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인간의 절묘한 콜라보 아이언맨, 과거로 부터 온 절대 강자 캡틴 아메리카, 신화 속에서 길어온 토르, 신비의 섬에서 날아온 원더 우먼, 먼 우주로 부터 던져진 슈퍼맨에 돌연변이 박쥐에 고양이 등등 마블과 DC 히어로들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과연 여기에 또 새로운 캐릭터의 히어로들이 더해질 수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히어로들의 등장은 '우후죽순'이다. 침팬지의 유전자를 이식해 헐크처럼 큰 덩치로 괴력을 행사하는 커진 히어로는 어떨까? 망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영매나 시간을 오가는 능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2019년 2월에 새로운 히어로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공개 이후 전미 넷플릭스에서 오랜 시간 동안 1위 자리를 유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미국의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제라드 웨이의 그래픽 노블 데뷔작이다. 그 중 1부 종말의 조곡과 2부 댈러스가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되었다. 

지구 종말 앞에 던져진 히어로들 
시리즈의 시작은 러시아의 한 수영장이다. 한참 수영 연습 중인 여성들, 그런데 그 중 한 여성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임신을 한 적이 없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만삭이 되어 결국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이상 사례'가 전 세계에서 벌어져 43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이변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7명이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컬럼 피오레 분)에게 입양된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며 아이들을 입양한 목적을 밝힌 '하그리브스' 경은 그 목적에 맞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조직하고 아이들에게 히어로가 될 강훈련을 시킨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후, 하그리브스 경이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뿔뿔이 흩어졌던 이제는 5명만 남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명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에서 4년을 보낸 맏이 루서(톰 호퍼 분)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진위를 밝히려 하지만, 둘째 디에고(데이비드 카스타네다 분)는 죽음의 의혹 따위 아버지에 대한 애증에 전전긍긍한다. 그런가 하면 셋째 앨리슨(에리 레이버 림프먼 분)은 이혼 위기의 사생활에서, 네째 클라우스(로버트 시한 분)은 약물과 알콜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형제들과 달리 히어로 훈련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막내 바냐(엘렌 페이지 분)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조차 마음을 모을 수 없는 형제들 앞에 15살 때 시간속으로 사라진 넘버 5(에이단 갤러거 분)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 

15살이라는 '외모'와 달리 시간 여행을 하며 58살의 나이가 됐던 넘버 5는 17년 만에 겨우 집에 돌아온 형제들에게 '지구 종말'이 이제 겨우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통보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히어로 물의 전형적인 서사에 따르며 좀 갈등이 있더라도 '히어로'의 사명감으로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쓰련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속 히어로들은 좀 사정이 다르다. 말이 '입양'이었지, '얼마주면 되겠니?'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사온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아버지'이지, 자신을 '경'이라 부르라며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사랑'이라고는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어머니라지만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이보그 어머니가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없어 숫자고 불리던 아이들(그래서 이름이 지어지기 시간 여행을 떠난 다섯째가 넘버 5 이다)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육친의 애정에서 소외되어 상처받은 '아이' 그대로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들 히어로들은 자신의 '히어로'적인 정체성에서조차 여전히 혼돈 속에 빠져있다. 그저 많이 자란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형제들이 다 떠나버려 홀로 적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빠졌던 맏이 루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주입했던 집사 침팬지 포고의 DNA로 인해 '동물적인 육체'를 지니게 되었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도 가족 중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마저도 알고보니 홀로 고독과 싸우며 견뎠던 달에서의 4년이 '방치'였음을 알게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지만, 그 만큼 '히어로'에 대한 '사명감'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인 둘째는 자신의 사명감에 따라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수단과 방법을 그라지 않는 그의 방식은 결국 그를 경찰 교신망을 도청하는  '불법' '히어로의 신세로 '전락'시킨다.

'소문으로 들었는데'라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앨리스는 그 능력으로 스타가 되고, 가정도 얻었지만, 결국 그 능력으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되어 '자중지난'이다. 네째, 클라우스는 거의 '폐인'이다.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의 능력 덕분에 일곱 히어로 중 한 명인 죽은 벤과 항상 함께 하듯이, 때로는 처참하게 죽은 자들이 '소환'되는 그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과 알콜에 쩔어산다. 

 

   

 

지구 종말이라는 사명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팀'으로서의 결집은 '언감생심'인 시즌 1, 결국 그 '지구 종말'조차도 알고보니 이들 히어로 중 한 명인 '바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작할 때는 B급 정서에 기반한 오합지졸 히어로들의 시트콤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던 시리즈는 중반을 넘어서며 각 히어로들의 정체성과 성장통을 거치며 소위 그간 히어로물이 그려왔던 '당위적 사명'을 가진 '남다른 존재' 히어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존재란 이유로, 혹은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간적인 행복조차 '방기'되거나', 억압돠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히어로'라는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면, 오늘날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 제기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작품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당대적 정서에 대한 '공감'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 '거창한 지구 종말'이라는 문제 조차도 결국은 한 가정에서의 학대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결국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이들이 '지구 종말'을 막아낼 수 없다는  '화두'는 철학적이기 까지 하며, 그래서 기발하고 신선하며, 늘 대의와 사명, 담론에 치우쳐 왔던 이전 히어로물에 허를 찌른다. 

결국 히어로지만, 그들이 남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이기에 '지구 종말'을 초래하게 된 '엄브렐러 아카데미'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 문제에 허우적거리다 지구 종말을 막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끝일까? 여기에 '시간 여행'이라는 기막힌 '치트키'가 등장한다. 치트키 '시간 여행'을 통해 케네디 암살 시점인 1963년 댈러스로 떨어진 이들은 여전한 자신들의 숙명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시대적 감성에 기대어 마주하며 업그레이드된 서사가 이어진다. 

by meditator 2020. 10. 3. 15:23

지난 2018년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 <나는 살인자다>는 사형을 선고받은 1급 살인범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다. '살인'에 대한 기록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살인'을 저질렀던 당사자가 직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토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사자가 말하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나는 살인자다>의 시도는 획기적이며, 도발적이다.

  

미국은 지난 1976년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하였다. 그 이래로 8천 명 이상이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다큐는 이렇게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살인범들이 자신이 살아온 이력과 범죄를 저질렀던 그 날을 말한다. 그 날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미래는 달라졌을까? 그 날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살인'으로 이끌었는가? 다큐를 보는 내내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무엇이 살인은 만드는가? - 학대의 기억 
8천 명의 살인 선고를 받은 사람들 중 여성은 10% 미만이다. 1편 <목숨을 쥐다> 에 출연한  3018877 번 린지 호건은 그 중 한 명이다. 25살, 앞날이 창창하던 나이에 '그 사람'을 죽였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린지는 15살에 가출을 했다. 반항적이었고 마리화나를 시작으로 메스 암페타민, 헤로인에 중독된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7살에 자신이 임신 3개월이라는 걸 알게 된 린지는 '엄마가 되고 싶어' 2003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들을 외할머니에게 맡긴 린지는 주방위군이 되었다. 남자들보다 푸쉬업을 잘하는 자부심을 가진 군인이었다. 그러다 2013년말 한 남자를 만났다. 다정했던 처음과 달리 남자는 변해갔다. 종종 이성을 잃은 남자는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를 구타했다. 주방위군으로 남자들과 어우릴 수 밖에 없는 그녀를 의심하며 바람을 피웠다고 말하라 강요했다. 씹던 음식을 뱉고, 강간했으며, 더럽다고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한번은 욕실에 그녀를 가두고 손을 으스러뜨리며 팔로 목을 졸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며 죽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2015년에야 남자는 구금되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한 린지는 결국 주방위군을 그만두고 술에 빠져 지냈다. 

2편 <광분>에 출연한 데이비드 역시 '학대'를 당했다. 990135번 데이비드 바넷, 그는 현재 포토시 교정 센터에 1급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지만 엄마는 그를 원치 않았고 알콜릭인 엄마의 친구 로버트에게 맡겨진 그의 어린 시절은 처참했다. 두들겨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대소변이 묻은 옷을 입고다녀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자판기에 음식을 훔치기도 했다. 

4~5세가 될 즈음 그를 찾아온 아동 복지국 직원이 '널 여기서 빼내 줄거야'라며 해주었던 포옹이 처음으로 느꼈던 따뜻한 기억이었다. 6살 때 평범한 가족에게 위탁되었던 것도 잠시, 외국에 나가야 하는 가족이 그를 다시 보호 시설로 돌려보냈다. 

8살 때 그를 데리고 온 존 바넷은 그에게 '내 아들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된 그 날의 기억이 악몽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살며 아버지인 존은 본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존은 그를 때렸다. 찢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시절,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친 그를 아버지인 존은 위로해 준답시고 안고 키스를 했다. 한 술 더 떠서 그를 무릎에 앉히고 안아달라 했다. 성기를 만지는 등 부적절한 스킨쉽을 했다. 당시에 대해 ' 존재하고 싶지 않았고 죽고 싶었다'고 데이비드는 괴롭게 말한다. 


10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에 출연한 상당수의 '살인범'들은 린지나 데이비드와 같은 '학대'의 기억을 가진다. 그 '학대'의 기억은 그들의 삶을 잠식했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이 없었다. 그 '학대'가 그들을 '범죄'로 이끌었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존이 음모가 없는 사춘기 이전의 소년의 음경을 팔로 받치고 있는 사진을 찾은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이것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 생각하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경찰은 사진을 그냥 주더니 외려 나가라 했다. '경찰은 아무 것도 안할 거야'라며 뛰쳐나간 데이비드, 학교도, 아동 복지국도, 경찰도 데이비드가 당한 일에 눈을 감았다. 

존은 학교 전산 담당 교사이자, 올해의 스쿨버스 운전사로 뽑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으로 살다 제 명을 다했다. 그의 집과 불과 두 집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의 집이 있었고  그의 부모 클리퍼드와 리오나는 존이 입양한 아이들의 자상한 조부모였지만, 아들이 저지른 범죄적 행동에는 무지했다. 그와 49년지기라는 친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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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살인은 변호될 수 있을까? 
술에 절어 살던 린지는 한 파티에서 로비를 만났다. 그가 재활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와 함께 정처없이 떠났다. 

자신을 막대하지 않아서 고마웠던 로비는 함께 여행길에 오르자 그녀에게 다른 걸 요구했다고 한다. '너랑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린지의 소망과 달리, 로비는 지쳤고,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을 죽여달라며 린지에게 애원했다. 결국 월마트 주차장에서 린지는 로비의 목을 졸라 죽인다.

살인을 저지른 것도 잠시, 당황한 그녀는 로비에게 일어나라 애원을 하며 CPR을 하던 중 경찰에게 발각된다. 내가 죽였다며 살려달라던 그녀, 린지는 자신의 전 애인이 자신에게 가했던 학대의 '트라우마'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했다며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심문받던 영상을 보던 형사는 그녀의 그런 고백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심문 도중 '맨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 아마도 전 약혼자가 자신에게 한 것을 로비에게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 추측한다. 거기에 더해 불과 사귄 지 한 달 밖에 안된 상황에 로비를 위한 순애보적인 살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전 애인을 만나러 가고자 하는 로비의 속셈을 알게된 린지의 질투심이 저지른 '고의적 살인'을 결과했을 것이라며 그녀의 '고백'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의 경우는 그가 범죄를 저지른 대상과 상황이 심각하다. 존에게 학대당하던 그는 한때 존의 집에 머물던 세실과 아이를 낳으며 잘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세실과 헤어진 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1996년 2월 존의 부모, 즉 자신의 양부모인 클리퍼드와 리오나의 집을 찾았다. 죽이러 간 게 아니라 이제 이 문제를 끝내고 싶어서 간 것이라는 데이비드는 양부모에게 존이 한 짓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위로의 포옹은 없었다. 양부모들은 그의 말을 듣고 불쾌해하며 화를 냈다. 그런 양부모들의 태도가 그에게 쌓인 분노의 스위치를 켰다. 

양 부모들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턱뼈가 틀어진 상태에서 5개의 칼로 20군데 이상 잔인하게 찔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칼이 깊게 박혀 손잡이가 부러져 있었다. 느리고 고통스럽게 잔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방과 후에 찾아가면 쿠키를 주던 할머니, 존의 학대로 부터 유일하게 가정적인 따스함을 주던 그 분들을 죽인 데이비드에게 배심원 12명은 '이 남자는 살아선 안된다'며 살인을 선고했다.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는 있을까? 
하지만 린지와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로비를 목으로 조르고 싶다던 증언을 다시 본 린지는 당황해하며 끔찍해 한다. 사람을 죽였기에 더는 평범할 수 없다고 말하는 린지, 자신의 손을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뉘우치고 있다고 말하는 린지, 달라진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뉘우치는 린지를 로비의 부모가 품었다.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그녀가 정말 죄송해요라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보고 용서하기로 했다는 로비의 엄마와 양부, 하지만 로비의 친아버지는 다큐의 출연을 거부한다. 형기의 25%를 복역하면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지는 법, 린지에게는 2030년 자격이 생긴다. 과연 린지는 가석방이 될 만한가?

데이비드에게는 불공평했던 법이 기회를 주었다. 그의 재판 과정에서 그가 세우고 싶었던 증인은 많았지만 국선 변호인은 그가 원하던 증인을 단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칼라일 팀 변호사가 경찰서에서 데이비드가 아버지 존의 성적 학대를 증언하려 했던 기록이 수면위로 올라오며 그가 수감된 지 22년이 지난 2019년 법원은 그의 죄를 '살인죄' 대신 가석방없는 종신형으로 감했다. 

젊은 나이 수감 생활을 한 데이비드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존을 증오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그저 괴물을 품고 있었을 뿐,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신 역시 실수를 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꺽지 않는다. 가석방을 위해 항고하겠다는 데이비드,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에게 기회는 주어져야 할까? 

다큐에 등장한 살인범들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의 사연은 저마다 곡진하지만, 과연 그 사연의 진위 여부 역시 때로는 다른 이견이 제시되고,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겨진다. 과연 그들에게 세상 밖으로의 삶을 살 기회가 주어져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오랫동안 그들이 보낸 '참회'의 시간 사이에서 정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런 '모호한 인간과 법' 사이의 경계가 '리얼'로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일 것이다. 

 

#넷플릭스 #나는 살인범이다 

by meditator 2020. 10. 3. 12:10

태풍의 한 가운데에 제주에 발이 묶였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야자수들이 90도로 꺾지며 바람을 견디고, 에머랄드 빛이었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고 검은 물결로 다그쳤다. 한 발자국만 헐하게 내딛어도 휘청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시간, 결국 마이삭은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히고 물러났다. 3일 아침 마이삭이 휩쓸고 간 바닷가, 찢어진 해면조각들과 바닷말 찌꺼기들 사이로 작은 게들과 벌레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하시는 분이 자칭 '원주민'이셨다. 그저 얹어놓기만 했는데 태풍에도 끄덕없는 제주도 돌담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시는 끝에 그 돌과 같은 제주도민들의 '의지력'을 말씀하시고는, 그 '의지'의 제주도민들이 제주 바다를 살리기 위해 들인 공으로 말씀을 돌리셨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가 깨끗한 이유, 쓰레기나 플라스틱 조각하나 나뒹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제주도민들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50년 바닷속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거라고 학자들이 경고하는 시대, 그럼에도 '바다'를 청정해역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건 '사람'뿐이다. 그리고 그 '바다'와 '사람'에 대해 kbs1 <다큐 인사이트>는 8월 20일과 27일에 걸쳐 <눈물, 바다> 2부작을 방영했다. 

 

 

엘니뇨와 남획이 불러온 재앙
페루 산후안 마르코나 해역, 남극에서 흘러온 홈볼트 해류가 흐르는 이곳에는 막대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있다. 그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멸치 떼가 몰려들고, 그 멸치 떼를 따라 2m나 되는 오징어 떼가 지천인 곳이다. 3억 마리의 새와 180여 종의 바다 사자가 사는 곳, 페루 수산업의 중심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97~99녀느 20009년에서 2010년, 2016년에서 2017년 세 차례에 걸친 엘니료로 해수 온도가 5도가 상승했다. 거기에 남획과 오염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닥쳤다. 1990년 조개류 어업이 붕괴했다. 2000년에는 다른 어업도 할 수 없게되며 산후안 마르코나 마을이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20여년간 마을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살길을 모색했다. 매일 매일 쓰레기를 치웠다. 어업 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해안을 관리했다. 그러자 3년 전부터 붉은 성게가 돌아왔다. 성게가 돌아오자 물고기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일정 크기, 일정량 이상은 잡지 않는다. 휴식기도 엄격하기 지킨다. 이곳만이 아니다. 오래된 기구에 의지하여 잠업을 하는 페루 북쪽 안콘도, 멸치 산업의 메카 엘 카요도 후손 대대로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지침에 따라 스스로 바다를 지켜낸다. 

 

 

홍도 바다에 홍어가 없다? 
우리나라의 홍도는 어떨까? 대대로 홍어 잡이를 해온 이곳은 홍어를 잡아 일년 생계를 꾸려내왔다. 홍도 사람들은 특유의 주낙( 비교적 굵은 한 가닥의 기다란 줄에 여러 가닥의 가는 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를 연결) 방식으로 낚시를 해왔는데 70년대 중국에서 온 쌍글이 어선이 서해를 까맣게 덮으며 우리 어장의 물고기를 싺쓸어 가고 거기에 수온이 상승과 바다 오염이 겹치며 홍어 잡이의 시절은 막을 내리는 듯 했다. 

90년대 20여척쯤 되던 홍어잡이 배는 적자가 되자 2000 년대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다  이제 6척이 남았다. 24시간 잠을 안자고 뿌리고 끌어올리는 주낙은 고된 노동의 현장이다. 하지만 그 현장에서 끌러올린 건 폐그물, 포대 이기 십상이다. 그래도 금어기를 만들고 , 어획량을 정해 바다를 보존하기 시작하자 2,3년 전부터 다시 홍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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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도,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도 
지구 녹지의 9% 인간의 보물 창고라 일컬어지는 브라질의 맹그로브 숲,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 정글에서 사람들은 맹그로브게를 잡아 살아왔다. 타이어로 만든 신발에 여러 겹 장갑을 끼고 날카로운 나무 뿌리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하는 '극한 어업',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암컷을 잡지 않는다. 번식을 위해서이다. 7센티 이상만 잡는다. 

 '더 많이 보호할 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맹그로브 숲의 사람들은 깨달았다. 수많은 동물들의 집,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이곳 맹그로브 숲, 그 숲이 파괴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한 어부지만 동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법으로 정해진 상한선을 지킨다. 자신의 아이들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맹그로브 숲을 지키기 위해서. 

인도네시아 와카토비의 바자우 족은 바다 집시들이다. 다이너마이트와 청산가리를 이용하여 고기를 남획해 왔다. 그 '잔인한 남획'의 결과는 처참했다. 산호초가 죽어갔다. 물고기가 사라졌다. 필리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알보알 앞바다의 정어리 떼가 사라졌다. 

남획을 금지하고 무자비한 다이너마이트와 청산가리 사용을 금지하자 산호초가 살아났다. 정어리 떼가 돌아왔다. 그러자 멸종 위기의 푸른 바다 거북과 같은 다른 해양 생물들도 돌아왔다. 

낚시줄, 작살총, 그물만이 허용된 인도네시아의 앞바다, 정부의 계도에 따라 어부들은 전통적인 줄낚 등을 이용하여 비록 몇 마리는 되지 않지만 비싼 물고기를 잡는다. 살벌한 전쟁터와 같던 어업이 이젠 생명의 근원인 바다에서 노니는 놀이와 같은 사냥이 되었다. 전보다 많이 잡지 못하지만 고부가가치의 고기들은 어부들의 끼니와 벌이를 보장하게 되었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 수온은 올랐고 물고기들은 더 찬 바다를 향해 이동한다. 과도한 어획 등으로 지구촌 대다수의 어장에서 물고기의 수가 줄었다. 거기에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현실은 변했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정부와 어부들은 이제 다시 노력하고 있다. 비록 조금 덜 가져가고, 조금은 느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다시 산초호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제주 바다처럼, 사람들의 노력만이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다. 

by meditator 2020. 9. 5. 09:51

메릴 스트립, 지나 데이비스,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리즈 위더스푼, 산드라 오 등등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이름을 들어왔고, 이름만이 아니라 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기억할 만한 헐리우드의 유명 여배우들이다. 이들 여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바로 <우먼인 헐리우드>이다. 2018년 개봉작이었던 <우먼 인 헐리우드>가 EIDF 2020 여, 聲 섹션에 초대되었다.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96명이 출연했다 해서 화제가 된 영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아카데미상을 무려 3번이나 받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하여, 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현장에서 그 누구라고 막론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차별'받아왔다는 것이다. 누가 저 유명세를 떨치는 여배우들이 '차별'로 인해 고통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대표적인 여배우들의 발언으로 <우먼 인 헐리우드>로 인해 헐리우드 영화 산업 내 차별은 현실감있게, 그리고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여배우도 받은 차별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 <크레이머 vs. 크레이머> 이혼 법정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현장에 여성은 메릴 스트립 뿐이었다. 이혼 상황에 놓인 여성 캐릭터를 남자들이 고민했다. 메릴이 자신의 생각을 영화에 투영하려 했지만, 결국 영화는 남성의 생각과 감정선을 따라 흘러갔다. 되돌아 보건대 우리나라에도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던 <크레이머 VS. 크레이머>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 여주인공이 가정을 버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이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였다. 

여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부정'했다고. 여자들을 주로 욕망, 욕구,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다고. 여성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소수였다고. <델마와 루이스>로 이름을 알린 지나 데이비스의 경우 영화배우가 되어 했던 첫 촬영부터 '란제리'를 입고 촬영을 했다. 지나 데이비스와 세대가 다른 클로이 모레츠라고 다를까? 십대였던 그녀에게 가슴이 작다고 '볼륨 브라'가 주어졌다. 심지어 <캐리>를 찍으며 '초경' 장면에서 남자 스텝들이 훈수를 두는 웃픈 상황이 발생했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이 산업의 핵심'이라는 농아닌 농처럼, 여성은 '객체'였고, '타자화'되었고, 주체성은 배제되어왔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은 호소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델마와 루이스>가 개봉되고 여성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며 화제가 되자 이제는 조금이라도 세상이 달라질까 했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 데이비스는  스스로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를 차려 미디어 속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피상적으로 보이던 '편견'과 '차별'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접근하고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 흥행했던 100편의 영화 중 85%가 남성 작가들에 의해 씌여졌다고 한다. 결국 남성들에 의해 남성들의 분노와 고뇌가 주로 '작품화'되고 있는게 현실인 것이다. <우먼 인 헐리우드>에서 등장하는 데이터들은 차별을 명시화한다. 대부분 2018년의 기준인 데이터들, 그럼에도 그 데이터 속에서 여성들은 차별받고, 편견의 대상이며, 소외되어 있다. 

구조적이며 내재화된 차별 
1980년대는 히어로물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80년대 영화 속 히어로들은 서부영화 속 히어로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과거 영화 속 히어로들을 답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는 대상인 안티 히어로들과도 동일했다. 자신의 남성성에 도전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었다. 

이런 '미디어'의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결정하고, 그 '메시지'에 의해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확산되게 된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남자들의 리그'였다. 여자들은 버림받는 애인이거나, 구조받는 희생자였고 아름다워야 했다. 

헐리우드 초창기는 지금과 달랐다. 무성 영화 시절 <귀부인과 승무원>은 여성이 감독을 하는 등 당시 여성들은 감독과 작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커지며  음향 기술이 도입되고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부유한 지배층 남성들의 시각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여성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팽배해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감독상은 2009년 캐서린 비글로그 단 한 명이었다. 역대 오스카 상 심사위원에 여성이 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고 다큐는 묻는다. 심지어 주요한 영화 평가 기관인 토론토 지수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들 중 77.8%가 남성이다. 2018년 헐리우드 상위 250 편 중 92%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2017년 여주인공 중심의 영화는 38.1%에 불과했다. 여성에게는 흥행에 기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감독들에게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차기작을 9년 후에야 할 수 있었다. 감독은 전투적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여성 감독들의 입지를 줄인다. 심지어 여성 촬영 감독은 더더욱 드물다. 여성감독, 여성 작가가 드문 헐리우드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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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으면 될 수도 있다 
어릴 때 보는 미디어 속 자신과 같은 성의 역할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내 미디어의 80%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유포'해왔다. 이런 '미디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대표적인 작품 중 11편 만이 소수자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배우 산드라 오는 처음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인종의 이야기를 다룬  <조이럭 클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전한다. 분명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걸 보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나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가치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반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개봉된 후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한 공주의 모습, 그리고 같은 해 개봉한 <헝거 게임> 속 여주인공으로 인해 양궁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이 105%나 증가했다고 한다. 

CSI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드 CSI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자 법의학을 배우는 여성의 비율이 증가했다. 그 결과 현재 현장 인력의 절반이 여성이 되었다고 한다. 섹스 어필하지 않은 여주인공에 소수 인종이 주인공인 <그레이 아나토미>의 등장 역시 쉽지 않았지만 파급력은 컸다. 

리즈 위더스푼은 150명의 남자 중 유일한 여자였던 현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성들에게 안전망은 없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건 위험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리즈 위더스푼은 '여성 혐오적'인 캐릭터를 두고 동료 여배우들과 경쟁하는 대신 스스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화하기 위해 제작사를 차렸다. 그녀가 만든 작품들이 흥행을 하며 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한 지평은 넓혀졌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도 흥행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80년대 유망했던 여성 감독들은 영화 현장에서 여성 권리의 확장을 위해 법적인 소송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여성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자발적 준수'라는 법적인 문턱을 넘어섰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정작 여성이 판사였던 연방 법원의 기각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감독, 조감독, 제 2조감독으로 이어지는 영화계 내에서 위계 질서에서 쉽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세상의 반인 그녀들의 존재처럼 영화 현장에서도 '반반'의 비율이 지켜지는 그 날을 향해 <우먼 인 헐리우드>는 목소리를 높인다. 


by meditator 2020. 8. 25. 15:41

EBS 국제 다큐 영화제가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그 사회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진실을 기록'하는 '다큐, 올해는 글로벌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다큐 내일을 꿈꾸다'라는 슬로건으로 8월 17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진행되고 있다. 

영화제는 경쟁 부문인 페스티버 초이스와 함께, 여성, 예술, 교육, 무형 유산 등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무형 유산' 부문에서는 우리나라의 씨름 등 세계 각국의 문화적 유산이 다뤄지고 있다. 그 중 <기생, 꽃의 고백>은 세상의 편견 속에 사라져 가는 '기생'의 문화적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 EBS

 

부산 박물관 앞에서 벌어진 '수영야류' 공연, 부산 수영구에서 전래되는 이 '탈놀이'가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래 권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기생들의 조합을 뜻하는 '권번'이 우리 민속 유산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수영야류 보존회장인 이상열 씨는 자신이 동래 권번에서 엄격한 교습 과정을 통해 '수영 야류'를 배웠던 시절을 회고한다. 교방 검무, 교방 승무 등등 우리가 지금 우리의 문화 유산으로 즐기고 있는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기 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는데 있어 기생들의 권번, 그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 '문화적 영향력'은 기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함께 묵살되고 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생 
김선부, 왕수복, 신일선, 김영월 등은 1930년대를 풍미한 기생들이다. 뛰어난 미모, 모던한 옷으로 당시 신문물이었던 '와인'과 커피'를 즐겼던 사람들, 기생하면 떠올리는 전통무가 아니라 탬버린을 들고 서양식 댄스를 앞서 도입했던 사람들, <봉황의 면류관> 등 당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캐스팅 1순위였던 사람들, 오늘날 우리가 '엔터테이너'를 생각하면 떠올려지는 것들을 수행한 당대의 문화인들이다. 

기생들은 시, 글, 그림, 노래, 춤의 전문가들이었다. 왕실에서 가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1패 기생으로, 일단 대중들을 상대로 가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은근자', 2패 기생으로 분류했다. 이들보다 낮은 3패 기생들이 몸을 파는 일을 했는데 이들로 인해 기생 전체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다. 

초창기 기생들은 예술 활동을 하는 예기들이 많았다. 공연 예술의 한 갈래를 담당했으며 근현대사 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문화계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기생들은 국산 장려 운동, 고아들을 위한 자선 공연 등에 앞장섰다. 

평양 기생학교에는 학생들이 200여 명이 넘었으며 서울에도 자체 학습 프로그램을 가질 만큼 예기로서 기생이 되는 과정에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침 10시면 나와 소리와 춤을 배웠으며, 장구, 춤, 소리는 기생으로서는 기본이었다. 한 달에 한번 시험을 봤고, 못하면 체벌을 당하거나 심하면 밥도 굶겼다. 만점을 받아야 비로소 기생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한 '수련' 과정을 거쳤다. 

이들 기생은 '권번'이라는 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다. 권번은 기생들의 이른바 '공연비'를 관리했으며, 의상, 코디 등을 담당하는 한편 어린 기생인 동기들을 키워냈다. 이런 과정 자체는 오늘날 '연예 기획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기생들의 권번은 서울이나 평양 뿐 아니라 부산, 군산 등에도 존재했다. 낮에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밤에는 공연을 하는 '명월관'은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그 명성을 누렸다. 심지어 도쿄에도 '명월관'이 있었다. 평양 기생이었던 노경월이 1929년에서 32년에 걸쳐 나카타초에 열었던 명월관은 단순한 요릿집이 아니었다. 영친왕의 집과 붙어있어 모종의 지원이 추측되는 명월관은 유학파, 독립투사 등  일본에 온 다양한  우리 지식인들의 교류와 정보 교환의 장이었다. 

부정당한 우리의 전통 문화, 기생 
일본 명월관에 대한 기록조차도 치밀하게 자료를 모은 일본 쪽 연구로 인해 알 수 있듯이 하지만 막상 당시 기생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한 시대의 문화인으로 풍미했지만 이후 사회에 퍼진 기생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인해 한때 기생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후손들을 의식해서 자신이 기생이었음을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예기라 할 수 있는 군산 소화 권번 기생이었던 장금도 명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제 90세 요양 병원에서 계셔야 할 정도로 노쇄해졌지만 자신을 기리는 공연에서 '춤출 때 보면 그렇게 예쁘다'는 그 옛날의 평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춤사위를 선보이신다. 

드센 사주팔자 때문에 기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장 명인은 아들을 홀로 키우며 잔칫집에 다니며 춤 공연을 다니기도 했지만 모습을 감춘 다른 기생들과 달리 '민살풀이' 명인으로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와도 같은 장금도 명인과 후학 대진대 신명숙 교수와의 관계는 예외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분야의 무형 문화재가 된 사람들치고 기생에게 배우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만, 모두 드러내어 기생들로 부터의 전수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기생이란 이유만으로 제대로된 능력자들이 제외되고 그보다 낮은 기량의 사람들이 문화재가 되기도 했던 것이 현실이다. 

저급한 일본 기생 문화가 들어오며 소비적이며 말초적인 저급한 접대 방식이 퍼진데다 1930년대 대동아 전쟁 당시 일본이 기생에게 가무를 금하고 접대를 하도록 했다. 이 때부터 기생을 '접대부'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문화적 담당자로서의 기생 이미지 대신 '접대부'라는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기생이었던 분들은 자신들은 '가무'를 담당했다며 자부한다. 기생들에게 전통 문화를 배웠던 사람들도 그 배움을 부인하기 보다 배웠으며 그 배움이 소중하다는 솔직한 시인이 필요하다. 엄연히 기생은 조선과 근대를 잇는 전통 문화의 담당자였다. '접대부'라는 후에 그들을 규정한 저급한 인식을 넘어 예술인으로 그들의 존재를 다시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다큐는 말을 맺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많은 전통 문화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형 유산으로 '기생'을 복기한 <eidf 2020 -기생, 꽃의 고백>은 의미가 있다. 

by meditator 2020. 8. 23. 01:15

눈에 멍이 들고 온몸이 퉁퉁 부은 여자 아이가 편의점에 나타났다. 지난 5월에 발생했던 창녕 여아 탈출 사건이다. 머리를 쇠몽둥이로 때리고 감금과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했던 이 사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아동 학대 사건, 2019년에만 43명의 아이들이 '가정 학대'로 인해 숨졌다. 2013년  6,796건, 2015년 11,715건,  2018년 24,604건으로 해마다 아동 학대는 늘고 있다. 

지난 1998년 부모가 남매를 학대, 결국 죽은 딸은 마당에 암매장하고 발견된 동생 영훈이는 다리미와 쇠젓가락으로 인한 상처가 있었던 '영훈이 남매 사건,', 그리고 이어진 1999년 소아암에 걸린 신애를 방치한 사건은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가정 문제에 사회가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던 '관습'을 뚫고 20년만에 아동 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유기와 방입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 아동학대 신고 1391이 개통되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아동 학대'에 나서게 된 것이다. 

 

 

국가적 조처는 아직 역부족 
그렇게 첫 발을 내딛은 국가적 조처는 2013년 칠곡 아동 학대 사건에서 방치한 친부에게 최초로 처벌을 했고, 2013년 갈비뼈가 16대 부러지도록 학대 당한 이서현 사건을 계기로 2014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 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5년 친 딸을 굶기고 때렸던 인천 여야 학대 탈출 사건을 계기로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법안이 발의되고 특례법이 만들어 졌지만 아동 학대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수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일선의 전문가들은 그에 따른 예산 부족과 인력 부족 등을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이직율이 30%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보호 기관도 부족하다. 동네 노래방 숫자보다도 적은 보호시설,  현재만 해도 8천 건 정도가 '보호' 절차를 밟고 있지만 정작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갈 '시설'은 태부족인 것이다. 결국 '구조'된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분리된 아이들 중 겨우 13%만이 ' 시설 보호'를 받고 있다. 재학대 발생율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예산 중 0.03%의 저열한 수준, 전문가들은 이는 '국가적 방치'라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대 발견 사례가 외국에 비해 1/3에 불과하다.  실제 학대 사례가 적은 게 아니라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려진 '암수 범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쉼터에 있는 20살 현석(가명)이는 4살 때부터 10여 년이 넘게 학대당했다. 삽으로, 소주병으로 맞았고, 변기에 머리가 쑤셔박혔다. '아빠를 죽여주세요'라며 기도했으나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집이 지옥인 아이들, 내 새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학대', 아이들은 가출을 하거나, 성인이 되어서야 지옥같은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회는 시선이 주목될 만한 사건이 벌어지면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언론도 이슈가 되는 사건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정작 그 '학대'당한 아이들을 누가 기르고 돌볼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아가, 왜 '학대'가 줄어들지 않는가, 어떤 상황에서 때리는가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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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이 훈육? 
학대의 시작은 어디일까? 학대 사건이 벌어지면 계부, 계모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대부분 학대를 하는 주체는 친부모일 경우가 78.5%이다. 가해 부모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고, 단 한 명도 내 아이가 미워서라고 안한다. 심지어 사랑해서 였다고 말한다. 

과도한 훈육이었다고 말하는 '학대', 말을 듣지 않아서, 거짓말을 해서, '학대'할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부모들의 '사고'에 자리잡은 생각은 아이의 몸은 아이의 것이 아니며, 언제든 부모가 손을 댈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다. 

다큐가 만난 평범한 부모들은 고백한다. 위험하게 놀때, 혹은 독박 육아 과정에서 아이들이 컨트롤이 안될 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게 된다고, 분노 조절이 안될 때가 있다고. 

체벌은 우리 사회 부모가 배운 유일하다시피한 훈육 방법이다. 하지만 막상 훈육보다는 감정이 올라와 스스로 감정이 조절이 안돼서 손이 올라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훈육은 즉각적 명령 준수 효과가 있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나의 훈육 방법이 옳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시 상황은 반복되게 된다. 결국 체벌 효과는 없다. 그러나 '체벌'만이 유일한 훈육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부모는 더 강한 체벌로 아이의 잘못을 다스리려 한다. 

과연 체벌이 훈육일까? 전문가들은 되묻는다. 이제는 동물도, 범죄자도 안맞는 세상에 왜 아이들이 맞아야 하냐고? 때리는 것만이 아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너때문에 못살겠다' 등등 부모들은 차마 타인에게는 입 밖에 내놓지 못할 말을 내 아이에게 한다. 상처주는 말 역시 정신적 학대다. 

스웨덴 역시 한때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1971년 3살 여아가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부모 및 그 누구라도 아이에 대한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했다.(1979)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대로 가르친다는 취지였다.  유엔아동 협약 보다도 10년 빨랐다. 

일찌기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어른보다 귀하게 보고 높게 대접하라 하셨다.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라 하셨고, 당연히 때리지 마라하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현재 여전히 우리 사회는 '훈육'이란 이름에 '체벌'이 아이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건 특별한 범죄가 아니다. 결국 '내' 아이를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정부는 지난 6월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자 나섰다. '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그간 법적으로 가정 내 체벌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어 온 조항이다. 훈육으로의 체벌 금지, '가정'이 세상 전부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만이 아니라 부모들의 '인식적 변화'가 확산되어야 할 시점이다. 



by meditator 2020. 8. 11. 15:38

지난 8월 1일 방영된 <코로나 200일의 기록 바이러스와 국가> 1부 병든 신세계를 통해 kbs1의 취재팀은 uhd카메라를 앞세워 세계 미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브라질 등 7개국의 코로나 19 현장을 담아냈다. 

코로나 19에 무방비하게 당하는 여러 국가에서는 입을 모아 대한민국의 사례가 등장했다. 발빠른 국가의 대처, 헌신적인 국민들의 참여로 그 어느 국가보다 신속하게 코로나 19를 '제압'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준 나라, 국민들 앞에서 여전히 '진실'조차 드러내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그 피해를 전가하는 많은 나라에 비하면 정말 우리나라는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하지만  그 '자부심'만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다큐는 덧붙인다. 1부에 이어 8월 2일 방영된 <바이러스가 묻다>에서는 지난 200일 동안의 주요 사건과 핵심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혁혁한 성과' 이면에 우리가 자족해서는 안될 '교훈'을 남기고자 한다. 

 

 

산술적 심각성보다 더한 심리적 불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사상 유례없는 감염병의 등장, 정부는 우한 교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산 인근에 교민들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일부 국민들과 아산 주민들은 반발했다. 민간 시설과 떨어져 물리적 위험성이 없는 상황, 하지만 산술적 심각성보다 백신조차 없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 속 공포는 훨씬 더 컸다. 이는 바이러스의 공습은 객과적 데이터를 넘어서 우리 사회를 '정신적 아노미의 상황'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정부의 발빠른 대처와 국민들의 협조로 코로나 19는 더 이상 확산을 멈춘 채 주춤했다. 28번 확진자 이후 더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정부는 위축된 경체 살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도 잠시 대구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신천지'라는 종교적 맹목성이 더해져 8126명까지 코로나 19의 대유행이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덮쳤다. 자택 대기 중 사망 환자가 등장하며 보건 의료 시스템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 다시 한번 정부와 국민들은 지혜를 모았다. 부족한 보건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대구 지역 환자 절반이 다른 지역에서 치료를 받게하는 한편, 중앙 연수원이 생활 치료 센터로 활용되며 보건 의료 시스템의 위기를 돌파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간 병원이었던 대구 동산 병원이 '이익' 대신 지역 코로나 '노아의 방주' 역할을 자처하며 이타적 결정으로 위기에 빠진 대구 보건 의료 시스템에 물꼬를 텄다. 

의병만으론 안된다. 코로나 팬데믹의 그림자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에 앞장섰던 전문가들, 자원 의료진들은 입을 모아 그런 일련의 대처 과정이 '운이 좋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를 두고 한 달이 넘게 대구 현장에 있었던 의료진, 매일 환자를 보러 갈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나섰던 사람들, 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 우리가 또 다시 이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에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지난 200일의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들에게 내려진 지침은 '무조건 희생하라'였기 때문이다. 

즉,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던 이유는 '헌신적인 의병'과도 같은 의료진들과 지역 의료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구'였기에 가능한 '운좋은 상황'도 놓쳐서는 안된다. 의대만 4곳, 다른 지자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병상 자원이 많았던 대구, 그럼에도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었다. 그 위기를 메꾼 건, '공식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자원 봉사'라는 비공식적 관계, 미약한 시스템을 '의병'들이 몸을 던져 막은 것이다. 그러기에 '시스템'의 구축되지 않는 한 다시 또 이런 운좋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고, 또 다시 있을 지도 모를 이런 상황에 '정규군'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자원했던 의료진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그렇게 의병과도 같은 헌신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우리 보건 시스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도 정신병원에서 대거 발병한 코로나 19, 대남 병원으로 부터 시작된 코로나 19에 대해 국민들은 그 병원을, 그곳에 입원한 사람들을 우리 사회에 대한 '악마화된 가해자'처럼 여겼다. 당장에 위협적인 코로나 19 감염 사태에 대해 정신 질환 환자에 대한 '수용소'와도 같은 장기 입원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 볼 '여지'는 없었다.

'수용소'와도 같이 환자들을 한 방에 다수 기거하게 하는 등 정신 질환 환자들에 대한 장기 입원 문제는 그간 우리 의료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수십년된 문제였지만 사회적 관심은 이번에도 없었다. 심지어 이들에 대해 소독업체도, 도시락 업체도 거절을 하는 등 '터부'만이 강하게 작동하며 '코로나 19'에 얹혀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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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지 않았던 감염
정신 병원에서의 집단 발병에서 숨겨져 있는 편견이 드러나는가 하면, 구로 콜센터와 물류 센터 집단 발병은 코로나 19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시작은 한 사람의 거짓말이었다. 확진자가 줄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느슨해 질 시점 이태원 클럽에 다녀간 사람들로 부터 150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감염병 관리 지원단은 접촉자를 파악하고 방역을 통해 더 이상의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학원 강사로 일했던 경력을 숨긴 확진자의 거짓말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한 학원 강사의 거짓말로 부터 시작된 집단 감염은 올해 수능을 앞둔 수험생에서 부터 대형 물류 센터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스크도 잘 쓰고, 장갑도 잘 끼고 공공시설 이용도 안했는데 억울하다'는 물류 센터 확진자, 결국 그녀의 감염은 아이와 남편까지 이어졌고 결국 남편은 생명의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152명의 대규모 감염, 하지만 이 결과에 대해 이 대형 물류 센터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인다. 코로나 19로 인해 확산된 '언택트'한 생활, 물류 센터의 배송 물량은 180만 건에서 300만 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결국 시간에 맞춰 배송을 하기 위해 빨리 빨리 실적 위주의 배송 과정이 진행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역에 이익은 국민 모두가 누린다고 정부는 장담했지만 '호구지책'이 우선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구로 콜센터 감염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탄 화물 엘리베이터로 부터 시작된 대규모 감염,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콜센터 업무는 '사회적 격리'와 '언택트'를 표명한 코로나 19 방역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일 우리가 '성공'이라 자찬한 코로나 19에 대한 성공적인 방역 에는 보건 의료적인 측면과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두 얼굴이 있다고 지적한다. 청도와 대남 정신 병원의 대규모 감염 사례를 통해 보건 의료 방역 시스템의, 그리고 쿠팡 물류 센터와 구로 콜센터의 집단 감염에서는 사회 경제적인 시스템의 그림자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피해는 언제나 그랬듯 취약 계층에 집중되었다. 시스템의 틈, 그 틈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서는 언제 어디서든 또 다시 대규모, 집단 이란 황망한 결과를 받아들 수 밖에 없다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by meditator 2020. 8. 5. 16:25

2019년 12월 3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시에서 원인모를 질병이 발명했다. 해가 바뀌어 1월 9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 19 발생 200일, 지금까지 코로나 19에 걸린 사람은 1610만 명, 아직도 하루에 20만 명의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19, 21세기의 판도를 바꾼 감염병, 그 '팬데믹' 현장의 기록을 kbs가 전한다. 

국가는 어디에 있나? 
'기껏해야 감기 정도'라고 장담했던 자이르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 '브라질에 바이러스는 존재치 않는다'는 정부는 마스크를 쓰기를 권고하거나 외출을 자제하도록 권유하지 않았다. 심지어 3월 15일에는 그런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관제 시위까지 등장했다. 5월 11일에는 창궐하는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보건부와 협의도 하지 않은 채 가게들의 영업 재개를 허용했다. 

그런 안이한, 거기에 한 술 더 떠 대기업을 위한 경제 살리기에만 정부의 대처는 결국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누적 확진자 270만 명, 전체 도시 중 98%가 코로나 19에 노출되는 통제 불능 상황을 맞이했다. 특히 그 피해는 빈민촌에 집중됐다. 빈민촌의 사망자는 방치되었다가 27시간이 지나서야 수습되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느는 사망자로 인해 숲을 밀고 집단 매장지를 긴급하게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자신이 기적을 행할 수는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더 이상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를 견딜 수 없는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탈리아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지난 2월 이탈리아 북부에서 원인을 알수 없는 환자들이 급증한 이래 보건당국은 상황을 낙관하며 봉쇄나 출입국 제한 등 대처에 늑장을 부렸다. 치료 장비 부족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거나, 노인 환자들의 호흡을 돕기 위한 헬멧을 벗겨 다른 환자에게 씌워주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 상황에 봉착했다.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은 성당에 누워있고, '죽어도 괜찮은 나이는 몇 살인가'라며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정부에 항의했다. 

세계 제 1의 국가면 뭐하나 
브라질과 이탈리아 상황이 보여준 것은 결국 전염병이라는 비상 상황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역할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것은 바로 세계 제 1의 국가라 큰 소리치던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혀 문제 없어요'라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3월 22일 뉴욕시가 봉쇄되었다. 의료 시스템은 속수무책이었다. 장비도, 병상도, 관리할 사람도 없었다. 시신을 우선 보관할 냉동 트럭까지 등장했다. 가족이 없는 시신들은 뉴욕 인근 작은 섬에 매장당했다. 

이게 세계 제 1의 국가에서 지난 몇 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여행 유투버인 발레리는 안전하니 밖에 나가도 된다는 대통령의 감언이설에 맘 놓고 해외 여행을 하다 코로나 19에 걸렸다. 책임감없는 리더쉽은 그 피해가 바로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된다. 급증하는 환자, 대처 능력이 없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성급하게 하이드락시 클로로퀸의 치료제로서의 효과를 장담했다. 그러나 입증되지 않은 약품이었다. 반면 발 빠른 대처의 기본이 되어야 할 진단 키트의 승인이 늦어져 기하급수적 감염을 조장했다. 데이터와 과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 결국 15만 명의 사망자, 전세계 코로나 19 환자  5명 중 1명이 미국인이라는 최대 감염국의 오명을 받아들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정책'이 중국민의 피해를 막지 못했다. 12월 30일 우한 건강위에 원인모를 질병 발생이 보고된 이래, 1월에 첫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춘절과 겹쳐 대처가 늦었다. 1월 23일 봉쇄된 공항, 하루 아침에 1108만 명이 도시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코로나 19 확산 과정에서 사망자는 속출했지만 전염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던 의사는 외려 거짓 유포 혐의로 곤혹스런 처지에 바졌다. 확진자 발표 21일 후에야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정부, 이에 대해 정부는 지방 정부에서 중앙 정부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의 권위주의적 관료 시스템이 발빠른 대처를 막았다며 뒤늦은 변명을 한다. 거기에 검열과 투명성 부재의 공산당의 의사 결정 과정이 피해를 가중시켰다.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한다. 시진핑은 3월 10일 우한을 방문하여 승리를 선언했지만 3주만 중국 정부가 일찍 행동했어도 확진자의 95%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무엇이 중요한가? 
'생명을 지켜줘', 일본 국회 앞 시위 대열에 참석한 일본 시민들이 든 피켓의 문구이다. 기업 캠페인에 돈을 몰아주고, 올림픽 유치에 목을 거는 정부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삶이 위협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늑장 대처와 소극적 검사. 이것이 일본 정부가 코로나 19에 대한 대처이다. 3월 6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 승무원 2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18일간 700여 명이 될 때까지 방치했다. 이 사태를 보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어떻게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저런 일이! 

일본에서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으려 하지 않으면 코로나 19 감염 확진을 받기 어렵다. 37.5도 이상 발열 나흘 이상이거나 폐렴 증상, 동맥혈 산소 포화도 93% 이하 등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현저하게 낮은 검사 건수, 당연히 확진자 수가 낮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확진자 수를 의도적으로 낮추려는 일본 정부의 얕은 수에도 불구하고 7월말 도쿄 일일 확진자 수가 1000 명을 넘어섰다. 시민들은 정부가 재해마저 돈으로 사려 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게임의 카드처럼 불성실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스웨덴의 경우는 정부가 코로나 19에 대해 다른 국가들과 다른 실험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스웨덴 정부, 봉쇄나 영업 금지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스크나 손소독제를 구하기 조차 어렵다. 스웨덴에서는 외려 마스크를 쓴 사람을 무서워할 지경이다. 자국의 의료 역량을 고려하여 선제적 방역 대신 선별적 방역을 실시하고, 의료계가 감당할 수준에서 노인과 위험 집단을 보호해 왔던 스웨덴 정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 19의 환자가 줄어가고 있는 즈음에도 10만 명당 확진자가 100 명을 넘어 독보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5월에만도 70%의 신뢰를 얻었던 공공 보건 정책은 이제 그 신뢰도가 57%로 떨어진 상황, 조금 더 일찍 검사를 실시하고, 조금 더 일찍 마스크를 섰더라면 조금 더 국민들의 피해를 줄이지 않았을까라는 국민들의 실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초기에 감염자 수 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릴 시 당연히 시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를 담보하여 이후 감염병 정책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행히도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가 입을 모아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이다. UHD 카메라로 생생하게 전한 팬데믹의 현장, 결국 그곳에서 만난 건, '국가'이다. 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코로나 19 팬데믹, 그 과정에서 국가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국가의 늑장 대처, 혹은 책임의 회피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감염병이라는 공통의 적, 하지만 국가의 선택이 국민들의 운명을 갈랐다. 

by meditator 2020. 8. 3. 01:49

나이들어 가며 제일 두려운 것이 무얼까? 지난 2018년 89세의 일기로 작고한 시인 도널드 홀의 마지막 저작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이다. 100세를 사는 것이 더 이상 기적이 아닌 것이 되어가는 세상에서는 죽는 것보다 늙어가는 과정이 화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멀쩡하게 정신줄을 놓지 않고 늙어가는 것이.

실제 중장년층이 암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치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약 75만 명으로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누군가의 현실이며,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치매, 그와의 '현명한 동행'을 모색하기 위해 ebs 다큐 프라임이 치매 합창단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난 2011년 뉴욕 대학 랭곤 정신병원 신경 정신과 메리 리틀먼은 치매를 앓고 있는 뉴욕 시민을 위한 합창단 <언포게터블스>를 창단했다. 정상적으로 말을 하기 힘든 환자들도 자신들이 익숙하게 불렀던 노래는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9월 20일 치매 극복의 날을 기념하여 보건복지부와 중앙 치매 센터 주최로 '치매 극복 실버 합창대회'가 열리고 있다. 

 

 

예전에 불렀던 동요나 대중가요 등 추억 속의 노래는 기억 속에 묻혀져 있던 추억을 생생하게 소환해 낸다. 실제 2~30대 때 즐겨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했을 때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환기되듯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환자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줄여준다고 한다. 이렇듯 음악 요법은 치매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메모리즈 합창단, 그 무모한 도전
서울, 부산, 경기,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디션 지원자 중 뽑힌 38명은 모두 치매이거나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를 앓고 있다. 3개월을 기한으로 이  메모리즈 합창단의 목표는 2020년 2월 제주에서 개최되는 '제주 국제 합창제' 오프닝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씩 모여, 독창곡 <과수원길>과 합창곡 <사랑해>와 <닐리리 맘보>을 연습한다. 이한철 씨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박자와 음정에 맞춰 부르고, 외워야 함은 물론 노래에 맞춰 율동까지 해야하는 험란한 과정, 과연 38명의 합창단원들은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쉽지 않았다. 예전에 불렀던 노래였지만 기억을 잃은 합창단원들에게 노래는 따라부르기 조차 생소한 곡처럼 들렸다. 겨우 노래를 익혀도 그 다음에 가사를 외우는 것이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노래'는 기적을 낳았다. 폭압적인 남편과 살며 웃음을 잃었고, 남편이 죽은 후 우울증과 치매를 앓게 된 합창단원은 노래를 부르며 잃었던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합창단원이 되었을 때 굳어 있기만 했던 얼굴이 이젠 미소로 가득찼다. 음악에 맞춰 저절로 어깨도 으쓱으쓱, 그저 노래가 아니라 잃었버린 삶의 재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잃어버린 걸 찾은 분은 또 있다. 젊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었지만 30대 때 사고로 앓게 된 뇌병변으로 오랫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며 살았었는지조차 망각하고 살아왔던 합창단원은 합창 연습을 하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찾았다. 아내와 함께 악기점에 들러 기타를 연주해본 단원에게 합창단의 시간은 잃었던 자신을 찾는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50대의 나이에 치매를 앓게된 합창단원은 <사랑해>라는 음악의 기적이었을까.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부엌에 들어선다. 자신을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이기로 한 것. 미역과 고기를 넣어 볶은, 국물이 없는 미역국을 마련하여 남편 앞에 마련한 생일상, 남편은 그 상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록 국물이 없어도 맛은 예전이 아내가 끓여주었던 맛이라는 남편, <사랑해>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물론 음악을 통해 웃음을 찾고, 젊은 날의 기억을 소환했지만 그 시간이 용이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래를 익히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는 시간, 거기에 율동까지 더해지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안무 지도하는 선생님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할 수 밖에 없는 도무지 오른 손, 왼손의 순서와 박자를 맞추는 것이 합창단에게는 불가능한 도전같아 보이는 상황이다. 거기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 합창단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던 반장님이 그만 쓰러지시며 합창단의 여정을 중도에서 하차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전세계를 급습한 코로나 팬데믹이다. 3개월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합창제의 오프닝 무대에 서기 위해 강행군을 했던 메모리즈 합창단이었지만 대부분의 노인인 구성원들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대회 참가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제는 엇박자라도 율동까지 익힌 합창단원들의 시간이 아까운 제작진은 한 명 한 명 합창단원들을 모셔 촬영을 하고 이들을 한 영상으로 재편집하여 메모리즈 합창단 공연을 완성했다. 

 

 

그새 기억이 흐려져 영상으로 찾아온 공연 속 자신을 헷갈려 하기도 하고, 조만간 그 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추억이지만 함께 했던 그 시간은 합창단원 자신과 가족들에게 다시 없을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노랫말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던 처음, 과연 저분들이 무사히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비록 영상 속에서지만 처음 입어보는 교복을 입고 율동에 열심히 노래를 맞추어 부르는 메모리즈 합창단의 기록은 '치매'라는 한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다. 

실제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지난 2018년 ebs다큐 프라임 <알츠하이머 보고서>를 통해 보여지듯이 치매는 영양과 환경, 스트레스, 운동 등의 관리를 통해 예방과 진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메모리즈 합창단>의 시도 역시 개인과 가족이 짊어지는 '고통'스런 환경에 대한 '제고'를 하고자 한다. 합창단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집에 있다가 이렇게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좋다고. 치매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메모리즈 합창단>과 같은 시도가 좀 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20. 7. 2. 23:50

ebs 다큐 프라임은 지난 6월 8일에서 부터 10일까지 3부작으로 <혼돈 시대의 중앙 은행>을 다뤘다. 왜 중앙은행이었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삼만리 여행을 떠났던 곳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고대 경제학과 김진일 교수와,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교수가 찾았다. 

이탈리아에 살던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아르헨티나, 넓은 국토, 풍부한 자연 자원,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아르헨티나는 뉴욕만큼 꿈의 땅이었다. 그러던 아르헨티나가 한 해 54%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 상승을 기록하며 국가 부도 선언만 8차례나 하고 있는 위기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부로 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통화량 조절에 실패한 중앙 은행이 있다. 

 

 

중앙 은행이 뭐길래? 
중앙 은행이 왜 중요한 것일까? 그건 바로 물가, 그리고 그 물가를 조절할 수 있는 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 때문이다. 미 연방 준비 위원회가 만든 '금리 게임', 금리를 소수점 아래로 약간의 변화를 주기만 해도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요동친다. 즉, 중앙 은행이 어떤 금리 정책을 취하는가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라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 '중앙 은행'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되는 건 바로 글로벌 경제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는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기 때문이다. 

평소 수 천명의 사람들로 북적이던 뉴욕 타임스퀘어가 유령 도시처럼 조용하다. 당연히 경기는 급격하게 냉각되었고, 실업률이 대공황 수준보다 심각하다. 미국만이 아니다. 강력한 도시 봉쇄 정책을 펼친 중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하루 3,4천 위안을 팔던 가게가 하루 몇 백 위안의 장사를 하기도 쉽지 않다. 심리적 공포로 소비가 위축되고, 8천만 개에 달하던 법인 회사 중 10%에 달하는 8백만 개가 치명적인 위기에 빠졌다. 하나의 법인에 3만 여 명의 사람들이 고용되었다 했을 때 1600~ 2000 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판이다. 

일본의 경우 47개 현이 비상 사태를 선언했다. 장기간 경기 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일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6%에 달했다. 가계 부채 비율이 높은 우리 나라, 코로나 팬데믹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임시직들에게 더욱 심각한 고용 충격을 안기며 불안한 가계를 흔든다.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 고용직 노동자의 경우 가계 지출이 어려워질 때 제일 먼저 끊는 현실에, 수수료를 내는 고용의 특수한 형태로 인해 경제 위기를 고스란히 교사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경제에 대한 위기감은 imf 이후로 가장 높아졌고 이런 불안감은 0.1%라는 역대 최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초래했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ㅣ 저성장, 저물가의 길고 긴 터널이 예견되는 상황, 이에 한국 은행은 앞서 기준 금리를 0.75%로, 다시 0.5%로 인하, 이렇게 기준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더 이상 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자 국고채 매입 등 다양한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를 늘리는 '양적 완화' 카드도 고민하고 있다. 

'양적 완화'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대응하여 주요 각국의 주된 경제적 정책이다. 역대 최저 이자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2조2천억을 쏟아부으며 경기 부양의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총량만 정해놓고 높은 금리를 받았던 환매조건부 채권(RP) 매입에 12조 이상을 쏟아부으며 경기 회생을 노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채, 은행채, 주식까지 중앙 은행이 나서서 매입하며 양적 완화에 앞서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미국은 경우 기축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며 공격적으로 자국의 경기 침체에 대응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달러 정책은 달러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고, 그 대표적인 국가가 앞서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이다. 

 

 

'빵 좀 사줄 수 있나요?'
이제 거지들이 돈 대신 빵을 사달라고 한다는, 한때 복지 국가 반열에 올랐던 아르헨티나, 원자재 붐으로 국가 재정이 넉넉해졌지만 인프라를 늘리는 대신, 공무원을 늘리고, 에너지, 가스 등에 보조금을 늘리는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 적자가 늘어났다. 그를 상쇄하기 위해 들여온 외채는 결국 페소 가치의 하락을 결과했고 높은 인플레로 국민 3명 중 1명 꼴인 340만이 빈곤층이 되어버린 국가 부도의 현실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김포에서 수출입 장난감 업체를 하는 지훈 씨, 한대는 자체 생산 공장을 가졌지만 이젠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훈 씨는 달러로 거래를 하기에 환율의 폭격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1200원에서 1290원으로만 올라도 90원의 손실분을 떠안아야 하는 수출입 업체의 현실, 그럼에도 가격 경쟁력 때문에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바로 기축 통화 달러의 글로벌 시대의 현장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시대 중앙은행들은 '양적 완화' 외에 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중국의 중앙 은행은 금 매입에 나서고 있다. 달러를 대신할 대표적 안정적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 그래서 경기가 침체되면 사람들을 금 매입에 나선다. 중국만이 아니다. 전세계 중앙 은행들이 금 매입양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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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곧 기회
또 다른 방식으로 중국은 위안화와 1;1 호환되는 디지털 위안화를 추진 중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앙 집중식 금융 시스템에 반발하여 등장한 분산 원장(블록 체인) 기술인 비트 코인, 하지만 1분만에도 가격이 등락하는 엄청난 변동성으로 인해 '신뢰'성 있는 대안 화폐가 되고 있지 못하다. 이런 비트 코인의 불안정성을 보완하여, 현재 유통되는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 디지털 화폐의 발행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정책은 다양한 포석을 지니고 있다. DCEP, 즉 디지털 전자 화폐 결제 시스템은 국가가 돈의 흐름을 들여다 볼 수 있어 금융 시장의 중앙 통제가 용이한 방식이다. 거기에 위안화를 디지털 기축 통화의 선두 주자로 하여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에 대응하고자 하는 야심 또한 내포되어 있다. 

중국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디지털 화폐를 시도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석유가 폭락으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가 그 주인공이다. 화폐 가치 몰락으로 학교에 선생님이 떠나가는 상황, 그래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미 신뢰성을 잃어버린 현실 화폐 대신 공무원이나, 은퇴 공무원들에게 연금대신 '페트로'라는 디지털 화폐를 나눠주어 새로운 DCEP 시스템을 시험해 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 이에 중앙 은행은 '양적 완화' 카드까지 내밀며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해내는 정책을 쓰는 한편, 또 다른 한편에서 그 위기의 상황을 미래에 대한 포석으로 삼기 위해 디지털 전자 화폐 시스템 도입등의 신기술을 시험해 보고 있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미국의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 불황의 뒤에는 중앙 은행의 '실수'가 있다고 단언한다. 미 연방 준비위원회는 금리를 내려도 불확실한 판에 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 정책을 펼치는 한편, 은행들의 파산을 방치하며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산 시장 버블이 붕괴되던 90년대 초반 일본 중앙 은행이 금리를 즉각 인하했다면 일본 경제가 그토록 긴 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통화 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중앙 은행의 정책이 한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일수록 그 '키맨'의 역할은 더욱 부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아르헨티나의 사태에서도, 베네수엘라의 위기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중앙 은행의 '독립성'이다. 2009년 정부의 화폐 발행에 반대하던 중앙 은행장을 해고해버린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종종 미국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미 연방 준비위원회 의장의 '권위'가 바로 중앙 은행의 독립성을 대변한다. 



by meditator 2020. 6. 24.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