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이다. 그 친구와 함께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젊은 시절 이야기만 한 시간 넘게 하다 헤어졌다. '

이럴 때 당신이 그 당사자라면 돌아가는 기분이 어떨까? 여전히 그 젊은 시절의 기억에 빠져 가슴이 뛸까? 아니 그 보다는 지금 나이가 몇 인데 지난 이야기가 하고 있었는가 싶어 십중팔구 입맛이 쓰지 않을까?

흔히 젊음을 봄에 비교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꽃피는 봄은 길지 않다. 그런데도 늘 우리의 기억속 계절의 여왕은 봄이다. 하지만, 사람은 꽃이 아니라, 꽃도 사실은 꽃이 다가 아니듯이, 봄만을 살지 않는다. 비바람 한번 치고 나면 떨어져버리는 꽃처럼, 청춘의 봄날은 그저 잠시 머무를 뿐이다.

 

최근 들어 90년대 아이돌 그룹 특집, 왕년의 학교 스타 특집처럼 <라디오 스타>는 한때 잘 나가던 가수나 배우들을 특정한 주제아래 모아놓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들이 주로 활동했던 과거 시점의 이야기들에 집중이 되고 만다. 90년대 아이돌 특집의 경우, 그 팀에서 가장 못나가던 멤버라는 특정한 주제를 끄집어 내서 이야기 주제로 삼다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식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숨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이 그들이 한때 '아이돌'이라는 영광 뒤에 초라해진 모습을 오히려 확인 한 것 같아 마음이 쓸쓸했었다.

 

그런데, 24일자 방송은 김정현, 홍경인, 이민우를 데려다 놓고, 그들을 한때 잘 나가던 아역이란 주제 아래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김정현 자신도 기억하기 힘든 데뷔 시절의 '모래 시계' 출연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룬다던가 하는 식으로.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이 세 사람이 물론 한 때 잘 나가던 아역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중견 연기자로서 각자 뚜렷한 캐릭터로써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억 조차 가물가물한 과거 만을 들춰버리니, 그들의 삶조차 과거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스치듯 지나가 버린 '공주의 남자'에서 이민우의 연기는 여전히 존재감이 뚜렷했고, 김수현 작품마다의 김정현의 연기는 여전히 '모래시계'를 기억나지 않게 할 만큼 탁월하다. 차라리, 홍경인에게 구구절절 '전태일'의 분신 장면을 설명케 하기 보다는, 그가 출연했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이 세사람들은 다른 아역들과 달리, 그나마 아역의 연기에서 성인의 연기로 성공적(?)으로 넘어온 사람들인데, 그 과정의 어려움을 들려주는게 유익하지 않았을까?

물론 <라디오 스타>가 유익하다고 보는 방송은 아니고, 예능으로서 사람들이 공감할 지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가장 잘 공감할 그 지점에서 공명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지만, 세상 그 누구도 모를 것같은 출연자를 데려다가도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만한 능력을 가진 <라디오 스타>이기에, 어렸던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그들이 더 궁금했던 시청자는 아역 탈렌트였던 그들을 다루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은 일간 스포츠에서)

 

허긴, 이제는 어엿한 수요일 밤의 안방을 차지했지만, 여전히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제발~'하던 라디오 스타는 여전히 그 시절의 정서를 이어받으며, 한때는 잘 나갔으나, 지금은 사는 게 아슬아슬한 mc들에, 그들과 급이 맞는 출연자들의 만담 퍼레이드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수요일의 메인 요리가 된 <라디오 스타>가 그 시절의 라디오 스타가 아니듯, 네 mc 역시 이젠 그 시절의 다음 시간이 불투명했던 B급 mc들이 아니다. 그러니, 뒷골목 술집에 앉아 누구 하나 뜯어 먹을 듯이 굴던 그 진행 방식에도 이제는 조금은 제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 늘 스스로 자부하는 규현의 '김구라 코스프레'는 종종 위아래도 없는 무례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데, 그걸 <라디오 스타>는 매번 재미라는 듯 cg처리까지 하며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김구라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신정환이니까 넘어 갈 수 있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하니까, '이건 뭐~' 하며 웃자고 넘어 갈 수 있는 말도 규현이 하면 뻔히 출연자의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데 그걸 재미 포인트로 꼭꼭 짚는 <라디오 스타>가 언제부터인가 좀 불편하다. 규현 보다 나이 많은 유세윤 조차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대부분 출연자가 규현보다 나이가 많거나, 심지어 규현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기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그 자리를 꼭 sm아이돌 배려석 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맡겨야 할까? 마치 어른들 술자리에 끼인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아이가 한 명 끼어앉았는데, 점잖은 어른들이 꾹 참아주는 것같은 느낌이랄까? 막말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by meditator 2013. 4. 25. 09:42

사극 사이의 현대극은 고전한다는 공식을 깨고 kbs2의 월화 드라마 <직장의 신>은 14.9%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상승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대 mbc의 월화 드라마 <구가의서> 역시 15.8%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역대 장희빈치고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없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7.5%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온데에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뇌를 적절한 웃음과 함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직장의 신>이나, 최강치의 개인사와 역사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구가의 서>의 빼어난 만듬새에 있겠다. 반면, 아직까지 <장옥정>은 그 무엇을 해도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작년에 만듬새는 허술하다고 욕을 먹었음에도 40%를 넘는 시청률을 보였던 <해를 품은 달>, 그리고 눈에 보이게 그 드라마와 판박이같은 <장옥정> 입장에서는 만듬새를 들먹이는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는 월화 드라마는 어떨까?

 

(사진은 해럴드 경제)

 

폭풍 카리스마 김혜수

중학생 시절 이미 원숙한 분위기로 영화와 사극의 여주인공을 오갔던, 그리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르도록 늘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혜수에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마는, <장옥정>의 논란을 보면, 김혜수 역시 장옥정이 되어, 논란의 자리에 섰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왕의 비빈으로 간택되기엔 지나치게 당당하지 않냐던( 그 안에 왕에 비해 너무 장대하지 않냐는 속내까지) 여론을 뒤로 하고 그때도 김혜수은 장희빈을 궁중의 꽃이 아니라 권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의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었었다.

그런가 하면 높은 시청률을 보이진 않았지만 <즐거운 나의 집>에서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불안정한 모습 또한 자연스러웠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의 신>, 과연 이 드라마의 미스 김이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직장의 신>이 지금처럼 <직장의 신>다울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매회 시청을 할 때마다 든다. 저 멀리 한 벌로 쫙 빼입은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미스 김의 김혜수를 보는 순간, 아마도 시청자들은 우선 그녀의 기에 눌려 움찔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그녀이기에, 하다못해 사무실 잡무, 커피를 타거나, 스템플러를 찍거나 빼거나 해도, 그녀의 그런 일들이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남은 시간을 이용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조차 그녀는 당당하다. 김혜수라는 배우의 아우라에서 빚어지는 당당함은 단지 역할 그 자체에서 머무는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 하지마 늘 대접받지 못했던 잡무나 허드렛일들이 덕분에 자기 존재감을 얻어가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신>의 미스 김, 김혜수는 슬랩스틱에 능하다.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그녀의 체조는 다른 사람이 하면 물을 뿜었을 우스광스런 모습이요, 그녀가 수당을 받고 임했던 홈쇼핑의 체조 동작이나, 마켓에서의 게장 만들기 호객 행위는 그 어느 개그보다도 개그스러웠다. 하지만, 개그맨 자신이 웃는 순간 개그는 망한다는 속설처럼 '빠마머리~'라고 웃기는 대사를 할 때 조차 무척이나 진지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연기의 걱정없이 편안하게 실려 가면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드세거나 웃기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직장의 신>의 묘미는 매회 어찌보면 비슷한 직장인들의 애환, 혹은 인간적 갈들에 슬며시 반응하는 미스 김, 김혜수의 표정이다. 아주 순간 그녀를 스쳐가는 감정들이, 어마어마한 정주리의 수당을 월급턱이란 결과를 낳고, 빠마머리 장규직 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만든다. 물론 아직은 여지없이 '더럽다'며 그 손을 치우라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 로맨스는 더 간질간질하다.

<직장의 신> 비정규직 미스 김이란 캐릭터는 실상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든 무리수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연기로 인해 충분한 공감을 얻기 힘들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우리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배우같은 배우, 김혜수가 그 캐릭터에 김혜수를 입힘으로써, 멋진 미스 김으로 되살아 났다.

 

 

캐릭터와 이물감이 없는 배우 이승기, 배수지

<구가의서>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려면 그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1,2회를 이끌었던 이연희의 연기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연희 하면 2012년 주연으로 등장했던 <유령들>에서 시청자들에게 듣기 평가를 강요했던 배우로 논란이 되었었다. 그런 이연희였는데, 단 1년만에 <구가의서>를 통해 이연희의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다보면 그녀의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발성도 여전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것조차도 1,2회에 보여진 월령과의 비련의 사랑에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아니었었다. 이렇듯, 당대의 발연기라 지적을 받던 연기자 조차,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할 만큼 <구가의서>는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적절한 스토리와 그걸 업그레이드 시킬만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늘 김은숙 작가와 파트너가 되어 하지만 슬쩍 김은숙이란 작가의 이름에 비해 조명을 덜 받던, 하지만 사실은 김은숙 작가의 중반 이후의 뻔한 스토리를 연출력으로 뒷받침해오던 신우철 피디가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으로 올 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구가의서>의 성공까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뻔함을 연출력으로 보완을 넘어 재탄생시킴으로써 어쩌면 이젠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 아니라, 피디 장난이란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구가의서>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이승기와 수지의 연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허허실실 동네 청년같은 이승기는 여전히 이승기처럼 나오고, 건축학 개론에서나 광고에서나 늘 빤히 쳐다보며 상대를 설레게 하던 수지는 여전히 그 수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그들이 연기 아니 그들의 모습과 이물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한 드라마의 전략이다. 이승기나, 수지는, 엄밀하게 연기자라기 보다는 그들이 출연한 1박2일 등의 쇼프로와 광고 등을 통해 이미 굳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아직도 싫증내기보다는 그런 모스을 더 보여줄 것을 갈망하고 있는 조건이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로서 모험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캐릭터 내에서 변주를 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군 입대를 앞둔 이승기의 입장에서는 굳히기 한 판 일 수 있으니.

 

(

(사진은 osen에서)

 

연기는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구미호 외전'을 시작으로 해서, '싸움', '중천' 등 그간 김태희가 선택해온 작품들을 보면 과연 이 배우가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다녔다는 사실을 늘 코에 걸고 다닐만 한가를 의심해 보게 된다. 심지어 '아이리스'조차 이병헌의 연기가 있었으니 그만하게 넘어갔지. 스토리에는 헛점이 많아 보는 사람들이 그냥 접어두고 보게 만든 드라마 였었다. 이렇듯 '마이 프린세스'를 제외하고는 장르에 있어 파격적이거나, <장옥정>처럼 스토리에 있어서 파격적인 것들을 김태희는 선택해 왔다. 그런 파격적인 장르나 해석이 따른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것을 채워 갈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김태희는 역으로 그 파격적인 것이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을 덮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물론 이런 혹평이 김태희 본인에겐 가혹한 것이, 지난 여러 작품을 하면서 김태희 본인의 연기력은 꾸준히 나아져 왔다. 냉정하게, 평행선상에 놓고, <구가의서>의 수지가 낫나? <장옥정>에 김태희가 낫나? 하면 김태희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욕은 김태희가 먹는다. 그것은, <장옥정>은 말 그대로 장옥정, 김태희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만들어 졌던 역대의 장옥정들은 흐드드한 연기력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에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장옥정>을 보면, 김태희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혹은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선택들처럼, 패션 디자이너 라던가,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이라던가와 같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 혹은 <해를 품은 달>을 뽑아 놓은 듯한 그럴 듯한 구도로 그녀의 여전히 원톱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엔 미흡한 연기력이 덮어지리라 믿었던 것이 같아 아쉽다.

아이러니한 것은, <장옥정>에서 김태희의 파트너인 유아인조차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김태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유아인이나 이승기나 그저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유아인의 연기가 장옥정에 해는 끼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형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나, <패션왕>의 영걸이나, 영화 <완득이>의 완득이는, 늘 그 사회 속의 마이너한 소수자들이었다. 그리고 유아인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매우 최적화된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 이제 그런 그가 왕이 되어 나타나니, 그 스스로도 왕이 되고자 연기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 연기 자체를 소화하는 것 조차 버겁다보니, 상대편 김태희의 연기까지는 받쳐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파트너 조차 믿고 갈 수 없는 김태희에겐 불행의 한 수다.

by meditator 2013. 4. 24. 09:59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연발하던 전직 대통령은 다행히도(?) 지세광처럼 감옥으로 가지 않고 주말이면 시민들조차 발길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테니스를 친단다.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입이 닳도록 말했었다. 자기는 그 누구보다 서민의 아들이라고,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나, 이 나라의 서민들 삶을 고스란히 체험해 봤으며 그래서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안다고.

<돈의 화신>의 지세광과 권재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이 바로 피해자라고, 가난했으며, 가난 때문에 아비를 잃거나, 우등상장을 받았다고 아비에게 맞았다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 그 대우를 받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즉, 그들은 피해자였기에 정의롭고, 그 정의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 것이다.

 

임지현 교수의 [우리 안의 파시즘]을 보면, 3000년 전 자기 땅에서 쫓겨나 전세계를 떠돌아 다녔던 유태인들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파시스트로 탄생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 가장 문제인 것은, 오래전 자신이 받은 억압을 내면화시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의 모든, 부당한 행동 조차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지세광, 권재규, 그리고 그들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권력층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뚫고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그들은 우리 시대의 지도층이 되었지만, 새 정부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지듯이 시세 차익을 노린 다운 계약서 정도는 애교가 될 정도의 '복마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스파이'에 버금가는 부적절한 비리로 장관 임용에서 밀려났는데도,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지만 세상이 자기를 알아 주지 않았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것이 그들이다. 마지막 순간에까지 자신보다는 이차돈을 향해 총구를 겨누려고 했던 지세광이나, 자식을 죽이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권재규처럼 자신은 여전히 보상받아야 할가난의 자식이며,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들은 그 모든 것이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갈 길을 막는 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받아야 하고.

그래도 드라마 속 그들은 법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기라도 하지. 우리 시대의 현존 권력층들은 여전히 유유자적 주말 독점 테니스를 치는 그 누구처럼 치부해놓은 재산을 가지고 여유자적하게 살아갈 것이다.

 

 

<돈의 화신>이란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와 달랐던 점은 제목은 돈의 화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이들 권력형 비리를 단죄한 것은 이차돈의 사적 복수가 아니라, 검사가 된 이차돈의 법이었다.

물론 시작은 '사적 복수'였다. 아버지를 죽인, 그리고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들'에 대해 이차돈은 복수를 하려 했다. 하지만, 복수의 과정에서 이차돈은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의 복수가 사적인 앙갚음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형 비리를 단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어가던 어머니의 말처럼, '슈달'에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된 이차돈이 한 일은, 복재인의 돈이나, 또 다른 편먹기가 아니라, 그 자신이 검사가 되어 법의 이름으로 '그들'을 심판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그런 또 한편의 권력형 비리를 다룬 복수극과 <돈의 화신>이 자기 차별성을 갖게 된 지점이다.

아마도 이차돈이 사적 복수로 드라마를 끝맺었다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중만 회장을 죽이고, 그의 돈을 빼앗은 지세광과 다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도, 온갖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가난의 희생자인척, 정의로운척 하는 지세광 일당과 차별성을 가지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차돈은 방향을 틀었다. 은비령에게 당신 자식을 나처럼 만들지 말라며 감호소도 돌아가라고 했고, 그 한 마디가 이차돈에게 겨눌 수 있는 총구를 무력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때 법을 가지고 좌지우지 하면 이차돈과 복재인의 모든 것을 빼앗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놀던 법의 이름으로 심판을 하려고 했다. 마치 뒷공론도 소용없고, 누구 한 사람에게 겨누는 사적인 총구도 소용없으며, 오로지 그들을 발본색원해낼 수 있는 또 다른 법의 심판만이 가장 유효한 '복수'라고 드라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정의로운' 언론과 '진짜 정의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법이 필수라고.

by meditator 2013. 4. 22. 09:44

<1박2일>, <인간의 조건>,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무한도전>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맞다. 바로 남자들만의 예능이다. <<런닝맨>과 새로 시작하는 강호동의 예능 <맨발의 친구들>은 여성 멤버가 있긴 하지만 프로그램 내내 종횡무진 달려야 산다던가, 외국에 나가 무일푼으로 그 나라 사람처럼 생활해야 하는 포맷은 여성을 포함한다지만 기본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남성적이다. <남자의 자격>이 101가지의 미션을 다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장이 되어 사라진 것을 아쉬워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다하지 못한 군대 체험하기, 혼자 생활하기 등의 미션들은 분화되어, 여러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어 각개약진 중이다.

 

1세대 예능; '북치고 장구치고'

종영한 <남자의 자격>도 그렇고, 건재한 <무한도전>도 그렇고, 프로그램의 관건은 어떤 미션이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남자의 자격>이 합창 미션을 통해 멤버들의 수장 이경규가 연예대상을 다시 거머쥘 수 있었던 것처럼, 미션에 따라 프로그램의 부침이 오고간다. 실제 <남자의 자격>이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프로그램의 종영을 앞당긴 것도, '화무십일홍'이라고 유효기간이 지나 '합창' 미션에 연연한 탓이 크다.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다하는 두터운 팬 층을 지니고 있지만, '돈을 갖고 튀어라' 등의 미션에 따라, '무한도전답다' 라던가, '너무 매니악하다'라던가의 평이 엇갈리며 시청률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서 <1박2일>도 장소에 따라 '삶의 현장'급의 체험을 하기도 하고, 맛집 투어가 되기도 하며, 복불복의 살벌한 배틀 현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1세대 예능들은,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램 틀 안에서 무한변주를 해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미션'을 위한 '미션' 그 자체가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조건

 

2세대 예능; 하나만 잘 하자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는 마치 앞선 프로그램들의 한 회차 분의 미션을 옮겨 놓은 것처럼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시작한다. 이미 1세대 예능들이 자리를 잡거나, 그 인기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이랄까.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시작한 예능들은 오히려 그로 이내 색다른 묘미를 자아내며 순항 중이다.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란 부정적 상황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세번째 미션(파일럿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네번 째) 돈 없이 살기를 통해 멤버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직업, 그리고 현대 사회를 이루는 돈이란 것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중이다. 미션은 부정적이되, 그 부정을 통해 늘 얻어가는 건 '삶의 긍정'이랄까.

<나 혼자 산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간보듯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된 남자들이 혼자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대 사회의 부정적 산물인 '혼자 살기'를 그저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모습의 하나로 긍정한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악플을 남긴 데프톤의 스타일처럼 이미 거기에 길들여진 모습도 나쁘지 않다며 보여준다.

이제 막 시작한 <진짜 사나이>는 더더욱 역설적이다. 남자들이 가장 꿈꾸기 싫은 바로 그 군대 다시 미션이라니!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는 <푸른 거탑>의 리얼리티 버전이라는 것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겠다. 하지만, 시트콤과 리얼리티는 또 다른 질감을 자아낼 것이니, 이미 1회의 방영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했다.

이처럼 2세대 남자들의 예능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상황들을 미션으로 시작한다. <진짜 사나이>의 예후는 아직 진단하기 이르지만, <인간의 조건>과 <나 혼자 산다>는 그 부정적 상황을 통해 오히려 '힐링'을 추구한다. 혼자 살지만 나쁘지 않다라던가, 혼자 살아도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어 라는 걸 보여주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인간의 조건>은 더욱 성찰적이다. 당신이 목매어 사는 자동차, 돈, 이런 것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멤버들의 체험을 통해 되묻곤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대안적 삶까지 슬쩍 곁들인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예능들의 주제가 '힐링'이다보니, 이 프로그램들의 미션은 1세대 예능들처럼 강요적이지 않다. 숨가쁘게 시간 안에 달성해야 할, 때로는 서로를 속고 속이며 도달해야 할 목표는 없다. 오히려 이미 나 혼자 사는 삶의 제한성, 혹은 분기 별로 주어지는 ~없이 살기가 밑에 깔리다 보니, 그 안에서 멤버 각자 혹은, 미션 별 다양함은 풍부해진다. 덕분에 데프콘은 빨간 무개차를 타고 달리며 맘껏 제주도의 먹방을 보여줄 수 있고, 돈을 벌기 위한, 김준호, 박성호 vs. 양상국, 허경환의 다른 선택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없이 살기'를 가지고 몇 주나 버틸까 싶지만, 매번 색다른 빛깔로 멤버들의 체험은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질문을 던진다.

 

무지개 명예회원 :: 무지개 아지트에서_1

 

꼭 남자들만의 예능이어야만 할까?

세상은 점점 더 여성이 우위를 차지해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에서 직원의 비율과 승진 기회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예능에서의 남초 현상은 여전히 두드러진다. 물론 <인간의 조건>처럼 한 집에서 머무르는 한계적 상황에서 여성 멤버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파업 기간이라는 변칙적 상황에서 편성된 <무한 걸스>의 처참한 시청률과, <남자의 자격>의 뒤를 이은 성격은 다르지만 여성 예능임을 내건 <맘마미아>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건 갈 길이 먼 여성 예능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남성'들의 예능이 남성을 이해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이젠 '군대가기'까지 주말 황금 시간대로 끌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건 오히려, 예능을 통한 '남성'의 이해라기 보다는 '남성'의 소비에 가깝단 생각이 드니까.

by meditator 2013. 4. 21. 09:34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란 프로그램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고품격 음악 방송'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을 진행자 유희열 자신이 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고품격 음악 방송'이란 접두어는 '라디오 스타'가 가져가 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니 이젠 방송 3사 아니 종편까지 포함해서 (케이블 엠넷에 윤도현의 MUST가 버티고 있긴 하다) 거의 유일한 고품격 음악 방송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그런데 별일 없으면 방영되는(정말 별일 없으면이다. 명절이나 특집만 있으면 언제나 맡아놓고 결방한다), 열 두시에 한다고 좋아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제 아무리 불금이라지만 눈 비비고 기다려서 한 시나 되어서야 방영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어느샌가 '은근'과 '끈기'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4주년을 맞이한 소감은 버텨줘서 고맙다!

 

그렇게 변함없이 4년을 버텨준 <유희열의 스케치북> 4주년의 특집은 릴레이 특집 ‘THE SONG – VOLUME 시리즈이다. 총 3주에 걸쳐 방송되는 이번 특집은 1탄부터 ‘러브레터’ ‘유&아이’ ‘라라라’로 각각 사랑, 이별, 그리고 위로의 노래들을 회당 10곡 씩, 총 30곡을 소개한다.

여기서 제법 음악 프로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비록 유희열이 '절대 없어진 음악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러브레터'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신이던 윤도현이 진행하던 음악 프로그램이었고, '유&아이’ 는 이효리와 정재형이 진행하던 SBS의 음악 프로그램이었고, '라라라'는 윤종신 등 많은 MC들이 거쳐간 진짜 MBC의 고품격 음악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들 세 프로그램은 이젠 모두 방송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은 사라진 프로그램들이다. 그나마 이문세, 노염심, 이소라 등 쟁쟁한 MC들이 진행해왔던 음악 프로그램의 전통을 지닌 KBS2만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명맥을 유지할 뿐, '유&아이'와 '라라라'가 사라짐으로써 MBC와 SBS는 그나마 이런 류의 음악 프로그램 존립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주말이 되면 연이어 드라마를 몇 개씩이나 방영하면서, 연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 가수들을 배출해내면서, 정작 '프로'가 된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소개할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밀려나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신곡을 들고나온 가수들은 좀 연배가 어리다 싶으면 '음악 중심', '뮤직 뱅크' 등에서 어린 아이돌들 틈에 끼어 자신의 노래를 홍보할 기회를 얻거나, 그나마도 아니면, '세바퀴'나 '라디오 스타'를 방문해 개인기에 곁들인 홍보를 해야 하는 처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평균 시청률이 2.7%란다. (물론 한때는 6%를 넘보던 때도 있었다)그런데 그 요즘 인기있다는 아이돌들이 주로 출연하는, 금요일이나 주말의 황금 시간대를 차지한 '뮤직 뱅크', 'SBS인기가요','쇼 음악 중심' 의 평균 시청률이 월등하게 좋은가 하면 그도 아니다. 2%~3% 대의 도토리 키재기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 늦은 밤 눈비기고 찾아보는 열혈 시청층을 감안한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저력은 오히려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때 <나는 가수다> 그리고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지나간 음악을 제 편곡하여 들려주는 시도를 처음 한 것도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요, 이제는 유명 가수가 된 십센치와 아이유와 알리를 좋은 가수라며 소개해 준 것도 바로 이 무대였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 사라진 그 기억을 되살리는 4주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사라진 내 어린 날의 동네를 떠올리듯 애잔하지만, 추억만이 아니라, 당대의 치열한 음악 현장을 담아내는 '노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집으로 한 회당 열 곡의 노래를 채워넣기가 그리 버겁지 않을 만큼. 더구나 아이돌 음악이 정점을 지나고, 힙합, 인디 장르의 다양한 음악이 저변을 넓히고 있는 시점에서 더더구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 가치는 배가가 될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아름다운 추억을 밀어내고 마구 부숴버리듯이, 시청률이라는 편의주의로 그나마 남은 이 추억마저 짓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통영 달동네가 한국의 몽마르트라 불리며 관광 명소가 되듯이, 오랜 전통을 지키며 버텨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1박2일의 정희섭 피디를 맞이하여, 새롭게 그리고 풍부하게 우리 음악의 본령을 전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4. 20. 09:26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16일 기자간담회를 보면, 제작진 측에서도, 혹은 혹자의 지적처럼, 로맨틱 코미디인 이 드라마가 너무 정치 풍자에 힘을 쏟기때문이라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풍자를 화두로 한 드라마는 잘 되기 힘들다는 한계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을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17일 방송분은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이 김수영(신하균 분)과 노민영(이민정 분)의 두 사람에 보다 포커스가 맞춰져 진행이 되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5.6% ,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 중 세태를 풍자한 드라마가 <내 연애의 모든 것>만이 있는 게 아니다. KBS2의 월화 드라마 역시 직장이란 '정글'을 철저한 갑을의 관계로 해부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직장의 신>이 매번 갱신하는 시청률에, 화제성으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에,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보스를 지켜라>의 명콤비에, <브레인>의 신하균까지, 황금비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로서는 회복하기 힘들다는 5%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이 결과만 놓고 보자면 세태 풍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풍자를 했는가가 오히려 관건이 되는게 아닐까?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직장의 신>을 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공감을 한다. 빨간 내복을 입고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를 흉내내는 미스 김을 비롯해서 주인공 격인 배우들이 슬랩스틱에 가까운 연기를 해도, <직장의 신>을 보다보면 짠해지는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내가 직장을 다니던 다니지 않던, <직장의 신>을 통해 벌어지는 일들이 내 이야기로 공감이 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신참 정주리는 언제나 그녀의 선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직장에서 이렇게 착하기만 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직원을 민폐라며 싫어하는데, <직장의 신>을 보다보면 그런 그녀가 이해가 되고 한없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는 그녀가 얼른 좀 더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가 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바로 이 지점, 공감이 없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세태 풍자, 그럴 듯하다. 하지만 풍자가 날선 비난을 넘어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주고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로맨틱 코미디는 남녀 주인공 누군가의 시점이 되어 잠시 사랑에 빠지는 장르일진대, 과연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그걸 해내고 있을까?

똑같은 풍자극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의 신>이 등장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는 반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무엇을 해도 '뭥미?'의 반응을 얻는 건, <직장의 신>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야의 각축전은 익숙하지만 쟤네들 이야기이고, 여당이지만 여당같지 않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김수영이나, 열혈 야당 투사 노민영이 우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정서적 기조는 야당 노민영 의원의 도덕적 우위, 혹은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다. 쌈박질을 해도 국회 내에 진정성을 가진 소수 정당 노민영 의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민영 의원을 보면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 시기를 통해 노민영 의원에서 연상되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던 소수 야당의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너무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기 당과 관련된 문제에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보여줌은 물론,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자중하기는 커녕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서, 텔레비젼 토론에 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대놓고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며 갖은 독설을 퍼부었다. 물론 그런 그 사람을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마 뒤이어진 냉정한 평가는 그 사람의 안하무인 독설이 결과적으로 보수층이 결집을 낳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들만 보는게 아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도덕적 우위 혹은 정당성마저 잃은 사람을 롤모델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다. 과연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질까?

 

차라리, 갓 정치판에 등장한 앳되고 순수한 보좌관이라면 모를까? 말끝마다 도덕을 들먹이며 여당을 통렬하게 논박하는 녹색당의 노민영 의원이 자꾸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치 풍자는 공감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지만, 50%를 겨우 넘는 그 근소한 차이도 무시할 수 없거니와, 여든야든, 그 과정을 통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그 놈이 그놈이니 걔중 좀 미더운 놈을 뽑자'라는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언제나 뽑아놓으면 저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걸 유권자들이 더 잘 안다. 그런 저들 중 누군가가 연애를 한다한들, 누가 그리 관심을 가지겠는가. 풍자를 덜 하건, 연애을 더 논하건, 이것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태생적 한계일 듯하다.

by meditator 2013. 4. 18. 09:39

역시 강호동에겐 야생의 들판에서 뒹구는 것이 어울리는가 보다.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화신>을 누르고 일반인 탁구 동아리를 상대로 한 탁구시합을 다룬 <우리 동네 예체능>이 상승세란다. 그런데, 두번 째 방영된 <우리 동네 예체능>은 0.5% 상승된 시청률과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의 장점과 단점을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뻔해도 너무 뻔한 <화신>을 제치고 동시간대 1위라, 겨우 시청률 6% 대를 가지고 자부하기엔 아직은 너무 초라한 모양새가 아닐까?

 

<우리동네 예체능>은 강호동의 예능이 아니다.

'예체능' 팀의 민호가 첫 경기를 벌이는 도중, 강호동이 그 특유의 설레발을 치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곧 탁구 경기장의 난입으로 심판의 제재를 받았고, 주섬주섬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후 경기 내내, 강호동은 스스로 경기를 치루는 분량 이외에, 덩치가 커서 카메라에 잘 잡히는 것 외에, 중간중간 진행을 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다.

즉, <우리 동네 예체능>은 굳이 강호동이 아니라도 여타의 연예인들을 모아놓아도 프로그램의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연자들이 스스로 말했다시피 동호인들간의 탁구 시합임에도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니 '국가대표급'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에서, 강호동이든, 이수근이든, 그 누구의 예능감이 굳이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과도한 예능감은 프로그램을 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경기 중간, 점수를 냈을 때나, 실점을 했을 때 연예인팀의 반복된, 과도한 리액션도 상대팀에 비해 너무 과하다 보니, 오히려 승부에 너무 집착하는 듯이 보여 좋지는 않았다.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란 것을 잊은 채 다들 승부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실제 경기에서 돋보인 화제가 되었던 조달환이나 혹은 탁구의 도를 가르쳐 줄 정도의 박성호, 아직은 초보티가 역력하지만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든 민호 등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아니다. 이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 것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상도동 탁구팀의 점수가 뒤지는 상황에서도 결코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화이팅 정신과 자세가 프로그램을 빛나게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강호동은 빛날 수도 없었고, 빛나서도 안되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을 강호동의 예능이라고 말하기엔 어불성설이다.

또한 어제는 다행히 초보 최강창민과 그보다 나은 김병만이 연예인팀의 이른 패배로 경기를 치루지 않았지만, 이처럼 예능이라기엔 '국가대표급' 치열함을 드러낸 경기에서, 과연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팀원의 존재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결론을 다시 한번 도출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진은 동아닷컴)

 

중계가 아닌 예능이 되려면?

함께 <우리 동네 예체능>을 시청하는데, 나와 남편의 반응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겨우 똑딱똑딱이나 하는 탁구 초보요, 남편은 드라이브니, 스매쉬니 탁구를 제법 아는 사람인 것이다. 강호동의 경기를 보면서, 1편을 시청한 나는 강호동이 탁구를 처음 배웠다고 프로그램에서 본 대로 곧이 곧대로 믿는데, 탁구를 좀 쳐본 남편은 강호동의 채를 잡는 자세 부터가 처음 배워서는 나올 수 없는 자세라며 탁구 좀 쳐본 사람이라고 우긴다.

이런 식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이란 프로그램의 재미는 마치 유홍준 교수의, '알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면 더 사랑하게 된다'는 그 명언과도 같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박진감도 잠시 경기가 몇 순배가 돌아서면서 탁구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 경기가 그 경기 같은데, 탁구를 제법 아는 사람이 보기엔 경기마다 다른 재미를 주면서, 점점 더 재밌어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동네 예체능>이 가진 한계가 될 수도 있다. 다음 주에도 또 탁구를 한다는데, 과연 탁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보일 수 있을까? 결국 특정 종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 애초에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보여진다.

경기가 끝나고 유일하게, 그것도 82세의 할머니를 이겨버린 이수근을 두고 실버 탁구의 싹을 잘랐다느니, 밉다느니 우스개 소리를 강호동이 하는 중에, 조달환이 할머니는 애초에 탁구채부터 다르고, 경기 운영이 수준급이었단 이야기를 던졌다. 즉, 할머니가 못해서 이수근을 이긴 것이 아니라, 이수근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기에 이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기 중간에 집어 줄 수 있는 내용을, 막상 출연자들이 시합에 임하느라, 혹은 시합으로 인한 긴장감에 짚어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다.

왜 축구 경기에 경기 진행을 알려주는 아나운서와 해설이 있을까? 해설이 없는 축구경기는 어떨까? 예전에 <축구왕 슛돌이>란 프로그램이 주구장창 어린 아이들이 축구경기만 했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경기 이상으로 담아내었던 장외 중계와 해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조차 자기 경기, 혹은 우리팀 경기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 상대팀에 방해가 될 정도의 리액션보다는, <우리동네 예체능>의 재미, 혹은 의미를 찾아줄 수 있는 객관적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3. 4. 17. 09:24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때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나비가 날아들고, 꽃이 피고 이렇게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게 세상인 것 같은데 4월 중순이 되어서도 파카를 뒤집어써야 하는 날씨는 봄이되, 봄을 느낄 수 없게한다. 그런데 날씨만 이상기후가 된 건 아닌 듯하다. 인생의 봄인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의 징후가 이상하다.

장기 불황을 견디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여행, 진급 등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그 무엇을 거부한 채 그저 '별 일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외신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부터 '초식남'이 등장하더니, 이젠 '사랑'조차 부담스러워 외면하는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 싫은 게 아니다. 사랑으로 인해 스펙을 딸 시간조차 빼앗기는, 혹시나 삶의 스케줄이 변경될 지도 모르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연애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아이를 하나 더 낳으라는 시어머니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여자 연예인의 농반진반의 기사처럼, 사랑의 결실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의 결혼 자금을 시작으로, 주택비용, 맞벌이로 인한 스트레스, 육아 부담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연옥의 시작이란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으니 우리 시대의 사랑은 그저 마음가는대로 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직장의 신> 4회 엔딩에 이어 5회를 연 장면, 벚꽃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장규직(오지호 분)이 자신도 모르게 그 내리는 꽃비를 보며 미소를 짓는 미스김에게 입을 맞추고 만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장규직은 그런 자신의 행동을 곱씹으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신경쓰이는 미스김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런 장규직의 행동에 대해 미스김은 단호하게 밀어낸다. 심지어, 파리가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간 거 수준이라면서 무시하려고 까지 한다. 혼자 집으로 돌아온 미스김은 뜻모를 표정으로 숙고하지만 곧 장규직의 명함을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하고 만다.

이런 미스김의 태도는 후배 정주리등이 시시때때로 '선배님~'하며 다가오는 인간 관계 맺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과 일관된 흐름이다. 계약직으로서 이 직장에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업무와 관련된 일 이외에 그 이상의 어떤 관계도 거부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거기엔 신참 계약직 사원 정주리가 동료나 혹은 상사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접근했다가 매번 상처입고 마는 그 계약직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한 숙고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등장하는 미스김의 과거를 통해, 그런 '트라우마' 혹은 '고찰'이 생겨났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스포츠 조선 연예 에서 )

 

드라마 속에서 미스김이 정주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들풀처럼 여리여리한 정주리는 생긴 그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상사의 호의는 늘 상사의 호의 이상, 이성의 설레임을 불러일으키고,동료의 친절은 '우정'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해석하는 세상은 '순수 의지' 그 자체이지만, 막상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해와 이용뿐이다. 그러기엔 늘 마지막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많은 전구 중 하나를 운운하게 되는 건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그녀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단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서가 아니다. 부장조차도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을의 하나인 계약직인 그녀의 존재는 마치 신분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던 근세 이전의 신분제 사회처럼 2013년의 새로운 신분제 사회 속 '을'일 뿐이다. 그런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정주리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늘 미스김을 찌푸리게 만들고, 그런 미스김이기에, 장규직의 호의 혹은 관심을 가차없이 '파리'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의 신>은 웃기다. 하지만 웃다보니 애닮다. 자신이 누군인지 모른 채 '호의'만을 가지고 다가서다 자꾸 밟히는 앳된 계약직 정주리도 안타깝지만, 쓸 자리가 없어서 러시아어 능력은 적어넣지도 못하는 능력 만땅에, 멘탈은 더 갑인 슈퍼 계약직 미스김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장규직의 순수한 호의조차도 '파리'로 몰아버리는, 혼자서 점심을 먹는 것이 가장 편하게 되어버린 당하고 싶지 않아 갑옷을 둘둘 만 그녀도 자꾸 보다보면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게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사람 사이의 정도, 사랑조차도 존재에 따라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는 이 시대의 '을'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3. 4. 16. 09:31

얼마 전 종영한 야왕과 관려된 우스개가 있다. 남편 유노윤호를 죽음으로 내몬 수애의 자동차 폭파 장면을 보면서, 수애를 <아이리스2>로 보내 그 능력을 대아이리스 첩보 활동에 쓰이게 해야 한다던가, 남자 주인공 하류의 복수가 늘 수애의 악행에 한끝 차이로 뒤지자, 하류는 <돈의 화신> 이차돈에게 좀 배우고 와야 한다던가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답답했던 내용을 다른 드라마의 능력자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발현이랄까? 하류보고 한 수 배우라는 대상이 되었듯이, <돈의 화신> 이차돈(강지환 분) 변호사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이래 탁월한 두뇌회전력으로 복수의 상대방 지세광(박상민 분) 일당을 코너에 몰아넣고 은배령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종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돈의 화신>이차돈은 급기야 교도소살이까지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복수는 하류였지만, 신분만으로 보면, 교도소 출신임에도 변호사로 승승장구한 하류가 나은 편 아닐까?

 

사진출처; tv리포트

 

최후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것이다?

다시 <야왕>으로 돌아가서, 종영을 앞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이병훈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50부작 대하사극 <마의>를 앞질러 버렸다. 사람들은 하류의 복수가 시시하다 하면서도 주다해의 '업그레이드'되는 악행을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대부분 시시한 드라마도 막방이 되면은 시청률이 오르기 마련인데, 천민의 신분에서 어의에 오르는 그것도 휴머니즘의 극강을 보인 백광현(조승우 분)의 성공스토리를 악행 하나로 퍼스트레이디에 오르는 주다해의 또 다른 성공 스토리가 눌러버렸다. 이병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진솔한 한 인간의 미담식 성공보다는, 무슨 짓을 하던 성공만 하면 돼! 라는 주다해의 악행이 더 사람들에겐 익숙하고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왜 욕을 하면서 <야왕>을 보느냐고 하면, 사람들은 악녀 주다해가 어떻게 망하는지 봐야 하겠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런데, 망하는 걸 보기에, <야왕> 뿐만이 아니라, <돈의 화신>도 그렇고 대부분의 복수극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대상이 망하는 시기는 극이 끝날 때쯤이요, 그때까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거나 심지어 승화되는 악행의 잔치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야왕>의 하류는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딸과 형을 잃었고, 그로인해 주다해의 두번째 남편까지 목숨을 잃었다. <돈의 화신>도 이차돈이 제법 복수를 하는 것같은데, 들여다 보면 잃는 건 늘 이차돈 뿐이다. 지세광은 서울시장에 나갈 정도로 승승장구하는데, 이차돈은 횡령에 살인범으로 몰리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지만 교도소 행이요, 그가 사랑했던 복재인 일가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마치 복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류나, 이차돈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게 복수다 라고 오히려 두 드라마는 역설적 교훈을 주기라도하는 것처럼.

물론 퍼스트 레이디가 된 주다해가 결국은 몰락하고 말듯이, 지세광도 성공의 정점에 올라갔을 때 처절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함께 드라마도 끝나고. 이른바 복수극의 딜레마, 혹은 클리셰가 바로 이것이다. 내거는 것은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복수를 하기 위한 악행에 드라마가 기대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시청자들이 보아야 하는 것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악행의 롤러코스터이다. 복수는 짧고 악행은 주구장창이랄까.

 

▲ 야왕 스포일러 사진 공개 /베르디미디어 제공

 

그럼에도 복수극이 보고싶은 것은?

<야왕>과 <돈의 화신>을 보면 재밌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악의 축이 되는 세력들은 경제적 부의 축적을 결코 간과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퍼스트레이디라던가, 서울시장같은 정치적 권력을 부여잡는다는 것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에 있어 누가 더 힘이 센가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드라마를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면을 봤을 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층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물론 유독 대한민국에서, 정치 혐오증이 심하고,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건, 드라마 속에서도 형상화 되었듯이, 해방 이래 제대로 된 자정 노력없이 그놈이 그놈임을 실감하게끔 정치 엘리트 층이 형성되었고, 개발 독재 시절에 공공연하게 정경 유착이 이루어졌음을 역사를 통해 충분히 학습된 결과라 하겠다.

그러기에 몇 십년의 세월을 통해 공공히 쌓아올려진 그 권력들의 척결은, 드라마 내내 당하기만 하는 절치부심의 그리고 그것조차도 사실은 환타지인 복수를 통해서만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3일 횡령에 살인의 혐의를 받은 이차돈이 검사 지세광에게, '영혼없는 정의, 정의없는 힘'이라며 일갈하듯, 사적 복수로 시작한 주인공의 행로는, 악이 축에 대한 실체를 자각하며 '공적 복수'로써의 정당성을 얻어가고 강력한 추동엔진의 성능을 장착하게 된다. 복수는 복수이되, 정의가 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주인공의 미운 놈이, 시청자들에게도 미운 놈이 되면서, 복수를 즐기는 정당성을 얻어가고.

복수극은 애잔하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에 가서야 웃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복수이나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정경 유착의 권력형 비리의 끝을 보려고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더 애잔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드라마 속 나쁜 놈은 착한 놈이 만신창이가 되서라도 물고 늘어지면, 결국은 망한다. 그게 어디인가. 아마도 기다리면 언젠가 망하는 그 나쁜 놈을 보려고, 시청자들은 한 송이 국화 꽃을 기다리듯 복수극을 지켜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3. 4. 15. 09:45

지난 선거에서 야당을 찍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남편은 강용석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가 나오기만 해도 채널이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썰전>을 '닥본사'하기 위해서는 채널권을 둘러싼 소심한 투쟁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그런 남편이 <썰전>을 함께 보며 호쾌하게 웃어제낀다. 김구라의 말처럼, 개그콘서트보다 재밌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당의 편에서 보면, <썰전>의 이철희 소장 표현대로, '일베' 사람들이나 좋아할 강용석이지만, 그런 그의 편향된 입장도 종편같은 일방통행이 아닌 나름 균형잡힌 시각을 추구하는 <썰전>에선 꽤 쓸모가 있다. 종종 김구라에 의해 슬슬 먹여지는 이른바 '디스'도 볼 만하고.

 

<썰전>의 변화를 지켜보는 건, 우리나라에서 정치에서의 소통 가능성을 꿈꿔보는 일 같다.

물론 지금은 현직 정치인이 아니지만, 한때는 야당의 저격수 노릇을 하던 정치인이거나, 대통령직 인수 위원회에서 활동을 했을 정도로 정치권에 몸담았던 여야의 인물이 자그마한 삼각 탁자를 앞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처음엔 생경했다. 거기다, 초기만 해도 상대방을 알기 보다는 자신의 노선이 앞섰던 서로 다른 입장의 두 사람은 사사건건 대립의 날을 세웠었다. 그러던 것이 회를 거듭하면서 그 날카롭던 대립의 날이 무뎌져 간다. 심지어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처럼 장관 후보자 청문회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왜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냐고 아웅다웅할 정도로 '이구동성'이다. 여전히 '안철수'만 나오면 강용석의 말은 괜히 곤두서있고, 여당의 모든 사안에 이철희 소장은 냉소적이지만, 막연한 불신과 배제는 한결 줄어들었다.

강준만의 표현대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소통을 내걸면서, 사실은 소통이 아니라 자기 편가르기와 자기 편 만들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두 입장의 정치권 사람들이 도란도란 여러가지 다른 사안에서 조율을 해가며 논의를 만들어가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그들의 무턱댄 견제심을 '거 왜 그래~'하며 두루뭉수리 넘겨준 김구라의 역할이 지대하다.

 

 

 

덕분에 서로 다른 정파적 입장의 두 사람이 막연한 적대감을 넘어서자, <썰전>에 등장한 사안들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 이리저리 재어보는 자기 입장이 아니라, 실제 그 사안, 사건이 차지하는 위치, 혹은 세간의 통념으로는 짚어보지 못할 측면들이 <썰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웃긴 개그같던 윤진숙 해수부 장관 후보자의 입각이, 막연한 무지가 아니라, 해수부의 광범위한 영역과 달리, 특정 분야 전문가라는, 게다가 연구직 출신의 한계 때문에 우려가 된다는 점을 짚어줌으로써, 사안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지점을 만들어 준다.

또한 증폭되고 있는 남북한의 갈등을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실질적 군사력 비교에 얹어, 사실은 그 이면에 남북한, 혹은 미국의 집권 세력 혹은 군부 세력이 얻어가고 있는 이득을 짚어준 면은 그 어느 신문보다도 날카로운 해석이었다.

그에 따라 전문가입네 하면서 사실은 정파적 입장에 따라 상대편 누군가를 까기위한 논리를 전개하기에 급급한 종편 정치프로램과는 스스로 차별성을 갖게 됐다. 저격수로란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여졌던 강용석조차 여전히 편향되긴 하지만 잡다한 상식으로 무마가 되는 시사평론가로써 갱생할 여지를 얻어가고.

 

 

이렇게 <썰전>의 '썰전'이란 코너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반면에, '예능심판자'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이슈가 되는 주제를 다룬다는 화제성과, 다양한 사안을 시청자 의견을 앙케이트화 하여 수치로 내미는 것 외에, 참여자들의 독설이 과연 제대로딘 독설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부호 그대로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회를 거듭할 수록, '썰전'의 두 출연자 이철희 소장과 강용석이 긴장을 풀고 심각한 사안에 조차 허허실실 여유롭게 대처하는 반면, '예능심판자'의 출연자들은 우후죽순 자기 목소리를 내세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두 명의 출연자와 네 명의 출연자라는 비율의 차이와, 시간에 비해 너무 많은 안건을 다루는 본원적 한계가 있겠다. 하지만, 제아무리 예능 비평 프로그램이라지만 그저 편하게 이야기할 사안조차도 높고 경직된 목소리로 '나 전문가입네'라는듯 딱딱하게 전달하는 자세들은 앞선 '썰전'을 모니터링하며 개선해 보길 바란다. 현재 강용석, 이윤석, 허지웅, 박지윤 네 명 출연자의 성향과 포지션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중구난방이 되지 않기위해서는 교통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by meditator 2013. 4. 12.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