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100회를 맞이하여 특집으로, 그간 화려한 무대,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수고해 왔던 '세션맨'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덕분에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본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9월 <ebs다큐 프라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지탱하는 악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름하야,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지만, 그것을 통해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 음악을 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서두는 슬프게도 악기들의 무덤이 연다. (1부; 악기들의 무덤) 강원도 산골의 창고, 한때는 영광을 누렸던 악기들이 폐품이 되어 모여든다. 200년의 전성기를 누렸던  바이올린도, 음악사의 전기를 이뤘던 전자 기타도, 그 거대한 존재만으로도 아우라를 뿜어냈던 그랜드 피아노도 이제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간다. 마치 영화<토이스토리>의 버려진 장난감들처럼, 한때의 영광을 논하지만, 이젠 그저 무덤과 같은 창고 속에서 숨죽인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던 이곳에, 국내 최고의 악기장 6명이 찾아든다. 그들의 손에 의해, 무덤이었던 창고는 작업장으로 바뀌고, 죽었던 악기는 생명을 얻어간다. 그리고 찾아든 연주자들, 그들과 함께 죽어가던 악기는 음악을 연주하고, 그것을 통해, 악기의 존재 이유를 살핀다.


1부가, 음악을 통해 살아나는, 그리고 역으로 악기를 매개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폈다면, 2부는 조금 더 악기 자체에 집중하여, 악기의 특성을 살핀다. 2부가 시작되고, 피아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전자기타 등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자신있는 곡을  뽐낸다. 하지만, 그들이 제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곡을 연주해도, 저 마다 악기가 뿜어내는 음악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악기의 또 다른 존재론, '함께 하기'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2부; 악기와 악기가 만났을 때) 한양대 작곡가 정건영 교수의 수업을 매개로, 슈페르트 교향곡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합주에서 부터 시작하여, 동요에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함께 하는' 음악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저 소리가 커진다, 음역대가 넓어진다라는 단순한 특성을 넘어, 결국 통찰력있는 진실에 다가간다. 


2부가 악기의 합주를 통한 존재론의 특성을 살폈다면, 3부는, 악기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 미디어 아티스트, 카이스트 학생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세상에 없는 악기를 만들기를 도전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들뿐이 아니다. 악기를 변형하거나 손수 제작하여 연주하는 '저그 밴드'가 연주하는 것은 빨래판, 양동이, 그리고 대걸레자루이다. 명주실에 종이컵을 끼워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스트링그래피도 있다. 멋진 연주가 아니라도, 당근, 브로컬리, 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럴 듯한 관악기 소리를 낸다. 얼음이나, 물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에 도전하는 전병준 미디어 아티스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며,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그 음악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의 틀에 박힌 선입견을 깨기 위해, 빛과 소리와, 공기, 그리고 알루미늄 튜브, 피아노의 진공관, 톱니 바퀴, 심지어 총을 사용하여 새로운 악기와 음악을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 악기와, 그 악기들의 합주는, 물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음악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어딘지 음악같다. 마치 잭슨 폴락이 구멍 낸 물감통을 캔버스 위에 일정한 진폭으로 흩뿌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만들듯이, 그렇게 전병준과 함께 한 동료들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해 전병준은, 그들이 만들어 낸 음악보다도, 그렇게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해 가는 그 움직임, 행위 자체가 음악 같다는 말을 한다.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음악의 귀결점은, '듣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상대방이 연주하은 음악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음악을 함께 하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1부에서 무덤에서 악기를 되살려 낸 것, 그리고 그들을 다시 악기이게 만든 것은 바로 다름아닌, 악기와 동고동락하던 '인간'들이다. 
결국, 3부작 '악기란 무엇인가'는, 한낮 물건에 불과한, 악기를 매개로 한 인간의 도전과,화합, 그리고 창조의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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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9.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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