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과 2일 양 일에 걸쳐 ebs다큐 프라임은 3.1 특집으로 <후손> 2부작을 방영하였다. 그 중 1회, <그날 이후>는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 9명이 전하는 '독립 운동'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9명의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나이도, 사회적 위치도, 경험도 다른 이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후손들이 전하는 3.1 운동 
송대관, 우리에게는 '쨍하고 해뜰 날'이라는 대중 가요로 익숙한 가수이지만 전라북도 정읍에서 삼일절 전야제에 초대를 받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장터에서 독립선ㅇ너서 수천만 장을 나눠주다 일본군에 잡혔다. 

3.1운동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1678만 명, 그 중 200만의 사람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 쓴 백암 박은식 선생의 기록이다. 잊혀질 뻔한 기록, 그 동포들이 흘린 피의 역사를 선생은 기록했다. 박은식 선생의 그 역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건 85세를 맞이한 광복회장을 역임한 손자 박유철이다. 

200만의 사람들이 나선 만세 운동을 보고 암중모색하던 김구 선생이 '만주행'을 택하셨다. 증손자 김용만이 전하는 말이다. 1919년 10월 상해 임시 정부에 김구 선생이 합류하고 11월 의열단이 결성되었다. 

무혈 운동이었던 3.1 운동은 일본군의 총칼에 짓밟혔다. 운동의 과정은 뜻있는 선각자들에게 '다른 방향'을 모색하도록 했다. 동포들이 무참히 파리목숨처럼 희생되는 과정을 보며 젊은 지식인들은 분노했고 '유혈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열단', 김원봉은 2기 단장이었고, 그 이야기를 외조카 김태영이 전한다. 
의열단은 유혈 투쟁의 대상을 일본 고위급과 동양 척식주식회사, 그리고 친일파로 정했다. 그들을 암살하여 세상에 자신들의 뜻을 알리고자 하였다.

젊은 지식인들만이 아니었다.   백안 박은식 선생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노인 연맹단'을 조직했을 당시가 이미 61세였다. 46세에서 70세 이하 '노인'들이 결집한 단체, 그 중 한 명인 강우규 지사가 1919년 9월 사이토 총독이 탄 마차에 폭발물을 던졌다. 

한편 유림의 대표였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이야기는 손녀 김주 씨의 육성으로 전해진다. 김창숙 선생은 3.1운동 당시 33인의 대표에 참여할 뻔 했지만 위중한 어머님의 병환으로 인해 때를 놓쳤다. 이를 안타까워 하던 김창숙 선생은 137명 유림의 뜻을 모아 파리 평화회의에 탄원서를 보내고자 하였다. 

' 우리 한국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3천리 강토와 2천만 인구로써 4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이다'로 시작된 탄원서는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하며 
그 총칼에 맞서 맨주먹으로 싸울 것이다'라는 결의를 담았다. 이 탄원서를 무사히 전하기 위해 노끈을 만들어 짚신을 삼었던 선생은 물에 젖을까 짚신을 머리에 올리고 나루를 건넜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김주 여사는 전한다. 

파리 평화에서 우리 독립의 의지를 천명할 의지를 이루지 못한 선생은 독립 자금을 모으는데 앞장 섰다. 당시 부자들에게 찾아가 총을 대고 독립 자금을 당당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의 추천을 받은 나석주 열사는 김창숙 선생을 만나 국내에 잠입했다. 식산 은행에 폭탄을 투척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이미 거기서 실패를 예감한 나석주 열사는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동양 척식회사로 가서 문 앞의 일본 경부를 죽이고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리고 6연발의 총으로 일본군들을 쏘고 스스로 자결했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며 나석주 의사가 하신 단 한 마디의 말씀은 '나는 나다', 이를 이제는 75이 된 그의 유일한 외손자 김창수 옹이 전한다.



 

 
후손들의 고단한 삶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들을 던졌던 선현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선택이었기에 '제가(齊家) 전혀 할 수 없었다. 돌보지 않은 '제가'의 무게는 고스란히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되었다. 

가장인 어른들이 계시지 않은 독립운동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에 시달렸다. 송영근 씨 손자인 송대관씨는 굶고 살았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자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독립후손들의 삶이 다 비슷하다는 걸 알게되었다고 한다. 김원봉 선생의 손자는 보육원에 보내질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어린 그의 꿈은 배고프지 않는 나라로 가는 것, 20살 때 미국 행을 선택했다.

가난만큼 자손들을 힘들게 했던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김구 선생의 차남 김신 씨는 아버지가 보고싶어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우표를 뜯어 그 우표에 묻었을 아버지의 침 냄새를 맡으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증손자 김용만 씨는 목이 메어 전한다. 

가난하고 그리움에 사무쳤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후손들은 자신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후손임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태인에서 열리는 3.1운동 전야제에 초대를 받는 송대관씨는 세상이 자기로 하여금 대단한 집안의 후손임을 일깨워주었다고 전한다. 

김용만 씨는 집안에서 말썽을 부리면 벌이 들어가 백범 일지를 읽는 것이었다고 추억한다. 어린 맘에 백범 일지가 두꺼워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 두꺼운 백범 일지의 내용이 평생의 자랑이자, 평생의 무게라고 말한다. 후손들은 잊지 않으려 애쓰고 선현들에 대한 말할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직계의 자손들은 이제 모두 그들의 '선친'보다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 김창숙 선생의 딸 김주 여사는 자신의 기억이 흐트러지기 전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자 매일 기록을 한다.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 이관술 선생은 동덕 여고 선생님으로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영향을 받아 꺼져가던 항일 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로 문민정부가 될 때까지는 그 이름조차 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우리 독립운동사의 그늘이다. 






by meditator 2021. 3. 4. 15:06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 7조 1항 


아이를 낳았을 때 늦게 출생 신고를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출생한 아이가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 출생 신고,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홍길동이 부모님을 부모님이라 부를 수 없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너무도 절벽 앞에 선듯 막막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내 아이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도와주기는 커녕 제대로 밥벌이 하며 살아가기 조차 힘들기도 하다. 어느 나라일이냐고?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와 자립 사이의 딜레마 
미혼모, 이 단어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혹 당신의 선입견은 이 단어를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 살 먹은 지윤이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고 엄마에게 묻는다. 미혼모가 나쁜 뜻이냐고. 그런 지윤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멋있는 거라고. 왜냐하면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가 지윤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 키우는 일, 바로 그 멋있는 일을 한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지만 아직도 받아쓰기가 서툰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치는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는 27살이다. 딸 지윤이에게 멋진 일이라고 했던 일, 지윤이를 낳기로 결심한 10년전 그 날 이후, 하린 씨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대출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미혼모 지원 단체와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냉장고, 세탁기, 옷장까지 하린 씨네 집의 모든 게 지원 물품이다. 하린이와 엄마가 먹는 것도 대부분 지원된 것이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딜레마'이다. 중위 소득( 총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52%를 기준으로 2020년 1,555,830원이다. 최저 임금 기준으로 봤을 때 한 달에 1,822,480원인 상황에서 최저 임금 수준에 조차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현실이 이와 같다 보니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외려 지원이 깎인다. 지윤이 엄마만이 아니다. 많은 한 부모 가정들이 복지와 자립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린 씨는 현재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을 낳은 일이 멋진 일이 되기 위해, 아이가 보기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린 씨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만약 하린 씨가 취업을 하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 것이다. 당장 지윤이의 학업을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의 도움도 끊어진다. 지윤이를 키우며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기본권만이라도 인정해주세요~
그래도 지윤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받은 하린 씨는 괜찮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엄마들과 달리,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의 경우 출생한 아이의 주민번호를 '쟁취'하는 과정마저 쉽지 않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만 해도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법'은 여전히 미혼부의 아이를 혼외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인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8살 사랑이를 키우는 김지환 씨의 경우 사랑이의 주민번호를 받기 위해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들쳐업고 1인 시위를 하며 일명 '사랑이 법'을 쟁취해낸 김지환 씨, 하지만 그건 소송 과정을 간소화하는 임시방편일 뿐 여전히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결과 2018년 지자체에서 파악한 미신고 아동 건수가 114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1000 여 명이상, 법의 그늘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환 씨에게는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20대 남성이 아이와 함께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20대 남성이 지병으로 죽고, 그 옆에 있던 몇 달 안된 아기는 굶어 죽은 상황이었다. 아기는 당연히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미연고자도 처리 되었다. 아기가 출생신고라도 되었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이 지환씨로 하여금 미혼부들의 출생 신고 소송을 돕는데 나서도록 했다. 

지환 씨의 도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정적 절차를 따라하다 일처리가 제대로 안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혼자서는 아직도 복잡한 소송 절차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지환 씨는 사랑이 법으로는 적용이 안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 한다. 출생 사실을 국가 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라 국가가 권리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출생 통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의 아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지멀쩡한 놈이 애 하나 못키우겠냐며 자신의 아이를 거두려 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주민번호를 받지 못한 아이를 키우려니 필수 예방 접종조차도 단 돈을 내고 해야 했다. 갓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게 쉽지않았다. 전남 목포에서 사는 최경훈 씨 두 아이를 키우며 본의 아니게 결근을 하다 보니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 두게 되었다.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다니겠느냐며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기초 수급을 받고 있지만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기고 여러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건 경훈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혼모건, 미혼부건,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그 누구도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했던 최경훈 씨는 자신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녹록치 않다. 

 



미혼모 가족 협회에서 근무하는 정수진 씨는 근무 조건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부산역 1층에서 함께 모여 식당을 연 미혼모들 역시 '이심전심'의 조건 덕분에 눈치를 덜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조차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자립이 어렵고, 막상 자립을 하면 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또 힘든 상황은 많은 미혼모와 미혼부들에게 '저소득층'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미혼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정수진 씨가 안타까운 건 도와주고 싶어도 연락조차 쉽지 않은 미혼모들의 현실이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여가부, 보건 복지부 등 각 정부 부처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운 상태다. 

다큐에 나온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 '정상 가족'이 무엇이냐고. 여전히 3~4인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을 '정상'이라고 보는 거냐고. 세상이 변했는데, 그리고 말한다. 엄마 혼자 키워도, 아빠 혼자 키워도 자신들도 '가족'이라고. 자신들이 정상의 가족이고, 보통의 가족이며, 일반적인 가족이라고. 


 





by meditator 2021. 2. 25. 18:55

우울증 증상으로 고생할 때 찾아본 책 중에 알렉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이 있다. 이 책 은 뇌의 메카니즘에 근거하여 우울증을 나아지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매일 5가지씩 감사를 하는 것이다. 얼토당토치않게 감사라니! 그런데 이 책은 감사야 말로 우리의 뇌를 우울증으로 부터 구원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방어적이고 우울감에 쉽게 빠지는 뇌의 회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우울할 땐 뇌과학>의 주장이 한 편의 다큐로 이어진다. 바로 2월 12일 방영된 <다큐 온 - 감사가 뇌를 바꾼다>이다.

음력으로 1월 1일, 진짜 황소해가 시작되었다. 다큐는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길로 '감사'를 전한다. 가장 새해 첫 날에 어울리는 덕담이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었던 시절, 웃음을 되찾기 위해 '감사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참여한 이향재 씨의 경우,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인간 관계에서 섭섭한 점이 많았다는 향재씨, 하지만 섭섭함 대신 감사할 일을 찾다보니 잘해준 게 떠오르고 그렇게 마음이 건강해져갔다고 한다. 감사 운동을 하고 보니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안좋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감사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박이철 씨이다. 박이철 씨는 말한다. 그간 우리에게 '감사'란 누군가의 자극에 의한 '반응'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지만 생각만 바꾼다면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 질 거라고. 

과연 감사가 사람을 변화시킬까? 
과연 그럴까? 실험을 해보았다. 김해 율산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감사 일기를 써봤다. 처음에는 상투적이고 피상적으로 감사를 하던 아이들이 점점 일상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번에는 5학년을 대상으로 감사 실험을 했다. 자원한 16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감사 운동'을 했고, 교사가 이를 기록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는데 왜 감사하지?"
"바쁘셔서 못차려주실 수도 있는데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감사 운동'을 시작할 때 학생은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불과 3개월의 시간이었지만 학생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혼낼 때 잘되라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하지 못할 것들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는 매일 1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엄마, 오늘 감사한 일이 있으셨어요?"와 같이 가족들에게 '감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학생과 가족들은 자연스레 '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묻고 답하는 걸 들어야 하니 자연스레 남의 얘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배려와 공감이 증가했다. 

이런 학생들의 실험에 대해 교육학자들은 한결같이 기대 이상이었다며 놀라움을 표한다. 피상적이던 감사는 매일 되풀이 되며 현실에서 '길어져야'하는 것이 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임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고, 각성과 깨달음의 기회를 가지게 된 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고,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상의 소중함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과정이 되었다. 

감사는 뇌도 변화시킨다. 
그 결과 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15가지 영역의 뇌파동 검사에서 부정 심리나 뇌피로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뇌피로도가 낮아지면 여유가 생기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자기 조절과 심신균형 감각이 증가했다. 

지난 2017년 과학 전문지에 게재된  276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단 5분간의 감사 명상이 뇌의 긍정 보상 심리 회로 연결성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뇌의 변연계 핵심 부위인 전대상피질이 자신과 관련된 것에 반응하는데, 이 부위는 보통 원망 등 부정적 정보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감사 등 긍정적 정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 부위에 부정적 정보 대신 긍정적인 메시지로 채워지게 된다고 한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의 로버트 마우어 교수는 감사를 하며 뇌에서 도파민이 발생하는데 이 도파민은 우리 뇌를 즐거움 센터로 만들며, 이는 뇌의 학습 기능을 활성화시켜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감사, 삶의 변화 
호주의 감사 운동가 레일리 바톨로뮤는 지난 2008년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감사'를 알게 되었다. 시각적인 사람이었던 레일리는 자신의 감사를 '사진'으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레일리의 영향을 받은 로리 포트카는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그림에 담아 전달했다. 그들에 따르면 '감사'는 삶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과도 같다고 한다. 좋은 것들을 더 얻어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대신, 오늘의 삶에서 더 좋은 걸 발견해 내는 게 바로 '감사'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부품업체, 이 업체는 지난 2013년부터 '감사 운동'을 해오고 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공정이 보다 복잡해지며 불량률이 늘어나자 그것이 그대로 직원들의 감정으로 연결되었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어나게된 직원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강연을 들은 ceo는 이때부터 '감사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5가지 감사,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게 감사하다', 물론 처음에 귀찬은 일이었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일은 give&take라고 생각했었는데, 5가지 감사를 찾는데 너무 힘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2년 여, 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소소하지만 서로에게 말로 나누는 감사로 사람들의 관계가 달라졌다. '콩나물 시루'같다는 감사. 콩나물처럼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날 훌쩍 삶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적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직원들이 동료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임원들이 직원들이 제일 하기 싫은 청소를 솔선수범해서 한다. 

강원 양양의 8군단을 전력 증강의 최우선 전략으로 '감사'를 든다. 4년 전부터 감사 나눔 편지를 쓰는 2만5천 부대원들, 1000 감사 노트를 쓰며 변화해 갔다. 부모님께 100 감사 편지도 보낸다. '안써보면 모른다니까요'라는 감사 편지,  부모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사랑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100 가지 감사의 편지를 쓰다보니 그 희생과 사랑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가 주장한다. 감사를 드러내어 말해야 한다고.  다큐를 연 건 걸그룹 포미닛의 지현씨,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전통 과자를 가지고 동네 코로나 검사소를 찾는다. 이 '의례적인듯한 행동', 다큐가 의도하는 바는 바로 '감사의 표현'이다. 마음 속 감사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사를 드러내어 표현 할 때 삶도 변화한 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작은 것으로부터, 지금부터의 감사, 우리의 삶은 대부분 이루지 못할 미래의 '갈망'으로 채워진다. 감사는 바로 그런 불투명한 미래의 갈망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현재에 발을 딛고 그 현재에서 행복을 길어올리도록 만든다. 삶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1. 2. 13. 00:40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겁니다.'

이 말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여는 대사이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가장 리키는 조금 더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트럭을 사서 '택배 기사'를 지원한다. 그리고 그 면접에서 매니저는 리키에게 저 말을 한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한다. 이 그럴듯한 말이야말로 오늘날 '택배 기사'들의 존재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문구이다. 그들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법적으로 자영업자'인 택배 기사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복지와 생존권을 외주화하는 '긱이코노미'의 최전선에 놓인 그들은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살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인 그들의 생존권은 법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  

<포스트 코로나>5부 코로나 19 이후 세상은 평등해질까는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코로나 시대의 필수 노동, 택배 기사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2020년 10월 8일 택배기사로 일하던 김원종 씨는 배송을 하던 도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다. 작년 한 해에만 16명이 택배 기사들이 초장시간 노동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 17~18시간의 살인적인 노동 현실이다.  고 김원종씨가 떠난 자리, 트럭 의자는 헤져있었고, 정리정돈할 시간도 없었던 듯 개인 소지품들이 나뒹군다. 닳아버린 신발을 덧대가며 일하던 고 김원종 씨, 이제 그 닳은 신발은 주인을 잃었다. 

7년 째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도균 씨의 생활도 위태롭다. 이른 새벽 출발한 김도균씨는 아침 7시부터 분류를 시작,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첫 배송에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삔 다리로 쉼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다른다. 병원이 바로 옆에 있어도 갈 시간이 없다.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 리키가 다친 몸으로 트럭을 몰고 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그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아프다고 쉴 만한 여력이 없다. 대신 배송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앉아서 편하게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쉬면 쉬는 만큼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평일 적다할 때 하루 200~300 개의 물량, 추석같은 명절이면 그게 500개까지 늘어난다. 게다가 코로나로 물량이 15% 증가했다. 매변 물량은 늘지만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 400개가 넘으면 밤 11시간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다.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로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과로사를 하는 이가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이다. 

택배, 배달업 등은 '필수 노동자군'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사회가 그들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어나는데 비해 그들의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노동 시간 관리에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택배 관련법'이 제정중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심이 식으면 유야무야될 지도 모를 상황이다. 

 

 

배제된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 
위협받고 있는 건 택배 노동자만이 아니다. 29살의 이은혜 씨는 빛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다. 부천 장애인 일자리 사업으로 도서관에서 다른 장애인을 도우며 살아왔던 은혜 씨에게 코로나는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외부 일정이 있는 경우 활동 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은혜 씨,  팔을 잡아야 하는데 '접촉'이 불가피한 상황이 불안하다. 엘리베이터에는 항균 필름을 붙여 놓아 장갑을 끼고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 맨손으로 더듬어서 확인하는 상황 역시 불안을 가중시킨다. 코로나로 인한 방역이 외려 장애인들에게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늘어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는 보편적 장치가 되어가고 있는 QR 코드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마스크를 나눠주던 시절, 마스크를 나눠주는 약국에서는 '마스크가 없습니다'를 종이에 써붙여 놓았다. 그래서 점자가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었던 은혜씨는 마스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진행성 근이영양증의 정영만 씨는 코로나로 인해 병실이 없이 이동을 할 수 없었다. 신체 보조를 받아야 하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사회적 격리를 하던 아내가 방호보조복을 입고 정영만 씨를 보살폈다. 장애의 유형 별로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다르지만 갑작스럽게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한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장애인 개개인이 온전히 코로나로 인한 불편은 책임져야만 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은 코로나 방역에서 배제된 존재가 되었다. 전체 확진자 중 장애인 확진자는 4%였지만 사망자 중 장애인은 20%에 이르렀다. 비장애인에 비해 6배나 높은 수준이었다. 

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온전히 개인적 고통으로 코로나 팬데믹에 노출되었다. 당장 식량이 부족했고, 여성들은 학대 가해자와 한 집에 머물러야 했다. 사회적 약점과 불평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 방역이 가시화되고 있는 이즈음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이 문제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 인구 몇 배의 백신을 사들이고 있는 한편에서 최빈국들은 백신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백신 국가주의를 지양할 것을 호소했다. 전세계가 연결된 현재의 세계에서 세계적 협력 없이는 코로나는 종식될 수 없기에 가난한 나라에도 백신의 보편적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가 끝이 아니라고. 코로나는 우리 세계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떼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 반창고를 떼고 보니 깊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고.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 위기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예비 훈련장이 되기 위해서는 사각 지대에 놓인 노동자들과 배려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그리고 배제된 가난한 이들, 가난한 나라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1. 2. 5. 02:09

1911년 뉴욕 의류 공장로 무려 146명이 사망했다.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중 딴 짓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잠궈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문을 잠근 공장주는 결국 풀려났다. 1920년대까지도 경제 활동은 사적인 영역이었다. 국가가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던 기조가 대공황을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황으로 인해 대규모로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생계 보장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그저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동시에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의 소비자였다. 그들의 생존에 자본과 국가의 생존이 달려있었다. 국가가 나섰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 3권, 8시간 노동이 보장되었다. 금융 기관을 규제하여 예금자를 보호했다. 급진적인 뉴딜 정책, 국가의 개입이 위기의 미국 경제를 되살려냈다. 

 

 

이처럼 '위기'는 국가의 위상을 제고하게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 생태, 보건 위생적 관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급격하게 변화를 겪고 있다. ebs다큐 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3부 국가의 탄생은 코로나 시대 변화하는 국가의 위상에 대해 논의한다. 

19세기가 노예 해방, 20세기가 보편적 선거권 도입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기본 소득의 세기가 될 것이다.


벨기에 경제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 교수는 그의 책 <21세기 기본 소득>에서 주장한 말이다. 2018년 출간된 이 책은 '기본 소득'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주장을 담았지만 그것의 '실현'은 그리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 '기본 소득'의 문턱을 코로나가 넘어서게 만들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된 전국민 재난 지원금이다. 

21세기는 기본 소득의 시대?
국가가 직접 국민들에게 돈을 준다? 코로나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시적이냐 지속적이냐 라는 차이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보편적으로, 그리고 의무 조항없이 전국민 모두에게 돈을 나눠준다는 기본 소득, 하지만 코로나는 이 불가능할 것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유도했던 방식은 이른바 '낙수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중앙 은행에서 대형 금융 기관으로, 그리고 기업으로 돈이 흘러들어가게 하여 고용을 유지하고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런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만들었다. 문을 닫은 거리의 가게들, 그로 인해 거리로 나앉게 생긴 자영업자들, 그리고 생계의 위협에 내몰린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코로나로 인한 봉쇄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해 금기시되던 현금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소비자 심리 추이가 단 몇 달 사이에 눈에 띄게 증가했고, 재난 지원금을 받은 75.7%가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제가 호전되었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완화되었다. 특히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은 고소득층이 돈을 저축 등으로 흡수하지 않고 '소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한을 정한 것이 유효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재난 지원금을 지속적인 기본 소득으로 이어가는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재원'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기본 소득의 딜레마를 알래스카 영구 기금은 현명하게 해결한 사례로 꼽힌다. 1982년 도입된 기급은 천연 자원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그 운용 이익을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 한해서 매년 지급한다. 

이 기금의 효과는  파격적이었다, 공짜로 돈을 나눠준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려 일자리가 늘어났고, 가난한 가정의 3세 이하 아이들의 비만이 개선되는 등 양극화 문제 해소에 기여하였다. 물론 이는 풍부한 석유와 상대적으로 작은 70만 정도의 인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풍부한 석유와 함께 석유를 공유자산으로 여기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지속적인 기본 소득이 불가능한 것일까? 기본 소득의 재원으로 '토지'를 제기하는 학자가 있다. 다량 탄소 배출 상품에 '탄소세'를 얹어 이를 재원으로 삼자고도 한다.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에 매기는 세금은 어떨까? 하지만 아직은 그 어느것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전국민 재난 지원금으로 이미 기본 소득의 첫 발을 떼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과연 이 첫 발을 뗀 기본 소득이 21세기 보편적 화두가 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코로나와 관련된 국가적 통제, 어디까지여야 할까? 
재난 지원금과 관련된 기본 소득의 실현이 국가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역할에 대한 지점이라면 코로나와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면 지점도 있다. 바로 '통제'적 측면이다. 

지난 해 8월 호주는 코로나와 관련하여 강력한 4단계 봉쇄 정책을 펼쳤다. 일몰 이후 외출을 금지하였고,  낮에 쇼핑, 산책 등으로 외출을 하여도 5km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이를 어길 시 150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였다. 계엄령에 준하는 봉쇄령이었다. 당연히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20년 9월 빅토리아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찬성을 표명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당연시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일상 생활에 국가가 개입했다. 

 

 

2020년 3월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대테러 작전용으로 씌이던 디지털 추적을 코로나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허용하도록 하였다. 휴대전화가 위치 정보, 동선이 추적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디지털 감시 시스템이 상용화되고 있다. 횡단 보도에 설치된 안면인식 전광판, 무단 횡단을 할 경우 안면 인식을 통해 전광판에 신상 정보가 표시된다. 벌금을 내거나 사회 봉사를 해야 지워진다. 이 기술은 마스트를 착용하더라도 식별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되는 중이다. 텐왕 쉐량 프로젝트라는 기술적 통제를 통해 전국민적 삶이 기록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통치 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국가의 기술적 통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시민 사회의 붕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원론적으로 질병의 통제가 국가의 역할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다큐는 묻는다. 여기 팔찌 하나가 있다. 중앙 집중적 서버에 연결된 팔찌는 당신의 정보를 통해 미리 당신의 질병을 경고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 팔찌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 정부의 통제에 당신의 신상을 넘겨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과도한 신상 정보의 공개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던 우리 사회에서 국가적 역할의 한계에 대한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19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복지 효율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름 등 다양한 개인 정보를 담은 인구 등록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나치'에 의해 학살용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되고 만다. 이와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신상 정보의 공개가 문제된 바 있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 선택한 극한의 조처지만 지나친 노출로 인해 '인권의 사각 지대'가 되어 '낙인'이 되고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 것이다. 

결국 코로나로 인한 정부 역할의 증대는 21세기의 또 다른 '빅브라더'의 탄생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진보적인 박노자 교수는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국가적 통제 상황을 '인권의 부정'이라고 주장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함정'이라 정의내린다. 쉴러가 주장한 '삶은 최고의 선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선택한 편의가 '위생 독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일까? 

by meditator 2021. 1. 29. 19:34

ebs 다큐 프라임은 1월 25일부터 3부작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방영 중이다. 백신 접종이 이미 해외에서는 시작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안에 백신 접종과 함께 집단 면역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 팬데믹'라는 터널의 끝이 보일 것같은 시절에 다큐는 코로나 이후에 대해 말문을 연다. 

첫 회 '언택트'한 삶 속에서도 새로운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의 의지를 다지는 다양한 창의적인 시도를 살펴본 다큐는, 그에 이어 2회에서 우리 안의 코로나를 살펴본다. 

 

 

세계 그 어느 나라국가도 코로나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환자들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감염병이라는 상황을 처음으로 겪어본 인류, 하지만 여전히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감염된 사람들보다 많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은 이전과 우리는 더 이상 같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안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혹 코로나를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건 아닐까? 코로나를 온몸으로 겪은 '전지적 코로나 시점'에서 본 세상은 어떤 것일까? 코로나 이후를 논하기 위해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를 다큐는 다룬다. 

지난 2월 한 종교 단체의 집단 감염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확진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대구, 특별 재난 지역이 선포되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도움의 손길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해 냈다. 하지만 당시 의료 일선에 있던 의료진은 입을 모은다. 운이 좋았다고. 

그 운이 좋았다는 평가의 또 다른 이면에는 간호사들의 중노동이 숨겨져 있다. 대구 만이 아니다. 그 방역의 최일선에서 자신을 던졌던 간호사의 목소리로 다큐는 시작된다.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영웅, 간호사 
환자 때문이 아니라 동료 때문에 버텼다는 유연화씨, 그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음압 병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병상이 된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단다. 

코로나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유연화 씨는 눈물을 흘린다. 대단한 일을 했다지만 엄마가 나가서 자신이 코로나 병동에서 일한다고 밝힐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단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자신이 아니라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위험해질까봐, 자신이 집에 없어야 가족들이 안전한 상황,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출근을 할 때 마음이 가뿐해 졌다고 한다. 

의료진이라면 필수 장비인 PAPR(전동식 호흡 보호구)는 밖의 공기를 빨아들여 깨끗한 공기를 공급해주는 장비다. 하지만 이것조차 제 때 공급받지 못했다. 방역 체계는 수시로 바뀌었다. 자신의 안전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마치 자신들이 전쟁에 방패막이처럼 세우는 병사들같았다.  게다가 처음 경험해보는 감염병으로 인해 '총도 쏠 줄 몰라요'하는 경험 부족한 의료진과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친 티조차 낼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신이 도망치며 동료들이 힘들까봐 참았다. 이른바 '전우애'로 버텼다. 과연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자식에게 '큰일 한다'며 기꺼이 응원해주는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앞에서는 박수를 쳐주다 뒤에서는 꺼려하는 세상이 자신들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가 연화씨를 무엇보다 힘들게 했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의 항변 
이중적 잣대에 항변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일원이었던 60대 여성, 그녀는 항변한다. 왜 광화문은 막으면서 해운대에 모여든 2~30만 인파에는 눈을 감냐고. 

광화문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친했던 친구가 '앞으로 나 볼 생각마'라고 농담식으로 말하는데 화가 났단다. 내 손주가 살아갈 나라를 위해서 더위도, 추위도 감수하며 거기로 나선 건데, 자신들의 마음을 몰라준 채 손가락질 받는데 억울하다. 편향이 아니다. 무모함이 아니다. 확신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코로나는 재수없으면 걸리는 병이다. 

슈퍼 전파자의 뒷 이야기 
지난 2월 18일 대구의 31번 확진자. 본인이 증상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 시설, 병원, 마트 등을 돌아다녀 슈퍼 전파자로 이목을 끌었던 장본인이다. 

그녀가 확진 판정을 받은 그 날 이후 쏟아져 나온 수백명의 확진자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그녀가 코로나에 걸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작성한 리스트의 지인들 중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녀를 만났다고 거짓 진술한 20대는 처벌을 받았다. 후에 그녀가 슈퍼 전파자가 아니라 2차 감염자일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미 슈퍼전파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평범한 가정의 주부였다는 31번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으로 항변한다. 슈퍼 전파자가 된 그녀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그로 인해 평범했던 그녀의 가정은 서로가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암보다 더한 코로나 
확진의 무게는 깊다. 암보다도 더하다. 송파구 어린이집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던 정효숙 씨는 7월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바 있었던 효숙 씨, 하지만 암이 걸렸다는 사실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그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암은 나혼자 걸리면 되는 거였지만 코로나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단다. 

결국 남편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다니던 교회에서 20여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왜 조심하지 않아서 걸렸느냐는 말, 부주의했다는 말들이 그녀에게 오래도록 깊은 상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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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의 무게 
이렇게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넘어서기 힘든 벽을 만들었다. 이를 설치 미술 작가 박카로 씨는 'A와 B의 경계'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해외 여행 후 마포구 15번 확진자가 된 그녀, 2주간 자가 격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동 동선이 많았던 그녀가 우선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의 확진 결과를 알리는 구청 홈페이지에 그녀의 신상을 캐고 욕을 해대는 댓글들을 보며 공개 처형당하는 듯했다. 

별 증상이 없던 카로씨였는데 병실에 도착하자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짜였는데 진짜가 되어버린 듯한 상황, 하지만 열은 약과였다. 그때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왜 동선을 숨기지 않았느냐는 항의, 내 얘기는 말아달라는 부탁, 걸리는 거보다 일을 못하게 되는 현실의 항의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 역시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마음 떨어짐 주의' 표시가 등장한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플라스틱을 안쓰고 싶어도 모든 것이 일회용품으로 제공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행위에 죄책감이 들었다. 입원 기간 동안 안쓰고 모았던 50개의 플라스틱 숟가락이 전자 저울 위에 놓였다. 작품 명, 죄의 무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 확진자 
김지호씨는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이태원 N차 감염자이다.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 대각선에 앉았던 친구로 인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10580번, 50일의 입원 일과를 기록으로 남겼다. 창문도 열수 없도록 못으로 고정된 병실, 에어컨은 물론, 환풍기도 비닐로 막았다. 복도에 샤워실이 있어 샤워 대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했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겪어야 하는 '격리'는 참을 수 있었다. 구급차도, CT도 젊은 그에게는 모두가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처음 겪는 건 그 뿐이 아니었다. 막연한 차별이나 혐오도 처음 겪어 보았다. 퇴원을 하고 출근한 회사에서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던 사람들이 그를 보자 다시 마스크를 썼다. 회사는 사과를 요구했다.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코로나의 최일선에서 일하던 간호사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도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세상과 자신 사이의 벽을 절감했다. 바이러스보다 더 큰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라 다큐는 진단한다. 

가장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위험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시절, 백신도 필요하고, 치료제도 필요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쳐버린 사람들의 마음, 코로나로 인해 서로에게 벽을 느낀 사람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치료해야 할 숙제도 잊지 않아야 하겠다. 


by meditator 2021. 1. 27. 01:58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8천만 명, 세계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이제 세계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  kbs는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kbs특별 기회 코로나믹스> 3부작을 방영했다. 제레미 러프킨, 리차드 프리먼, 서울대 사회학과 이대열 교수등 국내외 석학들의 의견을 모아 '뉴노멀'을 향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불안한 세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180만명,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가 전세계인들에게 위협을 가한 건 이 질병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생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존'의 화두를 코로나는 전 세계 사람들 앞에 던졌다. 

바이러스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닥친 결과는 달랐다. 소상공인들은 지난 1년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했다. 최저로 떨어진 근로 소득, 역대 최대의 실업률, 수익은 반토막이 났지만 월세는 그대로인 세상을 감당할 길이 없다. 

방역을 강화하자니 경제가 죽고, 경제를 살리자니 방역이 무너지는 상황, 국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었다. 파격적인 재정지출을 한 독일은 1000조원을 투입했고 소득의 75%까지도 정부가 지원을 했다. 스웨덴의 경우는 이미 확립된 사회 안전망을 통해 기본 생활을 보장했다. 확장적인 재정 정책이 불가피한 상황인 된 것이다. 

 

 

위험한 질서 
코로나의 충격은 공평하지 않았다. 취약한 곳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난한 지역이 코로나에 무방비하게 무너져갔다.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것 역시 저임금의 노동자들이었다. 취약 계층의 발병률은 높은 소득의 계층보다 3배나 높았다. (국민 건강보험 빅데이터)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 노동자와 택배 노동자가 소외되었다. 고소득 고학력의 노동자가 빠르게 회복되는 반면, 저학력, 저소득 노동자의 침체가 심화되는 임금, 소득 수준에 따라 침체를 벗어나는 속도가 달라지는 k자형 회복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태국의 시민들은 불공정함과 차별적인 규범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왕실 개혁과 민주주의를 들고 일어섰다. 브라질 시민들 역시 일관된 정부의 무능과 방역에 대한 방기에 분노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 40년 코로나 팬데믹은 외려 승자 독식 구조를 강화했다. 확진 사실을 알고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던 아마존, 심지어 방역과 검사 지원 비용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해고한 아마존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거래 증가로 인해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반복되는 양적 완화, 주식, 비트코인, 금 등의 자산 가치는 치솟고, 부동산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엄청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데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지만 가난한 이들을 집에서 내쫓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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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시대
중국의 북경절, 시민들은 코로나가 끝난 듯 여유롭다. 정부 공식 발표로 77명에 이를 정도로 부쩍 줄어든 확진자, 시민들은 나라에서 잘 통제해 줄 테니 걱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효율적이지만 권위주의적 방식에 서구의 학자들은 우려를 표한다. 바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주의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라이프찌히 시민들은 도시 봉쇄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서구의 민주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기본권에 대한 그 어떠한 침해에도 서구의 시민들은 반대를 표한다. 이렇듯 코로나는 각국의 대응 양식에 따라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관계 정립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k방역이 주목받았다. 극단적인 봉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방역의 성공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가치와 협력의 힘에 대한 확신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었던 성과였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 63%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결이 잘 되는 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시민 역량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개인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부정적 자유가 아니라, 좋은 공동체적 관계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자유의 가치를 지향하는 k 방역의 정신이 보다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충남 보령 장고도 도민들이 해오고 있는 공동 작업, 공동 분배의 방식이나, 동자동 주민 공제 조합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사회적 연대의 방식이다. 영국 남부의 작은 도시 루이스에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는 지역 화폐 역시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을 둔다. 코로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의 공동체적 가치를 제고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기업들을 도산시켰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그런 가운데 독일에서는 3년간 매달 우리 돈 16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1200 유로를 제공하는 기본 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진행된 기본 소득 실험, 공짜 돈을 받아 근로 의욕이 떨어지기 보다는 이러한 기본 소득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일에 대한 동기 부여를 얻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긍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by meditator 2021. 1. 4. 16:46

매일 밤, 아니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는 12시 20분에 지난 15년간 꾸준히 찾아온 '지식 보따리'가 있다. 바로 EBS의 지식 채널 E이다. 정보의 흡수가 보다 빨라지고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한 꼭지당 겨우 5~6분여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인문, 사회, 과학, 예술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진지하게 세상에 대한 해석을 해왔다. 코로나로 한 해를 보낼 즈음 <지식 채널 E>는 시민들과 콜라보로 '브이 로그' 11부작을 마련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온 시민들의 삶을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코로나의 일선에서 
12월 30일 12시 20분, 아니 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0시 20분 11부의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는 올 한 해 잠시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 의료진들의 이야기 <#덕분에 #고맙습니다>로 마무리되었다. 

선별 진료소의 하루는 레베 D 방호복 환복에서 부터 시작된다. 6월 외부의 온도는 23도 정도지만 환복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한증막 속에 있는 듯하다고 호소하는 의료진, 하지만 한증막같은 방호복이 그들의 '업무'를 막을 수는 없다. 

감염의심자의 입장에서는 낯선 곳, 낯선 의료진에게 코와 입을 찔려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 그들을 의료진들은 많게는 하루 120명을 상대하며 지난 1년을 보내왔다. 일요일 35명의 방문자가 반가운 현실, 격리 병동이라고 다를까, 3명의 환자가 기쁜 소식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 병동이지만, 간호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을 감싼 방호복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들이 맞이했던 똑같은 환자들이다. 십년 동안 감호사 생활을 해왔던 심수진 간호사는 올 1월만 해도 이제 그만 이 일을 그만두려 했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심간호사가 번번히 맞이해야 하는 죽음들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번성하고, 심간호사는 심기일전 다시 그 현장에 파견을 나섰다. 방호복을 겹겹이 싸맨채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상대한 제 일선이지만 심간호사는 아직은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란 직업적 소명 의식을 다시 회복했노라 소회를 전한다. 

그런 의료진들의 맞은 편에 코로나 확진자의 이야기 <15일, 아주 특별했던 시간>이 있다. 해외 출장 나흘 전 확진 판정을 받은 JOEY KIM님, 감염 경로도 모른채 입원을 했다. 

빵과 우유로 한 첫 식사이후 홀로 이어간 식사 시간, 이후 정해진 시간 체온과 혈압, 산소 포화도를 스스로 재서 기록하는 일과, 미각과 후각이 사라지더니 가슴, 위의 통증과 두통, 마른 기침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일차가 지나가며 어제와 비슷한 창밖, 비슷한 메뉴의 음식들, 멈추어버린 듯한 시간들, 멈출 수 없는 업무, 하지만 그 비슷한 것들이 다시 시간을 지내며 달라진 하늘로 다가왔다. 15일차, 드디어 음식 냄새가 맡아지고, 열도 떨어졌다. 홀로 싸워냈던 시간  JOEY KIM님은 그 시간이 일에 치어 들여다 보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과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했던 이라고. 

 

 

코로나가 멈추게 한 일상 
코로나는 우리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의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사는 건 영화 같지 않아서>이다. 

부모님이 20년째 해오던 국밥집을 의욕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영업을 해온지 5년 째 서용대 씨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오피스 상권에 휘몰아닥친 '재택 근무'는 수입을 50%나 급감시켰다. 폐업률이 66.8%인 시절에 매일 차악을 갱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용대 씨는 그래도 단골 손님들이 찾아주시던 부모님 시절의 국밥집으로 돌아갔다. 자영업을 하는 47.4%, 직장을 다니는 22.1%가 투잡을 해야 하는 시절, 그래도 가족이 있어 이 시절을 버틸 수 있다는 용대씨,  아내가 하는 작업의 조수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배달과 택배도 생각해 보려 한다.

투잡러를 넘어 쓰리잡러가 된 청년도 있다. <스리잡러 아시나요>의 진성 씨는 고2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댔다. 1주일에 한번 하는 분리수거물을 보니 엄청난 에너지 음료, 그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그는 2019년의 여름을 났다. 새벽부터 시작된 택배, 할부로 차를 사서 시작한 택배일은 4차 배송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다시 시작된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 짬짬이 패스트푸드 점 알바도 한다. 하지만 휴가도 없이 살던 그의 일상이 멈췄다. 택배와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가 접촉자가 많다는 우려만으로 택배 일을 짤렸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일상은 <마지막 비행>의 이수지 씨 역시 마찬가지다. 두바이에서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던 이수지 씨, 지난 9개월 간 4번 비행을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그녀에게 닥쳤다. 지난 6년 동안 빼곡하게 채워졌던 비행 수첩, 그리고 세계 각국의 동료들, 그들과 함께 이제는 꿈과 같이 여겨졌던 비행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 이수지 씨는 직원이 아닌 승객으로 마지막 비행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것들 
<나는 이 시국에 고3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올 한 해 코로나로 인해 가장 마음을 졸였던 고3 '도나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루고 미루어 더는 미룰 수 없어 꽃피는 4월의 개학, 하지만 도나미는 학교를 가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입장에서 부터 선생님도 친구들도 '인증'부터 코메디가 되는 상황을 겪으며 그 힘들다는 고 3의 생활을 홀로 시작한다. 고 3이라는 시절 자체가 부담인데,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줌 수업을 했다, 학교를 나갔다 뒤죽박죽인 1년 여를 보내고, 그래도 사상 최초로 연기된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수능을 마치고 대학을 입학했다고 달랐을까? <당신이 보지 못했던>은 시각장애인으로 대학생 우령 씨의 이야기를 그린다. 개강 한달 전 일찌감치 기숙사에 온 우령씨, 하지만 코로나는 시각장애인 우령 씨의 일상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바이러스 방지 테이프가 손끝의 감각을 막아 기숙사 층을 찾아가는 것부터 혼란스럽다. 

온라인으로 시작된 개강, 화면 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를 이용하는 우령 씨에게 온라인 강의실 입장부터가 '미션 임파서블', 결국 휴학을 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코로나는 그곳에도 
코로나는 나라를 차별하지 않았다. 번잡하던 뉴욕 맨해튼도, 화려하던 파리도 멈춰서게 만들었다. <외국에서 부친 편지>는 뉴욕 생활 7년차 최이은 씨와 , 파리 생활 13년차 김지아 씨를 통해 그곳의 코로나 이야기를 전한다. 

마트에 가려면 서류와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 파리, 입장 인원마저 제한이 된다. 그런가 하면 휴지도 1인당 한 개씩인 뉴욕의 마트에서는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내일 당장 먹을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빠지게 만든다. 확진자 동선을 알 수 없기에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 이 마트 저 마트를 전전했지만 원하던 먹거리를 얻을 수 없었던 이은 씨는 결국 눌러왔던 감정을 울컥하고 만다. 

독일 여자 줄리아와 한국 남자 최영동은 이른바 '롱디 커플'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두 사람은 독일에서 함께 지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 지는 바람에 결국 영동 씨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애써 밝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마는 공항의 줄리아, 내가 더 사랑한다고 하지만, 8시간 시차 간극의 9개월 여를 보내고 나니 서로가 없는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11부작의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는 11개의 이야기만큼 우리 사회, 나아가 해외에 이르기까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달라진 삶을 골고루 조명한다. 폐업율, 실직율이라는 수치로만 접하던 것들이 사람들의 사연으로 엮어지니 5,6분 여의 짧은 시간임에도 코끝이 매워진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자신이 애써 가꿔온 삶들을 '상실'했던 시절이구나 싶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불편해졌다지만 바이러스를 위해 붙여놓은 방역 테이프가 시각 장애인이 집을 못찾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삶 속속들이 스며들어 지난 1년을 멈추게 했다. 그래도 그 멈춤 속에서도 학생은 공부를 했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보건교사 손은지, 체육교사 최지인>처럼 온라인 수업 등으로 고군분투한다. 

그래도 브이로그의 시민들은 꿋꿋하다. 가족이 있기에, 그래도 찾아주는 단골 손님이 있기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한다. 홀로 버틴 15일의 입원 기간을 '감사'로 마친다. 미친 듯 한달 내내 일을 구해 애완견에게 다시 수박을 사줄 수 있어 스리잡러는 행복하다고 한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힘든 시기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한다. 아마도 올 한 해 우리 모두 그렇게 지내왔을 것이다. 이만하기가 어디냐고. 그래도 내게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저앉는 대신, 그래도 자신들이 아직 가진 것에 감사하며 이 한 해를 보낸다. 그래서 11부의 마지막 제목이 <#덕분에 #고맙습니다>이다. 

by meditator 2020. 12. 30. 04:12

2020년이 저문다. 2020년을 되돌아 보는 '트렌드 로드', 그 2회가 28일 밤 방영되었다. 화두는 '코로나',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한 삶이 이어져왔던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과연 '트렌드'마저 '언택트'하게 바뀌었을까? 과연 서로와 서로가 소원해지는 시간 사람들은 무엇으로 그 틈을 메꾸며 살아왔을까? 1회에 이어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교수와 함께 MZ세대 대표 셀럽 에릭남이 참여하여 2020년의 트렌드를 살펴본다. 

 

 

코로나 - 공간에 대한 열망을 키우다 
코로나 시대, 이제 집은 그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 아니다. 수업을 듣고, 재택 근무를 하는 기능이 '다층적'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레이러드한 룸'이라는 공간의 새로운 기능이 주목받게 된 시기이다. 

집을 떠나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까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공연장을 들르던 '동선'이 줄었다. 1주일 동안 누리던 공간이 1/5 정도 줄어든 셈인데, 이를 사람들은 마치 자기 자신이 1/5 줄어든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진단한다. 이렇게 공간이 축소는 '코로나 블루'와 같은 현상을 낳으며 사람들이 공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바깥 세상이 위험해진 만큼 내 공간에 대한 열망은 외려 커져갔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필요에 따라 모듈을 사용하여 천장에서 필요한 가구를 올리고 내리는 공간의 적극적 '창조'가 새로운 공간 디자인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비싼' 집은 언감생심, 꿩 대신 닭이라고 '차'라도? '차' 소비가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단절'되었다지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열망'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한 사람들의 본능적인 '속성'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남의 집 프로젝트'이다. 

온라인을 통해 취향을 공유한 사람들이 집들이처럼 남의 집을 방문하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두 번 코로나 시대 불가능해진 여행을 '남의 집'으로 잠시 떠난다. 이 잠시 동안의 '방문'이 뭐라고 그 전날 잠을 못자고 설레이기도 한단다. 가드닝을 한 정원에서 '소풍'과 같은 시간, 그램책을 통해 낯선 이와 속마음을 터놓고 서로 위로를 나누는 시간, 이러한 소규모의 '취향'을 매개로한 내밀한 교류가 언택트가 트렌드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관계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증명한다. 

 

 

나를 증명하는 시간 
사회적 접촉이 한층 줄어든 시간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이에 대해 김난도 교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받아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를 증명해줄 타자가 없는 상화, MBTI처럼 자기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계룡 선녀전>의 웹툰 작가 장혜원씨는 색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바로 '수학'이다. 장혜원 씨가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모임, 참가자들은 이 수학 공부의 포인트는 바로 시험을 안보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희열보다는 수치를 통해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이라고 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수학 관련 서적이 39.8%나 증가했다. 지난 5년 사이 처음있는 일이다. 이렇게 수학에 대한 수요는 어디로 부터 비롯되었을까?알 수 없는 세상 수학처럼 정답이 있고, 노력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쾌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에 더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수학처럼 몰두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견인해내고자 한다고 김난도 교수의 정의한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이자, 도구로서의 수학이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산'을 택한 사람도 있다. 미대에 들어간 김강은 씨는 졸업 무렵 그림으로 먹고사는 게 쉽지 않다는 '장벽'에 봉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활동마저 제한됐다.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여력도 없던 시절 무작정 동네 앞산을 올랐다. 

숨이 차올랐지만 산봉우리에 오르니 생생하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확인'받았다. 그때부터 강은 씨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른 산을 그렸다. 산을 통해 느낀 삶의 즐거움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고, 그런 그녀의 그림음은 'SNS를 통해 인기를 끌었다. 

강은씨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 등산 인구가 늘었다. 그 중 20대는 87%나 증가했다. '등린이', '산린이'와 같은 신조어가 탄생했고, 산과 관련된 해시태그가 280만 개에 이를 정도로  MZ 세대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산을 오르고 수학을 공부하며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젊은이들 하지만 그들이 견뎌야 하는 시절을 혹독하다. 2008년 금융 위기에 이은 코로나 팬데믹은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앗아갔다. 해고와 직업난, 직업 훈련의 기회라는 3중고가 젊은 세대에게 얹혀졌다. 부모보다 못하는 첫 번 째 세대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한때는 잘 나갔던   LA의 UX-UI 디자이너(앱과 웹을 구성하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 크리스 준은 6개월째 실직 중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4월 실업률이 폭등하며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실직자 사태를 낳았다. 그 중 밀레니얼 세대가 500만 명에 달한다.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프랑스에서는 전체 청년 중 1/4이 구직중이다.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대부분 시간제나 임시직인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코로나로 MZ세대는 기회마저 얻기가 쉽지 않다. 인류 전체의 시련이다. 이제 해가 바뀌면 2021년 우리의 삶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새해의 '희망'을 옅보기 쉽지 않은 시간, 그래도 이 길고 긴 터널의 끝을 기원하며 한 해가 저문다. 

by meditator 2020. 12. 28. 03:06

1년만에 다시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교수와 밀레니얼 셀럽 대표 조승연 씨가 만났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 해와 달리 두 사람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만난 것, 서로의 동정과 안부에서 '격리'의 소회가 빠지지 않는다. 11월 24일부터 시작된 tvn shift는 1부 재난의 불평등, 2부 2030 부의 미래에 이어 금요일로 시간대를 옮겨 2019년에 이어 트렌드 로드 2부작을 방영한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시대의 소비 트렌드조차 변화했는가가 촛점이다. 

 

 

운동화도 투자가 된다.
2017년 20만원이던 운동화가 800만원이 됐다. 사서 신고 닳으면 버리던 소모품인 줄 알았던 운동화로 투자를 한다. 바로 오세건 씨다. 한정판 플랫폼을 운영중이다. 

리셀, 정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희소성 있는 한정판 제품을 뜻하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운동화이다. 운동화가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생소하지만 소더비 경매에서 사인된 운동화가 5억에 팔리고, 오리지널 제품이 수 천만원에 거래가 되는 세상이다. 마치 주식을 사듯이 스니커즈 러셀은 금융 거래 플랫폼을 진화 중이다. 2025년 60억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된단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마이클 미첼은 현재 스니커즈 러셀 관련 채널을 운영 중이다.  대학 때 중고 운동화 거래를 시작으로 그 해에만 115,000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트래비스 스콧 등 랩퍼들과의 협업한 제품들은 10배나 가격이 상승했다. 그 중 인기있는 제품은 한 켤레에 5000 달러를 호가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사람들은 취미 생활로는 물론, 투자가 될만한 '꺼리'에 관심을 더 기울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스니커즈 러셀 시장에 투자가 거의 10배나 더 증가했다. 운동화에 관심없는 사람들조차 돈이 될까 싶어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n차 신상이 그 대상이다. 여러번 거래가 되더라도 신상과 같은 제품이 돈이 되자, 이제 '짝퉁' 대신 구하기 어려운 진품을 사는 '투자'에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운동화 뿐일까.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의 저자 윤보형 변호사는 예술품 투자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물론 처음부터 투자를 했던 건 아니다. 퇴근하고 조용히 자신의 머릿속을 '정화'시켜 주는 장소로 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그림에서 '자신'을 찾았다. 자신을 위로해주거나 대변해주는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녀는 그 그림을 적극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소장'했다. 그런데 그 '소장'이 돈이 되었다. 김난도 교수에 따르면 내가 소유하고 사용하는데 가격까지 오른다는 점에서 그림은 부동산과 같은 속성을 지닌 투자 상품이다. 

'아트 테크'가 신조어로 등장했다. 취미도 되고, 돈도 되는 이색 재테크이다. 아트 컬렉팅의 분야는 광범위하다. 원화 그림만이 아니라 판화, 각종 아트 상품, 아트 토이 등이 그 대상이 된다. 소더비 경매에서 아트 담요도 대상이 되었다. 투자의 대상이 다양한 만큼 컬렉터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가치에 '민감'하다. 소비가 경제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일찌기 몸소 체험하며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는 소비하는 삶에 거부감이 없다. 희소성이 있거나 자산 가치가 있다 하면 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에 거침이 없다고 김난도 교수는 설명을 더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자본주의적 삶'은 파이어 운동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서 자본주의의 굴레로부터 빨리 벗어나겠다는 '파이어 운동'은 모순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젊은이들의 투자 심리와 맥을 같이 한다. 

 

 

자본주의로 부터 '독립'하자 
그래서 2019년 '파이어 운동'에 앞장섰던 잭 시티를 1년 만에 다시 찾는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30대가 되면 은퇴하겠다던 그의 목표는 이루어졌을까? 다시 만난 그는 코로나라는 변수로 인해 은퇴가 약간 미뤄져 30대 중반 이후에나 가능하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그를 위축시키지는 않았다. 외려 코로나 이후 휴대폰 앱을 통한 식료품 배달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려 지난 1년간 4억4천만원 가량을 벌었다고 한다. 25달러를 버는데 1시간 가량이 걸린다는 그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배달해 주는 일로 분주하다. 

이렇게 잭과 같은 일을 알선해주는 플랫폼 노동이 미국에서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을 하든 돈을 벌면 되는 사람들이 이 플랫폼의 주된  '노동자'다. 

이러한 '노동'의 형태는 21세기에 활성화되고 있는 '긱경제' 형태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인 '인스타카트'의 영향력이 48%에 달한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기회라는 측면도 있지만 '착취의 새 기술적 방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우리 사회 최근 등장하고 있는 인디펜던트 워커 역시 새로운 트렌드이다. n잡러, 프리랜서, 잦은 이직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풍경이다. 

다양한 직업군의 인디펜던트 워커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선택이 바로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평생 직장을 여전히 소망하는 부모님들과 달리, 그들은 자라면서 IMF를 겪으며 부모님이 그 평생 직장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조직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젊은이들은 자신을 의탁하는 평생 직장 대신,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을 표현해내는 인디펜던트 워커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20008년 금융 위기가 프리랜서의 기점이 되었다. 기업이 망하고 거기서 풀려나온 인력들, 그리고 그 즈음에 활발하게 대두된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파트 타임 인력들이 프리랜서라는 직업군의 서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리랜서들의 증가는 코로나가 가속시켰다. 코로나 이후 41%나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김난도 교수는 우리 사회의 메가 트렌드의 변화를 직업군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라 짚는다. 지식과 사회 구조의 변화 과정에서 소속된 '직'이 의미를 상실하고 '업'이 중요시되는 세상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규직의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 실업의 징후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플랫폼 경제로의 변화 결국 '공정한 환경'이 관건이다. 

직장이 없는 걸 직업이 없는 걸로 치부되는 게 아쉽다는 인디펜던트 워커들, 정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자신들을 바라봐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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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트렌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는 '줌' 화상 회의를 일상화시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줌피로증이 대두되고 있다. 2차원의 규격화된 화면을 통해 상대의 '감정 단서'를 헤아려야 하는 피로감의 호소 사례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줌의 한계를 새로운 산업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바로 미국 뉴욕의 휴먼 터치 대표인 이진하 씨다. 스*이얼이라는 제품으로 알려진 그의 제품은 바로 증강 현실과 가상 현실을 결합한 것으로 원격으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화상 회의 서비스다. 즉 아바타로 서로가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촉감을 느끼며 악수도 하고, 입체적인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가 외려 '사람의 존재감'에 대한 절실함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 트렌디한 산업에 호응한 케이스다. 인간의 온기와 존재를 느끼게 하는 이 기술은 코로나 이후 10배나 매출이 증가하며 '온택트'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 

이처럼 '온택트'한 산업만이 아니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을 낳았다. 무분별한 인간의 탐욕과 환경 파괴가 현재의 상황을 낳았다는 '반성'이 소비 트렌드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코로나 이후 건강과 동물윤리, 생태계 보호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비건이 독일을 중심으로 주류 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이른바 '비거노믹스'는 산업으로 경쟁력을 제고시켜 보다 더 대중적이고 값싼 제품으로 문턱을 낮추는 한편, 기후, 인구증가, 질병 등에 대한 대안으로 코로나 이후 주목받고 있다. 

패션도 그러한 '비거노믹스'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는 중이다. 지미유, 예능에서 유재석이 입은 시그니처 셔츠는 가죽, 모피, 울 등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음은 물론,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재료를 쓰는 비건 패션의 선두주자 양윤아 씨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양윤아 씨의 작품은 연예인 등 셀럽을 중심으로 젊은 층에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입는지가 곧 나를 말해준다.'는 젊은 층의 소비 트렌드가 화답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 활동은 줄었지만, 코로나는 세상을 바쁘게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각자도생'의 삶이 대두되고 있는 한편, 코로나를 초래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모색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예전으로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발빠른 변화를 낳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20. 12. 19.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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