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에서는 각자 휴가를 즐기던 멤버들이 모처럼 한 집에 모여 늦잠에 빠져있는 아침, 느닷없이 엠블랙의 이준이 방문을 한다. 이유인즉, 자신의 그룹이 활동을 끝내고 휴가라, <인간의 조건>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생뚱맞은 아이돌 게스트의 출현에 멤버들은 조금은 낯을 가리거나, 남의 집에 찾아오면서 빈 손으로 왔다고 타박을 하며 경계를 허물어 가면서, 예의 그 가족적인 따스함으로 게스트 이준을 <인간의 조건>안에 녹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날 하루 이준은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함께 긴 하루를 보낸다. 

(사진; sstv)

<인간의 조건>에는 종종 아이돌 게스트들이 방문한다. 17일 방영분의 이준이 그랬고, 그 이전에 전기 없이 살기 미션 중에는 2pm이 단체로 혹은 친구의 자격으로 개인 멤버가 방문을 하기도 했었고, 뜬금없이 예은이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인간의 조건>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와 먹방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같은 아이돌들이지만 그들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멤버들의 반응 혹은 멤버들과의 합이 달라진다. 여자 아이돌이었던 예은은 남자들만 드글거리는 집에 말 그대로 '꽃'처럼 등장해, '공주'처럼 대접을 받다 갔고, 2pm은 전기 없이 모시 옷을 입고 버티는 미션에 합류해 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 이준도 멤버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일 하는 휴가 미션에 도전을 한다. 

아이돌이건, 그렇지 않건 게스트의 첫 등장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 되는 것은 '개연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17일 방영분의 이준의 등장처럼, 이유불문, 뜬금없이 나오니까,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하고 집을 떠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게 낯설던 시절 개그맨 후배 신보라한테 놀러오라고 하다가, 그녀와 같은 소속사인 이유로 등장했던 에일리는 그나마 기승전결이 있는 셈이다. 허경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임슬옹의 등장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넘어선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이 나오면 어느 프로그램이던지, 아이돌이란 프리미엄을 인정하고 대접하면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멤버들의 접고 들어가는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까지 공유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가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면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나 누가 누군지 이름을 기억하기기조차 어려운 아이돌이 범람하는 이즈음엔. 더더욱 아이돌의 프리미엄이란 냉소의 대상이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조건> 박성호처럼 낯을 가리는 멤버는 생경한 아이돌의 등장으로 얼음이 되어버려 원래의 활약조차도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게스트의 존재가 기존 멤버와의 시너지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 반대의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젠 화제성도 그닥이다. 결국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것은 그들을 통해 1회성이라도 화제를 끌어모으려고 하는 것인데, 김준호의 자평대로 닉쿤이 모시옷을 입었지만 화제는 되지 않았고, 분홍색 미션 티를 리폼해 입은 이준 편의 시청률이 그걸 증명한다. 


(사진; 마이데일리)


비단 이런 경우는 <인간의 조건>만이 아니다. sm 소속의 신생 아이돌 그룹 exo는 sm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면 어느 곳이나 얼굴을 비춰 자신들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불후의 명곡> 게스트는 애교일 정도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태민과 함께 등장하는가 하면, <나 혼자 산다>에서 강타의 소속사 후배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룹 exo 팬들이야 우리 오빠가 자주 나와서 좋았겠지만, 그들의 출연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태민과 강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을 낳는다. 
<우리결혼했어요>의  exo처럼 지금의 남편보다 태민보다 멋있어보이게 등장하는 후배들은 역효과도 이런 역효과가 없다. 
더구나 최근 <나 혼자 산다>의 경우는 애초에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독거남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넘쳐나는 게스트들로 인해 프로그램의 방향 조차 모호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결국 exo는 그런 분위기를 몰아가는데 일조한 셈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최근 생각보다 여의치 않는 시청률을 1회성 게스트의 출연으로 만회해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건 외려 <인간의 조건>의 본연의 취지를 흐뜨러뜨리는 꼼수가 되어버리는 듯 하다. 

이제 와 새삼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아이돌 게스트의 출연을 문제삼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이미 출연진들의 합이 이루어져 있고, 그들간의 시너지가 우선이 되어야 할 프로그램에서 섣부른 게스트의 출연은 심사숙고 해봐야 할 지점이다. 왜냐하면 생각만큼 홍보도 되지 않고, 멤버들의 합마저 흐트려뜨리고, 프로그램의 흐름마져 깨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제 더 이상 아이돌 게스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3. 8. 18. 10:07

솔직히 고백한다. 

<땡큐>같은 프로그램을 없애고, 그 자리를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이 차지할려나? 이런 고까운 심정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의 첫 방송을 지켜보았다. 게다가, 이미 <나는 가수다>의 명멸을 지켜보았고, <불후의 명곡>의 선전을 박수치는 입장에서, 또 하나의 서바이벌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선후배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때, 이젠 하다하다 별 걸 다 궁리해 낸다고 궁시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슈퍼매치>의 첫 방송을 본 느낌은, 어라, 이 프로그램,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하는 거다. 

무엇보다 <슈퍼 매치>란 프로그램이 새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날 것의 생경한 느낌 대신마치 여태껏 꽤나 해왔던 프로그램인 듯 익숙한 느낌을 주는 건(물론, 이 문장엔 상대적으로 신선하지 않단 의미도 내포할 것이다) 이휘재, 김구라 두  MC에 기인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구라가 원치않던 구설수로 인해 모든 방송을 그만두기 이전까지 두 사람은 MBC의 <세바퀴>를 통해 호흡을 맞춰왔던 사이이다. 그러기에 다른 방송사, 다른 프로그램임에도 두 사람의 호흡은 자연스러웠다. 거기에, 이휘재는 2008년 이래 붙박이로 <도전 1000곡>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오고 있고, 김구라 역시 칩거 이전에 KBS2의 또 다른 서바이벌 <불후의 명곡>의 MC였었다. 
이미 호흡을 맞춰 본 경험에, 음악과 관련된, 그것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해본 경험을 지닌, 게다가 나이에 맞게 폭넓은 연예계 인맥을 자랑하는 두 MC는, 아마도 양희은을 모시라고 나를  MC를 시켰을 거라는 이휘재의 너스레에서, 이제 막 데뷔 2개월차의 김예림이 첫 인상 투표에서 그 누구의 선택을 받지 않자, 자신도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다며 솔직하게 토닥이는 김구라까지, 그 어떤 게스트의 등장도 낯설지 않게 프로그램에 어우러내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진; 리뷰스타)
 

결국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슈퍼매치>는 가수들의 경연이란 본질을 내세우기 보다는, 선후배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들간의 콜라보레이션을 하기 위한 과정을 부각시킴으로써 또 하나의 서바이벌이란 진부한 컨셉을 피해간다. 
마치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첫 인상 투표에서부터, 목소리 궁합에,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인기투표와 후배의 선택, 그에 이은 선배의 답 멘트의 선택까지, '콜라보레이션'이란 틀을 살리기 위한 제작진의 묘수가 도드라진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살려냈다.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프로그램에 몰입하여 이 선배와 저 후배의 조합을 예상해 보고, 마지막에 선택된 조합의 콜라보레이션에 기대를 가지게 된다. 분명 또 하나의 가수들의 경연임에도 <슈퍼매치>의 첫방을 보다보면, 그런 선입관을 사라지고,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낼 시너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불후의 명곡>이 <나는 가수다>의 아류를 운영의 묘를 통해 살렸듯, <슈퍼 매치> 역시 잘만 운영해 나간다면, 꽤나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될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일럿 첫 방송의 성적은 저조하다. 이미 공중파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나 혼자 산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슈퍼 매치>가 낯설기도 하거니와, 이제 막 시작한 신인들의 감동 신화 <슈퍼스타K5>의 신선한 기적을 넘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프로들의 콜라보레이션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파일럿을 넘은 <슈퍼매치>의 존속도 기대해 볼 만 하다. 


by meditator 2013. 8. 17. 09:37

자, 여기서 역사 문제 하나 내보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과연 이 정의는 타당한 것일까?
흔히 역사는 마치 DNA 의 나선구조처럼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결과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클레파트라의 코는 그 중 우연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우연도, 필연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역사적 결과를 놓고 클레오파트라라는 역사적 인물을 '폄하'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들이댄 잣대에 불과하다. 저녁 무렵 술 자리에서 술 한 잔에 끼얹은 농지꺼리처럼. 왜냐하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역사적 결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줄 우연적 사건도 아니요, 필연적 귀결도 아니니까. 하지만, 증권가 정보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해석에 귀를 기울인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리고 <썰전>의 강용석이, 그가 주장하는 해석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베'와 "강용석'은 지난 번 강용석의 'NLL문건'과 관련한 여당 인물의 사퇴 무리수 운운 이후, '일베'나 혹은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실망했다', 심지어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일한 궤적을 지닌다. 
친척 중학생이 재미있어서 들여다 보게 된다는 '일베'가 그 돌출적인 입장(?)으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지만, 전혀 다른 포지션으로 그것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강용석이다. 

(사진;tv리포트)

처음, 강용석이 텔레비젼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아나운서'와 관련된 말도 안되는 언급과 그와 관련하여 '개그맨'을 고소하겠다는 등, 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켜 그가 소속된 집단에서 조차 방출된 '또라이' 정도로만 보였었다. 더구나, 그가 처음 'TVN'에서 진행한 '고소한 19'는 그의 캐릭터에 맞게, 제작진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된 요지경 세상사로, 그가 보여준 캐릭터와는 유사성을 지니되, 탈정치적 프로이기에 큰 무리없이 방송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출신에, 서울대에, 유학까지 화려한 스펙에 걸맞는 화려한 입담과 박학다식함은 곧 그를 돋보이게 했고, 결국 그를 JTBC의 시사 프로<썰전>에 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처음 <썰전>에서 그가 안철수를 물어 뜯고, 박원순을 발목 걸을 때만 해도 '팽'당한 주제에 이른바 여당 저격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잊지 못한 채 '지 버릇 개 못준다'는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썰전>의 회가 거듭될 수록, 강용석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즐기는 이철희 소장과 달리, 강용석은 허겁지겁 그가 가진 지식을, 그가 준비한 정보들을 즐비하게 나열했고, 시청자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를 '전문가'로 받아들이기에, 그가 제시하는 의견들을 전문가적 견지의 식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시탐탐 정치인으로 '리바이벌'을 꿈꾸는 강용석은 <썰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수복'하기를 노렸고, <썰쩐> 앙케이트에서 '이미지 세탁'이란 평가조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전환을 야곰야곰 진행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썰전>에서의 강용석의 발언들은 이미 얼마간 이루어진 대중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보이는 입장이, 과연 그가 지향하는 '건강한 보수'의 이미지와는 거기가 멀 뿐만 아니라, 이제 <썰전>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그의 입장은 더 이상, <썰전>의 자막처럼 '상상의 나래' 정도의 파급력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주 <썰전>에서, 강용석은 국정원을 규탄하기 위해 시청 앞에 모인 촛불 시위자들을 '동원'이라고 했다. 자기가 여당을 해보았는데, 동원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모일 수가 없다고 장담을 얹었다. 어디서 들어봤던 언어의 스타일 아닌가? '내가 해봤는데.....' 이 더위를 무릎쓰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인 진심들을, 관광버스를 타고 돈을 받아 동원된 알바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이번 주 <썰전>에서는 안철수의 멘토로 나섰던 최장집 교수의 <내일> 포럼 이사장직 사퇴를 두고, 내 돈 내고 하기 싫어서, 잘못하면 내가 뒤집어 쓰게 될 것 같아서, 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철희 소장 표현대로, 재야 학계의 거두를 '돈'을 중심으로 행보를 달리하는 속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딱 증권가 찌라시에나 실릴 법한 해석이다. 그걸 보수라고? 보수는 정치적 입장이지, '클레오파트라 코가 높아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식의 루머는 아닌 것이다. 이철희 소장이 화를 낸 것은 강용석의 입장이 자기와 달라서가 아니라,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상대방을 낮잡아 보거나, 폄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나와 다른 입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중심으로 사안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상대방을 '속물'이나 '찌질이'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은연 중에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가장 비열한 수법을 번번히 강용석은 유지해 간다. 
예전같으면 '찌질한' 강용석이 하는 말이기에 우스개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 야금야금 이미지 세탁을 통해, 어느덧 '전문가'의 견지에 오른 강용석이 하는 말은, 그저 웃고 넘어가기엔 불쾌하고, 불편하며, 위험하다. 

(사진; tv리포트)

처음 <썰전>이 시작되었을 때, 종편의 여당 위주의 편파적 입장 전달과 달리, 여, 야 각 정파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정치, 사회적 현안을 다룬 기획이었기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제 24회차에 이르른 <썰전>이 과연 공정한 정치 비평 토크쇼가 되고 있는지 제작진은 준엄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듯하다. 
아마도 지금쯤 강용석은 재야에서도 '야당 저격수'로 불철주야 헌신하는 그를 어느 분인가 알아주어 정치에 복귀할 날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용석의 비평이라는 명목을 내세운 야당, 혹은 야당 인물의 루머성 흠집 내기를 '상상의 나래'라는 표현으로 눈 감아주기에는 도를 넘었다


by meditator 2013. 8. 16. 10:12

박근형 할배는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신구 할배에 이어 지난 주 먼저 <꽃보다 할배>의 여행에서 빠져 나왔다. 마지막 방송분에서 지금까지의 출연 소감을 붇는 제작진에게 수십년의 연기 생활을 해온 박근형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늘 근엄하고 위압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형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풀어져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이 너무 드러나, 다음에 연기를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70이 넘은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박근형 옹의 고뇌는 그가 해온 연기의 세월의 무게를 더해 진중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박근형 옹의 고민이 기우가 될 만큼 요즘의 대세는 기존에 쌓여진 자신의 이미지를 부숴가며 스스럼없이 속내를 보여줘야 환영을 받는 시절이다. 물론 꼭 그 스스럼없는 속내가 망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사나이>의 멤버들은 고된 훈련 속에서도 변치않는 순수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나, 노래 이미지와 다른 자상한 아빠의 마음으로 사랑받고 있으니까.

바로 그런 이 시대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바라는 진솔한 속내라는 갈증의 지점에, <방송의 적>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난다. <방송의 적>은 이적과 존박이라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좀 있어보이는 뮤지션 두 사람을 데려다, 이적은 여자밖에 모르는 철면피에, 존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보를 만들어 버린 리얼리티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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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라는 단어가 이미 그 이름에서 부터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는 것처럼, <방송의 적>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존의 이적과 존박의 이미지를, 마치 잘 빗질된 머리를 보면 한번 엉크려 뜨리고 싶은 사람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뒤틀어 보인다. 분명 그것 역시 쇼이지만, <방송의 적>을 통해 보여진 모습이 너무도 또한 그럴 듯하다보니, 사람들은 거기서 만들어진 이적과 존박을 <방송의 적> 1회 이용권이 아니라, 자유이용권 정도로 활용하고 싶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본인조차 생뚱맞아 한 이적의 <힐링 캠프> 출연이요, 존박의 '예능 대세론'이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은 결국 만들어진 세트를 탈출하는 감동 드라마를 보여주었지만, <방송의 적>이 이 모든 것이 결국 이적의 '일장야몽(一長夜夢)'이었음을 보여주었음에도 여전히 시청자들은 <방송의 적>의 존박과 이적을 '리얼'로 소비하고자 한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 존박은 그 예의 태연한 얼굴로 말한다. '자신의 신곡 순위는 자꾸 떨어지는데, 예능 섭외는 물밀듯이 들어온다'고.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박은 <무한도전> 예능 기대주 특집에 나와 한껏 웃음을 주었고, 지지부진하던 <우리동네 예체능>조차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만들었다. 
시쳇말로 잘 될 때는 그가 그저 숨만 쉬어도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처럼, 이제 존박이 나와서 눈만 멀뚱하니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청자들을 떼굴떼굴 굴러갈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에서 존박 방송분의 상당 양이 그렇다)
그와 함께 <슈퍼스타 K>에 출연하여 1등을 거머쥔 허각이 노래만 나오기만 하면 음원 1위는 따논 당상인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그 시절 미국 유학생 출신의 엄친아 같던 존박이 '바보', '덜덜이', '냉면 덕후' 캐릭터로 예능을 종횡무진 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런 존박의 행보에는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첫 미니 앨범을 김동률이라는 프로듀서의 색깔을 진하게 입힌 채 가지고 나왔던 존박은, 이번에 들고 나온 정규 앨범에서는 그 누구의 색깔도 아닌 존박 자신의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곡에 따라 그루브가 강하기도, 목소리가 담백해지기도 했지만, 이젠 그 누구가 떠올려지기보다는 존박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심지어 음악 방송에 출연해 부르고 있는 'baby'가 본인은 가장 오그라든다고 말할 정도로, 존박 자신은 기존에 <슈퍼스타k>의 과정에서 기획된 '말랑말랑한 발라더'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재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예능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오랜 칩거와 고민 끝에 얻어진 또 하나의 해결책이요, 선택인 것이다. (GQ인터뷰 중)

(사진; 뉴스엔)


<방송의 적> 마지막 회 게스트 중 유희열은 예의 그 감성 변태 캐릭터로 등장해, <방송의 적> 리얼리티 쇼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화려한 여자의 힐을 들이마시고, 채찍을 즐겨 이용하며, 존박의 무릎에 걸터앉는 등, 자주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감성변태'로서의 모든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다. 물론 유희열의 화룡점정이 무색하게 그간 이 방송을 통해 이적이 보여준 '속물'의 경지는 거의 레전드 급이다. 하지만, 유희열과 이적이 제 아무리 푼수를 떤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의 음악적 세계의 공고함을 인정받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존박은 미지수다. 그가 기존에 자신을 인식했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길들이, 과연 그의 음악적 영역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을지, 폄하하지 않을지는 단박에 예능 기대주가 되어버린 존박에게는 좀 버거운 과제같다. 

재미있는 놀이처럼 시작한 <방송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예능 불루칩 존박을 낳고 종영되었다. 이러다 혹시 한여름밤의 꿈처럼, 야리꾸리하면서고, 은근히 공감되었던 <방송의 적>이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진짜 <존박쇼>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by meditator 2013. 8. 15. 09:51

서양 문화에서 팜므 파탈(프랑스어로 '치명적인 여자'.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악녀(惡女)의 캐릭터로 통한다. 화려한 외모와 선정적인 몸매의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한 후 파멸로 이끈다-네이버 지식백과)의 전형적인 인물로 받아지는 대표적 여성 중 한 사람이 유디트이다.

유디트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홀로페르네스가 이끈 앗시리아의 부대가 이스라엘을 점령하자, 과부였던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육체적으로 유인해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목을 잘라 성벽에 걸어놓아 앗시리아을 물리친 여성이다. 그녀가 적장의 목을 자른 그 모습은, 그 본질적 의미에서 임진왜란 당시에 적장을 부등켜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와 같지만,  유디트는 그 이후 많은 미술가들을 통해 명작의 한 장면으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으며, 팜므 파탈의 전형은 물론, 프로이트 의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상징적 인물로 재해석되며 서양 문화의 여성 캐릭터의 한 전형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디트라는 여성 캐릭터의 정의는 두 가지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성을 목적,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 하나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생은 숭고한 가치를 위해 씌여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찾아보자면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의 역사 행간에 수많은 유디트들이 존재하겠지만,  이글의 원활한 설명을 위해, 상징적인 존재로 서양 문화의 유디트를 모셔온다)

그리고 바로 그 유디트와 같은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최근 화제를 끌고 있는 드라마들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매우 충격적이도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를 가진 <스캔들>에서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주범은 하은중을 유괴한 하명근이지만, 사실 그 못지않게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윤화영(신은경 분)이다. 
윤화영은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장태하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토록 신임하던 장태하는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윤화영의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하고, 그가 감옥에서 죽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장태하를 애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윤화영은 그와 결혼을 할 때부터 한결같이 장태하를 무시하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심지어 그가 아버지를 죽였으니, 받아들이기는 커녕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쓴 것이 바로 윤화영 자신이 낳은 아들 은중이었다. 하지만, 은중이가 유괴되어버리고, 장태하에게 버림을 받게 된 윤화영은 생면부지의 금만복을 장은중으로 둔갑시켜 지리하지만  무시무시한 복수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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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하지만 알고보면 더 무시무시한 복수로 치자면,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김미숙 분)도 못지않다. 그녀 역시 자신의 남편 배영완이 성진 그룹 최동성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의 칼을 간다. 최동성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며, 배동완의 아들인 배성재를 최동성의 아들로 키워냈으며, 한결같은 현모양처로 처신하며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최동성의 목숨이 경각에 놓인 순간,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며,  복수를 실행하고자 한다. 

윤화영과 한정희의 공통점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위해 자신의 '성(性)'을 이용한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살아가며 복수의 시기를 노린다. 윤화영의 복수의 끝은, 기고만장한 장태하의 뒤를 자신의 핏줄, 혹은 대리 핏줄로 잇게 만드는 것이며, 한정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들이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복수 자체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찌기 유디트가 그녀가 속한 공동체 이스라엘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헌신하듯, 윤화영과 한정희 역시 그녀 자신의 권력이 아니라, 그녀가 속했던 남자들에 대한 복수로 일생을 보낸다.  지고지순하다는 말로 대신하기엔 집요하고, 퇴행적이다. 

이렇게 여성의 성을 도구로 이용한 방식은 엄밀하게 '약자'의 방식이다. 정정당당하게 권력을 놓고 한 판 붙어낼 수 없는 , 그런 수단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이 편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식인 것이다.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이지만 건설 재벌이 된 장태하에게는 역부족인 윤화영이, 최동성의 사랑 외에는 자신의 남편의 억울함을 풀 그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정희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권력을 쟁취하기엔 미약한 한정희, 윤화영 세대들의 복수법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 세대인 최서윤 역시 자신의 성을 무기로 삼는다. 장태주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이전 세대들의 맹목적 복수와는 좀 다르다. 일종의 '제휴'이다, 

(tv리포트)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드라마 속 유디트들의 복수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
윤화영이 벌인 복수극은, 그녀가 자신의 아들 대신 금만복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고, 이제 그녀의 친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핏줄의 복수 대신에, 아버지로 인해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지게 되어 있다. 
한정희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긴 세월 한결같은 최동성의 사랑을 외면하며 복수의 칼날을 세워왔던 그녀의 복수는 허무하다. 아들을 성진 그룹의 후계자로 만들지도 못했고, 이제와 알고보니 정작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최동성도 아니요, 어쩌면 자기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진실에 맞닦뜨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디트가 성녀로 받아들여지며 구원의 팜므 파탈로 명화 속을 유람할 때, 우리의 드라마들은, 윤화영, 한정희 세대의 '도발적' 복수 방식을 용인하지 않는다. 적장의 목을 성문 밖에 건 유디트는 존경 받으며 105살까지 살지만, 우리 드라마 속 유디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자기 파멸 뿐이다. 아직도 남성들의 권력은 우월하며 견고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서윤의 계약 결혼의 행보가 궁금하다. '성'을 무기로 한 최서윤 세대의 흥정은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그 앞선 세대의 실패를 뛰어넘은 성취를 보일까.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최서윤 역시 성진 그룹의 최서윤이란 사실이다. 


by meditator 2013. 8. 14. 10:17

<꽃보다 할배>(tvn)가 인기를 끌자 나이든 여자 배우들을 주축으로 하는 <마마도>(kbs2)를 만들고,  <아빠 어디가?>(mbc)와 비슷한 <아빠의 자격>(kbs2), <나는 가수다>(mbc)의 포맷을 이어받은 <불후의 명곡>(kbs2)에, 이제 다시 그것을 비스무리하게 본딴 <슈퍼매치>(sbs) 그리고, <진짜 사나이>(mbc)가 없었으면 결코 만들어 지지 않을 <심장이 뛴다>(sbs)까지, 시청률 지상주의가 되어버린 지상파 방송국에서 이제 케이블이든, 공중파 타 방송국이 되었든 남이 만든 포맷을 베끼는 건 특별하지 않은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맨발의 친구들>은 지난 번에는 강호동 본인이 진행하는 <우리동네 예체능>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베낀 듯한 다이빙 대회 미션을 하더니, 이번에는 무한도전이 거의 해마다 진행해 왔던 가요제가 연상되는 'my story, my song'미션을 진행중이다. 
마치 베끼기라도 좋다. 뭐 하나만 터져다오! 이런 심정인 것처럼. 매주 보는 시청자조차도 <맨발의 친구들>이 무슨 프로그램인가 헷깔려 할 정도로 다이빙을 하더니, 이젠 랩을 만들고 무대를 꾸린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찌기 <남자의 자격>이 저물녁까지 그래도 울궈먹었던 것이 합창 대회였던 것처럼, 흥이 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관심을 끌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데, 검색어에서 <맨발의 친구들>과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강호동의 랩은 훌륭했고, 그의 랩이 얹힌 음악은 완성도가 높았으며, 심지어 요즘 대세라는 '에이핑크'의 정은지가 피처링을 하기 까지 했는데.

(사진; tv리포트)

정말 안쓰러운 것은 <맨발의 친구들>의 멤버들이 참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강호동을 비롯하여 꾀부리기로 유명한 은지원에, 아이돌 김현중에, 유이에, 은혁에, 배우 윤시윤은 물론, 윤종신의 노익장까지, 모두가 미션이 주어지면, 그것이 돌멩이를 지고 바다로 뛰어드는 거라 하더라도 다 해낼 것 같을 정도로 우직하게 열심히 한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다이빙을 하고, 다이빙을 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수십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린다. 2주도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 앞에 가사를 만들고 무대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그들을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르팍 도사>보다 <맨발의 친구들>이 먼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심지어 모두가 다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도, <맨발의 친구들>을 보다보면 안타깝게도 왜 이 프로그램이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형국인지 느껴지니 어쩌랴. 

8월 11일자 <맨발의 친구들>은 'my song'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첫사랑의 추억을 그리겠다던 강호동은 마라톤을 하고, 슈퍼맨이 되고 싶다던 은지원은 워터 제트팩을 체험했다. 
은지원이 'my song'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슈퍼맨같은 상황이 있지 않느냐는, 그러니 기운을 내라 뭐 그런 취지였다. 그런데, 그 가사를 쓰기 위해 워터 제트팩? 마치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방 청소부터 하거나, 맛난 걸 잔뜩 찾아먹는 모양새 아닌가? 
더구나, 은지원이 가사를 쓰기도 전에, 그와 함께 하는 타블로는 피처링을 구한다며 대뜸 일면식도 없는 수지에게 전화를 걸다, 그도 여의치 않자 수지 어머님께 부탁을 한다. 아무리 수지가 대세라지만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그렇지, <꽃보다 할배>에서 미리 스케줄을 알아보지 않은 채 역으로 한지민에게 마중나오라고 했던 해프닝이랑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섭외 가능성이 낮은 수지에게 전화 거는 걸로 시간을 때우는 시간에, 강호동의 피처링을 맡은 정은지와 강호동이 함께 연습하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이 더 충실한 내용을 채우는 길이 아니었을까? 정작 가사를 수첩 한 가득 써온 윤시윤의 성의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열의가 넘치는 그의 시도는, 과도한 행동으로 제껴버린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무엇보다 <맨발의 친구들> 'my story, mysong'에서 멤버들이 공연한 작품은 그들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한도전>으로 돌아가서, 싸이와 함께 곡을 만든 노홍철은, 그의 컴플렉스인 'th' 발음이 되지 않아 애을 먹는다. 박치인 노홍철이 완벽주의자 싸이와 만나 몇 마디 되지도 않는 랩 구절의 리듬을 따라하지 못해 반복을 거듭한다. 박명수는 나이든 그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와 전혀 다른 지드래곤을 만나, 음악적 혼란을 겪는다. 유재석도 다르지 않다. 흥겨운 댄스곡을 하고 싶은 유재석과 진지한 음악을 추구하는 이적은 서로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곡에 다가가기 까지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정작 음악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음악으로 무대에 서기 까지의 과정이, <무한도전>을 통해서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박자를 못맞추던 노홍철이 무대에서 그것을 무사히 완수했을 때, 박명수가 다른 장르의 음악을 거슬리지 않고 따라할 때 시청자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참았던 숨을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맨발의 친구들>에는 그게 없다. 은지원은 곡을 쓰지도 않았는데, 다음 장면에서 녹음을 하고, 랩을 자신없어 하던 강호동은 녹음실에 들어가 너끈히 해낸다. 수많은 가사를 적어놓았던 윤시윤은 정해진 가사를 읊는다. 음악을 한다면서, 정작 음악을 만드는 고통의 시간은 보여지지 않는다. 가사를 못외우는 거, 주어진 시간이 촉박한 걸로 채워지지 않는 창작의 고통이 <맨발의 친구들>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를 찾아간 것과, 아버지에 대한 가사를 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랩으로 탄생시키는 행간이 비어있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멤버들이 고생한 건 알겠지만, 그의 무대에 공감할 수는 없는 것이다. 

8월 10일자 <무한도전>은 새로울 것도 없는, 늘상 가끔은 하던 예능 기대주들을 모아놓고,여름 캠프를 벌였다. 거기서 한 게임도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2회에 걸친 프로그램으로, 출연했던 8명의 멤버들은 모두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맨발의 친구들>의 my song에 합류한 게스트들은 그런 게 없다. 이단 옆차기는 그저 여전히 이단 옆차기이고, 타블로는 타블로다. 심지어, 정은지는 잠깐 나타나 노래만 부르고 사라진다. 어디 게스트 뿐이랴. 강호동이 살아야 <맨발의 친구들>이 살아나는 건 맞지만, 강호동과 그와 잘 맞는 은지원이 철지난 호흡을 보여주는 동안, 신선한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는 사장되는데, 게스트 챙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잘 나가는 남의 포맷을 베끼고, 궁여지책 mc가 하는 타 방송의 포맷을 가져와서 잘 하기라도 하면, 그런데 어쩌랴, <맨발의 친구들>을 보다보면, <무한도전>이 대단하구나 라고 느껴지니. 포맷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러다 정말 조만간 강호동 <맨발의 친구들> 폐지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다. 


by meditator 2013. 8. 12. 01:49

99명의 게스트들과 20회의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

<땡큐> 마지막 회, 갑작스럽게 폐지 통보를 받은 것인지, 그간 <땡큐>를 이끌어오던 mc 차인표의 마지막 인사 한 마디를 육성으로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제작진은 처음 <땡큐>를 시작하던날, 첫 게스트 박찬호를 만나기 위해 바삐 걸어오던 그의 모습과  <땡큐>의 정체성을 묻는 박찬호의 질문에,  그 자신도 다큐인지, 예능인지 헷갈려 하는 초짜 mc 차인표의 진지한 어눌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까지, 피디 자신도 어쩌면 여전히 다큐와 예능의 경계선에 서있음을 고백한 마지막까지 어정쩡했던 <땡큐>가 사라졌다. 

8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놀러와>가 자막 하나로 사라진 이래, 더 이상 어떤 프로그램의 생존 여부나, 아름다운 마무리 따위가 회자되지 않는다.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우리 아이들의 아침 시간을 달래주던 <뽀뽀뽀>가 사라져도. 이제는 모든 것이 그저, 그러려니, '효용' 가치가 사라지면 무참히 버려지려니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6% 의 시청률을 턱걸이하는 <땡큐>의 존속을 바라는 건 언감생심일 수도 있겠다. 

2013년 3월에 시작해서 이제 8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20회의 여행을 다니며, 99명의 게스트를 모신 <땡큐>는 어쩌면 애초에 힐링을 주는 게스트의 섭외가 그렇게 지속적으로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오래한 것일 지도 모른다. 


첫 출연자가 당대 최고의 힐링 멘토 혜민 스님과 이제 막 은퇴한 야구선수 박찬호 였던 것에 비해 마지막회의 출연자가 영화 <숨바꼭질>을 홍보하기 위해 나온 손현주, 문정희에 연기자로서의 새 출발을 알리러 나온 보아인 것을 보면, 힐링 다큐에 방점을 찍다가, 결국은 집단 예능 토크쇼가 되어간 <땡큐>의 한계가 그대로 보여진 것일 수도 있다. 

첫 회 <땡큐>는 스님에게조차 첫사랑의 아픔을 물어볼 정도로, 그 사람의 직위나 존재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조심스레 사람과 사람으로 인연을 만들어 가던,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는, 출연자들이 함께 한강 다리에, 혹시나 좌절하여 그곳을 찾을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담은 글귀를 남기었던 실천적 멘토링을 했었다.  
이제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딱 보기에도 손현주를 비롯한 그 자리에 모인 유해진, 무술 감독 박정률, 야구 해설가 이병훈 등에 비해 삶의 연륜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분명한 오죽하면 보아 자신이 민망했던 듯 엔딩에서 많이 배우고 간다라는 감상을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아시아의 별'로 치켜세우며 너도 나도 보아라면 무조건 좋다라는 식의 오글거릴 정도의 예능 특유의 호들갑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행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해피 투게더>랑 무에 그리 다를 게 있을까 싶게. 
물론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해 온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다큐인지, 예능인지 모를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땡큐>가 '힐링'이 대세인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좋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자는 소박한 취지는, 상대 방송국 프로그램의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로 인해, 2회에 걸쳐 느그하게 누렸던 여행의 호흡을 바트게 1회 안에 꾸려 넣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고, 생각 외로 존경받을 만한 사회적 멘토들이 많지 않은, 그리고 그들의 tv출연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출연자들이 '홍보'를 목적으로 한 연예인들 위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특별했던 <땡큐>는 어느 틈에, 그저 그런 연예인들의 또 다른 집단 토크쇼가 되어버려가는 게 불가피하다, 이정도면 많이 버텼다 자평했을 수도 있겠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큐>의 종영은 아쉽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밤을 새며 자신의 경계를 풀고 나누던 이야기의 추억은, 본래의 색깔이 바래졌어도 그 미덕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 아무리, 출연자 누군가를 오글거릴 정도로 치켜세워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행간에서 찾아지는 진심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유해진과 류승룡이 한 달간 비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시간을 즐겼던 거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손현주의 느긋한 품성을 <땡큐>가 아니라면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많이 평범해 졌지만, 여전히 '힐링'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꿰어차는 것이 실험용 파일럿 프로그램들인 한에서, 그것도 타 방송의 아류 프로그램들인 한에서, 그냥, <땡큐>나 보게 놔둬요~!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공공 부문과 사적 기업의 차이는 흔히, 가치와 효용의 차이로 나뉘어진다. 공공 부문은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 하지만, 결코 공공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사적 기업은 보다 이익을 중심으로 효율성을 우위에 놓고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은 '효율'과 '생존'이라는 명목 하에, 효용 가치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방송은, 이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공중파는 말 그대로 공중의 기기이면서도, 그 활용 논리는 지극히 사적이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전가보도처럼 씌여진다. 금요일 밤의 늦은 시간일랑, 쫌 놔두면 안될까. 그 시간까지, 굳이, 케이블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따라잡을  또 다른 서바이벌에 시청자들을 몰아세우는게 공중파의 바른 자세일까? 공중파는 꼭 흥행 위주의 케이블보다 높은 시청률을 유지해야 할까? 

물론 그저 그런 연예인 토크쇼로 전락해 버린 <땡큐>의 책임도 크다. 지리산 산골만 뒤져도 이원규에, 박남준에, 정말 세속에 찌든 사람들을 '힐링' 시켜줄 무소요의 삶을 실천하는 '멘토'들이 널렸다. 그런 분들을 모신 진짜 힐링 <땡큐>의 존속을 기대하는 건, 시청률 경쟁만이 난무하는 공중파에선 이젠 무리일까. 시청률 상관없이, 그저 이런 프로 하나쯤은 좀 놔두면 안될까. 시효가 지난 맥빠진 질문만 던져본다. 


by meditator 2013. 8. 10. 10:27
홍미란, 홍정은 자매(이하 홍자매) 작가의 작품에는 이른바 창의적인 측면에서 늘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자매의 작품은 노골적으로 이미 오래 전에 유행했던 미국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다던거가,(<빅>, <환상의 커플> 등),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나 만화 등의 포맷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경우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미남이시네요> 등)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근한 서사의 되풀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홍자매의 작품이 방영되면, 일단 보게 되는 '믿고 보는' 드라마가 된 데에는, '창의성'을 뛰어넘는, 홍자매만의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맛깔나는 뒤틀기가 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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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이 귀신을 보는 설정은 이미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이다. 가깝게는 2011년 개봉한 손예진 주연의 <오싹한 연애>가 있고,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드라마 <고스트 위스퍼러>, <고스트 앤 크라임>, <슈퍼 내츄럴> 등이 있다. 

제목이 노골적으로 <주군의 태양>이듯이, 남자 주인공 주중원과 여자 주인공 태공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주군의 태양>은 굵직한 스토리로 보면, <오싹한 연애>의 귀신을 보는 여자와 사랑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귀신과의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이 귀신과의 인연을 끊지 못한 채 이승의 곤란함을 겪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가 하면, 귀신을 보기 때문에 밤에는 잠도 못자는 여주인공에게 어드벤티지를 주는 것은 그의 옷깃이라도 잡으면 귀신이 싹 사라지는 남자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영매가 된 여주인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형식을 띤다면, 드라마는 언제나 홍자매의 드라마가 그래왔듯이, 남,여 주인공은 어떤 이해 관계를 매개로 얽히게 되고, 얽히다 보니 서로의 진심, 특히나 보기엔 별 볼일 없지만, 알고보니 괜찮은 여자라는 여주인공의 실체라던가, 보기엔 멋져보였는데 알고보니 불쌍한 남자였다는 반전의 매력을 선사한다. 
즉 홍자매의 인간형들은 언제나 등장할 때는 지극히 타산적이거나, 혹은 타산적이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여, 혹은 남주인공으로 인해 '진정한 인간'으로 교화되는 '승화'의 드라마저 감동을 그려낸다. <주군의 태양>은 이미 제목에서 그 특징을 드러낸다. 쇼핑몰의 사장 주중원은 마치 왕조시대의 '주군'처럼 쇼핑몰의 대표로서 전폭적인 권능을 행사한다면, 백수의 수준에서 겨우 벗어나 쇼핑몰의 아르바이트 청소직으로 취직한 태공실은 겨우 '태양'으로 불린다. 하지만, 여느 홍자매의 드라마처럼, 귀신을 보는 또 다른 권능을 지닌 태양은 결국 주군의 묵은 해원을 풀어줄, 그리고 얼어붙은 주군의 심장을 녹여줄 구세주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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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회 펼쳐지는 주된 에피소드는 오히려 미드 <고스트 위스퍼러>난 <고스트 앤 크라임>처럼 여주인공이 영매가 되어 억울한 사연으로 인하여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는 성격이 부각된다. 물론 이것은 좀 더 시야를 확장하면, 여름이면 찾아왔던 <전설의 고향>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등장할 때는 무시무시한 귀신이었는데, 알고보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거나 하는 식이다. 
더구나 <주군의 태양>에 지금까지 2회에 걸쳐 등장한 귀신들은 이른바 도시괴담류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에피소드들이다. 죽은 친구를 불러내는 여고생들의 '분신사바' 해프닝이나, 결혼할 여인이 바라보는 거울을 통해 지켜보는 또 다른 신부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익숙한 설정들이다. 
하지만 여름이면 공포 영화가 빠짐없이 개봉하듯, <전설의 고향> 쯤은 또 한번 봐줘야 할 것 같듯이, 사람들은 익숙한 공포의 소재에 거부감없이 빠져든다. 더구나, 알고보니 그 귀신이 사람을 해꼬지 하려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혹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등장한 것이라는 결론은 뻔하다 하면서도 <전설의 고향>을 보고 눈물 콧뭇을 찍어냈듯이, 여전히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마치 주중원과 태공실의 사랑을 인큐베이팅하듯, 귀신들은 하나같이 사랑의 완성을 지향한다. 등장할 때는 섬칫한 모습이지만, 알고보니 커피 한 잔을 갈구하거나, 제사상을 원했던 귀신처럼 인간사와, 구천의 경계가 희미하고, 그 사이에는 다하지 못한 인간의 사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연을 풀어내면서, 주군과 태양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삶의 딜레마를 넘어 행복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 항상 매력적인 홍자매의 드라마에 발목을 잡는 것은 완성도였다. 기존의 이야기를 뒤틀든 어떻든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놉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세부적인 스토리들의 개연성이 부족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였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자매의 작품이 흥행작이 되었던 이유는, 부실한 스토리를 메꾸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향연이었다. 단 1회만에 냄새나는 머리, 확연한 다크서클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태공실처럼.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을 홍자매는 이미 <빅>을 통해 충분히 학습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2회를 메꾸어 낸 익숙한 도시 괴담류의 스토리들이 지금은 친근하고 약간은 감동적일지 몰라도, 이것이 되풀이 되다보면 진부해질 수도 있는 위험성 역시 <주군의 태양>은 내포하고 있다.
부디 이번엔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by meditator 2013. 8. 9. 09:57

'아니 어떻게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해요?'

미국에 있는 자신의 집에 찾아와 기물 파손을 해놓고서는, <라디오 스타>에서 정반대로 이야기를 했더 신정환, 고영욱의 도발을 해명하다, 듀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고 하자, 이현도가 뻘쭘해 한다. 그러자, 윤종신이 말한다. 이게 라스의 방식이라고. 
<라디오 스타>의 제작진이 바뀐 이래 몇 회 동안, 이게 라디오 스타인가? 세바퀴인가?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 세례를 받았던 <라디오 스타>가 듀스 20주년 특집을 맞이하여, 웃음으로 버무려지면서도, 그 행간에서 진지함을 놓치지 않은 <라디오 스타>만의 본령으로 돌아왔다.

 
(사진; osen)

'절뚝거리며 살아왔어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는 이현도의 이 한 마디보다 더 듀스의 20주년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비록 이현도 자신이 늘 2등만 했다고 아쉽게 말했지만, 그 자리에 동석한 '버벌진트', '뮤지', '스컬'이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그리고 그 시절의 혼돈스런 열병을 듀스를 통해 설명해 내듯 듀스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다. 
그의 20주년 헌정 앨범에, '용감한 형제', '신사동 호랭이', '라이머', '이단 옆차기' 등 이 시대의 내로라 하는 작곡가들이 기꺼이 참여하듯, 듀스는 우리나라 힙합 1세대의 대표 주자인 것이다.
하지만, 2년 여의 짧은 활동 기간, 이어서 멤버 김성재의 죽음 등으로 이현도는 그 이후의 세월을 그림자처럼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고, 듀스를 만든지 20년이 지난 이즈음에야, 케이블 방송의 힙합 오디션 프로에서 '힙합 크루'의 수장 격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년 만에 공중파에 처음으로, 듀스 20주년 헌정 방송 특집으로 <라디오 스타>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라디오 스타>는 라디오 스타만의 방식으로 한 시대의 영웅을 소화한다. 그를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폄하하지 않고. 
늘 그의 그룹에게 2등만을 안겨주던 서태지와 말을 섞지도 않았던 자신이 하는 음악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을 지닌 이현도지만, 손가락을 세워 서태지가 최고라고 말할 만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세월의 여유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후배들과의 게임 한 판에서도 지는 걸 참지 못하는 자존심 센 남자의 냄새를 풍기다가, 후배들이 망친 세간 살이 하나하나를 꼰지르는 째째한 인간미까지 보이기 까지 한다. 이른바 <라디오 스타>식의 인간미다. 
그렇다고 그런 그가 낮잡아 지지는 않는다. 세월이 흘러 '힙합 1세대'의 전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대중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여름 안에서>를 꼽을 만큼 느긋해 졌지만, 그가 프로그램 내내 벗지 않은 검은 선글라스처럼, 여전히 그가 지키고자 했던, 그가 도달했던 성취는 그와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의 언급을 통해, 그들이 고른 그의 음악을 통해  자연스레 빛이 나도록 한다. 
그 방식은, 자신은 정형돈이나, 유세윤과는 다르게 '본투비(born to be)' 가수임을 주장하는 하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듀스도 모른다고 내리 조롱을 당하다가도, 스컬 팬의 한 마디에 정말로 불뚝이면서도, 예능과 음악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투박하게 정의내리는 뮤지션 하하를 제대로 조명해 내는 것 역시 <라디오 스타>인 것이다. 



하지만 20주년 헌정 특집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방송분 9.1%(닐슨)에 비해  낮아진 7.5%(닐슨) 시청률처럼,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듀스이지만,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듀스의 20주년의 의미가 생소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세월의 갭을 어거지로 미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라디오 스타>는 그를 잘 모르는 하하를 통해 메꾸어 나간다. 그의 노래 하나 아는게 없어 스컬이 노래를 부를 때 후렴구나, 감탄구나 따라부르는 하하이지만, 학창 시절 더블 데크 카세트를 통해 편집해서 그의 노래를 장기 자랑에 가지고 나갔던 추억을 지녔던 것처럼, 한때 대세였던 듀스를 추억해 내는 방식이다. 
헌정 특집에 걸맞게 듀스의 노래들을 출연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한 곡, 한 곡 불러보는 방식으로, 이제는 누군가에는 그리움이 될,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 저런 노래를 불러서 '듀스'라고 하는구나 라는 식으로, 추억하거나, 의미 부여를 해낸다. 그렇게 절뚝이며 20여년의 세월을 견뎌왔던 전설의 '듀스'를 복기한다. 웃고 떠들다, 문득문득 던지는 진지한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라스식의 헌정 방송이다. 


by meditator 2013. 8. 8. 10:14


정상 이하의 지능을 가졌거나 감정 폭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경이적인 지적 재능을 보이는 희귀한 증상

 kbs2의 월화 드라마 <굿닥터>의 남자 주인공, 성원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로 1년간 임시 고용된 박시온(주원 분)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임상 병동 순시 과정에서 김도한 교수의 지시 사항을 고스란히 머리에 입력할 정도로 복사기와 같은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하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 자폐적 장애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 <굿닥터>는 그런 비정상적인 주인공 박시온을 내세워, '좋은 의사'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KBS월화드라마 굿닥터 -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력과 사랑. 다시 시작되는 KBS 휴먼 메디컬 드라마!


역설적이다. 

그의 임용 자체가, 그가 역에서 응급 상황 하에서 아이를 살린 해프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듯이, 환자와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사라는 직업에, 그것이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자체가 도발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2회 만에, 죽은 형과 토끼가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는 레지던트라는 전문 직업임에도 여전히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박시온을 통해 과연 의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김도한(주상욱 분) 교수이지만, 그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병원의 시스템, 집도의의 말 한 마디에 수술실 밖으로 내팽개쳐지거나, 말 한 마디 못하고 주먹을 맞아야 하는 상명하복의 군대식 서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도한에게 맞은 박시온을 토닥이며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너의 행동이 어쩌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고 달래주는 차윤서(문채원 분)의 영혼없는 설득(드라마 속 윤서는 또 하나의 박시온처럼 행동한다)처럼, 이른바 보다 편의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그 운용 여부에 따라 굳어져 버린 관료 체계화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분명, 위태로운  환자의 상태 하나만을 보고, 담당의나, 수술방 예약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다짜고짜 환자를 밀고 들어가는 행위는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대책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말의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두달은 여사로 기다리게 만드는 현재의 대학 병원의 대기 순번 체제에, 겨우 기다리다 의사라고 만나면, 환자와 눈을 마주치기는 커녕, 앞에 있는 차트나 모니터만 들여다 보다, 또 몇 가지의 검사나 하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처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 체계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합리성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들이, 말도 안되는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의 돌발적인 행위에 공감하게 만드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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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학 드라마에서 병원내의 비인간적인 관료적 의료 체계는 이미 '클리셰((문학·예술 평범한 수법)'처럼 등장하고 있다. 2012년의 화제작이었던 <골든 타임>에서 헌신적인 의사 최인혁을 가로막은 것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병원의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브레인>의  의사 이강훈은 그 자신이 그 체계의 수호자에서 희생자로, 그리고 다시 저항자로 거듭나는 히어로로 그려졌었다. 이제, <굿닥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김도한 교수의 정의가 가장 냉철하게 정확한, 오로지 인간을 살리겠다는 순수 의지만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박시온을 통해, 지금의 의료 체계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문제 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충격적 요법을 통한 문제제기 방식은, 2013년에 들어서 화제작으로 관심을 끈 작품들의 공통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직장 내 갑을 관계를 사회적 문제로 까지 환기시킨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은 그 어떤 정규직도 넘보기 힘든 많은 자격증과 자격증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3개월 임시직을 고수한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뿌리박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을 관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최근 종영한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선생님이, 가장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 아이들을 조련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똘똘 뭉쳐 선생님에게 대적하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자생력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남들을 밟고 혹은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양산하는 경쟁 제일 주의의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가장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을 등장시킨 것이다. 

직장, 학교에 이어, 이번엔 병원이다. 

당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서번트 증후군이라면 어떨까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 아마도 백이면 백 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누구나 의사로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내세워 의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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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학교, 병원,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그리고 이젠 가장 시스템화되어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체계 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무시되어져 가는 제도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들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들이다.

거기에 드라마들이 질문을 던진다. 마치 골리앗에게 자그마한 바윗돌을 던지며 덤비는 다윗처럼, 

거인을 만나러 가는 다윗을 보고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변할 수 없다고, 한 개인이 어찌 해보기엔 무력하다고 느끼는 존재들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선,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 선생이나, <직장의 신>의 미스김, 그리고 <굿닥터>의 박시온처럼 역설적 인간형이 필요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7.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