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

아마도 이 속담만큼 <땡큐>의 고민을 잘 보여준 표현도 없을 것같다.

2013년 3월 혜민 스님과 박찬호, 그리고 차인표가 여행을 떠나 길동무가 되어 하룻밤을 보내며 속내를 풀어놓기 시작한 <땡큐>는 어느덧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만화가 이현세, 사진작가 김중만, 발레리나 강수진 등 사회저명인사에서 김지수, 하지원, 장서희 등 오락프로그램에서는 만나기 힘든 연예인에, mbc방송국을 그만두고 첫 방송을 시작하는 오상진 아나운서에, 야구를 그만두고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박찬호,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지드래곤까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까지, 겨우 12회 남짓 기간 동안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속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인 건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에 나온 누구라도 그간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함께 한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사 하나를 심어놓은 건 따논 당상이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게스트를 모셔놓고 그에 관해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무르팍 도사>나 <힐링 캠프>같은 프로그램들도 게스트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한 회에 사회 각 분야에 나름 인지도 있는 인사를 모셔야 하는 <땡큐>는 10회를 넘어선 즈음 이미 다녀갈 사람은 꽤 다녀간 느낌을 준다. (그만큼 텔레비젼 오락 프로에 나와서 허심탄회하게 속을 내보일 저명인사가 희박하단 의미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매회 '아버지' 등 주제를 가지고 접근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10 여회 내내 <땡큐>의 이야기들은 '동어반복'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처음 말했던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라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습 계획서에 맞추어 또박또박 공부하는 범생이처럼 꼭 '힐링'을 하고야 말테야 하는 의욕이 앞선 듯이 보일 때도 있었달까.

 

 

처음 <땡큐>를 시작할 때만 해도 꼭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곤 하였다.

처음 만나서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그리고 다음 날 다함께 그곳의 풍광을 즐기고. 그런데 그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하다보니, 늘 한 팀의 게스트로 만들어낸 분량이 애매했었다. 2회는 너무 늘어지고, 1회 반? 이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흐름이 끊어지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땡큐>의 여행은 여행지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긴~'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덕분에 한 팀의 게스트로 한 회라는 쌈박한 분량이 정해지고. 하지만, 여행이란 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1박2일을 보내면서 친해지고 나누는 이야기랑, 그저 하루를 함께 지내는 거랑 깊이가 다르듯이, <땡큐>가 전해주는 이야기의 깊이도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서로 즐겁게 지내면 그게 '힐링'이지 '힐링'이 뭐 별건가? 싶게.

 

12회 <땡큐>는 '기혼자들'이라는 주제로 배우 염정아, mc 지석진, 쉐프 강레오가 차인표와 함께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초창기의 <땡큐> 였다면 차인표가 춘천으로 가는 길에 게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거나, 게스트끼리의 만남을 이뤄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팀의 게스트에 할애된 분량이 적어지면서 프로그램은 대뜸 춘천 닭갈비의 먹방으로 왁자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소리 큰 사람이, 말많은 사람이 초반의 기세를 잡아갈 수 밖에 없었고, 지석진, 염정아 중심의 프로그램은 내내 마지막 까지 그 흐름을 이어갔다. 심지어 가끔은 지석진이 mc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만큼.

짧은 여행의 <땡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답게 '먹방'과 함께 '즐길거리'에 치중한다. 그래서 '기혼자들' 팀은 함께 닭갈비를 먹고, 검술 대련을 하고, 장을 보고, 각자 먹거리를 만들고 먹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혼자들인 만큼 대부분이 부부들이 사는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오늘 하루 검색어에 오를 만큼 지석진의 이상한 부부 생활이 줄곧 문제가 되었다. 결혼 8년차 염정아와 이제 막 신혼인 강레오, 그리고 십여년이 넘어도 한결 같은 차인표는 본인은 '노멀'하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부부 중심의 생활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 자리에선 전혀 '노멀'하지 않은 지석진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고, 결국 그의 부부의 '사랑해'를 나누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했다.

 

 

가수 김창완이 예전에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부에 대해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김창완네 부부는 서로의 동선을 알아서, 가급적이면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피해다니며 생활한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부부가 함께 지내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부딪쳐서 소리가 나기 보다는 지혜롭게 서로의 영역을 지켜줄 필요도 있다고.

아마도 <땡큐>의 그 자리에서 김창완이 나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다들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김창완이 옳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예전의 <땡큐>같으면,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지 하고 바라볼 여유를, 짧아진 여행만큼 <땡큐>가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하는 말인 것이다. 어거지로 '사랑해'를 입에 담는다고 더 사랑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꼭 지석진 부부가 잘못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조급한 여행은 그럴 듯한 엔딩을 향해 '사랑해' 한 마디를 재촉하는 듯 했다.

 

또 예전 같으면 그리도 강레오가 궁금했다는 염정아가 강레오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궁금하다던 강레오의 말은 몇 마디 듣지도 않고 주구장창 지석진과 부부 관계를 둔 수다만이 넘쳐났던 <땡큐>는 어쩐지 동네 아줌마들이랑 잔뜩 먹고, 수다를 떨고 돌아온 뒤, 어쩐지 허탈한 그 심정같달까. 말은 넘쳐나고,음식은 충만했으나, 염정아네 오글거리는 '이번트'말고는 기억에 남는 것도 내 마음에 두고픈 것은 없는 허탈한 힐링이다. 아니 오히려 남들은 저렇게 사이좋게 사는데 그러며서 부부싸움나기 십상일 트러블 메이컬일 수도.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 다른 채널에서 여섯 남자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즐기며 먹어대는 분위기를 <땡큐>의 느린 호흡으론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희희락락한 여행을 모색해 보았을 수도 있다.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서 조금은 지루했던 <땡큐>가 두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듯 가벼워졌는데, 웃고 즐기는 그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어쩐지 허전한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by meditator 2013. 5. 25. 10:08

공교롭게도 라고 해야 할까? 약속이나 한듯이 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까?

하여튼 mbc와 sbs의 저녁 일일 드라마가 5월 20일 동시에 시작되었다. mbc는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칩거에 들어갔던 임성한 작가가 모처럼 작품을 재개한 것으로 소위 '임성한 월드'라고 칭해지는 특유의 '막장식' 색채가 두드러진다. 반면, sbs는 <가문의 영광>의 정지우 작가와 신윤섭 피디가 다시 합을 맞춰 만든 작품으로 화면에서부터 따스함이 넘쳐흐르고,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감동적인 가족애를 지향하고 있다. 빗대어 말하자면 <오로라 공주>가 극사실주의라면, <못난이주의보>는 낭만주의랄까? 그리고 시청자들은 지금까지는 <오로라 공주>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청률과, <못난이주의보>가 아직 성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로라 공주, 자신의 이혼을 위해 아버지를 협박하는 아들  사진; 뉴스엔)

 

막장을 보는 이유는?; 오로라 공주

재미있는 사실이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오로라 공주>를 검색했을 때 드라마 소개에 피디가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 <오로라 공주> 홈페이지를 클릭하고, 제작진 소개에 들어가서야 피디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흔히 어떤 작품이 들어간다고 하면, 작가가 누구냐? 피디가 누구냐?가 셋트처럼 따라 붙게 마련인데,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게 없다. 오로지 임성한이란 이름으로 필요 충분조건이 다 갖춰지는 듯한 작품, 그게 바로 '임성한 월드'다.

흔히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따라붙는 수사는 '막장의 대가' 혹은 '욕하면서 보는' 등이다. 그런데 다들 '어이없는'데 재밌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라 공주>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빚어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설정을 임성한 작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르르 늘어 놓는다. 마치<사랑과 전쟁> 특별판처럼.

계모임이나 동네 찜질방에서 들었을 법한 누구누구네 막가는 이야기들을 가장 번듯한 지위와 부의 계층을 배경으로 포진시켜 놓는다. 그뿐 만이 아니다.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면서나 할 수 있는 대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마치 '가족'이라서 참고 넘겼던 그 모든 것들을 임성한의 드라마에선 화끈하게 건드려 준다. 속씨원~하게.

그런데 또 웃긴 게, 그렇게 건드려 놓고서는 결론은 '우리 엄마 스타일'이다. 속물이라고 욕했던, 하지만 '본데있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던 우리네 엄마 잔소리가 고스란히 드라마에서 재현되니, 참 익숙하다. 짜증을 내면서도 적응이 되는 묘한 중독성. 언제나 그렇듯, 주구장창 '무쇠솥' 찬양을 하고 있어도, 제일 어린 게 손위 시누이들 데리고 남자는 짐승과 사람의 중간 단계라느니, 그저 잘 먹여주고 잘 해줘야 한다느니, 이런 따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있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임성한의 드라마는 불편하면서도 편하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된다 욕하면서도, 엄마 잔소리 듣다가 나도 나이 들어보니 엄마 같은 속물이 되어가듯, 그런 편안함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기자 사칭에, 이혼을 위한 아버지 협박에, 법에만 안 결린다 뿐이지 사건사고가 LTE급이다. 인간에 대한 환상도 없고, 환타지도 없는 거 같은데, 거기서 또 홀리고 낚이고 사랑을 한단다. 굳이 요즘 검색어 순위를 장악하는 모 여가수네 가족을 들 것도 없이 딱 요지경 속 대한민국 가족, 고대로다.

 

 

(못난이주의보   사진; tv리포트)

 

따뜻하지만 진부한 걸; 못난이주의보

<못난이주의보>의 연관 검색어에는 <피아노>란 드라마가 뜬다.

<피아노>는 2001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못난이 주의보>처럼 사회적으로 못난 아버지와 잘난 엄마가 재혼을 하며 빚어지게 된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더구나, <피아노>에서도 못난 아버지의 아들은 의붓동생을 위해 그의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쓰는데, <못난이주의보>의 형 준수(임주환 분) 역시 동생을 위해 그럴 예정이란다. 이처럼, 간호사인 엄마(신애라 분)가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한때 사기꾼이었던 아버지(안내상)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안고, 그의 아들을 품어주는 이야기는,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신선하지 않다.게다가 재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과정 역시 어디선가 보던 그대로이다. 아버지는 생활고에 못이겨 다시 그 예전 사기꾼으로 돌아가려다 오히려 가족을 궁지에 몰아넣고 착한 엄마는 어린 동생을 낳고 역시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이 스토리는 <피아노> 보다 더 오래 전 6,70년대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스토리이다.

못난이주의보는 화면을 가득차 내리는 벚꽃비처럼 아련하다. 사기꾼인 남편만큼, 새로 생긴 아들을 품어주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사랑에,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해 무한 애정을 베풀려고하는 어린 준수, 마치 골목에 튀어나온 과속 방지턱에 걸리듯이 드라마를 보다 울컥울컥 눈물이 솟는다. 악다구니같은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순애보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가슴은 먹먹하지만 한편에선 모락모락 현실과의 괴리감 역시 어쩔 수 없다.

분면 <못난이주의보>가 착한 드라마인 것도 안다. 동생을 위해 시험지를 숨긴 형의 마음을 감싸안아주는 엄마의 미소처럼 감동도 있다.그런데, 그 감동을 엮어내는 틀이, 아직 초반이지만 너무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다. 그 따스한 메시지 만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기엔, 저쪽 방송국의 스토리가 너무 기상천외하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에 손이 간다.

by meditator 2013. 5. 24. 09:58

요즘 sbs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에서 월화수목금토일, 아침, 저녁, 밤 10시대 미니 시리즈까지 단 한 편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이 없으니까. 새로운 해석이라며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고 야심차게 시도했던 장옥정은 본래의 악녀 장옥정으로 리턴하는 강수를 뒀지만 집나간 청률이는 좀 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옥탑방왕세자>, <더 킹 투 하트>, <적도의 남자>가 격돌한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결국 <옥탑방 왕세자>를 승리로 이끌었던 신윤섭 피디가 정지우 작가를 만나 따스한 가족애를 내걸며 일일 드라마로 돌아왔지만 막장의 대가 임성한 작가와 맞물리면서 진가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리한 설정에, 퓨전이라고 용서하기에도 무리한 역사 해석, 그리고 연기 논란까지 잇달아 문제가 되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고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들이 꼭 문제가 있어서 시청률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mbc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스토리는 개그콘서트의 패러디 대상이 될만큼 '막장'의 본류라는 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드라마가 항상 주말 1위를 차지하였던 kbs주말 드라마를 제끼고 1위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털 먼지가 있든 없든 애꿎은 상대편 드라마들만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청률은 하늘의 계시'라, 지금 단지 sbs드라마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단지 시청률이 낮다고 폄하되는 몇몇 작품들에서 유독 안쓰러운 배우들이 있다. 유준상과 신하균이다.

 

 

 

 

유준상과 신하균은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두 사람 모두 작년에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브레인>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두 사람 모두 sbs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에 출연하는 중이고,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5~6%의 치욕적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시청률만 낮은 게 아니다. 한때는 그가 표현해낸 캐릭터가 하도 사랑스러워 '국민 남편'이었고, 얼마나 연기를 잘했으면 '하균신'이란 별칭을 얻었던 이 두 사람이 단지 몇 개월만에 다른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 혹은 과도한 설정의 불명예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전작의 그림자 따위는 단호하게 지워버리고 전혀 다른 캐릭터로 돌아온 두 사람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부적응이 클 것이다.

<출생의 비밀>에서 유준상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잘 배운 미국 교포 출신의 엘리트 의사는 싹 지워버리고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말끝마다 '이 잡녀르~~"를 달고 사는 단순무식한 애기 아빠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 차갑기가 동짓날 저리가지만 그 속에서 연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던 브레인의 이강훈 쌤은 가운데 가리마의 대뜸 첫회 부터 비호감의 말들만 골라하는 싸가지 여당 국회 의원으로 등장해 그의 호청자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연극과 영화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두 사람은 이전 캐릭터의 영광에 기대는 것 혹은 이미지메이킹 따위는 개나 주어버리고, 새로운 드라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불성설 연기력 논란에 비호감 딱지 뿐이다. 연기를 잘 했을 뿐인데 새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앉게 된 처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제 아무리 전작 드라마가 40%가 넘는다 해도 전작의 후광 따위는 없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시간에도 수십번씩 채널을 돌리는게 여사된 세상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이 제 아무리 전작에서 좋았다 하더라도 비호감 캐릭터로 돌아온 두 배우들이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배우는 톡톡히 배워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게 낮은 시청률로 폄하할 만큼 형편없는 드라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김규완 작가가 모처럼 집필한 <출생의 비밀>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상투적 '출비' 스토리가 아니라, 김규완 작가가 언제나 그래왔듯 가족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인 것이다.

또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미 탄탄한 원작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품으로, < 보스를 지켜라>의 권기영 작가와 손정현 피디가 시청자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작품의 질에 있어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담 초반에 지나치게 과한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빼앗긴 배우들의 패착에 모든 것을 돌려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지긋이 비호감 캐릭터가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이 시대 시청자들에게, 개콘 패러디가 딱 맞듯이 극적이지 않으면 참고 보아지지 않는 막장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기호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드라마를 지켜내고,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낮은 시청률이더라도 좋은 드라마는 좋게 평가받을수 있는 여유있는 환경을 덧없이 바래보기도 하고.

by meditator 2013. 5. 23. 10:02

<직장의 신>이 종영되었다.

마지막회는 소위 말하는 막판 반전없이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미스 김은 3개월의 시한이 끝나자 과감히 와이장을 떠나고, 떠나는 그녀를 모든 직원은 아쉬워하고, 물러터져서 사회 생활 어찌할까 싶은 무정한 대리는 주변 사람들을 품은 그 성격 덕에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여전히 창고 관리직으로 남은 장규직에게 미스 김은 다시 돌아가는 걸로 여운을 남기는 것까지. 굳이 이변이라면 그렇게도 와이장의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정주리가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한 것?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도 간절했기에 오히려 떠나려는 복선이 아닐까 의심을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였었다.

 

474,510

(직장의 신 종영 메시지)

 

반전도 없고, 장규직을 미스 김이 구하는 해프닝 외에는 딱히 극적인 결말도 없었음에도 <직장의 신> 마지막은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장규직의 어머니가 미스 김이 그토록 못잊었던 계약직 선배였다는 설정은 지극히 도식적이었지만, 그 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미스 김에게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번복할순 없지만, 얼마나마 갚았다는 마을을 들게 한 창고 화재씬은 어설펐지만 따스했다. 더구나, 장규직의 그 마지막 한마디, '당신 잘못이 아니야'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전구 운운'하는 정주리의 나레이션은 반갑기 까지 했다. 정주리는 말한다. 그저 '수많은 전구 중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한다'고. 그리고 미스 김은 정주리에게 말했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팀장이 된 무정한 대리는 예의 그 모습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우리 사회 내의 뿌리깊은 사회적 갑을 관계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온 <직장의 신> 결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체계가 달라졌다는 말은 없고,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전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그저 장규직의 희생으로 정주리의, 마케팅 지원부의, 무정한의 기획안의 성공을 거둔 것,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미스 김이 장규직의 '너의 죄를 사하노라'와 같은 그 한 마디로 인해,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오랜 상처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구조와 조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막막한 세상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이지만 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살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는 환타지랄까.

 

(학교 2013 마지막 촬영 현장)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부터 방영된 <학교 2013>의 주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회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종례의 여운은 내내 <학교 2013>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방식 역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여전히 입시 전쟁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튕겨져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부대끼기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었다.

<직장의 신>의 현실성이 희화화되어 통쾌함을 주었던 것과 달리, 너무도 그 아픔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보기가 저어된다 할 정도로 '모사'에 다가갔던 학교의 모습은 또 학교 시리즈의 답습이냐던 힐문을 닫게 만들었었다.

비록 <직장의 신>이나 <학교 2013>에 비하면 불발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광고 천재 이태백>이 지향하는 '착한 드라마' 역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세계 광고계에서 인정을 받고, 센세이셔널한 공익 광고로 주목을 받은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을 밑그림으로 하고 진행된 드라마가 지향한 것도 우리 사회 루저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두 드라마와 달리 <광고 천재 이태백>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문제의식은 건강하되, <직장의 신>과 <학교 2013>이 정확히 천착했던 우리 사회 현실에 제대로 가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 천재 이태백 마지막 촬영 현장)

 

혹자는 이제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처럼 다면화되고 쌍방향이 되어가는 문화 시대에 과거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장년층이 쥐고 있는 리모컨의 향배에 좌우되는 시청률에 목매는 공중파의 프로그램들은, 장옥적이 악녀 본색을 드러내자 올라가는 시청률처럼, 시청률 상승을 위한 막장식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시선끌기에만 몰두하다보니, 건강한 시청층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경향 속에서, <학교 2013>에서 <직장의 신>의 계보로 이어지는 월화 드라마의 건강한 현실주의는 신선하다. 더구나, 젊은 층 사이의 회자되는 이들 드라마의 이슈성은 시청률로만 다할 수 없는 방송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막장식 궁중비사나, 환타지가 아닌, 텔레비젼을 보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전통이 내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막장이나 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개인적 자족이든 환타지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흘러간 매체가 아닌 동시대를 숨쉬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매체로 텔레비젼이 생명 연장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후속작으로 5년간 절치부심의 칼을 갈았다는 김지우, 박찬홍의 <상어>가 시작된다. 과연 이 드라마도 짧은 시기나마 이어져온 kbs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이어갈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5. 22. 09:57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을 '공인(公人)'이라 지칭한다.

국가로부터 어떤 공적인 임무를 띤 임명장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사람들은

하지만 공인이라 부르면서, 그 어떤 공적 자리에 있는 사람보다도 냉혹한 잣대로 평가하며,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사적으로 소비한다.

사람들이 두어서넛만 모이면 처음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자식 이야기를 하다가, 집, 재테크, 돈 버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 지면 그때부터 요즘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해서 '누가 어떻드라'라며 연예인들의 카더라 통신으로 넘어가기가 십삽이다. 그리고 그 카더라 통신은 청와대 대변인 만큼이나 확신에 차고 공식적인 듯 전달된다.

 

20일 밤 sbs <힐링캠프>의 장윤정과 tvn의 <택시>의 유정현은 공교롭게도 그 카더라 통신으로 인해 오랜 마음 고생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렇다. 장윤정이 말하듯 언제부터인가 장윤정을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일까, 그녀와 관련된 온갖 루머들이 세상에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힐링 캠프>를 통해 밝히기를 세상의 제 멋대로의 해석에 장윤정은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닫아 걸었었다고 한다.

유정현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통해 모 여배우와 관련된 자신의 루머를 선거를 바로 몇 일 앞두고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내는 물론, 장모님까지 밖으로 다니지 못하실 정도의 마음 고생을 겪었다는 것이다.

 

(사진; 스포츠 동아)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유정현은 그 루머를 신고했고, 경찰은 수사해서,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이게 왜 놀라운 사실이냐고? 이 자리를 빌어 사과컨대, 그 당시 하도 당연하게 인터넷 기사로까지 도배되었던 그 루머의 결과를 몰랐던 나 역시 그러려니 했었다는 것이다. <택시>에서 유정현이 안타깝게 밝혔듯이, 카더라로 돌 때는 모든 언론이 꿍짝이 되어 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더니, 정작, 그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한 두 매체를 빼놓고는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그러니 나처럼 여전히 유정현은 그런 놈(?) 이려니 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장윤정의 해명 과정은 더 극적이다. <힐링 캠프> 출연과 관련하여 장윤정의 최근 가족사가 언론에 기사로 뿌려지기 시작했었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더니, 빛이 있대!'

덕분에 수전노처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퍼지던 온갖 소문은 하루 아침에 장윤정을 가족을 위해 밸도 다 꺼내주는 속없이 착한 딸로 버전이 바뀌었다.

빛만 남고 다른 가족들과 헤어진 상태의 장윤정은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 여겼는데 오히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아 좋은 점도 있다고. 그간 오죽이나 사람들로 세치 혀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으면 저렇게라도 위로를 할까.

 

물론 여전히 의심이 많은(?) 사람들,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고 마음을 돌린 우리를 보고 순진하다 하는 누군가는, 저런 결과를 놓고 또 다른 해석을 들이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마음가는 대로 저 사람들을 이렇게도 평가했다. 저렇게도 평가했다 그런다. 그리고 그 풍문의 말들이 굴러굴러 누군가의 국회의원직을 빼앗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꽁꽁 닫아 걸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족쇄는 검찰 수사를 거쳐도 잘 풀려지지 않고, 쫄딱 망해야 그때서야 아 그랬어? 하고 다르게 생각해 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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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경제)

 

연예인이 공인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한없이 만만하게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가족이 해체되고, 동네가 사라지면서 부터일지도 모르겠다. 풍문으로 떠돌던 옆집 누구네 이야기, 건너 마을 누구네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없게 되면서, 가족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대신에 저마다 텔레비젼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면서, 어느 틈에 텔레비젼 속의 그들은 정겹게 우리 가족과 이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텔레비젼 악역을 거리에서 만나면 한 대 후려치는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것처럼 소비하는 '현대판 고독'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고독의 해소 때문에 그들을 '날라온 돌에 맞은 개구리'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힐링 캠프>의 교훈은 '나쁜 년(?)'었던 장윤정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만만하게 누군가를 세치 혀의 잣대로 목조르지 말자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제 버릇은 쉬이 개 주지 못하니, 찜질방, 식당, 커피숍 구석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나쁜 년놈으로 또 씹어지고 있는 중이리라.

by meditator 2013. 5. 21. 09:23

<더 바이러스>의 후속 드라마는 예상 외로 청소년 드라마 <몬스타>이다.

음악 드라마임을 내걸은 첫 회 예고편, 유재하의 <지난 날>이 흘러나온다. 90년대의 음악들과 90년대 청춘들의 성장사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한편의 아름다운 후일담을 완성했던 <응답하라 1997>이 연상되면서, 음악의 힘을 빌어 또 한편의 청춘의 감성을 전해줄 드라마가 탄생될까? 기대를 해보게 된다.

 

하지만, 뮤직드라마 <몬스타>는 빈번하게 음악이 흐르고, 주인공들이 공연을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마지막 장면 눈물의 듀엣,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외에는 음악이 들어오진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은 입술에서 시작되었다'는 노골적으로 로맨스를 상징하는 소제목처럼 드라마는 십대 청소년 일부가 인터넷에서 즐겨 찾아보는 로맨스 소설의 품새에 더 가까웠다. 2004년 개봉된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 예고편, 여주인공의 우산 안으로 스윽 들어와 싱긋 미소를 짓던 미소년 강동원처럼, <몬스타>의 주인공 윤설찬(용준형분)은 1회 엔딩, 다짜고짜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여주인공 민세이(하연수 분)에게 '내 짝 해라'는 뜬금없는 대사를 날리고 드라마는 다음 회를 기약한다. <직장의 신>의 장규직의 '내 정규직 해라'라는 대사는 오글거려도 십 여회를 통해 다져온 밑밥이라도 있지. <몬스타>는 예고편 내내 교실로 다짜고짜 들어가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입술을 들이대는 윤설찬의 키스씬으로 낚더니, 이번에는 뜬금없는 '내 짝 해라' 라니!

 

 

그런데 1회를 통해 <몬스타>가 보여준 윤설찬과 윤세이, 그리고 거기에 얽혀드는 정선우(강하늘)의 러브 스토리 서사는 인터넷 소설을 좀 찾아보거나, '팬픽' 좀 봤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환타지들이다.

잘 나가는 남자가 보잘 것 없는 여자에게 성큼 다가오는 환타지는 할리퀸 로맨스의 전형 '프리티 우먼'에서 일본판 로맨스의 절정 '꽃보다 남자'에서 익히 써먹어 왔던 스토리들이다.

단지 이번엔 음악을 매개로 하기 위해 아이돌 스타 윤설찬이 자신이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라디오'라 칭해지며 대놓고 왕따를 당하는 박규동(강의식)과 그 누구도 규동의 눈물어린 노래에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려가며 노래를 해준 전학생 윤세이가 있다. 아마도 이들은 윤설찬과 함께 음악을 통해 조우하고, 성장하고,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 편엔 우등생 정선우가 속해있는 오케스트라 동아리 '올포원'이 있다. 어라, 이런 음악적 대립 구도는 <드림하이>에서 이미 한번 경험해 봤는데?

이렇게 <몬스타>의 구도는 어디선가 봤던 거 같은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답습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십대들의 로맨스 환타지를 건드리며 이 드라마에 대한 접근성을 쉽게 만드는 <몬스타>의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정적 트라우마까지,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뻔한 클리셰가 되어 단점으로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

1회 낯선 배우들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신선한 첫 만남을 이루어 가는데도 어쩐지 70여 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몬스타>의 1회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진 측면이 강하단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청소년 드라마라 하더라도 <응답하라 1997>처럼 첫 주연임에도 연기력의 논란없이 윤재같았고, 시원이 같았던 서인국과 정은지의 연기를 경험했던 시청자들이, <학교 2013>을 통해 이종석과 김우빈의 외모적 훈훈함을 경험했던 시청자들이 과연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몬스타>에 열광해 줄런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1회 뻔한 클리셰의 남발 속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 죽음을 고민하던 왕따 박규동이 반 아이들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눈물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토해내듯 부르다, 윤세이가 함께 한 순간, 치유의 미소를 지을 때, 그리고 이 둘이 함께 남은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부를 때 그저그런 청소년 환타지 로맨스같았던 <몬스타>는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또 다른 지점에 도달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발군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하지만 그 이후 그의 연출을 슈퍼스타k 에피소드 드라마에서나 만나게 돼 안타까웠던 김원석 피디가 그의 저력을 제대로 펼쳐 줄 지 기대를 해본다.

<별순검> 시리즈를 통해 매니아들의 환호를 받다, <아랑사또전>으로 그 명예를 잃고 만 정윤정 작가의 절치부심도 또한 기대가 되기도 한다.

십대의 환타지 로맨스 드라마를 만든다면, 십대들은 고정 시청자층으로 먹고 들어갈 것이란 안일함을 넘어, '상처받은 10대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치유하겠다는' 제작의도를 잘 살려줄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5. 18. 09:53

8회에 이른 <천명>은 시청률 조사 기관과 지역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동시간대 1위이거나, 1위를 놓친 성적을 보인다. 하지만 수치상으로만 보면, 아직 10%를 밑도는 시청률은 1위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천명>이란 드라마가 품은 욕심에 비하면 보잘 것없다 하겠다. 더구나, 기사로는 연일 여자 주인공 송지효의 배신이 부각되지만, 실제 드라마를 보면, 홍다인의 이중첩자 역할이 극중에서 그다지 부각되거나 극의 흐름 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으니, 기사에 낚여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에이, 시시해~' 하기가 십상일 언론플레이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쯤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운명에 빠진 세자(임슬옹)에 대해서라든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의술을 펼치는 최원(이동욱)에 대해 왈가왈부가 좀 나와줘야 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의도적인 기획사의 기사이거나, jyj의 준수가 부른 ost말고는 화제성이 없으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다.

 

 

첩첩산중의 사건들, 어찌 풀어낼꼬

드라마 <천명>에서 가장 두드러진 스토리는 내의원 민도생의 살해와 그 용의자로 도망자의 신분이 된 최원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 뒤에는 대비인 문정왕후와, 그의 소생이 아닌 오랜 기간 세자 신분으로 아픈 중종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고 있는 이호의 대립이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직접적 욕망이 두드러지지만, 그 이면에는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옹립하는 대윤과 문정왕후의 아들을 옹립하고자 하는 소윤의 외척간의 갈등, 나아가 을사사화의 원인이 되는 권신내부의 권력 독점에 대한 쟁투가 깔려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문정왕후를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악녀처럼 묘사하면서, 자신의 핏줄로 대를 이으려는 전형적인 왕가의 세습을 둘러싼 갈등으로 하나의 축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에 반해,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조광조 이래 끊임없이 정권에 도전하다 희생된 아직은 재야 세력에 불과한 사람 세력의 일원이라는 개혁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으로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렇게 내의원 살해 사건의 실질적 배경은 권력 혹은 왕좌를 쟁취하기 위한 쟁탈전이다. 거기에 최원은 엄한 희생양이 된 것이고, 희생양에 걸맞게 아픈 딸이 있다는 비극적 요소가 강화된 사연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러기에 <천명>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궁중 내부의 권력 쟁투와, 최원의 도망, 혹은 의술, 그리고 사연이 평형이 된 시소처럼 팽팽하게 진행되어야만 드라마의 제목처럼 <천명>의 주제가 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명>은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요리 경험이 없는 요리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준비한 것처럼, 저렇게 복잡한 구도에다가, 임꺽정이 몸담고 있는 흑석골 도적패의 이야기를 덧붓이고, 궁녀 홍다인의 개인사에, 최원과 홍다인, 그리고 흑석골의 소백의 삼각관계 까지 얹었다. 어디 그뿐인가 양념처럼 이정환의 무대뽀 캐릭터에 최원 동생과의 로맨스까지. 아니다. <허준> 뺨치게 극적인 최원의 의술 깜짝 쇼도 종종 빼먹지 않고 등장한다. 정치에, 궁중 암투, 의학, 로맨스, 추격까지, 사극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천명>에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부페에 가서 이것저것 잔뜩 집어 먹었는데 헛배가 부르고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70여분 동안 한 바퀴 휭~ 돌면서 많은 일이 일어났음에도 보고 나면 뭘 봤는지 모르겠다. 기사에선 송지효가 이중첩자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지도 모르겠고, 세자는 손을 부들거리며 고뇌하는데, 그 고뇌가 다가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최원은 번번히 사건의 중심에 서는데, 뭐 어찌 또 도망가겠지 싶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만 <뿌리깊은 나무> 와 <천명>

여기서 뜬금없지만 <뿌리깊은 나무>란 드라마를 거들떠보자.

이 드라마에서도 <천명>처럼 권력을 둘러싸 심오한 담론도 있고, 권력 내부의 암투도, 거기에 배경이 되는 재야 세력의 도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격씬도 만만치 않았고, 러브 스토리도 빠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가 <천명>과 전혀 다르게 시청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것은 <추노>를 통해 연기력 하나는 인정받은 장혁 보차도 연기를 못해보이게 할 만큼, '우라질!' 욕설 한 마디로 압도해 버린 세종 역할의 한석규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적할 만해 보이는 정기준 역의 윤제문이 있었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가 말하고자 했던 담론은 상당한 사상적 지식을 요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 배우들의 연기는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기본적 주제를 충실히 전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천명>의 한계는 안타깝게도 욕심껏 내지른 스토리를 끌고나갈 힘있는 배우들이 없다는데 있다. <천명>이란 드라마을 시청하다보면,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 김유빈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눈밑까지 시커멏고, 얼굴을 누르끼기한 아이가 잘 보이겠다고 이정환(송종호)의 신발을 닦아주는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런데 어쩌랴, 유빈이가 주인공이 아니니.

<천명>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각된 주인공은 최원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드라마를 뒷받치고 갈 사람은 세자 이호이다. 이호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고 드러나는 의술로써 드라마를 이끌어 가지만, 세자는 자신의 신념과 왕권 사이에서 고통받는 젊은 개혁가의 모습을 그려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임슬옹의 연기는 노력은 가상하나 수준인 것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세자의 클로즈 업을 자제해 주셨으면, '나 연기해요'라는 임슬옹의 연기를 보느라 손발이 남아나질 않으니까)

주인공 최원도, 세자 이호도, 모두 연기를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킬 내공은 없다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적어도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특히나, 세자의 경우, 조금 더 내공있는 배우가 문정왕후 와의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면 아마도 <천명>이 조금 더 재밌지 않을까 라며 자꾸 드라마를 보면서 욕심을 내게 만든다.

그나저나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산더미에, 배우들 연기는 그럭저럭이니, <천명>이야 말로 1등을 해도 등두릴 여유는 없어 보인다.

by meditator 2013. 5. 17. 10:26

올가을 은퇴 공연을 앞둔 패티김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대 공중파와 케이블의 두 방송에 출연했다. 바로 kbs2의 <이야기쇼 두드림(이하 두드림)>과 m.net의 <음악 이야기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이하 숲)>이다. 더구나 <숲>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 mc가 되어 아트스트를 초대해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이야기쇼로 15일이 첫 방송이었다. 하지만 <두드림>도 mc진이 조영남, 김구라, 조우종, 조주희로 mc진이 개편되었지만, 수요일 11시대로 시간을 옮겨 방송된 건 처음이니, 나름 개편된 첫 방송이나 다름없다. 은퇴를 앞둔 거장 패티김을 모신 두 방송은 어땠을까?

 

 

 

 

<두드림>; 김구라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아침 방송 분위기 어쩔거야!

제 아무리 부인을 해도 <두드림>에겐 원죄가 있다. 바로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왔던 전통의 프로그램 <추적 60분>을 주말로 밀어내고, 꿰어 찬 그 자리에서 그 이상의 성과를 내어야 하는. kbs2는 개편을 통해 <추적 60분>의 자리를 변경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와야 할 프로그램으로 처음 오르내렸던 것은, 일요일 밤의 <드라마 스페셜>이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두드림>이 수요일 밤을 차지하고 들어 앉았다. 물론, sbs의 <짝>과, mbc의 <라디오 스타>가 시청률의 수위를 다투고, 상대적으로 보도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이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결과, 수요일 밤 시청자들은 kbs2를 틀거나, mbc를 틀어도 똑같이 연예인 누군가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신변잡기식 토크 프로그램을 봐야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주말 밤 11시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vs. <추적 60분>이란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 확보를 위한 맞불작전이라지만, 볼모가 된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은 어느 곳에서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두드림>을 신변잡기식 토크 프로그램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제작진들은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시대의 청춘들과 교감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두드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한창 유행하던 '멘토링' 프로그램을 본따 만들어진<두드림>의 초창기 방식일 뿐이다. 오글거리던 어쨌든 멘토가 나와, 짧은 강연을 하고, 그에 이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그래도 형식적이라도 '멘토링'의 모양새를 갖추어 보였다. 더구나, 영화감독 이해영, 가수 김c 등의 mc는 이질적이었지만, 각자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로써, 틀에 박힌 멘토링을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왔었다.

그런데, 새로 바뀌어진 <두드림>은 나름 구색을 맞추느라 출연자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 등을 제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그 내용은 그 예전 이상벽이 진행하던 아침 프로나, 조영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푸근하지만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 그나마 멘토링이라는 <두드림>의 일말의 미덕마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복귀한 강호동의 무르팍 도사도 안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늘어진 런닝같은 분위기의 <두드림>으로 수요일 밤의 시청률을 노려볼 수 있을까?

 

 

<숲>; 아티스트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

<두드림>을 통해 패티김의 이혼이야기, 유방 이야기, 외국 가서 싸운 이야기를 설레발치는 조영남의 오버 액션을 통해 뻔하게 듣다가, 선배 패티김에서 봉여름가을겨울을 지나, 후배 조현아에, 기타리스트 박주원까지 어우러진 <숲>으로 채널을 돌리니, 이게 바로 아티스트를 제대로 예우하는 방송이 아닐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사람의 가수가 과거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접근하는 방식은 그가 한때 얼마나 이뻤으며, 잘 나갔는가를 후일담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역사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두드림>이 장황하게 외국 공연의 후일담을 줏어 담는 시간, <숲>은 이제는 보기 조차 힘든 패티김의 첫 번째 앨범, 붉은 LP를 걸어 놓고, 차근차근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 명작은 시간의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듯, 그 예전 종이에 또박또박 연필로 글씨를 쓰는 듯한 LP의 음색은, 비록 텔레비젼이라는 또 다른 매개를 통해서였지만 충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뿐만이 아니라, 출연자 패티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은 한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에 <두드림>과 <숲>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두드림>이 한때 잘 나가던 왕년의 가수라는 느낌이 더 진하게 다가온 반면, <숲>의 마지막, 김종진의 눈물에서 하염없이 흐른 눈물처럼 이제는 추억이 되어갈, 하지만 끝내 명작으로 남을 전설의 아티스트의 시간이 공감되었었다.

교훈은 굳이 이러이러하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을 울리는 교훈, <숲>의 첫 회가 우리에게 남겨준 멘토링이었다. 또 다음의 감동의 멘토링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5. 16. 08:13

불과 1년 여전 4.11 총선에 나선 김용민을 지지한 동영상을 계기로, 10여년 전 두 사람이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로 인해 김구라는 당시 모든 방송 활동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물러남에 대해 세간에서는 김용민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둥, 10년 전 19금 인터넷 방송 아니냐, 그래도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등 갑론을박 많은 시시비비가 오고 갔지만, 김구라는 마치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기라도 한듯 모든 활동을 중단했지요.

그리고, 자숙과 소리없는 봉사로 참회의 시간을 보내던 김구라가 슬슬 케이블을 통해 복귀의 시동을 걸 무렵,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공중파에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자, 김구라란 mc의 캐릭터가 두드러진 <라디오 스타>에 언제 복귀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었습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mbc의 김재철 사장은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했고, 여저히 그의 원죄로 인해, 김구라의 공중파 복귀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부터 불과 반년이 지난 지금, 김구라는 그가 나올 일은 없을 거라던 <라디오 스타> 대신 <화신>의 mc자리를 꿰어찼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kbs2의 힐링 프로그램<이야기쇼 두드림>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mc도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원래 그가 했던 <화성인 바이러스>는 물론, tvn의 <현장토크쇼 택시>에서는 운전대를 잡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썰전>에서 정치, 연예 비평의 양대 코너를 유유히 이끌어 가는가 하면, 금요일 밤 tvn의 <더 지니어스>에서는 들었다 놨다하는 두뇌 플레이로 여러 사람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현장 토크쇼 택시>, 화요일에 <화신>에 이어, <화성인 바이러스>, 수요일에 <이야기쇼 두드림>목요일에 <썰전> , 금요일에 <더 지니어스>까지, 아버지로 인해 방송 활동을 하는 어린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던 김구라가 맞나 싶게, 케이블과 공중파를 1주일 내내 종횡무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구라가 복귀와 함께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라디오 스타>가 그를 목놓아 기다렸듯이, 그리고 그가 없는 <라디오 스타>가 웃기기는 하지만, 어딘가 각본에 의해 잘 짜여진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 듯합니다.

그 스스로 '변칙 파이터'라고 평한 것이 어울리게 김구라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메뉴얼이 아니라, 그 상황을 치고나가는 임기응변으로 예외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mc입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오늘에 충실한다'는 그의 좌우명은 그가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뽑기 위해 좌충우돌 돌진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 이경규조차 김구라에게는 그가 언제 자신의 말을 방송에서 이용해 먹을 지 몰라 함부로 말을 못한다고 할 정도로, 방송의 재미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스타일입니다. 꼭 몸을 던지지 않더라도, 방송의 재미를 위해 저런 거 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은, 새롭게 단장한 <화신>의 출연자 봉태규의 '이런 것도 해요!'라는 놀라움에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돌직구'가 인기를 끄는 세태에서, 호불호가 분명한 김구라의 스타일은 보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시원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는 스타일이지요.

 

돌아온 김구라가 전과 다른 지점은,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하 것이든, 이전에는 <세바퀴>나 <붕어빵>등을 통해 보편적인 mc로서의 색깔을 유지해 갔었다면, 복귀 이후에는 <현장 토크쇼 택시>, <썰전>, 그리고 <더 지니어스>, <화신>에 이르기까지 그의 색깔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현장 토크쇼 택시>나 <화신>은 <라디오 스타>의 변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현무나, 신동엽, 혹은 김희선 등은 워낙 자신들의 색깔이 두드러져 누군가와 어우러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화신> 첫 회에서 쉽게 친해질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벌써 김구라는 마치 현대 음악처럼 불협화음 속에서 묘한 시너지를 발휘하듯, 그 누구와도 자신의 색깔을 놓지 않은 채 새로운 재미를 뽑아 내고 있습니다. 그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조용남과의 어울림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이유도, <더 지니어스>의 모래알 같은 출연자들 사이에 묘하게 이합집산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알고보면 김구라의 숨겨진 '친화력(?)'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복귀 이후 김구라의 영역에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것은 바로 정치, 연예 비평 프로그램 <썰전>입니다. 과연 김구라가 아닌 그 어떤 mc가 이 양자의 영역에 걸친, 비평 프로그램을, 예능적 성격을 살려가며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강용석이란 대한민국 대표 나쁜 놈이었던 사람에게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그의 색다른 면을 발견해 주었으며, 밋밋한 이철희 소장조차 강용석의 대항마로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은, 그저 제작진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통일 등 가장 심각한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정치인 개개인의 뒷담화까지 다양한 영역을 자유자재로 끌어낼 수 있는 mc가 김구라 말고 누가 있을까요? 이 독보적 영역에서 김구라의 활동은 능력만 있다면 때는 다시 온다는 <화신>에서의 멘트처럼, 그 이전의 김구라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김구라의 재발견이 되었습니다.

 

그 예전 중국의 '와신상담('거북한 섶에 누워 자고 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르는 말)이란 고사처럼, 칩거 기간 동안 자신이란 칼을 다듬고, 한껏 벼려진 칼로 이전 보다 더 다양한 김구라란 mc의 아우라를 펼쳐내고 있는 중입니다. 단지 우려가 되는 것은, 그 예전에도 과하다 싶은 활동으로 세간의 싫증을 불러와 미움을 더 사지 않았나 싶었듯이, 이번에도 복귀다 싶으니까, 월화수목금토일을 채우는 활발한 활동이 또 한번 김구라란 메이커를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y meditator 2013. 5. 15. 10:02

장규직(오지호 분) 팀장은 이미 계약 해지가 결정된 정주리(정유미 분)의 일을 부장님(김흥수 분)께 한번 더 간청하겠다고 하는 무정한 대리(이희준 분)을 말리며 말합니다. '안그래도 고과장님을 회사에 잔존하게 한 것 때문에 부장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는데, 정주리씨 일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찍힌다'고.

이렇게 무정한 대리처럼 이름과는 다르게 모든 일을 '정'에 이끌려, 무정한 대리식 표현에 따르면 살면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을 흔히 조직 내에서는 '온정주의자'라고 하지요. 조직 내에서 무능의 상징으로 손가락질 받는 '온정주의'지만,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또 다릅니다. '情(정)'을 광고 캐치프레이드로 내건 모 제과 회사는 중국에서 까지 대박이 났다지요.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걸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던' '情(정)도 이젠 말해야 한다며 광고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무능력하다며 술 취해 자조를 내뱉던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덕분에,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울린 미스김 덕분에 모처럼 정이 넘친 회사가 된 <직장의 신>은 시청률이 떨어졌구요. 착한 캔디에서 권력을 향한 악녀로 돌변한 장옥정의 시청률 상승과 대조적이게도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情(정)보다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인가 봅니다.

 

(사진; e스타)

 

1위인 <구가의서>의 뒤를 바짝 쫓던 <직장의 신> 시청률이 전회(14%) 대비 0.9% 하락, 13.1%를 기록했습니다(닐슨 코리아). 반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전회(8%) 대비 1.2% 상승했네요. 그러데 재밌는 건, 지난 주 고과장님의 명예 퇴직 사건이 벌어진 회차에서도 <직장의 신> 시청률은 떨어졌습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짤리는 계약직 정유미씨와, 만년 과장 고정도 씨가 동료 직원, 그 중에서도 특히 미스 김의 발군의 노력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미담이 보기 껄끄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현실적인 신파처럼 다가왔겠죠.

그렇다면 <직장의 신>을 왜 보는 걸까요? 모 정당이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당의 슬로건 내걸듯이 갑과 을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능력자 을인 미스 김을 통해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그 '페이소스'를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주듯한 쾌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스 김이 눈물을 흘리고,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 사무실의 사람들이 '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환타지를 넘어 비현실로 다가와 재미가 적어졌겠지요. 그러면서 거침없던 미스 김 대신에, 마치 점이라고 찍고 나타나듯이, '다 부숴버리겠어!'라고 덤비는 장옥정으로 리모컨이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연명을 부장님과의 유도 대련 한 판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은 어이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진짜로 어이없는 것은 계약직 매니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 사안이지요. 그런데 현실에서 정주리씨와 같은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우리의 뇌는, 어느 틈엔가,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유도 한판으로 그녀의 계약 해지가 취소된 일만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원작의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유도 대련 한 판으로 오고갈 만큼 보잘 것 없는 계약직의 생명줄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능하다고 자책함에도 불구하고, 미스 김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 무정한 대리의 자세입니다. 계약직 정주리 씨가 회사를 떠난다고 할 때 무심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모든 사무실 사람들이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래 저러면 짤려' 라며 정주리의 퇴사를 인정하듯이, 사무실 사람들도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해서 정주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무정한은 무언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동아줄을 잡듯 애타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누군가인, 미스 김의 마음을 돌려놓아, 정주리씨를 회사에 머물게 해주었습니다. 영웅은 꼭 영화관에서 주인공 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만 나타나주는 게 아닙니다. 갑을 컴퍼니 와이장의 영웅 미스 김을 불러온 건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였습니다. 어쩌면 사회를 개혁시키는 과건은 분노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 개봉할 영화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인 <엔젤스 셰어The Angels' Share>가 있습니다. 여기서 엔젤스 셰어란, 위스키를 발효시킬 때 사라지는 1%로, 사회 부적응자 청년 네 명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하층 1%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취지를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직장의 신>의 정주리씨와 고정도 과장의 스토리의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엔젤스 셰어와 같은 이야기 아닐까요? 정에 호소한다. 온정주의다 하지 말고, 무정한 대리처럼, 우리가 조금만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으로써 마음을 연다면 어쩌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천사의 몫이지만, 노력하면 사람이 만들 수도 있다고, 영화처럼 <직장의 신>도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파라 외면하지 말고, 한번 마음을 열어보자구요.

by meditator 2013. 5. 14.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