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이들어 가며 제일 두려운 것이 무얼까? 지난 2018년 89세의 일기로 작고한 시인 도널드 홀의 마지막 저작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이다. 100세를 사는 것이 더 이상 기적이 아닌 것이 되어가는 세상에서는 죽는 것보다 늙어가는 과정이 화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멀쩡하게 정신줄을 놓지 않고 늙어가는 것이.
실제 중장년층이 암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치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약 75만 명으로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누군가의 현실이며,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치매, 그와의 '현명한 동행'을 모색하기 위해 ebs 다큐 프라임이 치매 합창단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난 2011년 뉴욕 대학 랭곤 정신병원 신경 정신과 메리 리틀먼은 치매를 앓고 있는 뉴욕 시민을 위한 합창단 <언포게터블스>를 창단했다. 정상적으로 말을 하기 힘든 환자들도 자신들이 익숙하게 불렀던 노래는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9월 20일 치매 극복의 날을 기념하여 보건복지부와 중앙 치매 센터 주최로 '치매 극복 실버 합창대회'가 열리고 있다.
예전에 불렀던 동요나 대중가요 등 추억 속의 노래는 기억 속에 묻혀져 있던 추억을 생생하게 소환해 낸다. 실제 2~30대 때 즐겨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했을 때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환기되듯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환자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줄여준다고 한다. 이렇듯 음악 요법은 치매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메모리즈 합창단, 그 무모한 도전
서울, 부산, 경기,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디션 지원자 중 뽑힌 38명은 모두 치매이거나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를 앓고 있다. 3개월을 기한으로 이 메모리즈 합창단의 목표는 2020년 2월 제주에서 개최되는 '제주 국제 합창제' 오프닝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씩 모여, 독창곡 <과수원길>과 합창곡 <사랑해>와 <닐리리 맘보>을 연습한다. 이한철 씨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박자와 음정에 맞춰 부르고, 외워야 함은 물론 노래에 맞춰 율동까지 해야하는 험란한 과정, 과연 38명의 합창단원들은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쉽지 않았다. 예전에 불렀던 노래였지만 기억을 잃은 합창단원들에게 노래는 따라부르기 조차 생소한 곡처럼 들렸다. 겨우 노래를 익혀도 그 다음에 가사를 외우는 것이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노래'는 기적을 낳았다. 폭압적인 남편과 살며 웃음을 잃었고, 남편이 죽은 후 우울증과 치매를 앓게 된 합창단원은 노래를 부르며 잃었던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합창단원이 되었을 때 굳어 있기만 했던 얼굴이 이젠 미소로 가득찼다. 음악에 맞춰 저절로 어깨도 으쓱으쓱, 그저 노래가 아니라 잃었버린 삶의 재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잃어버린 걸 찾은 분은 또 있다. 젊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었지만 30대 때 사고로 앓게 된 뇌병변으로 오랫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며 살았었는지조차 망각하고 살아왔던 합창단원은 합창 연습을 하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찾았다. 아내와 함께 악기점에 들러 기타를 연주해본 단원에게 합창단의 시간은 잃었던 자신을 찾는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50대의 나이에 치매를 앓게된 합창단원은 <사랑해>라는 음악의 기적이었을까.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부엌에 들어선다. 자신을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이기로 한 것. 미역과 고기를 넣어 볶은, 국물이 없는 미역국을 마련하여 남편 앞에 마련한 생일상, 남편은 그 상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록 국물이 없어도 맛은 예전이 아내가 끓여주었던 맛이라는 남편, <사랑해>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물론 음악을 통해 웃음을 찾고, 젊은 날의 기억을 소환했지만 그 시간이 용이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래를 익히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는 시간, 거기에 율동까지 더해지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안무 지도하는 선생님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할 수 밖에 없는 도무지 오른 손, 왼손의 순서와 박자를 맞추는 것이 합창단에게는 불가능한 도전같아 보이는 상황이다. 거기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 합창단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던 반장님이 그만 쓰러지시며 합창단의 여정을 중도에서 하차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전세계를 급습한 코로나 팬데믹이다. 3개월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합창제의 오프닝 무대에 서기 위해 강행군을 했던 메모리즈 합창단이었지만 대부분의 노인인 구성원들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대회 참가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제는 엇박자라도 율동까지 익힌 합창단원들의 시간이 아까운 제작진은 한 명 한 명 합창단원들을 모셔 촬영을 하고 이들을 한 영상으로 재편집하여 메모리즈 합창단 공연을 완성했다.
그새 기억이 흐려져 영상으로 찾아온 공연 속 자신을 헷갈려 하기도 하고, 조만간 그 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추억이지만 함께 했던 그 시간은 합창단원 자신과 가족들에게 다시 없을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노랫말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던 처음, 과연 저분들이 무사히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비록 영상 속에서지만 처음 입어보는 교복을 입고 율동에 열심히 노래를 맞추어 부르는 메모리즈 합창단의 기록은 '치매'라는 한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다.
실제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지난 2018년 ebs다큐 프라임 <알츠하이머 보고서>를 통해 보여지듯이 치매는 영양과 환경, 스트레스, 운동 등의 관리를 통해 예방과 진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메모리즈 합창단>의 시도 역시 개인과 가족이 짊어지는 '고통'스런 환경에 대한 '제고'를 하고자 한다. 합창단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집에 있다가 이렇게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좋다고. 치매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메모리즈 합창단>과 같은 시도가 좀 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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