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한 '살아있는 시체' 좀비는 이제 우리 문화 콘텐츠에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래로 서구 공포 영화에서 활약하던 좀비는 연상호 감독의 <부상행>을 계기로 우리 영화에서도 더는 좀비가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최근 개봉한 <# 살아있다> 역시 좀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는 그저 '좀비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래서 어느 영화에 등장하던지 좀비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살아있는 인간을 탐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2013년 개봉한 <웜 바디스>의 경우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좀비가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심장이 다시 뛰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좀비를 변화시킨 것이다. 9월 21일 kbs2 tv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좀비 탐정> 역시 기존의 떼로 몰려다니던 좀비가 아닌 역설적이게도 '주체적'인 좀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인간 세상에 던져진 좀비
쓰레기 더미에서 눈을 뜬 좀비(최진혁 분), 물론 그도 처음엔 자신이 좀비인 줄 몰랐다. 하지만 혈액없는 피부에, 퀭한 두 눈, 으~ 하는 신음 소리 말고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  도무지 속력을 낼줄 모르는 발걸음, 그리고 배가 고파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그의 곁에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는 동물들을 보며 자신이 좀비가 된 줄 비로소 실감한다. 

'도대체 왜 내가 좀비가 된 것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인간 세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 처음 공선지(박주현 분)를 만났을 때야 선지의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 받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상태로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좀비로 몰려 다시 한번 죽음을 맞기 십상인 처지, '좀비'인 자신의 모습을 '세탁'하기 위해 강훈에 돌입한다. 

젓가락을 물고 발음을 연습하고, 폐허가 된 마을 회관에서 런닝 머신을 하고, 젓가락질 연습을 하며 말초 근육을 키우던 좀비는 우연히 산 속에서 죽음을 당한 탐정 김무영의 옷을 입고 마을에 나타난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간 드라마에서 인간을 괴롭히던 '객체'였던 좀비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좀비의 관점에서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보여주며, 그간 '괴물'이었던 좀비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역시 얼마나 '울타리 밖의 존재'로서 고통을 당했을 것인가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저 주체와 객체의 입장을 바꾸었을 뿐인데 드라마는 그 자체로 '서사'를 이루고 '웃음'을 자아낸다. 

여전히 좀비의 본능에 따라 '인간'만 보면 그 '향긋한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고 입을 아~ 벌리고 마는 좀비, 하지만 인간으로 거듭난 의지의 좀비답게 참을 수 없는 식욕을 삼키며 혈색없는 톤업시키는 비비 크림을 바르고 인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아이의 코 묻은 돈이라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가 된다. 심지어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돈을 벌게 된 계기가 음식점 오픈 이벤트에서 '좀비' 춤을 선보이는 상황은 '좀비' 문화 와 좀비란 실체의 간극을 대비시키며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그 존재 자체로 '공포'인 좀비가 자신의 본 모습을 '세탁'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고군분투, 하지만 코 묻은 돈 500원조차 제대로 벌지 못해 공선지에게 헬맷을 맞고 길바닥에 길게 뻗은 처지에 이르면 '생활형' 좀비의 고군분투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좀비 탐정>의 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건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 수업>을 통해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박주현이 분한 공선지이다. <추적 70분>의 작가로 '산타 유괴 사건'에 대한 깊은 자괴감을 가지고 있던 공선지는 이와 관련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안그래도 불의만 보면 참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은 매번 그녀를 경찰서 피의자 석에 앉히고, 직장은 다니지만 돈은 벌지 못해 언니에게 매를 벌고있는 처지, 거기에 이제 2편에서 그가 진심을 다해 어렵게 섭외한 목격자마저 괴한에게 피습을 당한다. 이 공선지가 앞으로 좀비 탐정 김무영의 파트너가 되어 풀어가는 사건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이미 wave를 통해 선공개된 1,2 회를 통해 <좀비 탐정>은 김무영으로 돌아온 좀비의 시끌벅적 인간 세상 입문기를 코믹하게 펼쳐낸다. 그런 그가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지나치게 안가리는 공선지(박주현 분)와 만나 본의 아니게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죽은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 신선한 캐릭터 좀비로 인해 풀어지는 이야기는 코믹을 넘어 흥미진진한 스릴러로서의 볼 거리로서도 기대를 자아낸다. 

by meditator 2020. 9. 22.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