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님이 쓰신 수필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느 가난한 노파의 집을 찾아가게 된 박완서 작가님, 그곳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있는 노파의 아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몸조차 늙어 버거운 노파는 그 커다란 덩치의 아들이 버거워 욕을 하며 이리저리 굴리듯 아들을 다뤘다. 
그걸 본 박완서 작가님은 질투심에 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가 되었었다고 고백하듯 쓴다. 바로 그 얼마전 '참척'(부모를 놔두고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난), 그것도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보내셨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들이 죽어서, 그걸 견딜 수 없어서 세상과 벽을 쌓고 수녀원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는데, 비록 가난하고 늙고 병들고, 아들조차 일어설 수 조차 없어도 살아있는 아들을 만질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박완서 작가님같은 분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힐링 캠프>에 출연한 이지선씨의 오빠는 오래도록 그와 반대인 고통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in heaven' 뮤직 비디오 마지막 장면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차에 갇혀 불 속에서 죽어가는 여인을 보며, 오빠가 너를 저렇게 놔뒀어야 하는 게 아니었냐는 말 속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같았던 지선씨의 고통의 시간을 막연히 가늠해 보게 한다. 
그러나 이지선씨의 담백한 소회의 뒤편을 가늠하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시간을 , 박완서 작가님의 질투심의 본연인 그 '생명'의 손을 놓지 않고,  지선씨와, 지선씨의 식구들은 그저 살아있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용감하게 고통의 시간을 건너왔다. 아니, 그저 건너온 것이 아니라, 식구들이 지선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게 이겨왔다.
지선씨의 가벼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숨겨져 있는 고통와 아픔이 헤아려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다던 김제동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뭉클한데, 그런 시간을 견뎌온 지선씨는 웃으라며, 편하게 웃으며 말한다. '손가락 마디를 다 자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며


'꼬아보지 마세요'
눈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밝게 이야기하는 이지선씨 임에도, 그런 긍정의 여왕 이지선씨를 선뜻 믿을 수 없는 이경규는 언제나 그렇듯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아니 이경규만이 아니다.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아직도 일그러진 이지선씨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녀가 겪어온 고통의 시간을 들은 시청자들조차 그녀의 밝은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지선씨는 웃으며 단호하게 한 마디를 건넨다. '꼬아서 바라보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티하나 없는 '무한 긍정'이 비단 이번 이지선씨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역시나 <힐링 캠프>가 가장 본연의 자태를 잘 드러내는 자리였던 지난 번 '닉 부이치치' 역시  '긍정적'이라는데 있어서는 이지선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라는 '닉 부이치치'와 '훙해서 어떻게' 하는 이지선씨가 오히려, 더 밝고 긍정적인 것이다. 영혼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영혼의 무게가 묵직할 그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보통사람이 욕구하는 삶을 극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해탈'의 경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저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닮아 하던 사고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지선씨의 결론이 그저 헛 말만은 아니라는 공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해 자신을 들볶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냐는 질문에, 바로 오늘이라며 지선씨는 해맑게 웃는다. 제 아무리 긍정의 여왕이라도 ,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밖에 나갈 때마다 연예인과 자신의 닮은 점 10가지의 주문을 외며 용기를 냈던 지선씨가 공중파 텔레비젼이라는 세상 밖으로 나온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by meditator 2013. 9. 10. 10:17
여기서 문제, <맨발의 친구들>에서 최고의 밥도둑으로 꼽은 '전복 장아찌'를 만들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그래도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 가보면 전복이 예전에 비해 꽤나 많이 싸졌다며 매번 '세일'이라며 파는 중이다. 그런데 그 가격이,  낯부끄러운 천원 깍은 9900원에 큰 건 두 개에, 작은 건 네, 다섯개까지 들어 있다. 이른바 라면에 넣어먹어 라면 전복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주 작은 것들은 열 개 정도 들어있는데, 그 크기가 정말 큰 강낭콩만하다. <맨발의 친구들(이하 맨친)>에 나오는 전복의 크기는, 이 중, 제일 비싼, 한 두어 개 들은 정도의 것이다. 

 그런 전복을 사다가 사다가 집에서 제일 많이 해먹는 것이 죽이다. 예전에 조상들이 죽이나 국을 해먹은 이유가 뭐겠는가? 넉넉치 못한 형편에 적은 재료에 쌀이나 물을 넣어 여럿이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안해 낸 요리가 바로 죽이나 국인 것이다. 음식점에 가서 전복죽이라고 나와도, 참기름 맛에 그저 전복이 지나간 듯한 음식이 나와도 우리는 전복이 비싸니 그러려니 한다. 몇 해 전에 비싼 전복 대신에 다른 해물을 넣고 전복죽이라 속인 것도 다 비싼 전복 탓이었다. 
그렇다면 이 전복으로 장아찌를 담그려면? 아니 장아찌를 담그고 자시고, 우선 맛을 본다며 <맨친> 멤버들이 한 두개씩 집어 먹은 것만 비용으로 쳐도 몇 만원이 훌떡 지나가 버린다. 
그런 비싼 전복으로 만든 장아찌가 밥도둑이란다. 



유통·소비자
배춧값 급등…aT ‘특급소방수’로 등판고랭지배추 풀고, 비축물량‧사이버직거래로 가격안정 유도
강근주 기자  |  kkjoo0912@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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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8  14: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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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투데이 강근주 기자] 기상 변화로 급등했던 배춧값이 9월 이후 하향 안정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추석과 김장철의 배춧값 안정을 위해 수매비축량으로 배추 수급조절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차독백이를 넣었는데, 어떻게 맛이 없을 수가 있어!'
<맨친>이 아니더라도 텔레비젼에 나오는 된장찌개에는 종종 '차돌박이'가 등장한다. 그러면 그걸 보던 친정 엄마는, 마치 그간 엄마표 된장찌개에 대한 자격지심이라도 느끼셨는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신다. 그렇다, 허긴 '차돌박이' 넣은 된장찌개 해먹는 집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한우 차돌박이는 구워 먹기도 비싸서 못사먹는데. 아마, 대부분 집에서 된장 찌개를 끓이면 대부분, 멸치 몇 마리 던져 넣어 끓인 물에 된장 풀어 끓인 레시피가 대부분 아닐까?

<맨친>의 흐드러진 '집밥' 먹방이 남기는 문제점은 저녁 시간, 먹고, 또 먹고, 또 먹어대는 '과식'을 부르는 식습관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도, 명색이 집밥이라며, 전혀 집밥일 수 없는 음식들을 들이대는데서 오는 위화감이 더 크다. 

요리 연구가 이혜정 씨 집의 요리에서, 모든 과일 등으로 효소를 담가 그것으로 요리의 맛을 낸다는 요리 비버까지는 배울만 했다. 하지만, 그 효소를 넣어 만들었다며 즐비하게 나오는 요리는 결코 '집밥'이 아니다. 갈치 조림의 갈치는, 요즘 한참 일본 방사능으로 어민들까지 나와서 세일을 하며 판매를 독려하는 마트의 제주산 갈치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크기였다. 줄잡아 한마리에 5만원은넘어보이고조금 덧붙이면 10만원짜리는 되어 보였다. 그 정도인데, 무슨 양념을 한들 맛이 없겠는가. 

아니 그 보다도 더 서민들의 입장에서 속상한 건, 어느 집을 가나 푸짐하게 만들어 내는 묵은지 김치찜이다. 9월이다. 작년에 김장을 많이 해놓는다 해도, 김장 김치도 떨어져갈 시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김치를 담가 먹어야 하는데, 요즘 배추 값이 얼만인 줄 아는가? 고냉지 배추가 나와서 내렸다고 하는데 한 포기 7,8000원이다. 그나마 만원을 넘어가던 가격이 내린게 그 정도다. 하도 배춧값이 오르니, 김치 냉장고 회사가 다 떨고 있다는데, 김치 냉장고에 가득한 묵은지라니.언감생심이다.

맨발의친구들
(사진; tv데일리)

<맨친>의 취지는 좋았다. 집밥을 먹어보고 그 중 맛있는 것을 혼자 사는 친구에게 가져다 준다는 취지는 따뜻했다. 아침방송 같은 먹거리 소개 방송에서 조금 진화한 거 같기도 했었다. 하지만, 김나운, 홍진경, 이혜정의 음식이 정말 집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집에서 한 상에 전복 장아찌에, 몇 만원하는 갈치 조림에, 묵은 김치찜에, 차독박이 된장찌개를 차려서 먹을까? 이건 잔칫상도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의 경지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진 사람들에게 힘든 문제가 바로 먹고 사는 문제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저 먹는 것만도 버거운 시기에, 이런 걸 '집밥'의 먹방으로 들이밀 면, 진짜 곤란하다. 


게다가 매번 대뜸 남의 집 음식을 맛있게 보일려고 덥석 맨손으로 집어 먹는 것고 좀 그런데다가, 설거지 먹방이라며 이미 배무르게 먹은 뒤에 다 집어 넣고 비빈 뒤에 자신이 한 숟가락 먹고 그걸 다른 멤버들에게 권유하는 장면이나 밥풀 묻은 숟가락을 부주의하게 텀벙 찌개에 넣은 모습은 '맛있어 보이는' 수준을 넘어선다. '호의'가 사라진 강호동의 먹방은 부작용를 부른다.

왜 굳이 좋은 취지를 분에 넘치는 음식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쌀을 지푸리게 만드는지, 어디서 본듯한 기획도 기획이지만, 그 기획조차도 항상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맨친>이 아쉽기만 하다. 저녁 시간 배고픈 사람들을 진수성찬으로 꽤어 내려는 얍삽한 시도가 아니었다면, 정말 소박한 엄마의 정이 느껴지는 집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9. 9. 09:54

첨엔 혼자라는게 편했지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에 
너의 기억을 지운듯 했어 정말 나 그런줄로 믿었어 
하지만 말야 이른 아침 혼자 눈을 뜰때 

내 곁에 니가 없다는 사실 알게 될때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건 없니 ? - 작사, 작곡; 토이, 여전히 아름다운지

2013년 9월7일 하루동안 유희열은 분주했다. 
우선 저녁 6시 30분, 2013 무도 가요제를 준비하는 첫 방송인 <무한 도전>의 무도 나이트에 출연한다. 이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나이트 특집을 스스로 웨이터 버전이 되어 몇 번이나 치뤄봤던 유희열에세 무도의 나이트 버전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무도 멤버들이 이구동성,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평가처럼, 유희열은 마치 예전에도 그곳에 있던 사람처럼 무도에 스며든다. 또한 함께 할 파트너를 선택하기 위한 댄스 음악에 맞춘 독무를 추거나, 파트너를 골라 함께 블루스를 추는 장면에서 그의 '감성 변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내기까지 한다. 

이어서 11시 30분 tvn으로 넘어간 유희열은 <snl>의 고정 크루가 되어, '위켄드 업데이트'를 단독으로 진행한다. 첫  방송에서는 유희열이 하면 매우 친근해보이지만, 남들이 하면 쳐맞을 예의 '감성 변태'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며 수지에게 영상 편지를 쓰고, 신동엽이 분한 이엉돈 피디의 '몸으로 풀다' 코너에서는 대본에도 없던 신동엽의 젖병 들이대기를 난처해 하면서도 유연하게 받아 넘겨 합격접을 받아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그의 라디오 방송을 봤던 사람들이나, 그의 신봉자들만이 알고 있던, '감성변태'라는 그의 캐릭터가 공인된 캐릭터로서 만방에 소개된 날이었다. 

(사진 ; 한국 경제)

난 난 꿈이 있었죠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가슴 깊숙히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뜻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때도
난 참아야 했죠참을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작사, 작곡; 카니발, 거위의 꿈


텔레비젼을 통해 유희열의 '감성 변태'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은 바로 '방송의 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적은 빨간 하이힐에 얼굴을 묻고 인공 호흡을 하고, 존박에게 채찍을 휘두르다 둘만 남자 그에게 엉겨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 말 그대로 변태로서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선보였다. 
하지만 유희열이 그 프로그램에서 그런 면모를 보여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방송의 적>의 호스트 이적이 유희열에 못지 않은 속물의 캐릭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방송의 적>을 통해 이적은 그럴싸한 뮤지션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그저 여자만 밝히고 윗 사람 대접 받기를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 속물인 이적의 캐릭터를 실제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해냈었다. 


 포토 보기

그것만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 봐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 -작사, 작곡; 유희열/편곡 이상순, 여전히 아름다운지

화요일 밤 11시 onstyle에서 방영되는 <이효리의 x언니>란 프로그램의 가장 실질적 수혜자는 안타깝게도 데뷔를 준비하는 '스피카'가 아니라, 이효리의 피앙새, 아니 이제는 남편, 이상순이다. 
종종 이효리가 방송을 출연할 때면, 슬그머니 등장해 함께 하거나, 멀찍이서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이상순이 이제는 <이효리의 x언니>를 통해 출연하고 그 누구보다도 멋진 그의 매력을 한껏 펼치고 있는 중이다. 조용조용 촌철살인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효리의 눈에 힘이 들어가면 슬그머니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가는, 하지만, 언니 이효리보다, 어린 걸그룹에게 미소가 지어지는, 또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타줄을 튕기며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 냄새 풀풀나는 이상순이라는 캐릭터를 또한 창조해 가는 중이다. 

이효리 이상순


유희열, 이적, 이상순 등은 대표적인 90년대의 아티스트 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 분모를 굳이 꼽아 내자면, 바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감성'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스무 살 시절, 김동률과 조급하게 만들었다며 후회하는 '거위의 꿈'이 당대 최고의 가수 인순이를 통해 국민 가요를 만들고, 이별 하면 언제나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 처음인가요~'라는 '이별 택시'를 떠올리게 되는 젊은 감성의 대변자들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노래하던 그들이 나이가 들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으로 남기며 그 추억 속에 고고하게 남아있는 전설로 살아가는 것과 달리, 그들은 현실로 내려온다.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노래하던 그 사람들이 나이가 드니 그저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넘어 아저씨, 그것도 한 술 더 떠 변태같은 아저씨가 되어감을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통한다. 아들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즐겨 '방송의 적'을 찾아본다 하고, 텔레비젼 화면 안으로 들어온 '유희열의 감성 변태'에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나이들어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조차도 쉽게 내보이지 못하는 그 허영을 겉어내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그 모습이 좋은 것이리라. 마치 아들과 함께 ** 비디오를 보는 아버지같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90년대의 고고한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2013년의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한 젊은 감성에 여전히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물론, 그저 '통'한다는 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점도 있다. 이제 아이돌이 아닌 중견 가수 그룹들은 자신의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서기 힘들다. 남의 노래를 잘 편곡해서, 화려한 무대 장치까지 얹어야, 그나마 그의 이름이 검색어에도 좀 오르고 그런 시대가 되었다. 오랜 칩거를 끝낸 이소라가 힘겹게 '나가수'에 무대에 올라 보아의 'no.1'을 부르는 것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유희열은 그토록 팬들이 기다려 마지않던 그의 음악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현실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감만으로는 유희열의 음악을 널리 알리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치 상륙 작전을 하듯, <무한도전>과 <snl>을 통해 자신을 알리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작년에 같은 소속사의 정재형이 무도 가요제를 통해 톡톡히 수혜를 얻었기에 더더구나 예측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유희열이 속한 '안테나 뮤직'과 이적이 속한 '뮤직팜'에 속한 가수들의 행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동률이 자신의 콘서트에서 그저 예전의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과거의 사람인 것 마냥, 씁쓸하다는 말을 남겼던 적이 있다. 하늘 나라의 고고한 영역을 떨치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온 90년대의 감성 뮤지션들, 삶은 고난하지만, 그 고난조차 즐기려 애쓰는 그들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by meditator 2013. 9. 8. 10:58

광고가 끝나자 마자, 화면에 비춰진 것 그 열기가 화면 밖에서도 느껴지는 화염에 휩싸인 화재 현장이다. 

그리고 그 화재 현장을 향해, 이원종, 조동혁, 박기웅, 전혜빈, 최우식 등 익숙한 얼굴들이 방화복을 입고 나타난다. 방독면을 쓰고, 소방 호수를 들고 불타는 건물을 향해 달려 들어간다.
그런 그들의 모습 아래 씌여진 자막엔 이렇게 씌여있다.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도대체 왜 예능에서 신의 도움이 필요한 걸까?

일찌기 <맨발의 친구들>에서 단 몇 주의 연습 만에 은혁, 김현중, 유이 같은 친구들을 10 m 높이의 다이빙대로 내몰았을 때, 그 위험성은 예견되었었다. 
'다이빙'이란 운동이 그저 물로 뛰어들기만 하면 장땡인 단순한 운동이 아니란 것이 그들이 높이를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아득한 땅과의 거리감, 그리고, 잘못된 폼으로 떨어질 때 나는 무시무시한 물과의 마찰음만으로도 충분이 느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무모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맨발의 친구들>의 다이빙 미션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다. 

스플래시 이봉원
(사진; 마이데일리)

하지만 그게 '신의 가호'라는 걸 깨닫지 못한 예능계의 제작진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다이빙 쇼를 기획하고 선보이기에 이르른다. mbc의 <스플래쉬>
하지만, '신의 가호'는 <맨발의 친구들>에게 주어진 단 한 번 만이었나 보다. <스픞래쉬>의 촬영 중 이봉원은 얼굴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기에 이르른다. 이봉원만이 아니다. 아이비, 클라라, 샘 해밍턴 등 다른 출연자들도 입원할 정도가 아니었을 뿐이지,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이봉원의 부상을 그저 별 거 아닌 타박상으로 덮으려던 <스플래쉬>에게 돌아간 것은 '종영'의 결정이다. 

<맨발의 친구들> '다이빙 편'과 <스플래쉬> 그리고 파일럿으로 방영된 <심장이 뛴다>는 달라보이지만, 리얼리티 예능이란 점, 그리고 연예인들이 자신의 직업과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 점에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을 찾는다면,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종교를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찾게 될 때가 어떤 때일까? 자신의 능력 밖의 일에 운명적으로 몰리게 될 때가 아닐까? 자신의 힘으로 해내기엔 버거운 어떤 장벽에 부딛쳤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심장이 뛴다> 첫 회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소방관이란 직업의 강팍한 노동 조건과, 고된 일상,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을 보람을 느끼게도 되지만, 그것에 앞서 지배하게 되는 정서는, 119로 상징되는 위급 상황에, 훈련이라기엔 미흡해 보이는 아주 짧은 시간의 교육을 받은 연예인들을 보는 위태로움이다. 
아마도 <심장이 뛴다>의 기획 아이디어의 모태가 된 것은 <진짜 사나이> 였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군부대 체험이 인기를 끌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보다 더한 체험 과제를 들고 나서보자, 뭐 이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사나이>와 <심장이 뛴다>나 다같은 체험 리얼리티 예능인데, 보는 사람이 느끼는 정서는 왜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걸까?

(사진; osen)

군대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다 다녀와야 하는 의무적인 과정이다. 즉, 누구나 다 해야하는 과정이고, 그저 평범한 성인 남자가, 고된 훈련을 거쳐, 말 그대로 진짜 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우선 8주간의 훈련소 기간이 있는 것이고, 각 부대에서도 이른바 '짬밥'이라고 계급이 있는 것이다. 거기다, <진짜 사나이>의 멤버들이 군대에서 하는 일 대부분은 진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내가 다녀왔고, 나의 아들이 지금 하고 있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김수로의 어깨 부상처럼 거기서도 이미 사고는 있었다. 

심지어 훈련만 하다가도 사고를 당하는데, 소방관은 다르다. 그건 고도로 훈련된 전문인인 것이다. 연예인들이 그저 잠깐 가서 방화복을 제 시간에 맞춰 입는 훈련을 하고,소방 호스 잘 굴리고 맞추는 훈련을 하고서 현장에 투입되는 그런 무모한 시도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극한의 강도를 지닌 직업인 것이다. 
게다가, 방송에서도 보여지듯이, 소방관이 하는 일은 그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119 구급 전화로 오는 모든 급박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자해를 한 사람을 구조해야 하고, 방치하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지도 모르는 동네 말벌 통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우식처럼, 바늘이나, 피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트라우마가 있는 연예인을 환자를 구하는 현장 출동 과정으로 내몰게 되는 것이다. 최우식이 그나마 견뎠으니 망정이지, 혹시나 그 현장에서 피를 보고 쓰러졌다면 어떡할 뻔 했나?(실제로 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피만 봐도 졸도를 하기도 한다) 그것도 리얼리티라고 찍어서 내보냈을까? 

차라리, <진짜 사나이>를 흉내내고 싶었다면, 소방학교 정도 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파일럿'이라는 짧은 시간에 시선을 확 사로잡을 그 무언가를 내보여야 할 조건은, 제작진으로 하여금, 소방관이란 직종의 전문성, 극한성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잊을 만 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이, 소방관들의 순직이나, 사고이다. 오랜 훈련과, 그보다 더 고된 현장에서 단련된 소방관들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절체절명의 현장 상황인데, 거기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연예인들을 들이미는 것은, 몇 주 되지 않은 훈련 과정만으로 10 m 높이의 다이빙 대로 내모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니, 2주간의 파일럿이 제작된 것을 보니, 다행히도 사고는 없었던 듯 한데, 이것이야 말로 진짜 '신'이 도와준 게 아니었을까.

일찌기, <1박2일>로 리얼리티 예능이 꽃을 피우면서, 출연자에 대한 가학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 와 돌아보면, <1박2일>때는 먹을 거 안주고, 찬 데서 재우고, 겨울날 옷 벗기는 정도였으니, 애교에 속했다. 
사실, <꽃보다 할배>를 대중적 이슈로 만들어준, 오프닝의 이서진 속이기 해프닝은, 이서진이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걸그룹과 여행을 가겠다고 하고, 할배들을 떠억하니 들이미는 것은 따지고 보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술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논란도 되지 않고, 온 국민이 그걸 보고 웃고 넘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다음 타자들은 더 독하게, 더 세게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훈련되지 않는 이들을 다짜고짜 높은 다이빙대 위에, 불꽃이 넘실되는 현장으로 내몰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서진이 낮은 시청률로 종영한 mbc의 <계백> 이후로 선뜻 후속작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가, <꽃보다 할배> 이후로 여러 작품의 주인공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것, 역시, 연예인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힘들게 오랜 시간을 들여 캐릭터를 분석하고 밤 잠을 못자고 연기를 하는 것보다, 예능에 나와서 사람들을 한번 웃게 만든 것이 더 그의 다음 캐스팅에 영향력을 행사하니, 어찌 이 고난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체험, 삶의 현장>의 생존의 키가 된 것은 바로 열대 지역으로 체험을 다녀온 배우의 죽음이었다. 물론 이봉원 개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정도에서 위험한 다이빙 쇼를 끝낸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일 지도 모른다. 
<심장이 뛴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운좋게 파일럿은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방관의 현장을 뛰는 연예인들의 리얼리티는 위험성이 너무 높다. 만약에 정규 편성이 된다면(?) 이에 대한 제고가 분명히 필요하리라 본다. 
아니, 무엇보다,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저 한 발 더 나아간 무모한 시도를 신선한 기획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어설픈 시도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3. 9. 7. 10:10

일단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글을 시작해 볼까?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시리즈 -연우의 여름(이하 연우의 여름)>은 시청률이 잘 나올 드라마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참 스토리는 뻔하다싶기에.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인디 밴드의 보컬인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딸 연우(한예리), 다친 엄마를 대신해 어쩔 수 없이 빌딩 청소부 일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초등학교 동창생 지완(임세미)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해 소개팅을 나가는데, 거기서 만난 남자가 괜찮다. 그래서 딱 잘라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되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되고......
엄마 대신 빌딩 청소부라는 설정은 희귀하지만, 친구의 남자를 대신 만나 사랑을 싹틔우는 설정은 어디선가 흔히 마주치던 드라마의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연우의 여름>을 진부하다고 눙쳐버리면 몹시도 섭섭하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몇 줄의 글로 정리되는 스토리 라인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매력은, 우리가 차에서 내려 애써 골목길을 걸으며  좋다라고 하는 '공감의 정서'가 필요한 것이기에, 누구나 다 좋아할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드라마 스페셜>이란 영역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신선한 태도,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러니 제발, 이 시간만큼은 시청률의 잣대로 드라마들을 묶어 놓지 말기를. 



마치 수능 국어시간 시험문제의 답안처럼, <연우의 여름>이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연우의 청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청춘은 인디밴드의 보컬이라는 사회적 존재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대신해 빌딩 청소부로 나갈 수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능력이 없어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애매하고 나른한 존재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그런 연우의 처지를 구구절절 스토리로 설명하는 대신 2013년 서울의 여름을 비춰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청소부 연우가 빌딩 난간에 기대어 보는 막막한 하늘, 연우를 제외하고는 싱그럽게 여름의 활기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 

윤환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연우의 마음은, 한강 다리 너머로 보이는 흑백의 톤같은 하늘과 풍경이 대신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수능 국어 시간 문제같은 제목보다 더 은유의 효과를 한껏 내보이고 있는 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풍경들이다. 집이 어디냐며 데려다 주겠다고, 연우를 친구 지완의 집 앞에 내려주고 떠나는 윤환(한주완 분)의 차 뒤로 이어지는 건, 차 한대도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은 연우네 집 앞 골목이다. 
이 심오한 풍경의 문제를 애써 노력해서 풀어내는 여유가 리모컨 조급증에 시달리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을까 저어되면서도, 한편 애써 그 시험에 든 사람들은 조금 더 보태,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심전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8월의 크리스마스>다. 80년대라는 뜨거운 공간에서 사랑과 죽음을 논하면서, 감독은 카메라를 전주의 오래된 거리로 끌고 들어갔다. 그것처럼 <연우의 여름>은 2013년 대한민국의 청춘을 논하면서, '연우 수리점'이란 간판이 무색한 낡은 연우의 집과, 조촐한 바 '아르투르 도밍고'를 비춘다.
그래서 연우의 삶은, 그저 대기업을 다니지 못하는 엄마의 청소 일을 대신해야 하는 비정규직 젊은이라는 딱딱한 틀을 넘어, 2013년의 조금 다른 세계관을 지닌 젊은이로 다시 탄생한다. 
아직 발에 메니큐어도 발라보지 못한, 멋드러진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강 둔치의 바람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아빠에게 물려받은 솜씨로 낡은 라디오를 고쳐낼 줄 아는 이 시대의 청춘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연우가 탄생한다. 덕분에, 뻔하게 드라마틱한 친구를 대신한 그녀의 처지조차도 조금은 다른 빛깔로 다가와, 진심 연우처럼 느리게 사는 삶을 선택한  청춘의 속내를 들여다 보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우의 여름>을 연우답게 만드는 것은 배우 한예리이다. 못난이 삼형제의 그 누군가를 닮은 거 같은 익숙함이, 드라마가 흐르면서, 한없이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만으로도 연우가 다 설명될 거 같은, 드라마가 있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물론 많이 나오지 않아도 캐릭터가 다 보여지는 엄마 김혜옥과 청소부 아줌마 황정민은 물론, 친구 세미도, 남자 친구 윤환도, 진짜 요즘 직장인들 같아 보여 좋았다. 
좋은 배우들의 뒷받침 위에서, 독무를 추듯, 인디 밴드의 느린 삶을 살아가다, 뜻하지 않게 빠른 2013 대한민국에 걸려 넘어진 연우를 말갛게 그려낸 한예리의 연기는 진짜 연우 같았다. 그림좋은 수채화 전시회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by meditator 2013. 9. 5. 10:44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이적과 유재석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요즘 한참 유행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문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꿈을 가려자. 당신의 꿈을 향해 달려라.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력을 키워라. 아니나 다를까, 3일자 방송 말림에 김도한 교수는 말한다. '네가 이 병원에 남고 싶으면, 나를 뛰어넘으라'고

2일 밤 방송된 <굿닥터>에서 수술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성악 소년 규현(정윤석 분)의 이야기는 박시온의 진단 의학과 전출과 함께 맞물려 진행되었다. 
드라마는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던 소년이 알고보니 소리가 싫어서 빈  MP3를 늘 귀에 꼽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부터 늘 노래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외톨이였음을 밝힌다. 그런 그에게 엄마는 지금까지 해온 거을 생각해서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독일 유학을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런 난처한 처지의 소년에게 박시온은 다가간다. 그리고 늑대 소녀 은옥을 보여준다. 말도 못하지만, 규현의 노래를 듣고 행복해 하는. 그러면서 규현의 진짜 꿈이 독일로 가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규현은 진짜 웃기 위해 수술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박시온 선생은 언제나 그렇듯, 수술 과정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규현의 목소리를 잃지 않게 할 방법을 알아내고, 그 방법으로 규현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난다. 
아름다운 감동 휴먼 스토리이다. 


김도한 교수는 혼자 길을 건너다 사고로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박시온의 가능성을 접어버리고 박시온이 원하는 의사를 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진단 의학과'를 택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건 틀린 방법이라 말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한다. 상식적 의학의 수준에서는 목소리를 잃을 게 뻔한 규현이가 박시온이라는 기적을 통해 목소리를 잃지 않듯, 자폐에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박시온이 자신의 꿈인 소아 외과 의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 등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실제 지적 장애 환자 2000 명 중 1명에 나타날까 말까한 희귀 증상이다. 여기서 자폐증 등의 지적 장애는 '완치'가 되는 질환이 아니라, 훈련과 치료를 통해 그저 완화가 될 뿐인 뇌의 이상이다.

그렇다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박시온의 꿈에는 문제가 없을까?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박시온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몹시도 '사회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병원 복도를 지나치다 울고 있는 임부에게 다가가듯, 주변의 모든 환자들을 마치 어린 시절 잃은 토끼처럼 여기며 다가가는 순수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소아 외과 다른 의사들이 그를 접어주게 된 동기처럼, 뛰어난 능력으로 김도한 선생마저 뛰어넘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족한 사회성을 채워줄 사회의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한데, 드라마 속 박시온은, 그 스스로 그 역할 까지 해내는 수퍼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 중심성이, 오히려 <굿닥터>에서는 모든 것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박시온의 병적 징후가 순수함과 능력이 되면서, 그 반대 방향에 있는 김도한의 현실주의는 무기력해 진다. 
오히려 김도한 선생에 의한 박시온의 진단 의학과 전과를 아이의 꿈을 짓밟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니까, 그에게 휴먼 닥터로써의 날개를 달아 마음껏 날아보게 하지 말고, 정말 현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를 진단 의학과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그저 기적처럼 성악 소년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설사 목소리를 잃어도 그 소년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은 현실인 것처럼. 

물론 <굿닥터>의 매력은 박시온에게서 시작된다. 그의 순수함과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자기 중심성이, 그리고 천재와도 같은 서번트 증후군의 증상이 늘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보다보면 눈물겨운 휴먼 드라마 사이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건, 판타지의 공허함이다. 지적장애라 하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연차랑 상관없이 펠로우의 편애(?)를 받고, 선배보다 앞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또 다른 능력주의가 읽혀져 때론 씁쓸하기 까지 하다.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인간의 몸을 투시가 가능한, 교수인 김도한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방법을 떠얼리는 능력이 없는 박시온이라면 꿈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그래서 <굿닥터>의 박시온이 휴먼 닥터의 구름 속으로 붕붕 날아갈 수록, 자꾸 씁쓸함과 공허함이 커져간다. 그건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낳은 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용기 있는 청춘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 수록 꿈조차 꿀 수 없는 열패감에 시달리는 청춘이요, 몇몇 저자들의 두둑한 호주머니인 것과 비슷하다. 


by meditator 2013. 9. 4. 10:32

공교롭게도 월요일 밤의 공중파와 케이블의 토크쇼, sbs의 <힐링 캠프>와 tvn의 <현장토크쇼 Taxi>는 새로운 mc가 들어와 시범 운행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맡은 본인에게야 프로그램에 적응하기 위한 시범 운행이지, 냉혹하게 반토막도 못되는 <힐링 캠프>의 시청률을 보면, 시청자와 새 mc의 밀월 기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사진; 마이 데일리)


우선 <힐링 캠프>의 성유리를 보자. 
한혜진이 결혼을 하게 되고, 사람들이 힐링녀의 조건을 생각했을 때, 안타깝게도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이뻐야 한다' 아니었을까? 
고등학생 아들 녀석의 말 대로, 다른 프로그램을 보는 친구들이 채널을 돌리다가 한혜진이 나오면 이뻐서 잠시라도 멈춰 지켜보았다는 씁쓸한 리뷰처럼. 그렇게 한혜진은 능수능란한 이경규와 말이라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김제동이란 조합의 칙칙함을 개선시키기 위한 '꽃'으로 <힐링 캠프>에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혜진은 그저 꽃으로 장식된 자신의 위치를 뛰어넘어, 당당하게 돌직구 한혜진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이경규도 말하기 난처한 질문까지 해내면서 당당하게 <힐링 캠프>의 안방 마님의 자리에 등극했다. 대신 예능 프로그램의 감을 놓친 김제동은 그 예전 한혜진이 하던 꽃의 역할을 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한혜진이 그저 '꽃'에서 '안방 마님'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핵심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꽃으로서 본분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혜진이 처음부터 돌직구를 날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한혜진은 아주 오래도록 잘 들어주는 꽃이었다. 그런데, 그 잘 들어주는 꽃만 봐도 '힐링'이 되는 느낌을 주는 묘한 꽃이었다. 그리고 잘 들어주다 보니, 그녀의 돌직구가 생뚱맞지 않게 콕 정곡을 찌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담을 받으려 가면 항상 제일 먼저 듣는 이야기가 뭘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그 다음, 당신의 고민을 이야기 해 보세요. 라고 한다. <힐링 캠프>가 힐링 캠프인 이유인 이유는 그 이전에 인기를 끌던 <무르팍 도사>처럼 다그치지도 않고, 게스트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픈 말을 맘껏 하게 만들었던 데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속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바로 열심히 그 큰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출연자를 바라보는 한혜진의 들어주기인 것이다. 이경규의 날카로운 질문, 한혜진의 돌직구는, 어찌보면 윤활유와 같은 것들일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유리는 아마도 <힐링 캠프> 초창기의 한혜진이 아니라, 최근 <힐링 캠프>의 한혜진을 모니터링 하고 나온 듯하다. 
어서 빨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보이지 못해, '돌직구'보다 더 멋진 멘트 날리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박인비의 약혼자를 친오빠로 착각해 자신을 소개시켜 달라는 결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한혜진이었다면 어땠을까? 오빠 이야기가 나오면, 오빠가 있어요? 라고 우선 물어보지 않았을까?  
돌직구는 커녕 성유리에게는 벌써 3회 만에 '맹유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맹랑하다도 아니고, 맹하다니, 이건 결국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눈치도 없다는 말을 돌려말한 것이 아닌가. 성유리의 과제는 섣부른 돌직구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출연자의 말을 진심으로 열심히 들어주는 연습부터 해야 할 듯 싶다. 수지의 자리를 탐내는 성유리는 빈 말이 아니라, 여전히 프로그램의 요정 같으니까. 
그런데 요정같은 여자 mc가 행세하는 프로그램치고 수명이 길지 않았으니 어쩐다. 더구나 그리 상황도 여유롭지 못하다. <무르팍 도사>까지 사라짐으로써 <힐링 캠프>가 독보적이어지긴 했지만, 동시에 1인 게스트 토크쇼가 한 물 갔다는 부담도 지게 되었다. 힐링의 유행이 지나가듯, <힐링 캠프>도 그저 지나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tvn의 <현장 토크쇼Taxi>의 홍은희는 어떨까?
이미 <세바퀴>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mc를 봐온 경험이 있는 홍은희에게 <현장 토크쇼Taxi>가 많은 적응이 필요한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미 이영자를 통해, 여성 mc가 그저 '꽃'같은 보조적 위치를 넘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선례를 남겼기에, 홍은희에겐 자신의 기량을 펼칠 더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김구라의 경우, 이쁜 척하지 않은, 특히나 털털한 아줌마와의 호흡이 좋은 편이기에 더더욱 김구라, 홍은희의 조합이 이제 몇 회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꽤 오래 한 듯한 익숙함까지 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아 보인다. 심지어, 아줌마, 아저씨의 너스레가 게스트의 멘트를 가끔 잡아먹을 정도로 (?).

하지만 정작 홍은희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택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크쇼다. 게스트와의 토크에는 익숙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mc를 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홍은희는 혹시 택시를 다른 차가 끌어주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종종 운전대를 놓거나, 화려한 의상을 드러내기 위해 안전띠를 보이지 않게 해놓아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전띠를 하지 않았나 라는 불안감에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홍은희의 조바심이거나, 어긋난 모니터링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현장 토크쇼Taxi>의 진행 방식을 보면, 한 사람의 mc가 운전을 해야 하는 특수한 조건이기에, 토크의 주도권을 그때는 운전을 하지 않는 다른 mc가 가져가고, 운전을 하는 mc는 주로 리액션을 해주는 식의 편의를 도모했었다. 그런데 홍은희는 의욕이 넘치다 보니, 토크도 주도적으로 해야 겠고, 운전도 해야 겠고 하다보니 위험한 운전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또 하나, 대부분 지금까지 mc들은 택시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토크쇼를 진행해야 하기에, 그 공간에 맞는 의상을 선보였다. 이영자가 멋진 옷이 없어서 맨날 바지에 티를 입은 것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서 mc가 화려하게 옷을 입으면, 그나마 뒷자리에 앉은 게스트가 더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걸 배려한 의상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홍은희의 의상은 마치 그녀가 게스트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걸 돋보이려고 안전띠를 규정에 맞지 않게 미뤄내야 하는 무리수를 역시나 두게 된 것이다. 

아이가 서서 걷기 위해서는 배를 깔고 기어가고, 무릎을 세워 기어가는 단계별 과정이 필요하다. 의욕과, 의지만으로 능숙한 mc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연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요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기본에 천착할 때, 어쩌면 가장 제대로인 mc의 본령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유리, 홍은희에게 지금 필요한 건,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는 적응을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9. 3. 10:18

'핏줄이 땡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 짧은 문장은 매번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클리셰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헤어져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부모와 자식은 매번 핏줄이 땡기는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이른바 인지상정인 것이다. 부모 자식이라는 걸 몰라도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아껴주고 그리워 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가중시키고, 혈연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드라마들은 그런 클리셰를 뛰어넘는 경우를 종종 보여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진 자식이 '에미에비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물론, 흔히 핏줄이 땡겨 내 자식에게는 남달라하던 부모조차도 자신의 자식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등장하는 것이다. <최괴다 이순신>의 미령(이미숙 분)은 자기 자식 순신(아이유)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원더풀 마마>의 복희(배종옥 분)는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의붓 딸 영채(정유미 분)와 친 자식 훈남(정겨운 분)을 결혼까지 시키려 한다.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심임을 알고 피눈물을 쏟아 내지만, 이전과 다른 설정들은 한결 덜 두터워진 혈연과 개개인의 이익이 앞서는 현실을 일면 반영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저 괴롭히는 정도면 약과다. 
<스캔들>에 이르르면 드디어 아버지는 스스로 총을 들어 아들을 쏘려고 하고, 결코 자신을 쏘지 못할 거라는 아들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임을 깨닫는 아들을 향해. 
물론 우리 역사를 보면, 영조를 비롯해, 중종 등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한, 혹은 희생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받는 임금들이 있다. 하지만, 냉혹한 권력의 쟁투 현장에서 희생당한 세자들과 달리, <스캔들>의 장태한(박상민 분)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아들 바보라 자청하는 헛똑똑이이기에 그의 발사가, 의식적 아들 살해를 넘어선 징벌의 상징적 의미로써 더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슬픈 전설은 현대의 심리학적 분석의 프리즘을 통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취하는 남성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적인 메타포로 부각되곤 한다. 
하지만 애초의 그리스 신화 내용에 좀 더 천착해 보면, 오이디푸스는 희생자이다.
 아비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자신의 방만했던 사생활로 인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를 낳자 마자 버렸던 것이다. 드러난 죄는 오이디푸스의 몫이지만, 원죄를 따지자면 라이오스로 부터 기인된 것이다.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오이디푸스의 비극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어쩌면 라이오스는 그저 아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자신을 죽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그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천륜을 어기게 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속편하게 사라져버렸다. 죄는 자신이 짓고, 그 벌을 아들에게 떠넘기는 아이러니를 목도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태하 건설을 일구기 위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죽어가던 하명근의 아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장태하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모자라, 스스로 총을 들어 아들에게 겨누고, 결국 방아쇠까지 당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사업을 일구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거두기를 개미 새끼 하나 죽이듯 쉽게 생각하던 '개발과 발전의 주역'이자, 고아로 자라나 자신의 핏줄에 그 누구보다 집착한 장태하에게 가장 처절한 응징인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만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눈물'이라는 전형적 한국적 권선징악의 효과이자, 그간 기업물 혹은 가족물에서 자신의 탐욕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가진 자에게 돌아간 처벌의 끝판 왕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스캔들>은 자식 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수준까지는 밀어넣지는 않는다. 
부도덕한 경지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었던 장주하(김규리 분)와 하은중(김재원 분)의 계약 연애는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 되었다. 친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감옥에 보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오르던 하은중의 시도는 오히려 그를 장태하의 제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예고에서도 보여지듯이 자신의 동생과 연애를 할뻔했다는 트라우마는 장주하를 내내 괴롭힐 것이며, 그보다 더한 건, 장태하가 총구를 들이민 그 순간, 바로 장태하의 입을 통해, 지금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하은중의 눈빛이다.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잘라, 자신의 자식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아버지,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자신을 지키려는 아버지, 장태하,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현대사를 거침없이 달려온, 그리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왜곡시킨 자본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스캔들>은 그저 한낮 주말 드라마를 넘어 이 시대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3. 9. 2. 10:07

이제와 새삼스레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진부한 문제 제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들이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서바이벌' 무대에 오른다는 전제가 늘 가수의 의욕과 원곡의 가치 사이에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 가수들의 첫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래 기존의 곡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른 편곡 논란은 계속 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논란은 김범수의 '희나리'였을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로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던 김범수가 '님과 함께'의 화려한 무대로 1등을 거머쥔 뒤, 더 이상 <나는 가수다>를 통해 오를 곳이 없다고 판단했던 김범수는 방향을 틀어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적 편곡을 선보인다. 
가장 애절한 노래 중 하나였던 구창모의 '희나리'를 파격적인 전자 음향을 입힌 테크노 버전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희나리'의 김범수 무대는 우리나라에서 테크노 음악을 소개하는데 앞장 선 구준엽이 디제잉까지 하며 합류하여, 파격적인 정서의 극치에 도달했다. 

(사진; 데일리 중앙)

하지만 테크노 버전 '희나리'의 무대 뒤 과연 '희나리'라는 노래가 가진 이별의 정서가 그런 편곡에 어울렸는가를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물론 김범수 이전에, 이미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불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이소라는 빠른 댄스 곡이었음에도 가사가 오히려 애잔한 정서를 내보이고 있는 '넘버 원'의 정서를 살려낸 것인데 반해, 김범수는 '희나리'가 가진 정서는 뒤로 한 채 테크노라는 실험 정신만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편곡이라는 외줄 타기가 건너가야 할 양 극단의 강이다. 
때로는 너무 원곡과 똑같이 불러서 차별성이 없다는 모창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원고의 아우라를 해쳤다는 평가에 직면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러이러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희나리'의 논란에서처럼, 적어도 원곡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리듬은 보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편곡'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이제 <불후의 명곡>으로 돌아와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이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가수들이 '전설'이라 칭해지는 선배 가수를 바로 앞에 모셔놓고, 그의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광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늘 가수들이 말하듯, '누가 될 '수도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8월31일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러면서 또 동시에 그의 인기에 눌려 빛을 덜 발하지만, '싱어 송 라이터'의 효시가 더 그의 진면목인 전영록이 전설의 자리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마돈나'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디바'라는 말이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정도의 무대를 선보인 '바다'의 '불티'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바다가 화려한 무대의 '불티'를 통해 410점을 넘은 높은 점수를 얻고, 이어서 다시 여러 가수들이 도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요즘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 'exo'였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exo'가 가지고 나온 곡은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였다.
역시나 'exo'답게 칼군문에 맞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시청하던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원래 노래가 어떤거야?"
그도 그럴 것이, 'exo'버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그들의 노래, '늑대와 마녀'나, '으르렁'의 분위기와 더 흡사한 반면, 전영록의 원곡,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전영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들리기는, 그저 'exo' 앨범에 실린 어느 한 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른바 편곡의 정의에 맞춰 따지자면, 장단조의 바뀜 등,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수의 가수들이 김범수처럼, 탱고,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exo'처럼 이 정도로 원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사만이 남은 편곡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멋진 아이돌 그룹'exo'만의 분위기만이 있을 뿐이다. 

늘 전설들은, 후배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노래가, 저들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 재창조되는 것이 행복하다,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31일의 전영록도, 'exo'의 노래를 듣고 그랬을까?


by meditator 2013. 9. 1. 10:20

8월 23일 <슈퍼 매치> 파일럿방송에서 노익장의 양희은은 가수 인생 40년이나 어린, 데뷔한 지 두 달된 김예림과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듀엣으로 불렀다.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이제는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 대접을 받는 양희은이 개인 콘서트가 아닌 노래 부를 무대를 얻기 위해서는 40여년이나 어린 김예림과의 콜라보레이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두 사람의 낭랑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화음만으로는 그 어느 세대에게서도 1위의 승인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등이다. 
이런 양희은의 모습은, 그리고 그 날 모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선 이승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시대 가수들의 현실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단면일 지도 모르겠다. 

(사진; 스포츠 월드)

굳이 그 시작을 까탈스럽게 걸고 넘어지자면 텔레비젼 속 가수들에게 부박한 선택을 강요하게 된 것은 <슈퍼스타 K>일지도 모른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가수 지망생들에 의해 불려지는 다양한 노래들에 사람들의 시선이 빼앗겼고, 서바이벌 속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불러왔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아 가수가 되고, 상금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망생들의 모습은감정의 절정을 치달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자고로 한껏 고조된 지각은 다시 되물릴 수 없으니, 사람들은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이 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심심해 하기 시작했다. <슈퍼스타K>를 통해 불려진 지난 시절의 노래들이 흥하면서 잠시 잠깐이나마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비슷한 무대가 각 방송국마다 만들어 졌지만,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그저 '노래'란 원조 평양 냉면처럼 심심할 뿐, 원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을 남기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나는 가수다>가 등장했다. 
기존의 가수들도  더 이상 이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조건과, 프로패셔널한 가수로써의 자존심을 내걸고 '서바이벌'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절박함은  금의환양을 꿈꾸는 전국의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을 등에 업은 <슈퍼스타K>와 달리, 극강의 편곡과 가창력을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무리수가 되는 <나만 가수다>의 조건이 오히려 프로그램이 '조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의 절박함을 덜고, 거기에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의 버라이어티함과 오락성을 덧붙인 <불후의 명곡>은 100회 특집을 하며 자신의 포지션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지만 <불후의 명곡>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오락프로이다. <불후의 명곡>의 특징은 이른바 그 프로그램이 낳은 가수로 불려지는 문명진의 무대를 통해 보여진다. 처음 무대에 선 문명진은 마치 국악의 고수가 산 속에서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갈고 닦았듯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갈고 닦은 그의 애절한 R&B창법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의 절실한 노래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미 <불후의 명곡> 스타일의 무대에 세련된 선배 출연진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회를 거듭할 수록 문명진의 무대에도 조금씩 무언가가 하나씩 더해지고, 그가 들고 나온 노래의 편곡도 화려해 지기 시작하면서 1등을 거머쥐게 되었다. 물론 늘 <불후의 명곡>에서는 1등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기사가 되는 건 단 1승에 불과하더라도 1위이다. 가창력으로 날고 기는 가수들의 무대를 결국 결정하는 건, 오로지 노래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곡의 선정과 편곡, 무대 구성이 되는 것이 <불후의 명곡>의 불문율이다. 


결국 이미 가수로써 인정받은 프로패셔널들이라도 그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는 '서바이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힙합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는 <Show Me The Money>를 통해야 하고, 이미 지명도가 있는 락밴드라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밴드 서바이벌>이나 <탑 밴드>의 출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아니 그것 말고는, 이제는 아이돌에게조차 자리를 나눠주어,  1주일에 겨우 한 자리만 알려지지 않은 가수나 팀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자리는 얻었으되, 그 결과가 단비가 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Show Me The Money> 자체가 이미 시즌 2에 들어서는 대중적 관심도가 더 낮아졌고, 비록 거듭하면서 '노예 계약'이나 개인간의 인정 투쟁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힙합퍼들의 디스전의 시작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지명도와 실제 힙합계의 존재감의 불협화음을 평하고 했던 것처럼, 시즌 2 내내 여러 문제들이 돌출되어 역효과를 낳은 감마저 있었다. 

그래도 <Show Me The Money>나, <슈퍼 매치>, <불후의 명곡> 정도까지는 애교 수준이다. 
여기까지는 신인과 기성의 가수들의 경계가 분명했고, 선배와 후배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기존 정도의 수준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기에 더 '센' 서바이벌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jtbc의 <히든 싱어>이다. 
기존의 가수와 그 가수를 모창하는 사람들이 장막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누가 진짜인지를 알아맞추는 게임까지 하게 된 것이다. 가수가 그저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누가누가 잘 부르나의 수준을 넘어, 내가 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진짜야, 아니야 의 수준까지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 열광한다. 심지어 '누가 더 잘해'의 소리까지 나온다. 존재감을 건 서바이벌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하나의 노래를 가지고, 가수와 가수가 아닌, 혹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바이벌을 벌이다 못해, 그 판정을 하는 <퍼펙트 싱어 VS>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30일 첫 방송을 탄 <퍼펙트 싱어 VS>에서 92점을 넘은 점수로 1위를 한 성진환은 '이제까지 감성보컬인 줄 알았는데 기계적인 보컬임을 깨달았다'는 촌철살인의 소감을 내보인다. 처음, 16세 여중생과 손승연이 대결을 할 때만 해도 그저 노래를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박완규도, 이정도, 그리고 가요를 자신 분야의 창법으로 해석한 성악가 서정학, 국악인 고금성의 절창도 소용없이 오로지 기계의 판독에 맞춘 정확한 창법만이 유효한 결과는, 제 아무리 박완규가 기계의 판정으로 가름할 수 없는 개성있는 노래라고 면피를 하려고 해도, 이 시대의 가수란? 음악이란? 질문을 허무하게 던져보게 만든다. 

자신의 노래를 제껴두고 남의 노래를 그럴듯하게 부르고, 그걸 관객들의 판정에 맡기는 것도 모자라, 이젠 그걸 기계의 판독에 맡기게 되는 상황, 이게 2013년 대한민국 가요계의 자화상이다. 


by meditator 2013. 8. 31.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