려 했던 은복은 그의 재능을 시기한 사촌의 발고로 인해 멍석말이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 기가 막히게 등장한 그의 아비로 추정되는 인물 장성휘(김명수 분)는 장영실을 매타작으로부터 구해줄 뿐 아니라, 장씨 집안 모두가 부인한 은복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장씨 집안 자식임을 인정하는 항렬에 따른 '영실'이란 이름마저 지어준다.


뿐만 아니라 장성휘는 고려 시대부터 천문에 조예가 깊었던 그답게 어린 영실의 재능, 그리고 자신을 쏙 빼어닮은 듯한 열정을 눈밝게 알아본다.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연구 성과인 천문도를 주고, 일식을 함께 관찰하며 그 원리를 설명해 준다.

 

하늘을 보기를 즐겨하고,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아비와 아들, 그리고 그 연구의 열정을 통해 부자의 연과 유대가 이어지는 장성휘, 영실 부자의 이야기는 비록 '과학'에 문외한인 시청자라 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막상 컴퓨터 그래픽까지 등장하며 설명해 내려간 부자의 관심 분야는, 아비와 아들이 밤 하늘에 함께 그려간 별자리를 빼놓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저, 저게 당시의 '과학'이로구나, '천문'이라는 거구나 정도였다. 해시계와 거기에 절기를 더한 영실의 도발에 분노한 장영제의 모습은 그게 성리학에서 과학으로 바뀌었을 뿐 정도로 이해될 뿐이었다.

 

 


태종의 구식례를 통해 단번에 설득해낸 조선 시대의 과학

하지만 좀처럼 쉬이 섞여들지 않던 '과학'이 명쾌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영실로 인한 장씨 집안의 소동이 아니라, 그들이 살던 동래와는 한참 떨어진 개경의 이방원, 이제는 임금이 된 태종의 구식례로 부터이다. 이미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또 한번 등장한 태종은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장영실>은 그 익숙함을 진부함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절묘하게 이용한다. 즉, 이미 타 드라마를 통해 아비인 태조와 함께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 인물, 나아가 자신의 동복, 이복 형제들을 제거하고 왕자를 차지한 태종의 전사가, 바로 <장영실>에서 이제는 왕이 되었으나 정통성에 초조한 중년의 태종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왕조가 시작되고 무려 세 명이 왕좌에 오른 1401년, 하지만 조선의 3대왕 태종은 조선 건국의 최대 공신인 정도전을 비롯하여 자신의 형제들을 죽음으로 몬,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친한 벗이었던 영실의 아비 장성휘가 태종을 다시 볼 수 없는 벗이라 칭하듯, 이미 조선을 건국할 당시부터 조정을 멀리했던 고려 유신 세력을 비롯하여,

이제는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를 쟁탈한 태종을 못마땅하게 하게 광범위한 반대 세력들이 조정 내에 조차 암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태종 자신 역시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처럼, 형제들을 제거하고 오른 왕위 자리에 내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전제로 하여, 드라마 <장영실>은 태종의 구식례를 준비한다. 해가 잠시 가려졌다 돌아오는 일식은 당시 전통적 관습에서 하늘이 왕의 죄를 사해주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고 태종은 다가올 일식, 구식례를 통해 자신의 죄를 하늘이 사해줬다는 이벤트화 하려는 열망을 가졌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미 시청자들이 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태종의 역사적 전과와, 그런 전과를 구식례라는 이벤트를 통해 뒤집으려는 태종의 정치적 제스처를 통해, 그리고 거기서 등장한 일식의 측정의 정확함에 대한 해프닝을 통해, 드라마 <장영실>은 막연했던 장씨 부자의 과학적 흥미와 열정을 조선이라는 시대적 공간에 구체적 입지를 가지도록 풀어낸다. 마치 마법사처럼, 태종의 구식례가 실패할 것이라 예언하는 영실의 아비 장성휘는, 마치 <해를 품은 달>의 성수청과 하늘의 신탁을 받은 듯한 무녀들을 연상케 한다. 그렇게 단박에 정치적 혹은 극적 개연성을 얻은 '과학'의 존재감은 구식례의 실패를 예견한 아비 장성휘와, 그 아비의 재능과 열정을 그대로 본딴 아들 장영실을 통해 흥미진진한 조선 시대의 과학사를 맞이할 자세를 시청자로 하여금 갖추도록 한다.

by meditator 2016. 1. 3. 14:19

새해 첫 날부터 jtbc의 새로운 예능이 한 편 등장했다. <코드 비밀의 방>

사방이 막혀있는 밀실에 갇혀있는 열 명의 출연자, 각 방에서 주어진 문제를 풀어 밀실을 탈출하는 힌트를 얻고, 그 힌트를 모아 밀실을 탈출하는 '밀실 탈출 두뇌 게임'이다.

정준하, 신재평, 한석준, 김희철, 서유리, 이용진, 지주연, 최송현, 백성현, 오현민 등 열 명이 첫 번 째 밀실에 갇힌 열 명의 출연자이다.

 

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드 비밀의 방>은 제목처럼 몇 가지 코드로 설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성패는 바로 프로그램이 내걸고 있는 코드의 성공 여부로 결정되어진다.

 

 

 

밀실부터 새롭지가 않다.

우선 무엇보다 <코드 비밀의 방>이 차별성을 가지고 내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밀실'이다. 그런데, 이 밀실이란 상황이 그리 낯설지 않다. '밀실'이란 설정은 '추리' 소설에서 익숙한 상황 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는 명탐정 코난에서 아저씨 탐정의 목소리를 빌어 코난이 추리를 할 때 가장 비장하게 내리는 범죄 상황이 바로 '밀실입니다'이다. 하지만, 그 추리의 '밀실'이란 그 어떤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안보이는 상황같지만, 역설적으로 추리를 통해 해결해 가야 하는 고난이도 트릭을 상징한다. 그렇듯, 이미 국내에서 이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지식 게임에서 '밀실'은 그리 생소한 상황이 아니다. jtbc의 또 다른 지식 게임이었던 <크라임 씬>이나, <box>에서 조차 '밀실'은 흔히 등장하는 전제 조건이었으니까.

 

그렇게 이제는 두뇌 게임에서 그리 생소하지 않은 밀실에 열 명의 출연자를 밀어넣고(?) 탈출하라고 했지만, 결국은 열 명이 문제를 풀고 그 중 한 명이 탈락하는 설정은 엎어치나 메치나 <더 지니어스>와 흡사하다. 그런 면에서 <코드 비밀의 방>은 이미 jtbc가 선점한 <크라임씬>이라는 사건 추리의 독보적 영역을 포기한 채 혹은 유보한 채, 그리고 tvn이 이미 압도하고 있는 <더 지니어스> 시즌의 아류라는 오명을 벗기위해서라도 '밀실'을 배경으로 한 두뇌 게임을 한 이유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걸 위해 나름 신선한 출연자 군을 마련하려 했지만, 결국 이미 <더 지니어스>를 통해 카이스트 출신의 영민함을 선보인 오현민과, <문제적 남자>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인 신재평을 재 활용함으로써 '신선함'에 있어 스스로 자충수를 보이고 만다. 첫 회에서 신재평이 보인 모습은 <문제적 남자>에서의 갓재평도, 제작진이 마련한 반전의 어눌함도 미비한 어정쩡한 모습이었으며, 그나마 활약이 많았던 오현민의 경우는 <더 지니어스>와 겹쳤다. 백성현이나 이용진 역시 이미 <box>를 통해 보였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평소 이미지와 달리 예리한 문제 풀이와 협상을 통해 이른 밀실 탈출을 선보인 정준하나 종횡무진 코드 협상에 바빴던 한석준은 신선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캐릭터가 첫 회에 뚜력하게 인상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제작진은 '문제'를 푸는 것 이상, 밀실 탈출의 숨겨진 코드로써 '협상'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하지만, 첫 회에서 그 점이 제대로 보여지진 않았다. 또한 게임에서의 '이합집산'은 아쉽게도 <더 지니어스>를 통해 충분히 울궈질대로 울궈진 설정이다.

 

아마도 제작진은 자칭 '평화'를 사랑한다는 우주 대스타 김희철을 통해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경쟁이 아닌 또 다른 코드로서의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가져가려고 했었지만, 김희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의 그의 존재감이 그렇듯, 자칭 우주 대스타와, 자칭 평화주의자, 혹은 자칭 넓은 인맥의 체감은 멀었다. 게임 중에서 그의 '평화주의'와 그의 '인맥'은 '만장 일치' 그 한 순간 외에는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진부해져 버린 두뇌 게임

그런 면에서 같은 날 첫 회를 선보인 나영석의 <꽃보다 청춘>과 <코드 비밀의 방>은 비교가 된다. 그저 아이슬란드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낸 세 청춘의 이야기이지만, 단 첫 회만에 시청자들은 출연자인 세 명의 배우에게 흠씬 빠져들도록 나영석 pd는 세 사람을 그려내는데 고심한다. 그저 방을 제대로 예약하지 못한 것만으로 조정석이란 사람의 성격을 그려내 버리는 상황이, 바로 나영석pd의 불패를 만드는 전제 조건인 것이다. <코드 비밀의 방>은 성격이 다르지 않냐구? 결국 게임을 하건, 여행을 하건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은 다음 회를 기약할 테이까.

 

그런 면에서 <코드 비밀의 방>이 보여준 첫 회는 분명 제작진은 나름 자기 만의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그 그림이 마치 밤새 대본만 줄줄 외어 온 연기자와 같달까? 시청자들이 제작진이 만들어 놓은 혹은 풀어놓은 대사 속에서 프로그램의 맛을 느껴야 하는데, 한 시간 여의 시간 동안 열 명의 출연자가 저마다 무언가를 하려고는 했지만, 과연 정말 그들이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그 결정적 요인을 설득하는데 미진했다고 보여진다. '평화주의자' 김희철은? 반전의 두뇌 정준하는? 그리고 멘붕에 빠졌던 최송현은? 심지어 마지막 남은 네 사람이 모두 알게된 코드의 비밀은 어떻게? 그런 두뇌 게임의 기승전결조차 첫 회에선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으니까. 이미 <더 지니어스> 지난 시즌을 통해 개그맨 장동민이 유수한 두뇌들을 물리친 기적을 행해보인 두뇌 전쟁에서 더 나아가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는지 <코드 밀실의 방> 제작진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듯하다.

 

아니 어쩌면 상황의 미진함, 혹은 캐릭터의 미흡함보다 <코드 비밀의 방>의 발목을 사로잡는 것은 이젠 피로도가 느껴져가는 서바이벌 두뇌 게임일지도 모른다. 이미 <더 지니어스>를 통해 충분히 학습된 상황을 '밀실'이라는 결국은 비슷하지만 다르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통해, 그리고 <문제적 남자> 유형의 힌트들을 통해, 그리고 나름 '불꽃튀는 심리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 조차도 지식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흔해진 서로 살아보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정황을 되풀이하는 데서 오는 진부함, 그 자체가 <코드 비밀의 방>의 가장 큰 딜레마다. 과연 2015년 한 해 질리도록 '경쟁'과 피말리는 '심리전'에 지친 시청자들이, 새로와 보이지도 않은 이들의 두뇌 심리전에 함께 할까?

 

 

 

by meditator 2016. 1. 2. 02:53

2015년이 지고 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한 해를 보내며 '회자정리'의 많은 회고들이 등장한다. 방송사마다 자신의 방송국에 기여한 출연자들에게 무수한 상을 수여하고. 그런데, 2015년이나, 2016년이 사실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인간의 잣대로 꾸역꾸역 새겨 넣은 것처럼, 사실 2015년을 지나 2016년이 된다한들, 천지개벽이 되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마침표와 쉼표를 찍으며 한 시름 덜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저마다의 규정을 내리지만, 그 속에서 그저 너도 주고 나도 주고, 좋은 게 좋은 거였지를 넘어, 결국은 '병신년'을 진짜 '병신'스럽게 만들지도 모른 우려의 예능 경향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돌아온 예능의 귀재, 이수근과 노홍철, 그리고 
10월 27일 기준으로 5183만 4318뷰를 기록한 <신서유기>는 침체된 강호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케이블 예능의 부흥과 이제 그 여세를 몰아 인터넷 기반의 콘텐츠에서조차 성공 신호탄을 쏘아올린 나영석 피디의 전성시대를 검증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성과의 수면 아래, 잠시 수면 위로 오르다 사라진 화제가 하나 있다. 바로 '도박'으로 물의를 빚고 자숙을 했던 이수근의 복귀이다. 영리한 나영석 피디는 그런 세간의 문제 제기를 의식하고, 돌아온 이수근을 '서유기'의 말썽꾸러기 캐릭터 '손오공'으로 설정하여 그에게 금테두리를 씌웠다. <서유기> 속 천하의 불한당 손오공을 부처가 머리띠를 씌워 꼼짝 못하게 복종시키듯. 마치 그간 사회적 물의를 빚은 '속죄'의 양으로 이수근은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머리띠를 한 채, <신서유기> 속에서 온작 굴욕적 상황에 던져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에게 따라붙었던 섣부른 복귀에 대한 구설수도 사라졌다. 부처처럼 예능신 나영석의 품 속에서 이수근의 원죄는 사함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신서유기>를 통해 예능 신고식을 혹독하게 하지만 무난하게 치뤄낸 이수근은 발빠르게 예능으로 복귀했다. <신서유기>를 함께 했던 강호동과 함께 한 jtbc의 <아는 형님>, 그리고 역시나 <신서유기>를 함께 한 은지원과 함께 xtm의 <타임 아웃> 등이다. 또한 일일 mc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참석하여, 정형돈의 후임 물망에 섣부르게 회자되기도 한다. 

이수근만이 아니다. 지난 9월 2부작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으로 단발로 모습을 보였던 노홍철은 2016년의 콘텐츠로 예견되는 '집방'을 노리는 tvn의 <내 방의 품격>으로 돌아왔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노홍철의 길바닥 쇼> 또한 예정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김용만 역시 tvn의 8부작<쓸모있는 남자들>에 이어, mbn의 <오시면 좋으리>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박'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예능 스타들이 속속 2015년의 끝무렵에 돌아왔다. 그런 가운데 섣부르게 신정환 등의 복귀를 점치는 사람들 조차 등장하고 있다. 이들 스타들은 이수근이 인터넷 기반의 콘텐츠에서 시작하여, jtbc로, 그리고 노홍철이 단발성 예능으로 시작하여 케이블로, 그리고 김용만이 케이블에서 시작하여 종편으로 에서 보여지듯이,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공중파 예능을 피하여, 케이블이나 종편으로 복귀의 첫 발을 디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 중 김용만은 <쓸모있는 남자들>이 8부작으로 종영되듯이 아직은 몸이 덜 풀린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수근과 노홍철은 <아는 형님>에서 혹한의 날씨에 알몸으로 고군분투하거나, <내방의 품격>에서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명불허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몇 년여의 자숙 기간을 거쳐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에게 복귀의 기회를 주는 것에 토를 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물의를 빚은 지난 몇 년여의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노홍철'과 '이수근'이 명불허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예능 환경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빈익빈 부익부의 예능 카르텔
아니 좀 더 근본적으로 2015년을 보내면서 진짜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예능 mc군의 카르텔이다. mbc 연예 대상의 대상을 받은 김구라의 경우 공중파 mbc<복면 가왕>,<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비롯하여 케이블 jtbc의 <썰전>, <헌집 줄게 새집다오>에서 종편<솔직한 연예 토크 호박씨>까지 십 여개의 프로그램을 맡고있다. 그렇다면 이런 다작이 김구라뿐일까? 2014년 백상 예술 대상 남자 부문 예능상을 받은 신동엽의 경우 역시 공중파 kbs2의 <안녕하세요>를 비롯하여 케이블 <수요미식회>, <성시경신동엽의 오늘 뭐 먹지?>를 비롯하여 연예가뒷담화를 다루는 <용감한 기자들>까지 우후죽순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진행중이다. 마치 남자 예능상은 다수의 출연과 그 중 타율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듯 2014년의 신동엽과 2015년의 김구라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대세 예능에서 부터 연예계 잡담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예능의 진행자로 활약하였다. 

문제는 소위 빚을 갚아야 한다며(?) 자신들의 바쁜 출연을 합리화하는 이들 두 사람만이 아니다. 마치 이들이 모범 답안이라도 되는 듯 그 뒤를 후배 mc들이 따르고 있다는 데 것이다. 연말 이상식에서 이들만큼 분주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전현무 역시 공중파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를 비롯하여 케이블<히든 싱어>, <문제적 남자>, <헌집줄게 새집다오>까지 이들 두 사람 못지 않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전현무만은 아니지만, 장동민은 그의 지난 과한 언사로 인해 공중파 예능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지만, <더 지니어스>, <방송국의 시간을 팝니다> , <속사정 쌀롱> , <도시 탈출 외인구단> 등 종편과 케이블 예능의 출연이 빈번하다. cj의 적자라 자부하는 이상민의 활약 또한 장동민 못지 않다. 

심지어 예능 mc들만이 아니다. 올 한 해 대세가 되었던 '먹방'의 주역들인 쉐프들 역시 빈익빈 부익부가 드러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두 개나 하는 백종원을 비롯하여 최현석, 샘킴, 이연복 쉐프의 활약은 웬만한 예능 mc들 저리 가라다. 

또한 영화계가 몇몇 거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듯 예능계 또한 몇몇 기획사를 중심으로 출연이 번복되는 현상 또한 깊어졌다. 위에 나열된 연예인들 중 신동엽, 전현무, 이수근이 smc&c소속의 연예인이며, <아는 형님>에 강호동, 이수근, 김희철 처럼, sm과 그 계열인 smc&c의 나눠먹기 식 출연도 여전히 빈번하다. 또한 smc&c를 비롯하여, 유재석이 합류한 fnc엔터테인먼트, 장동민, 이휘재등이 소속되어 있는 코엔 엔터테인먼트의 과점 또한 두드러진 현상이다. 

즉 노홍철, 이수근이 명불허전의 존재감을 가진 것은 맞지만 과연 이 두 사람이 fnc엔터테인먼트나, smc&c 소속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쉽게 기회가 주어졌을까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몇 년간 자숙의 기회를 가졌어도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두 사람과 달리, 2015년의 한 해 기존의 mc군이 과점에 가까운 활약을 보이는 반면 신선한 mc군의 등장은 미흡했다. 그나마 <무한도전>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서장훈, 현주엽 등 스포인들과, 류승수 등의 연기인들을 계발했고, <라디오 스타>가 다수의 예능 신인을 개발했지만, 그들의 후속 활동은 아직 대세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부디 카르텔을 넘어선 신선한 예능 스타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12. 30. 20:50

시상식의 계절이다. 언제나 그렇듯 각 방송사는 각자 자기 방송국만의 잔치를 이제는 '한류'라는 명목을 내세워 국외 손님들까지 끌어모으느라 분주하지만, 지난 26일 kbs 연예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휘재가 수상 소감 첫 마디에서 기사 댓글을 걱정하듯 해를 넘길수록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개별 방송사의 '공로상'이랑 상관없이 올 한 해 예능 트렌드를 이끌어 왔던 인물에는 과연 누가 있었을까? 




김구라를 보면 예능의 트렌드가 보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 <복면 가왕>, <집밥 백선생>까지 올 한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프로그램들이다. 또한 이 세 프로그램 모두 그 이전에 있었던 예능 프로그램들과 콘텐츠에 있어 신선한 차별성을 가진 프로그램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세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 프로그램 모두 김구라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올 한 해 예능 프로그램들을 여러 갈래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이른바 '먹방'으로 대변되는 요리 프로그램들의 범람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콘텐츠 상으로 접근해 들어가거나, 혹은 인물로 접근해 들어가거나 공통적으로 교집합이 되는 인물이 바로 김구라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활약에 힘입어, 섣부르게 올해 mbc 연예 대상의 대상감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올 한 해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는 요리 프로그램이다. 요리 중심의 케이블에서 요리를 선보이던 쉐프들은 그 영역을 점차 넓혀 공중파로, 종편으로 그리고 광고까지 지는 먹방이 무색하게 분주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성취를 보인 것은 역시나 백종원이다. 쉐프라는 말보다는 요식업계의 큰 손이 더 어울리는 백종원은 <음식 대첩>등을 통해 보이던 그의 진가를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하 마리텔)>을 통해 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런 백종원의 화려한 전성기를 여는 <마리텔>에서 프로그램의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한 것은 김구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리텔>에서 깜냥이 안되는 적수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집밥 백선생>을 통해 엄한 선생과 말많은 제자로 변신하여 남성 시청자들조차 칼을 들게 만드는 요리 붐에 앞장 선다.

그렇게 쿡방의 대세 백종원과 함께 하던 김구라는 추석 특집으로 선보였던 <복면 가왕>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면서 그 터줏대감으로 예리한 감별력을 선사한다. 이미 <라디오 스타> 시절부터 스스로 팝칼럼니스트 출신이라 자부하던 김구라의 음악 선구안은, 그의 마당발 인맥과 함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인물을 떠올려 내며 <복면 가왕>의 화룡점정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2015의 트렌드가 된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2015년의 예능 대세가 된 김구라의 비결은 무엇일까? 2012년 총선 과정에서의 해프닝으로 뜻하지 않게 몇 개월 칩거를 한 김구라는 마치 그 칩거로 그가 지난 시절 원죄처럼 짊어져 왔던 젊은 날의 막말 파동을 떨쳐버리기라도 한 듯 종횡무진 활약한다. 무엇보다 김구라가 예능 mc로서 대세가 된 데에는 그로 대변되는 보통 중년의 남자라는 컨셉의 무난함이다. 종종 눈치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낄데 안 낄데 눈치 없이 끼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어느 직장에서나 한 사람 쯤 있을 법한 중년의 아저씨로서의 컨셉이 바로 무난한 예능 mc 김구라를 대변한다. <라디오 스타>나, <동상이몽>, 그리고 <호박씨>, 심지어 영화 소개 프로그램<무비 스토커>의 모습이 그렇다.

바로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측근인 봉만대 감독의 <떡국 열차>에 주연으로 열연(?)하는 모습에서도 보여지듯이, 막말은 스스로 거세시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젊은 시절 그를 추동했던 기발한 에너지는 그가 선택하는 실험적인 프로그램들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비롯하여,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은 <공유 tv 좋아요>, 그리고 音담패설> 등으로 이어진 활약이 그것이다. 

또한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종편에서 연예가 뒷담화를 하다가, 떠억하니 자리를 바꿔 시사 평론의 장에서 중심을 잡다가, 음악에도 한 마디 거들고, 그러다 가족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데 이물감이 없는 mc는 김구라가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 그가 2015년의 대세가 된 이유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트렌드가 된 것은, 그가 트렌드에 대한 선구안이 있기도 하지만, 올 한 해 그가 마구잡이로 출연했던 무수한 출연작들의 타율이 좋은 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평가가 되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무수한 잽들 속에 몇몇의 카운터 펀치
그래서 김구라는 올 한 해 스테디셀러인 <라디오 스타>, <썰전>에서 신선한 콘텐츠로 부상한 <마리텔>, <집밥 백선생>, <복면 가왕>을 넘어, <무비 스토커>, <호박씨>, <결혼 터는 남자들>, <능력자들>을 통해 무수한 잽을 날렸다. 그리고 이제 2015년의 마지막 무렵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는 '집방'의 <헌집 줄게 새집다오>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2016년의 활약은 이른바 '먹방'에 이은 '집방'의 트렌드화로 가능할까? <헌집 줄게 새집다오>의 성공 여부가 곧 김구라의 대세의 유지 여부를 판가름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5년에도 그랬듯이, 김구라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무수한 잽을 날릴 것이고, 그중 2015년처럼 시대를 잘 만난다면 <마리텔>이나, <복면가왕>, <집밥 백선생>같은 칸운터 펀치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김구라의 전성시대의 복병은 바로 김구라 그 자신이다. 그가 음악 프로그램에 있건,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있건, 심지어 먹방이 되건, 집방이 되건, 어디서든 우리 회사 부장님같은 '아저씨스러움'이 그의 친근함을 돋보이는 카드이지만, 동시에 어디서 그를 보아도 똑같이 진부한 김구라스러움이 그를 '진절머리'내게 하는 걸림돌인 것이다. 결국 그의 대세 유지는 그 자신이 아니라, 그 대중의 '진절머리'의 유효기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또한 <마리텔>이나, <복면 가왕>이나, <집밥 백선생>까지 그가 대세의 프로그램을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이 프로그램의 일등 공신이 그인가? 라는 질무에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예전 강호동이나, 시청률이 미미해도 <해피 투게더>의 유재석의 존재감에는 비견될 수 없는 것이다. 프로그램 성공의 빠질 수 없는 조미료이지만, 메인인가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점에서 이휘재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대상'이라기엔 어쩐지 좀 무색한 존재감인 것은 어쩔 수 없다. 

by meditator 2015. 12. 28. 14:19

25일 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서현진'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서현진? 배우 서현진? 아니다, 전 mbc아나운서이자, 현재 프리랜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아나테이너 서현진을 지칭함이다. 그리고, 서현진 전 아나운서가 등장한 이유는, 그녀가 출연하게 된 채널A의 신규 프로그램<동갑내기 여행하기>에서 나이로 인한 그녀의 발끈한 해프닝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종편의 한 신규 예능 프로그램이 그만큼 세간 화제로 떠올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청률 1%를 넘으면 대박이라고 하는 케이블, 혹은 종편에서 여전히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시청률이라고 할 수 없는 성과를 보이고 있고, 동시간대 시청률면에서는 여전히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절대 강자의 지위를 점하고 있지만, TVN의 드라마, 예능들이 야곰야곰 성장하여, 이젠 공중파를 찜쪄먹을 기세가 되었듯이, 이젠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들도 그 지분을 살그머니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종편 예능의 공습
종편이라고 한다면, JTBC를 제외하고는 TV조선, 채널A, MBN은 모두 마치 언어가 다른 북한 방송을 보듯이 집권 여당의'프로파간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 들어서면 그 날선 언어가 음식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조차 힘들게 '프레임'으로 짜여진 명확한 당색의 선전, 선동 문구가 자기 편이 아닌 그 누군가를 마구 찔러 넘기지 못해 분노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조선', '동아'라는 전통의 언론 구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조차도 역시나 '언론'의 대명사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된것 역시 작금의 현실이다. 맨 처음 종편이 생길 때, 우리 편이라 생각된 그 누군가가 종편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그 시기가 무색하게, 어느덧 우리의 TV 문화 속에 종편은 편안하게 안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인데도, 그 누군가는 광화문 시위에서 물대포로 그 누가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는지조차 모르고, 그저 시위하는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디어는 발달했지만, 진실을 알기기 위해 불법 유인물 '피'를 뿌려야만 했던 그 시대와 실상 언론의 자유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철저하게 자유롭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처음 종편이 만들어 졌을 때만 해도, 그 날선 언어의 뉴스를 빼놓고는 볼만한 것이 없는 종편을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호박씨>니, <속풀이쇼 동치미>니, <아궁이>가 등장하고, <TV주치의 닥터 지바고>에 <내 몸 사용 설명서>, <엄지의 제왕>까지만 해도 그저 하릴없이 건강 염려증에 시달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소일거리라 웃어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해를 거듭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종편이 점점 세련된 면모를 갱신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선정적 뉴스쇼의 연예판으로 <연예가 X파일>등이 있지만, 그런 한편에서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릴 만큼 신선한 '화제성'을 뿌리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1일 초창기의 TVN을 이끌었던 송창의 TV조선 제작본부장은 '제2의 '개국'이라며 젊은 콘텐츠로서의 TV조선 예능을 개편했다. 지금까지 중장년층 중심의 콘텐츠를 개편하여, 리얼 야외버라이어티, 요리쇼, 육아 예능, 경제 예능, 토크쇼 등을 통해 다양한 세대의 입맛에 맞춘 신선한 개편을 지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에 따라, <이경규의 진짜 카메라>, <인스턴트 재발견, 간편 밥상>, <난생 처음, 영수증을 보여줘> 등이 신설되었다. TV조선만이 아니다. 채널 A 역시 화제가 된 여아나테이너들의 여행기 <동갑내기 여행하기>를 비롯하여, 같은 날 밤 11시 <개밥주는 남자> 등을 개설했다. MBN 또한 <도시탈출 외인구단>을 신설했다. 방송국은 다르지만, 송창의 본부장이 밝힌 바 각개 각층의 세대를 지향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발진'이다. 



새롭지는 않지만 신선한 신규 예능들
이들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입증된바 있었던 프로그램들을 나름 차별화된 출연진과 내용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검색어에 오른 <동갑내기 여행하기>는 콘텐츠 자체는 그저 출연자들의 해외 여행이다. 그런데 그 출연자가 바로 지금까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다루지 않았던 '방송의 꽃'이었던 아나운서들이라는 점과, 이제는 '프리 선언'으로 아나테이너로 돌아온 그녀들의 적나라한 소탈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또한 같은 날 방송되는 <개밥 주는 남자>도 흔한 동물 키우기 예능이다. 하지만, 이 리얼 버라이어티는 지금까지 한번도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한 적이 없는 주병진과, 그의 꿈인 펜트하우스를 등장시키고, 동물을 싫어하는 아내 앞에서 쩔쩔매는 현주엽 네를 출연시켜 이야기를 꾸린다. 그들의 특별한 사연 속에 등장한 강아지는 이미 여느 동물 키우기 예능의 귀여움 이상이 된다. 거대한 펜트하우스에 사는 주병진은 강아지를 위해 단돈 22만원을 거침없이 지불할 수 있는 그의 부와 상관없이, 그저 외로운 중년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뿐인가, 매주 목요일 밤 11시 이후에는 TV조선 예능 <엄마가 뭐길래> 역시 흔하디 흔단 육아 예능이다. 하지만, 그 육아가 육아가 아니라 거의 전쟁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조혜련, 최민수네 가정사를 놓고 역시나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마치 노이즈마케팅처럼 도저히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이네들의 가족사에, 시청자들은 때론 분개하고, 때론 감놔라 콩놔라 자신들의 일처럼 열중하며, 어느 덧 빠져든다. 



종편 중 손석희의 JTBC 뉴스를 통해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시선을 사로잡은 JTBC가 다양한 시청자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중년층을 위한 육아 토크쇼 <유자식 상팔자>,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마녀사냥> 등을 통해서이다. 그런 면에서 '더 젊게 , 가족적으로 콘텐츠만 좋으면 본다'는 TV조선 송창의 본부장의 믿음은 이미 검증을 거친 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조로웠던 검증에 따라 지금까지 중장년층의 고정 채널이었던 일부 종편이 변신을 모색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 과연 종편이 어쩌고 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하면 현재 방송가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손석희의 JTBC 뉴스를 통해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젊은 이미지를 선택한 JTBC는 하지만, 드라마 <송곳>과 같은 송곳같은 선택을 제외하고는 여타 예능과 드라마에서의 선택에서는 오히려 한 발 물러선 느낌이다. 예능의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종편과 차별성이 없다. 그런가 하면 공중파는 나은가? 마찬가지다. 어디를 돌리나, 가족 지상주의요, 여유로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것은 매한 가지다. 창조 경제비어천가를 울리던 CJ 계열 YTN이 종편을  뺨치게 보수화되었고, Tvn의 <응답하라 1988>이나, <삼시세끼>가 '가족주의'에 천착할 뿐이다. 예능만 놓고 보자면 이젠 '종편'이 어쩌고라 하기에 무색하게 차별성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영화 <국제 시장>을 보고 눈물 흘리는게 중장년층만이 아닌 젊은 세대들도 있었듯이, 다같이 '가족'말고는 공감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2. 26. 16:38

 

지난 10월 21일 jtbc의 예능 cp 여운혁은 jtbc의 새로운 예능에 강호동이 함께 할 것이란 발표를 했다. 이후 12월 5일 첫 방송된 <아는 형님>에 이어, 12월 16일 <마리와 나>가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제 각 두 편의 프로그램을 내보낸 강호동의 새로운 예능들은 어땠을까?



신서유기의 스핀 오프? 혹은 속편으로서의 <아는 형님>, <마리와 나>
두 편의 프로그램 <아는 형님>, <마리와 나>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전에 앞서, 우선 언급되어야 할 한 편의 예능이 있다. 그건 바로 23부작으로 10월2일 종영된, '1박2일 동창회'라 칭해졌던 나영석 피디와 함께 했던 <신서유기>이다. 10월 27일 기준으로 20개 영상으로 나뉘어 공개된 <신서유기>는 국내 포탈 사이트에선 5183만 4318뷰를 기록했고, 독점 공개한 중국 사이트에서도 5000만 조회수를 기록, 콘텐츠의 신세계를 여는 한편, 그간 무얼 해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었던 예능 제왕 강호동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jtbc에서 새롭게 선보인 두 예능 <아는 형님>과 <마리와 나>는 바로 그런 2015년 하반기 <신서유기>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로 거듭난 강호동이란 예능인을 앞세운다. 즉 신서유기의 폭발적인 선풍이 없어다면 강호동의 jtbc 예능을 통한 화려한 복귀 또한 가능했을까란 의문 부호가 찍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jtbc의 두 편의 예능이 그 이전 <우리 동네> 등을 통해서 보여진 호령하는 카리스마 큰 형님으로서의 강호동 대신, 이젠 막내 이승기에게조차 쩔쩔 매는 나이만 많은 '무서움이 많은' 형님으로 돌아왔다. 강호동만이 아니다. <신서유기>를 통해 그와 함께 부활한 물의를 빚은 채 3년간 자숙했던 이수근도 <아는 형님>으로, 은지원은 <마리와 나>로 한 배를 타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서유기>를 통해 다시 한번 각광받게 된, 아니 새로운 면모를 보인 강호동의 새 예능 두 편은 어땠을까?
12월 23일 언론사들이 너도 나도 마치 복사기에서 찍듯이 뽑아낸 기사에서도 보여지듯이, <마리와 나>는 아기 고양이 토토와 강호동의 언밸러스한 캐리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아기 고양이 토토를 위탁 보호하게된 강호동은 혹여나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아기 고양이 토토를 보살피며, 고양이 역시 인간의 아기와 같은 소중한 생명체임을 자각하고 정이 든 모습을 보였다. 



기내식으로 비빔밥 세 그릇 정도는 너끈히 해치운다는 여전한 강호동을 예전 같았으면 아기 고양이 토토 대신, 서인국이 맡았을 에너자이너 라쿤 두 마리를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신서유기>를 통해 달라진 캐릭터로 돌아온 강호동은 동물 그 자체에 대해 '원시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임을 피력하며 가장 보살피기 쉬우면서도, 서로의 이질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아기 고양이를 맡았다. 기사들은 강호동과 아기 고양이 토토의 미친 캐미를 운운하지만, 방송을 보면 알지만, 다른 출연자들이 동물들을 케어하기 위해 같이 놀아주고, 동물들의 똥과 오줌을 치우고, 심지어 산책까지 시키느라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시간에, 강호동은 그저 먹고 잠만 자는 아기 고양이와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좌충우돌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강호동의 품 안에서 자는 아기 고양이를 내보이며 자신이 프로같다고 했지만, 막상 프로그램을 보면 그게 얼마나 웃픈 상황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거저 먹기라도 강호동의 주먹만한 고양이와 덩치 큰 강호동이 보이는 조합은 그 이전 힘 자랑을 하던 강호동과는 차별된 신선함을 준다. <아는 형님>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 예전 <무한도전>이 초창기 <무모한 도전> 시절이었던 때처럼 시청자들이 보내준 각종 요구들을 마냥 해대는 이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그리 나서지 않는다. 여전히 먹방에 등장하지만, 그 덩치 큰 강호동을 빼빼마른 민경훈이 제쳐버린다. 그리고 그 광경은 흡사 아기 고양이 토토와 강호동의 캐미와 같은 분위기를 낸다. 또한 예전 같으면 게임에서 쉽게 제쳐지지 않을 강호동은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이수근과 김영철이 메운다. 그들은 개그 콤비의 조합으로, 그리고 온갖 슬랩스틱의 상황의 궃은 상황을 도맡는다.

이렇게 강호동을 내세웠지만, jtbc의 새 예능에서 강호동은 그 이전 그가 해오던 식의 프로그램을 그 자신의 카리스마로 제압하고 동료들과 후배들을 이끌어 가는 캐릭터 대신,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저 낯설고 어설픈 존재로, 그리고 이젠 까마득한 왜소한 후배한테 먹방조차 밀리는 채 나이만 먹은 형님으로 등장한다. 바로 그 세월의 무색함이 새로운 예능에서 강호동의 존재감이다. 

과연 강호동이어야 할까? 
그런데, 한편에서 이런 강호동의 새로운 캐릭터가 주는 신선함과 함께 문득 드는 의문점이 있다. <신서유기>라는 23부작의 가벼운 웹 예능이 아닌, 매주 찾아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연 이런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능 캐릭터가 될 수 있을까? 즉, 엄밀하게, 프로그램 자체의 성격 상 <아는 형님>과 <마리와 나>에서 강호동은 꼭 있어야 할 존재일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비록 <슈가맨>이 시청률면에서 고전을 하지만,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두 mc 유재석과 유희열의 절묘한 시너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방송을 타는 예전 가수들을 물만난듯이 놀게 만드는 유재석의 신기에 가까운 진행 능력에 감탄을 발하게 된다. 그에 반해 <아는 형님>과 <마리와 나>에서 주된 내용을 이끄는 것은 강호동이 아닌 다른 출연자들이다. <아는 형님>의 먹방에선 민경훈이, 추위에 견디는 게임에선 이수근과 김영철, 황치열, 서장훈이 고군분투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 한 시간여의 시간에, 과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런 게임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프로그램의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마리와 나>의 솔직히 케어하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에너자이저 라쿤 두 마리와 네 마리의 강아지, 그리고 사랑에 빠진 돼지 한 마리와, 그냥 가만히 놔둬도 귀여운 아기 고양이에게서 나온다. 



아니 무엇보다, 야심차게 준비한 새로운 예능이라고 하지만, 그 예전 <무모한 도전>이 연상되거나, 심지어 아침 교양 <동물 농장>의 한 코너가 떠오르는 <아는 형님>과 <마리와 나>의 뻔함과 진부함이 과연, <신서유기>를 통해 새롭게 돌아온 강호동의 화려한 부활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 지 미지수다. 

현재 jtbc 예능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일요일 밤 방송되는 <김제동의 톡투유>이다. 위로을 찾기 힘든 시대, 그저 함께 모여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위로하는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검색어 수위에 오를만큼 인기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예능국이 아닌 보도국 제작이다. 정작 예능국은 한때 <톡투유> 만큼은 아니지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았던 <속사정 쌀롱>을 딱히 뚜렷한 이유도 없이 끝낸 후, 그 예전 어디선가 본듯한 <아는 형님>과 동물들을 앞세운 <마리와 나>로 돌아왔다. 뉴스를 통해 신선한 이미지를 쌓아가는 jtbc로서는 진부하고 안이한 선택이다. 
by meditator 2015. 12. 24. 12:18


*대표적인 남성 잡지의 표지에 테이프로 발목이 묶인 여자를 차에 실은 남자를 싣는 나라

*여성에 대한 혐오와 심지어 강간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소라넷 등이 버젓이 인터넷 공간에서 활개치는 나라

*십오년이 넘게 대학교에서 '성의 이해'라는 강의의 명목으로 남성 중심의 성적 편견을 강의하는 나라

*지난 6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삼일에 한 명씩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나라, 그런데 그에 대한 대처는 '스토킹 처벌법'?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 하지만 남녀 성평등지수 115위, 인도, 네팔보다 뒤진 나라,  대한민국




자생적으로 패미니스트가 된 그녀들
과연 이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까?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답적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에, 저돌적으로 안티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12월 20일 <sbs스페셜-발칙한 그녀들>은 남성 중심사회에 전사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작은 말 그대로 발칙한 그녀들이다. 대놓고 '여성 납치'가 연상되는 표지를 실은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남성 잡지에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으나, 거부한 것으로 화제가 된 정두리 씨, 하지만 그녀의 남다른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늦은 밤 열리는 파티, 이름하야 '젖은 파티', 그곳에 프랑스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정두리씨가 하얀 천사의 복장을 하고 파티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잡지의 발간자이기도 하다. 이름하야, '젖은 잡지'.

그녀가 내세운 '젖은', 이라는 수식어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젖은' 잡지의 표지는 바로 그녀가 거부한 남성 잡지의 바로 그 여성 납치를 연상케 하는 그 장면을 패러디한 것으로, 소복을 입은 그녀가 남성으로 연상되는 대상의 간을 핥고 있는 모습이다. 즉 이렇게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비'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여성들의 입장에서 적극 해석하고자 한다. '젖은' 파티의 주역은 술 취해 흥청거리는 남자들이 없는 여성들이다. 

또 한 명의 패미니스트는 독일 유학 중 거침없이 섹스 토이샵을 드나드는 은하선이다. 섹스 토이의 사용 후기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녀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성 칼럼니스트로 시작하여, <이기적 섹스>의 저자로,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함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은하선의 오르가슴 투나잇'을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양지르 끌어내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발칙한 그녀들'의 마지막 주자는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서 웃통을 벗어제친 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친 송아영이다.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가슴을 드러내는 '토플리스' 시위는 'FEMEN'이란 여성 인권 단체의 시위 방식이다. 

이렇게 도발적인 혹은 발칙해 보이는 그녀들과 함께,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괜찮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배우 박철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온화한 하지만 몹시 조심스러운 박철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래도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는 보통의 남성이고,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같은 남성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발칙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냐고, 완곡하게 그녀들의 '발칙함'에 발을 걸고 넘어진다. 

하지만 그런 '완곡한' 하지만 정두리의 방식에 또 다른 '성의 상품화' 아니냐고 정곡을 찌르는 박철민의 생각에, 돌아온 대답은 '성의 상품화'가 왜 나쁘냐는 것이었다. 즉, 밤만 되면, 아니 밤이 되지 않아도 대한민국을 온통 휘감은 남성 중심의 성의 상품화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혹은 그녀들의 욕망이 대변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그 누구를 대상화시키지 않는 성을 상품화 하겠다는, 그녀들의 대답은 말 그대로 '발칙하다'


하지만, 다큐는 그런 '발칙함'의 선정성에서 한 걸음 더 들어선다. 어릴 적 호된 시집 살이를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때린 척 하는 아버지를 보며, 남성의 폭력성에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정두리씨, 그리고 대학 시절 '광클'을 해야만 들을 수 있던 '성의 이해' 강의가 알고보니 여성 폄하 심지어 여성 혐오가 만연한 수업이었다는 걸,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들이 웃으며 그걸 듣고 있다는 사실에 더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은하선씨, 그리고 2014년 7월 이전 이미 여러 다른 방식으로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였지만, 세상의 외면을 받았었다는 송아영씨, 남성 중심의 세상이 막아선 벽에 그녀들은 '계란'이 되어 바위 치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다큐는 그녀들의 '패미니즘'의 시원을 밝힌다. 

그렇게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된 그녀들의 패미니즘은 정두리씨의 경우,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내세운 '잡지'와 '파티'와 같은 형식의 모임으로, 그리고 은하선씨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내가 써보는 여성 중심의 성 이야기로, 나아가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항이 아닌 여성의 욕구에 대한 적극적 발견으로,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FEMEN처럼 자신을 무기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발전'해 간 것 뿐인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절박한 고공 농성
평범한 남성의 입장을 내세우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성의 상품화나, 왜곡된 시각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박철민은 펼쳐놓은 정부의 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번연한 소라넷 등의 버젓한 활개와, 그에 반해 등장한 '매놀리아'의 페북 삭제 등의 편협한 현실에, 거리를 가득 메운 남성 중심의 성 상품화와, 그리고 크레인에 올라가듯 하다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내세운 것이라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세계를 넘어 세상을 감싼 여전히 강고한 '남성 중심의 벽'과, 이젠 그 벽을 타고 무성하게 자란, '여성 혐오'의 줄기들, 그리고 그런 줄기들을 끊어 내기 위해 자신이 전사된 그녀들의 절박함이 이해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방송 마지막 생명이 위협을 느끼는 우크라이나의 성 산업을 반대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국제 FEMEN 회원들처럼, 여성 혐오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드러낸 보인 송아영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싱을 배우듯, 그녀들의 현실은 위태롭다. 발칙함으로 시작된 그녀의 도발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외로운 고공 농성으로 마무리된다. 


by meditator 2015. 12. 21.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