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에 <밴드 서바이벌 탑밴드>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 시즌에 신예 밴드 <톡식>이 아이돌 팬덤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하고, 게이트 플라워즈처럼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위용을 떨친 데 힘입어, 시즌2에 돌입, 칵스, 몽니에서 내 귀에 도청장치 까지 내로라하던 우리나라의 명품 밴드들이 출격했었지만, 결국 늦은 밤, 늦은 시간에 편성되어 대중적 관심을 유도해 내지 못한 채 낮은 시청률로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게 된 프로그램이다. 한다하는 밴드들을 끝판왕처럼 모아놓고, 정말 끝판이 되어버린 <탑밴드>를 보면서, 새삼 대한민국 공중파의 존재 이유를 되새김질 해보게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2012년 10월에 종영된 이후 더 이상 명맥이 이어지지 않은 밴드의 음악을 듣고, 아니 보고 싶으면 이제 매주 화요일 밤 m.net을 보면 된다. 밴드들의 진검 승부, <밴드의 시대>가 방영되니까.

 

1. 다양한 장르 음악이 듣고 싶나?

공중파에서 사라진 밴드 음악이 m.net을 통해 부활한 것은 어느모로 봤을 때 꽤나 적절한 자리 찾기인 듯하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만큼 공중파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틈에 공중파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방송에서, 누군가(예를 들어 중년의 아줌마라거나)가 보아야 살아남는 방송이 되어간다.

 

(사진; 밴드의 시대에 출연한 브로콜리 너마저, 옥상달빛; 스포츠 월드)

 

낮은 시청률로 밀려났던 밴드 음악은, 윤도현 밴드가 mc를 보는 <밴드의 시대>로 되살아 났다. 우리가 기사로만 미국에서 아이돌만큼 인기를 끌었다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화려한 음악도, <응답하라 1997>을 통해 전설이 되어버린 델리스파이스의 매력적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중 음악상에 빛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 발품을 팔아 홍대 클럽이나, 페스티벌을 찾지 않아도 그들이 무대에서 만개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공중파의 <탑 밴드>나 <밴드의 시대> 모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탑밴드>가 어설픈 멘토 시스템을 통해 기성의 밴드조차 아마츄어로 대접해 시즌1에 참가한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게이트 플라워즈의 참여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혹은 시즌 2에 그저 많은 밴드를 모아놓는 것만으로 화제성을 끌어내려 했던 것과 달리, <밴드의 시대>는 매회 주제에 어울리는 밴드들을 초빙하여 서바이벌을 벌임으로써 각 밴드의 특색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18일, 오늘 예정된 밴드들은 '청춘 힐링 밴드'로 대표되는 '브로콜리 너마저'와 '옥상 달빛'이다.

<밴드의 시대>만이 아니다. 힙합 음악이 듣고 싶으면 시즌2에 접어든 <SHOW ME THE MONEY>를 보면 된다. 신예 래퍼와 기성 래퍼가 합을 이뤄 서바이벌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시즌 1을 통해 가리온 등 다양한 힙합 래퍼들의 참여를 통해힙합 음악을 널리 알리는 한편 더블 케이와 로꼬의 스타 탄생을 이뤄냈다.

시즌 2는 심도 깊은 힙합의 대결을 만들어 내기 위해, D.O크루와 메타 크루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고, 양 크루의 대표격인 이현도와 MC메타가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멤버를 뽑고 음악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밴드와 힙합이란 장르들이 M.NET이라는 음악의 본령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자신만만하게 펼쳐보이고 있는 중이다. 아, 진짜 노래 잘 하는 사람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시즌2까지 안착시킨 <SHOW ME THE MONEY>이전 프로그램 <VOICE OF KOREA>를 찾아보면 된다. M.NET엔 슈스케랑 엠카운트 다운만 있는 게 아니다.

 

(사진; 봄,여름, 가을, 겨울의 숲에 출연한 한대수; 스타 투데이)

 

2. 뮤지션이 궁금하다면?

물론 뮤지션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M.NET의 프로그램이라면 우선 알려진 것으로, <비틀즈 코드>가 있다. 이른바 '병맛'이라 하여 이 프로그램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라디오 스타>가 거기에 출연한 사람들 띄워 줄 수 있다 한들, 그들의 음악에 대해 희화화시키든, 우격다짐으로 갖다 붙이든, 출연자의 음악을 이만큼 훑어서 다뤄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이 프로그램은 그 특유의 코드가 맞아야 방영되는 시간 내내 리모컨을 집어 던지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 또 가면 갈수록, 시즌이 거듭하면 할 수록, 음악 보다는 뒷담화와 스캔들에 방점을 찍으며 <라디오 스타>의 아류로 스스로 내려가는 아쉬움 역시 어쩔 수 없다.

그에 반해 지그시 자신이 좋아하는, 좋아했던 누군가의 삶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면,

수요일 밤 12시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김종진, 전태관과 함께 음악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프로그램 제목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숲>이듯 나들이라도 나온 듯 게스트와 함께 조촐하게 펼친 화면은 소박하지만, 프로그램의 내용만은 대한민국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초청한 게스트의 음악 본령을 심도깊게 따라가는 음악 토크쇼이다.

초청한 게스트가 패티김이 되었건, 한대수가 되었건, 김완선이 되었건, 그들은, 그저 연예인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선배이자, 동료로 대접받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노래하고 논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의 음악이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멋들어진 연주를 통해, 요즘 대세라는 '어반자카파'의 조현하의 목소리를 통해 재탄생되는 것도 맛볼 수 있다. 뮤지션을 뮤지션이 대우받는 시간, 당연한 거지만,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주 드문 소중한 시간이다.

by meditator 2013. 6. 18. 10:39

"군대리아라는 거 알아?"

"그럼, 그걸 왜 몰라?"

""너도 빵 안에 쨈이랑, 다른 거랑 막 섞어 넣어서 먹어?"

"어휴, 아무리 군대라도 난 그건 못먹겠더라."

"우유에다 적셔 먹기도 하던데?"

"응, 그건 맛있어."

그렇다. 이 대화는 군대 간 아들과 엄마가 <진짜 사나이> 매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아들이 군대 간지 어언, 5개월이 지나가고, 야, 이제 16개월만 더 하면 돼! 하고 저도 나도 화이팅을 외치지만, 올 한 해를 보내고도, 고스란히 내년을 헌납해야 민간인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움과 달리, 군대의 생활을 잘 모르는 에미는 매주 엄마를 생각하며 전화를 걸어주는 아들과 이야깃꺼리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맨날 해봐야 휴가 언제 나오냐? 아프지는 않냐? 그러던 엄마였는데, <진짜 사나이>를 보고 나서 자꾸자꾸 할 이야기가 생긴다. 엊저녁에도 아들 녀석이 전화를 했을 때 마치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려을 할 때라 졸지에 작은 아들 녀석은 전화통에 대고 텔레비젼 중계를 하고, 군대에 간 녀석은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유격 경험을 뽐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대화가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이제 와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들과의 대화가 풍성해 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진짜 사나이>를 즐겨 보았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386세대인 이 사람은 고등학교 다닐 때 여차하면 선착순부터 시키거나 출석부가 반으로 부러져라 두들겨 패는 선생님한테 교련 수업도 좀 받아봤었고, 대학에 들어와, 남학생들의 이른바 '병영집체 훈련' 반대를 지켜보기도 했었던 세대다. 그러기에, 군사적 훈련 시스템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목도한 세대로, '군'자가 들어간 그 무엇에도 저항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세대인 것이다.

그러기에, tvn의 <푸른 거탑>을 시작으로 해서, mbc에서 <진짜 사나이>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그 잠재되어 있는 거부감이 불쾌감의 형태로 우선 드러났던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이성을 가장 느슨하게 만드는 예능의 형태로 '군사 문화'가 '침투'한다는 사실에 막연한 분노조차 느꼈었다. 게다가, <푸른 거탑>이 흥하자, 얼른 그 과실을 따먹기랃 하듯 만들어진 <진짜 사나이>란 프로그램에는 더더욱 '아류'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86이니, 민주화 세대니 버팅겨도, 세월은 가고, 정작 내 아들조차도 군대를 가는 상황은, 언제나 그래왔듯, 내 아들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 다르게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고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자꾸 <진짜 사나이>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사진; 동아일보)

 

물론, <진짜 사나이>를 함께 보는 고3짜리 우리 아들이, 군대 가서 유격 훈련을 잘 하려면 어느 정도 체력은 키워야 겠다고 다짐을 하듯,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병영 생활은 생소하고, 때로는 저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데 어느 틈에 우리는 그걸 보고 웃고 있다.

'강제 징집'이라는, 군대가 대학생 제재의 한 형태이던 시대로 부터, 이제 군대가, 군대 생활이 희화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6월16일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련 중 웅덩이에 꼿힌 상대방의 깃발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다른 팀의 아홉 명의 군인들이 아비규환의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전혀 이질적인 정서는 아니다. 이제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번번히 뉴스에서 여름방학 때마다 해병대 훈련에 합류하는 수험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을 보여주겠는가. 해병대 정신 정도는 있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징 아니었는가 말이다.

번번이 훈련만 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몸이 따라주지 못해 낙오를 하는 샘 해밍턴의 모습 역시 낯설지만은 않다. 전체가 '갑을 컴퍼니'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을'의 존재는 시간이 가도 진급하지 않는 이등병이나 마찬가지니까. 훈련을 제대로 숙지하지못해 머리를 박는 샘 해밍턴이나, 잘 할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신병 박형식의 모습은, 그래도 언젠가 고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의 신>에서, '내가 왜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는지 알아?'라며 장규직에게 모멸을 받았던 정주리의 삶은 오히려 보장된 진급이 대기하고 있는 군대보다도 못하지 않나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제 맘 편하게 주말 저녁 <진짜 사나이>를 시청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군대가 우리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가 아니라,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군대 곁으로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군대로 간 연예인들을 마치 내 사회 생활의 동료처럼 호불호를 가지고 재단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장담한다. 남자가 군대 다녀오면 사회 생활은 잘 할 꺼라고.

<정글의 법칙>으로 부터, 이제 <진짜 사나이>까지, 이른바 '야생 리얼 체험 버라이어티'는 한편에선 보다 자극적인 것을 찾아가는 예능 모색의 극한치이지만, 또 한편에선 그 정도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야생'보다 더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오락거리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3. 6. 17. 09:38

멤버들의 집을 찾아간 제작진은 다짜고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카메라를 들이댄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이를 닦는 박성호, 알뜰하게 비누칠을 하는 동안은 샤워기를 잠근 김준현, 옷을 벗고 있다 민망하다 하는데도 들이민 카메라는 집요하게 화장실에서 물을 소비하는 멤버들을 찍어댄다. 그러자, 눈치빠른 김준현이 말한다. "세살 먹은 애도 알겠다. 이번엔 물이지? 물없이 살기지?"

그간 원산지 알고 먹기를 통해 푸짐한 먹방을 즐기고, 친구 찾기를 통해 모처럼 하하호호 친구들과의 여가를 즐겼던 <인간의 조건>이 다시 그 본연의 '~없이 살기' 미션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더운 여름에, '물없이 살기'

굳이 '물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을 멤버들이 다 모인 오프닝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난 번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에서 하루를 쫓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아 보여준 것만으로도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이 설명되었듯이, 그저 아침 나절 멤버들의 준비 과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가 물을 얼마나 하염없이 낭비하고 사는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이를 닦는다든가, 물을 틀어놓고 샴푸 거품을 낸다든가, 얼굴에 비누칠을 한다던가, 그 '물'이란게 내가 쓰면 '줄줄줄' 새어나가는 걸 모르다가도, 남이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쓰는 걸 보면, 몹시도 아까운 요물이다. 그래서 두 말할 필요 없이 <인간의 조건>이 내건 '물없이 살기' 미션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루에 생활을 하면서 물이 얼마나 필요할까?란 제작진의 질문에, 멤버들은 처음엔 그저 마시는 물만 생각하다가 하나하나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을 꼽아보고는 깜짝 놀란다. 역시나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도 그랬듯이 당장에 걸리는 건, 화장실 문제 부터다. 하지만 그것을 뺀다해도,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각자 필요한 물을 말하라고 했을 때, 김준현이나, 김준호처럼 자신들은 안씻고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풀려 대며 많은 양을 요구한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제작진이 제시한 물의 양은 단, 20 L 뿐이다. 이것은 2006년 UN(국제연합)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의,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의 양이다. 그리고 등장한 물통을 보고 멤버들은 경악한다. 겨우 이걸로 하루를 버티라니!

그저 최대한 마시는 걸 줄이면 되겠거니 했던 '물없이 살기' 미션이었지만, 미션 수행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이야 말로, 미션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라는 걸 멤버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가 생활 하는 그 모든 곳에 물이 없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식당에 들어가 외식을 해도 기본적으로 6L 물이 차감당한다. 거기에 먹는 음식에 따라, 하다못해 동치미나, 음료수를 먹으면 양이 추가되는 건 물론이다. 먹는 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물이 없으면 당장에 밥도 지을 수 없고, 어떤 음식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기발하게 물없는 카레를 해보는데 먹기는 먹지만 뻑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뻑뻑함의 갈증을 오이로 달래는 밖에.

먹는 건 약과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아끼고 아끼니, 한 통의 물로 해결했다 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샤워는 어쩔 것인가, 멤버별로 거품이 안나는 비누 사용하기에서, 물수건으로 닦아내기, 얼굴 씻은 물로 발 닦기 등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나저나, 세탁은 빼주는 건가? 보고 있는 시청자들 머릿 속에 제 먼저 이런 저런 물이 필요한 곳이 떠오른다.

그러나, 1월부터 시작해서, 5개월 여 달려온 <인간의 조건>은 이제 각자 캐릭터가 구축이 되고, 여섯 개그맨들의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어떤 미션을 들이대도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듯 하다.

이 더운 여름에 꾸질꾸질해 질 수 밖에 없는 '물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들고도, 이젠 여섯 멤버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여유를 부린다. 처음, 돈없이 살거나, 쓰레기 없이 살기 때만 해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떤 기발한 방법이 있을까 각자 궁리하느라 바쁘다. 김준호처럼 난 물을 안마셔도 돼, 하면서 버티기 방법을 쓰는 우격다짐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정태호처럼, 미션의 취지를 생각해 보며, 그저 안쓰는 게 아니라, 쓰되 쓰는 방식을 달리하는 모범 답안형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이 여름에 '물없이 살기'란 미션은 꽤나 버겁고 지난한 미션임에도 그것을 받아든 여섯 멤버들은 이제 그간의 미션의 내공으로 지혜롭게 모색해 나간다. 물없이 머리 감을 수 있는 샴푸나, 손 세정제에서, 언젠가 1박2일에서 봤던 물없이 만들 수 있느 카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돌출한다.

그런가 하면, 각자 20L의 물이 주어지자, 대뜸 누가 얼마나 쓰는가에 따라 '왕'을 정하자며 게임을 벌이고는, 미션의 결과를 유쾌한 '왕 놀이'로 마무리 짓는다. 미션이 고난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하는 즐거운 게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사진; osen)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이 한결 상실된 그 예전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을 보며 느꼈던 묘미를 <인간의 조건> 미션 수행을 통해 맛보게 된다.

처음,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공익 광고'같은 모습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면, 5개월 여를 지내면서, 이제는 '예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이젠 그들이 개그콘서트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석에서 환호가 울려나올 만큼, 그들이 그저 먹기만 해도 정겹고, 어울려 부등켜 안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5개월의 숙성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돈없이 살기' 등 ~없이 살기 미션을 통해, 난감한 미션을 수행하는 내공이 생겼다면, '원산지 알고 먹기'나, '친구 찾기'를 통해 멤버들이 합을 이뤄내는 시너지에 대한 확인을 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없이 살기' 미션은 분명 목적은 '공익'이되, 그 내용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한 '예능'이다.

by meditator 2013. 6. 16. 09:52

변함없이 금요일 밤 찾아드는 <땡큐>의 6월14일 방송 예고는 심상치 않았다.

배우 김성령, 방송인 김성경 자매, 2년 만에 만나다! 최근 제 2의 전성기를 누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배우 김성령과 그녀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한때 sbs뉴스 앵커까지 했던 방송인 김성경이 싸웠었나? 낚시였든 아니든 예고를 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가족사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요즘, 연예인들의 시끌벅적한 가족사로 인해 연일 기사가 올라오는 시점이라 이건 또 뭐지? 라는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고.

 

2년만에 아니 정확하게 세자면 1년 7개월 만에 강원도 산골짜기 외나무 다리, 아니 외징검다리에서 만난 자매의, 아니 언니의 첫 마디는 다분히 감정이 실린 '야!" 였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무섭다는 동생도 얼굴 표정으로만 보면,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다며 버팅기는 거 같았다.

 

mc차인표가 자리를 피해주며 두 사람이 '결자해지' 하라는 사연인 즉 그렇다.

동생 김성경이 mbc<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는데, 애초에 나갈 때는 전혀 언급할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언니와의 불화, 2년간 연락 두절을 <라디오 스타>mc들의 낚시에 의해 까발리게 된 사연이다.

이 사건(?)에 대해 동생은 오늘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했다. 본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오히려 자신에 대해 사람들은 소탈하고 솔직하다고 이야기해 주더라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하지만 언니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너랑 나랑 사이가 안좋아도 그렇지, 방송에서 할 이야기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이야기가 있지, 언니라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불쾌한 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무려 4개월 동안 그에 대해 해명 한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조곤조곤 따진다.

이런 사연을 보다보면,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기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일이 일어난 양, 감 놔라, 배 놔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이그, 그저 내리 사랑이라고 동생들은 지 생각 밖에 안해' '언니란 사람 저 꽁한 것 좀 봐, 섭섭했으면 먼저 전화해서 풀면 되지, 이날 이때껏 저러고 있냐?'라는 식으로.

 

(사진; osen)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생활의 일부분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방송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시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송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공인'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숙명같은 것이다.

<땡큐>에서 보여준 <라디오 스타>의 자료 화면은, 김성경이 자신도 모르게 확 내뱉은 언니와 사이가 안좋다, 안만난다 라는 말에 환호작약하며 드디어 한 껀 했다라며 좋아하는 mc들이었다. 그리고, <땡큐>에 섭외가 들어왔을 때 김성령이 동생 김성경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은 세상에 까발려진 자매의 불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역시나 방송이라는 '동네방네 확성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젼이 우리 거실 가운데를 따악 차지하고 들어앉은 시점부터, 그리고 이제 내 손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 폰 덕분에 더더욱, 사람들은 내 친구나 내 이웃의 속내 보다 연예인들의 속사정에 더 빤하게 됐다.

아침 방송만 틀면 한다하는 연예인들이 번갈아 나와 그들의 자서전을 줄줄이 읊고, 밤늦은 시간 예능에선 기사로만 보았던, 혹은 풍문으로 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해명된다. 그래서 친구랑 만나 할 얘기가 끊어져 서먹한 시간을 채워주는 풍성한 이야깃 거리를 제공,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친구를 만나, 그의 안부 대신 모 연예인의 사연을 줏어담기에 바쁘게 되었다. 방송들은 발빠르게 출연한 연예인이 실수로 흘렸건 그 사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건 말건 상관없이 새로운 소식 하나라도 건져 프로그램의 낚시밥으로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기에 바쁘고, 그걸 해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송 프로그램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화요일 밤 <화신>에는 결혼을 앞둔 장윤정이 출연했다. 제 아무리 결혼을 앞둔 신부라지만, 그녀의 불편한 가족사를 훤히 아는 시청자가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온전히 즐기기엔 불편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 말미에, 이런 이야기 하는 거 자신은 싫어한다. 하지만 이거 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라며, 다른 이야기에는 그저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라는 언급에, 어쩌면 장윤정이 <화신>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저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동생과의 불화가 먼저 기사화되고, 그걸 해명하기 위해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그걸 본 어머니와 동생이 종편 프로그램에서 그걸 반박하고, 다시 그걸 마무리하기 위해 장윤정은 <화신>에 출연하고.

 

연예인 한 사람의 개인사를 해명하고 반박하는데, '공적'인 방송 매체가 이용이 되고, 우리는 그에 대해 그 어떤 불쾌감 없이, 마치 알 권리를 누린다는 듯 그걸 소비한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누군가의 속사정에 우리의 귀와 눈이 기울여져 있는 동안, 마치 어떤 정치적 사건을 덮기 위해 누군가의 가십을 풀었다는 음모론처럼, 미래의 내 일이 될 지도모를, 누군가의 가슴 아픈 속사정들이 덮어 질지도 모른다는 진실이다.

by meditator 2013. 6. 15. 09:48

류수영이 떠서 다행이야"

돌아온 <kbs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3>을 보며 내가 한 말이다.

도대체 출연하는 류수영과 단막극이 수요일에 들어간 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데도, 마음이 그런 걸 어쩐다. 그렇게라도 화제성이 조금 더 있으면, 1%라도 시청률이 더 나올까? 하는 <kbs 드라마 스페셜> 애청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웬걸, 역시나, 그 전에 종영한 <두드림>의 3.7% 보다도 못한 3%가 나왔다. 일요일 밤, 내일 출근하려고 잠자리에 들고도 남을 11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한 자리 잡는가 싶더니, 쬐금 승격시켰다는게 <라디오 스타>와 <짝>이 떠억하니 들어앉아있는 수요 예능 사이라니! 더구나, 김구라가 <라디오 스타>에 돌아오는 날, 첫 방송이라니!

이런 게 단막극의 팔자려니 싶다. 나 또한 <라디오 스타>의 애청자로서, 갈등에 시달렸다. 돌아온 김구라를 볼 것인가, <드라마 스페셜>을 볼 것인가, 나의 선택은, 안쓰러운 <드라마스페셜>이었지만, <드라마 스페셜>에 맛을 들이지않은 시청자라면 익숙한 그 무엇을 선택했으리라. 그래도, 열강 사이에서 버텨온 우리의 역사까지 되새김질 해서라도, 강 예능 사이에서 근근히 버텨갈,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을 kbs는 책임져 주길 바란다. 방송 시간대가 바뀌어도 찾아드는 나같은 개근 시청자도 있으니까.

 

(사진; tv리포트)

 

 

3% 밖에 나오지 않는 <kbs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아마도, <드라마 스페셜>은 그것이 생긴 이래, 늘 이런 생존의 질문을 끊임없이 달고 다녔을 것이다. 좋은 작가와, 훌륭한 제작진의 개발, 그리고 장편 드라마에선 다룰 수 없는 시의성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시도. 이런 말을 되새기기 조차 구차할 정도로, 숱한 대답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만능 세상에,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되지 않는 작품은 늘 그 존재 자체가 위기이다.

고3 수험생을 자식으로 둔 주제에도 맨날 텔레비젼만 들여다 보는 뻔뻔한 엄마를 둔 덕에,오며가며, 심지어 벽 뒤에 서성이며 함께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고 3 아들이 역시나 함께 돌아온 <드라마스페셜>을 시청했다.

"어, 웬만한 드라마보다 나은데?"

물론 그 말에, 저 고3은 지가 뭘 안다고, 공부는 안하고 저러고 드라마 품평이나 하고 섰나 라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말인즉, 옳은 말이다. 지하고 나하고, 그간 얼마나 숱한 드라마를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며 흥분을 했었는가. 심지어, 엄마가 그래도 그건 이런 의미가 있어, 라고 한편 좀 접어주기라도 하면, 냉혹한 10대 아들은 말도 안된다며 더 거품을 물며 반론을 제기했었다. 그런 아들이, 괜찮단다. 그래, 정말 괜찮다.

홍시가 홍시이지, 홍시 보고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이라고 했던 어린 장금이의 반문처럼, 드라마는 다같은 드라마인데, 단막극이라고 무에 그리 다른 맛이 나겠냐고? 물론 때로는 너무 실험적이다 못해 날 것같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진득한 근성같은 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에 첫 입봉하는 감독들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솔한 주제 의식과,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이리저리 공들인 화면 등, 그런 것들이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주제, 어떤 계절이 드라마 안에 담겨도, 늘 <드라마 스페셜> 자체는 초 여름의 생기같은 게 느껴진다.

 

 

단막극은 짧다.

긴 드라마의 호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을 기대하며 막 책장을 넘기다, 여운만을 남긴 체, 이만 총총 해버린 단편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당혹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운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처럼, 긴 드라마의 호흡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 받는다.

첫 작품으로 등장한 <내 낡은 지갑 속의 기억>은도 그랬다. 추리 소설 마니아인 엄마는, 마지막에 순탄하게 남자 주인공이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시시했지만, 그 사랑 이야기가 흐뭇했던 아들은, 그런 엄마에게 이상한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고 쯧쯧거렸듯이, 제목처럼 서정적인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다음에 언젠간 엄마가 좋아하듯이, 찾아갔더니, 그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더라든가, 알고 보니,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죽였다던가 하는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다든가, 괴기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시청률 때문에 원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상투적 선악 구도로 만든다거나, 클리셰를 남발하지 않는 재기발랄한 그 무엇들이 될 것이라는 건, 장담한다.

일단 한번 보시라니까요, 이렇게 단막극에 대한 글은, 언제나 호객 행위로 마무리된다.

by meditator 2013. 6. 13. 09:49

되돌이켜 보면 <부활> 때도 그랬었다. 그리고 <마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른지도 모른다.

김지우, 박찬홍의 드라마들은, 조그만 구멍 하나가 결국엔 엄청난 봇물을 터지게 만들듯, 차곡차곡 쌓아져 가는 맛에 보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이른바 그걸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환호작약한다는 '매니아' 드라마의 원조이기도 했고, 드라마가 종영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없는 난해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바 복수 시리즈의 완결판 <상어>를 만들려고 한 것이 무려 5년 전이었다고 한다. 5년이란 시간이 너무 긴 것이었나, 아니면, 겨우 5년이란 시간 동안, 세상이, 우리가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일까?

종종 <상어>를 보다보면 그 느린 호흡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실 남여 주인공을 주구장창 풀샷과 클로즈 업으로 잡아대기론, 얼마전 종영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힐링 캠프>에 출연한 윤여정이 그러려면 뭐 하러 야외 촬영을 했냐고 힐문을 했을까? 그런데, <상어> 역시 만만치 않다. 남여 주인공, 김남길과 손예진이 등장하면, 카메라는 늘 과할 정도로 두 사람에게 들이댄다. 마치 '치명적 사랑이야, 치명적 사랑이지?' 라며 강요하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해우(손예진 분)의 첫사랑 한이수(김남길 분)가 교통사고 이후에 실종이 되었다는 건 알겠지만,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 이미 결혼까지 하며 희희락락 살아가는 조해우와 그 앞에 자꾸 얼씬거리는 김준(한이수)이 그렇다고 해서, 치명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건, 작가와 감독이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갖은 공을 들였음에도, 그 사랑이 시청자의 마음에 깊게 아로새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또 한편에서 지금의 성인이 된 주인공들을 보며 첫사랑의 트라우마가 깊다는 게 공감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온 김준은 해우를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품고 있는 복수의 야망이 흔들릴 만큼, 그녀에게 다시 빠져든다. 앞서 걸어가는 그녀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비오는 거리에서 다짜고짜 입을 맞출 만큼. 물론 지나온 시간 동안 12년 전의 그 사건에 매여져 있는 김준이니깐 더욱 해우에게 얽매여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14년 만에 만난 그녀가 정말 그렇게 똑같을까? 어린 시절의 해우는 지금의 해우와 비슷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늘 우울하고 퉁명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해우는 늘 방실방실 웃음이 넘치는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다. 물론 얼굴이나 표정이 친숙함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 못지 않게 그 사람의 분위기도 중요한데, 심지어 한이수의 실종까지 겪은 해우는 종종 무표정일 때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밝게 자라지 않았나? 그런 그녀에게 다짜고짜 '치명적'으로 빠져들 수 있을까? 만약에 그 조차도 김준이 된 한이수의 계략이라면 몰라도, 지금까지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아선 그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행복해 하고, 밝아진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게 먼저 보여질 반응이 아닐까?

 

김남길이 손예진에게 기습 키스하고 있다./KBS2 상어 방송 캡처

 

 

 

바로 이런 것들이다. <상어>가 어딘가 모르게 그 예전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돌아온 첫사랑, 그리고 한결같은 그의 감정, <상어>가 처음 시도된 그때로 부터 5년이 흐른, 그래서 가속도로 인간의 감정이 세속화된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주인공의 지고지순함에 쉽게 동조하지 못한다. 첫사랑의 그녀 해우를 기억해 내고, 해우가 저렇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한결같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한다면서 검사가 된 그녀에게 사건의 열쇠를 맡기는 이유는 뭐야? 더구나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녀를 어쩌라고? 이렇게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끌고 가려는 전제들에 대해 되바랄질 대로 되바라진 시청자들은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기억도 안나는 예전 드라마를 떠올리며, <부활>은 안그랬는데, <마왕>은 쩔었어. 하면서, 그 시간동안 자신의 눈이, 생각이 달라진 건 생각지도 않고.

<상어>의 사건 현장마다 그려진 붉은 원의 표식을 보면, 자꾸 미드 <멘탈리스트>가 떠오른다. 거기서 연쇄 살인범 레드 존은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현장에 웃는 얼굴을 그려 놓는다. 이렇게 상어가 던지는 의문의 표시를 비롯해서 이른바 많은 '떡밥'들을 시청자들은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다.

6회 무심히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서점 아저씨, 그리고 그의 손에서 똑딱이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한이수의 아버지를 죽게 한 그것이었다! )

작가와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서점 아저씨의 숨겨진 신분을 던졌다 생각했겠지만, 솔직히, 그런 류의 작품을 좀 본 눈치빠른 시청자라면 그 아저씨에게 이미 혐의를 두지 않았을까?

이렇게 작가와 감독은 야심차게 시청자들에게 무언가를 하나씩 던지는데, 그것이 '혹시나' 였던 거였다면, 그 추측이 맞아서 좋은 거 보다는, 오히려, 기대했던 <상어>가 알고보면 시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감정선에, 어디선가 본 듯한 사건의 실마리들을 가지고, <상어>는 그 마저도 아주 물 속을 유영하듯 유유히 끌고 나간다. 조해우 주변에서 사건이 터지거나,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면, 늘 그와 대비되어, 김준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등장하고, 그나마도 박진감있게 진행되어야 할 상황을 <상어>는 김준의 복수에 공감을 강요하며 한 템포 느리게 떨어뜨려 놓는다. 만화 책이나, 추리 소설이라면 후다닥 페이지 수를 넘겨 버리기라도 하지, 뭔가 이야기는 할 거 같은데, 막상 해버리면 좀 시시해 지는 <상어>, 안보자니 아쉽고, 보자니 답답하고, 그런 상황이다.

by meditator 2013. 6. 12. 10:07

광고가 끝나자 화면에 대뜸 송중기가 얼굴을 비췄다. 왜지?

그러자 송중기가 말한다. 개그 콘서트와 인연이 깊다고. 아하, 생활의 발견에서~ 송중기가 게스트로 나오자 신보라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그래서 송중기가 앙탈(?)을 부리며 안먹는다고 뱉어낸 음식까지 줏어 먹던 진짜 같던 그날의 개그가 기억에 떠오른다.

이어서 등장한 첫 코너 모처럼 돌아온 '꺽기도'에 이어, 정말 오랜만에 개그 콘서트에 등장한 '수다맨'에 진짜 수다맨 강성범이 등장했다. 어디 그뿐인가, '씁쓸한 인생'에선 개그콘서트 초창기 멤버였던 김영철이 텔레마케터인양 등장해서 예의 애드립 풍년을 이룬다. 심지어, 개그콘서트의 효시인 전유성은 '버티고' 코너에서 곰 탈을 뒤집어 쓰고 등장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뚱뚱했떤 정형돈이 인기와 반비례하듯 홀쭉해져 돌아와 '도레미 트리오'를 다시 선보이고, 아직도 개콘 멤버 같은 이수근, 신봉선, 김병만이 '키컸으면', '대화가 필요해', '달인' 등 추억의 코너에 등장한다. 물론 오랜만에 등장한 선배들의 호흡은 딸리고, 대사의 웃음 포인트는 빗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마,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700회, 단 90분 만에 개그콘서트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 mbm스타)

 

 

 

700회의 개그 콘서트가 잔칫집 같던 이유 중 하나는, '무한 도전' '개그야' 등 공중파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의 축하 인사는 물론, tvn의 'SNL' 을 거쳐, 심지어, '썰전(썰전이 개그 프로그램이었어?)' 멤버의 축하 인사를 집어 넣은 것이다. 그 느낌은 마치 환갑 잔치에 동네 방네 지인들을 초대하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방송국을 불문하고 모든 개그맨들이 하나된 듯한 묘한 일체감같은 걸 느끼게도 해주었다. 심지어, TVN의 '코미디 빅리그' 출연진들은 박준형, 안영미, 박휘순 등 거의 대부분 한때 개그 콘서트에 몸담았던 개그맨들로, 새삼 개그 콘서트의 저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700회지만 출연진의 면면도 새로웠다. 이미 다른 특집에서 등장했던 김미화나 심현섭이 아니라, 또 강성범이나, 김영철, 심지어 전유성을 초대한 것처럼, 선배들마저 순번으로 등장할 정도로 개그콘서트의 인력 풀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선배이고, 코너인 이수근의 '키컸으면'과 '달인'은 특집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듯하다. 지난 번 '키컸으면'이 원조 장두석, 이봉원을 초대해 원조와의 콜라보레이션을 벌였다면, 이번에는 개그콘서트의 키가 비슷하게 작은 개그맨들을 동원해 일곱 난장이 버전으로 새로운 개그를 선보였다. 김병만의 '달인'도 지금 그가 잘 나가고 있는 SBS의 정글의 법칙를 그래도 이입시켜 '정글의 달인'으로 재탄생시켜, 또 다른 공감을 얻어갔다.

물론 모든 개그 콘서트 출신의 개그맨들이 여전히 개그 콘서트 팀과 사이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개그콘서트를 거쳐갔던 그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잔칫날 불러서, 심지어 지금 그들의 성과 조차 흔쾌히 박수쳐 가며 개그콘서트 버전으로 재 탄생시킨 것은 700호를 거친 개그 콘서트의 품이 그만큼 넓고, 깊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건, 결국 어떤 누가 와도, 혹은 누가 가도, 개그 콘서트의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700회 특집에서 또한 돋보인 것은, 지금 <개그 콘서트>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른바 최고참,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 3인방의 활약이다. '애정 남보원', '대화가 필요해', 씁쓸한 인생' 등 이미 추억이 된 코너에서는 물론, 여전히 '화가 난다~', '쇠고기 사묵겄지' 하며 유행어를 들이대며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개그 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이들의 존재감이 새삼 특집에서 빛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 김준현, 정성호, 박성광 등 애정남 최효종의 정의처럼, 이제는 그의 이름도 알고, 그가 한 코너도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인기 개그맨이 된 개그맨들의 두툼한 인맥 풀도 이젠 든든하게 <개그 콘서트>를 빛내주고 있다는 걸 자랑하며 내보일 만 했다. 그리고 그에 질세라, 새내기 개그맨들의 의욕적인 재롱잔치도 700회 특집은 놓치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고 하지만, 700회의 역사를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개그콘서트> 90분은 충분히 과식감이다.

by meditator 2013. 6. 10. 09:40

친구 찾기 미션의 3주차가 끝났다.

꼬박 미션 수행을 향해 달리던 4주차의 다른 미션과 달리, 3주 만에 막을 내린 '친구 찾기'는 그간 인간다운 삶을 향해 고되게 달려온 <인간의 조건> 팀에게는 장거리를 달려 가도, 기억을 더듬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또 되묻기를 반복해도 그 끝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친구가 있었기에 쉼표와도 같은 휴식 시간 같았다.

 

미션의 마지막 날,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 란 제작진의 물음에,

'친구는 그저 친구'라는 선문답같은 대답에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족'같은 관계라는 매력적인 정의까지 다양한 대답이 등장했다. 그 어떤 대답을 했건, 그들에게 주어진1주일간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친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혹은 친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는 멤버 사이의 인기 투표 비슷한 친구 투표를 하면서,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를 되짚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동선을 쫓아가며 시청자들 역시 1년 가야 한번 볼까 말까한 하지만 만나면 내 흑역사까지 고스란히 알고 있어 더 이상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친구에서 부터 사회 생활 속에서 엇갈리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사진; OSEN)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촬영 분량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찍어놓고 보니, 친구를 만나서 하하호호 반갑다 하는 것 이상의 차별성을 둘 수 없는 내용 탓이었는지, 단지 3주차로 촉박하게 마무리된 '친구 찾기' 미션이 친구란 화두에 대해 조금 더 농밀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한편에선 남는다.

이제는 얼굴조차 서로 가물가물 하지만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던 박성호의 꼬꼬마 어린 시절 친구나, 오해로 인해 3년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그저 아집이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양상국의 친구 찾기는 이런 게 '친구'라는 정의를 내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굳기 이전의 어린 시절 친구들의 막연한 우정은 향수와도 같은 묘한 정취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 못지 않게 인상깊었던 것은, 김준호가 친구라고 하자, 대뜸 <개그콘서트>를 함께 해온 김대희를 든 것이라던가, 그와 반대로 그를 따라 방송국까지 옮겼지만 잘 되지 않아서 한때는 원망하기도 했던,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드니 그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심현섭을 친구로 찾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겐 지금 혹은 한 때 내 옆에 있거나, 있었지만 정작 '친구'로써 인식하지 못했던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그들과 즐겁게 추억을 되짚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유재석이나 신동엽처럼 친구라고 우기기엔 낯 간지러운 선배들을 찾아가 입술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는 대신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들을 조금 더 깊게 다루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피 투게더>에 함께 출연하기까지 했던 박성호의 동기, 박준형 등을 찾아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또한 이제는 <개그콘서트>의 맏형이거나, 중진에 가까운 멤버들이, 정작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그 콘서트> 팀을 좀 더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친구로 소개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이벤트 성 송강호, 최민식, 이나영, 김연아 만나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멤버들이 코너를 함께 하고 있는, 혹은 한때 했던 <개그콘서트>의 멤버들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나누었다면 조금 더 풍성하고 친근한 내용들이 나왔을 텐데, 그렇다면 <개그콘서트>도 좋고, <인간의 조건>도 좋은 '윈윈 전략'이 되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언제부터인가, 명망인을 목말라 하는 <인간의 조건>의 얄팍한 근시안이 아쉽다.

정성호가, 양상국이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좀 아는 개그맨이었듯이, <인간의 조건> 팀의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인재 풀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내 아이도, 내 부인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친구'에 대한 정의처럼, '친구 찾기'라는 주제를 통해 얼마든지 문어발 식으로 다앙하고 깊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었는데 제작진 자체가 주제에 대해 '쉬어가기'처럼 편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조차 들었다.

 

(사진; OSEN)

 

하지만, '친구 찾기'란 주제는 <인간의 조건>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미션이었다. 과연 '~없이 살기'란 전투적 미션이 아니라도 그 속에서 인간다운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가의 관건이 된 미션이었다.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인간의 조건>에 주어진 상황과, 제작진이 미션을 대하는 온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이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각각 캐럭터를 구축하고, 그들이 함께 '먹방'을 하거나, '꽁트'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안정적 호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가끔은 안일하게 거기에 기대어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예전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는 김준호가 '꽁트'식으로 하는 것을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거나,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무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개그콘서트>를 통해 단련되어 그 누구보다도 '꽁트'에 뒤질 자원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된다면, 금방 변덕스런 시청자들은 외면할 것이다. '먹방'도 마찬가지다.

 

'친구 찾기' 미션이 그랬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이 프로그램이 친구란 주제를 통해 무언가 더 말하리라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도 친구지 하면서 예의 꽁트와 먹방을 하며 즐기는 걸 보면서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쉼표 하나도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3. 6. 9. 10:19

'Bad Girl'로 돌아온 이효리가 예능을 순회 중이다.

이미 관계자들과 이야기가 된 것이라 하면서 음악 방송 출연은 2주차로 접었던 것과 달리, <라디오 스타>, <맨발의 예체능>,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화신>, <안녕하세요>, 그리고 케이블의 <스토리 우먼쇼>까지 줄줄이 출연할 혹은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물론 담당 피디의 오랜 읍소에도 불구하고 이효리의 출연이 고사해 가는 프로그램의 생명 연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까 싶은 <맨발의 예체능>같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해피투게더>와 <라디오 스타>처럼 이효리의 출연 만으로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예능 대세 이효리를 진가를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예능인으로서의 이효리가 가진 Bad Girl'로써의 이미지를 일괄적으로 충실히 소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효리가 이번에 들고 나온 앨범의 컨셉이 똑같다 보니, 이효리는 이전보다 한껏 더 거침없고, 더 직설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Bad Girl'로써의 이번 앨범은 1위를 단번에 했든 그렇지 않든과 상관없이 이효리다운 아우라를 충분히 발산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수가 늘어나면서 도대체 사적인 자리인지, 방송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이 하나 둘 등장하기도 하고, 그녀의 도발적 발언과 행동들에 대한 호불호가 연일 인터넷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으로 치자면 꽤나 성공한 컨셉이라 하겠다. 하지만 한편에선 다시 예능으로 돌아올 이효리를 기대하고 있지만,출연을 거듭하면 할 수록, 제 아무리 기가 센 Bad Girl'로써의 컨셉도 그저 소비될 뿐, 오랜 예능 경험에도 여전히 길들여 지지 않은 혹은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듯한 이효리는 '뜨거운 감자'로, 그저 '해프닝 용'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 가운데 유독 예능인으로 Bad Girl 효리를 소모하지 않는 예능이 바로 <땡큐>이다.

지난 주에 이어 2회에 걸쳐 방영된 <땡큐>는 마흔 셋 한때는 가수였으나 이제는 잘 나가는 쉐프가 된 이지연에, 새로운 앨범을 가지고 돌아온 이효리, 그리고 원더걸스 였으나 연기자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예은 등 이른바 한때 우리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디바'들의 시간이었다.

기센 언니 효리도 한때는 이지연의 팬이었고, 그리고 다시 이효리보다 10년이 어린 원더걸스가 있듯이 흘러가는 디바의 시간은 <땡큐>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수가 아닌 쉐프라도, 3년만에 다시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앨범을 들고 돌아와도, 세월이 흘러 '거울 앞에서 은은한 미소나 짓는 우리 누나'가 아니라 여전히 강풍기 앞에서 뒤질세라 앞자리를 탐내는 '기센 언니'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백하게 전해주었다.

 

누가 누가 더 기가 세나 자랑만 한 것도 아니었다.

100명의 미스코리아들을 모아놓고, 지나간 자신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자신에게 '지금의 너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효리의 눈물어린 고백과, 처음 쉐프가 된 후 맡겨진 양파 튀김을 최고로 해내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던 한때 최고의 가수 이지연의 솔직한 속내는 '기가 센' 여자들로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 왔던 시간의 뒤안길을 슬며시 엿보며 애틋해지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오해도 풀었다.

이효리가 이상순을 만나 채식도 하고 소셜테이너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순이 이효리를 통해 달라졌다는 사실을 전해들으며 그간 우리가 얼마나 이효리를 얕잡아 보고 있었는가 뜨금하기도 했다. 이효리의 멘토가 없으면 안쓰는 그저 주어진 것에 행복해 하는 '윤영배'라는 사실에 달라진 이효리를 체감하게도 되었다. 한때는 '국민 나쁜년' 이었던 이지연의 노래를 하고도 할 수 없었던 , 혹은 낯선 땅에서 가진 것 없이 막막하기만 했던 수렁같은 시간을 통해 마흔 셋의 이지연을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효리의 눈물 어린 고백에, 지금 그 자체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환호하는 100명의 여성들의 박수는 그저 스타를 향한 우러름이 아니라, 진솔한 공감과 소통이었다.

소비하기 편한 이미지로 재단되어 있는 이효리와 그렇게 한때 소비되고 버려졌던 이지연을 통해 '디바'로 살아가는 삶의 속내를넘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여성의 삶을 느낄 수 있어 진짜 모처럼 '땡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3. 6. 8. 09:51

처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가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옥정을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더니, 이젠 하다하다 초능력까지 등장하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웬걸, <너의 목소리> 첫 장면, 고성빈(김가은 분)이 친구를 골리기 위해 대걸레에 본드를 칠해 놓은 걸 안 박수하(이종석 분)는 대신 그 덫에 자청해서 들어가고 덕분에 반 일진이랑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날라오는 일진의 주먹을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먼저 읽은 덕분에 박수하는 가볍게 일진을 제압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에게 낯선 박주하의 초능력은 기껏해야 반 아이와의 싸움에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친근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2회 말 박주하의 말처럼 그저, 키가 좀 더 크거나, 머리가 좀 더 좋거나 처럼 남보다 조금 나은 능력으로.

초능력이란 비현실적 능력을 설명하는 방식을 그 대단함을 내보이면서도 더 낯설게 하기 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기에, 고가은의 짝사랑하는 마음을 읽는거나, 지하철에 뛰어들려는 마음을 읽는 것이 오글거리거나,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레 극에 안착하게 된다.

 

sbs의 새로 시작하는 수목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드라마인 듯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초능력이란 낯선 소재도, 법정물이라는 딱딱한 형식도, 다짜고짜 첫 회부터 등장하는 살인과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등장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 안에서 튀지않고, 낯설지도 않게 익숙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

남자 주인공 박수하의 초능력을 설명하는 것 외에도, 국선 변호인이 되기 위한 면접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과거로 넘어가는 매끄러운 연결에 감탄이 나올 정도인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등장과 그들의 과거사, 그리고 그들의 관계 설정에 무리가 없다. 무리수 없는 아역들의 조우로 인해, 심각하게 나이차가 나는 두 주연, 이종석과 이보영의 어울림이 얼토당토해 보이지 않는다. 차관우(이종석 분)가 너를 지켜주겠다며 장혜성(이보영 분)을 찾아 헤매거나, 그녀 옆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너무난 당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속보이는 뻔한 무리수 없이 잘 차려진 드라마를 본 게 얼마만인가 감격스레 헤아려 보게 싶게 말이다.

 

(사진; 스타투데이)

 

물론, 등장인물 누구 한 사람 연기로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박수하 역의 이종석은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무심한 듯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고등학생 역할로 얼마전 출연했던<학교 2013>의 캐릭터와 큰 진폭의 차이가 없지만, <학교 2013>의 호평에 힘입어서인지, 한결 연기에 자신감이 붙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순정 만화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한 외모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는 시청자에게 훈훈함까지 보너스로 얹어주는 느낌이다.

한때 서영이였던 이보영은 여전히 변호사이지만, 서영이가 아니다. 국선 변호 자리에서 싸가지 없게 틀에 박힌 변호문을 읽어내리는 이보영은, 그저 장혜성일 뿐이다. 그녀 못지 않게 최근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만난다 싶었던 김소현 역시 그 과잉 출연 논란을 잠재울 만큼 장혜성스러웠다.

그리고 반가운 건, 윤상현의 귀환이다. 시크릿 가든의 성공 이후 일본 진출과 영화 등으로 본인은 바뻤을 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나가 있었던 그가 화신에서 보였던 실재 윤상현의 도플 갱어같은 차관우로 돌아온 것은 무엇보다 반길 일이다. 양복에 하얀 양말을 신고, 가방은 꼭 부등켜 안는, 한없이 착하고 의리있어서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한 차관우의 매력은 단 2회만에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과연 이 사람이 한때 무게 잡으면서 뻗뻗하게 실장님 연기나 하던 사람이 맞나 싶게.

좋은 배우들의 적절한 연기, 그리고 주렁주렁 이야기 보따리가 달린 것처럼 풀어낼 꺼리가 많아보이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벌써 다음 주가 궁금해진다.

 

허기사,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전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털고 보면 굳이 먼지날 것이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발목을 잡았다. 반면, 초반부터 초능력이란 난해한 소재조차 가뿐하게 이해시키고, 법정물의 딱딱함을 흥미진진한 사건과 캐릭터의 대결로 말랑말랑하게 만든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게는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당당하게 2회 만에 수목극 1위 자리를 꿰어 찼다.

부디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초반에 벌려놓은 화려한 진수성찬을 마지막까지 잘 수습해 나가길 바란다. 막장이어야 시청률이 올라가는 아이러니를 단번에 깨부술 수 있게.

by meditator 2013. 6. 7. 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