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 박복녀입니다',

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직장의 신>의 '미스 김입니다'란 대사가 떠올랐다.
'명령이십니까' 란 대사를 듣는 순간, '이게 너희가 원하는 거니?'라는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의 반문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좋은 거라도 한번이 두번이 될 때까지는 끄덕끄덕 하더라도, 세 번 째가 되면 고개가 좀 갸웃해지듯이, <수상한 가정부>를 처음 맞닦뜨리는 감상이 딱 그렇다. 
무표정한 얼굴에, 인간미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들어 보이는, 시키는 일이면 '살인'까지도 해줄 지도 모른다는 박복녀가 이젠 낯설지도 않다. <직장의 신> 미스 김도 처음엔 그랬고,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도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이 그랬으니까. 심지어 대사만 다를 뿐, 대사치는 방식까지도 비슷할 뿐더러, 처음 등장할 때 무시무시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발걸음부터 등장하는 장면조차 비슷하다. 
그래서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게 아니라,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도 미스 김처럼, 마여진 선생님처럼, 역설적인 캐릭터려니 하게 된다. 이러다 아예, 이상하고 기세게 등장해서, 그 누구보다도 휴머니틱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르가 생겨나는 거 아냐? 란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노컷 연예 뉴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그리고 <수상한 가정부>는 굳이 원작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작들이다. 소재는 '직장'과, '교육 현장', '가정'으로 다르지만, 모두, 소재가 되는 그 직장과, 교육 현장과 가정의 지니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역설적 캐릭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각각의 드라마는 그 드라마가 채택하고 있는 모순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지점에 따라, 공감도와 폭발력에 차이를 가져왔고, 가져올 것이다.

<직장의 신>은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갑과 을'이라는 사회적 모순이 드라마의 내적 갈등과 맞물려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분명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 한 것이지만, <직장의 신>은 그 중에서도 '갑과 을'이라는 우리나라의 모순에 좀 더 촛점을 맞춰 드라마를 새롭게 각색하여 성공을 이끌어 냈다. 분명 일본 역시 버블 경제 뒤에 많은 '파견직'들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신분제도가 되어버리다시피한 '갑과 을'과는 감정적 고통이나, 일의 스트레스가 차이가 나는데, 드라마는 한국의 '그것'을 제대로 잘 살려 냄으로써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반면 <여왕의 교실>을 초반부터 발목을 잡은 것은  <직장의 신>이 해낸 바로 그 지점이다. <여왕의 교실>이 지니는 문제 의식이 한국 교육 현실과 결코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문제 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교실>의 문제 제기 방식과 해결 방식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공감의 감정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여왕의 교실>의 교실이 한국 상황의 초등학교 교실에 어울리는 설정인 것인가가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가 되었다. 물론 이미 우리나라도 '국제중' 등이 들어서며 총등학교부터 스펙 쌓기와 입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그런 것인가에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상한 가정부>의 세째 아들 역시 똑같이 국제중 입시를 들먹인다) 오히려 <여왕의 교실> 정도의 센 문제 제기 수준이라면,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지적이 줄곧 나왔던 것이다. 
또 하나, <여왕의 교실>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콕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우리의 감정적 정서와는 비끄러지는 집단적 분위기였다. 교실에서 누구 하나가 일어서서 뭐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하나씩 나서서 말을 보태고, 결국은 다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식의, 집단적 정서가 늘 보는 사람들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일본 드라마다운 클리셰이다. 일본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늘 어떤 결론에 도달할라치면 삥 둘러가며 나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한 마디씩 보태고 결국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교훈적 결론에 도달해 간다. 

그리고 이제 <수상한 가정부>는 아직 한 회에 불과해 섣부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두 작품 중 굳이 비교하자면, <여왕의 교실>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듯하다. 
박복녀는 가족들이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늘 반문한다. '명령입니까?' 라고, 명령, 그것은 군대나, 관공서에서 쓰이는 용어다. 가족 내에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할 때 명령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살인'도 불사할 수 있는 박복녀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명령입니까?'에는 일본어 통번역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렇듯 이 드라마는 단 1회지만, 일본 드라마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의 복장은 당연하다. 집안에서 일하는 복장이야 그렇다 치고, 그녀가 밖으로 돌아다닐 때 입는 '파카'까지 똑같을 필요가 있었을까? 심지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한옥의 창호지 창살 배경조차, 일본식 가옥의 그것을 그대로 흉내내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보다 더 어색했던 것은, 1회의 마지막 부분, 엄마의 물건을 버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다같이 돌아가며 난 지금 이렇게 힘들다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놓는 씬이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럴까? 지금 엄마의 옷이 불붙어 타고 있는데, 그걸 앞에 놔두고 제각기 돌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을까?  <수상한 가정부>의 많은 장면들이 굳이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아도, 아, 일본 원작에서는 어땠을 것이라는 게 너무도 연상이 된다. 



직장 내의 계약직과 '갑과 을'의 문제는 시기적절하기도 했지만 신선했기에 <직장의 신>은 그만큼의 관심을 얻었다. <여왕의 교실>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날이 서있고 직설적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좋은 문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수상한 가정부>는 어떨까? 아침 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온통 가정 문제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미스 김같은, 마여진 선생님같은, 능력자가 과연 시청자들의 마음을 또 얻어 갈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 
늘 멜로만 하던 최지우라는 배우의 연기 변신은 의욕적이지만, 과연, '가정부'라는 이질적 존재의 해결사를 사람들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지 역시 미지수이다. 
그보다는 벌써 세 번 째에 도달한 리메이크라기에도 낯 부끄러운 아예 통째로 베껴대는 방식의 리메이크가 다시 또 먹힐 지가 가장 궁금하다. 마치 파닭이 유행하면 너도 나도 파닭집을 열어 다같이 망해버리는 우리나라 특유의 상술을 드라마 판에서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3. 9. 24. 10:23

기나긴 추석 연휴가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 명절 연휴를 앞두고는 명절 스트레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고 늘 수위에 오르는 것 중 하나가, 관심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어른들의 한 마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증이 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결혼 언제 할래?' '결혼 안하니?' 라는 건 이제와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 말의 대상이 되는 사람 입장은 늘 명확하다. 결혼 안하고 싶아서 안하나, '꽃보다 할배'의 마흔을 한참 넘은 노총각도 마음만 앞서는게 결혼 아닌가. 결혼을 해도 문제다. 할말 없는 어른들의 어설픈 말 한 마디처럼 지나칠 수 조차 없는 시댁에서, 처가에서 추석 지내기란 현실적 문제가 떠억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인륜지대사 통과 의례들이 우리 사회에선,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말과 동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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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 경제)

하지만 차로 꽉 막힌 교차로 같은 현실들이 텔레비젼 화면 안으로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개임'이다.
추석이 지난 9월23일 오늘의 검색어 중 하나는 '준수 호박'이다. <아빠 어디가>의 꼬마 출연자 준수가 자기 덩치만한 호박을 뜰고 쩔쩔 매는 모습이 대견하고 귀여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거다. 단지 오늘 만이 아니다. 언제나 <아빠, 어디가>가 방영되는 시간 이래로, 하루가 지날 때까지 검색어 중 일정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의 몫이다. 
<아빠, 어디가?>란 프로그램 속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조우하는 식당에 가서 뛰어다니고, 음식 가지고 떼를 쓰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다. 복스럽게 음식을 먹는 수준을 넘어, 심지어 동생이 흘린 국수가락을 집어 먹고, 마음 씀씀이나, 생각의 품이 어른을 뛰어넘을 때가 다반사다. 어른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 따위나하는 되바라진 친척 꼬마들이 아니다. 버릇없는 동네 아이들만 보면 찡그려지던 이마의 주름살이 텔레비젼 속 남의 집 자식들에 저절로 펴지고, 나도 저런 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아빠, 어디가?>의 아이들이 이제 좀 뻔하다 싶으니, 조금 다른 아이들이 나타났다. 이제 생후 4개월에서 부터, 초등 4학년까지, 취향 껏 골라잡을 수 있는 또 다른 아이들 군단이 등장한 것이다. 
한때 '바람'이란 별칭으로 불리던 개그맨은 마흔이 넘은 늦깍이 아빠가 되어 아이들이 아프자 응급실 행의 호들갑을 떨며 눈물 바람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그래도 너무너무 행복하단다. 화면 속 아빠들은 비록 제한된 시간이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씼겨주고, 보살펴 주고, 물고 뜯으며 행복의 비명을 지른다. 
희한하게도 현실의 아빠들은 아이들과 조금만 함께 있으면 텔레비젼 채널을 두고 아이처럼 같이 싸우거나, 아이들의 울음과 짜증에 자기가 먼저 짜증을 부리거나, 똥이라도 쌀라치면 저만치 줄행랑을 치는데, 화면 속 아빠는 서슴없이 아이의 똥덩이를 만지고, 치워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의 신랑인데, 내 신랑 같고, 남의 아이인데 내 아이같은 공감을 가지고 미소를 지으며 화면 속에 빠져들게 된다. 

어린애들만 자식이 아니다. 
최근 종편임에도 공중파의 시청률을 넘보는 jtbc의 <유자식 상팔자>에서는 사춘기와 청년기의 부모 자식이 '대화'라는 걸 한다. 
말이 안된다 하면서도 부모들은 화를 내지 않고, 비밀이다 하면서도 자식들은 속사정을 털어 놓는다. 두어 마디가 넘으면 잔소리에, 가시 돋힌 말대꾸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시기의 내 자식 속사정이 궁금한 부모들은 <유자식 상팔자>로 채널을 돌려 화면 속 웃으며 '대화'를 하는 남의 집 부모 자식을 '벤치마킹'할 밖에. 

(사진; 뉴스엔)


부모 자식만 있는게 아니다. '백년 손님'이라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위도 텔레비젼 속에선 '신식'이 됐다. 
장모에게 친엄마처럼 '반말지꺼리'를 하는가 하면, 장모 얼굴을 걱정하고, 함께 앉아 음식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반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고부 사이는 <고부 스캔들>(jtbc)에 모여 앉아 속을 터놓는다. 텔레비젼이 해결하기 시작한 건 고부 문제 만이 아니다. 부부 문제는 이미 아침 토크쇼로, 심야 예능에,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까지, 엎어치고 메치고, 텔레비젼이 해결사가 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자기야>라는 포맷이 진부하다 하여 <백년 손님>으로 신장 개업을 했을까. 

가족 관계만이 아니다. '집밥'이 그리우면 텔레비젼을 켜면 된다. 집에서는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로 한 상 떠억 벌어지게 차려놓고, 이게 바로 집밥 이라며 서로 경쟁이 붙는다.  (<맨발의 친구들>, <집밥의 여왕>)
 그뿐이 아니다. 가정과 가족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홀로 사는 사람들의 '싱글 라이프'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서고, 유사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나 혼자 산다>, <인간의 조건>) 군대까지 대신 가주기도 한다. 

그저 우리들은 소파에 앉아 리모컨만 있으면 된다. 이쁜 아기를, 귀여운 아이를, 듬직한 자녀를, 자상한 사위를, 맛있는 집밥을 .......원하는 곳으로 리모컨만 돌리면 된다. 점점 더 현실에서 누리기 힘든 것들이, 결핍으로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 텔레비젼 화면 속에서 밝게 빛나며 우리를 반긴다. 어서와, 가정이 그리웠지, 따뜻한 가족을 원하지. 라며. 


by meditator 2013. 9. 23. 09:57

명절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며칠 동안 오지 않을 신문에서 연휴 기간 방송 편성표를 빼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연휴가 되면, 방송 편성표를 제 아무리 뒤적뒤적해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명절에 맞추어 떠들썩하게 연예인 가족들을 불러놓고 장기 자랑을 하는 프로그램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미 극장에서 본 영화 재탕이거나, 식구들은 모여도 막상 할 일은 없어 이리저리 리모컨만 돌리다 헛물을 켜는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3년의 추석은 좀 다르다. 이미 아침 저녁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가을 개편을 앞둔 파일럿 예능들의 돌진은 추석이라는 특수를 놓치지 않고 각 방송사 마다 분주한 연휴를 보내게 만들었다. 명절이고 뭐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작진은 고달팠겠지만, 뻔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을 즐기는 재미는 쏠쏠했다. 



1.이제는 통과 의례가 되어가는 <아이돌 육상 대회(이하 아육대), <당신이 한번도 보지 못한 개콘(이하, 개콘)>
올 추석에도 변함없이 아이돌 육상 대회가 찾아왔다. 
물론 첫 회만큼의 화제성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추석 프로그램들중 상위의 시청률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육대>의 특징은 이제는 아이돌 육상 대회하면 떠오르는 김제동이라는 고정mc에 매회마다 적절한 mc진을 곁들여, 육상 대회로써의 박진감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특히나 2013년 가을 <아육대>의 전현무는 그만의 예능 mc로서의 감은 물론, 박학한 아이돌(특히나 여자 아이돌)에 대한 지식을 선보여, 프로그램의 재미을 한껏 살려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아이돌 육상 대회라는 프로그램 제목에서 처럼,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텔레비젼을 통해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아이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그 현장성이다. 이제는 매년 한 두번씩 만나다 보니, 마치 일반 학교의 운동회를 보는 느낌이다. 더더구나, 아직은 청소년기이거나,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사회로 보면, 아직 학생에 더 어울릴 또래의 아이돌들이기에, 그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경기를 하는 모습은 비록 프로그램이지만, 흡사 가을 운동회의 데자뷰을 느끼게 만든다. 

<아육대>와 마찬가지로 이제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매년 명절마다 만나기에 충분히 적절한 프로그램이 바로 <당신이 한번도 보지 못한 개콘>이다. 
공개 방송인 <개그 콘서트>에서 막상 방송을 통해 보여지지 못한, 때로는 무대에 서지도 못한 채 사라진 코너들이, 명절을 맞아 다시 한번 기회를 얻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재활용의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미 1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방송의 기회를 얻은  '버티고'가 오랫동안 <개그 콘서트>의 고정 코너로서 활약했던 걸로 보아, 이번에도, '군대온girl'과 '월드 워 좀비' 중 누가 또 새로운 고정 코너로 등극하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1회에 윤종신과 함께 감독으로써, 작가로써 촌철살인의 평을 해주던 징항준의 부재이다. 물론 윤종신이 시청자의 입장을 최대한 살려주고자 했지만, 동료 개그맨들의 동업자로써의 박할수 없는 평가의 한계는 장항준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다. 

(사진; osen)

이렇게 이미 두어 차례 혹은 그 이상 방영된 프로그램과 달리, 이번 추석에 처음 선보인 <리얼 스포츠 투혼>도 다음 명절이 기대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닭싸움이라는 한정적이어 보이는 종목에도 불구하고, 남자들끼리 몸으로 부대끼며 빚어지는 전투의 현장은 '닭싸움'이라는 종목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발레, 이종 격투기 등 출연진들이 자체가 몸으로 한 가닥 하는 분야 출신이기에 빚어지는 '땀내'의 수준이 일반 아마츄어이 수준을 뛰어넘는다. 거기에, 2m가 넘는 최홍만을 쓰러뜨리는 김창렬의 도발에 이르르면 탄사가 절로 나온다. 

매회 이름은 달라지지만 스타의 가족들이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sbs의 <황금 가족>이나, 외국인들과 함께 명절에 걸맞는 kbs2의 <놀이왕>같은 프로그램은, 두말할 필요없이 마치 제사상에 전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명절이면 한 자리 늘 차지하고 있어야 할 프로그램과도 같다. 

2. 고정을 향한 야심찬 출발
아마도 이제는 명절의 고정 프로그램이 되어가는 <아이돌 육상 대회>를 제외하고 추석 연휴 기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의 최대의 수혜자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kbs2는 추석 연휴 기간 소위 <아빠 어디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프로그램을 두 편이나 마련했다. 하나가, 스타들이 아이 돌보미가 되는 <스타 베이비 시터; 날 보러 와요>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이다. 



<날 보러 와요>는 이미 god이래, 많은 아이돌이 거쳐간, 그리고 지금도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아이 돌보미 프로그램을 공중파로 가져와, 조영남, 김국진, 정준영 등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예인들이 아이를 봐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이미 god의 예에서도 보여지듯이 이 프로그램의 관건은, 얼마만큼 돌보미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독특한 언행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정준영의 출연은 일정 정도 화제성을 끌어모으기는 했지만, 공중파이기에 세대별 배려 차원에서 분배된 나머지 멤버들의 분량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며 정규 방송까지 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시작 초기에 <아빠, 어디가>의 아류라는 비난을 가장 많이 받았음에도 막상 뚜껑을 열자, 이휘재의 갓난 아기에서부터, 장현성의 듬직한 아들들까지, 그리고 특히나 추성훈의 미녀와 야수 버전, 이쁜 딸이 추석 내내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48시간 동안 엄마 없이 아이를 돌보는 상황은 분명 아빠와 아이들의 조합인데도, 또 다른 신선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제작진의 카메라와, 자막 또한 센스있게 아빠와 아이들의 조합을 이끌어 예능의 재미를 살려냈다. 쌍둥이를 돌보다 울음을 터트려 버린 이휘재, 딸의 울음에 연습조차 미뤄버린 추성훈 등, 가족 관찰 예능의 포인트를 제대로 잘 살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멀티 캐릭터 쇼; 멋진 녀석들>에서는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수로, 김민종, 임창정 등이 심혈을 기울인 분장과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꽁트를 선보였다. 
그런데 배우들의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혈 연기와 사회 비판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보다보면, 자꾸 tvn의 snl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김수로, 김민종, 임창정의 출중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게스트를 섭외하며 신선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snl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또한 케이블이라서 가능한 19금의, 보다 더 직설적인 사회 비판이(이제는 snl조차 점점 버거워하는) 혹은 그것을 상응할 만한 기발한 내용들이 가능할 것인가가 정규 편성의 관건이 될 것이다. 

(사진; osen)

그 외에,mbc의 <mr. 살림왕>, <위인전 주문 제작소>,sbs의 <이장과 군수>, <스타 페이스 오프> 등이 새롭게 방영되었고, kbs2의 <바라던 바다>도 추석을 틈타 파일럿의 나머지 분을 방영하였다. 이중에는 특집으로 단발성으로 만드어진 프로그램도 있고, 고정을 향해 파일럿 성격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상으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이중 화제성을 얻으며 시청자들에게 자기 프로그램의 성격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프로그램들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장과 군수>는 영화명에서 차용한 제목을 내걸고, 이만기와 손병호 두 사람을 충남 역촌리의 명예 이장을 뽑는 과정을 내걸었는데, 이수근 등 개그맨들이 주도가 된 유세 과정은 개그인지, 진정 마을 이장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을 얻어 가는 과정인지도 헷갈렸다. 심지어 '*** 바보' 같은 식의 치졸한 모함과 그를 둘러싼 아웅다웅은 기존 선거판을 패러디한 것이라기에도 너무 유치해 보였다. 그저 추석이니까 이런 프로그램을 빌미로 한 동네 가서 떠들석하니 어울려 놀아보자 하니 넘어갈 수 있었지, 고정 프로그램이 되려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mr. 살림왕>은 케이블에서 이미 진행되는 요리 대결 등을 업그레이드 시킨 버전과도 같다. 살림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싱글남들이 나와, 집안 소개는 물론, 요리, 다종다양한 집안 일을 미션별로 진행해 대결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나혼자 산다>의 버라이어티 버전과도 같다. 역시나 싱글남만이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의 성격은 아쉽지만, 박수홍과 박은지의 능숙한 진행에, 자타 공인 입담을 과시하는 이혜정등의 패널에,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싱글남들의 살림왕 도전은 재미졌다. 그런데, 왜 이 프로그램이 이미 꽤 오래된 프로그램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그건 의문으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3. 9. 21. 10:30

9월 19일 mc 김구라씨의 하루 일과는 분주했다.

우선 저녁 6시 10분 kbs2 의 <추석 특집 리얼 스포츠 투혼 1부>의 사회를 맡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자 마자, 바로 채널을 mbc로 옮기면, 8시 35분 <추석 특집 위인전 제작소>에 등장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11시 5분 jtbc에서는 김구라가  메인 mc로 활약하는 <썰전>이 , 그 뒤를 이어서는 재방송이지만 역시나 김구라가 나오는 <적과의 동침>이 방영되었다. 
추석은 추석이니깐 여러 특집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그러다 보니 mc들이 특수를 누리는 기간이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김구라의 분주함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각 방송사들이 가을 방송 개편을 앞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혹은 파일럿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역시 김구라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규 방송으로 안착한 jtbc의 <적과의 동침>, tvn의 <퍼펙트 싱어 VS>, <택시>에서 고정 MC로 김구라는 등장 케이블과 종편을 섭렵한다. 또한 파일럿이었던 KBS2의 <너는 내운명>, MBC의 <위인전 주문 제작소>, SBS의 <슈퍼 매치> 등을 통해 공중파 3사를 평정하려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엄격하게 따져 보자면 김구라만 바쁜 게 아니다. 
실제로 신동엽 역시 tvn의 <snl>, <환상 속의 그대>, jtbc의 <마녀 사냥>, qtv<신동엽과 순위 정하는 여자>, e채널<용감한 기자들>로 종편과 케이블을 누비고, kbs2의 <안녕하세요>, <불후의 명곡>,  sbs의 <화신>, 그리고 막 폐지된 <스플래쉬>로 공중파 3사를 누비는 것에서는 김구라 못지 않은 아니, 김구라보다도 더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구라의 약진이 돋보이는 것은, 본의 아니게 과거에 했던 발언이 국회의원 선거와 맞물려 1년 여간의 칩거를 거치고, 어렵게 복귀를 한 후 마치 강력한 엔진을 리뉴얼이라도 하고 나온 듯,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고, 실제 새롭게 준비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김구라를 찾는 걸 보면, 그의 분주함이 곧 mc계의 새로운 대세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구라일까?
앞서 신동엽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신동엽은 신동엽이라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듯이, 김구라에게는 김구라만이 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치적 영역을 다루는 <썰전>이다. 
이철희라는 야성이 강한 결코 하고자 하는 말에 주저함이 없는 , 그리고  강용석이라는 한때는 온국민적 비호감이었던, 하지만 여전히 여당의 저격수라는 사명감을 가진 두 고정 패널을 요리하는데 김구라는 독보적인 가치를 내보인다. 
얼핏보면 두 사람의 패널이 논쟁을 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결국 그날의 여론의 행보는 김구라의 '기색'에서 나온다. 강용석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서 우기는지, 혹은 이철희가 난처해 하는지를 꼭 집어 밝히며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김구라이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서, 김구라는, 이윤석, 박지윤, 강용석, 허지웅 이라는 다양한 mc들의 조합을 이끌며 방송가에서는 역시나 새롭게 시도되는 미디어 비평이라는 영역을 순조롭게 이끌어 가고 있다. 
정치 비평이 되었든, 미디어 비평이 되었든, 그 자리에서 김구라의 존재는 결코 누락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의 시선임을, 중립임을 강조하는 그의 시선은 어느새 그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의 평균 시선으로 작동한다. 
<썰전>을 통해 김구라는 자숙기간을 가진 연예인에서, 정치, 비평이라는 고난위도 영역조차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자로 거듭났다. 지금의 김구라의 전성시대에서 가장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썰전>에서의 독보적 활약이라는데 아마도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진. 뉴스엔)

이런 김구라의 모습은 jtbc의 새로운 프로그램 <적과의 동침>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오히려 얼마전 국회의원이었던 유정현조차도 다선 국회의원들 앞에서 어려워하는게 역력한데, 일개 mc인 김구라는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국회의원을 다루는 것이, 타 프로그램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는 배포를 보인다. 아마도 다른 mc였다면 국회의원이라고 일단 허리 꺽고 들어갔을 분위기에서조차도, 김구라는 <라디오 스타>의 게스트를 요리하듯 국회의원을 다룬다. 

그리고 이렇게 생전 처음 보는 국회의원들조차 스스럼없이 대하는 김구라의 능력은 곧 여러 프로그램에서 그를 찾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된다. 
실제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에서 김구라는 유세윤, 김성주, 손범수, 서경석, 김현욱, 홍은희 등과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이미 유세윤과 김성주야 타 프로그램을 통해 손발을 맞춘 사이라 하더라도, 서경석이나, 손범수, 홍은희 등과는 처음 마주하는 사이임에도 김구라의 진행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연스레 어우러져 들어가는 것이 사실 김구라의 최강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김구라라고 모든 사람과 다 잘 어우러지는 것은 아니다. 
유독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mc든 패널이든, 게스트이든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물감없이 친화력을 발휘하는 김구라가 어색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화신>이다. 칩거 후 처음 공중파에 등장하게 된 <화신>은 라디오 스타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김구라가 잘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이어 그가 하던 수요일 밤의 kbs2<두드림>이 폐지되고 때 맞추어 유세윤이 <라디오 스타>에서 중도하차함으로써, 원래 그의 자리였던 <라디오 스타>로 돌아가면서 김구라에게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쎈' 진행을 해도 그게 분위기에 맞추어 자연스레 일상의 대화처럼 융화되게 만드는 것이 김구라식 진행의 특징인데, 그것이 안되고, 그의 발언이 종종 툭툭 수면 위로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화신>이다. 그리고 유독 같은 mc인 신동엽과 김희선과의 부조화가 도드라지는 것도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시청률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사진; 마이데일리)

바로 이런 <화신>의 딜레마는 곧 김구라라는 mc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는 친화력이 높지만, 그의 '아는 사람들끼지 이러지 맙시다', 혹은 '좋은 게 좋은 거지', '솔직히 말해봐, 사실 이런 거잖아'식의 '아저씨 스타일' 진행을 좋아하거나, 받쳐주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 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 최근의 mc계에서 그만큼 정치이든, 토크이든, 심지어 소개팅 프로그램이든 다양한 분야를 무람없이 소화해 낼 mc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그의 선호도에 따라, 혹은 지나치게 그것이 과소비 될 경우, 역시나 진부하거나, 피로도가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구라의 진격의 이면에는, 결국 새로운 프로그램을 믿고 맡길 만한 mc가 부재하다는 방송계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정치든, 사회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적절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식견을 가진 그러면서도 예능감도 있고, 친화력있게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수 있는 mc의 부재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재석, 강호동 등 이른바 대세였던 mc진의 흐름이 지나가거나, 혹은 이미 거물이 되어 버렸고, 그 뒤를 있는 박명수, 노홍철, 이수근 등은 한 프로그램을 이끌기엔 이미 식상하거나, 100%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지 않고 있는 이즈음, 또한 프로그램은 다양화되는데, 여전히 개그맨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mc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제작진은 그 모든 것에 무리가 없는 김구라를 찾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하루에도 몇 개의 프로그램을 활보하는 김구라는 시청자에게도, 김구라 자신에게도, 정작 프로그램 자체에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3. 9. 20. 09:50
'역사가 스포네'

영화 <관상>을 보고나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와 그를 보호하려던 김종서를 제거하는 '계유정난'(1453년)이란 역사적 사실은 변할 수가 없기에, 그들의 관상도, 그 틈바구니에 끼인 내경 일가도 그 이미 결과가 자명한 역사 속에서 짖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하나 역사가 스포가 되는 작년 사극 영화였던, 그리고 보잘 것 없던 인물이 역사에 휘말렸던 영화 <광해>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광해>가 광대가 왕이 되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왕도, 그리고 왕이 되어 이루려고 해보았던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마치 <왕의 남자>의 공길이 한마탕 놀아보기라도 한 듯한 속 시원함이라도 남겨주었다면, <관상>은 이상하게 껄쩍지근한 민초의 자괴감을 남긴다는 뒷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사진; 뉴스엔)

그런 <관상>의 후기는 다시 <황금의 제국>의 결말에 대한 소감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태주(고수 분)가 성진 그룹을 한번이라도 차지해 보기라도 했으면, 결국 태주는 아무 것도 이룬 게 없고, 성진 그룹은 결국 성진 그룹의 것이 되었구나 라는, 그래도 단 한 회 만에 모든 걸 자신이 책임진다며 너무 획 바뀌어 버린 태주도 적응이 안되지만, 죽일 것 까지야......등등. 아마도 이것은, 영화를 보는, 혹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동일시했던, 자신들과 비슷한 주인공들이, 역사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신분 상승'의 꿈을 향해 용트림을 틀지만, 결국 '패배자'가 되어 스러지는 현장을 보는, 아니 그 아픔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는, 2013년의 민초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된 소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라면, 아니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때깔좋게 살아보기 위하여 거짓말, 사기, 협잡 따위에 점점 눈을 감고, 오로지 타고난 제왕의 자리가 어디 있냐며 나라고 왜 못하겠냐며 일갈하는 태주의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사는 동네에 뉴타운이 들어선다고 하면, 거기에 쫓겨날 사람들은 생각도 않고 옳다구나 땅값이 올라 한 몫 잡겠구나 이러고, 대통령이 될 사람이 사업적으로 부도덕한 일을 하건, 그의 아비가 누구였건 아니 오히려 그의 아비가 누구라서 그때처럼 잘 살게 해주겠지 하며 투표를 했었을 것이다.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는, 작가의 전작 <추적자>의 강동윤(김상중 분)을 빼닮았다. 철거될 지역의 초라한 음식점집 아들과, 찌그러져가는 이발소 집 아들들은, 그저 자신의 호기와 배짱, 그리고 능력만을 믿고 '입신양명'을 꿈꿨다. 그리고 똑같이, 그 과정에서 괴물로 변해갔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저 곳에 도달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놓친 게 있었다. 거기는 바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인 것을. 자신이 바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짓밟고 괴물이 되어야 그 언저리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고수가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자살을 선택하며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한 대가를 목숨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이번 고수의 죽음은 새로운 결말을 요구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다. / SBS 대기획 황금의 제국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황금의 제국>성진 그룹 회장실에 걸려있는 최동성의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 그대로, 거기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이다. 마지막 홀로 남겨진 서윤처럼 자신의 가족도, 주변 사람도 모조리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야 했다. 
장태주가 포기한 것은, 바로 그것, 자신이 괴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설희를 다시 감옥에 보내야 하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짓밟아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현실의 그는 비록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벌을 스스로에게 내렸지만, 최소한 궁극의 괴물이 되지는 않았다. 강동윤은 끝까지 괴물이 되어서라도 그 곳에 도달하려고 하다 실패하고, 장태주는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에서 돌아선다. 
반면, 홀로 회장실에 남겨진 서윤은 주변의 모두를 잡아 먹은 채 괴물이 되어, 아버지란 이제는 망령이 되어버린 괴물의 주구가 되어 똑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민재는 치유되지 않는 괴물 중독증으로 인해 ,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흘러 감옥을 나와도, 여전히 괴물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벌을 내린 장태주를 보며 느끼는 자괴감은 무엇일까? 바로 괴물이 되어서라도 한번 때깔나게 살아보지 라는, 내 안의 괴물 중독이 일까? 새삼스럽게 절감하게 된 괴물들이 사는 나라 때문일까? 아니, 괴물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황금의 제국에 대한 절망감때문일까?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어린이 그림 동화가 있다. 홀로 방 안에 남겨져 무서워 하던 아이의 방이 어느 덧 숲 속으로 변해가고, 괴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괴물들은 무서운 괴물이 아니다. 아이는 어는 덧 괴물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괴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 변해버린 방과 괴물들은 바로 아이의 마음 속에 있던 공포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마음 먹기에 따라 괴물은 친구가 되기도, 부하가 되기도 하고, 방문을 열고 나온 순간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실, 드라마도 그렇다. <황금의 제국>이란 드라마가 끝나면, 드라마 속 괴물 일가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다. 드라마 속 괴물들은 사라져 없어져도, 현실의 괴물은 더 공공히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현실의 자괴감을 드라마 속 환타지로 치유해 주지 않은 드라마로 인해, 잠시 눈감고 싶었던 현실이 더 느껴져 괴로워 하고, 드라마에서 조차 이루어 지지 않은 '꿈'에 분노하기 조차 한다. 

(사진; 리뷰스타)

언제인가 부터 드라마 속 재벌들은 괴물이 되어 있다. <스캔들>의 장태하가 그렇고, <황금의 제국>의 성진 그룹이 그렇고, <결혼의 여신>의 시댁이 그렇다. 그들은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사람을 없애고, 사람을 피 말리게 하고, 사람을 휘돌린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 속 괴물처럼 친구가 되어주지도, 부하가 되어주지도 않는다. 눈 한 번 끔뻑하고 나면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괴물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잡아 먹으려 든다. 

황현산 교수는 그의 수필집 [밤은 노래한다]에서 현실을 지옥도처럼 그려내는 김기덕 감독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튼튼한 상상력으로, 우리 안에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어떤 괴물.....을 외면하려는 비겁한 마음들과의 싸움에서 우리 시대 가장 높은 투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물론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괴물과, 최근 드라마 속 괴물들은 맥락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우리의 비겁함을, 초라함을 용기내어 말할 수 있는 이들 작품에 대해 우리는 황교수와 똑같은 찬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현실을 직시해 주어 고맙다고. 
결국 '꿈 속의 괴물'을 없애거나, 그들과 친구가 되거나, 내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리는 건, 현실의 내 몫이다. 


by meditator 2013. 9. 18. 10:25

사례1; 16일 보도전문 채널 ytn은 채동욱 검찰 총장과 관련된 기사 꼭지를 보도할 때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의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과, '별장 성추문 사건'의 김학의 전 차관 등 연수원 14기 에이스의 몰락을 꼭 함께 다룬다.


사례2; 9월17일 아침 sbs 뉴스, 역시나 채동욱 검찰 총장과 관련된 뉴스 꼭지에서 이 모든 사태의 해결책은 결국 채동욱 총장과 그 혼외 자식이라는 아이의 유전자 검사 만이 해결책인양 그래서 일선의 검사들도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양 보도를 한다. 

사례1,2의 보도를 통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사례1의 보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도욱 검찰 총장의 혼외 아들 혐의(?)를 짐짓 사실로 추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낫는다. 또한 사례2의 보도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채동욱 사표와 관련된 사건이 청와대와 국정원이 합작한 채동욱 검찰 총장 찍어내기라는 사건의 또 다른 측면을 배제한 채 정부측이 의도한 채동욱의 개인 비리라는 측면으로만 사건을 축소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사례1도, 사례2도 모두 사실만을 보도했다. 사실이 아니지 않은 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 있는 사실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jtbc 사장으로 간 손석희씨가 드디어 jtbc 뉴스9의 진행자로 나섰다. 첫 뉴스를 진행하기에 앞서, 손석희 앵커는  프랑스의 유명 언론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말을 인용해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다루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채동욱 검찰 총장의 사건은 매우 미묘한 사안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정권의 심기를 거스른 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을 구속한 채동욱 검찰 총장 찍어내기라는 배경이 있는 반면, 그것이 현실에 드러나는 양상은 채 검찰총장의 개인 비리라는, 마치 시위 참가자에게 손해 배상 혐의를 들어 엄청난 벌금을 뒤집어 씌우는 비열한 방식의 처리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세상의 진정한 진실에는 쉽게 눈감지만, 만만한 사람들의 개인적 부도덕 혐의에는 동네 방네 나발을 불기에 바쁜 대부분의 언론, 그리고 특히나 특정한 종편들은 신이 나서 채동욱 검찰 총장의 개인 비리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장단에 발맞춰 결국은 개인의 사생활에 불과한 사안을 가지로 분개를 하고. 그러는 사이, 정작 촛점을 맞추어야 할, 짚고 넘어가야 할 정치적 쟁점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언론의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구설은 확대대고, 음모는 퍼져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손석희가 첫 앵커로 나온 JTBC 뉴스 9이 손석희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JTBC 뉴스 9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그런 가장 예민한 사안에 대해, 손석희의 뉴스9은 진실에 접근하는 정공법을 쓴다. 채 검찰 총장의 개인 비리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뒤에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정권의 불편한 심기가 있음을 분명히 밝혀주고, 그와 관련된 검찰청 의 동정을 살피고, 법을 전공한 교수의 해석까지 곁들인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론의 반응까지 곁들인다. 단지,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은 것을 말했을 뿐인데도, 보는 시청자들은 모처럼 속이 시원하다. 손석희씨가 특정한 편을 들지도 않았고, 사안에 대해 가타부타 개인의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사안을 사안의 진실대로 밝혀주려 했을 뿐인데도, 굉장히 진보적인 느낌조차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진실의 힘은 이런 거야 하며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뉴스9은 진행방식에 있어서도 획기적이었다. 
마치 이전에 손석희씨가 했던 라디오의 '시선집중'을 텔레비젼 화면으로 옮겨와, '보이는 시선집중'인 것처럼, 스튜디오에서 바로 양쪽에 스크린을 통해 현장을 연결해 인터뷰도 하고, 보도를 전해들어 현장감을 살리는 식이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바로 가장 중심 사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마치 작은 토론회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었다. 이미 '시선 집중'을 통해 오랜 시간 생방송에서 단련된 손석희씨는 곧 상대방이 안철수 씨라도 여유있게 '한번 만나기가 어디 쉬워야 말이죠', '현실성이 없다'는 식의 촌철살인을 놓치지 않아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었고, 전병현 민주당 원내 대표에게, 비둘기파를 빗대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게 아니냐며 사태를 정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이미 미드 <뉴스룸>을 통해 알려졌듯이 미국 보도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끄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1회에서 보여지듯이 생방송 도중 여유롭게 인터뷰를 하고, 대화를 통해 보도의 사안을 헤집어 보는 방식은 앵커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방식인 것이다. jtbc가 뉴스 9을 통해 이런 방식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손석희라는 걸출한,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공명정대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당대의 앵커가 있기 때문이다. 

뉴스9은 첫 방송의 첫 번째 인터뷰 주자로 안철수 국회의원을 초대했다. 
안철수 국회의원이 첫 출연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아직까지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손꼽히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 첫 번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주목할 수 있는 그 점만이 아니다. 최근 안철수씨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는 다가올 보선이 2~3개 지역에 불과하다면 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그게 아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흐름에 대해 차기 대통령 주자가 될 사람은 어떤 입장을 가지는 지가 궁금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송에서도 안철수의 입장은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방송에 출연한 안철수씨의 인터뷰가 손석희 앵커의 발언처럼 분명한 것이 없는 것은 그 다음의 판단이다. 그간 청와대의 동정과, 야당의 반발 만이 그득한 뉴스 현장에서, 생각해 볼 대안 세력의 존재를 부각시켜 준 만으로도 또한 jtbc의 선택은 의미가 있다. 

물론 이미 <썰전>에서 허지웅씨가 언급한 것처럼, 삼성이란 그림자가 드리운 jtbc에서 사장으로 있는 손석희씨, 그리고 그가 진행하는 jtbc의 바로미터는 바로 삼성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첫 방송만으로도 손석희의 뉴스9은 막무가내 막가파 종편 방송과 안그런 듯 하면서도 길들여진 앵무새같은 보도만을 일삼는 타 보도프로그램들 속에서 이제 뉴스 좀 봐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정도의 성과는 얻고 있다. 


by meditator 2013. 9. 17. 09:07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징금 1672억을 내지 않고 버틴 결과, 2013년 9월 그의 두 아들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가진 돈이 단돈 29만원 밖에 없다며 버티던 전직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가 그의 두 아들에게로 향하고, 밤을 세워 조사를 받게 되고, 자칫하면 조만간 감옥에 들어갈 처지가 되자, 마지 못해 자녀들이 가진 부동산을 내어놓는 것으로 추징금을 갚겠다고 나섰다. 철면피한 아버지를 둔 덕에 아들들은 졸지에 전국민의 눈총을 받으며 검찰을 들락거리게 된 것이다. 아니다. 부도덕한 아버지를 둔 덕에, 어쩌면 멀쩡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를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 부도덕의 대를 이어, 비밀리에 비자금을 해외에 빼돌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그림을 사모아 은닉 재산을 지키는 대를 이은 부도덕한 사람으로 거듭나 결국 검찰청 건물을 들락거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를 놓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부도덕한 관례라 생각할까? 아들의 삶을 가장 좌지우지 하는 건, 아버지의, 아버지의 세대가 살아온 삶이다. 

기사 관련 사진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이란 드라마의 정점은 장태하가 그의 진짜 아들이 누군인 줄 알게 되었을 때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진실을 알게되어 자기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다는 그 충격적 진실 앞에 무너지고 참회할 장태하를 자연스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은중이, 하명근 형사가 유괴한 아이가, 진짜 장은중이었음을, 그리고 그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 했음을 알고 나서도 장태하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참회하기는 커녕, 자신의 핏줄을 속였다는 분노, 자신의 핏줄을 빼았겼다는 결핍감으로 인해 더더욱 극악무도한 욕망의 화신으로 변해간다. 아내의 남편이자, 은인이던 장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재산을 빼돌린 부도덕한 인간을,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건물 무더기를 불도저로 밀어버린 파렴치범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건물의 부실을 알리는 직원을 죽인 살인자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었던 거 같다. 
마치 인지상정으로 전직 대통령인데 설마 추징금을 띵겨 먹겠어? 하는 상식의 선에서 기대를 하던 국민들이 아들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극한의 수순을 밟아야, 겨우 땅뙈기를 내놓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수법을 써야만 했듯이, 부도덕한 아버지들에게, 인간적인 참회와 반성이란 개나 물어갈 이야기였던 듯하다. 
결국 그런 장태하의 반성없는 폭주하는 기관차같은 욕망은, 그의 친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뻔 하더니, 이제 겨우 찾은 친아들로 하여금, 자신을 길러준 유괴범에게 총구를 들이밀게 만든다. 친아버지가 길러 준 아버지를 없애는 불상사를 대신하기 위해, 아들이 미리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꼴이다. 결국 범죄의 아비가, 아들을 다시 범죄로 몰아넣는다. 

하은중이 장은중임이 밝혀진 이후, 날뛰는 장태하와, 모든 처벌을 달게 감수하려는 하명근이라는 두 아버지의 다른 선택 사이로,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두 아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일들은 대를 이어 되풀이 되는 것이다.
비록 유괴범이었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장태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아들을 유괴하고, 윤화영이 가짜 장은중을 내세운 바람에 장은중을 돌려주지 못한 하명근은, 이제는 하은중이 되어버린 장은중이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를 결국 자신의 아들로 품어내는 인고의 과정을 겪어 냈다. 그래서, 이제 장은중으로 돌아가겠다는 하은중은 여전히 의협심이 강한 형사 그대로이다. 
반면, 진짜 장은중이 돌아오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부모도, 집도, 직업도 잃어버리게 된 장은중은, 그의 작은 어머니의 마음 속 소리를 그대로 뇌되인다. 어느 누가 감히 태하 그룹의 그 거대한 재산을 포기하겠냐고. 장태하가 아들 바보라며 키워낸 아들은 어느새 장태하처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려 드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장은중이 된 하은중에 의해 구해져 하명근의 집에 누워, 하명근이 떠주는 죽을 먹으며 흘린 윤화영의 눈물에서 유괴는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일임에도, 유괴범의 아들로 자라나 다행히도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아들이 된 하은중이 떠올라 보는 사람의 눈시울마저 시큰거린다. 그 시간 엄마가 숨어있는 곳을 아버지에게 알리며 자신의 생사를 딜하는 가짜 장은중과 달리 말이다. 

(사진; 한국 경제)

<스캔들>은 선정적인 제목, 불량스러운 부제와 달리, 10시 드라마로는 근자에 보기 드물게, 막장의 요소도, 연기의 부조화도 없는, 게다가 우리 시대를 상징적으로 설명해내고, 고민하게 만드는 명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막장의 향연이라고 불리웠던 전작에 비해서도 시청률이 낮고, 같은 날 말도 안되는 스토리라 비난받고 있는 같은 방송국의 9시 드라마보다도 시청률이 낮다. 말이 되지 않건, 멀쩡하던 연기자들을 단칼에 쳐내도, 자극적 스토리만 있으면 관심을 끌 수 있는게 역시나 시청률의 정답인 듯하다. 그저 부디 이런 좋은 작품의 뒤에 시청률의 욕심에 다시 막장으로 회귀하지나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한편에선, 우리 시대의 진실을 부도덕한 방식이지만 충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스캔들>이 이나마 선전하는 게 어딘가 싶다. 비록 주말 시청률 1위는 아니더라도,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하며, 쭈욱 자신이 하고픈 바를 마지막 까지 통쾌하게 풀어내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9. 16. 10:05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이건 EXO의 '으르렁'이란 노래다. 요즘 이 노래가 많이 들린다. 내가 좋아서 찾아듣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보는 음악 방송에서, 거리에서, 원컨 원치 않건 내 귀에 들려온다. 노래만 자주 들리는게 아니다. 리모컨으로 여기를 틀어도, EXO 저기를 틀어도 EXO, 이른바 대세라는 걸 징그럽게 체험하게 해주는 중이다. 
그렇다, EXO는 SM 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선보인 새로운 신인 아이돌 그룹이고, 그들은 앨범이며 음원 등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순항 중이다. 


물론, 타 아이돌 그룹에 비해 돋보이는 탄성이 나올 만한 퍼포먼스에, 완성도가 높은 음악에,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미소년들이란 기본 조건 만으로도 충분히 이미 그들은 최고가 될 만 하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 존재하는  SM이라는 거대 기획사가 없다면 과연 그들이 지금처럼 비약적인 성취를 보일 수 있었을까? 
이미 그들이 누구인가를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SM이 제작했던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등장했으며, 같은 회사라 아니라고 하면서도, 신동엽, 강호동 등 SM C&C 소속 MC들이 등장하는 곳이면 어디든 EXO가 나타났고, 심지어 <무한도전> 같은 곳에서조차 EXO 특집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게 과연, SM이라는 후광이 없다면 가능할 일인가 말이다. 
많은 기획사에서 양산되는 신인 아이돌들이 텔레비젼 화면에 얼굴 한 번 비추는 게 소원인 상황에서, 모든 프로그램이다 할 만큼, 많은 곳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SM의 아이돌 그룹이기 때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거대 기획사의 든든한 뒷배 덕분에 순항하는 EXO에게 또 하나의 호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EXO에 필적할 만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SM 에 필적할만한 거대 기획사의 신인 아이돌 그룹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OT시절에는 젝스키스가 있었고, 동방신기 시절엔 SS501 혹은 빅뱅이라는 라이벌이 있어 혈전을 벌였다면, 최근의 EXO에게는 그럴만한 상대가 뚜렷이 없다보니, '내가 제일 잘 나가'가 어쩐지 맥이 빠지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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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후발 주자로써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사 YG가 선택한 방법은 이미 '빅뱅'을 화제 속에 탄생시켰던 바로 그 방법, 연습생들의 서바이벌, M.NET과 TVN을 통해 금요일 밤 방영되는 <WIN>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YG 소속의 연습생들은 20세 이하와 20세 이상의 B팀과 A팀으로 나뉘어 노래, 춤, 랩 등, 각 분야, 각 미션 별로 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말이 서바이벌 미션이지, 이미 빅뱅의 탄생과정에서 그랬듯이, 연습생들은 그들 개개인의 캐릭터와 역량에 따라 시청자들의 인지도를 얻어가고, 데뷔할 때가 되면 신인이지만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즉 팬이 생긴 아이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빅뱅이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늦은 출발, 그리고 외양에서의 미진한 부분을 극복했고, 음악에 있어서의 실력자라는 캐리어를 쌓고 시작할 수 있었고, YG는 EXO라는 절대 강자와 군소의 집단들이 범람하는 아이돌계를 다시 한번 돌파하기 위해 '빅뱅'의 그 전략을 다시 꺼내들은 것이다. 말이 A팀, B팀이지, 어차피 미션이 거듭될 수록 부각되는 건, 팀이 아니라, 거기서 돋보이는 개개인이니, YG로써는 지난 번처럼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새로운 아이돌 한 팀을 추려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13일 방송된 <WIN>은 이제 자신들 내부의 배틀을 넘어, 연습생들을 데리고 JYP로 건너간다.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상대 도장을 찾아가 한 수 배운다는 명목으로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듯. 미소 가득한 양 기획사의 수장조차 뒤에서는 결코 질 수 없다며 이를 가는 배틀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말이 SM, YG, JYP의 3대 기획사지, 현실을 보면, JYP의 위세는 한 풀 꺽인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모 사이트의 '만약 내가 아이돌이 된다면' 어느 기획사를 선택하겠냐는 앙케이트에조차 JYP는 초라한 성과를 낼 정도로. 그 수장인 박진영이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기획사가 적자가 아니며 수지 말고도 돈을 벌어노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해명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 지금의 JYP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JYP와 YG는 왜 굳이 함께 배틀을 벌일까?

그것은 이미 SBS의<K팝스타>에서 차용했던 YG의 전략이다. 박진영과 뚜렷한 대결 구도를 벌이면서 YG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그러면서 아직은 SM에 비해 약한 자신들의 위상을 JYP와 함께 3자 구도를 만듬으로써, 일종의 JYP와 합종 연대를 하는 방식인 것이다. 
실제 방송에서, 양현석과 박진영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미 두 기획사의 선배들 사이에서 이러한 배틀이 있었고, 그들이 바로 세븐과 비, 그리고 2PM과 빅뱅이었음을.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한 배틀의 결과, 누가 이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두 기획사 소속 가수 모두 잘 되었다고. 그렇다. 바로 이것이 의도적인 라이벌 구도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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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 준치'라면 박진영은 섭섭하겠지만, 최근 보여진 그의 기획사 작품들의 형편없는 결과물에 비해, 13일 방송에서 보여진 연습생들의 위상은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결과를 논하지 않았던 방송과 달리, 방송이 끝난 후 여러 곳에서는 JYP가 이겼다는 호평조차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망한 부자 3년은 간다는 속담의 진면목을 보여준, JYP 덕분에, YG 역시 엎어치나, 메치나 YG였던 A팀과 B팀의 배틀에 생기를 더했다. 그들과 다른 기획사 아이돌과 붙으니, 그들의 섹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할까.

하지만 '빅뱅' 시절의 연습생 배틀이 독보적인 서바이벌이었던 데 비해, 지금의 <WIN>의 상황은 낙관할 만하지는 않다. 
이미 진격할 대로 진격해버린 EXO는 둘째치고, 13일 방송에서 JYP와  YG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이제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유혹할 꺼리가 한결 많아졌다는 것이다. 
<쇼미더 머니>를 통해 단련되고, 심지어 랩퍼들의 디스전을 찾아들으며 평가까지 할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JYP의 교포들이 다수 섞인 이국적인 프리스타일 랩과, 영글지 않은 YG의 랩에 찬사만을 보내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더 직접적인 공격은 바로 그 다음 시간, 방영되는 <슈퍼스타 K5>이다. 검색어를 점령한 신예들의 노래 실력을 이겨내야만 새로운 무림의 실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O는 둘째치고, 연습생이라는 고된 시간과 격한 배틀만으로 그들을 포장해 주기에는 사방이 적이다. 하지만 그런 넉넉치 않은 상황이라도 사실 <WIN>만큼 소속 아이돌을, 그리고 기획사를 홍보하기에 적절한 프로그램도 없다. YG니깐 그것도 또 가능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3. 9. 14. 11:06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캔버스에 담배 파이프를 떠억하니 그려놓고는 이런 제목을 붙인다. 
그런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분면 쇼핑몰 사장 주중원(소지섭 분)과 일개 여직원 태공실(공효진)의 연애 이야기 임에도, <주군의 태양>은 끊임없이 말한다. 이것은 캔디가 아니다. 이것은 캔디물이 아니다. 라고. 

그림의 존재에 대해 회의와 질문을 하던 시대에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는 뻔한 담배 파이프를 통해 본질에 다가간다. 내가 파이프를 그렸는데, 이게 파이프인가? 실제로 들고 필 수도 없는 그저 보여지는 이 형상을 파아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림을 통해 표현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주군의 태양>도 마찬가지다. 
주군이 맘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태공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캔디의 딜레마'이다. 말로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하지만, 울 상황이 되면, 어딘선가, 안소니가, 혹은 테리우스가 나타가 그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캔디와 자신은 처지가 다르다고, 달라야 한다고 태공실은 말한다. 심지어, 주군과 태양은 사랑의 밀담을 나누는 대신, 캔디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태공실의 존재 이유와, 주군의 필요성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 까지 한다. 하지만 어쩌랴, 엎어치건 메치건, 현실은 주군과 태공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 주군이 쇼핑몰 사장이고, 태공실이 여직원인 한에서 그들은 캔디와 그녀를 사랑하는 가진 남자일 뿐인 것을. 

르네 마그리트가 단순한 그림 한 장을 통해 그림의 존재 이유, 나아가 사물의 이름값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듯, 홍정은, 홍미란 자매(이하 홍자매)들은 <주군의 태양>을 통해 흔히 그려지는 우리나라의 캔디물 러브 스토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쇼핑물 사장과 여직원의 사랑을 그려놓고, 이건 캔디물일까? 캔디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캔디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고. 


처음 이 땅에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가 소개 되어, 텔레비젼 만화로도 방영이 되고, 책으로도 나왔을 때 많은 소녀들은 열광했다. 별로 이쁘지도 않은 소녀 캔디를 왕자님같은 안소니와 멋진 남자 테리우스 두 사람 모두 자기 목숨처럼 사랑해 주는 이야기에. 그래서 로맨스 소설을 읽을 나이의 소녀들조차 수업 시간마저 참지 못한 채 책상 아래에 캔디를 숨겨 읽다 선생님께 들켜 책을 빼앗기는 봉변을 당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좀 깨이기 시작하면서, 주체적 여성상이 부각되면서, 캔디는 멋진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소녀가 아니라.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남자들의 사랑에 의지한 민폐녀로 캐릭터가 변모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주군의 태양> 속 캔디는 사랑스러운 만화 속 여주인공이 아니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멋진 사장님에게 '사랑'으로 들러붙는 민폐녀의 상징처럼 쓰인다. 그래서, 태공실은 그런 민폐녀가 되기를 질색하며, 주중원에 대한 사랑을 숨기려 애쓴다. 텔레비젼을 보는 우리도 알고, 드라마 속 주변 인물도 다 아는 사랑을 태공실만이 하늘의 태양을 두 손으로 가리듯 사랑이 아니라고 필요에 의한 거라고 아득바득 우긴다. 아니 우기려 애쓴다. 

홍자매는 애초에 태공실은 아주 노골적으로 주중원에게 들러붙는 여자로 그려낸다. 하지만 단지 이유가 다르다. 귀신을 보는 태공실이, 그녀의 앞에 들이대는 귀신을 사라지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주군이기 때문에, 태공실은 살기 위해서 주군을 붙잡고 늘어진다. 주군이 장담하듯이, 어떤 면박을 줘도, '꺼져'라고 몇 십번을 외쳐도, 주군이 '방공호'인 한 태공실은 주군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래서 태공실은 당당하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귀신을 쫗아주는 주군은 괜찮고, 사랑을 하는 주군은 안되는가? 라는 딜레마이다. 
이것을 통해 홍자매는 질문을 한다.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진 남자의 사랑을 받는 캔디가 정말 민폐녀야? 라고. 

그리고 하나의 담론이 더 등장한다. 바로 늑대와 염소 이야기. 
늑대는 염소를 잡아 먹는 천적인데, 바로 그 늑대와 염소가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동화, 동화 속 염소는 늑대를 사랑해, 자신을 잡아 먹으라고 말한다. 그런 염소에게 늑대는 그럴 수 없다고, 
아직 드라마 속에서 동화의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고모의 말처럼, 결국 더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을 하게 된다. 12일 <주군의 태양>의 주중원처럼. 태공실을 향해 날아오는 드라이버를 몸으로 받아내는 것이다. 마치 그 예전 테리우스가 몸을 날려 캔디를 구하듯 말이다. 

이미지

고모는 말귀를 못알아먹는 태공실에게 글을 못읽는 주군을 그냥 놔두라고 한다. 공소 시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냥 지금처럼 살게 놔두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태공실을 만난 주중원은 김귀도의 말처럼 자꾸 달라진다. 차이령의 죽음 이래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닫고 모든 것을 사업적 이해 타산 관계로만 판단하던 주군이 조금씩 사람같아 지는 것이다. 귀신이 되어서도 태공실 앞에 나타나 '사랑해'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 모든 것은 '태공실을 향한 사랑'때문이다. 난독증을 해결한 건 태공실을 향한 사랑이다. 

캔디는 민폐녀일까?
가진 것이 많은 것과 적은 것으로 사랑의 역학 관계를 설명해서는 안돼지 않을까, 사랑은 늑대와 염소 같은 거 아닐까, 서로 잡아 먹어야 될 처지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거,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성장시키는 거. 늑대는 그저 염소나 잡아먹는 동물이었지만, 염소를 사랑하는 늑대는 더 이상 늑대가 아니듯이. 사랑을 통해 변화되고 달라지는 주중원을 그저 더 가진 자라고, 그런 주중원을 변화시키는 태공실을 민폐녀 캔디라고  말할 수 없지 않냐고 홍자매는 반문하는 중이다. 

홍자매의 작품들은 '프리티 우먼'처럼 뻔한 통속적 러브 스토리의 틀을 늘 가지고 있다. 재벌이 가난한 여주인공을 만나고, 최고의 스타가 무명의 여배우를 사랑하고,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뻔함 속에서 부지런히 홍자매 작가들은 세속적 평가로 재단되어 지는 생각들에 대한 자신만의 담론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아마도 <주군의 태양>의 담론은 태공실과 주중원으로 하여금 설전을 벌이게 하는 바로 그 '캔디'의 딜레마'일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태이령이 늘 내거는 샐러리맨과 사업가라는 명목상 선택의 기로와도 통한다. 
그걸 통해 사실은 그저 '사랑'일 뿐일 그것들을 세속적 잣대로 억지로 얽어매고 있는 건 아닌가 라고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9. 13. 10:19

식객은 허영만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만화이다. 그런데 거기에 뜬금없이, 혀영만과 지인들이 캐나라도 '집단 가출'을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만화는 나름 사회에서 다 저마다 한 가닥 하는 남자들이 '가출'이라는 마법이 걸리자 마자, 갑자기 사춘기소년처럼 설레여하고, 대책없이 무작정 덤벼들기도 하고, 또 바로 그런 순수한 시절의 눈으로 자연을 감동하는 모습을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만화 속 그 중년의 소년들의 감정과 표정이 고스란히 기억날 만큼. 
아니나 다를까, 나말고도 그들의 '집단 가출' 해프닝이 인상깊었던 것인지, 허영만은 아예 <허패의 집단 가출>이라는 만화를 펴냈고, 이들의 '집단 가출'은  2010년 <ebs 다큐 프라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중; 사진; 미디어 한글로)

그리고 바로 그런 허영만과 지인들의 집단 가출에 모티브를 둔 예능 한 편이 9월11일 방영되었다. 
남희석, 신현준, 이훈, 정형돈, 정겨운, '인피니트'의 성규 등 여섯 남자가, 정규 편성을 지향하는 이름의 '레귤러 호'를 타고 마라도까지의 1박2일을 요트를 타고 항해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트를 탄다거나, 가출이라는 포맷적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선 드는 생각은 '또 남자들의 예능이야?'였다.
만약에 <바라던 바다>까지 생기면, kbs2 에만 남자들의 예능이 3개나 되는 것이다. 전국 방방 곡곡을 여행하는 <1박2일>에,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여러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인간의 조건>에 이제, 그것도 모자라 바다에 가서 1박2일을 찍는다고? 

허영만과 지인들의 '집단 가출'의 묘미는 매우 안정적인 일상에서의 삶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그 일상의 궤도에서 삐끄러져 나와, 가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화면에 등장한 남희석, 이훈 등이 아내와 가족으로부터의 가출을 논하지만, 제 아무리 그들이 가출의 절실함이나 당위성을 주장해도, 이미 '예능'에서 너무 익숙한 그들의 면모가 '가출'이라는 '일탈'이라는 단어와 잘 조합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겨운은 이미 케이블의 캠핑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고, '인피니트'의 성규 역시 이젠 '예능'에서 익숙하다 보니, 분명 새로운 멤버인데,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나혼자 산다>의 김광규같은 본투비 총각 같은 느낌이라던가, <꽃보다 할배>의 네 할배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멤버의 구성과 색깔의 조합은 이미 프로그램의 성격을 어느 정도 결정해 버린다. '가출'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오면, 멤버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가출'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멤버들로 1박2일 바다 버전을 찍느니, 최근에 심각한 정체 현상을 겪고 있는 원래의 1박2일 멤버들을 끌고 바다로 도전해 보는 게 더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았을까?

?


그렇다면 정작 1회에 불과하지만, 정규 편성을 바라며 배의 이름조차 '레귤러'라고 지은 <바라던 바다>의 내용은 어땠을까?
최근에 빈번하게 여러 예능의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선보이면서, 안타깝게도 역설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것은, <꽃보다 할배>나, <무한도전>고 같은 성공한 프로그램을 이끄는 pd의 능력이다. 
물론 <꽃보다 할배>처럼 생각지도 못한 할배들의 배낭 여행을 소재로 삼았다던가, <진짜 사나이>처럼 군대를 예능으로 끌고 온다던가,<아빠, 어디가>처럼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이라는 기획 자체로 먹고 들어가는 예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기존에 나와있는 그 무엇과 어딘가 비슷한 지점이 있는 예능일 수록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기존의 그 무엇과 비교되기 마련인 것이다. <가슴이 뛴다>의 피디가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마자 다짜고짜 멤버들을 불 속으로 들이민 것은 그 만큼 단번에 사람들의 눈에 들어야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무리수인 것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 <바라던 바다>는 정규편성을 바란다면서 너무 '슬로우 스타터인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이미 정규 편성을 받아놓은 사람과도 같달까?
무모하게 바다로의 가출을 감행한다면서 첫 회의 많은 시간을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의 가출 출사표와, 요트 배우기에 보냈다. 이른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띤 것은 알겠지만, 바다로 나가 파도와 싸워도 볼까말까 하는 판에, 느긋하게 요트에 대한 설명과 매듭 묶기 등을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멤버들과 함께 하는 스탭들은 재밌지만 보는 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배를 타고 겪는 본격적인 모험은 '다음 시간에'로 넘겨 버리고 만다. 
하다못해 허영만의 '집단 가출'팀의 ebs방송 조차도 한 달에 3일씩 1년간의 요트 가출 동안 길거리에서 자는 비박과, 비좁은 요트 안에서의 아비규환 등 날 것의 바다 생활을 다뤘는데, <바라던 바다>의 요트 여행은 예능도 아닌 것이, 다큐도 아닌 것이 보는 사람의 고개가 갸웃해진다. 

11일 오후 KBS2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바라던 바다가 첫 방송을 했다./KBS2 바라던 바다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jtbc는 <썰전>이라는 정치 비평 토크쇼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더니,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적과의 동침>을 통해 국회의원까지 끌어 들인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공중파인 kbs2가 만들어 내는 예능의 모양새는 어떤가? 제 아무리 아니다, 아니다 외쳐본들 그럴 수록 오히려 더 <꽃보다 할배>의 아류가 되어버린 <마마도>에, 1박2일의 바다버전 <바라던 바다> 등이다. 추석 특집으로 방영되는 아빠들의 아이들 돌보기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아빠 어디가>가 없었다면 기획되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기획이 참신하지 않다면, 프로그램의 만듬새라도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바라던 바다>의 첫 회 파이럿 프로그램을 보면, 멤버들의 면면이 참신하지도, 내용이 신선하지도 박진감 넘치지도 않았다. 이러니, 그들의 불감청 고소원 '레귤러'에 썩소가 지어질 밖에. 


by meditator 2013. 9. 12.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