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술자리 안주 중에서도 최고의 안주가 정치인들 씹는 건데, 막상 드라마를 통해 희화화되는 정치인,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드라마로 쉽게 받아들이기엔 힘든 영역일까? 3회에 접어들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시청률이 눈에 띄게 확 떨어졌다. 2011년에 방영된 같은 작가, 같은 연출자의 <보스를 지켜라> 때는 초반 재벌 회장의 재판을 피하는 꼼수를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때보다 더 신랄하게 정치판을 묘사하는 <내 연애의 모든 것>에 대한 반응은 냉랭하다. 역시 연애사에는 재벌집 도련님이 나와야 제격이란 말일까?

 

2013년의 <내 연애의 모든 것> 그리고 2011년 방영되었던 <보스를 지켜라>는 전혀 다른 스토리의 드라마임에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보스를 지켜라>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품 모두, 손정현 연출에, 권기영 극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벌가에서 정치판으로 판이 바뀌었을 뿐 그 속에서 움직이는 상황과 두 주인공의 캐릭터조차 흡사하다.

 

<보스를 지켜라>가 방영당시 화제를 끌었던 것은 그 얼마전 사회면에서 화제가 되었던 재벌 회장님의 유별난 아들 사랑, 그에 이은 재판 과정에서의 휠체어까지 탄 꼼수를 그대로 드라마로 끌어들여서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 역시 다르지 않다. 단지 사회면에서 정치면으로 영역만 변경되었을 뿐이다. 배경이 된 국회 내의 정치인들은 당리당락을 위해서는 억지 입원에, 대리투표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런가 하면 룸싸롱에 모여 희희덕거리며 애국을 들먹이며 야합한다. 즉, 두 드라마 모두 마치 사회고발 장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행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드라마의 포문을 연다.

 

거기다 주인공 캐릭터 조차 비슷하다. <보스를 지켜라>의 남자 주인공 차지헌(지성 분)은 재벌집 아들이지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지 않을까를 골몰하는 심지어 x맨이기까지 한 날라리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신하균 분) 역시 여당 의원이지만 공개 토론회에 나가서 대놓고 여당의 행태를 비난하고 떼거리 정치엔 결코 참여 따위 하지 않는 호시탐탐 의원직 사퇴를 노리는 아웃사이더이다. 편집증에 공황장애라는 병력을 지닌 차지헌의 독특한 캐릭터나, 김수영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캐릭터는 남이 보면 '또라이'이기엔 큰 차이점이 없다.

 

반면에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이나,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노민영(이민정 분)은 우직하게 정의롭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정의로움은 언제나 면접을 보면 100% 떨어지고 겨우 얻은 직업이란게 비정규직이거나, 국회에 겨우 2석 밖에 없는 진보적인 당의 젊은 의원이기 때문이다.

허위의식에 가득찬 아버지, 혹은 선배들의 세계에 신물나 하지만, 그것을 그저 개인적인 일탈로 밖에 배출할 줄 모르던 남자 주인공(차지헌, 김수영)들은, 여주인공을 만나, 그녀들과 아웅다웅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들의 진정성, 정의로움에 눈떠가게 되는 애정물이자, 성장물인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적 특징이다.

 

 

 

그런데, 배경만 다르다 뿐이지 우리 사회 지도층을 조롱하며 시작되는 드라마, 그 속에서 좌충우돌 싹트는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선 같은데도, 두 작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제 아무리 술자리 안주로 씹어대도 경제는 사적 영역이요, 정치는 공적 영역이라는 마음 속 영역 표시가 강한 탓도 있겠다. 재벌집 아들이 양아치인 것은 허용이 되지만 정치인이 '또라이'인 것은 거부감이 드는.

그도 아니면, 말끝마다 정의를 외치는 노민영 의원의 그 말이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진보라는 이름의 사람들 조차도 더 이상 믿게 되지 못한 정치혐오주의가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에 장애가 되는 것일 지도.

 

아니 무엇보다, 2011년에 비해 더욱 살기 힘들어진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사랑 이야기라고 환타지를 기대하며 들여다 본 드라마에서 거울처럼 현실을 조우하게 된 불편함이 가장 컸던 것은 아닐까. 전형적인 '클리셰'로 굴러가는 <남자가 사랑할 때>가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이 편이 가장 설득적이기는 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사랑보다는 환타지를 원한다고.

하지만, 가장 불가능할 것 같은, 대한민국의 여야 정치인이 야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통을 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것, 이것이 사실은 가장 환타지이다. <보스를 지켜라>를 통해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재벌집 아들의 거듭나기를 다뤘던 것처럼, <내 연애의 모든 것>도 우리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할 소통과 화해를 논할 것이다. 환타지라도 한번 꿈꿔볼 만하지 않을까.

권기영 작가와 , 손정현 연출 화이팅!

by meditator 2013. 4. 11. 09:38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라던 강호동을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가둬놓고 원숭이들의 재롱을 보여주게 하는 것 같던 <달빛 프린스>가 끝나고 절치부심 끝에 <우리 동네 예체능>이 첫 문을 열었다. 조신하게 앉아 책을 읽던 것이 어울리지 않다던 중론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우리 동네 예체능>은 강호동이 가장 잘 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각 지역 사회 체육 동아리가 신청한 종목을 강호동을 포함한 팀이 '배틀'을 하는 방식이다.

 

강호동이 잘 할 수 있는

새롭게 문을 연 <우리동네 예체능>의 포맷은 지금까지 예능에서 시도해 보지 않았던 방식이다. 최근 활성화되어가고 있는 각 지역의 사회 체육 동아리들을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월요일의 <안녕하세요>가 그간 예능에서 다루지 않았던 일반인의 사연으로 월요 예능의 강자로 대두한 것처럼, 화요일에 새롭게 단장한 <우리 동네 예체능>도 연예인 위주가 아닌 일반인들의 취미 생활을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런 신선한 시도 만으로, <우리 동네 예체능>는 박수받을 만하다.

그런데 분명 <우리 동네 예체능>이 전혀 새로운 것임에도 어딘가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1박2일>에서 종종 제작진을 상대로 족구니, 탁구 같은 종목으로 내기를 했던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때 함께 했던 보기와 달리 만능 스포츠 맨 이수근도 함께 하니 더더욱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당연히 씨름왕 출신의 강호동이 보이는 각종 스포츠 분야에 대한 순발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기에, <우리 동네 예체능>은 <달빛 프린스>와 달리 강호동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뿐만 아니라, 왜 '시베리아 야생'이라는 접두사가 강호동에게 붙겠는가. <1박2일>과 <스타킹>을 통해 쌓은 경험을 무시할 수 없듯이 일반인을 상대로 했을 때 강호동의 진행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그 특유의 순발력으로 기대 이상의 많은 재미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 어느 장터에 데려다 놓아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장터 사람들과 어울렸듯이, 어느 사회 체육 동아리를 데려다 놓아도 강호동만의 재미를 뽑아낼 것이라는 건 당연지사이리라.

또한 <1박2일>에서 복불복 게임을 '전설'로 만들어냈듯이 선수 출신의 강호동은 실제 실력보다도 구체적인 '배틀'에서 생존력이 강하다. 강호동만의 배짱과 승부사적인 기질이 항상 별거 아닌 게임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으니, 그것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에서 그의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이란 건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강호동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하지만 <달빛 프린스>보다 높은 첫방 시청률에서 보여지듯이 강호동이라면 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우리 동네 예체능>의 앞길이 무조건 밝아보이지만은 않는다.

뒤돌아 보면 <달빛 프린스>라는 프로그램이 애초부터 나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책을 멀리하는 세태에서 예능적으로 책에 접근해 보겠다는 의도 자체는 순순하게 올바른 것에 속한다 할 것이다. 단지 그 좋은 의도에 걸맞는 형식과 내용을 채워가지 못했기 때문에 슬며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도 마찬가지다. 상도동 탁구 동아리와 탁구 배틀을 벌인다는 강호동 팀은 이겼을 경우의 상으로 '헹가래'를 커다란 붓으로 쓰고, 상대팀을 탐색하며, 박성호, 조달환, 김병만, 민호 등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첫 회를 보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바보 삼형제 같던 '헹가래' 글씨 쓰기나, 새로운 멤버와의 연습 과정에서 많은 웃음을 유발했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의 주가 될 상도동 팀과의 탁구 시합은 다음 주로 미루고, 왜 써야 하는 지도 모를 '헹가래' 글씨 쓰기와, 간간이 잔잔한 웃음은 던져주지만 보다보니 지루해지는 연습 과정으로 첫 회를 다 때워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생긴다.

<1박2일>에서도 제작진과의 복불복 경기는 매번 한 게 아니었다. 간간히 끼워넣은 조미료 같은 것이었다. 그런 조미료 같은 것을 프로그램의 전체로 만들어 냈을 때, 특히나 운동 경기를 내용으로 했을 때 그 중계에서 특정 종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스포츠 중계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리라 보인다.

또한 강호동 팀의 구성원 자체도 우려가 된다. 첫 대결에 앞서 구성된 강호동 팀은 박성호와 조달환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강호동의 소속사 sm의 식구들이다. 김병만은 자기 몫의 웃음을 책임졌지만 김병만 이수근의 조합이 신선한 느낌을 주진 않았으며, 특히나, 한류스타라며 떠받드는 이미 <달빛 프린스>을 통해 예능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게 확인된 게다가 운동 배틀 프로그램임에도 민호 보다도 운동 신경이 없어 보이는 최강창민을 여전히 보조 mc로 데려가는 건 오히려 최강 창민을 민폐로 만들어 욕을 먹게 만드는 결과가 아닐까.

강호동의 소속사 식구들이 그저 분량을 채우는 동안, 탁구를 잘 하는 연예인으로 초빙된 박성호와 조달환은 웃음 보따리를 푸짐하게 풀어 놓았다.

안그래도 다른 연예인과 달리 유독 강호동의 sm행이 주목받는 가운데, 프로그램에서의 자기 소속사 챙기기가 아직 자리 잡지도 못한 <우리 동네 예체능>에 발목을 잡지 않을지 우려가 된다. 야생 호랑이가 동물원의 먹이가 길들여지면 더 이상 동물의 제왕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by meditator 2013. 4. 10. 09:38

한 발 앞서 나간 <직장의 신>에 이어 나란히 시작한 두 편의 월화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사극이다. 그 중 sbs의 사극 <장옥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조선시대 악녀의 전형인 장희빈의 그 장옥정이다. 그런데, 어라? <야왕>이 종영되기 한참전부터 그리고 시시때때로 방영되는 예고편 속의 장옥정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장희빈이 아니다.

 

<장옥정>의 예고편을 보는 내내 혼동을 느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야? 아니면 <해를 품은 달>의 배우만 다른 버전이야? <해를 품은 달>의 화사한 청사 초롱을 아름다운 꽃잎이 대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세자 김수현을 대신한 유아인이 첫 눈에 아름답고 당찬 연우, 아니 장옥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가지고 있고, 덧붙여, 두 사람 사이에는 역시나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정쟁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예고편이니 그러려니 했다. 예고편이야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그런데, 드디어 첫 방송, 어? 여전히 <해를 품은 달> 같은데?

물론 똑같지는 않다. 노비가 될 뻔한, 아버지를 비명횡사 죽음으로 몰고간 양반이 아닌 장옥정의 가족사는 더더욱 치명적이고 그리하여 장옥적이란 캐릭터를 극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다 자란 옥정이는 조선시대에 패션쇼를 열어 돈을 버는 전문직 여성이란다. 하지만, 마치 기본적인 옷에 장신구를 달아 그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저런 치장의 요소들을 걷어치우고 본 장옥정은 <해를 품은 달>의 구도랑 닮아도 너무 닮았다.

장래의 숙종이 될 왕은 등에 업은 권세가가 왕권을 좀먹어 가는 것에 분노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해를 품은 달>의 양명처럼 벗과 같은 왕족 동평군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역시나 사랑을 두고 이해가 엇갈릴 듯하다. 권세가와 이해를 같이 한 모후는 세자와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만 역시나 운명은 세자와 장옥정을 만나게 하고, 첫 눈에 설레이게 된 이 두사람은 알고보니 어릴 적 사연까지 있단다. 인현과의 만남이 엇갈린 것을 안 모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분노는, 그리고 권력을 둘러싼 가문 간의 이해타산은 <해를 품은 달>에서 처럼 장옥정을 비극의 길로 인도 할 것이다. 아마도 추측컨대, 단지 다를 것이 있다면, <해를 품은 달>은 해피엔딩, <장옥정>은 새드 에딩이 분명할 수 밖에 없다는 거 정도?

 

<해를 품은 달>이 어떤 드라마인가, 시청률 40%를 넘봤던 2012년 최고의 히트 상품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 히트 상품의 모작처럼 보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들어고 싶은 마음이 왜 아니 들겠는가.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은 훤과 연우의 권력의 피바람을 거스른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연우가 왕후가 되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 예정되리란 기대가 있기에 그녀의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엔 장옥정, 아니 장희빈으로 알려진 이 여인에 대해 시청자들의 선입관이 너무 강하다. 그간 장옥정을 다뤘던 드라마를 봐왔던 재미는 욕하면서 마지막까지 주다해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다 망할까 하며 <야왕>을 봐왔던 기대와 다르지 않다. 그런 시청자들의 기대를 제 2의연우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장옥정> 제작진 측은 야심차게 장희빈으로 알려진 여인을 재해석하겠단 포부를 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장옥정을 다뤘던 작품들의 불성실을 일갈하면서까지. 그리고 내세운 장옥정은 생뚱맞게도 조선시대의 패션디자이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상징으로 21세기의 트렌디한 직업을 내세운 것이다. 화려한 조선시대 패션쇼를 보노라니 눈호강은 되지만, 얼마전 모 드라마의 웨딩 드레스 논란처럼, 과연 역사의 재해석이라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최정미 작가의 원작을 보면, 장옥정은 권력을 탐한 희대의 요부가 아니라, 지아비인 숙종을 사랑해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낌없이 내놓은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악역은 정략 결혼의 대상자 인현이요, 훗날 장희빈을 대신할 최귀인이다. 장옥정이란 인물을 순애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역시 또 다른 여인들은 권력의 화신이 되어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글쎄, 권력을 탐하다 왕에게 미움을 받고 사약까지 받게 된 장희빈보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은 새로운 장희빈이 새로운 해석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는 해석인지에는 의문이 간다. 오히려, 진정 이쯤이라면, 여전히 왕실의 사랑 놀음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처첩을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몇 번의 정난으로 신하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진정한 권력의 화신 숙종을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또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로 미화시키기엔 숙종 연간은 너무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과연 그 익숙함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에 살다간 장옥정을 설득시켜낼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3. 4. 9. 09:21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미션을 눈 앞에 두고, 늙을 때까지 한 20년은 할 꺼 같다던(이윤석) <남자의 자격>이 97번째 미션만을 마친 채 사라졌다. 총성없는 전쟁터와 같은 일요 예능에서 아저씨들의 예능으로 4년 여의 '흥망성'을 거치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예능에 피격되어 이제 드디어 '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8년을 했던 예능도 자막으로 사라지는 비겁한 세상에서 <남자의 자격>만큼은 출연했던 멤버와 그를 지켜봤던 시청자들에게 마무리 예우를 해줌으로써, <남자의 자격>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소중하게 지켜주었다.

당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길 원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생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한다. 지난 몇 주 <남자의 자격>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는 듯했다.

 

'회자정리'라고 삶의 유한성은 우리로 하여금 시시때때로 뜻하지 않는 이별을 조우하게 만드는데, 그런 흔한 이별임에도 익숙한 무엇과 헤어짐은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분명 언제부터인가,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았음에도 막상 이 프로그램이 <아빠, 어디가?>에 밀려 침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막연한 분노가 느껴졌고, 막상 마무리를 한다니 서글프다. 아마도 한때는 익숙했던 그 무엇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멜랑콜리한 감정이요, 또 한편에서는 최고령 버라이어티를 자부했던 성은 다르지만 동년배의 고군분투가 역사의 한 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쓸쓸함이겠다.

그런 막연한 아쉬움과 쓸쓸함을 뒤로 한 채 <남자의 자격>은 씩씩하게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는 시한부 환자처럼 그동안 이 프로그램과 함께 했던 101명의 사람들을 만나 지난 날을 회상하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며 그간 고마웠다고, 사랑했노라며 외치며 종영의 슬픔을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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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회의 마지막, 김태원은 자신의 편지를 낭독한다. 그는 말한다. <남자의 자격>이 한 편의 아름다운 어른들의 동화였다고.

되돌아 보니, <남자의 자격>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지막 회의 회고에서 밝혔듯이 개그계의 수장이었던 이경규는 그가 오랬동안 몸담았던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방출되어 그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했고, 김태원은 자신의 말처럼 아름다움을 그저 자신의 속에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저게 예능이 될까 싶게, 당시 잘 나가던 왕비호를 제외하고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보이던 오합지졸 아저씨들이었다. 게다가 태도라고는 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그 아저씨들처럼 꼼수에 대충에 늘어지기가 십상이었으니.

 

그런데, 이제는 시청자들이 뻔해졌다고 그래서 시시해졌다고 말하는 4년이 흐를 동안 그 아저씨들은 용케도 뻔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많은 걸 해냈다.

마라톤에, 철인 3종 경기의 극한의 스포츠에서, 몸짱에, 금연의 자기 극복 과정은 물론, 자격증에, 합창단에, 창극까지 무수한 영역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태원은 암이라는게 밝혀져 수술을 받게 되었고, 천하의 이경규는 자신이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고백할 시간을 얻기도 했다. 김봉창으로 불리던 김성민 등 여러 멤버가 오고 갔으며 9개월을 함께 한 주상욱과 김준호가 열정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함을 그 누구보다 아쉬워하며 마지막을 함께 하게 되었다.

 

김태원이 어른들의 동화라고 말한 바로 그 날 <드라마 스페셜>은 정말 '동화처럼'이란 제목의 4부작 드라마를 완결 시켰다. 동화처럼 하지만 알고보면 동화 속 주인공들이 온갖 희로애락의 과정을 거치듯이,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하던 주인공들은 결국 다시 조우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추억되는 <남자의 자격>은 헤어짐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던가,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남자의 자격>은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듯싶다.

by meditator 2013. 4. 8. 09:14

'3월 1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6층에서 '인간의 조건'의 연출 신미진PD와 출연자 6명(김준현 박성호 허경환 양상국 정태호 김준호)은 환경부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환경부가 이날 '인간의 조건' 팀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것은 1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등 방송을 통해 친환경 생활 방식을 전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이렇게 환경부의 감사패까지 받은 것처럼 지금까지 <인간의 조건>이 수행해 왔던 미션들은 휴대폰, 텔레비젼, 컴퓨터, 자동차, 쓰레기 등 그 존재만으로도 환경에 대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공익'과 '힐링'이라는 힘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 없이 살기'라는 부정적 미션은 그 화제성과 파급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인간의 조건>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프로젝트이지만, 또 그만큼 단 1주일만에 미션 완료, 그리고 횟수로는 4회에 한해 방영되는 내용으로 인해 순환은 빠르지만 소재 고갈의 우려가 예측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인간의 조건>은 그간 해왔던 '환경 프로젝트'와 같았던 파일럿을 포함한 3번의 미션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본격적으로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기 위한 '돈없이 살기'란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돈없이 산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김삿갓이 울고 갈 만큼, 마시는 맹물조차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돈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 것같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돈 없이 살라니, 이게 가능한 미션일까?

다른 때와 다르게 아침부터 거하게 삼계탕을 먹인 제작진은 미션이 돈없이 1주일 살기라며여섯 멤버의 지갑을 강탈해 간다. 그리고 단 10분의 시간을 주면서 김준현의 결혼 준비 등 돈없이 사는 1주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란다. 심지어 자신들의 직업, 즉 개그 등을 이용한 돈벌이도 안된다고 못까지 박는다. 개인의 자동차는 이용할 수 있으되, 기름은 남아있는 거에 한해서만 가능하단다. 엄밀하게는 그간 자신이 벌어놓은 돈, 혹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없이, 홀홀단신으로 날품팔이로 돈을 벌어가며 살아가는 1주일이다.

이제는 척 하면 척!이라고 거저 주는 밥을 먹으며 혹시나 돈?이라며 예상했던 멤버들도 막상 정말 돈없이 1주일을 살라고 하자,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한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당장 돈없이 어디를 갈 수 있겠으며, 무엇을 먹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덜컥, 허경환은 당장 다음 날 부산까지 가야한다고 하고. .

 

 

<인간의 조건>의 멤버들이 '~없이 살기'의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은 이제 제법 사이클을 그린다. 처음에 적응기, 그 다음에 가장 낮은 차원의 유치한 미션 모색기, 그리고 과제에 천착해 가며 본격적인 미션 수행기의 순서로.

언제나 미션 과제가 주어지면 ~ 없이 살기란 과제가 적응이 안되 머뭇거리며 멤버들은 그 과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당장 내일 허경환이 부산을 가야 했지만, 김준현 등은 지인이 부쳐 준 간장 게장만 껴안고 '난 이거만 있으면 돈 없어도 돼'라며 여유를 부린다. ~없이 살아가는 삶에 현실성을 쉽게 인지해내지 못한달까? 돈이 없으면 먹을 수도, 다닐 수도 없는데, 걱정은 늘어지지만 그간 자신의 삶의 리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가 하면 당장에 돈이 급한 상황을 가장 원시적으로(?)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던 자판기앞에서 혹은 철봉대 밑에서 동전 찾기처럼 말이다. 이제는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놀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체 놀이터의 흙더미를 뒤진다.

야무지게 물물교환을 노리거나, 유명인의 사인을 받아 한 몫을 잡아보려고 해보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진 않을 뿐더러, 그게 돈이 되기까기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고프다. 돈이 없다는 건 13시간 만에 밥술을 떠넣게 되는 절실한 궁핍의 현실태이니까.

 

돈이 없이 사는 미션은 그 이전의 미션과는 다르게 난제이다.

핸드폰이나, 쓰레기나, 자동차는 '환경'이라는 눈에 보이는 분명한 주제가 보였다. 반면 '돈없이 산다'는 것을 분명한 과제를 제시함에도 그저 돈이 없다는 것 이상, 그저 돈을 벌기 힘들다는 것 이상의, 돈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규명해 내야 하는 철학적 미션이다. 또 막상 개그맨이란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외한 무언가로 돈을 벌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미션을 위한 미션, 그저 개그맨들의 아르바이트 해프닝으로 귀결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함정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미션을 통해 돈 없이도 살아가는 1주일을, 그것을 통해 '돈'의 의미를 천착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간 공익성 환경 프로그램의 틀을 벗고, 본격적인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기 활로를 넓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려운 과제임에도 긍정적 신호가 보이는 것은, 그간의 미션을 통해 여섯 멤버들의 생존 지수가 한결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여섯 멤버들은 허경환의 부산행을 개인의 과제가 아니라, 서로가 힘을 모아 해결해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번 돈을 흔쾌히 넘겨준다. 자동차 없이 살았던 1주일의 경험이 자연스레 자신의 차를 놔두고 함께 차를 이용하는 카풀로 이어지고. 돈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낯설지 않다. 왕발통을 이용하듯 물물교환을 생각해 낸 김준호 특유의 잔머리나, 한없이 다림질을 하며 재생종이를 만들듯 한 시간여를 놀이터에서 헤매며 20원을 찾아내는 양상국의 뚝심도 여전히 프로그램의 잔재미를 준다.

이 여섯 멤버의 시너지 속에서 모색된 '돈없는 생활의 맛'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4. 7. 09:54

'가족주의'가 최우선인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인가 '1인 가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아무리 '가족! 가족!'을 외쳐대도 2010년도 가족 구성 비율이 2인 > 1인 > 4인 > 3인 에서도 보여지듯이 '나홀로 가족'은 증가추세다. 심지어 2035년에 이르면 전체 가족 중 1인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이를 거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산다>는 '힐링'과 더불어 이 시대의 트렌드를 가장 정확하게 읽어 낸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 혼자 산다>란 프로그램을 통해 어울려 가는 여섯 남자의 모습은 1인 가족의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시사적이다.

 

가구 수는 늘지만, 가족 수는 줄어드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지만, 그 현실의 속내는 씁쓸하다. 독거 노인의 증가, 기러기 가족의 상시화, 결혼의 부담스러운 젊은 세대, 종족적 특성으로 보면 분명 '무리'를 지어 살아가야 하건만 사회는 사람들에게 어울려 살아갈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된 가족에서 떨어져 나온 각 개인들은 고독을 넘어 우울증이라는 병을 부산물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의 여섯 남자들은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하고, 누군가와 부대끼는 것이 버겁다 하고 결코 혼자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의 그림자를 거둘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유럽 쪽에서 동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합법화나 자녀 입양 허용 소식은 동성애 자체 조차도 인정하기 힘든 우리 쪽 상황에 비추어 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좀 더 이해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거기에 담긴 뜻은 그저 이성간의 성애나 동성 간의 성애를 인정한다는 '사회적 포용'의 문제를 넘어, 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생활 양식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한혜정 교수에 따르면 동성애 결혼의 합법화는 함께 살던 동성 배우자가 죽었을 때 그 상대가 그의 유산을 받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부터, 배우자로써 연금, 보험의 혜택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종의 공적 부조의 성격을 띤다고 한다. 입양 역시 소외받은 생명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찌기 1인 가족의 존재가 현실화 되고, 그 문제가 사회적으로 고민이 된 서구에서는 그 자구책으로 동성 결혼에 대한 인정 등으로 해체되어 가는 공동체의 고민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1인 가구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든 노인들이 한 집에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가정 양로원 등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 이성재, 데프콘과 광선검 결투 이미지-1

 

번개 모임을 통한 여섯 남자의 어울림, 그리고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성재가 데프콘을, 김태원이 김광규를, 노홍철이 서인국을 방문하며 조금 더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1인 가족을 넘어 '또 하나의 가족'을 지향하는 첫걸음이다. 가족이 뭐 꼭 함께 살아야만 가족인가? 서로 곁에서 돌봐주고, 지켜주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새로운 연대의 시작은 만만치 않다. <인간의 조건>에서 여섯 개그맨들의 합숙은 한시적이고, 이미 <개그 콘서트>라는 공동체를 통해 익숙해진 인간 관계의 연장으로 쉽게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형성해 나가지만, 매우 이질적인 조합인 <나 혼자 산다> 여섯 남자의 어우러짐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다.

너무 깨끗한 노홍철은 서인국의 집에 머무는 것 자체가 후각과 시각의 학대처럼 느낀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담스러워하는 김광규는 사사건건 요구가 많은 김태원이 부담스럽다. 외양과 다른 홈보이 테프콘은 안하무인 이성재가 눈치 없어 보이고. 그러기에 또 <인간의 조건>의 '힐링'적 가족 만들기와는 다른 현실태로서의 '또 다른 가족 만들기'는 새로운 재미를 낳는다.

 

어쩌면 이제는 '개인적 삶'이 너무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보다 적나라한 모습은 <나 혼자 산다>에서, 누군가와 함께 오래 있는 것이 불편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벗어나기 힘든 그 모습들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 '현실적' 인간들이 조금씩 자기 틀을 허물고 함께 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나 혼자 산다>의 역설적 재미이다.

by meditator 2013. 4. 6. 09:27

우리나라의 모든 드라마들은 의학 드라마면 병원에서 연애하기, 법률 드라마면 법원에서 연애하기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자, 거기에 하나의 기록이 더 덧붙이게 됐다. 국회에서 연애하기. sbs의 수목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서로 다른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 두 사람의 연애사를 드라마의 주제로 삼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같은 당도 아니고, 그것도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정치적 색깔이 다른 상대당의 국회의원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니! 이게 말이 될까?

 

이에 대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첫 방영된 같은 날 <썰전>에서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강용석 의원은 입장이 적대적인 두 당의 국회의원이 연애를 하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강용석 의원은 국회의원 외유(홍준표 의원이 말하기를 국회의원 활동의 꽃이라고 했단다, 외유를)를 들어, 실제 그 나라에 가서 하는 일이란게, 그 나라 사람을 만나면 외교, 그게 아니라 그 나라 실정을 보고자 한다면 외유인데, 대부분의 외유는 선심성 여행일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남아돌아 충분히 남녀 사이에 로맨스가 싹틀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고 구체적 예를 들어서 까지 설명하고 있다.

굳이 예를 들어서 그렇지, 결국 저분들 '영감님(드라마 속 국회의원은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꼬박꼬박 영감님이다)의 실생활이 생각만큼 그렇게 사상과 직업에 투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회의 중 느긋하게 인터넷을 감상하다 걸린 심재철 의원의 마인드만 봐도 ) 전쟁 속에서도 적을 사랑할 수 있는 게 남녀 사이인데, 하물며 직업적으로 적대적인 상대방이랑 연애하는게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코스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이른바 싸우다 정들기?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을 언제나 처음엔 서로 다른 입장 혹은 오해로 인하여 미워하다 결국 정이 들어 버린다.

서로 미워하는 상대라, 그러고 보면 그런 설정에 대한민국 국회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겠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증오 상업주의; 정치적 소통의 문화 정치학]에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관통해온 정치 문화가 바로 '증오'라고 일갈한다. 그가 말하는 증오란,

'비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분, 영향력, 이익의 실현이나 확대를 위해 증오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 정치적 의식과 행태를 말'하는 것으로 1987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은 엄밀하게 비상적 정치 상황은 없었음에도 여당이나 야당 모두 국민들의 증오를 이용해 자기 당의 이익을 실현하려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리고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국회의원이라는 걸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전투구의 국회를 현장감있게 그려낸다.

드라마 속 국회에서는 현실처럼 언론법 통과를 두고 여야가 대치한다. 그 와중에 여당의 '똘끼'넘치는 신참 국회의원 김수영은 토론회에서 여도 야도 아닌 기존의 모든 정치권과 그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독설로 화제가 되고, 여당은 그를 이용해 언론법을 날치기 통과를 해버린다. 그에 대해 가장 전투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의회에 의석이 2석 밖에 없는 군소 야당의 노민영 의원이고,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그만 실수로 소화기로 김수영 의원의 머리통을 가격함으로써 두 사람의 극적인 조우가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 야당의 국회의원 노민영은 한때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 폭력이 없는 정치를 구현하겠다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국회밥 1년 반에 남은 것 '증오'밖에 없는 열혈 투사가 되었다.

화가 감정, 곧 함축적으로 순수한 감정인 반면, 증오가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공격적 충동이 구조화한 복잡한 감정(고든 올포트)이라는 정의처럼, 노민영은 과열되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불의의 여당을 향해 폭주하다 김수영과 부딪치게 된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국회, 그리고 두 주인공들은 뉴스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베껴 놓기라도 한 듯이 똑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던 말 그대로 그걸 옮겨놓으니 그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과장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물의를 일으켜 이제는 케이블과 종편을 오가며 입담으로 먹고사는 명문대 출신의 국회의원 강용석을 보는 듯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김수영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쌈닭이 되어버린 노민영 또한 머릿 속에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누군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실감 지수는 100% 아니 200%에 가깝다.

하지만 실감이 곧 공감으로 흐르지는 않느다.

비록 술 자리의 안주로도 마구 씹혀지고 희화화되는 것이 무색하지 않는 현실의 국회이지만,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감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듯 권위 앞에서는 약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한껏 비틀어진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연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 희화화를 조장하기라도 하듯이, 연극이나 영화에서 봐야 어울리는 듯한 김수영 역의 신하균의 조금은 과장된 듯한 연기와, 국회의원이니 그렇다고 보지만,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노민영 역의 이민정의 연기가, 조금 넘치거나 조금 모자라다보니, 어디까지 두 사람의 연애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도 국회에서 연애하기라니! 그것만으로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신선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by meditator 2013. 4. 5. 09:09

언제부터인가 보기힘든 연예인들의 TV출연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보를 위한 각종 활동이 연예인들의 출연조건에 포함되기도 하고, 홍보를 제대로 해주지 않은 것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피투게더> 등 홍보를 위한 게스트 출연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들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청률처럼 뻔한 홍보가 꼭 출연자의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제에 맞춰 신선한 출연진을 구성하는 <라디오 스타>는 그간 홍보 위주의 출연진이 등장한 적이 있어도 그들이 출연진 전원을 구성한 적이 별로 없고, 출연을 했더라도 최근 대중들이 노골적인 홍보에 대해 눈쌀 지푸려 하는 걸 반응하듯 오히려 홍보를 하러 나왔다고 놀림을 당하거나, 김보성 편에서 처럼 홍보 멘트 한 마디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물론 그래서 더 주목되는 역설적 효과도 있기는 하다). 그런 라디오 스타에 모처럼 뮤지컬팀 <그날들>의 출연진 네 명(유준상, 이정열, 오종혁, 지창욱) 이 단체로 출연했다.

 

라디오 스타 - 지창욱, 오종혁, 유준상, 이정열_2

 

어라, 그런데, 초반 이 네 명의 분위기가 묘하다.

프로그램 말미의 소감에서 지창욱이 토로하듯 '끌려 나온' 분위기가 역력한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긍정이 넘쳐 흐르는, 그래서 한번 만나면 '파이팅'을 대여섯번은 예사로 하게 만드는 배우 유준상의 그 넘치는 긍정성만큼이나 노골적인 출연할 뮤지컬에 대한 홍보와는 달리, 이정열 등 나머지 세 사람은 '나는 왜? 여기에?' 하는 분위기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준상은 솔선수범 경호원으로 나오는 자신의 배역상 무술 시범을 CG를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해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매트도 없는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심지어 이제 배운지 3일된 오종혁에게 '낙법' 시범을 시킨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한 뮤지컬 배우이지만 텔레비젼에서는 낯선 이정열을 암수술을 하고 나온 최초의 출연자라며 굳이 애써 이슈를 만들어 주느라 애쓴다. '그날'을 기억하는 노래도 유준상, 이정열은 모두 속보이게 김광석의 노래다. 다른 때 같으면 노골적 홍보를 제지할 <라디오 스타> 측도 유준상의 적극적 에너지에 눌린 듯 작품 소개부터 하고 들어가게 해주고, 중간중간 깨알같은 <그날들> 홍보에의 유도도 웃음으로 넘겨준다.

어찌보면 눈쌀을 찌푸렸을 수도 있는 <그날들> 팀의 홍보성 출연은 이제는 국민 남편으로 그의 어떤 행동도 미워보이지 않는 유준상이란 배우의 이미지가 맞물리면서 너그럽게 보여졌다. 또 늘 <라디오 스타>가 해왔듯 조롱하며 웃기다 어느 순간 슬그머니 울려버리는 특유의 북치고 장구치는 그 스타일로 '홍보' 그 이상의 그저 <그날들> 출연진이 아니라 이정렬, 오종혁 이란 사람을 알아가게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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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공연에 들어가는 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 <그날들>은 화제작 <김종욱 찾기>의 연출자 장유정의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아 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네 사람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노골적인 홍보를 했던 바로 그날 신문 지상에는 '뮤지컬 수난시대'란 제목 아래 <그날들>에 대한 기사가 등장했다.

건물주 인 애니웍스가 시공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에 공사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시공사가 건물 유치권을 행사해 연습은 물론 공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공연장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 막바지 연습에 큰 차질을 빚었으며 법원이 공연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공연 준비는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출입이 통제된 극장에서 버티며 연습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기사가 난 날 공교롭게도 <그날들>의 출연진은 <라디오 스타>에 출연을 했고, 그 자리에서 뻘쭘함을 무릎쓰고 홍보를 위해 위험도 무릎쓰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보니 그저 홍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디 그들의 노력과 긍정적 에너지가 상처받지 않게 <그날들>의 공연이 순조롭게, 성황리에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4. 4. 09:15

지난 주에 예고한대로 <힐링캠프> 두 번째 설경구 편은 그가 그간 입다물고 있었던 이혼과 재혼에 대한 토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런 불륜이 아니라고 항변하던 설경구는 송윤아의 손글씨 편지에 오열을 멈추지 않았고 최고의 아이돌 JYJ를 공부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처의 딸에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그 결과 사실을 몰랐거나 오해했던 많은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내는데 꽤 많은 일조를 한 듯하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들 부부에게 찍힌 분홍 글씨가 거둬져 보이기는 커녕, 분노를 고착화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한 듯하다.

 

<직장의 신>첫 방영을 앞두고 주연 김혜수의 '석사 논문 표절' 시비가 일었다. 그러자, 김혜수는 제작발표회에서 아무런 변명없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석사 학위를 반납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자, 들끓던 비난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듯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석사 학위 논문 표절'이라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대상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적적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서 혼을 내고 있을 때 혼을 내는 입장에서 화를 북독으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인 아이가 잘못했단 말은 전혀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할 때이다. 그저 잘못했단 말 한 마디면 되는데 구구절절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 내려 할 때 오히려 상대방은 더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방이 애초에 오해를 해서 야단을 치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설명을 들어보니 오해를 한 것이 분명한데도 야단을 치는 당사자는 자신의 화를 쉽게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야단을 치는 당사자가 옹졸하거나 편협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뇌가 그리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극히 자신이 이성적이며 판단력이 뛰어난 동물인 줄 알지만, 실은 대부분 인간의 판단은 그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고정 관념이나, 선입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금까지 뇌과학의 연구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힐링 캠프>가 택하고 있는 방식은 논란이 있는 당사자가 나서서 스스로 변명을 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위험한 방식이 그간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은 김혜수의 솔직한 사과처럼 당사자들의 '진정성'이었다. 하지만 요즘 떠들썩한 이슈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시후 편에 이어, 김래원, 이병헌, 그리고 이제 설경구 편까지 이어지면서, 슬슬 <힐링 캠프>가 내 건 '진정성'에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연자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읍소를 하거나, 진솔한 목소리로 진실이라 항변하지만 시청자들은 마치 늑대를 보았다고 거짓말을 한 소년의 이야기처럼 <힐링 캠프>를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설경구 편에 대한 상반된 반응처럼. 그리고 이건 <힐링 캠프>의 존재 자체의 위기다.

 

 

 

개인적으로 설경구가 구구절절 불륜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 설왕설래되는 온갖 구설들을 들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걸 다 믿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가정 폭력조차 남의 가정사라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묘한 관습적 전통이 있는 나라로 버선 목도 아니니 뒤집어 보지 않는 한에서 남의 부부 일은 그 속을 모른다는게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 아닐까?

그런데도 설경구 부부에게 오래도록 주홍 글씨 같은 낙인이 찍혀진 것은 '사실'이 아니라 '도덕적 불쾌함'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함께 고생해 왔던 사람을 버리고 아름다운 젊은 사람을 선택했다는데 대한, 마치 김태희가 비와 교제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비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국민 나쁜 놈'이 돼버리는 것같은 정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해명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세한 변명보다는 이제는 지나간 일, 자신 때문에 이쪽 사람도, 저쪽 사람도 피해를 입었다는 읍소만으로도 충분했었다. 자신도 송윤아도 연기가 하고 싶으니, 이제 제발 맘을 풀어달라고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설경구는 구구절절 상세한 내용까지 들면서 해명하려 들었다.

거기서 더 문제인 것은 MC 그 중에서 김제동이 태도였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설경구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는 그의 언급 하나하는, 듣는 사람에 따라, 오해가 풀리는 게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조심스레 편을 들어주었을 한혜진조차 그저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저 이경규의 아무 말없는 눈물 한 방울이 나았다.

 

 

그간 타 프로에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출연진을 모셔가며 어느 덧 최고의 토크쇼로 자리매김한 <힐링 캠프>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화려한 출연진에 걸맞는 '힐링'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대중과의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뷰어의 구구절절 필요 이상의 해명,인터뷰이의 중심을 잃은 편들기, 제작진의 출연진에 따라 노골적으로 차이가 나는 과도한 리액션, 프로가 끝나고도 여전한 설경구에 대한 논란처럼, 과연 이것이 모두가 힐링이 되는 길인지, <힐링 캠프> 설경구 편이 분명한 문제를 남겼다.

by meditator 2013. 4. 2. 09:46

'자동차로 갈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 이 말을 자동차없이 살기 1주일에 대한 소회를 김준호가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휴대폰, 쓰레기, 그리고 이제 자동차까지 세 번째 미션을 완료하게 되면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걸 서슴치 않게 될 만큼 친밀해지고 인간적(?)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면모가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의 성격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 없이 살기 미션의 마지막회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인간의 조건>은 지금 당장 현장에서 투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 어느 교육 프로그램보다 훌륭한 환경에 대한 교재로 쓰일만한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이다. '환경'교육에 삶을 돌아보는 '철학'까지 덧붙이니, 이만한 '양수겹장' 교재가 어디있을까?

 

아침 식탁에서 우연히 영화 <일 포스티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 왈, '일 포스티노는 얼마 전 본 <파이 이야기>같아, 뭔가 분명하게 이거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란다. 물론 거기에 엄마란 사람은 '그런 게 좋은 영화야' 라며 호들갑을 떨면서 맞장구를 쳤다.

과연 '~ 없이 살기'란 계몽성 주제를 가진 버라이어티가 제 목소리를 내면서 재미를 찾아갈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을 <인간의 조건> 파일럿 때부터 가졌었는데, 이제 세 번째 미션을 마친 <인간의 조건>은 제법 그 과제에 대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건 바로 좋은 영화가 우리 삶에 많은 의문부호를 던져주듯이, <인간의 조건>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단정적으로 '이거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익숙해진 '문명의 생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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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수소이든, 전기이든 거의 1주일만에 차를 탄 멤버들은 그 편리함에 저절로 '참 좋다'란 소리를 연발한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니 오죽하겠는가? <인간의 조건>제작진들은 그런 상황을 그저 바라본다. 김준호가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약삭빠르게 왕발통을 이용해서 오르막길을 손쉽게 드나들어도, 박성호의 제지 해프닝 말고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제작진이 나서서 개입하지 않아도, 제작진이 기후제를 지낸게 아니냐는 멤버들의 씁쓸한 우스개처럼, 기상 상황이 비가 눈으로 바뀌자 그토록 편리하던 차들은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변하고 만다. 그저 두 발이면 춥기는 해도 홀가분해졌을 퇴근 길인데, 차를 이용한 멤버들은 눈길에 미끄러질까 노심초사, 억덕길을 올라가기 위해 미는 건 당연지사, 심지어 주차를 위해 눈 치우기 봉사까지, 편하다고 좋아한 게 무색할 정도로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 물론 차 때문에 늦게 끝나는 허경환을 데리고 올 수 있는 편리함은 있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차들이나 기상상황으로 인해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차의 이중적 면모를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보여준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김준호가 스스로 자신이 왕발통을 이용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하게 만들듯이.

 

<인간의 조건>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거창하게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환경 오염' 문제의 절박함을 우선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생활에서 우리가 그 문제를 실천하려고 했을 때 불법 주차된 자전거 도로나, 대체 에너지를 이용하고 싶어도 막상 찾기 힘든 것처럼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실천이지만 막상 우리가 문명의 이기들에서 벗어났을 때 자동차를 탔을 때는 지옥이지만, 걸으면서 바라본 동네의 설경은 아름다운 풍경화인 것처럼 조금은 불편하지만 다른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김준호가 마지막 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비로소 자신이 코가 얼어가면서 집착했던 왕발통으로 인해 잃은 것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깨달아 가듯이.

 

이처럼 <인간의 조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문명'과 '인간'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섣부르게 앞서 예단하지 않는다. '편리함'과 '여유' 사이의 고민을 그저 안겨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보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영화처럼.

by meditator 2013. 3. 31.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