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인간의 조건>,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무한도전>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맞다. 바로 남자들만의 예능이다. <<런닝맨>과 새로 시작하는 강호동의 예능 <맨발의 친구들>은 여성 멤버가 있긴 하지만 프로그램 내내 종횡무진 달려야 산다던가, 외국에 나가 무일푼으로 그 나라 사람처럼 생활해야 하는 포맷은 여성을 포함한다지만 기본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남성적이다. <남자의 자격>이 101가지의 미션을 다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장이 되어 사라진 것을 아쉬워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다하지 못한 군대 체험하기, 혼자 생활하기 등의 미션들은 분화되어, 여러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어 각개약진 중이다.

 

1세대 예능; '북치고 장구치고'

종영한 <남자의 자격>도 그렇고, 건재한 <무한도전>도 그렇고, 프로그램의 관건은 어떤 미션이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남자의 자격>이 합창 미션을 통해 멤버들의 수장 이경규가 연예대상을 다시 거머쥘 수 있었던 것처럼, 미션에 따라 프로그램의 부침이 오고간다. 실제 <남자의 자격>이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프로그램의 종영을 앞당긴 것도, '화무십일홍'이라고 유효기간이 지나 '합창' 미션에 연연한 탓이 크다.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다하는 두터운 팬 층을 지니고 있지만, '돈을 갖고 튀어라' 등의 미션에 따라, '무한도전답다' 라던가, '너무 매니악하다'라던가의 평이 엇갈리며 시청률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서 <1박2일>도 장소에 따라 '삶의 현장'급의 체험을 하기도 하고, 맛집 투어가 되기도 하며, 복불복의 살벌한 배틀 현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1세대 예능들은,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램 틀 안에서 무한변주를 해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미션'을 위한 '미션' 그 자체가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조건

 

2세대 예능; 하나만 잘 하자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는 마치 앞선 프로그램들의 한 회차 분의 미션을 옮겨 놓은 것처럼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시작한다. 이미 1세대 예능들이 자리를 잡거나, 그 인기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이랄까.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시작한 예능들은 오히려 그로 이내 색다른 묘미를 자아내며 순항 중이다.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란 부정적 상황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세번째 미션(파일럿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네번 째) 돈 없이 살기를 통해 멤버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직업, 그리고 현대 사회를 이루는 돈이란 것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중이다. 미션은 부정적이되, 그 부정을 통해 늘 얻어가는 건 '삶의 긍정'이랄까.

<나 혼자 산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간보듯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된 남자들이 혼자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대 사회의 부정적 산물인 '혼자 살기'를 그저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모습의 하나로 긍정한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악플을 남긴 데프톤의 스타일처럼 이미 거기에 길들여진 모습도 나쁘지 않다며 보여준다.

이제 막 시작한 <진짜 사나이>는 더더욱 역설적이다. 남자들이 가장 꿈꾸기 싫은 바로 그 군대 다시 미션이라니!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는 <푸른 거탑>의 리얼리티 버전이라는 것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겠다. 하지만, 시트콤과 리얼리티는 또 다른 질감을 자아낼 것이니, 이미 1회의 방영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했다.

이처럼 2세대 남자들의 예능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상황들을 미션으로 시작한다. <진짜 사나이>의 예후는 아직 진단하기 이르지만, <인간의 조건>과 <나 혼자 산다>는 그 부정적 상황을 통해 오히려 '힐링'을 추구한다. 혼자 살지만 나쁘지 않다라던가, 혼자 살아도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어 라는 걸 보여주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인간의 조건>은 더욱 성찰적이다. 당신이 목매어 사는 자동차, 돈, 이런 것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멤버들의 체험을 통해 되묻곤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대안적 삶까지 슬쩍 곁들인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예능들의 주제가 '힐링'이다보니, 이 프로그램들의 미션은 1세대 예능들처럼 강요적이지 않다. 숨가쁘게 시간 안에 달성해야 할, 때로는 서로를 속고 속이며 도달해야 할 목표는 없다. 오히려 이미 나 혼자 사는 삶의 제한성, 혹은 분기 별로 주어지는 ~없이 살기가 밑에 깔리다 보니, 그 안에서 멤버 각자 혹은, 미션 별 다양함은 풍부해진다. 덕분에 데프콘은 빨간 무개차를 타고 달리며 맘껏 제주도의 먹방을 보여줄 수 있고, 돈을 벌기 위한, 김준호, 박성호 vs. 양상국, 허경환의 다른 선택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없이 살기'를 가지고 몇 주나 버틸까 싶지만, 매번 색다른 빛깔로 멤버들의 체험은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질문을 던진다.

 

무지개 명예회원 :: 무지개 아지트에서_1

 

꼭 남자들만의 예능이어야만 할까?

세상은 점점 더 여성이 우위를 차지해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에서 직원의 비율과 승진 기회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예능에서의 남초 현상은 여전히 두드러진다. 물론 <인간의 조건>처럼 한 집에서 머무르는 한계적 상황에서 여성 멤버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파업 기간이라는 변칙적 상황에서 편성된 <무한 걸스>의 처참한 시청률과, <남자의 자격>의 뒤를 이은 성격은 다르지만 여성 예능임을 내건 <맘마미아>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건 갈 길이 먼 여성 예능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남성'들의 예능이 남성을 이해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이젠 '군대가기'까지 주말 황금 시간대로 끌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건 오히려, 예능을 통한 '남성'의 이해라기 보다는 '남성'의 소비에 가깝단 생각이 드니까.

by meditator 2013. 4. 21.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