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같은 사람이어라. 보고 또 싶은 가인이어라.' 이건 tv tv 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 트롯>의 우승자 송가인의 2019년 정규 앨범에 실린 곡이다. 송가인의 이름을 절묘하게 살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담은 이 곡은 또한 이제 송가인이 태어난 진도 고향집을 찾아갈 정도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송가인바라기'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트롯'이 대세다. 2019년 <미스 트롯>에 이어, 2020년 <미스터 트롯>까지 tv조선의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은 18.114%에서 35.711%까지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런 종편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은 역으로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앞다투어 출연했던 가수들을 초빙하고, 당대 최고의 개그맨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를 통해 트롯 가수 유산슬로 데뷔하는가 하면, <뽕숭아 학당>, <나는 트롯 가수다>, <트롯신이 떴다> 등 트롯 가수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트롯 붐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시작이자 중심에 <미스 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이 있다. sbs스페셜은 송가인을 중심으로 2020을 달구고 있는 트롯 열풍에 대해 알아본다.
송가인과 함께 불붙은 트롯 열풍 네이버에서 코로나 사태의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비대면 라이브 콘서트에 송가인이 출연하자, 전국이 들썩인다. 서울, 부산, 광주, 경북 전국에서 송가인의 팬들이 송가인팬클럽을 상징하는 핑크빛 옷과 모자를 쓰고 모여 축구장에서나 등장할 법한 대형 현수막을 들고 응원을 한다.
어린 아이들도 송가인이 불렀던 '용두산아~'를 자연스럽게 읊조리는 현상, 트롯 관련 검색량이 이전 연도에 비해 10배나 늘었다.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과 스타 탄생 송가인이 대중들의 관심을 폭발시킨 것이다. 나이든 세대만 즐기던 '흘러간 옛노래'라는 인식이 변했다. 소비 세대가 달라졌다.
송가인, 유산슬 등의 곡에 참여한 김지환 등 트롯 작곡가들도 더불어 바빠졌다. 트롯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른 장르 뮤지션들이 트롯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2019년 신곡 중 50% 이상이 트롯 관련 곡이다. 음원 소비량은 송가인의 등장과 함께 108%까지 늘어났다. 관객수도 송가인의 등장 이전보다 3배나 증가했다.
지역 축제나 전전하던 트롯이 이제는 방송가를 점령했다. 송가인이 라디오에 출연하던 날 중년의 팬들은 송가인 얼굴을 한번 보기 위해 몇 시간 째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보는 수동적인 팬질에서 머무르지 않느다. 팬클럽들이 모여 아이돌 팬클럽처럼 스트리밍 활용법을 배우고 연습을 한다. 핸드폰을 서너 개씩 돌리며 송가인 노래 음원 순위 상승에 적극 참여한다. '찍덕'도 등장한다. 70대 찍덕인 윤정현씨, 최고령 찍덕이지만 그의 사진 구독자수만 3만 7천이다. 찍덕뿐이랴. 아이돌 팬덤의 최고 난이도라 할 수 있는 팬픽도 등장한다. 한동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생선 장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수 십편의 에피가 그의 손끝에서 나온다. 송가인 자신이 무서울 정도라고 하는 팬까페 회원 수가 만 단위로 증가, 6만에 달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무명이었던 송가인은 지방의 작은 무대를 전전했다. 한 곡에 3만원을 받고 녹음을 하는 처지였다. 판소리를 하다 트롯으로 전향했던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냐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있을 거야 라며 자신을 추스렸던 송가인은 여전히 스타가 어색하다. 하지만 그녀의 고향 진도에는 여기저기 그녀의 얼굴을 담은 현수막과 전신 입간판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들로 마을 어귀는 주차장이 되어있고 부모님들은 몰려드는 팬들에게 음료수라도 전하랴 바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중이다.
왜 지금 다시 '트롯'일까? 송가인이라서? 임영웅이라서? 1935년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래 트롯은 가요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서울대 최우정 교수는 최근 다시 붐을 이루고 있는 트롯에 대해 이 시대가 트롯을 불러냈다고 진단한다.
트롯을 이루는 대표적 음계 5개, 그건 판소리 등에서 유래한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익숙한 음계이다. 하지만 최근의 트롯은 이런 전통저인 정서에 경쾌한 리듬을 실어그 차이와 모순에서 빚어내는 새로운 정서의 음악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트롯이 새로운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늘 트롯은 고생이 심했던 시대 세대 불문하고 공감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 1950년대 전쟁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1960~70년대 고향을 떠나온 노동자들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고도 성장 시대 속 애환을 함게 했듯이 이제 2020년 어려운 경제 환경에 놓인 한국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트롯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는 것이다.
트롯, 치유하다 정말 트롯은 치유일까? 광주에 사는 송가인 팬클럽 회원인 박형미씨는 하루가 행복하다. 고생고생하며 아이들을 키웠지만 그 아이들이 다 자라 외지로 떠나자 맘이 텅 비어 버렸다. 그 허전한 마음에 송가인이 들어왔다. 인생의 2막을 열어 준 선물같다고 박씨는 말한다.
송가인 콘서트에 앞서 군중을 독려하는 핑크 가인 댄스팀, 그 중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애경 씨는 경북 포항에서 우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송가인을 알기 전에는 일 밖에 모르던 분이라고 직원들이 전하는 애경 씨, 치열하고도 전쟁같은 삶을 살아냈지만, 그만큼 우울감이 심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송가인의 노래를 듣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인생이 바뀌었다. 매일 송가인이 선전하는 물건을 하나씩 사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애경씨,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며 그 기운을 받고 시작하는 하루가 이제는 행복하다.
나이를 불문하고 송가인에게 빠진 팬들은 입을 모아 그녀가 인생의 활력이라고 말한다. 마치 소화제를 먹고 막힌 속이 확 뚫리듯 송가인의 노래가 답답했던 자신의 삶을 확 트여주었다고 말한다. 최우정 교수는 바로 이렇게 여러 사람이 같은 정서를 공감할 수 있는 것이 트롯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집단적 치유의 힘이라고.
sbs스페셜은 우리 시대 신데렐라로 등극한 송가인을 통해 시대의 치유가 된 트롯을 분석한다. 덕질, 팬질하면 10대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가 조금 지나자, 2030 그리고 40까지 보다 경제력을 소유한 '어른'들의 새로운 '놀이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2019년 <미스 트롯>에 이어 2020년 <미스터 트롯>까지 새로이 등장한 트롯 열풍은 중장년을 문화의 최전선으로 이끌어 낸다. 삶의 등반을 마친 이들이 '트롯'과 함께 문화의 주역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 더 이상 흘러간 옛노래가 아닌 트롯은 당대 최고의 트렌드가 되었다. 가사는 애절하지만 더 이상 그 애절함에 목을 놓아 우는 대신 함께 들썩이며 흔든다. 시대는 고달프지만 그 고달픔에 지지않겠다는 의지의 움직임이다.
어느덧 5.18 민주화 운동이 40주년을 맞이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시간, 금남로를 물들였던 광주 시민들의 고귀한 피는 역사 속에 그 이름값을 제대로 얻고 있을까? mbc는 5월 18일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젊은 감독 강상우가 추적한 '김군'이라는 시민군의 행방을 다룬 다큐 <김군>을 방영했다.
2019년 만들어 진 <김군>은 그 해 부산 영화 평론가 협회상 신인 감독상을 비롯, 2020년 들꽃 영화제 다큐 부문 감독상을 수상하고 파리 한국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김군>, 왜 평단은 시민군 김군의 행방에 촛점을 맞춘 젊은 감독의 영화에 박수를 보냈을까? 그 이유는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 우리 역사의 자리 매김 때문이다.
김군이 '광수'라고? 김군이 광수라니? 얼굴이 전면에 드러난 몇 안되는 시민군의 사진 가운데 김군이라고 쓴 띠를 두른 한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이 광수란 말인가? 아니다. 여기서 '광수'는 광주에 온 북한 사람을 가르키는 통칭이다. 광주에 북한 사람이라니?
전 육군대령 출신의 극우 인사 지만원 씨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일군의 노령층 지지자들 앞에서 광주에 시민군은 없었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일으킨 폭동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군의 폭동에 광주 시민들이 부역을 했다는 것이다.
지만원 씨는 이른바 범죄 증명 과정에서 지문 분석 등에 쓰는 기하학적 분석 방법에 따라 5.18 광주 시민들 가운데서 이른바 '광수' 561명을 찾아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복면을 주로 사용했으며, 특히 2010년 북한 노동자 회관에서 벌어진 기념식 앞줄에 앉은 세 사람 중 한 사람, 김창식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김군이라는 것이다.
진짜 김군을 찾아서 2014년 지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런 주장을 체계적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이에 5.18유족 모임은 지씨를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지씨가 '광수'의 대표적 근거로 내세운 김군이라는 실제 인물을 찾기에 나섰다.
25차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조사 특별 위원회에 출석한 김영택 씨는 20여사단 등이 광주를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의 부대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라며 반문한다.
여전히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아픈 상처를 치료받는 양동남 씨, 당시 19살이었떤 양동남씨는 지만원씨에 의해 36 광주라 명명된 장본인이다. 양동남 씨는 북한군이 600 명 씩이나 광주에 왔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국방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겨우 19살이었던 시절, 어떤 민주화 의식이 아니라 사진 속에 보여진 리어카에 실린 2구의 시신, 그렇게 일반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민주화 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라 밝힌다.
5월 15일 신군부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 계엄이 펼쳐진 상황에서 5.18일 광주 금남로에 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피로 물들여진 금남로, 그 현장으로 보고서 광주 시민들은 떨쳐 일어났다. 'M16'으로 시민을 쏘는데 돌팔매질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시민들, 그 중에서도 군대를 다녀와 총기를 다룰 줄 알았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화순, 나주, 함평을 돌며 칼빈, M1 소총을 털어와 무기를 들었다. 총기까지 든 상황 얼굴이 알려지면 훗날 처벌이 두려워 복면과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고 당시 19살이던 32 광수 정희문씨는 당시를 떠올린다. 그런데 북한군 특수군이라니 !
그렇다면 그렇게 스스로 복면과 마스크를 쓴 시민군들 사이에서 얼굴이 드러난 김군 사진들은 어떻게 찍혔을까? 그 사진을 찍은 당사자는 당시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떤 이창성 씨다. 계엄군과 시민군이 맞닦뜨리는 상황을 담을 수 없었던 이 기자는 외곽에 나가 시민군에게 사정을 해서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몇 장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면에 얼굴이 드러난 김군은 누구일까? 당시 만삭으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제공했던 주옥 씨는 김군이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막걸리 왕대포 시음장에 자주 들르던 사람인 듯 하다고 증언한다.
당시 원지교 다리 밑에 모여 살던 7, 8명의 젊은이 무리 중 하나, 그들은 고아들로 천막을 치고 살며 넝마를 주어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안그래도 이렇게 넝마주의를 하던 젊은이들이 시민군에 적극 활동했지만, 넝마를 주워 산다는 '직업' 자체가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아 신분이 드러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기에그들에 대한 '포상'조차도 쉽지 않아 배제되거나 소외되기가 십상이라 김군에 대한 추적은 더욱 쉽지 않다.
당시 23살이었던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당시의 청년은 울분과 열정의 마음에서 떨쳐있어나 총을 든 상황에서 한가롭게 '어디 살아요?'를 물을 수 있었겠냐고, '이름이 뭐예요?'라고 할 수 있었겠냐고 씁쓸하게 말한다. 나가면 시체로 돌아오는 상황, 사람죽는 시체 냄새가 진동해서 밥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 매일을 보냈던 그 시절의 동지였지만 그들은 서로 누군지 모른다.
김군이 탑승했던 트럭은 도청에 무기를 반납하러 가는 상황이었다. 김군이 반납한 걸로 추정된 캐러번 50, 총기를 반납한 5월 23일 이후 김군은 더 이상 당시의 사진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진상 조사 특별 위원회에 나와 증언을 한 최진수 씨는 자신이 연행되었던 장소에서 김군이 사실되었다고 증언한다. 5월 24일 계엄군간 오인 사격으로 군인이 사망하자 그 보복으로 무차별 총살이 벌어졌다. 최진수 씨는 김군이 그 희생자라 밝힌다. 툇마루에서 자신에 앞서 발을 먼저 내딛었다는 이유만으로 관자놀이에 총을 쏜 군인들, '그 눈을 봤습니다'라고 최진수 씨는 38년 동안 묻혀진 한을 비로소 꺼내 놓는다.
끝나지 않는 상흔 40년은 매우 긴 시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억대의 벌금과 실형을 살고 나온 지만원 씨는 2020년에도 여전히 광주는 폭동이라 주장 중이다.
강상우 감독이 만난 그 시절의 시민군들, 이제 와 사진 속 사람을 찾는 거, 그래서 김군이 진짜 김군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거 이거야 말로 역사에 대한 '역행' 아니냐고 묻는다. 이제는 그 시체 썩던 냄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다시 그 기억을 소환하면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하는 역사의 주역은 가슴이 아프다. 안받아들여도 좋으니 왜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조적으로 덧붙인다.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어렵게 살다 힘들게 내린 결단이었다고 말하는 이장갑 씨, 하지만 훗날 체포되어 김일성이 무슨 지령을 내렸냐, 김대중에게 얼마를 받았냐며 고문당했던 기억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이제 기억조차도 흐릿하다고 안타깝게 말한다.
당시 20살이었던 최영철 씨는 이제 택시 운전을 한다. 다른 곳은 다 괜찮지만 체포된 곳을 지날 때면 여전히 새삼스럽고 눈물이 글썽거려지는 걸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2년 선고를 받은 김용균 씨는 당시 도청에 들어간 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모두 못하게 되니 그 이후의 삶이 후회로 남는다고 고개를 떨군다. 당시 21살인던 박인수 씨는 여전히 다 빼내지 못한 총알을 원래 아픈가 보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오월 얘기는 그만하자는 시민군들, 인생을 송두리채 바친 사람들은 여전히 약을 안먹으면 잠을 잘 수 없다. 이발소에서 이발사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혼자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니, 이 얼토당토 않은 주장으로 다시 한번 그들을, 그들이 살아남아서 미안하다고 삼키는 죽은 동료들을 여전히 오늘의 일부 인사와 세력들이 음해하고 있다. 그건 '보수'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떨쳐일어난 그들에 대해 존중과 존경은 못할 망정, 존재한 역사를 거스르려는 그 '망언'과 '망발'은 이미 저만치 굴러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향한 돌팔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돌팔매에 자신의 생을 바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는다. 부디 역사에 용기를 낸 사람들에 대한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시대가, 세대가 될 수 있기를. 오죽 답답했으면 젊은 감독이 김군 찾기에 나섰을까. 여전히 두 손으로 하늘 가리는 이 '노망'든 세대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오월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ebs 다큐 프라임은 아시아의 가족들에 주목한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어느덧 딸들을 결혼시킬 즈음에 이르른 아버지들,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 살아온 이 아버지들의 현재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아버지들에게 딸들을 결혼시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결혼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서서 사위가 될 사람에게 까지 함께 발 맞추어 걷는 전례도 사라져간다. 딸들은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가 아니라, 동등한 동반자로서 남편과 함께 식장을 들어선다. 다큐는 전통적 의미의 결혼에서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선 아버지의 심정에 주목한다. 관습성을 넘어, 딸을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마치 자신이 지나온 시간 위를 걷는 듯한 그 '아버지'의 소회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베트남- 캄보디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들 베트남의 아버지 반뚜안 씨, 한 골목에서 30년을 살아온 그에게 딸은 어떤 의미일까? 매일 학교에 딸을 데려다 주던 아버지, 어느 비오는 날 오토바이가 그만 빗물에 미끄러져 웅덩이에 빠졌을 때 혹시나 딸이 다쳤을까 안아올렸던 그 기억이 여전하듯, 딸은 그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버지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그러나 이제 결혼을 앞두고 설레이며 빛나는 딸들처럼 청춘이 모두 아름답게 빛나는 건 안니다. 아버지 반뚜안 씨에게 청춘을 상징하는 옷은 군복이다. 캄보디아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1977년 벌어진 전쟁의 기억은 참혹하다. 특히 1976에 입대했던 동기들은, 아직 군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전쟁에 참전하게 되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돌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낳은 딸, 그래서 더 애틋했다. 그런 딸을 그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때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고 아버지는 이제야 말한다. 화가 나도 적을 다루듯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전쟁의 기억은 오래도록 아버지의 상흔이 되었다.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아버지는 어떨까? 캄보디아는 11월이 결혼 시즌의 시작이다. 하지만 크레브 씨의 막내 딸 니타는 돈을 더 모아 식을 올리겠다며 조상들의 영전에 인사만 드리고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며 살아왔다는 아버지 크레브 씨, 하지만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 왔음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농담 한번, 장난 한번을 치지 못한다. 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역시 아버지가 경험했던 참혹한 기억에서 부터 비롯된다.
아버지는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꿈을 꾸면 끔찍했던 기억 속으로 소환되곤 하신다. 1975년 크메르 루주에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던 아버지는 3년 넘게 군대에게 보냈다. 베트남과의 전쟁 기간, 전쟁의 공포와 함께 먹을 것이 없는 '기아'의 고통이 소년 크레브를 괴롭혔다. 농민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며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크메르 루즈는 배고프다고 해도 혹은 요구되는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해도 투옥을 당했고, 배고픔을 못이겨 혹 먹을 것이라도 훔치거나 하면 죽임을 당할 정도로 혹독한 군 기강을 유지했다. 그 죽음과 공포의 시간 속에서 아버지는 오로지 살아남는 법만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참혹한 기억을 자식들은 모르길 바랬다.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을 아낀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자식을 위해 달려온 성공 인생 한국의 김호영 씨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2시에 끝나고 집에 돌아와 5시에 출근을 하기도 하고, 건설 현장을 따라 지방을 떠돌며 한 달에 한번 집에 들리며 30여년을 타지를 떠돌았다. 그렇게 돈을 버느라 아빠 노릇도 못하는 사이 딸 소연이는 훌쩍 자라 어느 덧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쇼호스트를 준비하며 결혼을 앞둔 딸 소연씨, 결혼은 소연씨가 하는데 이제 노후의 부모님이 더 설레여하신다. 소연 씨가 결혼할 집인데 가구 배치를 놓고 부모님이 설왕설래하시는 상황, 한국적 결혼의 전형적인 상황이다. 내 결혼이니 내가 알아서 한다 하니 섭섭해하신다. 농담 반, 진담 반, 엄마 아빠 집 같다는 딸, 그래도 행복해 보이시니 참는다는 요즘 결혼의 풍속도다.
인도는 풍속은 우리보다 한 술 더 든다. 연애 결혼을 바라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이제 결혼을 앞둔 카비타는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최선을 선택을 해주시리라 믿으며 중매 결혼을 선택했다. 아버지 라메시는 교육, 직업, 집안을 따져 알맞은 남자를 골랐다.
그렇게 딸에게 맞는 조건의 남자를 골라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결국 아버지의 경제력이다. 일자리가 없었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수도 파이프 사업으로 자수성하가한 아버지 라메시. 그는 자신의 여력이 되는 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기 위해 애쓴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자리이다. 25년전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왔을 때 태어난 딸, 자식이야말로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몽골의 바토그토는 대가족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이어받아 일가를 이루었다. 사회주의 체제 시절 몽골은 집단 목축을 하여 개인 소유의 가축이 없었지만, 1992년 민주주의 이후 자기 소유의 가축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열심히 일했던 바토그토네 집안은 이제 300 마리의 양떼를 지니게 되었다.
그 열심히 일한 노력의 결과로 네 딸을 모두 도시의 대학을 보냈다. 유목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둘째 딸이 도시에서 대학을 나오고서도 이웃 유목민 아들과 손주를 낳아 돌아오니 기쁘다.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과도 같다. 오죽하면 딸은 이웃집안으로 시집을 가도 손주는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할까.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몽골, 그리고 한국, 서로 다른 아시아의 아버지들이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진 자리 궂은 자리 마다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이 살아왔던 원천은 나라는 달랐지만 결국 가정이었다.
정재승 교수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ebs 다큐 프라임 - 뇌로 보는 인간>은 '돈'으로 부터 시작하여, 폭력, 예술, 섹스를 거쳐, 5부 종교에 이르렀다. 정재승 교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5부 종교 편이 가장 논란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데 주저함이 없는 종교, 그리고 그 종교의 수장인 신에 대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한계적 인간이 만들어 낸 신 그 시작은 인도 갠지스 강가이다. 하루 종일 시신이 불타오르는 이 곳, 사람들은 이곳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시신을 화장한 후 갠지스 강에 그 유골의 가루를 뿌리면 그의 죄가 사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버린 영혼이 다른 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도인들의 생각은 육체는 헛되지만 존재는 영원하다는 힌두교로 부터 비롯된다. 종교를 가진, 신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여행의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죽음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부터 '종교'는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물론 죽은 뒤,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명료한 대답도 있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사람들이 죽은 뒤 천국, 극락세계, 환생 등으로 존재의 영생을 믿었다.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을까? 과학적으로 접근해 본다. 1987년 죽은 멜린다의 영혼이 남아있는 집으로 유명한 곳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는 창밖에 어른거리는 멜린다의 환영이 사실은 방문객 자동차에 비친 손전등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처럼, 초자연적인 많은 것들이 상상력이나 뇌가 작동한 결과물이라는 주장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걸까? 임사 체험을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색과 빛이 화려하게 펼쳐진 천국을 봤다거나, 터널을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서로 비슷하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과학적 이유를 든다. 자연법칙에 따른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상대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불가지론'을 '초월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초월적인 존재를 믿는 영역이 뇌에 '실재'할까? 이를 위해 마이클 퍼싱어 교수가 개발한 뇌의 측두엽을 자극하는 장치를 활용한다. 정재승 교수 본인을 비롯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측두엽이 자극을 받자, 붕뜬 상태에서 옆에 누가 다가와 속삭이는 듯했다거나,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등 '접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에 따라 학자들은 신의 존재가 뇌가 자극을 받아 생기는 생리적 현상이라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신을 느끼는 부위 측두엽에 대한 이견도 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다양한 종교 수행자 4~500백 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측두엽 자체보다는 마치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할 때 뇌의 여러 부분이 연결되듯이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반론을 편다. 즉 특정 부분의 자극이 아니라 일상 생활과도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총체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의 모습은? 왜 종교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재승 교수는 생존 본능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예측한다. 수렵 채질 시절의 인간은 물가에 놓인 어린 아이와도 같은 신세였다. 그래서 인간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연한 작은 사건에서도 원인을 추측해 내는 독특한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바구니 앞에서 피리를 부는 노인을 본 소년이 바구니 속에 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도망을 치듯, 인간은 설사 그 판단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의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겁쟁이 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겁쟁이 뇌'는 자신들이 세상에 대해 가진 의문을 풀어줄 존재가 필요했고, 여기서 '신'을 창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양 과학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여기에 인간의 패턴성을 더한다. 의미 없는 무늬에서 어떤 형상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인간 뇌의 능력은 불규칙한 패턴을 가진 자연, 그 뒤에 의도를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를 유추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적, 그리고 합리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 뇌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염병, 재난, 질병 등 인류에게 닥친 불가항력적인 제반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행위자'로써 신을 창조했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로써 그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어떤 모습일까? 인지 과학자 구형찬 교수와 종교학자 심형준 교수는 2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6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이 어떻게 신을 기억하는가에 대해 실험한다.
신의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전지전능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조물주,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은 뜻밖에도 이곳에도 저곳에도 임하시는 능력자라기 보다는 마치 사람처럼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시며, 때로는 화를 내시며,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감정적'인 존재다. 들려준 이야기 속의 공백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으로 채워넣는다. 즉, 사람들은 마치 사람처럼 '신'을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힌두교 칼리 여신의 팔이 여러 개인 게 하나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사람들의 자의적 해석처럼, 사람들은 신을 인간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냈다.
과학이 해주지 못하는 위로 그렇다면 만들어진 신은 인간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까? 가장 극단적인 종교적인 의례, 신을 경배키 위해 온 몸에 바늘을 꼿는 모리셔스의 의식을 통해 알아본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그 고통스러운 종교 의례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은 심박수와 호흡이 동일하게 '고양'되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종교 의례 700도가 넘는 나무 장작의 재 위를 다른 사람을 업고 뛰는 의식, 놀랍게도 이 의식에서 뛰는 사람이나, 업히는 사람이나, 심지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의 심박수가 같았다고 한다. 즉, 이러한 집단적 헌신을 통해 사람들은 동일한 심박수, 즉 일체감의 경험을 얻는다. 무려 2억명이 5ㅇ일에 걸쳐 알라하바드로 신을 찾아 떠나는 힌두교 축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희열'도 다르지 않다.
종교, 그리고 신은 위안과 소속감을 준다. 과학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신은, 종교는 인간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말한다. 설사, 지금의 신이, 혹은 종교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또 다른 '믿음'의 대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오랫동안 배타적이고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던 페사후 아이젠은 그 극단주의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천 명의 가족이 있는 것같은 든든한 소속감을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덧붙인다, 그 소속감은 규율을 잘 따를 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예술과 문화 등 또 다른 공통 분모를 만들어 지는 현대 사회의 다른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종교는 삶의 지표이다. 아니다. 유용하지 않다. 믿음과 논거는 평행선을 이룬다. 인간이 신을 만든 과학적 논거가 진행되는 한편에서 '내림굿'을 받고 이제 막 새롭게 신을 받들게 된 애기 무당의 서사가 펼쳐진다. 몸도 너무 아프고,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던 그녀는 살고 싶어서 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고, 작두를 오르던 그녀는 내림굿이 끝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이제야 속이 편해졌다며 선배 무당에게 기댄다.
여전히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한편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의지가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학의 세계가 도래하고, 학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종교'의 종말을 점쳤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을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세상은 뜻밖에도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위태로워진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 모든 불확실성을 잠재워 줄 절대자를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았다.
다큐에서 보여준 '뇌의 현상'으로서, 진화의 결과물로서 '종교'는 명확했다. 하지만, 명확한들, 그 명확함이 우리에게 어떤 '앎'을 줄지언정, 어떤 '위로'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가슴 떨리는 일체감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과학은 결국 떨리는 가슴의 종교 앞에서 그저 한낱 명제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한계적 인간이 탄생시킨 진화의 결과물, 아마도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래, 내내 과학과 평행선을 유지하며 갈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의 불합리한 혼재,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신천지로 인한 대규모 감염은 전사회적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 많은 사람들이 1인 신격화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어 법과 질서가 만들어 놓은 테두리를 넘어 '일탈적 행동' 집단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은 과연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천지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현상은 기이하기 까지 했다.
2020년 3월 1일 가평의 한 연수원 앞,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려보내라'는 문구로 온 몸을 도배한 어머니들이 절규하고 있다. 아이들은 '진짜 신앙'을 찾았다며 집을 나갔다.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강제로 '개종' 되어 끌려갔다며 아이들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들을 내놓으라 울부짖는다. 과연 무엇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면서 까지 종교에 헌신하도록 만든 것일까?
사이비 종교를 연구해온 전문가는 이렇게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과정이 그루밍 성폭력의 6가지 과정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접근한다 그 첫 번 째는 바로 대상의 선정이다. 한때 '신천지'의 일원이었던 남성이 자신의 경험을 보여준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발표를 하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라며 상냥하게 접근한다. 결코 '종교'를 들먹이지 않는다. 인턴 기자인데 인터뷰 좀 해주시겠냐고 하고, 서울대 심리학교 대학원생인데 논문 쓰는 거 좀 도와주시겠냐고도 하고, ebs를 들먹이기도 한다. 절대 종교를 입에 담지 않고 친절하고 상냥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시골에서 갓 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는 서울에 올라오니 ebs 같은 데서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며 선뜻 응했던 게 신천지로 가는 첫 걸음이었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고, 하지만 살아가야 할 방향이 아득한 젊은이들에게 '신천지'는 하느님이 다 정해주시니 힘든 거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며 유혹한다. 취업도 힘들고 앞날이 막막한데, 한 번에 그 모든 걸 정리해 주겠다니 로또 당첨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경쟁에 지친 세대에게 종교는 새로운 목적이자 대안인 듯 다가온다. 그리고 거기서 너는 이제 리셋되어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경쟁의 선두에 설 것이라 달콤하게 속삭인다. 14만 3천명의 지배 계급이 될 것이라는 말에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에 익숙한 세대는 선뜻 발을 들여놓는다.
신뢰를 얻다 이제 전도사가 되어 이단에 빠진 사람들 상담에 힘쓰는 김충일 씨, 그는 지난 6년 동안 신천지에 인생을 바쳤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집안, 그런데 그를 신천지로 이끈 건 그의 형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전도 1순위라는 포교 방식에 그가 넘어간 것이다.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종교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청년 시절, 논리적으로 고민하던 것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더구나 수능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해 좌절감에 시달리던 그에게 신천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누리게 해주겠다는 설득은 먹혔다.자라면서 엄한 아버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충일씨, 누군가 나를 믿어줬다는 그 '신뢰'의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신뢰를 얻는다. 주부들에게 아이들을 봐주면서 재밌는 공부를 하자면서 접근한다. 천국의 , 삶의 방향을 열어준다며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도록 해준다. 재해 영상을 보여주며 종말에 대비하라며 준비물 리스트를 제시하고, 그 준비물을 마련하기 위해 주부들은 보험을 깼다. 지상의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단다. 하지만, 2000년이 열리고, 그간 종교에서 말했던 것과 달리 너무도 평온한 세상, 사이비는 기도의 힘이라고 했지만, 배신감을 느끼게 되며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고립시키다 연우 씨의 딸은 5년전 집을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다 칭찬했을 정도로 착했던 딸,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들도 돌보던 듬직한 맏딸은 일하던 곳에서 만난 28살 언니가 잘해준다고 하더니, 그 언니를 따라 집을 나갔다. 최미숙 씨의 딸은 7년 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신천지 교회랑 주거 침입의 법적 공방까지 하며 전국 방방곡곡 1인 시위를 하며 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들. 그 어머니 앞에 나타난 딸은 예전의 그 딸이 아니었다. 가출이 아니라 신앙이라며 외려 어머니를 설득하는 딸. 그래도 안먹히자 자신의 신변보호를 신천지에 위임하고 만다. 이런 신변 보호 요청서는 조직적으로 행해진다. 조직적으로 가족 관계를 끊고 고립시켜 더욱 사이비의 상명 하복 관계에 빠져들도록 한다.
이렇게 사이비는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그 사람을 고립 시킨다. 고립된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세뇌를 시키는 성경 공부 모임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고립을 강화한다.
협박하고 통제한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신천지는 조직원을 확보하면 자신의 단계가 상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불법적 피라미드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수갑, 테이프 등으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 개종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개종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한다.
그런데 아무나 다 신천지가 될 수 있는 것 같지만, 마구잡이로 고르지 않는다. 엄격한 정식 입교 절차가 따른다. 신참자에 대한 신앙 관리 카드가 작성되는데, 거기엔 경제적 형편이 등급에 따라 나뉜다. 어느 이상 점수여야 입교할 수 있다. 대규모의 시험, 그 시험을 통해 신천지 정식 교인이 되면, 그 자체로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고립된 생활, 반복된 학습을 통해 일상 생활보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사이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과 경쟁을 시켜 통제한다. 교주가 등장하여 14만 4천 명을 들먹이며 경쟁을 유도한다. 그 보상을 독점하기 위해 달리도록 만든다. 교리에 세뇌되고 중독되는 과정의 연속, 결국 사이비는 진리가 믿지만, 종교가 만든 터널을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는 단언한다.
자신의 선택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고립되어 반복적으로 학습되어 세뇌되고 보니 당연히 제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사이비 교주로 성스캔들을 일으켜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정명석 교주, 그 종교에서 핵심 인물로 활약했던 김경천 씨는, 죽고 싶었다고 토로한다. 성격을 2000번 읽었다던 정명석, 그 사람이 자신에게 전해준 진실에 오랫동안 교주의 부도덕한 삶을 눈감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개종을 '호구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경천 씨,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최고로 복받은 자에서 하루 아침에 바닥을 치는 선택, 그 30년의 허송세월을 스스로 부인하는 게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를 쫓아 3억 가량의 재산을 처분하여 낙원 피지로 가족과 함께 떠났던 김영석 씨는 2년 만에 홀로 돌아와 고향에 머문다. 귀신을 쫓는다며 '타작 마당'을 벌여 신도를 폭행하던 교주는 특수 폭행, 감금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내와 아들은 그곳에 있다. 꿈속에서도 여전히 나타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영석 씨, 누가 극복할 수 있겠어요라고 탄식한다. 지워지지 않을 거라며 후회한다.
주기적이다 싶을 만큼 구원이란 명목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 종교, 그럼에도 매번 젊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 인생을 그곳에 건다. 세상이 불확실할 수록, 사람들은 어두운 밤의 등불처럼 종교를 쫓는다. 개별적인 신앙의 문제나, 교리의 문제, 혹은 실존의 문제라며 손가락질 하기 이전에 하나의 병리적 사회 현상으로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었지만 종교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다 심도깊게 접근하고자 한 sbs스페셜의 시도는 철지난 얘기라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bs 다큐 프라임은 장장 2년에 걸쳐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와 함께 '뇌'를 통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다큐를 마련했다. 돈, 폭력, 예술, 섹스, 종교의 관점에서 바라본 뇌, 3월 30일, 그 첫 회를 연 건 바로 '돈'이다.
다큐를 연 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교수가 고안해낸 '머니 게임'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중 무작위로 뽑힌 두 사람들, 그들에게 정재승 교수는 10만원을 주고 게임을 제안한다.
10만원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게임이다. 한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다른 사람과 어떤 비율로 나누게 하는 게임이다. 상대방이 거부를 할 경우 둘 다 10만원을 가질 수 없을 때 나누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 5;5로 공평하게 나눈다. 하지만, 그 거부권이 없어졌을 때 나누는 사람의 태도는 돌변한다. 대부분 자신이 많은 비율을 가지겠다고 하고, 심지어 다 가지겠다고 까지 한다. 이른바 '독재자 게임'이라 칭해지는 이 게임에서 다니엘 키네만 교수의 표본 집단 역시 평균 72%를 자신의 몫으로 챙기는 등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에 서투른 인류 자본주의 사회, 돈을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 돈을 거저 얻을 수 있다면 남의 발바닥에 뽀뽀쯤이야, 심지어 똥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20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돈이 만들어 진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인류는 20만년 전 수렵 채집 인류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문명의 산물인 '돈'을 마치 수렵 채집 인류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돈을 사냥감으로 여긴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사냥감'을 저장할 수 없었기에 눈에 사냥감이 보일 때마다 사냥을 했었다. 돈은 저장할 수도 있고, 스스로 불어나지만, 여전히 인류는 사냥하던 그 시절의 '마인드'로 '만족'을 모른다. 그래서 브레이크없는 자동차처럼 계속 돈을 '사냥'하고자 한다.
결국 인류를 돈을 만들어 냈지만, 돈을 사용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끊임없이 부작용을 만든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가상 화폐 등 돈의 복잡성은 증가되는 추세인데, 인류는 그 '복잡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세일하는 기간이 되면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세일 전 가격에 비해 많은 할인을 했다는 이유로 구매를 하듯(앵커링 효과), 뇌에 닻을 내린 어떤 무의미한 요소에 낚여 돈을 향해 달린다.
부자, 그것이 문제로소이다. 문제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돈을 향해 달려드는데, 모두가 돈을 잘 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아우토반' 경주에서 앞선 자들을 부자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더욱 우세한 자들이 이른바 '슈퍼 리치(super rich)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슈퍼 리치일까. 지난 14년 동안 매주 2명씩 천 명 이상을 인터뷰해 온 매경의 박수근 기자에 따르면 현금성 자산 100억 이상, 당장 10억 정도는 유동 자금으로 가지고 있는 롤스로이스 정도의 차에, 한 달에 밥 값으로 1400만원 정도는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돈을 많이 가진 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문제가 된다고 박 기자는 말한다. 오랫동안 인터뷰를 통해 박기자가 절감한 건 대다수의 슈퍼 리치들이 공감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진 자이기에 그의 주변에는 '예스맨'들로 대부분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만나기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방식이 체화되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얘기만 듣다보니 공감 대신, 자기 합리화하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른바 우리 사회의 'ceo 갑질 사건'을 낳는 요인이 된다.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대커 컬트너는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사거리 정지 신호 시, 저가 차량 운전자의 100%가 멈춰 선 반면, 메르세데스 등 고급 차를 모는 운전자들의 45%가 그냥 지나쳐갔다는 것이다. 즉, 부자가 되면 될 수록 굳이 규범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서 '공감'을 담당하는 부분이 '미주 신경'인데 자기 기준, 자신을 만족시키는데 집중해온 부자들의 경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담당하는 '미주 신경'에 반응이 없거나 미약해 진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 뇌조차 변한다 공감능력이 저하된 부자, 거기에 이기주의까지 겹치면 위험하다. 부자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부의 피라미드는 가파르게 더욱 불공평지고, 0.9%로 세계의 부 43%를 차지한 부자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은 이제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지구적 문제이다. 사람들이 노동을 해서 버는 '노동 소득'보다 빠르게 자본 소득과 배당 소득이 늘고 있다.
OECD 기준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홍콩, 돈 있는 사람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이 도시, 상위 10%의 사람들이 빈곤 가정의 44배의 부를 지닌다. 50명의 부자가 정부보다 1.35배 재산이 많다. 그래서일까, 홍콩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체념한다. 운수가 안좋았다 말한다. 운이 나빠서 사는 게 지옥이라, 오래 살기보다 아프지 않고 이 삶을 견뎌내기를 바란다.
돈에 시달리는 마음이 생쥐가 되어 정해진 시간 안에 치즈을 찾는 게임에 빠진 거 같다는 사람들 정말 그럴까? 한 해 농사를 끝내고 1년 정산을 하게 되는 농부들, 그런데 이 같은 사람인데도 추수 전과, 추수 후의 '뇌의 상태'가 다르다. 논리력, 인지 조절 테스트를 했는데, 아이큐가 무려 13점 정도나 차이가 났다. 이 정도면 알콜 중독자와 정상인의 차이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이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돈을 식욕이나 성욕처럼 생존에 필요한 걸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 앞에 절박하고, 돈을 향해 위험을 무릎쓰고 내달린다. 그리고 만족할 만큼 돈을 가지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세상을 잃은 듯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뇌에 영향이 아이들의 뇌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빈곤층 아이들을 연구한 찰스 넬슨, 그에 따르면 하루 벌이가 1~2달러에 불과한 빈곤층 아이들은 이미 3세 무렵에 또래 아이들 평균보다 아이큐가 낮아졌다고 한다. 평균을 100으로 치면 85의 수준이다. 아니 3세까지 갈 것도 없다 생후 2달 된 아기의 뇌내 회백질 양이 적었다는 것이다.
오염된 환경, 부족한 영양, 그리고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뇌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결국 이렇게 뇌마저 변했다는 것은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뇌로 대물림되는 가난, 이건 그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뇌로 보는 인간 -1부 돈>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바로, '돈'으로 인해 뇌마저 변해가고 대물림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저 사회면 갑질 기사로 분노했던 사실의 이유를 밝히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상황의 근원을 밝힌다.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가 고착되다 못해 '뇌'까지 변화시키는 현실, 그걸 다큐는 고발한다.
불평등을 혐오하는 인간,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이, 자본주의, 아니 인간 사회의 한 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소득 하위 40%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체 부의 9% 정도는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0.3%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상위 20% 계층이 86%의 부를 누리고 있다. 결국 하위 계층은 아무 것도 안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처음 시작했던 머니 게임의 참가자들, 그 중에서 앉은 자리에서 부당한 배당을 받게 된 사람들은 '꽤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인간만이 아니다.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의 경우도 옆 동료와 자신이 다른 대우를 받았을 때, 특히 자신이 부당하게 적은 보상을 받았을 때 분노하고 임무를 거부한다.
영장류를 비롯한 인간은 공평함을 추구하는 오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사상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적당히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있다. 과연, '돈'을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인류가 '지혜'를 가지고 불공평의 피라미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은둔형 외톨이, 그건 바다 건너 일본의 사회적 현상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접촉이 어려워서 그렇지 학교를 가지 않고, 구직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 인구가 19% 정도에 달할 것이라 전문가들을 추정한다. oecd 평균의 몇 배에 달하는 숫자다.
일명 은둔형 외톨이라 칭해지는 사회적 고립 청년, 3개월 이상 집안에 머물며 가족 등과의 인간 관계가 없는 상태로 있는 청년들을 뜻하는 단어다. 3월 29일 <sbs스페셜>은 이 청년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다.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 개인적인 일탈로 여겨지고 있는 이들 청년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회적 고립 청년'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세대'가 낳은 그늘이며, 사회적 현상으로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한다 주장한다.
스스로 택한 '고립' 18살 상민이, 아빠의 생신 날, 온가족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도 상민이는 방문을 닫고 만다. 가족과 얼굴이 마주한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 중2 때부터 학교 가기를 싫어하더니 고등학교 입학 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아예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째, 방안에만 머무르고 있다.
방에서 상민이는 무얼 할까?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부모의 바램은 온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이지만, 차라리 안 먹을 지언정 식탁에 나서지 않는다. 결국 엄마가 상민이 먹을 밥을 들고 방으로 가져다 준다.
23살 민준씨도 마찬가지다. 1년 넘게 방에서 산다. 학교 다닐 때는 지각, 결석도 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군대도 다녀왔고, 제대 후 친구들도 만나러 나가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 그는 '칩거'한다.
하소연도 해보고, 다그치기도 해봤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민준씨의 답은 냉정하다. '바라지마, 도와주지마, 내 스스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굶어 죽었구나 해',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포기한 아들이 나가서 어떻게 될 까봐, 차라리 답답한 게 낫다며 눈물을 흘린다.
도대체 이들 사회적 고립 청년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내린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 청년들은 그 '정의'를 배반한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의'로 부터 '고립'이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가 찾은 상민이, 어렵사리 말문을 튼 상민이는 힘들어서 그랬단다. 학교가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그러면서 이게 편하니, 그냥 이렇게 살겠단다. 정말 편할까?
26살의 민성씨는 반복적인 고립 생활을 한 지가 벌써 4년 째다. sns를 통해서 보면 친구들은 잘 살고 있는데 자신만 뒤처지는 거 같은 '패배감'이 자꾸 그를 방안으로 밀어넣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자신에 대해 가족조차 불편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그를 더 세상 밖으로 나갈 자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편했을까? 천국과 지옥을 반복했다고 한다. 5년 동안 고립 생활을 했던 28살 유승규 씨 역시 마찬가지다. 엉망진창이었던 시간, 순간순간 제 정신이 될 때 그런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단다. 자신이 싫었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거기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단다.
밀레니엄 세대의 그늘 흔히 90년대 생, 밀레니엄 세대를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세대라고 한다. 거기에 자기 주장이 강하고 똑부러진 세대, 평균적인 모습으로 비춰진 이 세대의 모습은 그 세대를 사는 동세대의 청년들에게는 '1등만 기억하는', 과잉 스펙과 외향적인 태도가 강요되는 시대로 짐지워진다. 캐치프레이즈처럼 강요된 시대 정신에 '쟤네들처럼 살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청년들은 스스로 늦었다, 실패자다라며 스스로 낙인찍게 되고, 그중 더 예민한 친구들은 숨어 들어가 '고립'을 강제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과 '경쟁'에서 최고의 성취가 약화되지 않는 한 사회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청년들의 대열은 줄어들 수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리고 그 실례를 민성 씨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한 '가정 폭력'을 잊을 수 없다고 하는 민성 씨, 그런 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라며 변명하는 부모님, 하지만 그런 '가정 폭력'을 둘러싼 민성 씨네 가족 불화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니 그곳에 민성 씨의 자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자퇴를 하게 된 민성 씨, 하지만 부모님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아들이 자퇴를 결심했는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자퇴만은 막아야 한다며 동분서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던 어머니, 그런 아들을 용납할 수 없어 손찌검을 한 아버지. 그 시절의 앙금은 고스란히 민성씨에게 남아 '고립'의 계기로 작용했다.
물론 처음부터 '고립'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두 발로 세상을 딛을 자신이 없어, 조금만 쉬겠다고 생각했던 생활이, 게임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2,3년이 훌쩍 지나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정말 세상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리며 '고립'이 강제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초기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대응하여 사회적 고립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가족'을 비롯한 외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고립 청년이 어느덧 고립 장년이 되어버리는 30년이 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고립 청년 100만의 사회적 현상은 이제 80대의 부모가 50대의 자녀를 돌보는 돌보는 부모의 노화로 비롯된 또 다른 양상의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이에 일본 히키코모리 문제의 권위자, 사이토 타마키 교수는 고립 기간이 짧은 사람일 수록 생활 패턴을 바꾸기 쉽고 사람을 다시 사귀기가 쉽다며 빠른 대처를 요구한다.
이런 전문가의 권유에 따라 고보리 모토무 대표는 k 고립 청년들을 위한 공동체를 마련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집을 떠난 민성씨가 찾아간 곳도 이곳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 외에 특별한 요구 조건이 없는 이곳의 모토는 단순하다. 느려도 괜찮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자. 서로 도와주자. 사회로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선 청년들에게 공동체는 편견없이 바라봐주며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준다.
이렇게 살겠다고 놔두라던 상민이 역시 가족,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한 저녁 밥상에 앉았고, 아버지와 산책도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 까지 아버지가 날마다 '사랑하는 상민아'라며 편지를 썼다.
최근 코로나 감염 사례에서 등장한 대구 모처를 비롯한 여러 곳의 청년들 집단 거주처, 사회는 그저 '사이비'에 '감염'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창창한 나이'의 청년들이 가족들과도 인연을 끊은 채 '종교'를 택한 '현상'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 역시 '종교'로의 고립을 택한 또 다른 사회적 고립 청년 집단일 수도 있으니까. 사회적 성취, 특히 최고의 성취가 청년들의 목표로 일괄적으로 강요되는 세상에서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숨어들어갈 수 밖에 없다. 어느새 oecd 기준의 몇 배를 넘었다는 사회적 고립 청년들, 그건 우리 사회 성취 지상주의가 낳은 '상흔'이다. 그리고 그 상흔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다큐는 전한다.
일상이 멈췄다. 예정된 일정이 취소됐고, 만남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에 들어선 일상, 답답해서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산책이라도 할까 나선다. 늘 동네 사람들로 붐비던 산책로, 이제는 그곳마저 사람들이 뜸하다.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그런데 저만치서 사람이 온다. 나도 모르게 주춤, 옆으로 비껴서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처음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는 '매너'였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비말'을 전파하지 않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 5000 여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방패'가 되었고, 타인은 '혹시라도 모를 전염원'이 되었다. 어디서 마스크를 판다하면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신영복 씨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겨울보다 여름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옆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열기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신영복씨가 느꼈던 자괴감을 바로 이제 2020년 초봄에 우리가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포옹과 키쓰마저 자제하라고 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졌다. 지난 2월 29일 방영한 <시사 기획 창>은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격리당한 현실을 찾아간다.
격리된 도시 다큐의 제작진은 코로나 19에 강타당한 심장부를 향해 ktx를 탄다. 2월 26일 동대구역, 하루 평균 6만 5천 명이 이용하던 역은 텅 비다시피했다. 차로 꽉차던 범어 네거리에는 코로나 19의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만이 바쁘다. 심지어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멈춰섰다.
대구에 유세를 하러 내려가는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서문 시장, 축구장 13개보다 더 넓은 9만 3천 m²의 면적에 5만 5천여 개의 점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곳, 그 서문 시장이 멈췄다.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노점은 꽁꽁 싸맨 채 덮여있다. 안그래도 갈수록 재래 시장이 장사가 안되던 차에 코로나 19는 엎친 데 덮친 쳑, 불난데 기름 붙는 격이 되었다.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이곳에서 삶을 일구던 초로의 상인은 마수걸이도 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고 만다. 노인들로 붐비던 달성 공원도 텅비어 있고, 대형 서점들도 굳게 셔터를 내렸다.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니 거의 운행을 하지 않는다. 협소한 공간을 꺼리는 사람들로 인해 운행 자체가 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나와도 하루 만 오천원 벌이, 돈도 돈이지만 낯선이를 태워야 한다는 공포심이 늘 부담으로 택시 운전자들의 어깨를 누른다.
시민들은 스스로 격리 생활 중이다. 학교를 다니는 딸 윤서를 키우는 김은지 씨는 개학이 9일로 미뤄졌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엄마는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맡겨야 하지만 코로나 19에 연로한 노인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니 부모님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워킹맘인 정민희 씨는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내고 이 사태를 감당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땐 어찌해야 할 지 갑갑한 상황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있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김모 씨는 자가격리 중이다. 가족 들과 같은 집에 살지만 생활은 따로 한다. 가족들과 2m 이상 따로 떨어져 지내는 그는 얘기도 못나누고, 식사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그래도 갑갑한 건 참을 수 있다. 가족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옮았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부족한 물품 문제도 심각하다. 정민희 씨의 경우 마스크를 다섯 매를 만 오천 원에 겨우 구입했다. 그래도 어른은 마스크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참지만 어린 승유는 마스크를 못견뎌 한다. 대형 마트에 가도 우유가 없다. 라면은 딱 한 번들 샀다. 어린 승유는 예전처럼 고기를 먹으러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시절 대남병원이 있는 경북 청도는 어떨까? 2월 27일 경북 청도, 주민 절반이 60대 이상인 조용한 이 도시 한 가운데 군청을 마주하고 대남병원이 있다. 매년 5월 청도을 들썩이던 소싸움 축제는 기약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힘든 시간을 이겨내자는 격려 방송만이 적막한 거리를 감싼다. 정부 특별 대책 지원단이 있는 군청 구내 식당마저도 닫고, 인근 상가도 철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우 농가들이 소독제를 지원하고, 병충해를 잡던 드론으로 병원 외벽 소독을 하는 등 청도 사람들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구에 이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2월 25일 부산으로 가는 ktx, 표 구하기도 힘들던 부상행 ktx에 빈 자리가 더 많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는 엄마의 부탁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도 그 무엇도 만지지 않으려 애쓴다. 말이 귀향이지, 살던 집 위층에 확진자가 나와 집이 아닌 딴 곳으로 가야할 처지다.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온천 교회는 문 닫은 지 오래, 신도들의 신상이 드러날까 교회 홈페이지도 폐쇄되었고 신도들은 자각 격리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방송국 카메라에 울분을 토하고 택시 운전사들은 자신이 외려 채워넣어야 하는 사납금을 호소한다.
서울이라고 다를까. 2월 27일 서울 은평구 설아네, 어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디를 가나 '위기감'이 크다. 나갔다 들어오면 서둘러 손을 씼고, 아이와의 외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2주 넘게 집에만 있는 상황, 설아를 유치원에 보내고 재취업을 해보려던 엄마의 부푼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늘 차가 막히던 강남 도심에도 차가 드물고 '맛집' 불문 대부분의 상점들은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 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3에서 2.1%로 하향 조정했고,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코 앞의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도 비상이다. 선거 운동이 멈췄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온란인 선거 홍보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심지어 총선 연기론마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었던 중국 유학생 입국 문제, 바로 그 유학생들이 입국하는 현장인 인천 국제 공항은 비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준 가운데 개학을 앞둔 유학생들이 입국하고 있다. 방역이 강화된 공항을 유학생들이 빠져나오면 각 학교에서 나온 직원들이 유학생들을 한 명씩 차량에 태워 기숙사로 보낸다. 지역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2주간 기숙사에 격리될 학생들은 매 끼니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된 가운데 매일 2 차례 씩 체온을 재는 등 만약의 사태 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경희대의 경우 3000 여명 중국인 유학생 중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학교 밖 주택, 원룸 등에 있는 유학생들 '자가 격리'를 요청하고 매일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지만 그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거짓 상술도 판을 친다. 마스크 사재기에서 부터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불량 마스크, 코로나 19 발생지인 후베이성에서 만든 마스크가 온라인 마켓에서 유통되는가 하면, 이 틈을 타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준다는 공기 청청기까지 갖가지 상술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전문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을 줄이는 것, 스스로 사회적 격리, 거리두리만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해법이라 입을 모은다. '일상을 찾는 것이 꿈이 되었다'는 하상욱의 짧은 시처럼, 평범해서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지난 봄을 모두가 그리워하는 시절이다.
코로나19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그런 와중에 '마스크, 방호복 등 기본적 장구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감염되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신이 감염되면 환자를 돌보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대구에서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최전방의 군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테니 불안해 하지 마시라는 그 한 마디에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한 '위로'를 얻는다.
내 주변 동기, 선배들이 어느덧 은퇴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맨날 운동화에 파카나 걸치던 선배들이 번듯한 새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던 신입 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백이 된 그들이 '사회'로 방출되었다. 하지만 말이 '퇴직자'지, '놀기'엔 너무 멀쩡하게 젊다. 그리고 이른바 100세를 사는 게 점점 가능해 지는 시대에 그들이 '놀고 먹어야'할 시간이 그들이 직장 생활을 해왔던 시간보다도 길다. 과연, 이 '아득하게 창창한' 은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최근 코로나 사태로 2월 27일 <다큐 시선>은 지난 2017년 7월 5일 방영된 <서러워말아요, 젊은 그대>를 재방영하며 어언 3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 사회 '늙수그레한 젊은이'들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젊은이들과 '알바'를 경합하는 노익장 동네 슈퍼가 편했던 61세의 임종석 씨는 오늘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10일 째이다. 식품 회사 부장 출신, 퇴직을 하고나서 택시 운전을 하던 그는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에 무리가 오자, 편의점에서 '알바' 인생을 시작했다.
임종석 씨가 일하는 편의점 체인에는 현재 임종석 씨와 같은 시니어 교육생이 현재 650명 연수 중이다. 점주는 임종석 씨보다 10년쯤 어린 50대, 그가 젊은이들 대신 시니어 세대를 '알바'로 고용한 건 연락두절될 일 없이 꾸준히 오래 근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하여 그 세대 특유의 '근면 성실'함을 높이 사서이다.
하루 10시간 신용카드 계산은 척척이지만 각종 할인 카드를 내밀면 멘붕이 오는 '초보'지만 한 달 꼬박 일하면 230만원 황혼의 아버지로써 면이 선다. 이렇게 임종석 씨처럼 은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니어'들이 지난 5년 새 7배나 늘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업종 1위는 바로 임종석 씨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이다. 어느새 진짜 젊은이들과 편의점 알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젊은이들과 '경쟁'을 넘어 어느덧 '선점'하게 된 또 하나의 알바가 있다. 바로 '전단지 알바'이다. 되돌아 보면 예전에는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이 대부분 '시니어'로 바뀌었다. 10대들의 손쉬운 '알바'가 노년의 길거리 부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아마도 그건 꼬박 2시간을 서서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장당 50원꼴 500~700장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2만 5천원을 받는 '헐한 알바비'때문이 아닐까.
뜨거운 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신촌의 오후 2시, 땡볕 아래에서 중무장을 한 채 쉴 새없이 미장원 할인권을 나눠주는 유영자씨가 있다. 싸늘한 시선, 익숙한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기꺼이 맡겨진 전단지를 소화해 낸다.
20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가장이 된 유영자씨는 전단지 아르바이크로 번 100여 만 원의 최저 생계비 수준의 돈으로 생활해 왔다. 어르신이라 더 받아주기도 하니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했어도 거절이 익숙해지지 않아 서운한 아르바이트, 신촌에서 '한 탕'을 뛰고 다시 신림동으로 자리를 옮겨 꼬박 전단지를 나눠준 유영자씨의 일과는 해질녁 6시 반이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그까짓 몇 장 쯤 남기면 어때서 싶지만 마지막 한 장까지 성실하게 나눠주고 나서야 홀가분하게 돈 받은 만큼의 보람을 느끼며 평범한 할머니의 자리로 돌아간다.
젊은이들이 보수가 적어 떠난 자리에 대신 '알바'를 뛰는 시니어 세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되었다. 2017년 기준 일하는 노인 421만명, OECD 평균 2배가 넘는다. 그렇게 많은 노인들이 열악한 조건에도 말년까지 일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노인 빈곤율 1위로 부터 비롯된다. 저임금 일자리나 자영업을 전전할 수 밖에 없는 노인 세대,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 밖에 없어 상대적 빈곤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려운 건 일할 곳이 없는 삶 하지만 꼭 생계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다. 73세의 양주익 씨는 오늘도 지역 신문을 뒤적이며 일자리를 찾는다. 공무원 퇴직 후 미화원 등 임시직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70줄, 노인을 위한 일자리라도 70이 넘는 양주익 씨가 할 만한 곳이 드물다.
30년을 넘게 일했건만, 그래도 또 일하고 싶다는 양주익 씨, 꼭 생계 때문이 아니라, 나갈 곳이 있는 삶, 나도 일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는 '활기찬 삶'에 대한 지향이 오늘도 양주익 씨를 조바심내게 만든다. 연금으로 받는 150만 원, 그 정도면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에 아내와 제주도 여행이라도 한번 가는 여유있는 삶을 살려면 한 달에 250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경비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심지어 '경비 지도사'란 경비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양주익 씨는 우선 그거부터라도 따고자 한다.
이제 은퇴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은 63세의 정효선씨는 벌써 4번 째 일자리를 위한 면접 준비를 한다. 대기업 부장 출신,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매일 매는 넥타이가 지겨워 푸는 게 소원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젠 다시 넥타이를 맬 일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은퇴 후의 삶을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은퇴는 일렀고 자녀들의 갈 길은 머니, 은퇴 후의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1년 계약직으로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했던 정효선 씨가 이제 면접을 보는 건 '일용직'. 경복궁 야간 경비이다. 겨우 2주 동안 하는 이 '경비' 일자리에 36명 뽑는데57명이 모였으니 정효선 씨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는 그의 전직이 '경비'와 같은 일용직에는 외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다행히 뽑혀 매일 밤 관람객들의 '검표원'으로 활기차게 일하는 정효선 씨, 겨우 50만원이 좀 안되는 급여지만 보람을 느낀다. 그의 소박한 소망이라면 매일 하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양주익 씨의 경우처럼 노인 세대에게 은퇴 후의 삶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증가하는 노인 세대를 대비하려면 국가, 사회가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마련해 가야 할 문제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활동력이 떨어지는 노인 세대에게 맞춤인 사회 서비스 일자리는 공공이 만들어야 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한 지자체가 있다. 성동구에서는 서울숲 컨테이너 거리에 <엄마손 만두>를 비롯하여 까페 등 고령자 친화 기업을 만들었다. <엄마손 만두>의 경우 61살이 최연소인 시니어들이 만들어 가는 '노인을 위한 신의 직장'이다.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노인들이 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이곳, 매니저로 일하는 64세의 엄기범 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웃음이 늘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112명, '노인들을 위한 신의 직장'이 좀 더 많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져야 하겠다.
ebs는 지난 2010년 <학교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통해 학교 교육의 방향을 모색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2020년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7차 교육 과정, 시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수행 평가가 대신하고 교사에 의한 하달식 교육 대신 활동 중심프로젝트가 대신한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바람직한 교육을 받고 있는가? 그 질문으로 부터 <다시 학교> 10부작을 마련하였다.
그 이전의 기능주의적 지식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며 그 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교육 과정은 안타깝게도 '학력 저하', '학력 격차', '사교육비 사상 최대'의 결과를 낳았다. '지식보다는 역량이 중요하다', '학생 주도 수업'이 '강의식 수업'을 대신해야 한다는 최근의 학교 교육 담론, 그렇게 활동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서 교사의 자리는 점점 더 사라지며 스스로 '구태'라 여기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를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이라 여기는 세태, 그래서 학교는 '잠자는 교실'이 되어버린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다큐는 가르치지 않는 학교, 교사의 고백, 시험을 시험하다, 최고의 수업, 창의성의 발견, 학생다움을 묻는 어른에게, 수학이 불안한 아이들, 잠자는 교실, 학교는 동사다 등 총 10부의 다큐를 를 통해 현재의 학교 교육을 점검해 본다. 그 중에서도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문해맹의 학교 세종 대왕이 창제하신 '쉬운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 중 한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 성인 인구의 7.2%인 311만 명 정도이다. (국가 평생 교육 진흥원, 성인 문해 교육 현황) 하지만 한글만 읽고 쓰면 다일까? 전체 성인 가운데 22%에 달하는 960만 명이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복잡한 내용의 정보는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실질적 문맹이란 무엇일까? 가장 이해하기 쉽게는 의약품 복용량 설명서나, 각종 서비스 약관 등 공공, 경제 생활에 필요한 문서를 활용하는데 미흡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바로 등장하는게 '문해력'이다. 즉,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 교과서 내용 중 등장한 '머리에 서리가 내린다'에 여름인데 어떻게 서리가 내려요? 라거나, '얼굴이 피다'라는 문장을 설명하라니 피범벅된 얼굴을 그려 놓는다면? 과연 문장을 이렇게 이해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국어 수업만이 아니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유추하여 해석할 수 없는 학생들이 하물며 사회, 역사, 과학 교과서를 혼자 읽을 수 있을까?
청주에 있는 분평초등학교 2학년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는 가장 두려운 시간이다. 책읽기는 로봇처럼 한 자 한 자 읽어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한다. 글자를 제대로 못읽으니 당연히 수업은 못따라간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없다'.
지윤이 만의 문제일까? 초등학교 학생의 11%가 이렇게 지윤이처럼 기초적인 문해력의 수준에 못미친다. 아이들의 문해력을 조사해 보면 개별적인 특성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3세에서 8세까지의 수준 차이가 난다. 당연히 3세 수준의 아이들은 심각한 읽기 부진을 보이고 이는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만의 문제일까? 읽기 진단 검사를 마친 중학교 교실, 낱말 뜻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고지식'을 높은 지식이라 생각하고, '대관절'을 큰 절이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단어 의미를 바탕으로 한 추론이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이해할 수 없고, 학습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중학교 2학년인 의담이는 학원 수업마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엄마랑 함께 공부를 한다. 하지만 문장 하나, 문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 새벽 한 두시까지 공부해도 교과서 한 두 장정도를 소화할 수 있다. 이러니 다른 과목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현실이다. 활동 중심, 학습지 중심의 수업 형태에서 아이들은 얼마든지 글을 읽지 않아도 한 학년을 지나갈 수 있다. 글을 못읽으니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는 애초에 무리다.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방치되는 현실이다.
왜 아이들은 글에 집중하지 못할까? 글을 읽는 아이들의 시선을 조사해 보니 아이들의 시선은 글이 아닌 부수적 정보나 지문 외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거의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훈련 자체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더 재밌는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이 있으니 더더욱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게다가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읽는 메뉴얼은 책과 다른 방식이기에 아이들에게 책은 낯설다.
공교육이 해야 할 몫 -문해력 그렇다면 이렇게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개별적인 차이이니까 각자 개인과 가정의 책임일까? 다큐는 바로 여기서 '공교육'의 위상을 불러온다. 말 그대로 공공의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가 그 몫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트리모아나 초등학교 뉴질랜드 원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의 이민자들이 모인 이 학교의 학생들이 언어 발달에 격차가 큰 건 당연한 결과다. 이에 뉴질랜드에서는 공교육의 책무로 국가가 나서서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 수업'을 진행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리링 리커버리 수업에서는 읽기가 부진한 학생들을 상대로 매일 30분씩 1년간 1;1로 전문적인 교육을 수행한다. 특히나 전문간들은 만6세 정도, 초등학교 2학년 이전의, 학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기기 전의,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청주의 분평 초등학교, 매일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방과 후에 지윤이와 함께 읽기 공부를 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지윤이는 이제 친구에게 자신만만하게 '받아쓰기 하나 틀렸어, 안타까워'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계절만의 변화이다.
얼굴이 피다를 얼굴에 피범벅을 해놓던 의담이를 비롯한 동산중학교 중학생들, 역시 문해력 캠프를 마쳤다. 왜 모르는 걸 질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질문도 아는게 있어야 하지 않냐던 포기를 먼저 말하던 아이들은 이제 친구들과 당당하게 답안지를 맞추는 수준에 이르렀다.
겨우 몇 달의 수업이 아이들의 문해력을 변화시켰다. 그저 문해력만이 아니다. '노력을 안해서 죄송해요'라며 한없이 수그러들던 아이가 웃음을 되찾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가 펴졌다. 학원이 아니다. 그저 학교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니 달라진 것이다. 다큐는 말한다. 바로 이것이 '공교육'의 자리가 아니겠냐고. 가장 기본을 책임지는 곳, 그곳이 바로 교육의 자리라고 '다시 학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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