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가 본격적인 복수극으로써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한이수의 삶을 대신 살기 위해 검사가 된 해우는 신혼 첫날 밤 의문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장소에서 그 옛날 한이수 아버지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의문의 메시지들이 해우로 하여금 자꾸 12년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한이수!, 한이수를 느끼게 하는 사건, 남자가 그녀를 흔들기 시작한다.

또 한편, 결혼식에서부터 해우의 주변을 어른거리던 요시무라 준은 일본계 자이언트 호텔의 사장으로, 해우네 가족의 가야 호텔, 지금은 해우의 남편 오준영이 본부장으로 있는 호텔의 공격에 나선다.

양수겸장, 한때 한이수였던 요시무라 준은 한편에선 해우를 통해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또 한편에선 조상득 일가의 기반인 가야호텔을 무너뜨리려는 야심을 보인다. 제대로만 된다면 해우의 일가는 법과 경제,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 처절한 결말에 이를 것이다.

 

KBS수목드라마 상어

 

 

<상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손예진의 아역으로 등장했던 경수진은 찡긋거리는 표정 하나, 웃는 모습조차 너무도 손예진스러워 경악스럽기 까지 했다.

그런데 3회 본격적으로 성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후, 손예진은 역시 손예진이었다.

손예진이 손예진다운 것은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이 그녀답기 때문이 아니다. 손예진만이 낼 수 있는 사랑스러운 느낌, 그러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극의 캐릭터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해우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김혜수가 김혜수인 것을 <직장의 신>을 통해 증명해 내었듯, 아마도 손예진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상어>를 통해 손예진을 증명낼 듯하다.

김남길도 마찬가지다. 남자 배우가 성인으로 등장하면서 콧수염을 기르고 나온다는 건 남자 주인공의 미모도 드라마의 경쟁력으로 꽤 작용하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콧수염이 좋고 나쁘고에 대한 호불호가 워낙 오고가니까. 그런데, 드라마 속 김남길은 김남길이 아니라, 그저 요시무라 준이었다. 3,4회 동안 그에게 주어진 것은 깊은 침묵과 짧은 대사들이었음에도 꽤 많은 정지 화면 속의 그가 답답해 보이지 않을 만큼, 다른 호텔 사장을 협박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더 소름이 끼칠 만큼 이미 김남길은 복수의 화신 요시무라 준이었다.

 

(사진; 시사포커스)

 

그래서 조금은 <상어>의 출발이 안타까웠다.

복수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남여 주인공의 애틋한 첫사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3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손예진과 김남길을 보며, 비로소 극이 제대로 시작되었음이 느껴지듯이, 차라리 이들의 등장과 과거 사건 담당 형사의 죽음까지를 첫 시작으로 했다면, 그게 아니라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 더 스피디하게 진행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역들의 등장이 그리고 첫사랑이 드라마의 밑밥을 까는 화제성의 한 품목으로 끼워넣곤 하는데, 과연 <상어>에서 아역부분이 그 밑밥을 제대로 깔았는가는 성인 분량이 시작되니 오히려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공을 들인다고 해서 첫사랑이 낙인처럼 찍히는 게 아니다. 뻔한 빗속 키스나, 가출에 이은 술래잡기 보다는 한이수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온 조해우의 그 한 발자욱을 제대로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상어>의 밑밥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지 않은 설정으로 중언부언 덧붙이다 보니, 어설픈 아역들의 연기력이 구설이 되고, 진부한 첫사랑으로 남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모른다 해도, 손예진, 김남길이 이끌어 갈 <상어>가 기대가 된다.

언제나 그렇듯, 김지우 작가의 작품에서 인간은 참 모호한 존재다. 서로가 맞물리며 보이는 얼굴 외에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다. 물론 그러기에 늘 어려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해우가 준영이를 바라볼 때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환한 미소를 짓지만, 준영은 무표정이 되어 앞만 바라보는 해우의 또 다른 얼굴에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해우가 숨겨져 있음을 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아버지를 뿌린 장소에서 만난 박여사가, 그저 이수네 가족에 대한 호의가 아닌 아버지를 짝사랑했었다는 고백을 한 것처럼, <상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어느 누구하나 허투루 넘겨짚을 사람이 없다.

대표적으로는 자신의 말처럼 끝나지 않는 해원을 만들어 낸 장본인 조상득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뿐만 아니다. 세상에 없이 착해 보이던 이수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숨겨진 존재가 몰고올 파장이 복수의 화신이 된 이수를 어떻게 끌고갈 지가 이 드라마의 숨겨진 포인트이다.

그러기에, 해우가 다시 만나러 간 목격자 소년의 냉담함이 과연 그전에 그 아이를 방문한 강력부 검찰 수사관 김수현과 혹시 무슨 관계가 있을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는 요시무라 준의 비서로 등장한 장영희도 만만치 않다.

인간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리하면 김지우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사의 또 다른 혜안을 얻을 지이니. 이것이 드라마 <상어>를 재미나게 보는 방법이다.

 

배우 김남길이 KBS 2TV 상어에서 3단 눈빛 연기를 선보였다. / KBS 방송화면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상어>의 호흡은 빠르지 않다.

미드식 케이블 드라마의 곳곳에서 치고 빠지며 떠들썩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에 비하면 호흡도 빠른 편이 아니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김남길의 정지화면 같은 고정 숏 때문일까, 어딘가 정적이다. 하지만 마치 2D의 책이, 그 속으로 빠져들면 그 어떤 3D,4D 영화보다도 스펙타클하듯, 꼼꼼히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빠져들어가는 <상어>엔 김지우식의 또 다른 스펙타클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3. 6. 5. 10:00

힐링 캠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는 아니다.

6월 3일자 <힐링 캠프>의 시청률은 7.1%로 동시간대 <안녕하세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하지만 달리는 말보다 빠른 게 사람의 세 치 혀라고 했던가, <힐링 캠프>를 통해 전해진 게스트의 '말'들은 시청률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lte급으로 대중들 속에 퍼져 나간다.

 

<안녕하세요>의 일반인 출연자는 그 프로그램에서 눌리는 버튼의 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반짝 검색어로 치솟았다 하더라도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그라들어 개인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들은 이른바 '공인'이라는 미묘한 처지로 인해 한번 찍힌 낙인 여하에 따라 때론 그들의 생사 여탈권이 좌우되기도 하고, 전쟁의 상처보다 더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공식적 매체나, 인터넷의 뒷담화들도 그 사람의 사연을 제대로 풀어낼 생각은 안하고 그저 이런 '루머'가 있다는 사실만 퍼나르기에 급급하다. 속사정이니 배째고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자 회견이나, 공식 발표를 해봤자 믿어 주지도 않는다.

바로 그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는게 <힐링 캠프>다.

출연 요청만 들어온다면 만사 ok이다. 까칠하지만 언제나 해명할 꺼리의 물꼬를 거침없이 터주는 이경규, 무슨 말을 해도 호수같은 눈망울로 그저 '당신을 믿어요'라거나 가끔은 눈물도 흘려주는 한혜진, 심지어 그녀의 돌직구는 통쾌하게 가려운 데를 긁으면서도 교묘하게 출연자에의 공감을 도와준다. 거기다 적절하게 양념까지 얹어주는 김제동, 그 어떤 공식적 해명보다 진정성 있게 출연자의 사연을 세탁해 주는, 이보다 더한 '우군'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 힐링 캠프에 출연한 박태환, 스포츠 조선)

 

6월 3일 <힐링 캠프>의 출연자는 박태환이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예고편에서 보여진 핼쓱해진 박태환의 얼굴만으로도, '수영할 곳이 없다'는 멘트만으로도,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를 시청자들은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하다 여겨져던 수영에서 그토록 많은 쾌거를 이룬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정황의 옳고 그름을 떠난 분노부터 느껴졌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갑'이라 생각했던 박태환도 또 그의 위에 호령하려는 또 다른 '갑'에게 미운 털이 씌이면 저런 걸 겪는구나 싶으니, 더 감정 이입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힐링 캠프>의 진행 방식은 현명했다.

다짜고짜 박태환의 아픈 상처를 내보이지 않았다. 살이 쪼옥 빠진 한눈에 보기에도 마음 고생 한게 눈에 훤히 드러나는 박태환의 밝은 면을 우선 내보였다. 요리도 하고, 친구 기성용과 결혼하는 '제수씨(?)' 한혜진과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스물 다섯 살 아름다운 청년 박태환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마치 수영을 하기 전에 수영장 물로 몸을 적시듯 앞으로 다가올 사연에 대한 대비를 해두었다.

그 다음에 보여준 건,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그의 아픔이었다. 겨우 15살 나이에 국가 대표 선수로 나아가 실격 처리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의 부진한 성적 이후에 모진 여론과 그것을 스스로 삭혀내야 했던 시간들을 토로하게 함으로써, 단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이지만, 혼자 견뎌야 하는 레이스의 시간 외에, 자신을 도와주는 스탭들의 마음에, 국민들의 변덕스런 정서까지 감내해야 하는 외로운 '스타'의 고뇌를 충분히 공감하게 해주었다.

그런 앞선 충분한 박태한에 대한 공감 적시기 덕분에, 그가 덤덤하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그 말이 얄밉게 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태릉 선수촌에서 홀로 빠져나온 사건도, 항명으로 비춰진 홈쇼핑 출연도,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는 수영 연맹 행사 불참도 그럴 수 있는 것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론 <힐링 캠프>를 통해서 박태환이 했던 이야기들이 박태환과 관련된 기사와 루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힐링 캠프>를 통해 그의 편이 된 사람들에겐 그 새로울 것없는 이야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진정성 있게 들렸을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수영 연맹에 쓰는 영상 편지를 보면서 안쓰러움에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사진, 세계 일보)

 

물론 언제나 <힐링 캠프>의 구설수 세탁 방식이 먹히는 건 아니다.

얼마전 장윤정의 출연이 그녀에 대한 세간의 여론을 단번에 '호감'으로 역전시킨 홈런이었다면, 오랜 함구 끝에 출연한 설경구의 출연은 안타깝게도 또 한번의 병살타가 되버린 셈이었다. 그건 결국 빨아도 빨아도 깨끗해 지지 않는 세탁물이 있듯이, 인간적 면모를 밝히고, 마음 고생 했던 시간을 토로해도, 애초에 절벽처럼 돌아선 마음은 <힐링 캠프>식 세탁 방식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 예전 무르팍 도사가 시끄럽게 판을 벌렸던, 하지만 이제는 <힐링 캠프>가 인간적으로 풀어내는 해명의 시간, 그 시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출연자의 선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출연자도 힐링 되고, 보는 시청자들도 공감하며 힐링 할 수 있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3. 6. 4. 09:54

절치부심 3년 만에 5집 '모노크롬'을 내놓은 이효리가 홍보차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 중이다.

그리고 '예능불패'라는 수식어처럼 이효리를 맞이한 예능들은 <땡큐> 자체 최고 1위, <라디오 스타> 역시 시청률 상승에 동시간대 1위라는 흡족한 성적표를 거둬들였다.

단지, 피디가 이효리네 집 앞에서 한 달동안 머물며 읍소했다는 <맨발의 친구들>만이 기대와 다르게 별다른 효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천하의 이효리라도 안되는 건 안되는가 보다.

 

<맨발의 친구들>에서 피디를 한 달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이효리의 말을 듣고 강호동이 왜 그랬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이효리는 1초도 쉬지 않고, 강호동과 자신이 맞지 않아서 그런다고 대답을 한다.

아마도 그간 이효리가 나온 예능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은, 그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잘 했기 때무이기도 하지만 이효리가 자신을 잘 살려낼 프로그램만 잘 골라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디의 인간적 부탁을 받고 나온 <맨발의 친구들>에서 이효리로 인한 기사들은 대부분 강호동과 이효리의 기싸움을 들먹이며, 강호동을 이기는 이효리라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간곡한 부탁을 해서 불러다 놓고 메인 mc랑 기싸움이나 시키다니!

 

(맨발의 친구들에 출연한 이효리, 뉴스엔)

 

 

이효리가 나와서 잘된 <라디오 스타>, <땡큐>와 <맨발의 친구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토크 내용의 진정성이나 솔직함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예능 쫌 하는 언니'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벌려 준 게 아닐까.

<라디오 스타>에 등장한 이효리는 처음부터 기세등등했다. 누군가와는 동갑, 누군가보다는 한 살이 어리지만, 그 누구라도 그녀에게 쉽게 말을 놓기 힘들만큼 당당한 기세로 프로그램을 제압해 갔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그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솔직함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지만 지금 사귀는 그 사람에 대해 마지막의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당당함, 핑클 초창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가감없이 밝히는 담백함, 그 어떤 질문이나, 태클에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떳떳함이 '예능 불패'라는 것이 그저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땡큐>와의 시간도 역시나 이효리가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에선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의 이효리가 '다 덤벼!'하는 'Bad Girl'의 거침없음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땡큐>의 그녀는 선배 가수 이지연의 팬이자, 그녀와 같은 길을 이제는 그녀보다도 더 오래 걸은, 그리고 후배 가수 예은의 선배인 여자 가수 이효리였다.

밭에 난 채소들을 툭툭 털고 입에 넣어 맛을 보듯, <땡큐>엣 이효리는 십오년을 지켜온 여가수의 삶을 가공하지 않고 보여주는 날 것의 대담함으로 프로그램을 장악해 갔다. 선배 이지연도 사랑에 대해서는 수줍어 하고, 후배 예은은 그저 여미기에 바쁜데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한 이효리는, 그것이 사랑이든, 광고이든, 먹거리이든 동일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진정성을 얻어갔고, 마치 욕을 들어먹으려고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가듯 색다른 공감의 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 캐릭터들은 전혀 달랐지만, <땡큐>이든, <라디오 스타>이든, 이효리에 의한, 이효리를 위한, 이효리의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땡큐에 출연한 이효리, 파이넨셜 뉴스)

 

하지만 <맨발의 친구들>은 달랐다.

도대체 '도와달라'는 피디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해외 맨발의 친구들 포맷을 하다가 그걸 접고 국내로 들어온 첫 회, 멤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포맷조차 딱히 새로운 포맷을 결정된 바 없는 상황에서 대뜸 이효리만 불러다 놓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이효리도 처음엔 다 알아서 해보려고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자기(?)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는데 익숙치 않은 강호동은 이효리가 나타가 판을 이끌어 가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웃자고 쓴 기사 강호동 vs. 이효리는 내내 강호동식 진행과 이효리식 진행의 불협화음이었고, 이효릭 이 프로그램의 고정이 되지 않는 이상, 결국은 강호동에 의한 프로그램으로 남아야 할 <맨발의 친구들>에서 깜짝쇼 이효리는 그다지 도움이라기 보다는 강호동식 진행의 피로감만 확인 시켜준 결과가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효리가 휘젖는 판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판에 즐겨이 휘둘려지는 대신에 삐진 아이 컨셉으로 호시탐탐 자신을 돋보일 기회만 노리는 강호동은 피곤하다. 이효리 조차 그걸 깨달았는지 어느 틈에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하니, 천하의 이효리를 데려다 놓은 들, 강호동의 예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물론 이효리까지 가세한 <맨발의 친구들>은 다른 때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아빠와 아들들의 가족애와, 군발이들의 전우애를 넘길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는게 이제는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요, 유이 엄마의 남편감 고르기는 더더욱 흥미롭지 않다. 심지어 길고 지루한 동물 이름 알아맞히기 게임이라니!! 누구네 집이라는 장소의 특성은 하나도 살려내지 못한 채 악기를 다루고, 게임을 하는 방식은 이미 '패밀리가 갔다'시즌 1,2를 통해 흘러간 컨셉이다.

엉뚱한 김현중도, 한결같은 강호동도 재미가 없진 않지만, 그렇게 예능을 통해 이미 이미지가 소모된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인물, 드러나지 않은 윤시윤의 열의가 신선한데도, <맨발의 친구들>은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는 대신여전히 강호동의 뻔한 진행과 새롭지 않은 한류 스타 놀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샘 해밍턴이 군대에 가는 세상에, 이 뻔한 사람들이, 뻔한 캐릭터로 해외를 가든, 누구네 집을 찾아가든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by meditator 2013. 6. 3. 10:13

<출생의 비밀>은 김규완 작가의 작품이다.

김규완 작가는 '작가주의'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피아노> 이래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진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욕망의 불협화음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이다. 김작가의 작품에서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의 그 평화로운 휴식처가 아닌, 인간사의 모든 모순의 응집처이자, 출발점으로써의 가족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곤 한다.

하지만, 2010년 야심차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전복시킨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다시 한번 김규완 특유의 가족 해부를 통한 현대인의 욕망과 화해를 논해보려고 했지만, 그저 의도만 좋았던 작품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제 어언3년 만에 들고 돌아온 <출생의 비밀>, 전혀 다른 캐릭터와 다른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김규완 특유의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 언니>의 '용두사미'가 못내 아쉬웠던 듯,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 신데렐라 언니, kbs)

 

<신데렐라 언니>와 <출생의 비밀>이 비슷하다고?

이 말이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의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막되먹은 강봉두(유준상 분)의 '깨는' 존재감이었으니까,이 드라마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강봉두와 정이현이 해듬이를 사이에 두고 남녀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강봉두의 깜짝쇼가 끝나고, 극이 진행이 되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정이현의 기억의 퍼즐들이 조금씩 맞혀져 가면서 드라마는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일한 의지처였던 어머니마저 잃은 가난한 학생이던 정이현이 등록금을 한번만 대달라고 찾아간 아버지 최국은 예가 그룹의 적장자였던 것이다. 기억의 편린들을 잃었지만, 지금의 정이현은 작은 아버지가 이끄는 예가 그룹의 핵심 일원이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정작 신데렐라 효선(서우 분)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대성도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효선은 늘 외로움에 시달리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대성도가를 노리는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그녀의 딸 은조(문근영 분)과 한 남자를 놓고 운명적인 사랑의 줄다리기를 펼치게 된다.

<출생의 비밀>의 이현도 마찬가지로 예가 그룹의 적장자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하지만 현실의 예가 그룹을 틀어쥐고 있는 건, 작은 아버지요, 이현은 혈통은 있으되, 실권은 없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적통의 이권을 노리는 자가 아버지와 피를 나눈 형제요, 효선과 다르게 이현은 의붓언니 은조만큼이나 능력자다. 그리고 은조처럼 이현은 성찰자로써 가족간의 혈투를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김규완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늘 콩가루 집안이다.

재혼에 의해 새롭게 이루어진 유사 가족이거나, 혹은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이른바 재물, 가업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이권을 놓고서는 남보다도 못한 격렬한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가장 애틋한 사랑의 상징이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가장 첨예한 욕망의 장이라는 설정은, 역으로, 가장 진지한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대성도가의 재산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뱀처럼 구는 어머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효선의 집착 앞에선 자신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고뇌하는 은조처럼, 이현 역시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들을 찾아가면서 그럴 듯한 예가 그룹의 일원이었던 자신이, 자신을 배반한 친구와 애인처럼 역시나 자신의 이해 관계 앞에선 가장 계산적인 인간임을 깨닫게 되고, 현재 자신이 누리는 부의 성채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언제나 방관자적인 은조의 시선을 통해, 부도, 욕망도 '인간'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허상에 불과하단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출생의 비밀>은 역설적으로 가장 무식하고, 가진 것없는 강봉두의 순정을 통해, 그를 야수처럼 징그러워하다가 다시 그 예전처럼 그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이현을 통해 이해에 빠르고, 욕망에 거침없는 예가 그룹 가족의 허상을, 진정한 행복을 논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는 욕망의 파노라마를 펼치며 끊임없이 다른 버전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제작 의도에서 누가 신데렐라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똑같이 아픈 두 여성들의 '동화'를 노렸듯이, 이전 드라마의 구조를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가족이란 제도를 통해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 충분히 서술되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많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훌륭한 시놉과 촉박한 제작 일정으로 말미암은 '용두사미식'의 전개로 인해, 명작으로 시작해서 범작이 되어버린 <신데렐라 언니>에 비해, <출생의 비밀>은 좀 더 야무진 포석을 여기저기 벌려 놓았다. 덕분에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의 재미가 속속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부디 이 포석들에 탄탄한 집을 지어, 김규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속시원하게 해낸 명작으로 끝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6. 2. 10:30

텔레비젼에 나오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물론 이 말이 맞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젼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이 첫사랑에 기대어 있는 건 사실이다. 1996년 최수종과 이승연의 <첫사랑>이 시청률 60%를 넘겨 전국민 드라마가 되어 사랑을 받던 그때도,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텔레비젼은 첫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다.

<상어>는 치명적 복수의 서막을 간절한 첫사랑의 떨림으로 장식함으로써 가족사의 비극에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얹는 치명적 운명을 완성시킨다. 하다못해 새로운 버전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조차 알고보니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 <구가의서>는 또 어떤가? 강치의 잃어버린 첫사랑에 얼룩진 관계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인이다. 그러다 보니, 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듯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헤드폰을 낀 상대방에게 소심한 고백 한 마디를 남긴 채 쿨하게 상대방을 보내주는 방식이나, 쫌 징징거리다 어쩔 수 없어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방식은 안먹히기가 십상일 터이다. 삶은 뻘밭에 굴러도 마음만은 홀쭉~ 아니, 순수하고 싶은 딜레마랄까. 컴플렉스랄까.

어디 우리나라뿐인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일군 거대한 저택도 알고보면, 첫사랑의 쟁취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여기서, 첫사랑에 임하는 남자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 하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단편 소설 <소나기>의 남자 아이 유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냇가를 가로 막고 앉아서 당돌하게 말을 건네는 하얀 도회지 아이에게 첫 눈에 반해, 그 소녀가 하자는 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는 지고지순한 유형.

또 하나는 역시나 단편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남자 아이처럼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어쩌는지 자신의 감정도 모르는 채 우격다짐 주먹질까지 해대고 마는 찌질한 유형.

'바운스, 바운스'하고 울리는 심장 박동 앞에 쿨함 따위는 도저히 지켜낼 수 없어, 드라마건, 영화건,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이 두 유형 중 어느 것인가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음악 드라마<몬스타>도 다르지 않다.

'나 스타야!'를 연발하는 윤설찬(용준형 분)은 <동백꽃> 스타일이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양'이라고 생각한다는 민세이(하연수 분)의 속내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직 그녀가 자신을 인지해주지 않는 사실에 씩씩거리느라 늘 헛발질을 해댄다. 그리고 <동백꽃>에서 소년과 소녀의 육박전이 묘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듯이, 대부분 윤설찬의 도발로 인한 투닥거림은 결국 윤설찬의 숨길 수 없는 감정의 축적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정선우(강하늘 분)는 안어울리게 전학생(민세이)를 챙긴다 했더니, 어린 시절 첫사랑이란다. 반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민세이에게 반했고, 전학생으로 다시 한 반이 된 지금, 정선우는 '키다리아저씨'처럼 호시탐탐 그녀를 돕느라 전전긍긍한다.

 

<몬스타>의 이야기나 전개는 다 어디서 한번쯤 본 듯한 것들이다.

윤설찬의 찌질함도, 정선우의 세이바라기도 새롭지 않다. 과연 정말 아이돌 스타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이요, 세상 물정에 어두울까 란 의문 하나 남기지 않고, 윤설찬은 전형적으로 스타이다. 반면 사실 그간 싸가지 없기론 윤설찬 못지 않았던 정선우가 세이의 등장 만으로 저렇게 지고지순하게 변한다는 아이러니도 그렇다. <몬스타>는 일찌기 <꽃보다 남자> 이래로 순정만화 클리셰를 답습했던 모든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개연성이나 타당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때? 이런 스타일이 너네들한테 먹히지?'라며 납작한 캐릭터들을 들이댄다. 심지어, 윤설찬은 알고보니 가정적으로 고독하고, 민세이에게는 아버지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을 흘릴만한 사연까지 아주 셋트메뉴로 그럴 듯한 것 투성이다.

 

뿐만 아니라, 번번히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야릇한 분위기 형성을 빼놓지 않는다. 일찌기 감독의 전작 <성균관 스캔들>에서 선준(박유천 분)과 윤희(박민영 분)의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이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는 걸 복기라도 하듯이, <몬스타>의 주인공들은 노골적으로 한 회에 한번은 의도치 않게 신체적 접촉을 한다.

단지 3회 차에 불과한데, 벌써 윤설찬의 '나 스타야'라는 자기 확인이 지루하듯이, 이런 게 있어야 청춘 드라마지 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신체적 접촉은 어색하다. 심지어, 낚으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불쾌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도, <몬스타>는 신선하다.

스토리는 뻔하고, 캐릭터는 진부한데도, 그 진부함 사이를 메꿔주는 음악이 이 드라마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민세이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한 윤설찬의 피아노 버전의 '무명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의 뻔한 첫사랑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며 아파트 계단에 앉아 부르는 정선우의 기억 속의 노래는 그 시절 그 감정에 흠씬 빠져들게 만든다. 첫 회 박규동(강의식 분)의 '바람이 분다' 이래로, 매회, 뻔한 클리셰의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뜻밖의 음악들이 <몬스타>를 구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뮤직 드라마인가 보다.

by meditator 2013. 6. 1. 10:06

꼼수의 시작은 그랬다.

이미 <7급 공무원>이 선점하고 있는 수목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노리기 위해 sbs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를 수요일에 시작하고, 하루에 1,2회를 몰아서 방영하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전달했던 2회에 힘입어, 작품성 위주라서 시청률을 얻기 힘들꺼라던 예상과 달리 노희경 표 < 그 겨울>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 승승장구 동시간대 1위의 쾌거를 달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안그래도 <그 겨울>의 편법 편성으로 원성을 얻었던 sbs가 또 그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물론 다른 방식을 쓰기도 한다. kbs의 <상어> 첫 방송 날,  이른바 72분 룰을 어겨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10%를 넘기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덕분에 목요일에 첫 방송을 시작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낮은 시청률의 일정부분은 기대작 <그 겨울>의 편법 편성의 탓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제 심기일전, 일대 반전을 노리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가 또 다시 목요일 첫 방이라는 악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등장한다. 만만하니, 단막극!

 

mbc도 그랬었다.

4부작으로 담을 이야기를 20부작으로 늘렸다 하여 차마 연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아랑사또전>이 종영하고 <보고싶다>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못난이 송편>을 방영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 보편적으로 아역들 중심의 이야기들은 시청률이 떨어진다지만, <보고싶다>는 <아랑사또전>의 그나마 간당간당했던 시청률마저 반토막이 난채 아역 시절을 마무리 해야만 했었다.

과연 그간의 편법 편성으로 일그러졌던 sbs 드라마의 순배를 되돌려 놓기 위한 <사건 번호 113>의 편성이 과연 효자 노릇을 할지 다음 주를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정말 얄미운 건(?) 그나마 kbs2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고 근근이 이어가는 단막극 시리즈라도 있지, mbc와 sbs는 <베스트 셀러 극장>과 <오픈 드라마 남과 여>가 각각 2007년과 2004년 막을 내리 이후 단막극이라고는 <못난이 송편>처럼 땜방용이라던가, <널 기억해>처럼 설날 특집극으로 겨우 1년에 한 편 만들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죽은 아이 뭐 만지기는 아니지만, 한때는 명작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단막극을 찾아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kbs를 제외한 양 방송사의 단막극은 땜방이나 특집이 아니고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house.jpg

(사진; g벨리)

 

 

단막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다양한 실험작, 더 많은 연출과 출연의 기회들이 기존 드라마의 질을 배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잘 나갔던 시트콤 작가와 케이블 인기 작가들을 수혈해야만 하는, 일본 원작이 빈번하게 번안되는 그럼에도 여전히 어설픈 작품들이 비일비재하게 만들어지는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력 떨어지는 현실은 한때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던 모 방송국만의 현실은 아니니까.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할 주제들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겨우 이런 땜방용 특집극에서나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던 <못난이 송편>은 제목처럼 추석 특집극으로 만들어 졌지만 추석에 내보내기에는 부적절하다 하여 창고에 묻혀 있다, 땜방의 기회를 얻어 그나마 빛을 보게 되었었다.

<사건 번호 113>도 마찬가지다.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시체 실종 사건을 뒤쫓아간 곳에는 고등학교 시절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연이 있었고,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덮으려는 애끓는 모성이 있었다.

왜, 가장 첨예하게 다루어 져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특집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직설'로 다루어 질 수 없는 것일까? 시청률이라는, 이제는 믿을 수조차 없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단막극의 전통을 뭉개버리고, 그나마 남은 kbs 단막극조차 광고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게 되는 처지를 만들었다.

드라마가 냉철하게 짚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은 늦은 밤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제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러고도 텔레비젼이 공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런지. '공중파'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런지.

 

<사건 번호 113>으로 돌아가 보자.

이제는 세련되어가는 케이블의 수사드라마들에 비해 어딘가 밑도 끝도 없이 함께 하는 검사와 형사(이분들도 검경 합동 수사반 텐인가요? 어떻게 함께 수사하지요?)의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수사 과정도 단막극이려니 이해가 된다. 추격 장면만 나오면 '예술'을 만들고픈 의욕도 단막극만의 매력같아 보인다. 기태영, 김민서,두 배우의 새로운 모습도 신선했다. 김미숙의 미묘한 모성의 결은 언제나 탁월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로 뚝심있게 밀어부친 실험작에 온전히 배려된 두어시간을 함께 한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본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by meditator 2013. 5. 31. 09:55

소설가 김영하는 말한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가 아닌 소설의 차이는 그저 운일 뿐이라고, 인기리에 잘 나가는 자신의 소설과 도서관 서가에 꽂혀 먼지가 쌓여가는 소설 사이에 더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가 없다고, 단지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당대 사람들의 선택을 당대의 시민 정신이라 치환해도 될까?

올해 들어 sbs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sbs의 <야왕>이었다.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높은 것은 <백년의 유산>이다. 작년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를 품은 달>이었다.

<야왕>이나, <백년의 유산>, <해를 품은 달>에 2012,3년의 시민의 정서를 대변할 그 무엇이 있을까? 출충한 대본과 탁월한 연출력, 빼어난 연기가 있었을까?

김영하의 솔직한 고백이 다시 한번 적용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괜찮은데' 하다가, 막상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그걸 보는게 창피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툴툴 털어대려고 난리다.

 

<내 연애의 모든 것>도 그랬다.

털어 먼지 안나오는 드라마 없듯이, 신하균의 초반 설정의 과도함, 국회의원이라기엔 너무 이쁜 이민정,정치를 말하는 건지, 연애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는 내용에, 잔잔하기 이를데 없는 국회에서 연애하기 등, 양파 껍질 까듯이 까고 또 깔 것들이 투성이들이었다.

하지만, 16회, 여전한 정치 판세에서도 편가르기가 아닌 정책으로 다시 만나게 된 김수영(신하균)과 송준하(박희순)가 하나의 당을 꾸려가고, 초심이 중요하다는 김수영의 연설은 여전히 신선하고 뭉클한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그건 내가 그런 희망을 공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랑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접두어처럼, 우리가 그것을 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상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 메시지는 뜨끔할 정도였다.

바로 그것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위치한 지점이, 시청률이 낮다니까 지레 외면하고, 이렇다 저렇다 품평을 하면서, 쉽게 리모컨을 돌려 버리고, 이 드라마가 진득하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허긴 요즘 이 드라마처럼 진득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드라마들이 드물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주 적은 사람들이 들어주어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주인공 김수영이나, 노민영처럼 결코 자신이 할 바를 주저하거나, 목소리 낮추지 않고 뚝심있게 하고픈 말을 다해내고야 말았다.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작가든, 배우든, 연출이든 너무나 즐겁게(?)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6회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마치 '대박'을 쳐서, 지금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 같다. 화면의 때깔이나 구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쪽대본의 흔적도 없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무에 그리 신이 나는지, 좋아 죽겠는 표정이다.

제작진도 사람인지라, 기자 간담회에서 모 배우가 말하듯이 논란이 되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다고 한다. 그리고 시청자도 사람인지라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감정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를 버리고, 이러면 잘 나올까, 저러면 잘 나올까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전해질 때가 많다.

그런데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 보면 행복해 진다.

마치 이미 떨어진 시청률 따위! 라고 하듯이, 누군가를 낚기 위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함께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그 어느 히트 드라마 못지 않게 화면도, 색감도, 줄거리도, 연기도 손색이 없다. 아니 즐겁게, 행복하게 하는 '엔돌핀'에 전염된다.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며 회마다 누군가를 핍박하고, 악다구니를 벌이고, 개연성없는 전개에 피곤해 하던 그 마음조차 '힐링'이 되게, <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연애도, 삶도 모두 합리적으로 풀어간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뼘 더 나아가려고 하듯, 삶도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지게 노력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일찌감치 구제불능이었던 시청률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숨겨진 명작으로 남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공중파가 아니라, 케이블의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의 구미를 맞춰야만 하는 공중파가 아니라,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찾아보게 만드는 케이블 드라마였다면 지금처럼 찬밥 취급은 안당했을까? 이런 신선한 이야기도 다루네? 하며 호청자들이 즐거이 시청하는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랬다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아쉽기 까지 하다.

누군가 처음 시청률이 떨어졌을 때 제작진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노민영으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위에 정서적 본진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건, 현존의 누군가와 비슷하지만, 현존의 누군가를 꼭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 5월29일자 이원재씨의 칼럼처럼, 일종의 '사회적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사회학자 프레트 폴락의 말처럼,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나고, 거기에 진보란 미래의 이미지를 끌고가는 사회적 상상력이었을 때,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그 사회적 상상력으로 품어 낸 미래의 진보 이미지였다.

하지만 몇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보궐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치뤄내며 정치권에서 진보 세력이 사그라 들었듯이, 이제 스펙에 골몰하고, 내 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미래를 함께 할 사회적 상상력으로의 '진보'에 냉소를 보낸다. 물론 거기에는 진보 진영 스스로의 패덕도 크다.

그저 그런 시기에 여전히 꿈에 부풀어 순진하게 다른 너와 내가 손을 잡는 방법, 심지어 사랑을 하는 상상을 했으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참담한 결과는 자초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꿋꿋하게 5% 내외를 넘나들며 이 드라마를 지켜 본 누군가들로 인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순수한 상상력은 짓밟히지만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5% 시청률은 소중하다. 폄하될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잔존한 우리 사회 희망의 싹같기도 하다.

 

(사진; 뉴스엔)

 

섣부르게 연애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어설펐다 어쨌다 논하지 않겠다.

그렇게 따지면, <야왕>은 복수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훌륭해서 시청률이 좋았는가. 그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박수쳐 줄 때가 아니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을 뿐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흔들림없이 최선을 다해준 <내 연애의 모든 것> 제작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짝!!!!

배우도, 제작진도 다음 작품에서 또 봐요~~~

by meditator 2013. 5. 30. 10:06

결국 이야기쇼<두드림>이 폐지의 수순을 걷는다.

상대적으로 한가했던 토요일 밤에서 겁도 없이(?) <라디오 스타>가 버티고 있는 수요일로 격전지를 옮기고 차별화되지 않는 연예인 게스트 모시기에 신선하지않은 포맷으로 개편을 하더니, 결국 몇 회를 견뎌내지 못한 채 종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어설픈 <두드림>의 무모한 도전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범람하는 연예인 게스트 쇼의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공중파에서만 아침 방송을 제외하고 연예인이 토크 게스트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라디오 스타>, <힐링 캠프>, <무르팍 도사>, <해피 투게더> 등이 있다. 각 방송국 별로 집단 토크쇼 하나, 개인 토크쇼 하나인 셈이다. 홍보 등으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연예인은 한정되어 있고, 토크쇼는 넘쳐나다 보니, 이번에 복귀한 2pm처럼 방송마다 닉쿤이 나가서 심각하게 음주 운전과 관련된 해명성 방송을 남발한 것처럼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연예인 게스트 토크쇼가 10%를 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전의 <화신>이나 지금의 <무르팍 도사>처럼 3% 대의 치욕스런 시청률을 보이는 경우조차 생기는 것이다.

반면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안녕하세요>나 <짝>처럼 일반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두드림>의 폐지는 현명한 판단이라 보여진다. 단지, 한국어판 'TED'(유명인사들이 멘토링의 취지하에 십여분의 짧막한 연설을 하는 프로그램)에 토크쇼를 합체한 본래 표방했던 '멘토링'이 강조된 포맷은 제대로만 했다면 좋은 프로그램이 되었을 텐데, 그저 그런 연예인 토크쇼로 전락한 <두드림> 제작진의 협소한 안목이 안타깝기는 하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쇼-두드림이 다음 달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 KBS 제공

 

 

여기서 문제는 야심차게 공중파로 복귀한 mc김구라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1패의 전적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호동처럼 프로그램은 망해도 강호동은 살아남아 리뉴얼할 수 있는 권력자라면(?) 모르지만, 김구라의 경우는 애초에 자숙의 사안이 다른 만큼 아직까지 그에 대한 호불호가 오고가는 상황에서 , 복귀 후 그의 성적 여하에 따라 '공중파는 무리다' 라는 섣부른 결론이 도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모르는 일이긴 하다. 김구라도 강호동처럼 smc&c로 들어가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또 일어나는 힘을 득템할 지)

<두드림>으로 합류한 김구라는 예외였지만, 막말의 대명사가 아니라, 조영남이란 변칙 플레이어와 함께 온건한 메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이고 싶을 거라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결론은 '폐지'요, 그보다 더 지금 김구라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은, <화신> 역시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신>이 상승세이긴 하다.

3%대의 치욕을 딛고, 김구라가 합료한 이래 계속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1위를 <우리동네 예체능>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확실히 김구라가 합류한 이후, <화신>은 재미있어졌다.

어정쩡한 꽁트를 없애고, 김구라의 특기(?)에 봉태규의 열의를 살린 듯한 '풍문으로 들었소'도 회를 거듭할 수록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한줄의 요약'도 종종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위트있게 끌어가려고 mc들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런데, 풍문으로 들었든, 한 줄로 요약을 하던, <화신>을 보다보면, 자꾸 <라디오 스타>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지금 그의 자리는 <화신>이지만, 김구라를 김구라로 인정받게 만든 대표적 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는 <라디오 스타>인 만큼, 복귀 후 그가 예전 <라디오 스타>만큼 해낼 수 있을까(지금의 라스가 잘 하던 못하던 상관없이)란 암묵적 비교가 자꾸 드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인 것이다.

김구라가 예전의 <라디오 스타>처럼 출연자들을 물고 늘어지려는 의욕은 여전하다. 그의 옆에서 받쳐주는 봉태규의 '봉기자'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김희선과 아웅다웅하는 모습도 생각보다 어울리고. 문제는 신동엽이다.

 

 

심하게 말해서 <화신>은 두 개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신동엽의 19금 판 <화신>이랑, 김구라의 <라디오 스타>, 두 사람은 프로그램 내내 몇 마디를 나누지 않는다. 같은 화면에 잡히는 적도 거의 없다. 신동엽은 자신이 잘 하는 것만 던지고, 김구라도 역시 자신만의 직설로 게스트를 끌고 가려고 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일인자이지만, <화신>에서 두 사람은 그저 신동엽, 김구라일 뿐, 그로 인한 시너지는 없다.

물론 <화신>을 보다 보면 웃기다. 하지만, 화요일 밤, 동네 사람들의 땀 흘리는 진정성을 이겨낼 웃음은 아직 아니다. 다음날 <라디오 스타>를 보면 되지, 굳이 채널을 돌릴 충성도는 약하다.

 

<화신>이 그저 그런 <라디오 스타>의 아류가 아니기 위해서는, <화신>만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김구라 혼자서도 안되고, 신동엽 혼자서도 안된다. 두 사람이 합을 맞춰 이룬, 새로운 미지의 그 무엇이 발생될 때, 그때가 비로소 <화신>이 神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 친해지는 것부터 할 필요가 있다!

by meditator 2013. 5. 29. 10:09

5년만에 돌아온 김지우 작가, 박찬홍 연출의 복수 시리즈 완결판 <상어>는 복수의 첫 단추를 '첫사랑'이야기로 끼우기 시작하였다.

아련함이 물씬 묻어나는 화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해우(경수진)와 이수(연준석)는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교실에서, 한 집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그 만남의 끝에는 빗물 속의 두근거리는 이마키스와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이수의 고백이 헤어날 수 없는 추억의 도장을 찍는다.

 

 

아이러니하다.

치명적인 복수의 시작이 '첫사랑'이라니, 아니 어쩌면 가장 당연한 수순인가. 죽을 때까지도 가슴 한 구석에서 지워낼 수 없다는 첫사랑, 그 감정의 잔인한(?) 집착이, 전복되었을 때 가장 잔인한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복수'는 사랑의 가장 반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원한다는 측면에선 사랑과 아주 유사한 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복수'는 동음이의어라 볼 수도 있고, 그랬을 때 그 맞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는 욕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순수한 감정이 또 다른 불순한 욕망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그 순수함은 또 다른 경지의 순수함으로 자연스레 질적 승화(?)되어 욕망을 깨부수기 위한 복수의 수레바퀴를 가열차게 돌리게 된다는 것일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감정에서 부터 시작된 <상어>가 무시무시한 복수극으로 진전되어 갈 것이라는 건, 언제나 그랬듯 인간 본연 심리의 결을 따라 극을 전개시키며 시청자들을감탄시켰던 김지우, 박찬홍 작가의 의도적인 첫 포석이라 하겠다.

얼굴을 징그리고, 눈웃음을 치는 하나하나가 젊은 시절 손예진을 고스란히 빼어닮은 어린 해우(경수진)의 등장은 영화<클래식>이나 드라마<여름향기>의 손예진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첫사랑의 감정에 풍덩 젖어들게 한다.

첫 만남부터 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아이를 위해 겁없이 주먹을 내지르는 소년 이수 역시 멀쓱한 순정 만화 속 그 남자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1회 마지막,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상어를 좋아하는 이수의 말은 곧 이수 그 자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될 것이고, 그런 상어가 가장 좋은 이유가 불쌍해서라는 이수의 말은 고스란히 해우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란 건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잔인한 복수극의 냄새를 맡은 시청자라면 쉽게 눈치 챌 전형적인 대사들이다.

사실 두 주인공에 홀려있던 감정을 차치하고 <상어>의 1회를 냉정하게 돌아보면, 온통 첫사랑의 클라셰 뻘밭이다. 첫 눈에 반하고, 여자아이는 당돌하고, 남자아이는 모범생이고, 부자인 여자 아이는 외롭고, 엄마가 없이 여동생과 아버지와 사는 남자 아이는 그런 여자 아이의 외로움을 가슴으로 공감한다거나, 자신을 이해해 주면서도 단호한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는 빠져든다거나, 가정의 문제로 잠깐의 가출 중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거나. 아주 전형적인 에피소드 투성이이다.

그러기에, 1회를 본 누군가는 너무도 첫사랑스러운 두 주인공과 더불어 그 예의 익숙한 첫사랑 스토리에 덜컹 빠져들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뻔하고 지루하다며 채널을 돌릴 것이다.

1회 마지막, 가출한 해우를 찾으러온 이수를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대사는 <상어>라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과도 같은 대사이지만, 1회 동안 진행된 첫사랑의 세뇌당하지 못한 누군가에겐 개연성도 떨어지고 뜬금없는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복수를 위해, 가장 순수했던 첫사랑을 <상어>는 주춧돌로 삼았다. 하지만, 전형적인 첫사랑 클라셰와 풋풋한 첫사랑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두 주인공, 약간은 일그러진듯한 주춧돌이 무시무시한 복수의 개연성을 튼튼하게 버티어 줄 수 있는지는 애석하게도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3. 5. 28. 09:42

<인간의 조건>의 외연은 확장 중이다.

처음에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로 시작해서, '자동차없이 살기', '돈없이 살기' 등의 ~없이 살기로 시작된 미션은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를 넘어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으로 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처음 ~없이 살기란 부정적 미션을 앞에 내걸은 <인간의 조건>이 그로 인해 캠페인성 성격은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제한된 미션 영역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운명 자체가 시한부가 아니겠느냐는 중론이 일었을 때, <인간의 조건>은 과감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미션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로 '건강한 먹방'의 신세계를 도출해 냈다.

즉, 그저 맛있게 먹어대는 것이 '먹방'이 아니라 - 도무지 어디서 만들어 졌는지, 어떤 원료로 만들어 졌는지 정체 불명의 음식이 아니라,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진 것이 진짜 맛있게 먹기 위한 -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그저 서로 먹어대기 급급했던 '먹방' 경쟁에 일침을 놓았달까.

이런 산지 음식만으로 먹고 살기를 통한 건강한 먹방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꼭 ~없이 살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어느 프로그래에선가 보았던 것같은 상투적인 듯한, 하지만 사실은 막연하기도 한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부여되었다.

 

 

(사진; 매일경제)

 

그런데 지금까지 그래왔듯 <인간의 조건>의 친구 찾기 미션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꽤나 보았던 그 친구찾기인데도 색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늘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주어진 미션의 영역을 넘어 늘 진지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란 미션에서 부터 그랬다. 문명의 이기를 없앤 불편함도 불편함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문명에 길들여진 삶을 들여다 보는 반사 효과가 더 컸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아날로그적 삶'의 온기는 '자동차 없이 살기'를 통해 더더욱 확산되어 갔다.

문명의 이기가 없어진 순간 삶은 불편해 지지만 예상 외로 소박해진 삶 속에서 잃어가고 있던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잠시나마 되찾게 되는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를 걷다 문득 눈물을 흘리던 김준현의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조차 낯설지 않게.

'돈없이 살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자신의 직업을 통해 먹고 사는 방법을 빼앗는 어거지 미션 같아 보였지만, 그 과정을 통해 힘들고 지겨워졌을 자신들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가를 역으로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100인의 입술 도장을 받아내야 하는 우격다짐 친구찾기가 또 어떤 깨달음을 줄까 자연스레 궁금해 지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데 벌써'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주어진 1회 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친구'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진짜 친구를 찾으라니까, 진짜 친구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란 질문을 꼼꼼한 박성호는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일생을 쭈욱 적어보고, 시기별로 진짜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그에 반해 친구가 진~짜 많다는 김준호는 명쾌하게, 진~짜 친한 친구, 친한 친구, 그저 친구의 영역이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멤버 별로 진짜 친구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 가는 모습 자체 만으로도 '친구'에 대한 화두는 충분히 제시되기 시작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친구를 찾으라니까 다들 어릴 적 친구를 찾느라 연연한다. 심지어 허경환은 멤버들은 사회 생활로 만난 것이니 친구가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그러면서, 박성호가 누굴 찾지 하니까 이구동성으로 그의 매니저 '준석'을 불러댄다. 옆사람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친구를 찾으라니까 일년 가야 한번 볼까말까한 사람들과 연락하느라 쩔쩔매는 아이러니라니!

물론 이 미션을 통해 그간 연락이 안되는 추억의 친구도 만나게 되고, 소원했던 친구와의 오해도 풀어가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이번 친구 찾기의 여정도 저 멀리 돌고 돌아, 결국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깨닫는 소박한 삶의 철학으로 귀결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착각일까?

by meditator 2013. 5. 26.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