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사건 전담반 텐(이하 텐)의 시즌2가 마무리되었다.

팀장 여지훈을 연쇄 살인범 F로 둔갑시켜버렸던 '언더스탠드'로 시작하여, 막내 팀원이었던 박민호(최우식 분)의 죽음(?)을 다룬 '박민호 납치 사건'으로 12부작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 여지훈(주상욱 분)은 이제 더는 당신들이 쓸모가 없다며 텐팀을 해체해 버린다.

하지만, 12 회의 마지막, 교도소의 문이 열리고, 아내를 죽였다는 모범수 한 사람이 출소한다. 8년이라, F의 마지막 연쇄 살인이 벌어진 지, 햇수로 8년이 흘렀다. 햇빛 속에 드러난 그의 실루엣을 잡은 카메라는 암시한다. 그가 바로, F라는 것을, 그리고 아마도 텐팀은 다시 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투자만 된다면(?), 텐 시리즈는 계속 되리라는 것을.

 

텐 시즌 2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자면, 텐의 시즌 1,2회의 소제목, '언더스탠드'라 할 수 있겠다. 1,2회 수사에 참여하던 남애리는 F라 생각하며 쫓았던 사내의 아지트를 둘러보고 혼잣말을 한다. '언더스탠드,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이해를 한다는 것과, 세상에 드러난 사실 아래 숨겨진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남애리의 이 정의 그대로 텐 시즌 2는 두 가지 언더스탠드를 향해 달려왔다. 왜?

 


텐 시즌 2는 스스로 F가 되어버린 여지훈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여지훈은 사라지고, 나머지 팀원들이 증거를 맞추어 보니, 모든 증거가 한 방향, 여지훈을 가리킨다. 특수 사건 전담반의 궁극적 목적과도 같은 것이 F의 체포였는데, 바로 그 F가 여지훈이었다니!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어느새 한 식구처럼 되어버린 팀원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팀장이 어쩌면 연쇄 살인마일 지로 모른다는 사실에 황망해져 버린다. 흔들림없는 좌표 자체가 사라진 느낌. 하지만, 역시나 특수사건 전담반답게 텐팀은 그런 '페이크' 조차도, 스스로 괴물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던 여지훈의 음모였음을 밝혀낸다.

그러나, F로 추정된 자와의 맞대결 과정에서 비닐에 싸여 숨이 막혀가는 남애리를 두고 범인을 쫓은 여지훈의 모습처럼, 범인을 쫓기 위해 자신을 믿고 따르던 팀원들까지 이용해 가며 F를 잡고자 괴물이 되어버린 여지훈의 모습은 팀원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를 의심했다는 사실도, 다시 그가 자신들을 이용했다는 사실도 팀원 모두에겐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시즌2는 그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의 시간이자, 조금 더 서로를 알고, 믿어가는 시간이었다.

 

 

시즌1의 팀원들은 여지훈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상처가 불쌍해서, 여지훈은 냉혈한 같지만 그와 함께 했던 것이라면, 시즌 2의 12회차를 겪으며, 남애리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박민호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맞부닥쳤을 때, 진심으로 여지훈을 이해할 거 같다는 그 말 처럼, 막연한 동정을 넘어, 괴물이 되어서라도 범인을 잡고 싶은, 여지훈의 심정을 공유해 간다.

이렇게 시작은 '짜~'하게 여지훈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텐2의 주된 내용은 서로를 이해해 가는 상징적 장치들로 가득하다. 즉, F와의 진검 승부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텐2가 텐 시리즈가 가져가야 할 치명적 플롯에 있어서는 마치 '스핀오프'처럼, 좀 맥이 빠지는 시리즈라 할 수도 있겠다. 더구나, 제작진들은 매 회 사건들을 통해, 선문답처럼, 텐 팀의 '언더스탠드'를 위한 화두를 던져댔지만, 과연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상징적 장치로 제대로 닿아갔는가라는 점에서도 의문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리즈물에 있어서, 직선적인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에돌아 가는 에피소드를 통해 등장인물 들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건 '미드'에서는 흔히 등장하는 방식이다. 마치 택시 운전사가 길을 모르는 손님을 태우고 삥 돌아 감으로써 택시비를 늘리듯이, 본 사건의 정공법을 잠시 접어두고, 에돌아 감으로써 시리즈의 수명을 늘리는 한편, 캐릭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수법이다. 어느 정도 시리즈 물의 지속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즉, 시즌 3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시즌2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이 수법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 시리즈 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대를 에둘러 가는 만큼, 조금 더 본 사건이 진행되기를 기대하던 애청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당연히 앞 시즌과의 비교에 있어서 비교 우위를 점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 비교 절하의 대상이 된다.

 

그런 면에서 <텐>시즌2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구나, 시즌2의 초반에 여지훈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기에, 더더욱 기대감은 높아졌고, 그 이후의 스토리들이, 본 사건과 관련없는 에피소드들로, 심지어 그 에피소드물의 결론이 상투적으로 흘렀을 때, 더더욱 예전 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올만 했다. 제작진은 선문답을 하려고 했는데, 시청자는 깨놓고 화끈하게 한 판 붙기을 원했달까? 그 덕분에, 아니면 애초에 의도했던 것인지, <텐> 시즌2의 마지막 회는 그간 항상 위험의 안전 지대에 놓여서 애교와 코믹을 담당했던 박민호(최우식 분)를 위기에 빠뜨리는 극약 처방을 함으로써, 이것이 텐이라고 시즌 2의 마침표를 찍는다.

 

 

시즌1,2에 대한 비교나, 시즌 2의 내실성을 논하기에 앞서, 사실 그 어떤 공중파도 시간 내내 이만큼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보편적 '퀄리티'의 우수성은 짚고 넘어 가야 하겠다. 또한 영화에서나 볼 것같은 다양한 화면 구성 역시 스토리의 맛과 또 다르게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도 텐의 성과이다.

 

<신의 퀴즈>나 <뱀파이어 검사> 등이 시즌을 거듭하며 어설픈 사랑 이야기에 빠져 이야기의 본류를 잃거나, 급격하게 시리즈의 힘을 잃어갔던 것과 달리, 적어도 텐은 마지막 회 빗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서, 미소를 띠며 서로를 바라보는 거리감처럼, 팀원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제대로 견지해 냈다. 시즌1이 시리즈를 풀어가기 위해 선보였던 캐릭터들의 향연이, 시즌 2에 와서는 좀 무뎌진 듯 하지만, 남애리의 여지훈을 바라보는 미묘한 시점조차,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음으로써 시즌1의 애매모호함을 어떤 면에선 극복한 측면 조차 있다. 또한 언제 언디서나 확 눈이 뒤집힐 준비가 되어있는 백형사에, 폼잡는 여지훈의 잠언같은 한 마디로 마무리 되는 각 회차 등 캐릭터의 색깔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캐릭터의 성격은 놓치지 않고, 관계의 긴장감도 유지해 간것, 그것만으로도 텐2는 시리즈 물로써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한 드라마 안에서도 등장인물이 널뛰기 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이 정도면 시즌3 정도는 너끈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by meditator 2013. 7. 1. 10:13

sbs와 mbc의 10시 주말 드라마가 동시에 출격했다.

sbs는 이전 <출생의 비밀>이 한참 인기를 끌던 <백년의 유산>으로 반등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 하기라도 한듯, <출생의 비밀>의 예정되어 있던 회차를 줄여가며, mbc<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동시에 시작하는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의욕을 뒷받침하듯, 남상미와 이상우의 적나라한 러브씬에 이은 베드씬에, 홍혜정(이태란 분), 송지선(조민수 분), 권은희(장영남 분)의 결혼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함으로써, '그 어떤 취향을 가진 고객도 다 만족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멘트와도 같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늘 주말 시청률 1위 자리를 선점하던 kbs2의 8시 주말 드라마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던 <백년의 유산>의 후광을 업은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도 만만치 않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형사 하은중(갬재원 분)이 권총 사격 연습 중 오열하며 총기를 들고 폭주하며 도착한 곳은 바로 자신의 집이다. 거기서 그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 하명근(조재현 분)에게 총구를 겨눈다. 자신을 납치한 유괴범이라며. 그리고 드라마는 1988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태하 그룹 회장 장태하와 하명근의 악연이 시작된다.

 

(스캔들의 장태하 회장 역의 박상민- 사진; 마이데일리)

 

<스캔들>은 초반 몇 분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결혼의 여신>은 2013년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에서 '트러블 메이커'는 재벌이다.

 

<스캔들>의 재벌 장태하는 88년 대한민국을 휩쓴 건설 강국의 주인공으로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설계 도면을 마구 뜯어 고치고, 그 결과 건물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88 올림픽이라는 것을 기회로 삼아 '테러'의 음모로 넘겨 버림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덮으려 하고, 아마도 거기에 하명근의 아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다. 드라마는 하명근의 비극을 그려내기 이전에, 88올림픽을 앞두고 불도저를 들이밀고, 철거 깡패가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철거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태하 건설의 '원시적 축적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드라마 첫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외적으로 드러난 아동 납치범은 하명근이지만, 그 이면의 납치 사건을 조장한 본원적인 범죄자는 장태하라는 재벌이라는데 이 드라마의 촛점이 잡혀져있다.

 

<결혼의 여신>은 그저 서로 다른 네 명의 여인들의 결혼과 결혼을 앞둔 고민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중 두 명의 여인, 홍혜정과 송지혜(남상미 분)가 재벌집과 연관되어 있고, 나머지 여인들은 이 두 사람과 인척 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리고 홍혜정과 송지혜의 삶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강태욱(김지훈 분)과 강태진(김정태 분)의 재벌가이다. 그리고 이 재벌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강태진이나, 오히려 이혼을 한 며느리가 재벌가에 남아있는 홍혜정을 불쌍히 여기듯이, 안하무인에 이기적 전횡이 몸에 밴 집안이다.

 

(결혼의 여신 중 홍혜정- 사진; 마이 데일리)

 

<스캔들>이 재벌의 개인적 부도덕은 물론, 사회적 부도덕성에 집중하는 반면, <결혼의 여신>은 개인간의 관계에서 오는 부도덕성은 물론, 뿌리깊은 '갑질'의 주범으로 재벌을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우스개 소리로 대하민국 드라마에서 재벌이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새로 시작한 두 주말 드라마에서 재벌은 문제를 일으키고 확산 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라고 시청률은 말해주고 있다. 지금 막 시작한 드라마 뿐이 아니다. <백년의 유산>도 그랬고, <출생의 비밀>도 그랬고, 스토리와 구성만 달라질 뿐, 언제나 문제의 시작은 그들이었다.

 

10시대 주말 드라마는 8시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전연령층,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타겟이다. 그런데 그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의 악의 축이 재벌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살면서 드라마속에서처럼 재벌과 엮이게 되는 일은 일생 가야 한번 있을까 말까 한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정반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들과 엮이고, 그들로 인해 주인공들은 고통을 받는다.

예전 신데렐라 스토리가 한참일 때라면, 재벌과 엮인 그 이야기들이, 보통 사람들의 신분 상승의 환타지를 상징한다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 속 재벌들은 다르다. 그 누구보다도 부도덕하며, 온갖 사회적 비리의 주범이며, 극한의 찌질한 '갑질'을 일삼는다. 마치, 실생활에서 인간 관계로 엮이지 않아도, 우리 삶의 피폐함의 원인이 누구때문이라는 걸 '이심전심'으로 제작진과 시청자가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결국은 보통의 주인공이 승리를 얻는다. 하지만, 그 승리의 과정은 언제나 지고지난하다. 궁극의 승리를 위해서, 시청자들은 마지막회까지 되풀이되는 재벌가의 전횡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얻어질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승리를 드라마는 지루한 인내 끝에 선사한다. 덤으로, 인간답지 않은 재벌들을 마음껏 욕하며 얻는 카타르시스도

by meditator 2013. 6. 30. 09:54

구자철, 윤도현, 오현경

이 세 사람은 6월 28일 <땡큐>의 게스트들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당신 머리에 어떤 공통점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그렇기 보다는, 왜 저렇게 모아놨대? 라는 생뚱맞다는 반응이 먼저가 아닐까?

그리고 그 반응처럼, 28일의 <땡큐>는 어색함으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화면에 등장한 것은 오현경이었다. 여자를 기다리게 하다니!란 그녀의 푸념도 무색하게 함께 할 차인표를 비롯한 세 남자들은 아직이었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나타난 윤도현은 오현경의 공치사도 무색하게, 이미 촬영 장비가 셋팅도 되기 전에 왔다고 선수를 친다. 하지만, 그런 오고가는 인사 치례 그뿐, 두 사람 사이엔 곧 머쓱한 정적이 흐른다. '개똥이' 시절 윤도현을 좋아했다는 오현경의 팬심이 그나마 두 사람 사이의 서먹함을 조금 풀어주었달까.

막내라고 가서 애교를 부려야지 다짐을 했던 구자철의 등장 이후에도 서먹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니, 대한민국 누구나가 그렇듯이 민증까고 서열 정하기 부터 시작한다. 도대체 공감대를 찾을 수 없는 저 세 사람들을 데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사진; tv 리포트)

 

그 의문은 차인표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레 풀려 나갔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 딸을 둔 두 아빠, 차인표와 윤도현의, 하지만 전혀 다른 교육 참여 방식으로 인해, 물꼬가 틔였다. 비록 싱글맘이지만 역시나 딸을 키우고 있는 오현경 역시 쉽게 이야기에 동화되어 갔다. 마치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 어디 나왔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가듯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또 누구나 아이 이야기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구자철 자신이 5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불평을 했듯이, 이제 막 결혼을 앞둔 구자철이 낄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틑 이야기는, 곧 결혼 생활 대처하는 차인표, 윤도현 두 사람의 자세, 즉, 20여년과 12년의 숙성된 경험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이제 결혼을 앞둔 구자철의 이야기로, 결혼에 대처하는 새 신랑의 자세와, 윤도현 결혼식에서의 박노해 신인 주례사까지, 선배들의 경험이 실린 멘토링으로 풀어져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풀어져 나간,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오현경의 삶으로 까지 이어진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여배우인 오현경으로 하여금, 오래된 차 한 번 바꾸기나, 보험 하나 들기조차 버겁게 만드는 절박함의 속내조차 들여다 보도록 했다.

이렇게 결혼이란 제도의 서로 다른 지점을 살아가는 세 사람은 차인표란 매개체를 통해 결혼을 대처하는 세 가지 자세를 공유했다. 아마도 조만간 또 다른 결혼을 앞둔 '김조광수 커플'이 등장했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이겠지만, 갓 결혼을 앞둔 구자철과, 싱글맘 오현경의 조합만으로도 구도는 신선해 보였다.

 

(사진; 노컷 뉴스)

 

물론, 28일 <땡큐>는 아슬아슬했다.

차인표와 윤도현이 같은 학부형으로 공감대를 나누고, 거기에 오현경이 동조하면, 구자철은 들어주어야 하고, 이제 막 결혼을 앞둔 구자철의 설레이는 사랑 이야기나, 오현경의 싱긍맘 생활 역시, 또 다른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땡큐>는 그러저러한 서로 다른 결혼의 지점들을 '사연팔이'가 아니라, 게스트가 이야기 하면 무릎을 끓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차인표의 자세처럼, '진지한 공감'의 자세로 접근한다. 사실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가장 <땡큐>가 잘 하는 것은, 이질적인 게스트의 조합이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 해주게 되는 그 정감있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땡큐>란 프로그램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은, 이야기 하는 누군가 만큼,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끄덕이며 들어주는 누군가이다.
그래서 처음엔 어거지같던 게스트의 조합들이, '자,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사연은 무엇입니까' 식의 토크쇼 방식이 아니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를 먹어가며 자연스레 쌓이는 속정처럼 채워진다. 그래서, 마지막에 함께 갯벌에 나가 몸싸움을 하고, 하늘을 보고 갯벌에 드러눕고 , 노래를 하는 것이 하나도 어색해 지지 않을 만큼.

잘 들어주는 예능 <땡큐>를 보노라면,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고독한 이유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반성이 된다. 갓 결혼할 새 신랑이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든, 제 아무리 서로가 달라도, 귀를 여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공감할 꺼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by meditator 2013. 6. 29. 09:50

드라마 <천명>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된 인종을 끝까지 향초를 이용해 독살하려던 대왕대비 문정왕후의 시도는 최원과 다인의 기지로 밝혀져, 결국 왕 앞에서 목숨을 구걸해야 했고, 자신의 아비가 최원을 죽였다 하여 그를 사랑했지만 그의 곁을 떠나려 했던 다인은 최원과 결실을 맺고 최원과 함께 백성들의 병을 돌보며 행복하게 살았다. 어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말끔한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명쾌한 엔딩을 보면 씁쓰레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에서는 문정왕후의 최후의 독살시도조차 막아내고 승리를 거둔 인종의 재위 기간이 단 8개월에 불과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사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덕일의 <조선 왕 독살 사건>을 비롯한 책에서는 인종의 죽음을 문정왕후에 의한 독살로 결론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의 엔딩은 딜레마에 빠진다. 드라마 상에서는 문정왕후의 단말마같은 독살 시도를 막아낸 것으로 그려졌지만, 조선의 '서태후'라는 별명을 얻은 문정왕후가 과연 거기서 멈췄을까? 또 하나, 그런 문정왕후가 뻔히 궁궐에 살아있는 걸 알면서도, 그런 위험 요소가 옆에 있는 걸 알면서도, 다인과 최원은 백성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겠다고 궁궐 밖을 나오다니! 지금까지 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깝지 않게 여기던 두 사람의 행보치곤 너무 비논리적이지 않나? 결국 독살로 죽을 지도 모를 왕을 놔두다니, 이건 최원의 성격 상 '직무유기'라 느낄 거 같은데?

 

(사진; tv리포트)

 

언제나, 역사적 사실과 거기에 기초한 드라마에는 상상력과 허구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마치 역사가가 역사를 자신만의 잣대로 해석하듯,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 또한 또 한 사람의 역사가가 되어 역사를 해석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가능한 한 사실에 위배되지 않게 사실을 해석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이번 주 종영한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끝난 후 주연 배우들은 인터뷰를 통해 악녀로 그려진 장희빈과 무기력하기만 한 숙종을 재해석했다는 것으로 <장옥정>의 의의를 설파했지만, 그 드라마가 장옥정과 숙종을 복원하기 위해, 또 다른 인물들을 왜곡하고 폄하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일본의 역사관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 핵심은 바로 그들 자신이 2차 대전의 패전국이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핍박을 가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역사는 왜곡되고, 그 속에서 피해자들은 지속적을 상처입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천명>은 중종 연간 말기와 인종 연간 초기의 정치 세력의 격돌이라는 밑그림에, 문정왕후에 의한 인종의 독살 시도라는 야사의 주장, 그리고 거기에 왕을 지키려는 내의원 의원과 의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합집산이라는 상상력을 얹은 작품이다.

실제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등을 보면, 드라마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세자를 죽이려던 문정왕후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게 그려져 있다. 자기 주변의 측근에만 의지하고, 자객을 부리는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낮은 수준의 악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자 죽음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문정왕후를 그려 내고 있다. 게다가 단순하게도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역동적 동인이 오직 이거 하나다. 최원이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면, 왕후가 또 하나의 시도를 하고, 그걸 해결하면, 또 사건을 벌이고. 그러다 보니, 20부작의 드라마가 단순해져 버렸다. 언제 어떤 회차를 봐도, 디테일은 달라도 흐름은 똑같다.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비슷한 대사를 친다. 최원은 위기에 빠졌고, 다인은 그런 최원이 안타깝고 그런 식이다. 게다가 결국 드라마가 미션을 부여하는 문정왕후와 그것을 해결하는 최원 세력의 대결로 되다보니, 당연히 어떤 불운의 그림자도 없는 착한 편의 화려한 승리로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개월 후에 인종이 죽고, 그의 세력이 '을사사화'를 통해 모조리 제거가 되건 말건.

 

 

(사진; 헤럴드 경제)

 

과연 <천명>을 통해 제작진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회, 다인과 최원이 함께 복창을 하듯, 백성을 인술을 펼치는 휴머니스트 의원 최원의 이야기였을까? 그도 아니면 <추노>에 버금가는 도망자 버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딸을 위해서는 궁궐도, 도적들의 산채도,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을까? 하지만 이 궁금증은 마지막 회에 가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비록 처음엔 거절했지만,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는 그토록 목숨을 걸고 왕을 구하려 하던 최원이 뜬금없이 백성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논리도 이해가 되지 않고. 죽음에 이을 때까지 천하의 임꺽정에서 금부도사까지 무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화려한 무술 씬을 장황하게 선보이다 죽음에 이른 문정왕후 무사의 존재감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장옥정>으로 돌아가서, <장옥정> 제작진 측은 장희빈의 재해석이라고 주장했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진 것은 <해를 품은 달>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어설픈 시도였던 것처럼, <천명>에서 진하게 드리워진 , 조선판 도망자의 원래 버전 <추노>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무리수였다.

차라리, 도망자 버전 내의원이라는 어설픈 흉내를 내지 않고, 내의원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버전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다면 어땠을까? 결국은 역사에서 패배자가 될 인종과 그의 세력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위해, 문정왕후와 인종의 대결을 사악한 마녀와 순한 피해자의 대결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운을 남겼다면 어땠을까? 시작할 때의 <천명>은 충분히 '봉황'을 그릴듯이 보였다. 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풍부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납작하게 만들어 단순하게 마무리 해버린 <천명>이 그린 것은 '참새'인 듯 하여 아쉽다.

by meditator 2013. 6. 28. 09:54

이효리 vs. 김구라

<화신>은 마치 k1시합 홍보처럼 지난 주 내내 이효리와 김구라의 만남을 홍보했었다. 그리고 그 화제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른 때와 다르게 방송 15분전부터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하거나, 서먹서먹하거나, 정적이 흐르는 스튜디오를 보여줌으로써, 아직도 얼마나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껄끄러워하고 있는가를 가감없이 전달해 주려고 했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자, 어쩔 수 없이 이효리와 김구라는 말을 섞을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 땀을 뻘뻘 흘리는 김구라의 사죄와 대인배 이효리라는 수식어로 이효리와 김구라의 악연은 훈훈하게 포장되었다.

<라디오 스타>에서 밝혔듯이 이효리는 예능을 순회 중이지만, 그녀와 껄끄러운 누군가가 출연하는 방송은 피하고 있다고 했다. <라디오 스타>에서 그녀가 말한 그 방송은, 한때 그녀와 연애를 했다고 풍문이 돌았던 누군가가 출연하고 있는 모 프로인 것처럼 몰아갔었다. 그런데 꼭 사적인 악연만이 아니었다. <화신>에서 밝혔듯이, 이효리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것도, 이어서 <화신>에 출연하고자 했던 것도 모두 김구라가 그곳에 없을 때였다고 한다. 다행히, <라디오 스타>에서의 조우는 피했지만, <화신>에서 결국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문희준이 김구라의 사과에 이어 형님으로 모시며 그와 방송을 함께 하게 되기까지의,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처럼, 이효리 역시 '홍보'라는 '밥벌이의 숙명'이 그녀로 하여금 방송을 통한 화해 모드를 강요하게 만들었다.

 

관련사진

(사진; 한국일보)

 

그런데, 굳이 방송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김구라와 함께 방송을 해야 하는 '수모'를 겪어내면서 참여한 <화신>이 이효리가 원하던 바의 홍보 효과를 충분히 얻어냈을까?

언제나 그렇듯, '풍무으로 들었소?"라는 걸 통해 <화신>측은 이효리에게 이상순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이제 많은 프로그래을 통해 널리 알려진 두 사람의 관계 외에, 자칭 기자 모드라는 봉태규의 치밀한 조사를 통해, 이젠, 이상순의 실체, 이상순의 집안에 대한 뒷조사 까지 들어갔다.

이효리 자신도 방송을 통해 말한다. 자신이 예능에 출연하는 이유는 홍보를 위해서인데, 막상 방송에 나가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안물어보고 오로지 자신의 연애사에만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자기 역시 방송이니, 때로는 과장하는 것도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함께 보고 나면 이상순이 속상해할 때도 있다고. 그에 대해 mc 봉태규도 공감했다. 자신도 공개 연애를 해봐서 아는데,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알려져 있다보니,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정말 이효리가 나온 예능만 따라가다 보면, 인간 이효리보다, 인간 이상순에 대한 학습 효과가 커지니, 본인이 그걸 즐기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이효리와 사귄다는 이유만으로, 이상순은 그의 모든 걸 본의 아니게 대중들에게 쏟아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효리의 말에 대한 공감도 잠시, 다시 열심히 그가 찾아낸 풍문에 몰두하는 봉태규의 모습에서 이상순의 인신 보호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사진; 일간 스포츠)

 

그렇게 해서라도 출연한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다면 그나마 '홍보'라는 걸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공교롭게도, 25일 <화신>의 출연자 중 세 사람, 이효리, 씨엘, 이준은 본인이나, 그가 소속한 팀이 새로운 신곡을 최근에 선보였었다. 하지만, 25일 방송 중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봐야, 이효리를 Bad girl에 비유한 정도에, 씨엘의 뮤직 비디오 의상이 여러 벌이었다는 정도? 그 대신 이른바 풍문을 들었다는 이효리의 연애 이야기, 이준과 현아의 열애설 몰아가기가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씨엘은 몇 마디 하지도 못한 채. 2회분에 걸쳐 방영되는 이 게스트들의 조합, 다음 주는 '홍보'를 기대해 봐도 될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화신>의 성격 상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순위제로 바뀐 음악 프로에서, 후배들과 나란히 서서 저를 찍어주세요 하는데 무안하다는 이효리가 자신의 음악을 알릴 곳이 공중파에서는 거의 없다. 이효리 뿐만이 아니다. 소속사와 방송국의 불화로 sbs를 제외하고는 음악 프로에 출연하지 않는 씨엘도 마찬가지다. 순위제가 아닌 공중파 유일의 진짜 고품격 음악 방송 <유희열의 스케치 북>이 있다고? 금요일 밤 1시가 다 되어서야 방송을 하는 이 프로그램에 나가느니, 예능에 나와 신상털이라도 하는 게 그래도 더 홍보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효리를 비롯한 가수들이 신곡이 나오면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하는 것이다. <가요 무대>가 유구한 전통을 뽐내며 고정적 시청층을 확보해 가고 있는 것과 달리, 가수들은, 더구나 아이돌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좋은 곡을 가지고 나와도 자신의 음악을 알릴 기회가 없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용서하고, 그와 함께 웃으며 방송을 하고, 음악 얘기는 커녕, 자신의 연애 이야기만 속속들이 털어야 하는 '홍보'의 고달픔, 그래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했으니, 어느 정도 성과는 얻은 건가?

by meditator 2013. 6. 26. 09:47

<힐링 캠프>가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2주년이라, 시청률에 목을 매단 채 명멸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방송 프로그램들 가운데서, 2년을 버텼다는 건, 분명 자축할 만한 일이다. 더우기,그저 연명의 의미가 아니라, 한때 제왕이었던 <무르팍 도사>를 제치고, 1인 게스트를 초대하는 토크쇼로서, 각 당의 대통령 후보를 비롯하여, 가장 화제성있는 인물들의 방문지로서, <힐링 캠프>의 가치가 빛나고 있는 이 시점, 2주년은 더더욱 자축할 만 하다.

 

그리고 그 2주년을 이르게 한데 공로에 있어 굳이 줄을 세우자면, 관록의 mc 이경규나 토크의 달인 김제동보다 한혜진을 앞 줄에 세우는데 한 표를 던질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을 지도 모른다.

<힐링 캠프>를 보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채널을 돌리다 한혜진이 나오면 몇 초라도 그녀를 보다가 다시 다른 채널로 돌린다는 말처럼 그녀는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쁘다. 하지만 이쁜 것만이 아니다. 맑은 눈망울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스너로서의 진정성은 출연자도 힐링을 하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도 힐링을 해야 하는<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살리는데 톡톡히 일조해 왔다. 어디 그뿐인가, 24일 방송에서 그녀 스스로 집안 내력이라고 밝히듯이, 이른바 이경규나 김제동도 선뜻 해내지 못하는 돌직구를 통해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그 부분을 긁어 주었고, 마음 속에 담아 두고 하지 못했던 한 마디를 대신 통쾌하게 던져 주었다. 대통령 후보들의 별명을 지을 간 큰 mc가 대한민국에서 그녀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렇게 <힐링 캠프>를 힐링 캠프답게 만들어 주던 한혜진이 결혼을 한다. <힐링 캠프>는 2주년 특집 방송의 첫 번 째 기획으로, 결혼을 앞둔 한혜진을 게스트의 자리로 끌어다 앉혔다.

다른 게스트 들이 했던 것처럼, 한없이 밝아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인해 우울하고 힘들었던 학창 시절, 긴 무명 시절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고, 형부인 김강우의 말을 빌어, 한 집안을 이끌어 온 가장의 면모까지 밝혀 주었다.

그리고, 어렵게 이경규가 말을 꺼낸다. 공인이라 칭해지는 연예인은 그의 사생활과 대중들의 알 권리 사이에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고, 옆에 있는 김제동도 거든다. 한혜진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서 질문이 던져진다. 이제 결혼을 앞둔 한혜진에게, 그녀의 과거의 연애사에 대한.

말이 토크쇼지, 청문회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 정확하게 헤어진 거냐? 아버지 장례식에 그 사람이 온 건 왜냐? 그때는 사귀지 않았을 때냐?

이어서 결혼할 기성용과의 연애사에서도, 시점이 중요했다. 언제 남자로 느껴졌냐?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냐?

한 식구였던 한혜진이 결혼을 한다는데, 더구나 결혼 날짜도 앞둔 한혜진에게, 지난 연애사의 역사적 사실까지 들추며 이리 가혹하게 청문회성 질문들이 던져져야 할까?

그것이 바로 한 식구였던 한혜진을 홀가분하게 보내기 위해 <힐링 캠프>가 마련한 배려였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남의 연애사일 뿐인데, 그 남의 일에, 침 튀기며 흥분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두는 혹자들을 위해, 한혜진의 먼지 한 점이라도 탈탈 털어 홀가분하게 결혼을 하게 해주려는 웃지못할 해프닝인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결혼할 사람 앞에서, 웃으면서 여유있는 척 해명해야 하는 게 공인이란 이름의 슬픈 숙명이다.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된다.

한혜진이 누구랑 언제 헤어졌는지, 누구와 언제 만났는지, 혹시나 양다리를 걸쳤는지가 왜 대중들의 알 권리여야 하는 건지, 그저 한 사람의 사생활일 뿐인데.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 권리라 생각하고, 그걸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증권가의 찌라시를 회자시키고, 입에서 입으로 옮긴다.

이경규와 김제동이, 묵직하게 상충한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그건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다. 그런데 그걸 '공인'이란 명목하에, 알 권리로 둔갑시킨 건, 엄밀하게 미디어의 힘을 빌린 또 다른 폭력이다.

by meditator 2013. 6. 25. 09:12

"밥은 먹고 다니니?"

<출생의 비밀>의 주제를 단 한 마디로 농축해야 한다면, 아마도 이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여러분,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래? 밥 안 먹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출생의 비밀>의 여주인공, 정이현(성유리 분)도 그랬다. 당장 회사가 뒤집혀 난리를 치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홍경두(유준상 분)가 이 말을 했을 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마도 속으론 육두문자를 날리지 않았을까?

 

21일밤 <나 혼자 산다>에는 함께 워크샵을 떠난 무지개 회원 들 앞에 2교시 선생님으로 철학자 강신주씨가 등장해, 밥의 철학을 논했다. 강신주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날 그날 하루를 때우기 위해 먹고 사는데, 이건 밥이 아니다, 사료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사료가 밥이 되기 위해서는, 밥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고 부연 설명을 붙인다.

이런 강신주 철학자의 설명에 의거해, 사료를 흡입하고 사는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이라면, <출생의 비밀>의 "밥은 먹고 다니니?"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우리에게 '사료'가 아닌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울림이 허왕하듯이, 함께 나누는 '밥'의 의미를 반추하고자 의도했던, '밥' 이상의 욕망의 무가치함을 논하려 했던 <출생의 비밀>은 '사료'의 물결에밀려 허겁지겁 18부작으로 종영하는 성급한 마무리로 종결되었다.

 

(사진; 노컷뉴스)

 

18회, 아마도 이 마지막 회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홍경두와 정이현의 화해의 입맞춤이 아니라, 파킨슨씨 병에 걸려 어린 시절로 돌아간 최석(이효정 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최국(김갑수 분)의 모습일 것이다.

한때 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형을 죽이려 했던 동생, 그리고 그 동생에 의해 반신불수에 어리버리해져 버린 형과, 모든 것을 차지하려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육신조차도 돌보지 못할 처지가 되어버린 동생이 함께 동화책을 읽고, 로봇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더 선명하게 욕망의 무기력한 끝을 정의내리고 있다.

 

'백년의 유산에는 유산이 없고, 출생의 비밀에는 비밀이 없다'는

세간의 우스개처럼, <출생의 비밀>에는 그 어떤 막장의 요소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야수같은 홍경두와 천사같은 정이현 사이에서 이쁜 해듬이가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출생의 비밀이겠지만, 그 드라마 제목에 낚여서 들여다 볼 시청자들이 흡족할 만한 롤러코스터의 극적 흥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차근차근 잃어버린 정이현의 기억을 따라가며, 정이현의 주변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반추해 봐야 하는, 마치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와도 같은, '속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선명한 '욕망'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접근을 가지고, 종교적이리만큼 집요하게,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늘 김규완 작가가 하고자 했던 바였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주제를 초반에 분명한 방점으로 찍었다, 대성도가와 사랑을 둘러싼, 은조 모와 은조, 효선, 그리고 기훈의 욕망의 파노라마를 적나라하게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모았다.

반면, 똑같이 인간의 거침없는 욕망에 대해 논하면서도, <출생의 비밀>은 뜻을 알 수 없는 제목처럼,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바를, 홍경두의 기행에, 정이현에 기억 상실 뒤에 숨겨 놓음으로써 이 드라마의 정체를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추리적 요소를 가미하여 알고보니 천사같은 정이현이 바로 그 욕망의 도가니에 스스로를 재물로 던져넣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고자 했겠지만, 극의 구조만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결국은 제 풀에 되돌아 오는 기억이라는 어설픈 설정으로 재미도, 추리의 묘미도 살려내지 못했다. 아마도 굳이 시청률의 패인을 따지자며, 그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극의 중반에 이르도록, 이현의 기억 상실의 비밀을 아껴둔 채,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헷갈리게 만든 난해함이 극의 발목을 잡았다.

 

(사진; 리뷰스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언니>가 초반에 짜하게 욕망의 잔치상을 벌려놓고, 후반에 수습을 제대로 못해, 초반 시놉만 그럴 듯한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출생의 비밀>은 오히려, 마지막 회의 70여분이 아쉬울 정도로, 줄여버린 2회 분량이 섭섭할 정도로, 끝으로 갈 수록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던 드라마이다. 용두사미였던 전작의 아쉬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해야 할 말을 비축한 주제 의식이 살아있는 드라마였다는 점에서 작가의 성취를 인정해 줘야 할 드라마인 것이다. 적어도 시청률이라 편한 잣대만으로 폄하될 드라마는 아니다.

 

홍경두의 캐릭터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시청률을 깍아먹는 불손한 캐릭터이다.

돈도 없죠, 무식하죠, 다짜고짜 행동부터 하고 보는, 하지만, 마지막 회, 박본부장이, 홍경두의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고구마라는, 뜬금없는 '밥' 타령에 자살을 거둬들였듯이, 김규완 작가는, 욕망을 향한 계산만 넘쳐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처방은, 홍경두와 같은 단순무식한 바보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국민 남편이 되었던 유준상이 탐낼만한 치유의 캐릭터다. 하지만 역설적이고, 난해하다.

줄어버린 2회 때문일까, 홍경두의 바보같은 사랑은 이해가 되지만, 경두와 이현의 다시 되찾은 사랑이 100%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상당히 작위적이다. 하지만, 최석이 구축하려고 했던 욕망의 성채에 아버지 보차 외면한 채 자신을 던지려고 했던 이현의 치료제로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 홍경두가 있는 그림이 그리 싫지는 않다. 그래도 머리 속에 팽팽 계산기가 돌아가는 이 세속적인 세상에, 저 구도가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건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3. 6. 24. 10:06

22일 <불후의 명곡>이 방영되는 시간 이후로 검색어에 '핫젝갓알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혹시 아시는가? '핫젝갓알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 멀리 에돌아, 일본의 대표적 만화 중 하나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대한 설명부터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 <20세기 소년>은 30대가 된 친구들이 다시 만나 그들이 소년이었던 60년대와 현재를 오고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SF 추리물이다.

케이블 QTV에서는 '삼십대가 된 친구들이 다시 만난다는' 만화의 상징성을 따와, 이제는 삼십대 중반이 된, 1세대 아이돌들을 모아놓은 이른바 '기억의 예능' 리얼리티 쇼를 만들고, 그 명칭을 <20세기 미소년>이라고 붙였다. 프로그램의 멤버로는 H.O.T의 문희준, 토니안, 젝스키스의 은지원, 지오디의 데니 안, NRG의 천명훈이 모였다.

이른바 아지트 리얼리티를 지향한 이 프로그램은 한 집에 이들을 모아놓고 같은 시절에 활동을 했지만 사실은 서로 서먹서먹한 면면들을 익혀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던 멤버들은 어느새 의기 투합하여, 90년대의 자신이 하던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보다, H.O.T, 젝스키스, 지오디, NRG 의 이름을 합친 '핫젝갓알지'라는 기기묘묘한 그룹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고, 그 결실로 <불후의 명곡> 무대까지 서게 된 것이다.

 

 

조만간 슈스케3의 정준영도 등장한다고 하고, 이제 <불후의 명곡> 무대에 허각과 같은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가 서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들에게 <불후의 명곡>이란 그 어느 무대보다도 그들의 장기를 뽐내기에 이물감이 없는 곳일테니까. 하지만, '핫젝갓알지'란 이 기묘한 이름의 그룹은 성격이 다르다.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의기투합하여 그룹을 만들자고 하며 '핫젝갓알지'라고, 그들이 속했더 그룹 명을 모아 만들 때만 해도, '장난해?' 라며 넘겨버렸는데, 농담이 진담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오디션도 아니고, 일종의 프로그램의 기획인 프로젝트 그룹인데, 그 그룹이 공중파 무대에 서다니! 기획은 케이블이 하고, 그 과실은 공중파가 따먹는 모양새다. 물론 그 과실 덕분에, 핫젝갓알지가 출연한 <20세기 미소년>은 어부지리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홍보한 셈이다.

 

공중파의 화제가 된 인물들이 케이블 등에 불려다니며 토크쇼에 출연하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인기를 번식시키는 것이 그간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만들어 지면서, 이젠 슬슬 그 과정이 역류되는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20일 <해피투케더>에는 케이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스터 쉐프 코리아>의 강레오 쉐프와 <올리브 쇼>를 비롯한 각종 요리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레이먼 킴과 그와 함께 <두 남자의 캠핑 쿡>에 출연하고 있는 JK김동욱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케이블의 인기 출연자들을 모신 것이 이때만이 아니다. 이미, <2013 테이스티 로드>의 박수진, 김성은이 출연자로 등장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야간 매점을 꾸려낸 경험이 이미 있었다.

 

(사진; 스포츠 월드)

 

<해피 투겓더>만이 아니다. <우리 동네 예체능> 역시 그룹 신화를 초빙해, 우리 동네 예체능 멤버들과 볼링 대결을 벌였다. 여기서 그룹 신화는 그저 장수 아이돌 신화라기보다는, 이미 몇 년에 걸쳐 JTBC에서 <신화 방송>을 이끌었던 예능 고수 신화 버전이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도 당신 누구요? 했던 케이블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젠 당당하게 공중파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화요일, 수요일에 걸쳐 <화신>, <라디오 스타> 등 토크 프로그램의 MC로 복귀해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것 같은 김구라의 귀환도 사실, JTBC의 <썰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MBC의 <진짜 사나이>나, KBS2의 <가족의 탄생>, <맘마미아> 역시 TVN의 <푸른 거탑>이나, <동치미>, <황금알>과 같은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케이블의 약진, 그리고 저변을 넓혀가는 종편, 공중파는 그저 시청률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면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케이블과 종편의 프로그램에게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른 설레발을 쳐본다.

by meditator 2013. 6. 23. 09:48

브로맨스란?

BROTHER와 ROMANCE가 합해진 말로, 작품에 등장한 남성들 사이의 애정 모드를 말한다. 그렇다고 이게 노골적인 동성애 코드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치 '안되요, 되요, 되요'라는 듯이, 겉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미묘한 정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이, 요즘 자주 화면을 통해 조우하게 되는 브로맨스의 실체이다.

 

(사진; 뉴스 핌,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 중)

 

알고보니, 니가 진짜 사랑이야!

6월 19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2013 단막극 시리즈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는 전형적인 브로맨스 스토리의 구조를 띤다. 불치병에 걸린 친구 경숙(이기광 분)이 등장하고,(여기서 경숙은 남자 고등학생이다) 그의 죽기 전 소원인 첫사랑을 구해주기 위한 친구 치현(이주승 분)의 고군분투가 중심 스토리이다.

치현은 경숙이 한눈에 반한 여고생 국화(전수진 분)에게 경숙을 대신해 사랑의 메신전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는 치현 역시 경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6개월 만에 죽을 거라던 친구가 죽지 않고, 그래서 함께 하던 또 다른 친구마저 손을 놓는 상황에서도 지고지순하게 경숙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치현이 국화라는 여자의 등장으로, 친구 경숙을 미워하고 외면하기에 이르는데....... 하지만, 자신의 마음조차 숨기고 죽을 지도 모를 친구의 첫사랑을 이어주고자 했지만, 그 보람도 없이 친구 경숙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이 첫사랑과 함께 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다 너와 함께 했었다고, 니가 나의 첫사랑이라는 쪽팔리는 고백과 함께.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경숙이 마련해 놓은 정장을 입고 첫 소개팅 자리에 나간 치현, 왜 여자 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배시시 미소를 띠고 대답한다.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해서요'라고.

 

애타게 첫사랑을 구했는데, 정작 알고보니 내 옆에서 한결같이 나를 지켜주던 네가 바로 나의 사랑이었다. 단지 그 네가, 남자였을뿐! 이것이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의 요지인 것이다. 이걸 동성애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아직 이성과의 사랑이 성숙되지 않은 시점의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랄까.

사춘기 청소년들의 경우, 분명 2차 성징까지 분명하게 나타난 상황임에도,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혹은 사회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이성과의 관계로 인해, 동성에 대해 친숙한 감정 혹은 관계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학교 2013>에서 고남순(이종석)과 박흥수(김우빈)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 내에서, 자신때무에 꿈을 접어버린 흥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고남순의 박흥수 해바라기는, 브로맨스의 또 다른 전형이다.

또 다른 유형도 있다. <몬스타>의 설찬(용준형 분)과 선우(강하늘 분)의 경우이다. 세이(하연수 분)가 애증이라 오해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심하게 사사건건 대립한다. 성격도, 환경도, 지금의 위치도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하염없이 세이를 기다리던 선우와 함께 했던, 그리고 나란히 피아노를 연주하던 친구 사이였다. 드라마는 세이에 대한 설찬의 마음을, 세이가 오해한 것으로 에피소드를 엮었지만, 분명, 설찬과 선우의 깊은 해원을 미묘한 감정으로 양념치듯 가져가려고 한 의도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물에서 이성간의 사랑과 함께 혹은 최근에 들어서는 그 보다도 훨씬 더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브로맨스'이다.

 

(사진; 미디어스, <학교 2013> 중)

 

<몬스타>에서 팬픽을 열심히 쓰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심은하(김민영 분)가 브로맨스의 존재 이유를 설파한다. 아이돌 팬픽에서 브로맨스 물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오빠'들이 다른 이성과 사귀는 것은 차마 용납할 수 없고, 하지만 뭔가 로맨스는 만들고 싶을 때, 그 대체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브로맨스'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채널권과, 시청률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들을 위해 등장하는 브로맨스라는 결론이 무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때,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후회하지 않아>와 같은 게이 애정물에 여성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던 반향으로 보건대 최근 빈번하게 등장하는 '브로맨스'의 설정의 노림수가 번지수가 아예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조폭 영화 <신세계>의 관객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고, 그 영화를 보고 나온 상당수가 폭력을 둘러싼 암투보다도, 정청(황정민 분)과 이자성(이정재 분)의 미묘한 관계를 더 많이 언급한다는 점이나, <신세계>의 텔레비젼 버전 <무정 도시>에서 역시나 박사 아들이라는 김현수(윤현민 분)과 정시현(정경호 분)의 미묘한 감정들이 남녀 주인공의 애정 관계 보다 더 회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노골적 게이물은 아니지만, 사랑인 듯, 우정인 듯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브로맨스 설정이 어느덧 중요한 흥행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노정하지 않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브로맨스 물이란, 다른 한편에선 아직 감정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기의 상태를 그대로 이어가는 미성숙한 청소년기를 이어가는 오늘날의 키덜트들의 감정의 반향일 수도 있고, 취업과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사랑 따윈 귀찮아 라고 하는 88만원 세대의 생존적 번거로움의 도피처일 지도 모르겠다. 주변 환경에 따라 암수가 구분되는 파충류들이 환경 오염으로 인해 수컷만이 잔뜩 생성된다는 오늘날의 변칙적 생태계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3. 6. 22. 09:44

따단 따단~"하고,

상어의 OST '천국과 지옥 사이'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8회까지 본 시청자들은 이제 다음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안다. 조해우 역의 손예진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이수를 그리워 할 것이고, 카메라는 한껏 그런 그녀를 훑을 것이라는 것을, 물론 그 자리에 이수 역의 김남길이 있다면 예의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볼것이다. 또 정동하의 '슬픈 동화'가 나오는 장면은 어떤가. 그 음악이 흘러나오면 김남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같은 표정이 마구마구 들이대질 것이다.

 

이러단, 스타급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생길 듯하다. 아니, 이미 만들어 졌나?선수를 친 것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였다. 오죽하면 선배 윤여정이 흉을 볼 정도로, 한 회의 상당 부분을 두 남녀 배우의 풀샷에서 클로즈 업에 할애했다. 후보정이 드라마의 계약 조건이었단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던 송혜교는 그녀가 선전하는 화장품들의 매진 사태를 불러오는 완판녀가 되었다. 제대 후 한동안의 공백기를 가졌던 조인성 역시 슬글슬금 고개를 쳐들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켜 버렸다.

물론 멜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은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이다. 거기에 어떤 직업에, 어떤 상황이건 상관없이 남녀 주인공은 이쁘고 멋있어야 인기를 끄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는 더더욱 주인공이 돋보이도록 드라마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경우는 근자에 보기 드문 멜로 드라마의 성공 사례를 보여줌과 동시에, 뮤직 비디오 같은 화면으로, 과도한 두 주인공의 편애라는 부정적 클리셰의 등장으로도 사례를 남긴 경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상어>가 고스란히 그 전철을 밟고 있다. 마치 할 말이 없을 때마다 옛날 이야기를 꺼내듯, <상어>는 적어도 한 회에 한 두번 남녀 주인공이 감정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이런 과도하게 아름다운(?) 감정씬들에 이유가 없지는 않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경우, 공식적으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남매 사이이고, 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목적은 여자를 이용하여 돈을 뜯어 내는 것이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사건 보다 두 사람이 맞부딛치며 빚어내는 미세한 균열을 콕 찝어 내는 것으로 설명해 내려 했고, 그 지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즉, 상식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관계인데, 사랑하게 되는 그 '아이러니'의 미학을 섬세하게 다룬 것이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상어> 역시 마찬가지다. 해우와 이수는 청소년 시절에 서로 좋아하던 사이였지만, 이제 12년이 흘러, 해우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이수는 해우의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더구나 그 수단으로 해우를 이용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상대방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눈빛이 흔들린다. 더구나, 드라마가 진행되어 해우가 이수가 누구라는 걸 알고,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진정성이 있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불륜이 되는 것이다. 이 위험한 설정의 당위론을 만들기 위해, 드라마 <상어>는 해우와 이수의 12년을 무색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데 공을 들인다. 마치 불륜이라고 설정은 해놓았는데 막상 그렇게 벌여놓으면 욕을 먹을 게 두렵다는 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넘치는 주인공의 편애를 통해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과 달리, 아직까지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어>의 시청률을 보건대 <상어> 제작진의 이 의도가 성공한 듯 보이지 않는다. 아니, 역으로 이제 8회에 걸쳐 여전히 똑같은 표정, 똑같은 흔들림이 반복되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1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저렇다는게 좀 오바아냐? 라며 반항심까지 밀려오기 시작한다.

 

<상어>를 이끌어 가는 건,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으로 봤을 때 크게 두 가지이다. 그것은 해우와 이수의 세간의 도덕이나 법률적 제도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사랑 하나와, 이수의 복수이다.

복수는 정해 놓기라도 한 듯 한 회에 하나씩 사건을 던진다. 7회에 뜬금없이 배달된 사진을 찾아 갔더니, 이수같은 소년이 튀어나오는가 했더니, 8회엔 그 소년이 이수가 아니란다. 하지만, 영악해진 시청자들은 안다. 7회에 뜬금없이 등장한 사진의 장소라는게 이 드라마의 협찬을 위해 등장한 일본의 모처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황한 시간을 드라마가 허비하고, 8회에 이수가 아니라는 그 엔딩 역시 얼굴을 다친 이수라는 사실이 또 숨겨져 있음을.

그러면서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다음 회면, 다음 회면 뭔가 짜~하게 무시무시하 복수가 시작될 거 같은데, 이렇게 한 회에 하나씩 시시껄렁한 떡밥이나 던지는 거 보니, 뭐가 아예 없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 12년을 절치부심했다며 해우를 보자마자 저렇게 흔들리는 걸 보니, 이수는 복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 아냐? 라는.

 

<상어>의 제작진은 폼나게 복수도 하고 싶고, 멋들어지게 멜로도 해보이고 싶은데, 8회를 건너온 지금, 멜로는 하냥 하는 소리요, 복수는 심드렁해지는, 그래서 호청자들 조차 이 드라마 내가 기대한 그 <상어> 맞나 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손예진의 사랑스러움과, 김남길의 치명적 매력만으로 버텨가기엔 복수극 <상어>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부디 숨겨진 카드가 있다면, 아끼지 말고 확확 속시원하게 풀어내시길~

by meditator 2013. 6. 19.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