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이다. 그 친구와 함께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젊은 시절 이야기만 한 시간 넘게 하다 헤어졌다. '

이럴 때 당신이 그 당사자라면 돌아가는 기분이 어떨까? 여전히 그 젊은 시절의 기억에 빠져 가슴이 뛸까? 아니 그 보다는 지금 나이가 몇 인데 지난 이야기가 하고 있었는가 싶어 십중팔구 입맛이 쓰지 않을까?

흔히 젊음을 봄에 비교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꽃피는 봄은 길지 않다. 그런데도 늘 우리의 기억속 계절의 여왕은 봄이다. 하지만, 사람은 꽃이 아니라, 꽃도 사실은 꽃이 다가 아니듯이, 봄만을 살지 않는다. 비바람 한번 치고 나면 떨어져버리는 꽃처럼, 청춘의 봄날은 그저 잠시 머무를 뿐이다.

 

최근 들어 90년대 아이돌 그룹 특집, 왕년의 학교 스타 특집처럼 <라디오 스타>는 한때 잘 나가던 가수나 배우들을 특정한 주제아래 모아놓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들이 주로 활동했던 과거 시점의 이야기들에 집중이 되고 만다. 90년대 아이돌 특집의 경우, 그 팀에서 가장 못나가던 멤버라는 특정한 주제를 끄집어 내서 이야기 주제로 삼다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식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숨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이 그들이 한때 '아이돌'이라는 영광 뒤에 초라해진 모습을 오히려 확인 한 것 같아 마음이 쓸쓸했었다.

 

그런데, 24일자 방송은 김정현, 홍경인, 이민우를 데려다 놓고, 그들을 한때 잘 나가던 아역이란 주제 아래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김정현 자신도 기억하기 힘든 데뷔 시절의 '모래 시계' 출연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룬다던가 하는 식으로.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이 세 사람이 물론 한 때 잘 나가던 아역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중견 연기자로서 각자 뚜렷한 캐릭터로써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억 조차 가물가물한 과거 만을 들춰버리니, 그들의 삶조차 과거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스치듯 지나가 버린 '공주의 남자'에서 이민우의 연기는 여전히 존재감이 뚜렷했고, 김수현 작품마다의 김정현의 연기는 여전히 '모래시계'를 기억나지 않게 할 만큼 탁월하다. 차라리, 홍경인에게 구구절절 '전태일'의 분신 장면을 설명케 하기 보다는, 그가 출연했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이 세사람들은 다른 아역들과 달리, 그나마 아역의 연기에서 성인의 연기로 성공적(?)으로 넘어온 사람들인데, 그 과정의 어려움을 들려주는게 유익하지 않았을까?

물론 <라디오 스타>가 유익하다고 보는 방송은 아니고, 예능으로서 사람들이 공감할 지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가장 잘 공감할 그 지점에서 공명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지만, 세상 그 누구도 모를 것같은 출연자를 데려다가도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만한 능력을 가진 <라디오 스타>이기에, 어렸던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그들이 더 궁금했던 시청자는 아역 탈렌트였던 그들을 다루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은 일간 스포츠에서)

 

허긴, 이제는 어엿한 수요일 밤의 안방을 차지했지만, 여전히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제발~'하던 라디오 스타는 여전히 그 시절의 정서를 이어받으며, 한때는 잘 나갔으나, 지금은 사는 게 아슬아슬한 mc들에, 그들과 급이 맞는 출연자들의 만담 퍼레이드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수요일의 메인 요리가 된 <라디오 스타>가 그 시절의 라디오 스타가 아니듯, 네 mc 역시 이젠 그 시절의 다음 시간이 불투명했던 B급 mc들이 아니다. 그러니, 뒷골목 술집에 앉아 누구 하나 뜯어 먹을 듯이 굴던 그 진행 방식에도 이제는 조금은 제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 늘 스스로 자부하는 규현의 '김구라 코스프레'는 종종 위아래도 없는 무례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데, 그걸 <라디오 스타>는 매번 재미라는 듯 cg처리까지 하며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김구라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신정환이니까 넘어 갈 수 있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하니까, '이건 뭐~' 하며 웃자고 넘어 갈 수 있는 말도 규현이 하면 뻔히 출연자의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데 그걸 재미 포인트로 꼭꼭 짚는 <라디오 스타>가 언제부터인가 좀 불편하다. 규현 보다 나이 많은 유세윤 조차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대부분 출연자가 규현보다 나이가 많거나, 심지어 규현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기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그 자리를 꼭 sm아이돌 배려석 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맡겨야 할까? 마치 어른들 술자리에 끼인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아이가 한 명 끼어앉았는데, 점잖은 어른들이 꾹 참아주는 것같은 느낌이랄까? 막말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by meditator 2013. 4. 25.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