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다시 한번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때의 시행착오를 격지 않고 잘 살아낼 수 있을 텐데 라며. 그럴까? 청춘의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그 시절은 꽃처럼 피어나는 화려한 계절이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어떨까? 성인이 되었지만, 이제 스스로 걸어가기 시작한 삶도, 사랑도 그 무엇도 불투명하여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시절이 아닐까? 세상은 꿈을 꾸라하지만, 그 꿈으로 인해 고뇌하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시절, 그리고 그 와중에 청춘의 심볼같은 사랑은 또 얼마나 갈피를 잡기 힘든 건지.

그 혼돈의 계절을 성장통처럼 앓는 청춘들의 이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가을과 함께 찾아왔다. 뜨겁고 열정적인 여름의 공기 대신, 한결 차분하고 서늘해진 가을의 온도처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청춘들의 고뇌에 깊게 천착한다. 

 

 

꿈이 무거운 남자와 꿈이 버거운 여자
아직 세상의 쓴 맛을 알기 전의 시절, 꿈이란 곧 손에 잡힐 듯한 무지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주디>의 주인공 주디 갈란드는 'over the rainbow'를 부르며 말한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지만, 실상 삶이란 그 달려가는 여정에 불과한 것 같다고.  공동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진 개체가 사회적 존재로 인지되어지는 시점부터였을까? 사람들에게는 도달해야 할 '꿈'이란 '과제'가 생겼다. 

그런데 그 꿈이 문제다. 멀쩡하게 다니던 명문 서령대 경영학과를 때려치우게 만드니 말이다. 채송아(박은빈 분) 얘기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접한 채송아에게 꿈이 생겨버렸다. 여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그녀에게 그 꿈은 늦깍이라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만들었다. 

꿈은 고달펐다. 과외를 하며 레슨비를 벌어 여러 번의 입시 실패를 겪고 그래도 서령대 음대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꿈을 향해 성큼 다가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악기를 해온 동기들 사이에서 송아는 실기 꼴찌일 뿐이었다. 그런 현실이 꿈으로부터 그녀를 자꾸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향한 꿈을 꿀만한 자격이 있을까? 재능이 있는 걸까? 그래서, 자신의 재능이 무겁다는 준영이 걸린다. 그저 준영의 그런 마음때문이었을까? 그의 연주를 듣고 눈물이 흐는게? 

늘 어깨에 얹혀진 짐같은 정경을 생각하며 하루를 열었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눈물을 흘려준 여자, 송아,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어가는 남자 준영(김민재 분)에게 꿈은 무겁다.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도 준영의 재능은 그를 피아니스트로 이끌었다. 어려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콩쿨을 전전하던 그가 유태진 교수를 만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로 입상의 쾌거를 이루었고 덕분에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해왔다.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피아노만 하며 살아가기에 삶이 녹록치 않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경후 재단의 장학금이 정경 엄마의 목숨값이라는 사실도, 그렇게 일 년에 열 몇 차례 연주회를 하며 세계를 떠돌아 다녔지만 통장에 고작 300만원 밖에 없는 처지도, 그런 그에게 매번 손을 벌리는 부모님도, 그저 피아노를 쳐서 행복했던 그의 꿈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송아와 준영만이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서령대 수석 입학, 졸업 후 유학까지 하고 돌아왔지만 현실은 부모님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현호 (김성철 분)에게도, 경후 그룹의 외손녀라는 타이틀을 지고 여전히 바이올린을 켜는 정경(박지현 분)에게도 사랑도, 음악도, 그리고 삶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삶의 무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서사적 틀만 놓고 본다면 흔한 삼각, 사각, 심지어 육각 멜로 드라마이다. 사랑의 작대기는 어긋나고, 사랑의 템포는 각각 달라 두 사람에게 엇박자를 선사한다. '좋아해요'라고 고백을 하지만 고백을 듣는 상대방의 눈빛은 흔들린다. 거기에 그런 상대방의 오랜 여자 친구는 자기가 먼저라고 선포까지 한 상태다.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멜로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음악을 매개로 한 청춘의 고뇌란 색채를 더한다. 각자 자신에게 '화두'처럼 다가온 '꿈'에 대한 무게를 얹으니 평범했던 멜로 드라마는 깊이감을 가지고 청춘을 탐색한다. 아마도 이건 음악을 전공했던 류보리 작가의 내공에 수채화같은 감성을 잔잔하게 얹은 조영민 연출의 감각이 잘 조화를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늦깍이 연습생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일반이들에게 생소한 장르이지만 그런 음악을 매개로 풀어내는 꿈과 재능, 그리고 현실의 무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누구에게나 ,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내버린 사람들에게조차도 공감을 자아낸다. 

아마도 청춘을 꽃이라 칭함은 그들이 이제 막 삶과 사랑의 세상에 움터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꽃인 진 뒤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이 꽃처럼 피어올라 버겁게 잡았던 꿈과 사랑에 대한 화두도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들이 짊어진 버거운 삶의 무게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온기에 응원을 하게 되는 듯하다. 

by meditator 2020. 9. 16.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