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 10시 10분 mbc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시네마틱드라마 SF8>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시네마틱드라마 SF8>를 이끌고 있는 건 한국 영화 감독 조합이다. 대표 민규동 감독은 “지난 2년간 회원 감독들의 창작 기회를 확장해줄 쇼트 폼 영화 플랫폼을 찾고 있던 터에, 웨이브 쪽에서 제안이 왔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시도인 것 같아 수락했다'고 밝히고 있다.
TV와 영화 감독의 만남은 윈윈? tv와 영화 감독들의 만남은 tv라는 플랫폼과 영화 감독들 모두에게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최근 공중파 3사 드라마는 '공중파'라는 대표성이 무색하게 저조한 시청률에 허덕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낮은 성과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흥미로운 콘텐츠의 부재이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드라마 창작자들이 아닌 영화 감독들의 참여는 궁지에 몰린 tv 드라마 콘텐츠에 물꼬를 터줄 가능성이 컸다.
감독들 역시 '윈윈'이다. '감독조합에 따르면 소속 감독 361명 중 50%가 연봉 2천만원 이하다. 그중 35%는 연봉이 1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영화계는 산업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감독들에겐 작품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패션왕> 오기환 감독, <연애의 온도> 노덕 감독,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나를 잊지 말아요> 이윤정 감독,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등이 참여한 <시네마틱드라마 SF8>, 작품명만 들어도 알만큼 내로라하는 감독들이지만 이들의 새로운 작품을 스크린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근 미래'라는 SF적 설정은 그간 드라마에서나, 스크린에서도 드물었던 새로운 시도이다. SF적 주제 아래 내로라 하는 감독의 예측불허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만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시네마틱드라마 SF8>의 의의는 크다. 하지만 단막극이 고전하고 있는 드라마 시장이라지만 거창했던 취지가 무색하게 1% 대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는 점은 장르나 실험성, 그리고 영화적인 접근 등에 있어 많은 숙제를 남긴다.
그런 면에서 9월 18일 방영한 장철수 감독의 <하얀 까마귀>는 <시네마틱드라마 SF8>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복남 살인 사건>으로 그해 신인 감독상을 휩쓸었던 장철수 감독은 이후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그 이후 감독의 작품을 관객들은 만나지 못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들어간 BJ 오랜만에 돌아온 장철수 감독이 선택한 장르는 '게임', 그 중에서도 가상 현실 게임 VR이다. 8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BJ 주노(안희연 분), 하지만 어느날 접속한 동창이란 구독자로 인해 '과거'가 논란이 되고 그녀가 애써 쌓았던 인기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빠진다.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주노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VR게임 IOM2(inside of mind)참여한다.
뇌를 자극하여 개개인의 트라우마에 맞춰 유저 맞춤형 공포를 제공하는 게임, 그 게임의 1라운드에서 주노가 눈을 뜬 곳은 바로 그녀의 과거 조작 논란이 된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이다. 거기서 주노는 지나간 과거에서 '백아영'이란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미션을 받아든다.
라운드가 거듭될 수록, 그리고 처음 실현한 장치로 인한 오류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BJ 주노의 오기로 인해 단순하게 백아영 찾기였던 게임은 아영과 준오의 우정, 그 복잡한 개인사로 헤집어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백아영과 장준오(이세희 분),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백아영이 퍼트린 '거짓말'로 인해 궁지에 몰린 장준오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마는 사건이 발생한다.
준오처럼 머리를 기르고, 준오처럼 화장을 하고, 마치 자신이 준오인 듯 준오만이 아는 개인사를 자신의 글에 천연덕스럽게 쓴 아영, 그런 아영을 준오가 다그치자 아영은 준오가 고등학생이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며 외려 준오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드러난 '질시''의 너머에는 청계천 철거라는 가족사가 숨어있다. 철거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가정이 붕괴된 아영, 반면, 그 '철거'를 통해 부를 축적한 집안의 준오, '질투'라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 밑바닥에는 용서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이 숨겨져 있다. 거기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준오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아영의 '욕망'이 더해져 결국 준오로 하여금 옥상에 서게 만든다.
과연, 그 과거의 '아영'은 누구일까? 게임은 계속 BJ주노에게 아영을 묻는다. 심지어 처음 시연한 게임 과정에서 과열로 인해 방송국이 불이 나고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BJ주노가 뇌사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등장한 게임 조력자는 여전히 추궁을 멈추지 않는다.
<시네마틱드라마 SF8>의 여타 작품들에서도 그랬지만 <하얀 까마귀> 역시 SF, 증강 현실이라는 첨단의 장치를 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인간의 질곡은 원초적이다. 철거 뒤의 잔해같은 가족사,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정, 그 모든 것들이 한 소녀의 죽음을 초래했고, 또 다른 소녀에게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가면'을 씌웠다.
6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느 하나 중점을 두지 않은 것이 없다는 감독의 말이 과언이 아니듯, 증강 현실 게임이라는 첨단의 영역과 '트라우마' 속 과거의 학창 시절은 겹겹이 겹쳐진다. 한 술 더 떠서 화재로 인한 게임 중단이 진실인가, 그 역시도 게임 속 트라우마를 충동하는 장치인가에 이르면 혼란스러워진다. 거기에 수업 시간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등장한 '아폴론에 의해 거짓말을 했다고 까맣게 타서 죽임을 당한 원래 하얗던 까마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게임 속의 '배경 서사'로 작동하여 수시로 인간 까마귀떼를 등장시키며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의욕적인, 혹은 60분이라는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속에 과욕이랄 수도 있는 중층적 서사 구조와 거기에 밑바탕이 된 신화, 그를 구현한 미래의 증강 현실은 1%에 못미치는 시청률의 결과로 볼 때 시청자들에게 '인식 오류'나 혹은 불친절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 하여 안타깝다.
종종 다시 한번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때의 시행착오를 격지 않고 잘 살아낼 수 있을 텐데 라며. 그럴까? 청춘의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그 시절은 꽃처럼 피어나는 화려한 계절이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어떨까? 성인이 되었지만, 이제 스스로 걸어가기 시작한 삶도, 사랑도 그 무엇도 불투명하여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시절이 아닐까? 세상은 꿈을 꾸라하지만, 그 꿈으로 인해 고뇌하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시절, 그리고 그 와중에 청춘의 심볼같은 사랑은 또 얼마나 갈피를 잡기 힘든 건지.
그 혼돈의 계절을 성장통처럼 앓는 청춘들의 이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가을과 함께 찾아왔다. 뜨겁고 열정적인 여름의 공기 대신, 한결 차분하고 서늘해진 가을의 온도처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청춘들의 고뇌에 깊게 천착한다.
꿈이 무거운 남자와 꿈이 버거운 여자 아직 세상의 쓴 맛을 알기 전의 시절, 꿈이란 곧 손에 잡힐 듯한 무지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주디>의 주인공 주디 갈란드는 'over the rainbow'를 부르며 말한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지만, 실상 삶이란 그 달려가는 여정에 불과한 것 같다고. 공동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진 개체가 사회적 존재로 인지되어지는 시점부터였을까? 사람들에게는 도달해야 할 '꿈'이란 '과제'가 생겼다.
그런데 그 꿈이 문제다. 멀쩡하게 다니던 명문 서령대 경영학과를 때려치우게 만드니 말이다. 채송아(박은빈 분) 얘기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접한 채송아에게 꿈이 생겨버렸다. 여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그녀에게 그 꿈은 늦깍이라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만들었다.
꿈은 고달펐다. 과외를 하며 레슨비를 벌어 여러 번의 입시 실패를 겪고 그래도 서령대 음대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꿈을 향해 성큼 다가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악기를 해온 동기들 사이에서 송아는 실기 꼴찌일 뿐이었다. 그런 현실이 꿈으로부터 그녀를 자꾸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향한 꿈을 꿀만한 자격이 있을까? 재능이 있는 걸까? 그래서, 자신의 재능이 무겁다는 준영이 걸린다. 그저 준영의 그런 마음때문이었을까? 그의 연주를 듣고 눈물이 흐는게?
늘 어깨에 얹혀진 짐같은 정경을 생각하며 하루를 열었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눈물을 흘려준 여자, 송아,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어가는 남자 준영(김민재 분)에게 꿈은 무겁다.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도 준영의 재능은 그를 피아니스트로 이끌었다. 어려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콩쿨을 전전하던 그가 유태진 교수를 만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로 입상의 쾌거를 이루었고 덕분에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해왔다.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피아노만 하며 살아가기에 삶이 녹록치 않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경후 재단의 장학금이 정경 엄마의 목숨값이라는 사실도, 그렇게 일 년에 열 몇 차례 연주회를 하며 세계를 떠돌아 다녔지만 통장에 고작 300만원 밖에 없는 처지도, 그런 그에게 매번 손을 벌리는 부모님도, 그저 피아노를 쳐서 행복했던 그의 꿈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송아와 준영만이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서령대 수석 입학, 졸업 후 유학까지 하고 돌아왔지만 현실은 부모님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현호 (김성철 분)에게도, 경후 그룹의 외손녀라는 타이틀을 지고 여전히 바이올린을 켜는 정경(박지현 분)에게도 사랑도, 음악도, 그리고 삶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삶의 무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서사적 틀만 놓고 본다면 흔한 삼각, 사각, 심지어 육각 멜로 드라마이다. 사랑의 작대기는 어긋나고, 사랑의 템포는 각각 달라 두 사람에게 엇박자를 선사한다. '좋아해요'라고 고백을 하지만 고백을 듣는 상대방의 눈빛은 흔들린다. 거기에 그런 상대방의 오랜 여자 친구는 자기가 먼저라고 선포까지 한 상태다.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멜로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음악을 매개로 한 청춘의 고뇌란 색채를 더한다. 각자 자신에게 '화두'처럼 다가온 '꿈'에 대한 무게를 얹으니 평범했던 멜로 드라마는 깊이감을 가지고 청춘을 탐색한다. 아마도 이건 음악을 전공했던 류보리 작가의 내공에 수채화같은 감성을 잔잔하게 얹은 조영민 연출의 감각이 잘 조화를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늦깍이 연습생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일반이들에게 생소한 장르이지만 그런 음악을 매개로 풀어내는 꿈과 재능, 그리고 현실의 무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누구에게나 ,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내버린 사람들에게조차도 공감을 자아낸다.
아마도 청춘을 꽃이라 칭함은 그들이 이제 막 삶과 사랑의 세상에 움터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꽃인 진 뒤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이 꽃처럼 피어올라 버겁게 잡았던 꿈과 사랑에 대한 화두도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들이 짊어진 버거운 삶의 무게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온기에 응원을 하게 되는 듯하다.
언택트의 시대이다. 가급적이면 만나지 말고 교류하지 말고 얽히지 말아야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만남'과 '관계'에 대한 갈망은 더해간다. 기약할 수 없는 코로나가 없어질 먼 훗날에 함께 만나 마음껏 가고픈 곳에 가고 어울리기를 소망한다. 만날 수 없어 더욱 '사람'을, '사람이 주는 온기'를 갈구하게 되는 시대, 이 '쉼표'와 같은 시절에 한번쯤 '관계맺음'과 '사랑'에 대해 되돌이켜 보는 건 어떨까?
그 되돌이켜 보는 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다. '우정사'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1999년 작임에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현재형'의 이야기가 되는 드라마, 극중 재호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재호와 신영의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되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같은 인생, 강재호 재호(배용준 분)는 27살 늦깍이 대학생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교정을 누비는, 스포츠카보다 더 훨친한 외모의 그는 언뜻 보기에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난 놈'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난 놈'답게 자부심을 넘어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사람 겉보기만으로 모른다고, 그 '잘남'은 재호가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걸친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재호가 어릴 적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어린 재호와 그 보다 더 어린 재영을 놀이공원에 버렸다. 재영을 데리고 술을 파는 이모를 찾아온 재호, 그 후로부터 쭉 재호는 '가장'이었다.
스물 일곱, 가장인 재호는 새벽에 노량진 수산 시장의 '게'를 파는 능력있는 경매인이 되었다. 남자한테 돈을 털린 이모에게 뭉칫 돈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재영(이나영 분)을 대학을 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재호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 아니 세상에게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을 갔다. 대학에서 만난 현수(윤손하 분)를 통해 노량진 수산 시장 게 경매인이 가질 수 없는 '신분 상승'을 꿈꾼다.
현수도 재호에게 호감을 보이고 이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애써 이루어 왔던 그가 도달하려는 했던 고지는 '신기루'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버지'같은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던 재영, 대학을 나와 그럴 듯한 가정을 이루게 하면 재호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재영이 하필이면 재호의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세상 무능력하다 못해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석구(박상민 분)와 사랑에 빠졌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친구라고 품었던 석구로 인해 밤잠 못자고 애써 얻은 게 경매인 자리마저 놓치게 생겼다.
아니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재호 자신일 지도 모른다.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간 후 오로지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줄곧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에 목매는 이모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신은 '사랑'도 '쟁취'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 강사로 들어온 신형(김혜수 분), 그녀가 자꾸 재호에게 거슬린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안온하게만 자란 온실 속의 화초라 여겨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처럼 잡초처럼 살아온 사람을 신영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냉소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그녀 주변을 맴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해버리게 만드는 여자,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 싫어진다. 그건 신형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에 만난 오만불손한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재호가 신경쓰인다.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황량한 눈빛에 마음이 간다.
함부로 차버릴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용기 서른의 시간 강사와 스물 일곱의 학생, 남보기에 행복하고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순탄하게 자란 외동딸과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여전히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스물 일곱의 가장, 아니 무엇보다 곧이곧대로의 세상과 사람을 믿는 선한 세계관과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는 세상을 향해 위선과 위악으로 똘똘 뭉친 뒤틀린 마음의 간극이 가장 컸다. 두 사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신형은 물론, 재호 주변까지 그 누구라도 말리려고 했던 관계였다.
하지만 사랑은 둘 사이의 불가능할 것같은 것들을 자꾸 넘어서게 만들었다. 서른과 스물 일곱, 안온한 삶과 들풀 같은 인생, 무엇보다 재호가 신형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되는 건, 어머니가 그를 버린 이래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선한 심성에 입혔던 위악의 갑옷들이었다. 어거지로 자신을 버텨왔던 그 뒤틀린 삶에 대한 복수와도 같은 '성취'들이 재호에게는 차츰 무의미해져 갔다.
그러나 삶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44회 동안 보는 시청자들의 가슴이 미어지도록 재호의 삶은 강팍하다. '가장'의 맘으로 돌보는 동생은 그의 뜻에 늘 어긋나고, 그가 겨우 이룬 것들은 그가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허물어져 간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하늘도 무심하게 겨우 스물 일곱 재호에게 '뇌종양'이란 병마가 찾아든다. 그가 홀로 버텨왔던 삶이 여린 그에게는 너무 버거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드디어 재호가 신형에게 갔을 때 재호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19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보는 당시 아픈 몸임에도 재호가 드디어 신영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그 사랑에 울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연 저런 상황에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로 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용기'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다.
재호가 뇌종양을 앓게 된 이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재호에 대한 신영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채워지는 듯 보인다. 살고싶다는 재호는 부여안고 괜찮다며 울고 싶으면 맘껏 울라며 보다듬어 준다. 하지만 그뿐일까.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재호가 자신의 병을 저어하여 신영에게 끝내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드라마의 마지막 신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자신의 품에서 영원히 잠든 재호를 깨우지 않았다고 나레이션을 한다. 시청자들은 재호의 죽음을 보며 대성통곡했지만, 아마도 신영은 재호와의 '완성'된 사랑으로 오래오래 충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주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재호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신영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내주었기에 신영 역시 '사랑'을 이루었다. 사랑은 덧셈 뺄셈으로 계산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아픈 재호로 인해 신영 역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재호는 용기를 내주었다. 그는 죽어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긍정했고 삶을 향해 열렬한 구애를 한 것이다. 사랑을 인정했고, 어거지로 욕심부렸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잃었던 것들이 그를 찾아왔다. 사랑이 왔고, 그에게 빼앗아가기만 하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움이라 생각했던, 그러나 그리워했던 어머니도.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비로소 왔다. 너무 늦은 것같지만 늦은 것은 없었다. 살면서 애써보지만 스물 일곱 해의 재호가 얻은 것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래서 재호는 고단했던 스물 일곱 해,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천형처럼 다가온 '코로나 시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잃은 것이 많다고 통탄하게 되는 이 시대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간 우리가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가 정말 용기내어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는 연탄재가 되도록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용기를 내보라 전한다.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때라고.
<미씽; 그들이 있었다> (이하 미씽), 1.657%로 시작한 드라마는 4회 만에 두 배에 가까운 3.49%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쾌속 순항을 하고 있다. <미씽>이 이렇게 시청률 호조를 보이고 있는 건 무엇보다 흡인력있는 스토리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머문다는 두온 마을이 예고편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안그래도 비만 죽죽 내려 더운 줄도 모르고 지났던 올 여름도 지나고 뒤늦게 찾아온 납량 특집 장르물인가 했다. 하지만 이제 막상 4회까지 진행된 <미씽>은 죽은 자들이 등장하는 서늘한 공포물이기보다는 지난 주 방영된 하늘이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인연'에 얽힌 눈물을 자아내는 사연이었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두온 마을,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죽은 자들에게는 '사연'이 있다. 즉 죽었지만 아직 그들의 '주검'이 발견되지 못했다는 것, 그들은 누군가 자신의 '주검'을 발견해 줄 때를 기다리며 '마을'을 이루며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마을에 나타난 김욱 그런 두온 마을에 사기꾼 김욱(고수)이 등장한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외모에 붙임성좋고 말주변까지 좋은 김욱은 자신의 '능력'을 살려 사기꾼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사기'는 좀 다르다. 보육원 동기인 김남욱이 소개해준 사기 피해자들을 구해주는 '사기'를 치는 것이다. 경찰조차 외면한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신문고같은 역할이라는 자부심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을 도와주고 그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김욱 식의 사기이다.
10년 경력에 승률 만점, 이 만능 사기꾼 김욱에게 위기가 닥쳤다. 어느 날 낯모르는 괴한들이 그를 납치한 것, 끌려가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가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곳이 '두온 마을', 그런데 살아있는 김욱에게 죽은 두온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처럼 살아있는 사람 장판석(허준호)를 만나고 그의 집에 머물며 두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간여하게 된다.
그리고 두온 마을에 나타난 최여나,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최여나는 호시탐탐 다시 두온 마을을 나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나가려고 한다. 그런 최여나가 안쓰러운 김욱, 그런데 바로 그 최여나가 매번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김욱과 아웅다웅하는 신준호(하준 분) 형사의 약혼녀라는 사실이 김욱을 걸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최여나를 납치해 죽인 자들이 바로 김욱을 납치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김욱은 최여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면 자신의 납치극도 해결될 것이라 믿어 최여나 죽음을 조사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욱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김남욱에게도 낯선 자들이 들이닥쳤다. 김욱과 김욱을 돕는 이종아(소희 분)가 남욱을 도우러 가기도 전에 겨우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나 싶어 한숨을 돌리던 남욱에게 트럭이 들이닥쳤고, 결국 남욱은 목숨을 잃었다. 신준호 형사를 닥달하지만 사건의 가해자들은 중국으로 도망치고 해결조차 모호한 상황, 김욱은 스스로 나선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죽은 사람은 최여나, 김남욱 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망자 장명규, 이렇게 세 사람은 불에 타 원생들이 전부 죽은 보육원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은 세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누가 보육원생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거기에 힌트는 머리카락이다. 세 사람들을 죽인 자들은 모두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갔고 그 머리카락들은 누군가와의 유전자 감식 과정을 거친다. 이 무모한 범행, 그럼에도 그들이 원하는 '일치'하는 대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건 그들이 놓친 한 사람, 바로 김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승건설의 한여희 회장, 부동산계의 큰 손이자, 성공한 기업인인 그녀에게는 '후사'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유언장에 자신의 손자나 손녀에게 유산을 상속하겠다고 한다. 단, 손자나 손녀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녀를 도와왔던 세 사람의 측근에게 전재산이 상속되는 상황, 당연히 세 사람 중 누군가 혹은 세 사람의 공모로 손자, 혹은 손녀로 추측되는 아이들을 죽여왔다는 것을 유추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죽인 세 사람마저 손자나, 손녀가 아니라면 김욱이 가장 유력한 손자 후보가 아닐까 하고 시청자들은 '추리'를 모은다.
그런데 왜 손자와 손녀로 추측되는 아이들을 전부 죽이는 것일까? 거기엔 한여희 회장의 딸이 있다. '미친 여자'라고 하는 딸은 죽었는지,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상속의 대상이 손자나 손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여희 회장의 딸은 어디 있을까?
생과 사,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드라마 <미씽>의 또 다른 매력이 등장한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두온 마을, 그런데 그곳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회차를 거듭하며 그저 '조연'들 같지가 않다. 왜 살아있는 김욱은 죽은 두온 마을 사람들이 보일까? 또한 두온 마을 사람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장판석의 존재는 무엇일까?
그 실마리는 4회 마지막에 등장한 목걸이에서 풀어질 듯하다. 죽은 남욱과 함께 보육원 출신인 김욱, 그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그가 6살 때 잠시 그를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졌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당연히 어머니를 기억한다고 생각했던 김욱, 그런데 두온 마을에서 사사건건 그와 부딪치는 김현미(강말금 분) 여사가 떨어뜨린 목걸이 안에 김욱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다.
김욱의 어린 시절 기억에 어머니가 걸었던 목걸이 속에 자신의 사진이 있었던 걸 기억하는 김욱, 바로 그 목걸이를 김현미 여사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온 마을에 올 때부터 김욱의 눈에는 어린 준수를 유난히도 싸고도는 김현미 여사가 불편했다. 자신은 엄마없이 자라왔기에 유달리 아들을 끼고 도는 엄마가 거슬렸던 것. 어쩌면 자신의 엄마인 김현미 여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에게 애착을 보이는 것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일까?
드라마 <미씽>은 매회 발생하는 바깥 세상의 사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결국 두온 마을의 누군가와 연결된다. 발생하는 사건 하나, 그리고 등장 인물 누구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연관성', 그것이 바로 드라마 <미씽>의 관전 포인트이다. 삶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죽은 자의 마을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인연'으로 풀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신선하다.
살아있는 존재로 죽은 자들의 사건을 풀어가는 장판석과 김욱은 현대판 '살풀이'를 하는 무당과도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들의 '업'에 얽혀 사건에 휘말리며 그 자신의 '사연'을 풀어내는 과정은 현대판 '전설의 고향'을 보듯 '인연'의 곡진함을 느끼게 한다. 드라마의 진행은 미스터리 스릴러이지만 그 속에 담긴 건 '전통적인 구성'이라는 점에서 <미씽>의 매력은 배가된다.
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용산서 강력계 한여진 경위(배두나 분)는 검찰에게 뇌물을 주던 혐의로 수사받던 박무성의 집에서 조우하게 된 두 사람, 감정을 느끼지 못해 법전에 의거하여 일을 처리하는 검사가 천직이라 여겼지만 정작 검찰 내부에서 왕따가 되었던 황시목, 반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한여진 경위,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사건'을 대함에 있어 '원칙'을 중시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동질적이다.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그런 두 사람이 검찰 스폰서 살인 사건을 위한 특임 팀에서 만나 '공조' 수사의 팀웍을 자랑했다.
검사 스폰서 사건에서 부터 시작하여 결국 거대한 검찰 내부 비리 사건이 된 사건, 그 끝에서 상사이자 그를 이끌어 주었던 이창준 검사장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사건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밝혔지만 그 대가로 황시목은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검찰 내부 봐주기 수사를 운운하는 기사에 오르내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 그가 대검찰청 형사법제단에 발탁되었다. 모양새는 검찰청 발탁이지만 내용상 경찰 측에서 그를 원했다는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만난 두 사람 대검찰청 형사법 제단 소속이 된 황시목은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에서 경찰청 구조혁신단 주임으로 일하고 있던 경감으로 승진한 한여진을 조우하게 된다. 검찰과 경찰, 서로 자신들의 보다 많은 권익을 얻어내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의 장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한때는 '공조 파트너'였지만 이젠 '견원지만'의 '말'노릇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법사위원장 아들과 관련된 사건, 이어 세곡 지구대 자살 사건을 통해 검경은 수사권 조정, 그 중에서도 특히 영장 청구권을 둘러싸고 '장군 멍군'의 파워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비밀의 숲> 시즌 1이 검찰 스폰서였던 박무성의 죽음이 검찰 내부 비리의 도화선이 되었듯이, <비밀의 숲> 시즌2는 통영 바닷가에서 젊은이들의 애꿏은 죽음으로 막을 열었다. 박무성의 죽음에서 황시목과 한여진이 현장에서 조우했듯이, 통영 사건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투철한 진실을 향한 사명감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저 우발적인 사고일 수 있었던 사건은 황시목과 한여진의 자발적 공조로 인해 그저 스쳐지나갈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장난과도 같은 고의가 발생시킨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통영 사건을 통해 드라마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밝힌다. 그리고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서로의 이권을 향해 장기판의 말이 될 듯했던 이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뜻밖의 '진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검찰'이라는 울타리 안에 황시목을 가두려는 검찰 측 우태하(최무성 분)와 김사현(김영재 분)의 '패거리 문화'에 엄격하게 선을 그은 황시목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법사위원장 아들 사건에 있어 우태하가 맡은 역할에 의심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상관인 최빛(전혜진 분) 구조혁신단장이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감으로 한여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곡 지구대와 관련하여 경찰 내부의 부정한 뒷거래에 한여진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 없다.
다시 손잡은 황시목과 한여진 그렇게 서로 반대편에 섰지만 자신의 편에서 '몽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던 두 사람, 바로 그 때 서동재(이준혁 분) 검사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얄밉도록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만큼 시즌 1에 걸쳐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서동재의 실종에 두 사람은 통영 사건에 이어 다시 한번 현장에서 만난다.
거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우태하에게 접근했던 서동재, 반면 그 서동재가 조사하려고 했던 의정부 세곡 지구대 사건과 관련된 최빛, 그런 연관성으로 인해 검찰도, 경찰도 이 사건에서 자신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기를 원치 않고 그런 '이해 관계'는 이제 황시목과 한여진의 공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윗선의 이해관계와 달리, 황시목과 한여진의 방향은 분명하다. 시즌 1에서 그렇듯이 '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황시목을 아끼고 안타까워하는 강원철 동부지검장은 황시목을 불러 나이도 들었는데 왜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고 핀잔섞인 훈수를 두었지만 황시목은 요동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수사를 맡긴 최빛에게 이제 더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에 진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두 사람의 공조가 결국 시즌 1에서 이창준의 죽음에 이르렀듯이 이제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명목을 두고 만난 경찰과 검찰, 우태하와 최빛, 그 누구에게도 황시목과 한여진의 공조가 '자비'를 베풀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시목과 한여진이 집단의 이해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실을 향해 거침없에 내지를 때 비로소 <비밀의 숲>은 그 본류의 재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더구나 서동재는 마치 부비트랩처럼 통영 사건 생존자에서부터, 세곡 지구대 관련자, 그리고 한조 그룹에 이르기까지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비밀의 숲> 시즌 2는 이제 서동재의 실종을 통해 본격적으로 '숲'을 향한 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은 듯하다. 시청자들을 숨도 못쉬게 집중시켰던 스릴러로서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황시목과 한여진이 드러낼 숲, 그 곳의 진실은 무엇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7월 mbc와 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림이 함께 한국판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SF8월 mbc와 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림이 함께 한국판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SF8을 웨이브를 통해 선공개했다.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 김의석 감독의 <인간 증명>, 노덕 감독의 <만신>, 안국진 감독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수 없다>, 오기환 감독의 <증강 콩깍지>, 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 장철수 감독의 <하얀 까마귀>, 한가람 감독의 <블링크> 등 8 작품은 이어서 8월 14일 부터 매주 금요일 MBC를 통해 방영 중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내세운 SF8은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 지능(AI), 증강 현실(AR), 로봇, 게임, 판타지, 호러, 초능력, 재난 등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누구를 돌볼 것인가? - 간병 로봇의 딜레마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이다. 김혜진 작가의 SF소설집 <깃털>에 수록된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배경은 2046년, 여전히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이다.
'사람이 힘든 일에서 해방되고 그 일을 로봇이 대신한다면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김혜진 작가의 원작 속 TRS는 간호중이 되어 낙원 요양 병원에서 10년 째 뇌사 상태에 빠진 연정인의 어머니(문숙 분)를 돌보고 있다.
극중 간호중은 환자의 딸인 연정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로봇이지만 환자를 돌보야 하는 가족의 얼굴을 한 이 간병 로봇은 그래서 환자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가족에게는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인쇄소를 운영하며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연정인은 간호중을 '호중'이라 부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처음 어머니가 병상에 누웠을 때만 해도 생일을 챙기며 살갑게 어머니를 대하던 연정인은 이제 10년이 되어가는 이즈음 피폐함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그런 정인을 돌봄 1호 정인의 어머니에 이어, 돌봄 2호라고 생각(?)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정인의 상태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
간병 로봇이라고 다같은 간병 로봇이 아니다. 2046년이 되어도 여전히 가진 것에 의해 삶의 질이 나뉘는 세상, 정인의 옆방 치매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없는 돈에 보급형 간병 로봇을 들였지만 정작 남편은 차도가 없고, 간병 로봇마저 제 멋대로이자 보호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정인은 더더욱 좌절하고, 그 역시 극단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줄을 매달고 의자에 올라가 발버둥을 치다 떨어진 순간 울린 전화벨, 달려온 병원에서 영안실에 누운 어머니를 보고 정인은 간호중을 끌어안고 '덕분에 어머니가 편히 가셨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병원 관계자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 온 정인은 돌변, 자신의 얼굴을 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정인이 가하는 분노의 폭력 끝에 '간호중'은 파괴되고 만다.
로봇이 던진 질문, '인간다움'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46년, 기술은 간병 로봇을 등장시킬 정도로 발전했지만, 사람살이는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병도, 고통도 덜어지지는 않았다. 변화되지 않은 삶과 관계 속에 더해진 '로봇'은 과연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10년 째 어머니를 간병하며, 로봇 스스로 그 어머니의 딸조차 '돌보'고 있는 상황은 이미 '메뉴얼'된 기능 이상의 '진화'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봇은 돌봄의 질을 위해 스스로 '선택'의 질문을 던진다. 로봇을 찾아 '전도'를 했던 수녀님에게 전화를 건 로봇은 '한 사람이 죽어 다른 한 사람이 산다면?'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드린다. 생명은 주님의 뜻이니 로봇 주제에 함부로 간여하지 말라는 수녀님의 경고에, 외려 간호중은 되묻는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을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인가? 라고. 그 죽었어야 할 사람 때문에 생기롭게 살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면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냐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끝나지 않고 있는 존엄사에 대한 질문이 간호중을 통해 던져진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젊은 정인을 구하기 위해, 정인 어머니의 생명을 끊는 간호중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선택에 대해 질문이 던져진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정인을 찾은 수녀님,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냐며 간호중을 파괴해 버렸던 정인은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간호중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던가. 그리고 수녀님은 다시 간호중을 찾아나선다. 간병 로봇을 만들었던 본사까지 걸음한 수녀님은 그곳에서 메뉴얼된 그 이상의 '작동'을 스스로 결정한 간호중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만난 간호중, 아니, TRS- 70912 B는 자신에게 차오르는 무엇을 말하며 이게 고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 수녀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말한다. 상황이 역전되어 수녀님이 예전 간호중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예전에 간호중은 물었다.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으로 만들었다면 자신도 사랑으로 만들었냐고. 그때 수녀님은 '자네는 로봇이잖아!'라고 일갈했다. 그런 수녀님의 단호한 거절에 간호중은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일 수도 있다며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해 기꺼이 기도해 주겠다는 수녀님에게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목숨을 거두어 달라 호소한다. 살아서 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느니 죽음을 택하고 싶다는 간호중의 애절한 간청에 수녀님은 혼란스럽지만 규정을 넘어설 수 없다. 입장이 바뀌어 당시 간호중과 같은 입장에 처한 수녀님은 간호중이 '사랑'으로 선택한 그 결정과 달리 세상이 그어놓은 선 밖으로 선뜻 나설 수 없다. 그 때 간호중이 던진 한 마디는, '위선자',
같은 상황에 놓인 로봇과 인간의 다른 선택, 묘하게도 영화를 보고나면 어쩐지 로봇이 더 인간보다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선'적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수녀님'이야말로 결국 자신들이 만든 도덕과 규정과 규칙 속에 갇혀 '딜레마'에 빠진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했을까? 라는 원작자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인간적 고뇌의 상황에 던져진 로봇, 로봇일지라도 그 딜레마를 통해 성장하게 되었다는 건, 인간이 포기한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진화가 주는 묵시록적인 경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SF임에도 되돌아 오는 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그 아픔과 고뇌라는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태풍의 한 가운데에 제주에 발이 묶였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야자수들이 90도로 꺾지며 바람을 견디고, 에머랄드 빛이었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고 검은 물결로 다그쳤다. 한 발자국만 헐하게 내딛어도 휘청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시간, 결국 마이삭은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히고 물러났다. 3일 아침 마이삭이 휩쓸고 간 바닷가, 찢어진 해면조각들과 바닷말 찌꺼기들 사이로 작은 게들과 벌레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하시는 분이 자칭 '원주민'이셨다. 그저 얹어놓기만 했는데 태풍에도 끄덕없는 제주도 돌담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시는 끝에 그 돌과 같은 제주도민들의 '의지력'을 말씀하시고는, 그 '의지'의 제주도민들이 제주 바다를 살리기 위해 들인 공으로 말씀을 돌리셨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가 깨끗한 이유, 쓰레기나 플라스틱 조각하나 나뒹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제주도민들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50년 바닷속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거라고 학자들이 경고하는 시대, 그럼에도 '바다'를 청정해역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건 '사람'뿐이다. 그리고 그 '바다'와 '사람'에 대해 kbs1 <다큐 인사이트>는 8월 20일과 27일에 걸쳐 <눈물, 바다> 2부작을 방영했다.
엘니뇨와 남획이 불러온 재앙 페루 산후안 마르코나 해역, 남극에서 흘러온 홈볼트 해류가 흐르는 이곳에는 막대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있다. 그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멸치 떼가 몰려들고, 그 멸치 떼를 따라 2m나 되는 오징어 떼가 지천인 곳이다. 3억 마리의 새와 180여 종의 바다 사자가 사는 곳, 페루 수산업의 중심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97~99녀느 20009년에서 2010년, 2016년에서 2017년 세 차례에 걸친 엘니료로 해수 온도가 5도가 상승했다. 거기에 남획과 오염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닥쳤다. 1990년 조개류 어업이 붕괴했다. 2000년에는 다른 어업도 할 수 없게되며 산후안 마르코나 마을이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20여년간 마을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살길을 모색했다. 매일 매일 쓰레기를 치웠다. 어업 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해안을 관리했다. 그러자 3년 전부터 붉은 성게가 돌아왔다. 성게가 돌아오자 물고기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일정 크기, 일정량 이상은 잡지 않는다. 휴식기도 엄격하기 지킨다. 이곳만이 아니다. 오래된 기구에 의지하여 잠업을 하는 페루 북쪽 안콘도, 멸치 산업의 메카 엘 카요도 후손 대대로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지침에 따라 스스로 바다를 지켜낸다.
홍도 바다에 홍어가 없다? 우리나라의 홍도는 어떨까? 대대로 홍어 잡이를 해온 이곳은 홍어를 잡아 일년 생계를 꾸려내왔다. 홍도 사람들은 특유의 주낙( 비교적 굵은 한 가닥의 기다란 줄에 여러 가닥의 가는 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를 연결) 방식으로 낚시를 해왔는데 70년대 중국에서 온 쌍글이 어선이 서해를 까맣게 덮으며 우리 어장의 물고기를 싺쓸어 가고 거기에 수온이 상승과 바다 오염이 겹치며 홍어 잡이의 시절은 막을 내리는 듯 했다.
90년대 20여척쯤 되던 홍어잡이 배는 적자가 되자 2000 년대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다 이제 6척이 남았다. 24시간 잠을 안자고 뿌리고 끌어올리는 주낙은 고된 노동의 현장이다. 하지만 그 현장에서 끌러올린 건 폐그물, 포대 이기 십상이다. 그래도 금어기를 만들고 , 어획량을 정해 바다를 보존하기 시작하자 2,3년 전부터 다시 홍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도,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도 지구 녹지의 9% 인간의 보물 창고라 일컬어지는 브라질의 맹그로브 숲,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 정글에서 사람들은 맹그로브게를 잡아 살아왔다. 타이어로 만든 신발에 여러 겹 장갑을 끼고 날카로운 나무 뿌리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하는 '극한 어업',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암컷을 잡지 않는다. 번식을 위해서이다. 7센티 이상만 잡는다.
'더 많이 보호할 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맹그로브 숲의 사람들은 깨달았다. 수많은 동물들의 집,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이곳 맹그로브 숲, 그 숲이 파괴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한 어부지만 동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법으로 정해진 상한선을 지킨다. 자신의 아이들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맹그로브 숲을 지키기 위해서.
인도네시아 와카토비의 바자우 족은 바다 집시들이다. 다이너마이트와 청산가리를 이용하여 고기를 남획해 왔다. 그 '잔인한 남획'의 결과는 처참했다. 산호초가 죽어갔다. 물고기가 사라졌다. 필리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알보알 앞바다의 정어리 떼가 사라졌다.
남획을 금지하고 무자비한 다이너마이트와 청산가리 사용을 금지하자 산호초가 살아났다. 정어리 떼가 돌아왔다. 그러자 멸종 위기의 푸른 바다 거북과 같은 다른 해양 생물들도 돌아왔다.
낚시줄, 작살총, 그물만이 허용된 인도네시아의 앞바다, 정부의 계도에 따라 어부들은 전통적인 줄낚 등을 이용하여 비록 몇 마리는 되지 않지만 비싼 물고기를 잡는다. 살벌한 전쟁터와 같던 어업이 이젠 생명의 근원인 바다에서 노니는 놀이와 같은 사냥이 되었다. 전보다 많이 잡지 못하지만 고부가가치의 고기들은 어부들의 끼니와 벌이를 보장하게 되었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 수온은 올랐고 물고기들은 더 찬 바다를 향해 이동한다. 과도한 어획 등으로 지구촌 대다수의 어장에서 물고기의 수가 줄었다. 거기에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현실은 변했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정부와 어부들은 이제 다시 노력하고 있다. 비록 조금 덜 가져가고, 조금은 느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다시 산초호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제주 바다처럼, 사람들의 노력만이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다.
10회차에 이른 <악의 꽃> 이제 본격적으로 연쇄살인범이었던 도현수의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범의 목소리를 통해 도현수(이준기 분)이 헤집은 기억 속에서 현수와 같이 간 바에서 아버지는 공범이 줏어 준 아버지의 옷을 통해 '차 키'를 전달받은 거였다. 도현수, 아니 이제 백희성은 다시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바를 찾아든다.
그런데 왜 도현수는 공범을 찾는데 그렇게 애를 쓰는 걸까? 온 세상이 자신이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이라고 해서? 물론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나 도해수의 뒤늦은 고백처럼 누나가 죽인 이장조차도 스스로 짊어진 도현수가 왜 이제 와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도현수는 자신의 결백이 아니라,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공범'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공범'이 바로 그의 아내 차지원(문채원 분)의 사랑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최선이 아내가 잡으려는 '범인'을 잡아주는 것이라니! 이런 '기괴한' 사랑은 그게 도현수이기 때문이다. 아니 도현수는 지금 자신이 하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지원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의 환영이 보이지 않으니 그래서 차지원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나의 물음에 당당하게 한번도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던져 사랑을 구하는 사이코패스 도현수는 스스로가 태생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더 이상 도현수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연습해 왔다. 더욱이 차지원을 만나, 그녀가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더더욱 열심히 '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즉, 도현수에게 '사랑'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그저 '감정'일까? 도현수는 차지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남편이 된 이래, 남편의 역할에 그 누구보다 '충실'해왔다. 경찰이 되어 바쁜 아내 대신 가사를 맡은 도현수는 맛있는 음식은 물론, 그의 말에 따르면 딱 미니 차지원같은 딸 백은하를 키움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했다.
시청자들 역시 드라마가 규정한 사이코패스 도현수에 시선이 가려져 그가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것에만 '천착'했지만, 이제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걸 안 아내 차지원이 도현수에게 싫증났다며 헤어지자 하자, 그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공범 잡기에 나선 도현수를 보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누가 도해수가 도현수를 보며 달라졌다고 하듯이, 도현수의 저런 모습이 '사랑'이 아닐까 라고.
도현수와 도해수가 둘이서 만나는 걸 몰래 지켜보던 차지원은 안그래도 자신이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백희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인범으로 추적당하던 도현수라는 사실에 혼돈스러워 하는 한편, 자신이 믿고 의지해 왔던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워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누나에게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니 분노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연주시 살인 사건 수사에 매진하며 남편을 옥죄어 가는 한편, 대놓고 이제 오래 살아서 싫증이 났다며 헤어지자는 말을 한다.
물론 자신이 도현수라는 걸 애초에 속인 것에서 부터 이 부부의 딜레마는 시작된 것이지만 백희성이 도현수라는게 '들통'난 마당에 봉착한 부부의 대응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구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관계'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도현수의 맞은 편에 돈이 된다면 사람도 얼마든지 '재료'로 팔고사는 범법자들과, 자신의 명망과 이익을 위해 병든 아들 대신 도현수를 백희성으로 만들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취하는데 거침이 없는 백만우와 같은 인물들을 대비시키며 우리의 섣부른 '규정'이 파놓은 함정을 드러낸다.
사랑이 무얼까? 사랑의 '감정'에 매달린 아내 차지원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에 '분노'하고 '이별'을 선언하는 것과 달리, 아내와의 '관계'에 충실하고자 하는 도현수는 아내의 맘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누가 사랑일까? 어쩌면 자신을 잡을 지도 모를 경찰이 되는 일을 가장 응원해 주었던 도현수, 그리고 바쁜 경찰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지원의 내조에 열과 성을 다했던 도현수,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사랑'의 감정마저 애써 노력했던 도현수, 그리고 이제 그런 아내를 위해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는 도현수, 그런 도현수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제일 힘든 게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교감'된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악의 꽃>은 그런 관계의 표피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실체는 그걸 채워가는 '성실함'이 아닐까 묻고 있는 듯하다.
남편을 외면했던 차지원은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의욕이 앞섰던 함정 수사에서 위기를 겪으며 비로소 남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강력반이라는 험한 생업의 전선에서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이 알고보니 그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남편 도현수의 위로의 지지였음을. 설사 그것이 '연습'된 감정일지라도 그 '연습'의 뒤에 숨은 건 바로 자신을 향한 도현수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랑'이었음을. 차지원은 말한다. '나는 너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너도 나밖에 없었구나.'라고.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안 순간부터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을 '사이코패스'에 맞추어 오해했던 차지원은 비로소 남편의 진심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폭력적 성향으로 규정되었던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름 아닌 실종된 도현수 엄마의 목소리였다는 걸 알게 되고 상담사에게 오열한다. 왜 어린 소년 도현수조차 알지 못했던 애달픈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냐고.
10회에 이른 <악의 꽃>은 사이코패스의 '사랑' 아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세 치 혀의 농간에 부화뇌동하는 감정이 아닌, 관계의 실체에 대해 고민해 보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수 밖에 없는 시절이다. 이 시절에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넘어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삶의 버팀목에 대해 드라마를 빌어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사이코패스라지만 그 누구보다 진솔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도현수를 통해서 말이다.
메릴 스트립, 지나 데이비스,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리즈 위더스푼, 산드라 오 등등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이름을 들어왔고, 이름만이 아니라 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기억할 만한 헐리우드의 유명 여배우들이다. 이들 여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바로 <우먼인 헐리우드>이다. 2018년 개봉작이었던 <우먼 인 헐리우드>가 EIDF 2020 여, 聲 섹션에 초대되었다.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96명이 출연했다 해서 화제가 된 영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아카데미상을 무려 3번이나 받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하여, 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현장에서 그 누구라고 막론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차별'받아왔다는 것이다. 누가 저 유명세를 떨치는 여배우들이 '차별'로 인해 고통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대표적인 여배우들의 발언으로 <우먼 인 헐리우드>로 인해 헐리우드 영화 산업 내 차별은 현실감있게, 그리고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여배우도 받은 차별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 <크레이머 vs. 크레이머> 이혼 법정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현장에 여성은 메릴 스트립 뿐이었다. 이혼 상황에 놓인 여성 캐릭터를 남자들이 고민했다. 메릴이 자신의 생각을 영화에 투영하려 했지만, 결국 영화는 남성의 생각과 감정선을 따라 흘러갔다. 되돌아 보건대 우리나라에도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던 <크레이머 VS. 크레이머>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 여주인공이 가정을 버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이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였다.
여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부정'했다고. 여자들을 주로 욕망, 욕구,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다고. 여성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소수였다고. <델마와 루이스>로 이름을 알린 지나 데이비스의 경우 영화배우가 되어 했던 첫 촬영부터 '란제리'를 입고 촬영을 했다. 지나 데이비스와 세대가 다른 클로이 모레츠라고 다를까? 십대였던 그녀에게 가슴이 작다고 '볼륨 브라'가 주어졌다. 심지어 <캐리>를 찍으며 '초경' 장면에서 남자 스텝들이 훈수를 두는 웃픈 상황이 발생했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이 산업의 핵심'이라는 농아닌 농처럼, 여성은 '객체'였고, '타자화'되었고, 주체성은 배제되어왔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은 호소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델마와 루이스>가 개봉되고 여성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며 화제가 되자 이제는 조금이라도 세상이 달라질까 했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 데이비스는 스스로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를 차려 미디어 속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피상적으로 보이던 '편견'과 '차별'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접근하고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 흥행했던 100편의 영화 중 85%가 남성 작가들에 의해 씌여졌다고 한다. 결국 남성들에 의해 남성들의 분노와 고뇌가 주로 '작품화'되고 있는게 현실인 것이다. <우먼 인 헐리우드>에서 등장하는 데이터들은 차별을 명시화한다. 대부분 2018년의 기준인 데이터들, 그럼에도 그 데이터 속에서 여성들은 차별받고, 편견의 대상이며, 소외되어 있다.
구조적이며 내재화된 차별 1980년대는 히어로물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80년대 영화 속 히어로들은 서부영화 속 히어로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과거 영화 속 히어로들을 답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는 대상인 안티 히어로들과도 동일했다. 자신의 남성성에 도전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었다.
이런 '미디어'의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결정하고, 그 '메시지'에 의해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확산되게 된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남자들의 리그'였다. 여자들은 버림받는 애인이거나, 구조받는 희생자였고 아름다워야 했다.
헐리우드 초창기는 지금과 달랐다. 무성 영화 시절 <귀부인과 승무원>은 여성이 감독을 하는 등 당시 여성들은 감독과 작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커지며 음향 기술이 도입되고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부유한 지배층 남성들의 시각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여성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팽배해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감독상은 2009년 캐서린 비글로그 단 한 명이었다. 역대 오스카 상 심사위원에 여성이 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고 다큐는 묻는다. 심지어 주요한 영화 평가 기관인 토론토 지수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들 중 77.8%가 남성이다. 2018년 헐리우드 상위 250 편 중 92%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2017년 여주인공 중심의 영화는 38.1%에 불과했다. 여성에게는 흥행에 기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감독들에게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차기작을 9년 후에야 할 수 있었다. 감독은 전투적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여성 감독들의 입지를 줄인다. 심지어 여성 촬영 감독은 더더욱 드물다. 여성감독, 여성 작가가 드문 헐리우드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
볼 수 있으면 될 수도 있다 어릴 때 보는 미디어 속 자신과 같은 성의 역할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내 미디어의 80%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유포'해왔다. 이런 '미디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대표적인 작품 중 11편 만이 소수자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배우 산드라 오는 처음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인종의 이야기를 다룬 <조이럭 클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전한다. 분명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걸 보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나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가치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반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개봉된 후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한 공주의 모습, 그리고 같은 해 개봉한 <헝거 게임> 속 여주인공으로 인해 양궁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이 105%나 증가했다고 한다.
CSI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드 CSI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자 법의학을 배우는 여성의 비율이 증가했다. 그 결과 현재 현장 인력의 절반이 여성이 되었다고 한다. 섹스 어필하지 않은 여주인공에 소수 인종이 주인공인 <그레이 아나토미>의 등장 역시 쉽지 않았지만 파급력은 컸다.
리즈 위더스푼은 150명의 남자 중 유일한 여자였던 현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성들에게 안전망은 없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건 위험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리즈 위더스푼은 '여성 혐오적'인 캐릭터를 두고 동료 여배우들과 경쟁하는 대신 스스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화하기 위해 제작사를 차렸다. 그녀가 만든 작품들이 흥행을 하며 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한 지평은 넓혀졌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도 흥행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80년대 유망했던 여성 감독들은 영화 현장에서 여성 권리의 확장을 위해 법적인 소송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여성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자발적 준수'라는 법적인 문턱을 넘어섰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정작 여성이 판사였던 연방 법원의 기각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감독, 조감독, 제 2조감독으로 이어지는 영화계 내에서 위계 질서에서 쉽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세상의 반인 그녀들의 존재처럼 영화 현장에서도 '반반'의 비율이 지켜지는 그 날을 향해 <우먼 인 헐리우드>는 목소리를 높인다.
EBS 국제 다큐 영화제가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그 사회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진실을 기록'하는 '다큐, 올해는 글로벌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다큐 내일을 꿈꾸다'라는 슬로건으로 8월 17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진행되고 있다.
영화제는 경쟁 부문인 페스티버 초이스와 함께, 여성, 예술, 교육, 무형 유산 등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무형 유산' 부문에서는 우리나라의 씨름 등 세계 각국의 문화적 유산이 다뤄지고 있다. 그 중 <기생, 꽃의 고백>은 세상의 편견 속에 사라져 가는 '기생'의 문화적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 EBS
부산 박물관 앞에서 벌어진 '수영야류' 공연, 부산 수영구에서 전래되는 이 '탈놀이'가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래 권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기생들의 조합을 뜻하는 '권번'이 우리 민속 유산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수영야류 보존회장인 이상열 씨는 자신이 동래 권번에서 엄격한 교습 과정을 통해 '수영 야류'를 배웠던 시절을 회고한다. 교방 검무, 교방 승무 등등 우리가 지금 우리의 문화 유산으로 즐기고 있는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기 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는데 있어 기생들의 권번, 그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 '문화적 영향력'은 기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함께 묵살되고 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생 김선부, 왕수복, 신일선, 김영월 등은 1930년대를 풍미한 기생들이다. 뛰어난 미모, 모던한 옷으로 당시 신문물이었던 '와인'과 커피'를 즐겼던 사람들, 기생하면 떠올리는 전통무가 아니라 탬버린을 들고 서양식 댄스를 앞서 도입했던 사람들, <봉황의 면류관> 등 당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캐스팅 1순위였던 사람들, 오늘날 우리가 '엔터테이너'를 생각하면 떠올려지는 것들을 수행한 당대의 문화인들이다.
기생들은 시, 글, 그림, 노래, 춤의 전문가들이었다. 왕실에서 가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1패 기생으로, 일단 대중들을 상대로 가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은근자', 2패 기생으로 분류했다. 이들보다 낮은 3패 기생들이 몸을 파는 일을 했는데 이들로 인해 기생 전체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다.
초창기 기생들은 예술 활동을 하는 예기들이 많았다. 공연 예술의 한 갈래를 담당했으며 근현대사 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문화계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기생들은 국산 장려 운동, 고아들을 위한 자선 공연 등에 앞장섰다.
평양 기생학교에는 학생들이 200여 명이 넘었으며 서울에도 자체 학습 프로그램을 가질 만큼 예기로서 기생이 되는 과정에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침 10시면 나와 소리와 춤을 배웠으며, 장구, 춤, 소리는 기생으로서는 기본이었다. 한 달에 한번 시험을 봤고, 못하면 체벌을 당하거나 심하면 밥도 굶겼다. 만점을 받아야 비로소 기생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한 '수련' 과정을 거쳤다.
이들 기생은 '권번'이라는 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다. 권번은 기생들의 이른바 '공연비'를 관리했으며, 의상, 코디 등을 담당하는 한편 어린 기생인 동기들을 키워냈다. 이런 과정 자체는 오늘날 '연예 기획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기생들의 권번은 서울이나 평양 뿐 아니라 부산, 군산 등에도 존재했다. 낮에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밤에는 공연을 하는 '명월관'은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그 명성을 누렸다. 심지어 도쿄에도 '명월관'이 있었다. 평양 기생이었던 노경월이 1929년에서 32년에 걸쳐 나카타초에 열었던 명월관은 단순한 요릿집이 아니었다. 영친왕의 집과 붙어있어 모종의 지원이 추측되는 명월관은 유학파, 독립투사 등 일본에 온 다양한 우리 지식인들의 교류와 정보 교환의 장이었다.
부정당한 우리의 전통 문화, 기생 일본 명월관에 대한 기록조차도 치밀하게 자료를 모은 일본 쪽 연구로 인해 알 수 있듯이 하지만 막상 당시 기생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한 시대의 문화인으로 풍미했지만 이후 사회에 퍼진 기생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인해 한때 기생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후손들을 의식해서 자신이 기생이었음을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예기라 할 수 있는 군산 소화 권번 기생이었던 장금도 명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제 90세 요양 병원에서 계셔야 할 정도로 노쇄해졌지만 자신을 기리는 공연에서 '춤출 때 보면 그렇게 예쁘다'는 그 옛날의 평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춤사위를 선보이신다.
드센 사주팔자 때문에 기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장 명인은 아들을 홀로 키우며 잔칫집에 다니며 춤 공연을 다니기도 했지만 모습을 감춘 다른 기생들과 달리 '민살풀이' 명인으로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와도 같은 장금도 명인과 후학 대진대 신명숙 교수와의 관계는 예외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분야의 무형 문화재가 된 사람들치고 기생에게 배우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만, 모두 드러내어 기생들로 부터의 전수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기생이란 이유만으로 제대로된 능력자들이 제외되고 그보다 낮은 기량의 사람들이 문화재가 되기도 했던 것이 현실이다.
저급한 일본 기생 문화가 들어오며 소비적이며 말초적인 저급한 접대 방식이 퍼진데다 1930년대 대동아 전쟁 당시 일본이 기생에게 가무를 금하고 접대를 하도록 했다. 이 때부터 기생을 '접대부'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문화적 담당자로서의 기생 이미지 대신 '접대부'라는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기생이었던 분들은 자신들은 '가무'를 담당했다며 자부한다. 기생들에게 전통 문화를 배웠던 사람들도 그 배움을 부인하기 보다 배웠으며 그 배움이 소중하다는 솔직한 시인이 필요하다. 엄연히 기생은 조선과 근대를 잇는 전통 문화의 담당자였다. '접대부'라는 후에 그들을 규정한 저급한 인식을 넘어 예술인으로 그들의 존재를 다시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다큐는 말을 맺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많은 전통 문화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형 유산으로 '기생'을 복기한 <eidf 2020 -기생, 꽃의 고백>은 의미가 있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