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용석의 tv출연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그를 욕하던 사람들조차, 최근 종편과 케이블의 방송에 출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꿔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심지어 호시탐탐 정치인으로써의 복귀를 노리는 그를 두고, 이러다 대통령 후보에 까지 나서는 거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무슨 대통령 후보! 라는 말에, 왜 안되냐고, 전 대통령이 <야망의 세월>과 <사랑과 야망>을 통해 대통령까지 됐는데, 강용석이라고 안될게 무어 있냐고 '이미지 세탁'의 성공적 사례까지 들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젼을 통해 등장한 인물들, 사건들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야망의 세월>이나, <사랑과 야망>의 남자 주인공은 그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의 모델이 된 누군가가, 정말 드라마 속 그 사람처럼, 의지의 입지전적 인물에, 정의롭고 양심적인 리더라 믿으며 한 표를 행사했다. 그리고 그 사람만큼, 그 사람이 모델이 되어 등장한 드라마 속 우리나라는 '수출 입국'에 '건설 입국'의 성장기의 화려한 조명만 반짝거렸었다. 한강을 따라 즐비한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신도시라는 신기루를 완성하기 위해 부서지고, 빼앗기고, 쫓겨난 삶의 흔적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전쟁의 상처와 가난을 딛고, 그 산동네를 탈피한 '개천에서 용난' 신화만이 부각되었었다.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각자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킨 승리자가 되어야 했고, 그 성공 가도에서 일탈은 곧 그저 가난이 아니라, '패배자'라는 단호한 낙인까지 찍혀야 했다. 누구나 부지런히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 성공해서 번듯한 내 집 한 칸에서부터 대통령까지 될 수 있는 시대였고, 그렇지 못한 이유는 게으르고, 술독에 빠져있고 노름이나 하는 모자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사진; 스캔들의 한 장면, 뉴스엔)
하지만, 그 '성공시대' 대통령의 5년이 정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한때는 유행어였지만, 정작 히트작은 되지 못했던 어느 영화 주인공의 (사실은 실제 탈주범의)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현실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을 가져서 '하우스 푸어'가 되고, 젊은이들은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면 '88만원' 세대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성공'이란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빈익빈 부익부'의 처절한 리그만이 현실이 된 시대에, 이제 드라마는 한때 영광과 승리로만 윤색되던 시대를 솔직하게 복기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고. 그 성공 뒤에 스러진 삶들이 있다고.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과 1990년을 배경으로 한 <황금의 제국>은 공교롭게도 '건설 입국'의 뒤안길을 다룬다.
<스캔들>에서 등장한 건설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안전 기준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설계 도면을 고친다. 심지어,그로 인해 건물이 붕괴될 위기에도, 그리고 붕괴된 이후에도 자신들의 죄과에 대한 반성이나, 사람의 생명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우선되는 도덕적 불감증와 자본 이기주의의 끝장판을 보여준다.
<황금의 제국>에는 철거 대상인 건물과 거기에 남아 농성을 하는 사람들과, 철거 깡패들과, 그들을 부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또 다른 '건설 자본'이 등장한다.
<스캔들>에서 88년 올림픽은 범국가적 축제가 아니라, 철거민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시위도 할 수 없는 준계엄령이 상황이요, 그것을 경찰과 공무원의 비호 아래 폭력적으로 밀어 붙일 수 있는, 그리고 건물 붕괴를 테러 위협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걸 보여준다.
(황금의 제국, 사진; 엑스포츠 뉴스)
<황금의 제국> 역시 마찬가지다. 장태주의 아버지는 60평생 열심히 일해 가게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권리금까지 주었지만, 그 가게는 단 한 달만에 철거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에게 닥친 건, 철거 깡패의 무차별 폭력이요, 가게 주인이 응급실에서 생명의 경각에 놓인 태주의 아버지에게 돌려 준건 입에 발린 '기도'뿐이었다.
철거민들의 시위, 분신 자살, 철거 깡패, 경찰과 공무원의 비호, 건설 자본의 폭거, 이것이 이제와 무에 그리 새삼스러운 거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그 시절에는, 그저 대학생들의 유인물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진실'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비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혹은 신문 하단을 통해서만 단신으로만 전해지던, 절대로 방송을 통해서는 보여지지 않던, 역으로 성공의 팡파레만 울려퍼지던 그 시대의 사실들이, 이제야 버젓하게 그 시절 사실은 이랬다며 이야깃거리가 되어 나타난다. 격세지감이다.
물론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전히 용산을 비롯해서 많은 곳에서 철거 현장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싸우고, 다치고, 잡혀가고, 죽는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여러 첨탑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에도 여전히 진행중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기의 이야기가 당장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시절의 이야기들이 필요한 그 어느 때를, 이 시절의 이야기를 용감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그 어느 때를 또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대 '빈익빈 부익부'에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그 시절의 진실들은 묘한 위로가 된다. '성공'만이 삶의 바로미터가 아니라는 것을, '빈익빈'이 패배가 아니라, 제도적 부조리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통해 이 시절의 고단한 삶을 버틸 자존감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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