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남편찾기 전략은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우정, 가족애 에피소드로 화력이 딸리던 드라마에 '남편찾기'란 노이즈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등장했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란 신조어가 무색하게 일대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접전'은 그저 드라마 속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정환과 택의 신경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배우조차도 자신이 못내 이룬 사랑을 자신보다 더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할 만큼, 시청자의 대리전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겐 <응팔>은 애청자를 배반한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지일관 엄마도 없이 불쌍한 택이네의 가족 만들기라는 뚝심있는 주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응팔>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의 남편감조차 흐트러 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고 나면 어줍잖게 응답하라의 복고적 분위기를 따라한 드라마가 우후죽순 등장했던 <응답하라> 낙수 효과(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고 맨 꼭대기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흘러가듯, 영향력의 확산을 노리는 전략)와도 같은 현상이다. 즉, <응팔>의 전략을 따라하면 '중간'은 가겠다는 안이한 제작 방식이, 복고 전략에 뒤를 이어 드라마 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 찾기 
<응팔>을 연출한 신원호 피디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예능 피디'라 재확인했다. 그런 그의 예능 피디 커밍 아웃이 어색하지 않게 <응팔>이란 드라마는 예능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이다. 일찌기 드라마계에선 볼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면 등장하는 '매에에~~'하는 양의 울음 소리에서 부터, 거의 두 시간을 육박하는 방영 시간을 채우는 상당부분의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중심의,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트콤과 같은 내용, 거기에 무엇보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남편찾기'에 둔 마치 한 편의 게임 관전과도 같은 전반적인 드라마의 구조가, 여느 드라마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실제 거의 두 편의 미니 시리즈를 방영하는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응팔>을 보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응팔>은 앞선 <응사>나, <응칠>보다 더 노회한 '남편 찾기' 전략이 등장했다. 이미 전작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어남류'란 신조어를 만들며 그간 제작진이 했던 방식을 간파하자, 드라마는 '어남류'로 낚으며, 그 아래 '어남택'의 복선을 깔면서, 시청자를 희롱한다. 즉, 카메라의 시선은 정환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그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된 곳에서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반응, 혹은 제작진의 의향에 따라, 정환과 택이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된다. 만약에 정환이 남편이 된다면, 역시나 <응답하라>의 전통에 따랐다고 할 것이요, 택이가 남편이 되었다면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사전에 깔아놓았던 복선을 들먹이며 이것을 몰랐나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시청자들은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남편이 누구였는가를 추적하려고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견은, 바로 어차피 남편감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아니 그것보다 시청자를 낚기 위해 철저하게 밑밥을 깔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한 밑밥 덕분에 덕선은 '금사빠'가 되었다가, 모성이 충만한 택이 바라기가 되었다가의 이중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 덕선의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정해지지 않은 남편감 때문에 '덕선'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언제나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 그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십대 소녀의 캐릭터로 대체하기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기엔 미흡한 캐릭터가 되었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명하기엔 해프닝을 넘어선 '내면'의 묘사가 미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흡한 덕선의 마음은 '남편찾기'의 불을 붙이는 데 충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 채 휘둘리는 덕선을 따라,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를 하느라 눈이 벌개진다. 결국 덕선은 게임 속 보물을 찾아가는 캐릭터처럼, 시청자를 대신해 남편이란 보물을 찾는 여정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응팔>이 88년 당시의 골목 공동체를 매개로 여전히 소중한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에 있어, '불손'함은 거기에 휘둘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쉬이 침잠할 수 없게 만든다. 



<응팔>의 전략을 되풀이 하는 로코들- <치즈 인더 트랩>, <한번 더 해피엔딩>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인터뷰 토씨 한 자를 가지고 여전히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설전은 이후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부러운 전략이다. 그러니 당연히 따라할 밖에. 

1월 4일 부터 방영되는 tvn의 <치즈 인더 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이다. 원작의 팬들 중에 드라마화 된 <치즈 인더 트랩>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원작인 웹툰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유정 선배와, 거기에 쥐덫에 걸린 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된 홍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걸출한 피디 이윤정에 의해 작품화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은 이윤정의 장기인 전형적인 청춘 연애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웹툰의 원작이 드라마화 되는 과정에 '각색'을 거치고 원작과 다른 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 심리물이, 연애물로 탈바꿈되는 것은 연애물이 융성한 드라마계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전략이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조차 훼손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즉 원작은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유정 선배와 홍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된 <치즈 인더 트랩>은 <응팔>처럼 팽팽한 남녀 관계를 대두시킨다. 즉, 원작에서 그저 주요한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백인호(서강준 분)가 유정(박해진 분)과 홍설(김고은 분) 사이에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호는 로맨틱 물의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로 홍설이 어려울 때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홍설을 돕는 홍설 바라기의 인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렇게 백인호가 홍설 바라기로 그려지는 동안, 드라마 방영 초기 원작의 유정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로 찬사를 받았던 유정이란 존재가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즈 인더 트랩>이란 원작이 가진, '심리적 질감'을 고스란히 반영된 유정이란 존재가 미미해 지면서, <치즈 인더 트랩>이란 드라마가 그저 재벌남과 가난한 피아노 천재 사이에 낀 대학생 홍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설 역시 그 캐릭터의 진실성 대신 점점 이 남자는 이래서 좋고, 저 남자는 저래서 좋은 어장 관리녀가 된다. 

이렇게 대놓고 두 남자를 내세운 전략을 드러내는 것은 <치즈 인더 트랩>만이 아니다. 1월 20일 시작한 mbc의 새 로맨틱 코미디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다짜고짜 첫 회부터 송수혁(정경호 분)과 한미모(장나라 분)의 결혼식 해프닝을 벌이는가 싶더니, 다음 회에선 상황을 확 뒤집어 한미모를 구해준(권율 분)에 빠진 금사빠로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르른 드라마는 한미모를 놓고, 일찌기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가꿔 온 두 싱글남의 팽팽한 싸움을 예고한다. 이 드라마 역시 '우정'이냐, '사랑'이냐 전략까지 놓치지 않을 기세다. 드라마는 한 회에서는 한미모를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청순한 여자라며 자신의 친구와 결혼식 해프닝까지 벌인 그녀의 금사빠를 거뜬히 받아넘긴 구해준에 집중하는가 하면, 또 한 회는 그런 구해준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앓이를 하면서 속정깊게 한미모를 챙기는 송수혁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한 회에는 송수혁이 괜찮았다, 또 다른 한 회에는 구해준에 마음이 쏠린다. 한미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예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트콤처럼 두 남자와의 갖가지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채운다. 



이렇게 <응팔>에서 전염되기 시작한 '남편 찾기', '사랑찾기' 전략은 달라진 철저히 리모컨을 쥔 '고객 만족 서비스'이다. <응팔>의 배경이 되던 시대 한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두고, 순정파의 여주인공과 악녀 조역과의 피말리는 '사랑과 전쟁'에 집중하던 tv는 좀 더 적극적으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실은 이러면 이래서 잘 나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양 손의 떡을 쥐어준다.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싸우지만, 쌍문동 골목길의 공부도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했던 덕선이가 잘 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공군 파일럿이랑,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체가 환타지의 끝판왕인 것이다.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같지만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순정파인 재벌집 자제랑, 가난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자신바라기인 두 남자나, 비록 아들은 딸렸지만 자상하면서도 능력있는 기자랑, 뭇 여인들이 흠모해 마지 않는 역시나 마음마저 따뜻한 잘생긴 의사라니, 그 나열만으로도 '므흣'해지는 구도인 것이다. 사실은 누가 된들 동화같은 환타지이지만, 게임을 시작 한 순간 쉬이 로그오프를 할 수 없는 게이머처럼, 시청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감을 향해 치달린다. 

by meditator 2016. 2. 4. 16:49

영세 자영업자에게 폭거를 휘두르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2015년 5월 13일 개정되었다. 개정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간'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2015년 5월 이후 계약한 상가는 5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법으로 임대 자영업자들의 권익을 조금 보장했다고 하는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실시되고, 현실은 조금 나아졌을까? 2월 2일 <pd수첩-건물주와 세입자, 우리 같이 좀 삽시다>는 법 시행이후에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임대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다뤘다. 




바람잘날없는 싸이 건물, 그 소란의 뒤안길
한남동에 위치한 싸이가 소유한 건물은 그곳을 임대한 임차인과의 소송이 언론에 고스란히 노출됨으로써 전국민적 관심사로 등극한 곳이다. 2015년 3월 건물주인 싸이가 세입자를 내쫓으려 한다는 보도로 인해 싸이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그후 법이 건물주 싸이의 손을 들어주자,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듯한 대중의 시선은 이제 나가지 않고 버티는 임차인을 호되게 몰아붙였다. <pd수첩>은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맞으며, 하지만 해가 바뀌어서도 그곳을 사수하고 있는 그 건물의 임차인들을 취재한다. 

한때 차를 매개로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동의 공간으로 관심을 끌었던 미술관 까페, 그러나 현재 이곳은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강제 집행으로 불안에 떠는 까페 주인들만이 남겨져 있다. 정부와 사회에서 외면받은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하여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애썼던 까페 주인들은 이제 그간의 쟁의 과정에서 누적된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를 '폭력적' 철거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갈 수 없다. 아니 나갈 곳이 없다. 

이 미술관 까페 주인들이 일본인 원주인과 계약을 맺었던 이유는 바로 일본인 원주인이 일본의 관행대로 10년 이상 장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에 안심하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거액의 초기 자본을 들여 미술관 까페를 만들었고, 오랜 시간을 걸려 입소문을 얻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건물을 사들인 싸이는 그간 미술관 까페가 일구어온 역사를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재건축을 빌미로 '퇴거'를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건물주와 임차인의 길고 지리한, 그리고 때론 폭력적인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법은 싸이의 손을 들어 줬다. 이들이 상가 임대차 보호법 이전에 계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건물주인 싸이의 입장에서 유리한 방식으로 '언론'에 공표되어, 임차인들은 '법'적 판결을 받았는데도 안나가고 버티는 나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은 말한다. '건물주가 우리를 피고로 만들었습니다. '임차인 따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건물주가 중요하다면, 그간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어렵게 운영해온 우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말한다. 건물주가 '갑'이 아니라고, 그곳에 몸담고 실제로 그곳을 일구어온 자신들은 건물주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지만 이들의 안타까운 호소와, 벼랑 끝 외침에 건물주 싸이는 답이 없다. 혹자는 b급 정서를 대변한 음악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싸이의 넓은 혜량을 바래보지만, 미술관 까페와의 법적 공방에서 싸이는 그저 '돈'으로 자신을 확인하고, 임차인을 상대조차 하지 않는 건물주일 뿐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개정 되기 이전에 계약을 했던 이들에게 개정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그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거기에,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즉 자본을 가진 사람이 '갑'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서는 이들의 벼랑 끝 싸움을 더욱 막막하게 만든다. 



젠트리피케이션? 아니 그저 폭력적인 상업화. 
서촌. 경리단 길, 이 두 곳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 신선한 맛집? 최근 새로운 서울의 가볼만한 동네로 각종 sns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회자되는 이곳,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 수록, 이곳에서 오래도록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혹은 이곳을 지금의 핫플레이스로 만들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투자해 왔던 영세 상인들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서촌의 한 제과점, 시아버지 대부터 해왔던 제과점 벽이 철거반의 마구잡이 철거로 마구 뜯어진다. 그 앞에서 서촌의 상인들은 목놓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심지어 철거를 강행하려는 철거반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기 까지 한다. 제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허물지 말아달라고. 

북촌을 넘어 서촌으로 대중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던 영세상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아졌다. 원래 건물주, 혹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새로이 건물을 사들인 건물주들은 그곳을 '서촌'답게 만들어온 이들을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몬다. 소문난 손맛으로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드는 생선구이집에게도, 대를 이어 운영해온 제과점에게도, 그리고 40여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이제는 희귀해져 가는 싸전에게도 자비란 없다. 서촌만이 아니다. 경리단길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아들었던 조그만 태국 음식점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는 임대차 보호법 이전의 계약이라서 그렇다 치지만, 개정된 임대차 보호법이란 법도, 건물주의 '돈'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법 조항은 있지만, 막상 그 조항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실질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장치는 무기력하다. 즉, 법을 어기는 건물주에 대한 법적 제약은 미미하고, 자신의 건물이라며 철거반까지 동원하고, 각종 꼼수를 내세우며 임차인을 몰아내려는 건물주의 '갑질'은 언제나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다. 하루 아침에 7배에서 10배에 이르는 세에 임차인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가 나서보지만, 호응하지 않는 건물주로 인해 중재는 공중으로 붕 뜬다. 


<pd수첩>은 이렇게 법 개정이후에도 여전한 서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임차인 분쟁의 본질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이에 전문가는 이런 현상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진입해 결국 지역을 활성화시키며 결국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게 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는 '폭력적 상업화'라고 단언한다. 즉, '돈'의 '갑질'로  그 지역을 문화적으로 특징지어져 왔던 영세 상인들을 무기력하게 무너뜨리는 현실에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사회적 용어 조차도 무색하다는 것이다. 

'돈'이 되는 곳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자본'의 세력들은 갈수록 가치가 없어지는 은행과 주식 대신, 이른바 핫플레이스라며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동네 골목길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신종 포식자로 등극한 '건물주'들은 오로지 '돈'을 위해 오래도록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곳을 그곳답게 만들어온 사람들을 '내용증명'과 '퇴거 명령'으로 하루 아침에 불법자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이에 불응하면 건물에 가림막을 치는 등 장사를 할수 없는 훼방을 놓으며 임차인의 손발을 묶어 버린다. 무엇보다, '돈'으로 그곳을 샀다는 건물주의 주인 의식은 그곳이 '돈'이 되도록 만든 임차인의 삶과 지난 시간에 대해서는 안하무인이다. 심지어 임차인의 동등한 주인 의식은 괘씸죄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b급 문화의 전도사' 아티스트도, 그 누구도 그저 돈을 가진 주인, 건물주일 뿐, 이렇게 '돈놓고 돈먹기'가 된 거리에서, 더 이상 '문화'가 생존할 수 없다. 일본이 자랑스레 내보이는 100년 된 식당 전통이 무색하다. 

결국 <pd수첩>이 도달하는 곳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본질적 논리의 문제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업에 자본을 가진 자본주인가? 아니면 기업을 기업답게 피땀 흘려 만든 노동자인가 처럼, 건물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그 본질 말이다. 하지만 건물의 주인은 돈을 주고 건물을 산 사람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곳에 자기 자본을 들여, 오랜 시간 피땀 흘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만든 임차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명문화된 법은 3년이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임시직 사원을 3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약삭빠른 현실앞에, 헛점투성이로 임차인을 옭죄일 뿐이다. 

by meditator 2016. 2. 3. 16:18

2016년 새해 들어 너도 나도 이제 한 풀 꺾인 '먹방'의 대체제로 '집방'을 내세웠다. '집사서 집꾸민다'는 옛말이라며 '월세' 시대, '월셋방'이라도 멋지게 꾸미고 살자'며 증가하는 1인가구 시대(전체 가구 중 53%를 차지하는)에 홈 인테리어가 새로운 대세가 되었다고 권장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홈퍼니싱(home furnishing)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욕구를, 나만의 공간에 '커튼, 벽지, 침구, 부엌 용품' 등을 바꾸어 '내집'의 욕구를 대체한다는 전략이다. 그에 따라 심지어 주식 시장에서 조차, 셀프 인테리어 관련 주식들이 유망주로 등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발 빠르게 예능이 '집방'을 선점한다. jtbc의 <헌집줄게 새집다오>와 tvn의 <내 방의 품격>이 그것이다. 




'집방', 섣부르거나, 혹은 버거운 
하지만 발빠른 트렌드의 선점에도 불구하고 '집방'은 쉬이 '먹방'같은 붐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불황'과 '실업', '비정규직'와 가족 해체의 시대를 섣부르게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헤아리려 한 탓이 클 것이다. 즉 2인 가구중 저소득층 비율이 10%를 상위하는 반면, 1인 가구 중 저소득층은 45%에 육박한다. 즉, 1인가구는 늘어났지만, 그 과반에 해당하는 층이 저소득층으로 '집방'에 집을 열만한 여유가 없는 계층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령별로 2~30대 1인가구가 직장에 따른 이른바 '싱글족'에 해당한다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불안정한 고용으로 '집방'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현실이다. 심지어 저소득층 1인 가구 중 60% 이상이 60대 이상의 노인 1인 가구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1인 가구, 집방'을 섣부른 '장미빛' 환타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지난 해까지 주류를 이루던 '먹방'이 혼자 고시원에서 '먹방'을 보며 위로를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면, 최근 조장하고 있는 '집방'은 1인 가구 중 아직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젊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구매성' 상품이기에 쉬이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말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한 셀프 인테리어지, jtbc의 <헌집 줄게 새집다오>나, tvn의 <내방의 품격>이나, 결국은 집을 멋지게 꾸미기 위해서는 멋지게 보일 무언가를 사들여야 한다는데, 이 프로그램들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집을 위해 꾸미는 제품들은, 우리가 '먹방'을 위해 슈퍼에 가서 구입하는 계란 한 줄 정도와는 상대가 안되는 가격이라는 것이다. 2014년 12월 문을 연 세계적 홈 퍼니싱 브랜드 '이케아'같은 경우, 개장 100일 만에 누적 방문객 22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정작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이케아' 식으로 만들어진, 실제 이케아 가격에 몇 분에 일에 해당하는 가격의 모조품이다. 즉, 예능 프로그램은 100만원 한도내에서 방을 꾸민다 하고, 명품을 그래도 싼 가격에 사서 집을 꾸몄다고 하지만, 만원짜리 이케아 모조품이 유행하는 세태엔 '가랑이 찢어지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스테디셀러 '가족' 예능
쉬이 붐을 타지 못하는 '집방', 그리고 이제 한 고비를 넘긴 '먹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준한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가족 예능'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삼둥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추사랑, 서언, 서준에 뒤를 이어 '대박'이를 비롯한 이동국네 자녀들이 인기의 바통을 이어가고, 거기에 기태영, 유진의 아기가 합류함으로써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는 흐름을 바투 잡는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선보인 가족 예능도 있다. 매주 목요일 밤 11시10분 mbc를 통해 방영되는 <위대한 유산> 역시 가족 예능의 새로운 버전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방영된 역시나 mbc 예능 <사남일녀>의 또 다른 버전이다. <위대한 유산>에 출연 중인 mc그리의 아버지인 김구라의 첫 리얼리티 예능이었던 <사남일녀>는 김구라, 서장훈, 김재원, 이하늬, 김민종등의 연예인을 '가상 가족'을 꾸려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서 생활하게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19부로 조용히 마무리된 이 프로그램이, 아동 버전으로 새로이 등장한 것이 바로 <위대한 유산>이다. 김구라의 아들 mc 그리를 비롯하여 고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 홍성흔의 자녀 홍화리, 홍화철, 현주엽의 자녀 현준희, 현준욱이 함께 모여 가상의 남매가 되어 '가족'으로 울고 웃고 부대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물론 처음부터 <위대한 유산>이 이런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처음엔 김태원이 그의 '자폐'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등, 평소 적조했던 연예인 가족들의 동행 프로그램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반응이 여의치 않자, 트렌디 콘텐츠인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가상의 가족' 코스프레를 하게 만들며, 거기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을 예능의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아직도 그 아픔이 먼저 떠올려지는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의 속내마저 예능의 내용이 되었다. 

또한 시청률과 무관하게 화제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tv 조선의 <엄마가 뭐길래>이다. 10대 자녀와 엄마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관찰 리얼리티 예능으로 새로이 등장한 이 프로그램은, 매회 10대가 되도록 한국어로 대화조차 못하는 최민수의 자녀들이나, '자식이 원수'인지, '부모가 원수'인지 매회 새로운 갈등을 빚어내는 조혜련네 식구들로 인해, ''노이즈 마케팅'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대놓고 쇼윈도우 부부 행세를 해서 오히려 화제가 된 김숙 윤정수 부부의 <최고의 사랑>이나, 애견 프로그램인 듯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60일 바라보는 주병진의 가족 만들기인 < 개밥 주는 남자>도 동물 예능보다는, '가족 예능'의 또 다른 변형으로 보여진다. 



2015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삼시 세끼> 만제도 편이 인기있는 이유 중 하나는 차승원, 유해진의 가상 부부 코스프레와, 손호준, 그리고 동물까지 어우러진 '가족'연하는 분위기에 있다. 또한 결국은 '남편 찾기'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응답하라 1988>을 이끈 것은 '쌍문동 골몰길'의 가족 공동체였다. 그렇게 2015년 우리를 울리고 웃긴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이었다. 그리고 2016년, 예능은 여전히 그 '가족'을 다른 버전으로 끌어 가고자 한다. 거기엔 여전히 보호해야 할 아이들과, 서로 막말을 해도 되돌아 서면 보다듬을 수 밖에 없는 부모와 자식, 심지어 개, 그리고 부부가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이란 이름 앞에서 서로 부등켜 안는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이 유치원생에서 부터 10대까지 아동,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가상의 가족 공동체를 만들려 애쓰는 그 시간, , jtbc <썰전>은 최근 벌어진 부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다루었다. 가부장적이지만 자신의 감정조차도 조절할 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스톨홀름 증후군처럼 얽매인 어머니, 그 사이에서 죽어간 아이, <썰전>은 말한다. 아이의 학대와 방치가 언론에서 이슈화시키듯 계모와 계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친부모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장관까지 나서서 재발 방지를 장담하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물 콧물을 쏙 빼고, 하하 호호 거리며 '가족'이 최고라는 tv, 하지만 현실에서는 붕괴되는 '가족', 결국은 스테디 셀러인 가족 예능은 이 시대 사라져 가는 '가족'에 대한 '노스탤지어'일까. 
by meditator 2016. 1. 29. 15:39

1월 23일 새로이 시작된 ocn의 장르물, <동네의 영웅>의 배경은 말 그대로 동네이다. 거기에 중앙정보부 활동 중 명령 불복종으로 수감 생활을 마친 요원 출신의 백시윤(박시후 분)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팔려서 폐점 위기에 놓인 바 '이웃'을 사들여 동네 주점 사장 노릇을 시작한다. 그런데, 말 그대로 '동네 장사'를 시작한 이 전직 요원, '복수'를 꿈꾸는 그에게, 그가 사들인 주점 '이웃'도, 그가 웅크리고 앉은 이 동네도 심상치 않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시작된 현실감있는 서사의 시작
예고편 영상에서 동네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발 차기를 선보이며, 로봇 태권 V음악을 깔며, 유치한 동네 영웅으로 시청자를 '호객'했던 <동네의 영웅>, 하지만 이제 2회를 마친 이 드라마가 가진 포부가 심상치 않다. 
우선 1편의 시작은 한국 경제계에서 포식자로 등장한 중국 검은 돈의 뒷배를 캐기 위해 투입된 백시윤을 비롯한 중앙 정보부 요원들의 활약으로 시작된다. 상대측 인물의 핸드폰에 스파이웨어를 깔고, 여성 요원을 투입하여 그를 파악해 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것도 잠시, 알고보니 이미 '미인계'로 다가섰던 요원의 정체는 들통나있었고, 몰래 추적해 가던 백시윤의 차에는 트럭이 들이닥쳤다. 심지어 그 이후 이들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백시윤이 아끼는 동료가 살해되고, 백시윤은 그 일련의 책임을 지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백시윤은 말로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놀고 먹겠다고 하지만, 자신의 동료를 죽인 자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런 그가 선택한 곳은 우연히 들르게 된, 그런데 우연치 않게 그와 같은 전직 요원들의 안식처인 바 '이웃'이다. 은퇴를 앞둔 황사장(송재호 분)의 술집을 사들여, 그곳에서 그를 도와줄 전문 요원들을 결집하고자 하는데, 정작 사들인 '술집 동네'의 자질구레한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곳에서 알바로 일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배정연(유리 분)의 친구가 하는 카페에 '철거'를 명목으로 깡패들이 드나들며 24시간 괴롭히는데 무술 좀 하는 백시윤이 그걸 두고 볼 수 없어 나서며, 말 그대로 '동네의 영웅'으로 첫 테이프를  끊게 되는 것이다. 

허름한 동네의 폐점 위기의 술집이 전직 요원들의 암묵적 아지트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된 <동네의 영웅>, 하지만 2회에 들어서며 정작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동력이 되는 건, 바로 그 '동네의 영웅'이다. 즉, 바 '이웃'이 자리잡은 동네에 중국 자본이 투입된 한류 쇼핑몰이 들어서고, 그걸 건설할 세력들은 동네에서 스스로 터전을 잡은 토착 상인들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몰아내고 한다는데 바로 장르물 '동네의 영웅'이 탄생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보증금 5천만원을 내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영세 상인을 단 돈 천만원을 주며 폭력배를 동원하며 몰아내려는 중국 자본, 거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이곳을 얼어붙게 하기 위해 '아리랑 치기범'까지 동원하는 조직적인 개입은 짜임새 있다. 특히나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생적 문화 콘텐츠로 성장한 '홍대', '가로수길'에 이어 '북촌' '서촌' 등의 문화의 거리가, 그곳에서 고생하며 자리잡은 토착 상인들이 주인들의 집세 폭거로 인해 쫓겨나고, 이제 그 주인들조차 거대 중국 자본의 공세에 손을 들고 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은 점이 무엇보다 신선하다. 매회 얼마나 더 못되어 지는가 내기라도 하듯, 사이코패스 재벌 경쟁을 벌이는 드라마들 속에서, 우리 사회 속 현실 모순을 배경과 사건의 원인으로 섬세하게 배치한 구도가 섬세하다. 

제 2의 내부자들? 아니 제 2의 추노?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짜임새 있는 설정으로 시작된 <동네의 영웅>이 드라마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 받기에 발목을 잡는 인물이 있다. 바로 주인공 백시윤으로 분한 박시후이다. 사회적 물의와 논란이 되었던 그의 개인적 사건은 결국 법적으로 해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박시후는 3년간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하는 본의 아닌 자숙의 기간을 거쳤지만, 이병헌처럼 그 과정에서 박시후에게 박힌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동네의 영웅>이란 드라마 이전에 박시후가 나오는 드라마로 이 드라마가 평가받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그런데 박시후의 필모를 보면, <가문의 영광>, <검사 프린세스>, <공주의 남자> 등 그가 선택했던 작품들이 평작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 2회에 불과하지만, <동네의 영웅> 역시 짜임새있는 설정과 박시후를 제외하고도 기대할 만한 출연진들이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배가시킨다. 그런 점에서 <동네의 영웅>이 <내부자들>이 이병헌의 스캔들을 덮어 주었듯이 세간의 박시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하지만, 진짜 기대해 봐야 하는 건, 스캔들의 박시후가 아니라, 그를 주연으로 삼아 배수진을 친 <추노>의 곽정환 피디이다. 우스개 소리로 공중파의 스타 감독으로 유일하게 실패한 인물로 꼽히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곽정환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kbs를 나온 이후 곽정환 감독의 작품은 늘 신선한 시도를 거듭했다. <추노> 이후 <도망자 플랜 b>로 악평을 들었던 곽감독은, 이후 kbs를 나와 생뚱맞게도 그가 잘하는 '액션' 대신 '농구'를 꺼내들었다. 일제 시대 농구팀와 농구 스타를 통해 그 시절 젊음을 조명하고자 했던 <빠스껫볼> 하지만, 그의 시도는 그런 포부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신인 연기자군의 어설픈 연기와, <추노>처럼 뒷심이 부족한 대본, 그리고 생소한 주제와 소재에 냉정한 시청자들로 인해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오래도록 칩거했던 곽정환 감독이 들고 나온 작품이 <동네의 영웅>이다. <동네의 영웅>은 <추노>처럼 곽정환 감독이 잘하는 <액션>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도, 그 뒤를 받쳐줄 서사와 인물 관계가 촘촘히 짜여진 듯이 보인다. 과연, '박시후'라는 장벽을 넘어, 장르물의 전문가로, <추노>로만 기억된 그의 낙인을 뒤집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이것이 진짜 <동네의 영웅>의 볼거리이다. 
by meditator 2016. 1. 25. 16:09

1월 22일 첫 방영된 tvn의 금토 드라마 <시그널>은 마치 <응답하라>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그 시대들의 뒤안길을 파헤쳐간다.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라는 조동진의 노래를 따라, 그 시절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유괴된 아이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오는 날 운동장에서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산을 든 여자와 사라진 아이,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이제 그 아이, 김윤정 유괴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될 시점이 다가왔다. 하지만, 젊은 윤정이의 엄마가 초로의 나이가 되도록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 박해영(이제훈 분)이 우연히 집어든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온 15년전 그 시절 사건에 뛰어들었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공소 시효가 다가온 김윤정 양의 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갑동이>와 <시그널> 같은 듯, 다른 듯
이재한이 제공한 단서로 범인 윤수아(오연아 분)를 잡았지만, 박해영과 차수현(김혜수 분)을 가로막은 건 바로 공소시효다. 2014년 방영된 <갑동이>처럼, 범인을 눈 앞에 놓고도 공소 시효로 인해 눈 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상황이 다시 한번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갑동이 때처럼, 공소 시효는 범인을 잡는 또 다른 트릭으로 작용한다. 결국 김윤정 유괴 사건의 공소 시효를 넘겨버린 사건, 그리고 미소를 띠며 유유히 조사실을 걸어나가는 윤수아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살해한 또 다른 사람, 서형준의 살해 공소 시효였다. 하지만 여론은 윤정이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도 놓아줘야 하는 이 상황에 분노하고, 공소 시효법 자체가 개정된다. 그리고 경찰 안에 미제 사건 전담팀이 생기고, 윤정이 사건을 덮으려 했던 수사국장 김범주(장현성 분)는 보란듯이 윤정이 사건에 뛰어들었던 박해영, 차수현 등을 미제 사건 전담팀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던져진 첫 번째 미제 사건은 바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은 우리에겐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으로 더 익숙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미 2003년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영화 속 형사의 몸서리쳐지는 대사를 통해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2014년 드라마 <갑동이>를 통해 재연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대표적 미제 사건으로 박해영, 차수현의 미제 사건 전담팀에게 던져졌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을 다시 한번 파헤치는 <시그널>의 주체는, <갑동이> 때처럼 형사들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갑동이>가 그 시절 80년대의 막무가내 식 수사로 희생자가 되었던 희생자의 아들이 형사가 되어,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정신과 의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 들어간다면, 이제 2년만에 다시 <시그널>을 통해 재연된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주체는 그 시절의 신참 순경 이재한과, 미제 처리 전담반의 박해영, 차수현이다. 드라마는 과거로 부터 온 무전이라는 '환타지적 모티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이재한이라는 인물의 전사를 자유자재료 오간다. 김윤정 유괴 사건에서 서른 중반의 이재한으로 부터 무전이 왔다면, 이제 경기 남주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이재한을 그 시절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신참 시절의 이재한이다. 그렇게 이재한의 전사를 씨줄로 한 드라마는, 그와 무전을 하는 박해영을 매개로, 유족들을 '통한'으로 몰아넣는 '미제 사건'이라는 날줄로 이 사건을 엮어간다. <갑동이>가 제목에서 처럼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사건 자체와 그 사건의 범인에 집중해 들어갔다면, <시그널>은 앞서 1회에서 김윤정 유괴 사건을 시작으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으로 사건을 이어가며, '미제 사건' 이라는 줄기 자체에 집중한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 또 다시 <시그널>을 통해 재연된 이유는?
똑같이 재연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지만, 그 온도는 다르다. <갑동이>가 드라마 전체를 통해 이 사건에 집중하듯, 드라마는 현재에 되살아난 '갑동이'의 카피캣을 통해 특수 수사대가 만들어 질 정도로 경찰의 중심 사건으로 풀어진다. 그에 반해, <시그널>은 이미 김윤정 사건을 들춘 형사들이 6개월 뒤에 사라질 미제 사건 전담팀으로 보복성 배치되듯, '미제' 사건을 만든 경찰의 '정의롭지 않음'을 드라마의 한 축으로 끌고간다. 거기엔 아직 드러나지 않은 2회에 총성으로 끊긴 이재한 형사의 부재도 미스터리로 자리잡는다. 



즉, 이미 전작 <쓰리데이즈>를 통해, 위기의 대통령과, 다수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협조한 대통령을 경호해야 하는 경호원의 딜레마와, 그들이 찾아가는 정의를 통해,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2014년의 암울한 정의의 세상에, 한 줄기 '정의'의 가치를 강직하게 논했던 김은희 작가는, 이제 '미제 사건'을 통해, 돌아오지 않는 아이와, 그 아이의 죽음을 은폐하는 '정의'의 문제를 끄집어 낸다. 그리고, 홀홀단신 대통령과 그를 목숨을 바쳐 경호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으로 가능한 '정의'의 문제를 논했던 작가는, 이제 다시, '아이'의 생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여전한 피해자들의 '진혼곡'을 울릴 또 다른 정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하다. 600일 하고도 다시 반이 지나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정의'가 배제된 다른 사건들의 기억을 복기시킨다. 부디,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의 진범 '갑동이'를 잡고 싶다 절규했던 <갑동이>가 아쉽게도 사이코패스 갑동이와 그의 카피 캣에 짖눌려 버린 <갑동이>의 전철을 밟지 않고, 과거에 침잠되지 않은 채 무전을 보내온 이재한 형사의 이야기로 귀결될, 현재의 정의를 제대로 풀어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6. 1. 24. 02:21

이철희씨가 <썰전>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세간의 반응은 이젠 <썰전>도 다 됐구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이어진 다음 패널로 유시민 전 장관이 등장한다는 소식에, 섭섭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과연 유시민 장관의 입담을 당해낼 '보수적' 인사가 누가 있을 것인가 라는 노파심들이 지레 앞섰다. 하지만, 지난 1월 14일에 이어, 21일 방영된 <썰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유시민을 당할 자가 그 누가 있겠는가?라는 우려가, 말 그대로 우려였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2회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패널로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는 때론, 이른바 '좌파' 유시민을 앞설 정도로 통쾌한 보수로 실시간 검색어까지 장악할 경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새로이 합류한 유시민, 전원책의 색다른 케미는 프로그램의 인기에도 영향을 끼쳐 2%대에서 고전하는 시청률은 단박에 3%대를 넘어섰다.(1월 14일 3.353%, 1월 21일 3.586% 닐슨 코리아 기준)


유쾌통쾌한 보수 전원책 
1월 14일 첫 선을 보인 전원책 변호사가 처음부터 '사이다' 보수였던 것은 아니다. 첫 등장에서 부터 그가 종종 출연했던 종편의 방식대로 유시민과 김구라를 싸잡아 '좌파'라는 프레임을 씌우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에 회자되던 '김정일 ㅇㅇㅇ' 발언자 답게 '핵무장론'까지 들고 나오며 보수로서의 자신의 칼라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분투했다. 무엇보다 첫 방송에서 그는, 언제나 등장하는 보수적 인사들이 그렇듯이, mc 김구라나, 또 다른 패널 유시민의 말을 듣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긴다는 속담을 실천하기 라도 하듯, 자신의 주장을 목소리높여 내세우는데 급급했다. 그래서 저래가지고서야, 양 측의 입장은 둘째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썰전>이 가능하겠는가란 회의를 들도록 만들었다. 

허긴, 보수적 인사의 '마이동풍'은 전원책 변호사만의 전매 특허는 아니다. 이미 강용석 변호사 시절부터 '대화'를 하는 대신, 마치 성명서를 발표하듯이 자신이 준비해온 입장을 낭독하는 듯한 발언을 줄줄이 쏟아냈었다. 단지 그것이 시간의 마법에 말려들어 어느덧 '아전인수' 해놓고 스스로 낯이 붉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첫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에겐 아직 '시간'의 마법 가루가 뿌려지지 않은 듯, 날선 자신의 입장을 토해 놓기에 급급했다. 



그랬던 전원책 변호사였는데, 2회에 들어서는 이 사람이 지난 주 그 사람이 맞아?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물론 여전히 정치인 들 모조리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던가, 혹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는 추호도 달라진 입장을 보이진 않지만, 이전 회와 달리, 함께 자리를 한 김구라나, 유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패널로서의 편안함을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에 비해 전원책 변호사가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예의 정치인들 모조리 단두대 행이라는 그의 소신에서부터 비롯된 정치 전반에 대한 회의가, 여야를 막론하고 가차없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에 발을 걸치거나, 발을 걸치고 싶어하는 강용석, 이준석에 비해 한결 그의 보수적 입장이 명료해진다.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핵안보'를 내세우는 극강 보수이지만, 현실 정치 환경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그의 입장들이, 여러 정치적 사안들에 냉정한 평론적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썰전>에는 제격인 것이다. 

심지어 야당이 보이는 일련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보이는 그대로의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는 유시민 전 장관의 소박한, 그래서 때로는 순진하거나 고지식해 보이는 입장에 비해, 대놓고 문재인 당, 안철수 당이라며, 정곡을 찌르고 가는 전원책 변호사의 언급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한다. 

한 회만에 달라진 <썰전>, 프레임을 넘어선 정치 평론이 가능케 된 것은?
심지어 두 번 째 출연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자신이 첫 시간 '좌파'라고 까지 하며 심하게 몰아붙였던 김구라에게 사과를 하며, 속옷까지 파란 색 운운하며, '좌파' 프레임을 내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회 등장에서 부터 무시무시하게 '좌파' 프레임에 '종북' 프레임을 내걸지 못해 목소리를 높이던 전원책 변호사와, 단 한 회만에 자신의 속옷까지 내걸며 자신이 '온건한' 사람이며, 보수적이지만, '친여'는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한 듯 보이게 만든 건 무엇일까? 그저 전원책이 방송을 아는 사람이라서 혹은 매력적인 보수라서 라는 평가론 부족하다. 

첫 회 곧 김정은 나쁜 놈이라고 외칠 것같고, 진짜로 단두대에 올라설 듯 서슬이 퍼랬던 전원책 변호사와, 같은 단두대 얘기를 계면쩍은 미소와 함께 농담으로 얼버무리고, 유시민 장관과 함께 '만담'을 하듯, 농협 이사장 선거에서 부터, 정치자금법에 이르기 까지 입을 모을 수 있는 전원책 변호사는 같은 사람이다. 결국 같은 사람이지만, 그 같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즉 첫 회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는 그가 출연했던 종편 정치 토론 프로그램에서의 전원책 변호사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했던 종편 프로그램에서 요구해왔듯이, 그는 선명하게, 극렬하게 자신이 가진 '보수적' 입장의 날을 한껏 벼린다. 김구라나, 유시민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입장만 소리 높여 외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가지고서는 '썰전'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한 회 출연해서 입장만 밝히는 건 몰라도,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누가 더 목소리가 높은가, 선명한가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하는 종편에서는 몰라도,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각종 사안들에 대해 '썰전'을 하는 방식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달라질 밖에. 



결국 같은 전원책 변호사이지만, 첫 회의 그와, 두번 째 출연한 그가 마치 전혀 다른 사람같듯이 보이는 건, 결국, '프레임'에 맞춘 테이프 돌리듯한 종편 방송 환경에 대한 '확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가장 선명한 보수론자 전원책 변호사도 유시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맞장구도 치고, 혹시나 앞으로 자신의 입장으로 인해 곤란한 점에 대해 미리 사과도 할 수 있는 그런 '보수'의 이례적인 모습은, 결국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함께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전원책 변호사의 변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누구보다 얄밉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유시민 전 장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사적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과, 이미 이철희 강용석 두 패널의 대립을 경험한 김구라의 노회한 중립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데, 제 아무리 중뿔난 전원책이기로서니, 혼자서 내내 고함을 질러댈 순 없는 것이다. 

단 한 회 만에 보수 논객에서 썰전의 매력적인 패널로 변신한 전원책 변호사를 보면, 막가파 여당 바라기 강용성을 데이터 뱅크 강용석으로, 결국은 더 민주당원이 되어버린 이철희를 객관적인 평론가로 벼려왔던 <썰전>의 내공이 돋보인다. 가장 선명한 색깔인 줄 알았던 유시민과 전원책이 모여, 색다른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며, 말 그대로 정치를 비롯한 각종 사안에 대해 속시원히 풀어주는 '썰전'은 그래서 모처럼 다시 기대되는 정치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저 또 하나의 정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막말 보수 논객도 달라졌어요'가 보여준 '소통'의 가능성이다. 


by meditator 2016. 1. 22. 15:07

신년 특집으로 방송된 <sbs스페셜-엄마의 전쟁> 1부, <나는 나쁜 엄마입니까?>는 일요일 밤 11시가 넘어 늦은 시간 방영된 다큐임에도 다음 날 검색어를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엄마라면 느낄 절박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며 시작한 <엄마의 전쟁>은 2부 <캥거루 맘의 비밀>에 이어, 1월 17일 3부 <1m의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로 3부작를 마무리하였다. 




엄마들의 끝나지 않는 전쟁?
시작은 '맘충'으로 불려진다는 이 시대 엄마들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이른바 '애착 육아'라고, '적어도 3년은 아이를 품 안에서 키워야 하며, 3초도 눈을 떼서는 안된다'라는 아이와 엄마의 '애착 형성'을 아이의 성격 형성에 근간으로 삼는 '육아 방식'이 이 시대 대표적 육아 방식이 되면서 '엄마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는데서 다큐의 문제 의식은 시작된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전력을 투구해야만 하고, 그런 극성스런 엄마들의 육아 방식에 대해 일부에서는 '몰지각한 신인류', '맘충'이라고 모욕적인 표현까지 쓰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정작 들여다 보면, 그 '전쟁'에 휘말린 '엄마'들의 사정도 녹록치 않다는 것이라는데 다큐의 시선은 놓여져 있다. 

그리고 '애착 육아'가 중요한 사회에서, 자신의 일과 육아, 그리고 가정이라는 두 마리, 혹은 세 마리의 토끼를 쫓는 엄마들의 일상은 '분초'를 다투는 말 그대로 '전쟁'이요, 그런 엄마들의 빈 자리에 어김없이 2부에서 등장한 '캥거루맘'이라 지칭되는 '황혼육아'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 의식은 그럴 듯하고, 막상 다큐를 통해 보여진 현실은 적나라한데, 막상 3부까지 마무리된 <엄마의 전쟁>은 어쩐지, 마치 그 예전 대학 역사개론 시간에 한 시간 내내 사건을 쭈욱 나열하고는 그 시대의 역사를 흐뭇하게 쫑내버리는 어떤 역사 교수님이 떠오른다. 이것도 엄마의 전쟁이요, 저것도 엄마의 전쟁이요, 이렇게 엄마들은 '전쟁' 중에 있다. 이상 끝! 뭐 이런 식인 느낌?



엄마들의 중구난방 전쟁
1부 <나는 나쁜 엄마입니까?>가 방영된 이후 화제가 되었던 것은 제목 그대로 다큐에 등장했던 엄마들이 나쁜 엄마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의도한대로 우리 시대의 워킹맘의 '적나라한 가족 사진'이 가감없이 보여졌다. 연세대를 나와 국내 굴지 대기업에 근무하는 워킹맘의 24시간이 모자른 육아하며,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다섯 명의 '아이 돌보미 어벤져스'군단까지 현실은 절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시기에 도움이 안되는 어벤져스 덕에, 발을 동동 구르며 책임을 져야 하는 35살 양정아 씨의 상황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안타까움에 비례하여, 그 다음 등장한 33세 간호사 남궁정아씨는, 그렇게 아이와 육아라는 양 손의 떡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양정아 씨에 비해 마치 '가정'과 '육아'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처럼 보여져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정말 다큐를 보다보면 그녀의 남편 말처럼, 그녀는 가정을, 그리고 아이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은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2부에 등장한 한때 사교계 여왕이었으나, 이제는 딸이 데리고 온 손자들과 씨름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황복심씨의 딸 역시 논란이 되었다. 다큐의 시선은 '자고로 얘들은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는 엄마 세대 육아와 그런 엄마와 달리, 아이의 이유식을 위해서는 5만원 어치의 소고기도 아까워 하지 않는 딸 세대의 육아 방식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하였지만 정작 다큐 시선 속에 보여진 것은 어쩐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딸의 육아 방식이다. 

그래도 1부에서는 현실에서 절박한 워킹맘의 육아 전쟁과, 이어진 2부에서는 요즘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황혼 육아의 가치관 전쟁을 다룬 점에서 일련의 당대성과 시사성을 가진 '엄마의 전쟁'이었다. 그러다, 이 다큐의 마무리가 되어야 할 3부에 와서 다큐는, 정작 1,2부에서 제기한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튼다. 스물 셋에 시집와서 30년이 넘는 대가족을 건사하느라 일에 파묻혀 사는 일개미 엄마 김미숙씨와, 그녀의 베짱이 남편, 그리고 13명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대식구에 워킹맘까지 하는 함은주씨의 고달픈 일상으로 침전해 버린다. 물론 1부도, 2부도 그리고 3부도 여전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엄마의 전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전쟁도 전쟁 나름이지, 이렇게 쭈욱 '엄마가 전쟁'을 하고 있다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서로 이해하고 다가가면 다 해결되는가?
전쟁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어떤 상대를 대상으로 해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3부작 <엄마의 전쟁>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 다큐는 제작하는 제작진이 이 시대 엄마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 사실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그 전쟁의 '주적'이 누군인지에 대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즉, 간호사이면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고자 하는 엄마의 욕구는, 그녀의 모성성의 부재로 욕을 먹을 일이 아니라, 정작 연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직장을 계속 다녀야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엄마의 고민과 동일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여성'도 동등한 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그 능력을 펼쳐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현실에서 그런 '욕구'를 가진 엄마를 '나쁜 엄마'의 여론 재판으로 내몰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애착 육아'가 대세라고 하면, '애착 육아'가 가능하게 회사에 놀이방을 마련하고, 엄마가 일을 하며서도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한때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엄마를 새삼스레 집에 불러들여, 부모 자식 세대의 가치관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식 둘 데리고 와서 엄마에게 한동안 치대다가, 그 이유가 엄마가 외로워서 함께 있고 싶어서라고 핑계댈 것이 아니라. '황혼'에 육아가 짐이 되지 않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다큐'의 시선과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엄마들의 전쟁'이라는 보이는 현실만 찍다보니, 자기 계발의 욕구를 가진 엄마를 '나쁜 엄마'라 규정짓고, 아이 돌보미 어벤져스나 황혼 육아를 해프닝처럼 그려낼 뿐이다. 



그러니 3부에서 예능처럼 1m의 밧줄이 등장하여,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친해보자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부추키는 나라, 하지만 정작 아이를 많이 낳은 엄마는 가난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죄인이 되고, 하루 종일 그 아이들 뒤치닥거리와 돈벌이에 심신이 지쳐간다. 13명의 아이들도 부족해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나라의 엄마에게 필요한 게 주말의 휴식일까? 

그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처럼, 조금 더 이해하고 다가가면 해결 될 문제일까? 간호사 엄마와 아빠가 서로 이해하고 다가가면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 아이돌봐줄 사람이 없어 동동 거리는 워킹맘에게 이해하고 다가갈 사람은 주변 사람들일까? 국가일까? 사회일까? 그러니 결국 대한민국에서 전쟁에 시달린 엄마가 선택할 길은 '어벤져스'와 같은 돌보미 영웅들이 등장하거나, 그게 아니면 윤현숙씨 처럼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주변의 '인정'과 이해로 마무리한 또 다른 '가족주의'의 전횡이다.  나름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던 <엄마의 전쟁>이 그래서 그 어느때의 sbs스페셜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by meditator 2016. 1. 18. 17:12

결국은 '남편찾기'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19회 케이블 드라마로 17%가 넘는(19회, 19.597% 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공중파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중박이라 치는 세상에서 놀라운 성과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는 확연히 세대별 시청 프로그램이 갈리는 tv 콘텐츠에서, 10대에서 50대까지 거의 전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이 시청률을 넘어서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이런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50대의 세대가 20대의 삶을 살았던 1988년이라는 '추억'과, 시대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화두가 절묘하고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혹은 엄마와 딸이 '덕선이의 남편감'을 두고 격의없는 설전을 벌이는 '세대간 화해'를 이루는 성취를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응팔이라는 세대 공감의 드라마의 비등점을 끓게 만든 것은, 두 말 할 것이 없이 '덕선의 남편찾기'이다. 극이 중반에 들어서며 현격하게 떨어지는 서사의 빈 공간을 가족 에피소드와, 제작진이 매회 던지는 남편 찾기의 떡밥으로 채워져 갔던 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도, <응답하라 1997>에서도, 그리고 이제 <응답하라 1988>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화두'로, 제작진의 초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력한 '클리셰'가 되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 진부한 '남편찾기'라는 그래서 극 초반, 전작을 '독파한' 시청자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정의를 지레 내리는 불상사에 대처하고자, 전작과는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응팔>은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의 고전적 클리셰를, 전작과는 다른 결론으로 '진부함'을 피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제작진의 선택은, '어남류'라 철썩같이 믿었던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응답하라>시리즈가 가진 고유성마저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제작진의 새로운 전략, 어남택? 
2012년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응팔>처럼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커징텅(가진동 분)을 비롯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쌍문동 골목길의 소년들처럼 같은 반의 여주인공 션자이(진연희 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응팔>의 정팔(정환, 류준열 분)처럼 마음과 달리 자꾸 그녀와 어긋나기만 한다. 두 사람은 잠시 사귀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응팔처럼>. 아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은 말 그대로 그들의 십대 시절의 풋풋함과, 그 시절과 상황이 달라진 나이 먹어감을 두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응팔>의 정환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징텅처럼 그 시절의 대표적인 남학생인 듯 하다, 어느 순간 심지어 20회에 들어서는 존재조차 없는 존재로 <응팔>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타이밍'을 놓친 죄로, 자신을 찾아온 택에게 '덕선을 사귀라는' 잔인한 덕담이나 하는 존재로 소모된다. 

물론 덕선의 남편이 택이로 정해진 후, 그리고 시리즈의 후반 제작진이 확고하게 택이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덕선과 택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밝은 시청자들은 거기서 부터 유추해 들어가, 덕선과 택이의 '사랑'이 어느날 갑자기 결정된 제작진의 결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진 '세월'이라고 확인사살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덕선의 '관점'에 대한 해석이 덧대어지며 '택이'만이 덕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결론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남류'라 믿었던, 혹은 정팔의 관점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저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의 연기가 너무도 극진하여, 그게 아니면 류준열이란 배우의 매력에 빠져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극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남류'는 그저 '남편찾기'의 바램이 아니었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아왔던 시청자들이 터득한 나름의 <응답하라>의 정서이자, 과도하게는 '주제'였던 것이다. 



그저 '어남류'가 아니라, <응답하라> 당대성의 표현이었던 정환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은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17살 그들처럼, 94년에, 97년에, 그리고 88년에 살았을 '평범한' 녀석들이다. 비록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 분)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 분)가 대한민국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되었어도, 그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같은, 싸가지 없는 평범한 그 시대의 녀석들일 뿐이다. 그에 비해, 그들의 연적이 되었던 <응사>의 칠봉이(유연석 분)나, 윤태웅(송종호 분)는 당대의 영웅이었다. <응답하라 1988>의 이창호가 연상되는 최택처럼. 그래서 그들은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처럼 잠시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해서, 한껏 여주인공의 러브 환타지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어느덧 그들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제 아무리 잔인한 이별을 고해도, 그들에게는 당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그들만의 서사가 남아있으니까. 그들에게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위로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잠시 그녀를 사랑했던 영웅은, 그들답게 그들의 '마이웨이'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응팔>은 이미 시청자들이 익숙해져 버려서, '어남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이 시리즈의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해 전작이 하고자 했던 '당대성'을 파괴한다. 즉, 당대의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최택이라는 당대의 영웅같은,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주인공과 맺어짐으로써, 그 시대 보통 소년이었던 정환의 존재가 공중으로 붕 뜬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 시리즈가 가져왔던 '당대성'도 함께 공중으로 붕 뜨게 된 것이다. 그저 당시의 시대상이나 소품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청춘'의 당대성'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여주인공인 덕선이가 사랑을 찾았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제작진이 남편찾기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트릭이었던 것인지, 드라마는 거의 16부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정환'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 언제나 카메라의 시선을 정환을 향해 있었고,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는 그런 정환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정환에 중심을 맞춘 카메라의 외곽에 에피소드처럼 다루어 졌다. 그러니 드라마에 골몰한 시청자들은 정해진 미로를 탐구하는 모르모트처럼 제작진이 프레임 안에 가두어 둔 정환의 풋사랑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덕선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정환의 마지막 고백 장면에 등장했던 '정환'의 순애보의 전사를 덕선보다도 잘 안다. 거기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정환은 '가족애'의 현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무뚝뚝하지만, 라미란 여사네 아들로써 그 누구보다 속깊은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심장병에 걸린 형 대신 공사까지 가는 '가족애'의 주인공이다. 가족뿐인가, 그가 첫 번째 존재감을 드러낸 선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 씬 이래 정환은 좋은 친구 이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이런 '공동체'를 봉합하려 종종 자신마저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그 보상으로 '사랑'을 선사했는데, 이번 시리즈에선, 그런 정환에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고백'조차 거짓으로 하게 만드는 '진따'로 만들어 버렸으니, <응답하라>에 '모범생'처럼 제작진이 주는 받아먹는 충성을 바쳤던 시청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배신이 된 것이다. 착한 아들, 착한 동생은 심지어 착한 친구로 남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환만이 아니다. 그만큼 평범했던 동룡이마저 실종되었다. 어느 시리즈보다 가장 혈육같았던 친구들은 그저, 덕선과 택이의 러브 메신저로만 소비되었다. 

그런데 이제 원래 '어남택'이었다니, 이것을 <응답하라>의 변경된 전략을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남편찾기'로의 재미로 해석할지, 그게 아니면 덕선이에 대한 일편단심 택이의 순애보로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남편찾기에 골몰하다 스스로 궤도 이탈해 버린 시리즈의 궤멸로 받아들일지조차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번에도 역시 '남편찾기' 흥행을 대성황이라며 삼페인을 터트리는데, 제작진에 순종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허무'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분명 다음에 또 <응답하라>가 만들어 지면 볼테니,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by meditator 2016. 1. 17. 02:01

9회 <리멈베-아들의 전쟁> 앞이 보이지 않던 진우 아빠의 서재혁씨(전광렬 분)의 재심 재판, 하지만 진우(유승호 분)가 전주댁의 살인자가 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청부 살해 업자를 찾아 맨몸으로 돌진한(?) 검사 이인아(박민영 분)의 살신성인으로 진우를 옭아맸던 음모로부터 진우가 자유로워지고,  뜻하지 않게 아빠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 살해를 당한 전주댁의 남겨진 영상으로 '재심'의 결정적 증거가 확보되어 진우는 아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 선다. 전주댁의 영상에 이어 또 다른 결정적 증인인 의사를 호명하는 도중, 그만 진우는 기억을 잃으며 쓰러진다. 그의 과잉 기억 증후군의 반전인지, 아버지에 이은 알츠하이머의 유전인지, 다음 회를 기약하면서. 




언제나 '고꾸라지는'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 진우가 기억을 잃는다는 충격적인 정황의 구체적인 상황에 거리를 두고 이 씬 자체의 틀을 보면 어딘가 익숙하다. 과잉 기억 증후군에, 기억력 못지 않게 명민하고 똑똑한 판단력에 일호 병원 부원장을 위협할 정도의 담대한 기지, 거기에 자신을 잡으려 들이닥친 경찰관 무리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도망치는 액션까지, 도대체 안가진 것 없는 이 능력자 주인공이지만, <리멤버-아들의 전쟁> 1회 이래 이 능력있는 주인공은 늘 이렇게 결정적 상황에서 '고꾸라지고'만다. 

4년전 처음 아버지가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법정에 섰을 때도, 군중의 계란 세례에도 의연했던 진우, 그리고 아버지의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도박장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진우지만, 정작 그가 믿었던 변호사 박동호(박성웅 분)가 결정적 순간 그를, 그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만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재판이라며. 그렇게 아들의 전쟁 서막에서 진우는 박동호로 하여금 대리전을 치룬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렇게 믿었던 변호사에게 배신을 당한 진우는 그래서 이제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변호를 맡기는 대신 자기 자신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의 똑똑한 머리로 변호가가 되었다. 심지어 박동호를 벤치마킹한 듯한 처신으로 일호 그룹의 변호를 맡으며, 그룹의 비리 장부까지 챙겼다. 그렇게 야심차게 아버지의 재심을 위해 에돌아 왔던 진우, 하지만 그런 그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지켜보던 남규만(남궁민 분)은, 진우가 '재심'을 위한 도정에 나서자, 단번에 그를 살인자로 옭아매고 만다. 비밀의 방까지 만들고, 일호 그룹 조직도며, 아버지 사건을 도표화하면서 재심을 준비하던 진우는 하루 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겨우 이인아와 박동호의 도움으로 살인자 누명에서 벗어난 진우가 주도면밀하게 '재심'을 준비해 가지만, 정작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가 준비한 재심이 아니라, 그의 '기억 상실'이다. 
이렇게 9회에 오는 동안 <리멤버-아들의 전쟁> 속 아들은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이지도 못하고, 언제나 완전 군장을 하고 전쟁을 하려는 순간, 고꾸라지고 만다. 그렇게 아들이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이지도 못하는 반면, 그런 아들에 위협을 느낀 서촌 여대생 살인 사건의 진범 남규만은 회를 거듭할 수록, 그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의 도를 업그레이드한다. 그저 한 여대생을 범하려다 죽이고 만 사건은 4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그 사건을 덮기 위해 전주댁을 청부 살해하고, 진우를 그 살해범으로 만들고, 사건과 관련된 숱한 인물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오히려 사건을 확산시킨다. 즉, 진우가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하지 못하는 동안, 남규만은 계속 무언가를 하며, 그의 악행을 쌓아간다. 



끊임없이 시도되다 허무하게 주저앉는 복수, 에스켈러이션 되는 악행, sbs 수목극의 클리셰
이렇게 야무지게 '복수'를 시도하지만, 늘 '고꾸라지고'마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도 불구하고 쫄아서 나날이 악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악역의 구도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만이 아니라, 최근 시청률이 잘 나오는 sbs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구조이다. 잘 나가는 sbs수목 드라마의 전통을 만든 <가면>이 그랬고, <용팔이>가 그랬다. 거기엔 억울한, 그래서 복수를 해야 하는 주인공이 있었고, 그 주인공의 상대편엔, 주인공을 저지하고자 나날이 능력치가 만랩이 되어가는 '악의 화신'이 있었다. 매회 주인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 하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까지는 늘 악인의 함정에, 혹은 자기 자신의 한계로 인해 고꾸라진다. 그리고 그 동안 드라마의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회를 거듭할 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악행이다. 

이들 드라마의 또 다른 공통점은, 결정적 순간이 오기 까지, '발암'이 될 정도로 무언가를 해보려다 고꾸라지는 주인공과 능력치를 거듭해가는 악역과 더불어, 속도감넘치는 전개이다. 하지만, 그 속도감 넘치는 전개에 개연성은 따라붙지 않는다. 한 회 동안 숨가쁘게 많은 사건들이 전개되고, 주인공은 늘 사건에 휘말리고, 그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횡무진하고, 그런 주인공에 대적하는 악역은 자신의 불안을 <리멤버> 9회 남규만이 자신의 길을 막는 소형 자동차에 골프채로 화풀이를 하듯 '사이코패스'적 행태로 표출한다. 고등학생이었던 진우가 그의 과잉기억 증후군을 이용하여 도박장에 홀홀단신으로 뛰어들고, 사시에 붙는가 하면, 살인자가 되어 경찰을 피해 도망자가 되는가 싶더니, 이제 재판을 이끄는 등, 도저히 한 장르가 보기에도 '스펙타클'한 내용들이 이제 9회가 된 드라마에서 벌어진다. <리멤버>만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죽었다 살아나서 재벌 안주인이 된 여주인공의 해프닝이나, 왕진 의사에서 재벌가의 딸내미의 연인이 되어 병원에서 어드벤처 액션씬을 찍은 용팔이까지, '개연성'이란 말을 붙이기도 무색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러는 동안 시청자들은 '고꾸라지는'주인공에 답답해 하면서도, 결국은 이 주인공이 저 천하무적 악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며, 매회 벌어지는 깨고 부수고 죽이고 이합집산하는 이야기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비단 최근 sbs 수목극만의 클리셰가 아니다. 아침 드라마에서 수난사를 날마다 새로 쓰는 여주인공들이며, <내딸 금사월>을 비롯한 시청률 높은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또한 그러한 것이다. 오히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sbs 수목극은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통속극'의 단순하지만 자극적인 사건 전개를, 장르만 바꾸어서 확장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면>, <용팔이> 그리고 이제 <리멤버>까지 높은 시청률로 이어진 ,sbs 수목극의 성취는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범용되고 있는 '복수'의, 그리고 악의 에스컬레이션에 기댄 통속극의 확산이다. <리멤버>의 전개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을 들먹일 것이 아니라,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 속 눈을 부릅뜨며 갖가지 악을 진열했던 악역들의 '모사'라 하는 게 정확한 것이다. 마치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느끼는 이 '갑을'의 사회 구조에서 억눌린 감정을 대리 배설하듯, 극중 나날이 심해지는 악행의 에스컬레이션을 보며 '욕을 퍼부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 또한 현실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절망감을 반영하듯, 주인공은 똑똑하고 야무지며 언제나 선하지만 그 선함을 '악의 절벽'에 부딪혀 최후의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고꾸라짐'으로써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는 마지막 순간, 처절하게 악을 응징하는 '환타지'로 보상받는다. 

이들 드라마는 그 배경이 재벌가의 백화점이건, 병원이건, 그리고 이제 법정이건 상관이 없다. 계약 결혼으로 그만 재벌가의 남자를 사랑해 버린 여자이건, 재벌가의 딸을 사랑한 의사이건,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잃을 위기에 놓인 젊은 변호사건, 마치 게임 배경만 바뀐 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적을 향해 몇 번의 죽임을 당할 기회를 놓고 싸움을 벌여가는 '게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날마다 게임에 빠져있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그들이 tv 속에서 빠져드는 드라마는 그들의 자식들이 빠져있는 게임보다도 단순한 서사의 '게임'같은 드라마로 매일을 채운다. 그저 주인공은 자신을 휩싼 비극적 운명 속에서, 그 비극을 제칠 '복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게임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게임 운영 방식을 본딴, rpg 사극이 퓨전 사극의 새 형식으로 도입되었던 그 때가 무색하게 이젠 모든 드라마가 rpg(roll playing game)이다. 

거기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천착, 사회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재벌과 거기에 종속된 검찰과 여타의 권력들이 등장하지만 소모적이다. 어쩌면 매일 매일 닥쳐오는 삶의 물결에 허우적거리는 우리네 삶을 가장 닮아 친근해 하는 것일일지도 모르지만, 이쯤이면, 게임 중독 못지 않다. 

by meditator 2016. 1. 14. 15:43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무협(武俠)은 무술에 뛰어난 협객을 뜻한다. 그렇다면 협객(俠客)은 또 무엇인가? 역시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의롭고 씩씩한 기개가 있는 사람이란다. 막연하다. 좀 더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 <사기>를 쓴 사마천의 정의가 등장한다. '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 이미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행하며 자신의 위급함을 돌보지 않은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 사생존망의 위급함을 겪었어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도 어쩐지 추상적이다. 좀 더 상세히 들어가서 ' 의를 쫒으며 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거는, 요컨데 범죄라도 가리지 않고 행하는 개인 혹은 집단들. 의병, 영웅 등과 같이 위기상황이 올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하는 패턴을 즐겨한다. 사실 단어 자체는 중국에서 나왔지만 그 범주 자체는 세계 곳곳의 역사에 존재하고 있다.  즉,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하는에 방점이 찍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에 이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또한 무림(武林)이란 그런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말한다. (나무 위키 참조 )




사회적 질서로 부터 튕겨져 나온, 무협
'협객'의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처음 시작한 이는 위의 사마천이다. 그가 쓴 <사기>에는 협객들을 다룬 <유협 열전>이란 범주가 있다. 혹자는 <자객 열전>  또한 협객의 이야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 좀 과거에 한가락 한 인물들의 그 과거 '한 가락'은 결국 '협객'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또 다른 동양 고전, <수호지>는 협객사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정의가 된다. 여기서 보듯이, '협객'은 우리나라보다는, 동양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의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당시 시대 기준으로도 엄연히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스스로가 내세운 '대의명분'에 의거, '의롭고 기개가 있는'인물로 캐릭터의 변이가 이루어 지는 것은, 삼국지의 배경이나, 수호지의 배경으로 보건대, '국가 권력이 사회 전반을 관할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국면'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칼부림이나 하는 양아치들이 될수도 있는 인물이 당대의 영웅으로, 이른바 '협객'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꼭 국가 권력의 영역에서만 '협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보는 중국의 무협 영화 다수를 보면, 개인의 원한에서 부터 국가에 대한 환멸, 의리까지 무협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건, 기존의 사회 질서가 그의 검을 혹은 다른 무기를 다스릴 수 없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어쨌든 무협은 그 서사의 시작이나, 서사의 융성은 '중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무협지'는 다수의 마니아를 구축한 문학 장르이지만,  정통이 아닌 '하위 문화'장르로 취급받아왔었으며, 심지어 메이드인 코리아의 '무협지'의 배경 역시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의 어떤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의에 근거하여  2015년에서 2016년에 걸쳐 대두되기 시작한 tv 무협을 살펴보자. 1월 11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월화 드라마 <무림 학교>는 말 그대로 '무협'을 배우는 학교이다. 산속에 신비스러운 결계에 가려져 있는 이 학교는 소림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모여 '무'(무)에 근거한 심신 수련을 하는 곳이다. 이미 <드림 하이> 1, 2를 통해 정규의 학교 과정 외에 '신선한' 배움의 장을 마련해 왔던, 그리고 방학마다 '학교' 시리즈를 통해 학생 시청자들에 호응해 왔던 kbs2가 마련한 신선한 '고육지책'이다. 첫 회에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두 주인공들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재벌 회장의 서자이지만 전 세계 어느 학교에서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말썽꾸러기 왕치앙(홍빈 분)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핸디캡으로 그가 속해있던 곳에서 방출되다시피한 윤시우(이현우 분) 등 아웃사이더들에게 마지막 비상구로 열려진 곳이 바로 '무림학교'로 설정된다. 



2016년 tv로 온 무협 
그런가 하면 고려말 국가적 혼란기라는 <육룡이 나르샤>의 시대적 배경은 '무협'이 득세하기엔 더할나위없는 상황이다. 이제 슬슬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고려 건국에서 부터 왕실의 뒤에서 고려를 도와왔던 '무명'이라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그런 무명에 대항하여, 정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갈 <뿌리깊은 나무>까지 이어질 '밀본' 역시 그 행동책에는 '무협'들이 다수 자리잡는다. 극의 기본 줄기는 이제 이방원을 내세워 정권의 뒷배가 되려는 무명과, 그에 맞서 왕이 중심이 아닌, 백성과, 백성의 뜻을 받든 '신하'들의 민주적 집합체이자, 유교적 구현을 이루고자 하는 '밀본'의 대결로 이어져 가지만, 그들의 구체적 행동 양태는 그들의 수하인, 각 조직의 '무협'들의 대결로 실현된다. 그 무협들은 중국 제일검 장삼봉과, 그의 제자로 삼한 제일검이 될 이방지, 그리고 여성으로서 장삼봉의 제자를 살한 척사광, 그리고 홍대홍의 제자로 홍대홍을 넘어선 훗날 조선 제일검이 될 무휼 등은 기존 왕 중심의 역사극에서 탈피하고자 한 <육룡의 나르샤>의 진짜 용이 되어 조선 건국이라는 격동에 휘말려 들어간다. 

이렇게 기존 학교 교육의 권태라는 공간에 드밀고 들어온 <무림 학교>나, 고려 말 격동의 아노미 속에서 한 획을 그을 무협들의 쟁투로써의 <육룡이 나르샤>의 설정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 그럴 듯한 서사가 막상 드라마로 구체화되는 지점에서는 아직은 '실험적'이란 것이 정확한 평가일 듯하다. 

결계에 쳐진 무림 학교 라는 공간으로 들어온 재벌 아들과 아이돌이라는 설정부터 청소년 환타지의 진부한 클리셰를 답습한다. 또한 무림학교 라는 공간에서 이들을 굴러온 돌처럼 여기는 기존의 자부심 강한 학생들과 이들의 갈등, 거기에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은 '학교', 혹은 '청소년' 물에서는 신물나도록 되풀이 되었던 설정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을 둘러싼 어설픈 삼각 관계까지. 그런 '납작하고 또 납작한 갈등'을 어설픈 'cg'를 곁들여 펼쳐냄으로써 '어린이 드라마'같다는 평가를 받고야 만다. 이범수, 신현준, 신성우까지 묵직한 조연들과, 무림이라는 신선한 구도가 보여주는 기대는 크지만, 기본적으로 무림이건, 학교건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는 청소년에 대한 전개가 '청소년'에 대한 일천한 이해, 혹은 설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무림학교>의 가장 큰 난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영 당일, 그리고 다음 날까지 이어진 화제성에서 보여지듯이, 어설픈 cg로 나마 구현한 무협의 세계는 신선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화제성이 높은 것은 안타깝게도 작가들이 이 비천한 육룡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도 이미 본말이 전도된듯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무협'의 세계인 것이다. 즉, <육룡이 나르샤>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과연 누가 진짜 조선 제일검이 될 것인가? 그들의 무협 순위 등이 관심이 높은 것이다. 정도전이 구현할 세계와, 이방원의 뜻이 어떻게 어긋날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손잡을 조직, 그리고 거기에 이합집산할 무협들의 한판 싸움이 드라마의 볼거리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정작 '밀본'의 프리퀼이어야 할 <육룡이 나르샤>에서 가장 존재감없는 캐릭터는 분이가 도와야만 힘을 발하는  '밀본'의 본산 정도전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2016년초부터 한국의 tv 드라마에서 b급문화였던 '무협'과 '무림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과연 콘텐츠의 신선한 기획인지, 아니면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얕은 설정인지는 모호하다. 또한, <드림하이>처럼 신선한 학교 시리즈의 개척일지, 그저 <블러드>와 같은 괴작의 탄생일지 미지수다. <육룡이 나르샤>도 마찬가지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시작된 밀본의 탄생의 성공적인 프리퀼일지, 역사에 대한 어설픈 해석으로 귀결될 본데없는 퓨전 사극일지는 역시나 가늠하기 어렵다. 얕은 수로 시작된 시도라 하더라도 부디, 그 얕은 수가 신선하고 새로운 기획의 분수령이 되길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6. 1. 13.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