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랬었다.

그저 여름이면 납량 특집 <전설의 고향>정도는 봐줘야 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사연이 억울하건 어떻건 결국에는 귀신의 본연에 충실해, '내 다리 내놔~~' 정도의 대사에, 공중 뒤집기 두 바퀴 정도는 여유있게 해내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이 하도 그악해진 탓일까. 이젠 사람보다 못한 귀신이 귀신이랍시고 텔레비젼을 메운다. 

엄마가 귀신이 됐는데 왜 슬프지?
<드라마 스페셜-엄마의 섬>의 엄마(김용림 분)에게는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네 명이나 되면 뭐하랴. 
드라마 초반 엄마를 만나러 온 둘째 아들 역의 유오성은 꽃무늬 장화를 엄마에게 드리며 '이런 이쁜 장화 하나는 신어주어야 한다'며 온갖 설레발을 떤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머지 형제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둘째 아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강도와 같은 태도로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한다. 그간 엄마가 자신에게 못해주었던 과거까지 들먹이며 엄마의 숨통을 죄는 건, 차라지 강도가 낫지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자식들이 나은 편도 아니다. 사업을 하고, 변호사를 하고, 재벌 짐에 시집을 갔다는 자식들도 각자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에 치매를 앓는 엄마를 모셔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홀로 죽어간다. 그리고 귀신이 되어 자식들 앞에 나타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식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식이 되어 해드리지 못했던 도리에 대한 죄책감이, 귀신의 모습으로 엄마를 불러들인다. 
하지만, 그런 귀신이 된 엄마를 물러나게 만드는 것도, 또한 '나야, 엄마'라는 자식의 목메인 한 마디이다. 
<엄마의 섬>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클라이막스에서 잠시 등장하는 귀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뻔히 엄마가 아픈 걸 알면서도, '깜빡깜박 잊어버리시기도 잘 한다'며 자신의 편의에 따라 엄마를 외면하는 자식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엄마를 '고독사'로 몰아가는 인간 자식들의 모습이 더 무섭다. 그리고 그런 자식들에게 남은 땅뙈기를 팔아 돈과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남긴 엄마, 그리고 귀신은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다. 

매회 눈물이 난다. 
<주군의 태양>이 방영 중반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홍미란, 홍정은 자매 특유의 허술한 플롯이라는 단점이 드러나지 않고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찌보면, 눈 가리고 아웅일 지도 모른다. 거의 매회, 하나씩 등장하는 귀신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홍자매의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게 허술한 틈이 보인다. 특히나, 8회에 이르러, 갑자기 진전된 주군(소지섭 분)과 태양(공효진 분)의 사랑 이야기는 어차피 그렇게 될꺼였으니라는 이해(?)를 차치하고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다리를 건너가듯 어딘가 껄쩍지근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럼에도 막상 <주군의 태양>을 시청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이 두터운 밀도의 감동이, 주군과 태양의 러브 스토리의 탄탄함으로 인한 것인지, 귀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이끄는 사연때문에 그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그렇다. <주군의 태양>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공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귀신들의 이야기이고, 귀신들의 이야기는 매회 뭉클함을 지나 눈물이 나올 만큼 애절하고 안타깝다. 

(사진; 뉴스엔)

외국 호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두 눈의 색깔이 다른 인형에, 그 인형과 함께 등장하는 아이들은 괴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아이들, 보호자의 방치, 혹은 유기로 인해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은 채 죽어갔던 원혼들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태양이 제일 무섭다는 물귀신이란 전제를 깔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나꿔채는 메니큐어를 바른 여자 귀신은 알고보니, 호텔 이벤트에 당첨되어 너무나도 기뻐했던 고단한 삶을 혼수 상태에 빠진 주부였다. 
이번 주 만이 아니다. 8회에 이르도록 등장했던 귀신들은 늘 억센 인간사에 치여 이 세상을 하직한 억울한 귀신들이고, 그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해 태공실 앞에 등장해 칭얼거리는 것이다. 한을 좀 풀어달라고. <전설의 고향> 버전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던 구신들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게다가 한만 풀어주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 세상을 향해 연기처럼 날아버리기 까지 매우 '쿨'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섬>과 <주군의 태양>을 보다보면,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신을 만들 정도로 인간 세상이 지독하게도 모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2013 납량 특집은 지나가는 인간도 다시 보게 만드는 '인간의 무서움'을 항시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무서운 효과를 낳을 거 같다. 


by meditator 2013. 8. 30. 10:09

녹화 방송 시청률이 잘 나왔으면 이런 짓까지 안했다. 평소 6~7% 애매하게 나오니까 이런 짓까지 하게 되는 거다"

 <화신>이 토크쇼에서 무리수라고 여겨지는 생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방송 초반 김구라의 멘트로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졌다. 
화제성을 띠며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우리 동네 예체능>의 시청률, 고군분투하지만 이미 안정정 궤도에 들어선 <라디오 스타>와의 차별성을 두기 힘든 <화신>은 마치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가 자신의 방송 생명을 걸고 (물론 결국 진짜 생명을 걸게 되었던)배수진을 치듯, 생방으로 토크쇼를 진행하는 모험을 시도했다.

(사진; 한경 닷컴)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생방송 진행을 하는 음악 방송과 달리, 첫 생방 토크쇼에 임하는 <화신>의 네 mc가 긴장감을 늦출수 없는 게 한 눈에 보이듯이, 토크쇼의 생방송 진행이 왜 위험할까? 
그런 바로 딱 우리 속담처럼 이미 한 번 입밖으로 나온 말을 줏어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신>과 같은 토크쇼의 성격 상 그간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처럼 게스트에게 부담이 되는 내용을 물어볼 수 밖에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게스트의 입장에서, 혹은 제작진의 편의에 의해 이른바 '편집'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안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생방송은 그런 거름 장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날 것의 싱싱함은 가능하지만, 생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들의 미처 익지 않은 부작용도 불가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화신>의 처지에서 '폐지'라는 벼랑에 몰린 처지에서 친 배수진, <The화신Live>는 어땠을까?
한 마디로 'Not Bad',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이다. 

우선 가장 분명하게  'Not Bad'한 지점은, <The화신Live>가 더 이상 <라디오 스타>의 아류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방송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신청한 관객을 부르고, 게스트가 들고 온 질문을 시청자들의 투표로 마무리짓는 방식은 분명 신선한 시도였다. 클라라의 선정성에 대한 호감, 비호감을 묻는 질문에 100원의 자비를 들인 문자 투표임에도 7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보인 것으로 보아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일정 정도 유도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적어도, 네 명의 mc가 게스트를 요리하는 토크쇼에서, 토크의 방향을 열어 그것을 시청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식은, 미국 토크쇼의 관객 투표에서도 조금 더 발전된, 지금의 지지부진한 쌍방향 토크쇼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신선한 시도였다. 

하지만, 첫 회인 만큼, 너무도 당연하게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은 '지점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동등한 게스트로 초청하고서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기회를 10분을 할애하거나 아니면 그나마도 주어지지 않은 김준호, 김대희의 경우는 해프닝을 넘어 무례를 범한 결과를 낳았다. 
80분의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mc 자신들이 거듭 반복해 언급하면서도, 화제성이 있는 클라라에게 40여분이 넘는 시간을 제공하는 방식은, 첫 회의 미숙한 운영이라고 핑계를 대기에도 너무 노골적인 실수였다. 
그나마 김준호, 김대희 두 사람이 개그맨이기에, 거기에 mc들의 후배이기에 앙탈을 부리며 넘어갈 수 있었지, 다른 분야의 게스트들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런 화제성 여부에 따라 토크 할애 시간의 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출연 대상이 될 게스트들이 순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거나, 아니면 아예 출연 자체를 부담스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더구나 생방송 토크라는게 게스트에게 이미 부담을 지고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무르팍 도사>가 1인 게스트 중심 토크쇼임에도 화제성을 잃자, 게스트의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 스스로 침몰했던 것처럼, 복벌복과도 같은 <The화신Live>의 게스트 배분 문제는 회를 거듭하면서 프로그램의 목줄의 죄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 하정우처럼 배수진을 치다 본인이 고꾸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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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n 스타)


그런데 중요한 점은, <The화신Live>를 통해, 첫 술이 아니라, 두번 째, 세번 째가 되어가면서 운영의 묘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어쩌면 그간 <화신>에 내재되어 있던, 치명적 단점이 생방 진행을 확연히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80분의 촉박한 진행을 보면서, 네 명의 mc들이 게스트들보다 더 많이 비춰지는 화면을 보면서, 과연 저 네 명의 mc들이 <화신>에 다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네 명의 게스트들을 불러놓고, 마치 무슨 순위 프로그램처럼, 첫번 째 게스트는 40분, 두번 째 게스트는 30분, 세번 째 게스트는 10분, 마지막 게스트는 외마디의 시간을 할애하는 동안, 게스트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네 명의 mc 들은 빠짐없이 저마다 한 마디를 얹는다. 심지어, 김대희, 김준호가 자신들은 어떡하냐고 하소연을 할 때도, 시간이 없단 말도 네 명이 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한다. 
처음엔, 저런 식이라면 게스트들을 줄여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불러놓고 허수아비를 만드느니, 오프라 윈프리 쇼처럼 한 게스트당 딱 잘라 정해진 시간을 할애하고 퇴장시키는 방식이 낫지 않을까 라고 하다가, 문득 과연 저 네 명의 mc가 굳이 있어야 할까 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The화신Live>처럼 게스트가 자신의 질문을 가져오고, 그걸 mc 들이 풀어내 주고, 시청자들이 투표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처럼 mc들이 북치고 장구치는 식의 진행이 필요하지 않다면, 네 명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그렇다면 지금까지, <화신>이란 프로그램에서, 네 명의 집단 mc체제가 과연 유효했었나 라는 의문까지 이어지고. 

생방송 진행은 그저 녹화로 하던 방송을 날 거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생방송이라면, 생방송의 포맷에 맡게, 프로그램의 운영도 보다 타이트하게 다이어트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록 첫 술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보인 <The화신Live>가 새로운 방식으로 잘 살아남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8. 10:07

요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된 사건은 거의 매번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주인공이 된 인물의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행각에 다같이 공분한다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행각에 공포 영화를 본듯 두려움을 공유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하는 사건이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신문의 사회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건이,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방송 포맷을 통해 재탄생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몇 배로 끌어 올리는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화 된 다큐의 극대화된 모습이다.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의 사실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영화 <워낭 소리>와 <아마존의 눈물>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다큐를 통해 보여지는 '사실'의 질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사실은 사실이되, 그 사실이 그 이면의 진실과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인식 역시 늘 함께 병립하게 되는 것이 다큐 세계의 진실이 되었다. 

<mbc다큐 스페셜>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 역시 이런 의심을 피해갈 수 없다. 602회 '지금 다시 김광석을 부른다' 편은 1996년에 운명을 달리한 김광석을 오늘의 문화 트렌드가 된 입장에서 회고하는 자리였기에, 정말 김광석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느낄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광석이란 그 사람 자체를 다시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감회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2013 인물'의 첫 회로 등장한 봉준호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603회 <mbc다큐 스페셜> 2013 인물, 첫 회 봉준호 편은 봉준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또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한 구석에 꿍친 혹은, 듣고 싶은 이야기의 포인트가 서로 달랐던 동문서답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단 네 편의 작품 만에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 <괴물>을 통해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마더>등을 통해 세계적 평론가의 찬사를 받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감독, <설국 열차>를 통해 이 시대의 한껏 뜨거운 화두로 올라 선 봉준호를 <mbc다큐 스페셜>은 2013 인물의 첫 번째 인물로 초대했다. 

당연히 화제가 되는 <설국 열차>인 만큼 다큐의 초반은 당연히 <설국 열차>란 영화를 통해 봉준호를 설명하고자 한다. 세계적 배우인 틸다 스윌튼이 그의 전 작품에서의 촬영 태도를 지양하고 늘 현장을 지키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감독 봉준호,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오른 크리스 에반스가 천리길을 마다않고 직접 오디션에 참가하게 만든 대단한 감독 봉준호를 그리는데 치중했다. 
그리고 그런 봉준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혀간다. 감독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회학과 출신이 어떻게 감독이 되어가는지의 과정과, <플란더스의 개>의 실패를 딛고 <살인의 추억>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봉테일'이라는 특징을 잡아내는데 다큐는 집중한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 잡지에서 '삑사리의 미학'이란 제목으로까지 소개된 봉준호 영화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어떤가, 이 정도면 봉준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겠는가?

<mbc다큐 스페셜>은 묘하다. 그의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이력을 훑고, 그의 영화적 특징과 매력을 샅샅이 설명해 가는데, 정작 다 보고 나면,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다큐 속에서 <설국 열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홍대 앞 책방에서<설국 열차>의 원작을 찾아낸 봉준호는 꼬리칸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진 열차의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빼놓고는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열차라는 공간의 현실감을 위해 트레일러 위에 세트를 놓고 흔들리는 열차의 공간감을 창조해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점은 <설국 열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아니다. 과연 설국 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지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를 두고, 봉준호가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열차라는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고, 허지웅은 꼬리칸을 민주당, 머릿칸을 새누리당에 비교하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새누리당은 열차를 둘러싼 세계적 재앙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꼬리칸은 진보 세력, 머릿칸은 민주당에 가깝다는 정의를 내려 논란에 불을 붙였다. 

봉준호 다큐
(사진; tv데일리)

모두들, 봉준호가 <설국 열차>를 만든 진의를 궁금해 하는 가운데, 봉준호를 다루는, 그의 작품을 다루는 다큐에서,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디테일이 강한,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 운명을 강조한 감독이라는 식으로 봉준호를 정의내리고 있다. 
과연 <살인의 추억>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이 범인이 잡히지 못해서, 80년대를 천연덕스럽게 되살려 냈기 때문만일까? 국민 엄마 김혜자를 굳이 자식 사랑에 살인도 불사하는 파렴치한 모성으로 되살려낸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mbc 다큐 스페셜>은 마치 서울 소개 다큐가 서울에 가면 광화문도 있고, 경복궁도 있고 하는 식의 겉훒기식 소개를 하듯, 봉준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봉준호는 이런 사람이예요 라는 소박한 소개는 될 수 있을 지언정,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갈시켜 주는데는 역부족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핫한 배우 김수현의 나레이션까지 얹어, 흥행 감독 봉준호를 그럴싸하게 보이게는 했지만, 외국의 유명 배우들이 달려와 함깨 하는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의 세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이 2013 인물의 첫 회라는 점이다. 2013년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그것은 인물의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해서는 그 논란에 대해 눈 질끈감고, 화제가 되는 부분만 조명하는 왜곡의 가능성 조차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부디 2013의 인물 시리즈가 어릴 적 우리가 읽던 번드르르한 위인전의 수준을 뛰어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7. 10:22

<맨발의 친구들>은 '자작곡 프로젝트'에 이어 '집밥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 취지에 맞춰 맛있는 집밥을 소개한다며연예계의 숨은 요리 고수를 찾아다닌다. 처음 김나운을 찾아가 연입밥에 복분자 장어 구이 들을 먹었고, 다음 시간에는 홍진경 집에서 김치국밥, 물냉면, 시래기 국을 먹을 예정이다. 
김나운 집에서 밥을 먹는 중, 일찌기 1박2일에서부터 초딩 입맛으로 지적받았던 은지원이 김치을 집어 먹는다. 그러더니, 주변 동료들에게, 
'와, 이거, 대박이다. 이거 먹어 봐, 진짜 맛있어.'
라며 호들갑을 떨고, 그의 권유에 따라 먹은 주변 mc들도 그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 아주 평범한 장면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홍진경 집에 가서도 대뜸 김치 냉장고를 열어 맨 입에 김치부터 맛본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나운도, 홍진경도 케이블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김치를 팔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것을. 그런 그들의 집에 가서 그 집의 김치를 맛있다며 먹어보이는 건, 고도의  PPL이다. 과연 케이블을 통해 음식을 파는 연예인의 집에 가서 한끼를 먹는 걸 집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 다음엔 홍진경과 김치 전쟁을 벌인 오지호에, 연예인 요리 상품화의 원조 김수미의 집까지 갈까? 

  

어거지 집밥 프로젝트이거나 말거나, 웃픈건 그래도 <맨발의 친구들>의 시청률이 그 이전의 '자작곡 프로젝트'에 비해 올랐다는 사실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을 따라 다이빙을 하고, <무한도전 가요제>를 따라 자작곡 프로젝트를 하고, 이제 요즘 대세인 먹방에 이르러 나름 성과라면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 <맨발의 친구들>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먹방'이 요즘 가장 인기있는 예능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먹방'만 하면 웬만큼은 먹고 들어가는 추세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너도 나도, '먹방'을 하느라, 텔레비젼이 온통 음식 먹는 장면으로 차고 넘친다. 텔레비젼뿐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도 오로지 '먹방'만 하는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공교롭게도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을 거 같았던 mbc예능의 침체기를 구제해 준 것이 바로 '먹방'이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윤민수 부자는 짜장 라면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 역시 먹방을 빼놓고는 그 인기를 논할 수 없다. 특히나, 군대 음식이라면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관을 깨버리게, 군대로 간 연예인들은 고된 훈련 뒤에 나온 음식을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입맛이 다셔질 정도로 맛나게 먹어 주었다. 심지어, 류수영은 이른바 '짬밥'이라 폄하되던 군대 음식을 마치 4성급 호텔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음미하고 평가를 내림으로써, 군대판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존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사진; 아시아 투데이)


그렇게 죽어가던 예능도 살리고 보는 '먹방'때문일까? 요즘은 너도 나도 당연히 '먹방'은 당연히라는 추세다. <인간의 조건>은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까지 넣어가며 30분 전에 멤버들과 함께 라면을 푸짐하게 먹은 김준현이 돈까스를 먹는 모습을 들이민다. 김준현은 얼마전 케이블을 통해 심각한 성인병 수치로 진단받아 절식과 다이어트가 절실할 위치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고  또 먹는다. 보는 사람이 다 포만감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자 사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 혼자 산다>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미 아들 하정우의 먹방 장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복기시키며, 아버지 김용건의 먹방을 들이민다. 그뿐 아니다. <인간의 조건>에 김준현이 있다면, <나 혼자 산다>에는 데프콘이 있다.  데프콘도 못지 않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가끔은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먹방'의 융성을 흔히들 '나 혼자'라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통해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작 먹방의 원조라고 하면, 상까지 받았던 배우 최불암이 함께 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최근 새삼스레 <한국인의 밥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국인의 밥상>과 요즘 인기를 끄는 '먹방'의 차이는 무얼까? 인기를 끌고 있는 먹방치고 조금 먹는 걸 못보았다. 먹는 거랑 원수라도 진 듯이 와구와구 밀어 넣으며, 세상의 모든 음식을 삼킬 기세로 먹는다. 그리고 웬 음식들은 그렇게 지천으로 흥건하게 쌓아놓고 먹는 건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보여지는 소박하고 질박한 음식들이 낄 자리는 없다. 

인간의 쾌락을 단계별로 설명하는 '뇌과학'에서는 먹는 걸 통해 즐거움을 얻는 단계는, 성욕과 함께 쾌락의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아이들, 군인, 그리고 '먹방',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표제어를 이어보면, 가장 원초적이란 공통점이 떠오른다. 
이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한다?
아니, 삶에서 오죽 즐거움을 느낄 것이 없으면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혹은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군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취하는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할까, 이런 것일까?


	강호동 설거지 먹방
(사진; 조선 닷컴)

땀을 뚝뚝 흘리며 입이 미어져라 가득 밀어넣는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맛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슬며시 '욕구 불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편에서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극강의 다이어트를 하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맺힌 게 있다는 듯이 먹을 걸 밀어넣는 이 극와 극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 내야 하는 것인지. 산해진미를 먹고, 깃털로 목을 간질여 토해 내고 다시 먹었다던 로마인의 세기말적 식도락이 떠오른다. 

한때 예능이 몹시도 계몽적이던 때가 있었다. 
'책, 책, 책을 읽자'고 했고, 텔레비젼이 권장 도서 목록을 정해 주기도 했고, 그 여파로 도서관이 지어지기도 했다. 모범적인 시민이 되자며, 몰래 카메라로 정지선을 잘 지키는 사람을 찾아 냉장고를 덥썩 안겨주기도 했다. 
텔레비젼이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너도 나도 누가누가 잘 먹나를, 누가 누가 많이 먹나를 내기하는 요즘의 예능을 보고 있노라면, 책 한 줄의 향기를 논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긴 한다. 어떻게 세월이 점점 형이하학적이 되어가는지.....


by meditator 2013. 8. 26. 10:36

<꽃보다 할배>의 시청률이 7%를 넘었다.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중 <슈퍼스타K>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가장 높은 시청률일 것이다. 더구나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할아버지들의 '황혼 배낭여행'이라는 어찌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얻은 것은 수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감마저 있다. 그 정도로 할배들의 여행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 일색이다. 
이렇게 <꽃보다 할배>가 붐을 이루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낮아지는 시청률로 인해 고전하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인간의 조건>이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런칭'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두 프로그램의 엇갈리는 희비는 아이러니하다. 

나영석 피디는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본인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 였다고 슬그머니 발을 뺀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떠나와, 프로그램의 인기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케이블이라는 전쟁터로 들어온 것에 대한 감회를 '도전'으로 대신했던 그의 소감을 기억에 떠올려 보면, <꽃보다 할배>가 나영석,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브랜드가 되어가는 아이디어 뱅크의 출사표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 바로 전에 시도한 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은 이른바 <1박2일>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의 해가 저무는 시점에, 관찰 예능으로서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꽃보다 할배>가 그저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담는 '관찰'에 집중하는데 비해, <인간의 조건>은 여섯 남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측면에서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지만, 4회 정도에 걸쳐 굵직한 대 미션과 매회 주어지는 소미션이 주어지는 점에서는 리얼리티 예능의 성격도 지니는 '과도기적'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똑같이 나영석 피디가 만들었음에도 이제 30회차를 넘어가는 <인간의 조건>은 처음만 못한 화제와 인기에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을 때, 그 분위기는 <꽃보다 할배>와 유사했다.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네 할배와 한 명의 짐꾼처럼, 그저 웃기는 개그맨으로만 접했던 여섯 남자에게서, 문명의 이기를 빼앗자, 아날로그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좀 비약은 있겠지만, 나영석 피디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만들어 낸다 싶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개개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치중한다. 이서진이란 그저 잘 생겼던 남자 배우를 몰래 카메라를 통해, 그 예전의 허당 이승기 못지 않은 국민 짐꾼으로 돌변시키고, 직진 순재에, 로맨티스트 박근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영석 피디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뚱뚱한 개그맨이었던 김준현을 아날로그한 감성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는 여백이 넘치는 인간으로, 온갖 웃기는 분장으로만 다가오던 정태호를 따뜻한 엄마같은 인물로 만들어 낸 것도 바로 <인간의 조건>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같이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던 두 프로그램인데,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의 조건>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30회 정도 되니 인기가 떨어질 때도 돼서? <1박2일>이 꽤나 오랜 시간 국민 예능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을 되돌아 보면, 겨우 30회차에 벌써 피로가 누적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인간의 조건>을 질리 새도 없이 매 달 새로운 미션이 들어가고, 더구나 최근엔 <꽃보다 할배>처럼 휴가 미션까지 했는데?

아마도 그 결정적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 캐릭터의 변주에 있어, <인간의 조건>이 그 깊이를 더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31회 '휴가의 조건' 4부에서 완성된 김준현의 피톤치드를 앞에 두고 여섯 멤버는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호명한다. 김준호는 '호감, 호감, 비호감', 김준현은 '뚱이, 뚱이, 뚱뚱이'에 양상국은 '활동'을 담당하고, 박성호는 '불혹'이란 식이다. 여전히 허경환은 '얼굴'이요, 정태호는 '엄마'다. 처음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여섯 남자에게 주어졌던 캐릭터에서 30회차를 넘은 지금까지 이들의 캐릭터에 별 변화가 없다. 첫 회에 보았던 이미지랑, 지금의 이미지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납작한' 캐릭터로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반면에 <꽃보다 할배>는 겨우 8회만에 캐릭터들이 롤러코스터다. 직진 순재였던 이순재가 다리가 아픈 일섭을 위해 독일어까지 해가면서 길을 알아보기에 분주한 따스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드라마에서 엄격한 회장님이었던 박근형은 부인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내느라 바쁜 로맨티스트다. 사람 좋아보이기가 한량 없던 신구는 시즌 2에서 숨겨왔던 외국어 실력을 내보이며 짐꾼이 필요없단 말이 나올 만큼 리더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영문과 출신 일섭은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가 최고요, 대화는 한국어로 완성된다. 게다가 떼쟁이일줄 알았더니, 정의의 화신이란다. 
사실 <꽃보다 할배>의 내용은 별거 아니다. 여행을 가서 무언가를 보고, 뭘 찾아 먹고, 잠잘 곳을 마련하고,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서 찾아내지는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매회 샘솟듯 솟아나는 출연자들의 색다른 면모에 젊은 사람들조차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분명 여섯 남자의 색다른 인간적인 면모였었다. 그런데, 30회를 지난 지금, 여섯 남자는 처음 그 자리에 아직도 서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정태호는 부지런히 음식을 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김준현은 열심히 시간만 나면 먹고, 뚱뚱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속내와 능력을 내보인다. 김준호는 여전히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잔머리를 쓰기에 바쁘다. 
미션도 해야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인간의 조건> 멤버들의 인간적 모습의 능력을 활짝 펼치는데 방해가 되는 걸까? 돌아가면서 미션 수행하는 모습만 줄줄이 나열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많은 걸 해내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건 점점 드물어 진다. 

이번 <휴가의 조건>에서 박성호는 시간이 주어지자 용감하게 혼자 사이판 행을 감행한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의 여행 과정은 다른 멤버들이 제주도를 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비춰진다. 그걸 보면 제주도를 가건, 사이판을 가건 무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꽃보다 할배>에서 하듯이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먹을 곳을 찾고, 여행을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꽃보가 할배>와 비교된다. 할배들이 거리를 걸을 때, 화면을 결코 쉽게 지나친 적이 없다. 직진 순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하고 기가 막힌 배경 음악이 깔린다. 박성호가 사이판의 밤길을 동네 개들을 두려워하며 걷는 모습은 그저 맹숭맹숭 지나쳐간다. 사이판에서 박성호는 여전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잘 노는 형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꽃보다 할배>에서 한지민이 할배 일행과 조우할 뻔하다 엇갈린 일이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일정상의 조율 문제로 엇갈렸을 뿐인데, 인간의 도리까지 나오면서 갑론을박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의 조건>에 아이돌 그룹 멤버인 이준이와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미 이준이란 개인의 캐릭터 자체가 여기저기 온갖 프로그램을 다니면서 소진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멤버들의 모습도 새로울 것이 없었기에 화제를 끌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준과 함께 마빡이를 했다? 그건 화제조차 되지 못했다. 
한때 <남자의 자격>에 몸담았던 김준호가 프로그램에서 꽁트를 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좌장 격인 이경규가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꽁트가 당장 인트턴트 식 웃음을 만들어 낼 지언정, 기본적으로 캐릭터로 깊어져야 하는 프로그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를 거듭할 수록, 캐릭터는 여전한데, 꽁트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을 보다보면, 무엇을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을 초대하기 보다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인간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을 활용하란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조건>의 정체 혹은 하강은 미션의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그 미션을 요리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여섯 남자의 매력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초심으로 되살리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5. 10:23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를 보기에 앞서,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를 보았다. 

40년차 양희은에서, 겨우 2개월의 김예림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선, 후배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말로는 즐기겠다고 하지만, 수차례 바뀌는 편곡의 리듬에, 화려한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무대 장치에, 한 사람 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를 무려 두 팀이 어우러져 혼신의 노력을 해댔으니, 때로는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존재감있는 무대였다. 그걸 보면서, 조금 있다 보게 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떠올리며, 과연 이제 그 프로그램이 케이블의 사생결단 서바이벌과, 공중파의 다양한 대결 프로그램들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버틸 수 있을까란 회의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래도, 200회인데, <슈퍼 매치>의 우승자를 뒤로 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채널을 돌렸다. 아, 그런데, 초라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없을까? 나의 오산이었다. 여전히 200회를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MC 유희열이 부른 마지막 노래 '여름날'처럼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뉴스24)

비록 이 지면은 아니었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을 감격해 하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 데,  200회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의 100회 특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그랬었다. 100회 특집의 이름은 'The Musician', 무대에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가수를 위해 무대 뒤에서 수십년 묵묵히 연주를 해왔던 연주자들에게 헌정하는 특집이었다. 기타의 대가 함춘호와, 하림과, 50여년을 아코디언을 연주한 심성락 선생의 연주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 특집을 위해 인순이, 루시드 폴 등 가수들은 무대의 중심이 아닌,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겨이 그들의 백댄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무대의 감상을 묻는 시간, 함춘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에, 그 프로그램이 100회 라는 시간을 건너왔기에 용기를 내어 마련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마련했었던, 루시드 폴과 함께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여 다시 부르던 포맷은 이제 <나는 가수다>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아이유, 효린 등 신인 가수가 나와 선배의 노래를 다시 부르던 기획은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을 노래하는 상시적 아이템이 되었다. 한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mbc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늘상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오던 일상의 숙제이다. 이제는 스타가 된 아이유와, 알리와, 존박 등이 떨리는 모습으로 조심스레 무대에 서던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으니까. 금요일 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요일 0시 반에 시작하여, 2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밤도깨비 같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화려하게 조명받지 않아도 꾸준히 우리의 음악을 다양한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풍성하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세간에 그들의 이름과 음악만으로 회자되는 언더 그라운드의 밴드와, 인디 뮤지션들이 처음으로 무대를 서는 기회를 얻는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12년만에 첫 무대라며 눈물을 적시며 떨던 '바스코'에게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케이블에서도 조차 명멸해가는 고품격 음악 방송들 사이에서도, 늦은 시간이라도 감지덕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간이 흘러 200회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은 'The Fan'이다. 
이번 <슈퍼스타K>시즌 5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한경일'이다. 200년대 꽃미남의 가수로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던 가수로, 이제 다시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한경일이란 기존의 가수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나와야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 가수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가수들의 가수, 가수들이 팬이 되어 좋아하는 가수,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미처 그들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 가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에 출연자를 보면, 물론 이승환이나, 이현도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가수들도 있지만, 그 중 김태우, 윤도현, 바비킴 등은 타방송의 대결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가수들이다. 심지어 그 중 바비킴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에 이어 <슈퍼 매치>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렇게 인기 가수들이 중복되어 몇몇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 특집의 자리를 내주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다운 기획이고, 그러기에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빛나고, 아직도 이 프로그램이 존속해야 할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 되었다. 

(사진; osen)

이효리의 '콜'에도 '시간 나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며 시크하게 자신의 음악과의 어울림을 고민했다던 김태춘,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우는 기분이라며 감격해 마지 않지만, 그런 그들이 여전히 하드 롹을 고집해서 좋다는 윤도현과 로맨틱 펀치의 어울림, 장기하 보다 더 맛깔나게 가사를 음악에 맞춰 요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한 김대중, 지금까지 박정현과 함께 했던 임재범, 김범수 등에 견주어 결코 그 음색의 독특함이 뒤지지 않는 이이언, 그리고 까다로운 유희열이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극찬을 한 선우 정아까지,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해 각기 자신의 장기를 뽐내듯, 컨트리, 락,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실력자들이 있었어 라고 감탄하게 되는 특집의 시간이었다. 

마치, 당신들이 편식하는 음악 뒤에,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우리는 이런 세상을 당신들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인도하고 싶어요 라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200회 '음악으로 전한 소감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남들은 거리를 싸돌아 다니며 불태우는 금요일 밤을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고 앉아 불침번을 서게 만드는 버거운 싸움을 계속하게 만드는 고단하지만 기대에 부푼 강요의 시간이다. 
Let's go 300회!


by meditator 2013. 8. 24. 10:03

<주군의 태양>이 나날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할 때마다 되돌아 오는 질문이 있다. 홍정은, 홍미란 자매님들(이하 홍자매) <빅>때는 왜그러셨어요? 

이제는 대세가 된, 연기돌 랭킹 1위에 빛나는 수지가 출연했음에도, 그녀의 작품으로 언급조차 회피되고 있는 <빅>과 <주군의 태양>은 동일하게 홍자매의 작품이지만, 과연 이 두 작품이 홍자매의 작품이 맞는가 싶게 다른 느낌의 드라마이다. 
같은 작가 작품이라고 꼭 같아야만 돼?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작품을 되돌아보면, <최고의 사랑>, <환상의 커플> 등 인기를 누린 것일 수록 <주군의 태양>과 거의 같은 포맷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히려 주인공들이 설정은 비정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던, <빅>이 홍자매에겐 외도와도 같은 성격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른바 홍자매의 작품답다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그걸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자면 '병맛'이다. <주군의 태양>은 홍자매 특유의 병맛이 펄떡펄떡 살아움직인다. 그러니 재미없을래야 재미없을 수가 없다. 



"꺼져!", "꺼져, 꺼져!", '얼른 꺼져!" " 꼭 세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 군"
위의 대사를 글자로만 읽으면 굉장히 모욕적이다. '인격 모독'으로 고소를 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물론, 처음에 주중원(소지섭 분)이 어색한 손짓으로 저 대사를 칠 때, 뭐지, 이 작위적 대사는? 하면서, <최고의 사랑>의 '극뽁'처럼 유행어 하나 만드려는 거야? 하면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더구나 늘 정극의 연기만 하던 소지섭이 홍자매 특유의 리듬과 겉돌던 시기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게 몇 번 반복이 되면서,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중독성이 있는 거다. 이즈음에는 '꺼져' 한 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면서, 이제 6회차에 들어, 소지섭조차 드라마의 리듬에 조금씩 몸을 맡기면서, 그 어색한 맛의 '꺼져'조차,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효진은 늦고 빠르고가 없이 이미 그녀 자신의 연기력으로만 초반부터 무리수일 수도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을 책임지고 가고 있다. 그녀만큼 말도 안되는 드라마 속 캐릭터 자체로 사랑스러운 여인이 또 어디 있을까 싶게.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안돼, 꺼져!"
홍자매 드라마의 대사들은 흔히 아이들간의 대화 같다. 어른들이 듣고 있노라면 뭐 저리 막말을 하나? 싶거나, 쓸데없는 말만 하나? 싶은데, 지들은 그게 하냥 좋다고 하는. 언뜻 들으면 욕이 반이 넘는 막말인데, 그 속에서 정이 넘치고, 우정이 깊어지는 그런 묘한 맛? 그게 홍자매의 대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자매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분명 어른인데도 아이들이다. 덩치만 어른일 뿐, 사탕을 빼앗기기 싫어서 앙탈을 부리고, 온갖 모험을 불사하는 그 아이들의 마음 그대로이다. 아마도 어른 들 사이에서 '꺼져'를 세 번 쯤 하면, 마음 속에 칼을 갈게 되겠지만, 아이들같은 어른들이기에 얼마든지 그 보다 더 심한 말도 가능하다. 아마도 그래서, 유치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아마도 그래서, 어른인 척, 혹은 멋있어 하는 가식이 없어서, 같은 젊은이들 사이에, 일단 홍자매 드라마는 보고 판단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일 것이다. 

<주군의 태양>의 주인공 혹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들이 없다. 일단 쇼핑몰의 사장 주중원은 어릴 적 납치를 당했던 트라우마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피하고 자신만의 성 속에 숨은 채, 주군처럼 행사한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만 억지로 웃음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그 주변엔 그를 이해하는 김비서 말고는 그 누구도 없다. 
태공실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설정부터 귀신을 본다는, 거기에 귀신이 들러붙어 자신의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는 이 여자는 등장부터 잠도 못자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루저 그 자체이다. 
남녀 주인공만이 아니다. 조만간 태공실의 어설픈 연적으로 등장하는 태이령(김유리)은 전지현의 밥솥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냄비 광고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한껏 뽐냈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강우(서인국 분)도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쫀다. 
번듯한 어른이지만 속내를 알고보면 다 한 끝차이로 찌질하기가 이를데 없는 '병맛'어른 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아이들 수준 그대로다. 

대한민국 드라마답게 <주군의 태양>에서도 재벌이 나오고, 스타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참 없어보인다. 권위는 허세요, 가진 건 스쿠루지 저리 가라게 짠돌이에, 정신 세계는 딱 아이 수준이다. 학창 시절 평가하던 어른들 딱 그 모습이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 그들이기에,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과 얽히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엮어져갈 그들의 사랑이 전혀 불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재벌이 한낫 루저녀를 사랑하는 것이 호의로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주중원과 태공실이 계약 관계로 동등하게 엮이듯, 그들의 사랑조차 동등해 보인다. 심지어 나중에는 오히려, 태공실이 더 많은 걸 줄 수도 있어 보인다. 
학창 시절 아이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다. 자신들보다 더 많이 알고, 가졌지만 자신들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냉소어린 그 시각이 그대로 드라마로 연결된다. 
흔히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는데, 홍자매의 드라마가 딱이다. 그들의 정서에 맞춘 어른들의 세계.  

흔히 '병맛'의 시초를 만화로 본다. 철 든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낄낄거리며 한없이 빠져들게 하는 그 매력을 병신미, 혹은 병맛으로 정의한다. 혹자는 이걸 잉여력이 넘치는 루저들의 집합체인 젊은 층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에 반발해, 일찌기 조선시대 김삿갓에서부터 비롯된 해학과 페이소스의 유산이라고도 정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홍자매 드라마는 재밌다. 그리고 그게 바로 '병맛'의 본령이다. 꼭 무슨 교훈을 남겨야 해? 의미가 있어야 해? 하하 호호 깔깔거리고 서로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면 그뿐. 


by meditator 2013. 8. 23. 10:20

kbs2의 <굿닥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예언자가 되어간다. 

월요일 방영 중반 차윤서(문채원 분) 선생이 모처럼 노는 날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박시온(주원 분)은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당연히 차윤서와 박시온은 동물원에 놀러가고, 거기서 차윤서는 수의사가 되어도 좋은 만큼 동물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한 박시온의 능력을 알게 된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회분 방영 말기, 등장하는 환자가 개들 사이에서 방치되어 길러진 '늑대 소녀'였다. 물론 강력한 진정제 말고는 제압할 수 없는 그 늑대 소녀를 환자로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박시온 뿐이다. 



<굿닥터>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거나, 혹은 누군가 등장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구나 예측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드라마는 십중팔구 그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약혼자 채경에게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던 김도한은 채경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 혹시 차윤서를 불러내는 거 아냐? 하니 아니나 다를까 차윤서를 불러낸다. 그러고는 채경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자신의 속 이야기, 자신의 정신지체3급 동생이 자기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박시온이 차윤서를 만날 때마다 딸국질을 해대는 것에 버금가는 노골적인 속내다. 
어디 그뿐인가, 박시온의 엄마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병원 드라마답게 아파서 쓰러진다. 그것도 차윤서와 박시온 앞에서, 게다가, 엄연히 맡은 과가 정해져 있는 종합병원임에도 소아외과 차윤서가 차트를 들고 그녀를 담당한다. (바로 지난 주 다른 과 환자를 데려갔다고 멱살잡이를 하더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사연을 가장 박시온을 안쓰럽게 여기는 차윤서가 알게 된다. 병원과 엄마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신선한 줄거리가 아니다. 어디서 한번쯤 보던 것이나, 혹은 '늑대 소녀'처럼 충격적이어 보여도. 그로 인해 박시온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고, 또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다음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굿닥터>는 재미있다. 그건 뻔한, 혹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이 <굿닥터>를 이루는 하나의 씨실이라면,  그 씨실을 얽어가며 그림을 만들어 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캐릭터들이 어느새 공감을 얻어가며 '내'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굿닥터>에서, 말 그대로 좋은 의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세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생활을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박시온이다. 그의 의사로써의 재직 자체가 병원 원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장애인의 경계에 서있는 박시온 선생은 말 그대로 화약고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로 인해 생겨나고, 그로 인해 해결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분명 20일자 엔딩에서처럼 자신의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 옆의 경호원을 밀치고 나자빠지게 할 만큼 맹목적이고 불온한 박시온이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듯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그는 나타난 결과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매력을 내보이고 있다. 맹목적인 그의 행동들이 체계와 시스템에 억눌린 요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힐링'이요, 때로는 눈치없이 내뱉는 그의 말들이 속시원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박시온은 아직 절름발이다. 그만으로는 좋은 의사와 의학 드라마는 완성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를 성장시켜 줄 '멘토'이다. 
처음에 최우석 원장(천호진 분)이 그를 데려왔을 때, 그가 박시온의 멘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회를 거듭하면서, 박시온의 뒷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은 정작, 그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김도한 선생(주상욱 분)이다. 
차윤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섣부른 욕심으로 인해 동생을 홀로 거리로 내몰아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김도한 선생은 박시온에게 섣부른 기회를 주는 것보다, 그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동생 때문에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적자인 소아외과에 남아있는 김도한은 박시온을 볼 때마다 동생이 떠올라 힘들어 한다. 
그럼에도 무능력한 과장 아래 김도한은 소아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위치이고, 본의 아니게, 박시온의 일들을 수습하게 되고, 묘하게도 박시온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봉쇄하게도 되는 긴장감있는 '멘토'의 위치에 놓인다.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서번트 주인공인 박시온이 주인공인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주인공인 박시온에 적대적이면서, 그에 대해 애증을 지니는, 그리고 위치상 멘토가 될 수 밖에 없는 애증의 인물 김도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도한은 김도한 자체로 늘 병원을 집어 삼키려는, 혹은 의료 행위를 입신 양명의 수단으로만 삼는 세력들에게 비타협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면서, 자신의 직업의 이유를 자부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념이 뚜렷한 정의로운 존재이자, 그 자신의 사연때문에, 입장 때문에 박시온과 대립하는 양면성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사건만 생기면 그의 눈빛과 안색을 살피게 되어 버렸다. 
<굿닥터>는 말 그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을 다루는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외면적으로 드러난 성장담이 박시온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여부이지만, 사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며 고뇌하는 실질적 견인차 역할은 김도한에게 맡겨져 있다. 그의 선택, 그의 의지에 따라, 박시온을 비롯한 드라마 전체가 요동친다. 

김도한이 궁극의 해결책을 쥐고 있는 결정적 멘토라면, 차윤서는 그 자신이 때로는 김도한의 표현처럼 박시온처럼 의지만이 앞서는 맹목적이고 불완전한 펠로우 2년차이면서, 또한 어린 아이 같은 박시온을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멘토이다. 박시온이 하는 모든 일에 끼어서 때로는 그를 꾸짖고, 때로는 그를 편들며서, 그리고 그런 박시온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 반성하며 커나가는 중간적인 존재이다. 

<굿닥터>는 박시온이라는 어찌보면 그저 선명한 하나의 빛깔 밖에 없는 캐릭터를 그보다 조금 성숙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박시온같은 차윤서와, 보기엔 냉철한 이성밖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그로 인해 고뇌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김도한이란 캐릭터로 두텁게 덧칠해 간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모두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굿닥터>가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골든 타인>을 제외한 많은 드라마들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발목을 잡혔던 전례를 <굿닥터>가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차윤서만 보면 딸국질을 하는 박시온에, 약혼자 대신 차윤서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김도한을 보면 그런 바램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사랑 이야기에 발목잡히지 않는 좋은 의사들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3. 8. 21. 10:18

"미리 좀 좋아해 주시지, 사람 속 다 태워버리고....."

한때 김광석과 함께 동물원의 멤버였던, 그리고 아직도 동물원의 김창기로 남은 김창기, 옆에 있어줄 친구가 필요하다고 뒤늦게 '광석이에게'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김창기가 인터뷰 말미에 속내를 비추다 끝을 맺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그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김창기의 저 말과 비슷한 감정이 살짝 밀고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 둔중한 부채감마저 얹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화려한 댄스 음악이 텔레비젼 화면을 메울 때 거기에 초라하게 구석을 차지하던 김광석을 보고, 저렇게 한 사람의 시대가 가는구나 하고 쉽게 단정지으며 외면해 버렸다. 현란한 새 음악의 조류에 눈과 귀를 빼앗겨 버렸었다. 바로 그의 속을 태워버린 일인이다. 쉽게 그의 노래가 좋다라고 말하기 미안하다. 미안해 하면서도 자꾸 그의 노래를 읊조린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그렇게 유행에 홀려 그의 노래를 외면한 대중 덕분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그는 가고, 여전히 그의 노래는 불리운다. 
그의 노래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만 3편, 그리고 그 작품들이 다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오디션 프로에서는 하도 많이 들고 나와서 이젠 암묵적 금지곡이 되었을 정도요,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란다. 그는 가고,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남아있다. 
그리고 <mbc스페셜>은 외국에서 살다온 젊은 가수 존박을 내세워 이제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는 '김광석'을 조명한다. 

평론가 임진모는 김광석을 9번 타자라고, 더 이상은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황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노래 부르는 마지막 가수라고  단정짓는다. 더 이상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김광석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꼭 그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나지 않은 존박임에도 김광석의 노래가 좋단다. 존박은 약과다. 빅마마의 멤버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프랑스 남편도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외국인이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슬퍼지는 노래란다. 김광석만이 표현할 수 있는 '한'이 있다고 정의내린다. 
친구였던 박학기는 하회탈같던 김광석의 웃음을 기억해 내며, 그는 늘상 웃었고, 웃었는데도 슬퍼보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웃음 속에도 남아있는 슬픔이 바로 그의 노래의 '한'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와 함께 그룹 동물원을 했던 김창기는 당시 동물원의 노래를,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를 보통 사람들의 보잘 것업는 일상, 서글픈 상념을 공유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보통 사람들의, 바로 자신의  보잘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통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 운동을 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에서 활동하기 했던 김광석이기에, 평론가 강헌씨의 말대로, 그의 노래에 '스트레이트'한 운동적 이념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더라도 '시대성'을 노래하는 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중략)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물론 90년대 초반 서태지 등이 대중 가요 시장을 장악하며 tv에서 그를 마주치기는 점점 힘들어 졌다. 친구 박학기의 말대로 그의 노래는 패셔너블하지 않기에 유행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가슴에 푹 들어오는, 삶의 고개마다 만날 수 있는 진실한 울림이다. 
뮤지컬 <그날들>을 만든 감독 장유정은 김광석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이 흡사 잘 만든 영화의 속편을 만드는 것처럼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청춘의 골목길에서 자신의 등을 두드려 주었던 그의 노래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뮤지컬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16번을 보러 온 관객들로 인해 성황이다. 그가 통키타랑 하모니카 하나로 두 시간 여의 공연을 하던, 학전 소극장 그의 부조 앞에는 아직도 종종 그가 좋아하던 술과 음식들이 놓여져 있다. '나 노래 잘하지'가 아닌, ' 내 마음 알지'라며 노래로 소통하던 김광석은 20살의 김지향이 2013 김광석 따라 부르기에 나서게 할 정도로, 존박과 같은 젊은이도 듣고만 있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한 위로가 되고 있다.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길 그길에 서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1996년 33세의 나이로 김광석은 생을 마쳤다. 그와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반백이 되어 그를 회고하는 지금에서 되돌아 보면, 참 '젊은(?) '나이다. 2013년의 대표적 문화 콘텐츠가 되었고, 여전히 그의 노래가 많이 불리는지 그는 알까. 
19일 <굿닥터>에서는 하늘나라가 있는지 유뮤를 두고 현실적인 김도한 선생과, 아이같은 박시온의 대립(?)이 있었다. 그렇다. 나이가 든 나에게 현실은 김도한 선생의 하늘 나라 따위는 없어 이지만, 더 이상 내가 설 자리는 없어 하고 몸을 날린 김광석을 생각한다면, 박시온 선생 말처럼 하늘나라에 닿는 마음의 문이 있어, 김광석이 하늘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by meditator 2013. 8. 20. 10:14

"어떻게 다 자기 감정, 자기 입장만 생각해요!"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화를 속으로만 삭이던 금만복(기태영 분), 아니 장은중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그럴 만도 하다. 이십여년을 내 엄마라, 아빠라 믿고 왔던 사람들이 사실은 친부모가 아니라더니, 엄마의 친아들을 유괴한 사람의 재판에 엄마가 앞장선단다. 어디 그뿐인가. 사실은 배다른 오빠인 사람에게 여동생은 좀 더 사귀어 보고 싶다고 하고.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드라마 <스캔들>의 관계 구도는 따지고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유괴범에 연민을 느끼는 엄마, 배다른 오빠와 여동생의 계약 연애, 심지어 조미료처럼 쳐진 장태하의 첩 고주란(김혜리 분)과 강주필(최철호 분)전무의 불륜아닌 불륜까지. 장은중(김재원 분)이어야 할 아이가, 하은중으로 자라났다는 것만으로, 완전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생의 꺽이지 않는 연애 방식을 빗대 장은중이 아버지 장태하(박상민 분)와, 어머니 윤화영(신은경 분)에게 말하듯이,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의 욕심때문이다. 

(사진; 뉴스엔)

장태하는 부실 시공을 한 건물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그걸 덮기 위해 88올림픽을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하명근(조재현 분) 형사의 아들 하건영이 죽어갔다. 그리고 하명근 형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리고 비리를 권력으로 덮으려는 장태하를 해치려 그 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그의 아들을 유괴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그의 아들을 돌려주려 그 집에 갔지만, 이미 그 집엔 다른 장은중이 있었다. 그래서 진짜 장은중은 하은중이 되어야 했다.
진짜 장은중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엄마 윤화영이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아버지의 사업체를 강탈한 남편 장태하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아들이 그의 뒤를 잇게 하는 것으로 하려던 윤화영은 아들이 유괴되어 죽었다는 쪽지를 보고, 가짜 금만복을 장은중으로 만든다. 
18일 방송에서, 하명근 형사가 병원에 드나들던 이유가 밝혀졌다. 췌장암이다.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다고 한다. 자식 바보인 하형사는 그 소식을 듣자, 남은 개월 수를 손으로 꼽다가, 남겨진 아이들 김장 걱정을 한다. 처방전을 버리고 홀로 벤치에 앉아 오열하는 하명근 형사에 시청자들의 가슴도 미어진다. 그리고 그런 하형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윤화영이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밤잠을 못이루고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신세다. 하명근의 애끓는 부정이, 윤화영의 채워지지 않는 모성이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질렀던, 그래서 이제 그들의 죄로 인해 아이들까지 고통받는 업보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전래 동화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의붓딸과, 계모의 관계를 실제 모녀 관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성장하는 딸과, 그 딸의 성장을 원치 않은 엄마의 존재로,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등장하는 아버지 살해는 실질적인 아비의 살해가 아니라, 아버지의 존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남성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스캔들>의 부모 세대 역시 상징적이다. 비리로 부와 권력을 세운 장태하는 원시적 자본주의 축적의 원형이다. 그렇다면 윤화영과 하명근은 무엇일까? 윤화영은 그의 비리를 알면서도, 그의 비리의 희생자이면서도, 그의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그것을 통해 자신도 그 부과 권력의 대열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있던 많은 투항자들을 의미한다. 현대사에서 적당한 지위와 부를 누렸던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명근은 그 반대의 위치이다. 현대사의 제물이었지만, 힘이 없어, 옹졸한 사적 복수 밖에 하지 못했던 그리하여 그 자신도 피해를 입고 살아가야 했던 희생양을 상징한다. 
지난 시절 윤화영과 하명근은 장태하의 비리를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이 우선해, 그리고 힘이 없어, 시절이 하수상해 만천하에 그의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인 보복뿐.  그 시절이 윤화영과 하명근이 장태하의 비리를 덮어둠으로써 다시 오늘에 이르러 아파트는 여전히 부실 시공으로 다시 붕괴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공기찬이 죽고, 그의 아내는 아이를 잃었다. 
드라마는 말한다. 정죄되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더 큰 고통을 돌려주며. 심지어 그 고통은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식 세대까지 침식할 것이라고. 


스캔들 시청률
(사진; tv데일리)

그런 의미에서 장태하를 향한 윤화영과 하명근의 재판은 상징적이다. 결국은 또 다른 고통만을 만들어 놓은 사적 복수를 벗어던지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장태하를 징벌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화영은 선언한다. 이제라도 자신이 나서서 장태하의 질주를 막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비록 상대가 아들이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재판을 맡겠다고. 
하명근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의 아들을 유괴했던 옹졸한 사적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희생양이 되더라도 그때 하지 못했던 장태하의 비리를 만천하에 밝히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정죄를 완성하려 하는 것. 
나빴던 어른들이 뒤늦게 하는 '결자해지', 하명근 형사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제라도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돌려놓으려는 그와 윤화영의 노력이 부디 원하는 결과로 마무리지어 지길 바란다. . 


by meditator 2013. 8. 19.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